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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3

163화 대만으로 향하는 길

만신전의 맨앳암즈와 기사단 대부분은 일반 숙박룸에서 머문다.

보다 고급인 스위트룸과 로열 스위트룸은 레온을 비롯한 성배기사들 그리고 불타는 검 기사단 일부에게 배정됐고.

그중에서도 단 둘뿐인 로열 스위트룸은 찾기 쉬웠다. 하리는 수영복 차림으로 복도를 거닐며 베아트리체가 있을 방으로 들어갔다.

“여왕님, 계세요?”

똑똑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다. 하지만 움찔거리는 목소리만은 느껴졌다.

“여왕님?”

무슨 일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문을 여는 하리. 제대로 닫지 않은 건지 객실문이 열려 있었다.

“어··· 들어가겠습니다?”

슬쩍 바라본 객실 내부에는 베아트리체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인기척이 느껴졌는데···.

“???”

슬쩍 화장실 문을 열자 무언가가 잽싸게 그것을 붙잡았다.

“엑?”

왜지? 왜 문이 열리는 걸 붙잡은 거지? 설마 여왕님께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건가?

“여왕님! 괜찮으세요!?”

꿍!

문을 억지로 박차고 화장실로 들어서는 하리. 그곳에는 고급스러운 대리석 배경의 화장실과 강제로 열리는 문을 피해 뒤로 물러선 베아트리체가 있었다.

“오우······.”

베아트리체를 목격한 하리는 무심코 넋을 잃고 감탄사를 연신 내뱉었다.

“오우, 오우야······.”

“하리, 양?”

그녀는 평소처럼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훤칠한 신장과 몸의 곡선이 과시되는 모노키니 수영복 차림.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엇 하나 고혹적이지 않은 곳이 없고, 시선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남성을··· 아니, 멀쩡한 여성조차 매혹하는 타고난 아성.

눈가와 가슴, 허벅지의 점과 플르와 계약함으로 새겨진 검은 장미꽃 문신은 신화 속 매혹의 점을 연상시킨다.

경국지색. 나라를 뒤흔드는 미녀란 분명 이러할 것이지. 베아트리체는 실로 그러한 마력을 지닌 여인이었다.

“와··· 여왕님. 와······ 진짜 아름다우세요.”

하리는 마력에 대한 저항력이 있다. 축복받은 신녀인 그녀는 이 저주에 가까운 마성에도 상당히 저항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벌게진 얼굴과 홧홧해진 뺨이 뜨거울 정도로 달궈지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으음······.”

그것과는 별개로 베아트리체는 고사리 같은 두 팔로 제 몸을 가리기 바빴지만, 손바닥으로 어찌 하늘을 가릴까.

“여왕님, 수영복도 입으셨으면서 왜 여기 계세요?”

“으으··· 이, 이게 정말 수영복인가요?”

“예? 그야 당연······.”

베아트리체는 불그스레한 얼굴로 화장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선정적이고 고혹적인 제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수영복 차림을.

“망측해라······.”

“여왕님?”

“이, 이런 옷을 입고 세간에 나가다니, 대체 어떻게 그런 뻔뻔한 일을 벌일 수 있죠?”

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고귀한 왕족으로서 살아온 베아트리체는 맨살을 이렇게까지 드러낸 복장을 차마 용납할 수 없었다.

아무리 자신의 세계와 전혀 다른 문명을 구축한 현대 지구라지만, 이 망측한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서야 할지, 다시 갈아입어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에 하리가 들어온 것이다.

“여왕님, 굉장히 아름다우세요!”

“으윽··· 하리 양, 하리 양은 괜찮은 건가요?”

베아트리체는 자신 못지않게 노출이 심한 하리의 수영복을 보며 경악했다.

“어찌 과년한 처녀가 배꼽을 다 드러내고··· 망측하게······.”

“여왕님? 여왕님 평소 차림도 만만치 않으신데요? 드레스 중에는 가슴골과 허벅지를 훤히 드러난 옷도 많으시잖아요?”

“그건 패션입니다.”

대체 뭐가 다른 거지. 하리는 유독 수영복에서만 엄격한 베아트리체의 기준에 의아해했다.

하리의 시선을 읽었는지, 베아트리체는 가슴을 짚으며 품위 있게 말했다.

“저는 데뷔탕트를 치른 뒤부터 줄곧 사교계의 여왕이었어요. 유행을 선도하는 퍼스트 레이디로서 다양한 스타일의 드레스복을──”

하리는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사교계의 몸매를 과시하는 드레스와 수영복은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모양이다.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셨는데, 그럼 나중에 뵈어야겠네요.”

“······가지요.”

“아니, 망측하시다면서요.”

“그것과 별개로 폐하께는 업무상 볼 일이 있거든요. 앞으로 대비해야 할 것도 많으니까요.”

그런 이유로 어쩔 수 없다는 듯 화장실에서 나오는 베아트리체. 문득 그녀의 시선에 큼직한 샤워타올이 들어왔다.

* * * *

일련의 소동이 끝난 후 만신전은 로얄 스위트룸 전용의 수영장에서 온천욕을 만끽했다.

“악! 왜 때려요, 야피 경!”

-똑바로 마이야르 반응까지 고려해서 구워랏.

바비큐 기계에서 고기를 굽는 수호와 수영장 위에서 둥둥 떠다니며 와이어 채찍을 휘두르는 야피.

재혁은 사자심왕 폐하께서 오랫동안 집권하시길 빌면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폐하~ 술 드십니까? 오! 뭔가 비싸 보이는 와인도 있슴다!”

와인셀러와 냉장고에서 술병을 끄집어내는 재혁. 값비싸 보이는 와인병의 잘 알지 못하는 프랑스어를 알파벳처럼 읽어보는 소년.

“야, 너 미성년이잖아.”

한 마디 태클을 거는 소연. 그렇다. 수호와 재혁 그리고 소연은 아직 헌터 아카데미 3학년 생도. 아카데미에서 3학년은 길드 실습생으로 대부분 보낸다지만, 엄연히 미성년자다.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마라. 곧 졸업인데.”

성년까지 몇 개월 안 남았다며 두루뭉술하게 넘기려는 재혁. 그때, 하리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아앗! 김재혁 후배님!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거 뭐야!”

어딘가를 다녀온 하리가 헐레벌떡 뛰어와 재혁의 손에 쥐여진 맥주병을 빼앗았다.

“하, 하리 선배, 이건 오해······.”

“후배님 아직 미성년이거든요? 한수호!”

“아니, 난 왜······.”

“너도 술 마시려고 했어?!”

“아니아니!? 고기 굽고 있었어!”

“잘했어! 수호 너한테 술은 아직 일러!”

하리는 아카데미 입학 전까지만 해도 고아원에서 큰 누나 역할을 했었다. 고로 비행에 빠지기 쉬운 동생들에게 민감했다.

“하여튼, 이런 건 누나처럼 어른들이 마시는 거야. 알겠지?”

한 살 차이면서··· 미성년 세 사람의 시선이 미묘하게 하리를 향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하리는 술잔에 맥주병을 따랐다.

“그런데 누나, 어디 다녀온 거야?”

“여왕님이 안 계셔서 스위트룸에 잠깐··· 응? 왜 아직도 안 들어오셔요?”

하리의 시선 끝에는 수영장 입구에서 서성이는 베아트리체가 있었다. 타올로 온몸을 꽁꽁 감싼 그녀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으음······.”

그녀로서는 통탄할 광경이다.

남녀가 맨살을 훤히 드러내고 한 욕탕─수영장─에서 몸을 뒹굴다니?

하다못해 레온은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태연하게 수영장 안에 있는 꼴이 영 배신감이 들었다.

“비체, 거기서 무얼 하시오. 탕이 따뜻하고 기분 좋으니 들어오시게.”

“으으, 폐하······.”

레온의 라이온하트 왕국은 베아트리체의 스페로 왕국처럼 화려한 사교계와 찬란한 문화를 지녔지만, 그 결이 조금 달랐다.

마술사 중심의 스페로 왕국이 화려함 속에 절제된 엄격함을 미덕으로 추구했다면, 라이온하트 왕국은 기사 중심의 자유분방하고 활동적인 연애사를 자랑했다.

평민에게 구애하는 기사나 공주를 구하기 위해 사악한 괴물과 대적하는 기사들의 연애사는 인기 있는 부류의 소설이고 실제로 모티브가 된 기사가 많았고.

당장 레온만 해도 사랑을 위해 순결의 신전에서 여신관을 보쌈한 당대의 로맨티스트였지 않았나.

“폐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으신 모양이군요.”

베아트리체는 타올을 무슨 갑옷 마냥 꽉 둘러입고 수영장에 발을 담갔다.

평소 레온과 술자리를 갖는 일이 잦은 그녀였지만, 타올 너머로 피부가 훤히 드러나는 이 상황은 영 거부감이 심한 모양이다.

“뭐, 왕궁문화가 그러했소. 왕국의 연회장에는 그날 눈이 맞은 남녀를 위한 휴게실도 제법 있었고.”

“폐하···!”

“하하, 과년한 그대에겐 조금 이른 이야기였나?”

베아트리체는 드물게 뾰로통한 표정으로 레온을 노려봤다. 이 남자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게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 그나저나 폐하. 앞으로의 이야기 말입니다만.”

베아트리체는 여전히 타올로 제 몸을 가린 채 말했다. 물의 부력으로 타올 일부분이 뜨고 있었지만,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눈치다.

“이번에 대만 공화국에서──”

그때, 레온의 검지 손가락이 베아트리체의 입술을 막았다. 레온은 눈을 동그랗게 뜬 베아트리체를 향해 씨익 웃으며 말한다.

“일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게. 지금은 먹고 마시며 즐겨야지.”

베아트리체의 하얀 수국화 같은 피부에 붉은 물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모처럼 절경을 벗 삼아 도락을 누릴 수 있는 시간 아닌가. 이 시대풍의 옷차림으로 맞이하는 대양의 파도도 꽤나 풍류가 있지 않은가.”

“폐하께서는··· 전자장비는 익숙하지 않으면서 지구의 풍습에 꽤나 익숙하시군요?”

베아트리체의 지적에 레온은 뜨끔했다. 그의 본질적인 출신지는 일단 지구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중세의 사자심왕으로 300년을 살아왔으면서도 지구 풍습에 쉽게 적응했지만.

“아아, 그놈의 스마트폰이라는 것은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는단 말이지.”

레온은 얼버무리면서 와인병을 하나 들어 올렸다.

“자, 사자심왕의 어사주이다. 네 녀석들도 한 잔씩 받도록.”

“어음······.”

슬쩍 누나의 눈치를 보는 수호. 하지만 하리는 레온이 내린 어사주에 정신이 팔린 건지 헤실헤실 웃을 뿐이다.

“어사주라니 잘 받겠습니다요.”

재혁은 비싼 술을 얻어먹을 기회라 생각했는지, 능글맞게 잔을 받들었다. 소연 또한 레온이 권하는 어사주를 거절하진 않았다.

자연스럽게 술 한 잔씩 받아든다. 베아트리체도 술을 좋아하는 편이었으므로 타올로 몸을 가리면서 소심하게 잔의 내용물을 마셨다.

“흠.”

레온은 그것을 받아들고 미묘한 표정이다. 아무래도 술맛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이 자리에서 술맛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사람은 여왕뿐이기에 레온은 슬쩍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

“술맛이 어떻소?”

“폐하가 내리신 어사주이니 감미로울 수밖에요.”

“에잉······.”

겸손도 이쯤 되면 답답하다. 레온이 아공간을 향해 손을 뻗자 그곳에서 불려나온 것은 술병들이다.

“라이온하트 르보니아 지방의 포도로 만든 술이다. 짐에게 진상된 가장 귀한 술이지.”

“오오···!”

감탄하는 무리들. 베아트리체는 슬쩍 웃으면서 그것을 받아들였다. 전보다 훨씬 기대를 품은 시선이다.

“폐하께서 몇 번 대접해주신 적이 있지요. 아주 감미로운 와인이랍니다.”

베아트리체가 호평하자 기대를 품고 술을 목으로 넘기는 이들. 그들은 술을 마신 순간 어지러움이나 아렴풋한 감각이 아니라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급수의 청정수로 머릿속을 세척하는 기분. 혀끝에서부터 느껴지는 강렬한 쾌감과 몸을 감싸는 향기가 초심자조차 보통 물건이 아니란 걸 깨달을 정도다.

“와~ 진짜 말도 안 돼.”

“마신 것만으로 힘이 솟구치는 기분이에요.”

여기저기서 호평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레온은 자랑스럽게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 생명과 풍요의 성배기사가 일년에 한 번 대성법으로 키워내는 포도로 만든 것이다. 기사들의 공로를 치하하는 어사주로 진상되는 것이지.”

지금 시대에는 불가한 일이라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라 말하는 레온.

“으히히······.”

그때, 레온의 옆자리에서 하리가 꾸벅꾸벅 비틀거렸다.

“누나, 취했어?”

“아니, 술 몇 잔 마셨다고 저래.”

그야 천상의 쾌락을 선사하는 술이긴 했다. 하지만 도수는 그렇게 높지 않았는데, 맥주 한 잔과 와인 두 잔만으로 하리는 인사불성인 양 비틀거렸다.

“폐에하아아··· 한잔 드어 주세여······.”

“취한 모양이군.”

레온이 보기 드물게 자애로운 시선으로 하리를 내려다봤다. 술이 몸에 안 받는 체질이야 왕국에서도 여럿 봤으니 그리 대수로울 것도 없다.

-알코올 분해시술 가능.

기계팔을 흉측한 드릴로 변환하며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수술을 준비하는 야피. 레온이 만류했다.

“내버려두게, 스피너 경. 본디 음주가무는 취기 그 자체도 즐기는 방법일세.”

-끼룩?

어쨌든 하리는 한창 취해 더이상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수호가 일어섰다.

“누나를 의자 위에 쉬게 할게요. 이러다 빠지겠네요.”

“그래, 춥지 않게 이불을 덮어주거라.”

그렇게 수호가 하리를 부축해서 수영장에서 일으키려던 순간이었다. 발을 삐끗한 하리가 그대로 허물어지더니 함께 수영장 바닥에 처박혔다.

-어푸! 어푸푸···!

저런 푼수를 보았나. 레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하리를 일으키려 했지만, 그때 하리가 본능적으로 발한 성력이 성법으로 승화했다.

성법 <파도 가르기>

-콰아아!

확! 하고 갈라지는 수영장. 지구제 성서의 홍해처럼 갈라진 물이 순식간에 수영장 위로 솟구친다.

“앗···.”

여왕의 단말마 같은 짧은 아우성. 베아트리체는 수영장 물과 함께 딸려 올라간 목욕타올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오우야······.”

“와아······.”

탄성이 흐르는 두 소년의 반응. 베아트리체가 말없이 얼굴을 붉히며 쪼그려 앉았다.

배꼽을 드러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으로 갇그한 그때, 펄럭거리는 무언가가 그녀를 감쌌다.

“폐하?”

베아트리체의 몸을 가려준 것은 레온이 아공간에서 꺼낸 망토였다. 마계의 빙하대륙에서 레온과 함께 추위를 피해 덮었던 기사의 망토.

이번에는 베아트리체의 몸을 가려주기 위해 펼쳐진 망토 안에서 레온이 말했다.

“뭐, 차근차근 익숙해집시다.”

햇빛을 차단하고 드리운 어둠 속에서 레온의 미소만은 유독 눈부시게 빛났다.

[좋아좋아, 본녀가 보기에 아주 좋았더라.]

[내 신녀야, 하리야···! 지금 자빠져 잘 때가 아니다!]

[전쟁은 조용히 하라. 좋을 때가 아니더냐.]

[빛은 내 신녀에게 우선권이 있음을 인정하라!]

[쯧쯧, 그냥 다 가지면 될 것을.]

[동감이다.]

[바다와 복수도 조용히 하라.]

[나는 어디 데려올 딸 없나······.]

[풍요까지 왜 그러느냐······.]

신들의 목소리는 평범한 이들에겐 들리지 않는다. 신과 밀접하며 그 축복을 가득 부여받은 고위기사급이나 신관이 아니면 말이다.

불행히도 이 자리에 신들의 주접을 듣지 못하는 일반 신도가 없었다는 것이지만.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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