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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3

163화 각자의 길 (1)

163화 각자의 길 (1)

내가 루나와 세실의 마음을 모른다고?

천만에. 아주 잘 안다. 루나와 세실 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주요 등장인물에 대해 나만큼 해박하게 아는 사람은 없을 거다.

물론 ‘나’라는 존재의 등장으로 세실은 많이 달라졌다. 소설 속의 세실이 카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였다면, 지금의 그녀는 나와 카인 사이에서 갈등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제 세실이 카인보다는 나를 우선시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눈치 빨라.”

눈치라기보다는 ‘지식’에 가까울지도 모르지만.

“후우······.”

루나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어 제 머리를 벅벅 긁더니, 괜히 내 팔을 한 대 때리고는 앞장서 걸었다.

“뭐 하니? 눈치 없게. 빨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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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리아! 다 나은 거야?”

치유실 문을 열자마자 루나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환자복 대신 교복을 입은 세실이 다소곳이 침대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루나.”

루나에게 인사한 세실이 나를 돌아봤다.

눈이 마주치자 흠칫 표정을 바꾼 세실은 시선을 옮기며 우물쭈물하다가,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여자의 웃음과 친절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돼. 미묘한 표정 변화라는 게 있다고. 시선 처리라든가, 말투도 그렇고.’

갑자기 루나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세실의 감정을 추측해 보기로 했다.

세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살짝 표정이 바뀌었고, 흔들리듯 시선이 움직였다. 그러고는 따스하게 미소하며······.

“······!”

모르겠다.

***

세실이 완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학기 성적이 발표됐다.

<검술학부 1학년 2학기 성적>

1위: 루나 크라소타 (997점)

2위: 세실리아 크라소타 (994점)

3위: 앙투안 브르타뉴 (916점)

4위: 데르맛 오셀롯 (90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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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 루나.”

“고마워 세실리아. 헤헤······.”

루나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 세실이 루나에게 팔짱을 끼며, 루나의 얼굴에 제 볼을 가져갔다. 이후의 수순은 뻔했다. 루나가 세실을 끌어안으며 볼을 비볐고, 행복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세실리아. 넌 내 꺼야. 진짜 내 꺼라고.

마법학부 1등은 당연하게도 카인이었다. 카인은 998점으로 1학년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그리고 2등은.

2위: 데미안 시니야카 (947점)

“와! 데미안!”

루나가 제 일처럼 기뻐하며 내 손을 잡았다. 그러다가 옆에 있던 아리엘을 보고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며칠 전 루나의 말을 들은 뒤로 나는 보다 면밀하게 주변인들의 감정을 파악하려 노력 중이다. 그런데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아리엘은 언제나 루나에게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축하해. 데미안.”

아리엘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네가 2등일 거로 생각했어. 너는 아르카넘 듀얼의 4강 진출자잖니.”

“고마워 아리엘.”

<마법학부 1학년 2학기 성적>

1위: 카인 시니야카 (998점)

2위: 데미안 시니야카 (947점)

3위: 아리엘라 플랑브아즈 (936점)

4위: 미아 데본렉스 (90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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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이 900점 이상의 점수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는 900점 이상의 학생이 8명이나 나왔다.

물론 아르카넘 듀얼과 블레이드 듀얼에서 얻은 가산점이 상당할 거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듀얼에서 활약할 정도의 인재가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900점이 넘는 점수를 획득한 1학년은 전원 4학년으로 진급시키기로 했습니다.”

이자크 펠리온 교장의 선언에, 아리엘은 4학년으로 월반하게 된 우리 모두를 플랑브아즈 저택으로 초대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기뻐한 이는 물론 루나였다.

“헤헤 데미안. 아무래도 내가 착각했었나 봐! 아리엘이 나한테 조금 차가워진 거 같다고 했던 거 말이야!”

***

루나는 요즘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다.

난생처음으로 세실리아와의 대련에서 승리하고, 블레이드 듀얼의 우승자가 됐다. 거기에 더해 997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마법학부 1등을 차지했으며, 다음 학기에는 4학년으로 월반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쁜 일은 친구들과 함께 월반하게 되었다는 거다.

머지않아 플랑브아즈 저택에서 마차가 올 것이다. 루나는 아리엘과 오해를 풀게 된 것이 몹시 기뻤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혼자 착각하고 우울해했던 거였다. 아리엘이 그럴 리가 없는데.

루나는 아르카넘 홀의 생활이 즐거웠다.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좋았다.

“헤헤헤······.”

루나는 연신 웃는 얼굴로 교정을 걷고 있었다. 옆에서 세실리아가 흘끔흘끔 쳐다본다. 그때마다 루나는 이를 활짝 드러내어 웃으며 세실리아를 돌아봤다.

“그런데 세실리아. 엘리샤는 갑자기 왜 우리를 부르는 걸까?”

두 사람은 엘리샤를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밤하늘에는 별빛이 총총하다.

“깜짝선물이라도 주려는 걸까? 월반 기념 선물 말이야!”

“그런. 걸까?”

“응! 맞을 거야! 엘리샤는 덤벙대지만 따뜻한 사람이거든. 그리고 의외로 어른스러운 면도 있어! 아마 교수실에 들어가면 깜짝 파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걸?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게 좋을 거야 세실리아. 안 그러면 정말 화들짝 놀라버릴 테니까!”

머지않아 목적지에 다다랐다.

루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쉿.”

세실리아를 돌아보며 루나가 검지를 세웠다. 재밌는 생각이 났다. 루나는 도리어 엘리샤를 깜짝 놀라게 할 셈이다.

살금살금 복도를 걸었다. 교수실의 문틈으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루나와 세실리아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벌컥 문을 열었다.

“아하하하! 놀랐······!”

까르르 웃으며 외치던 루나는 예상과 전혀 다른 분위기에 흠칫 놀랐다.

엘리샤가 말없이 루나를 바라봤다. 자리에는 데미안과 카인도 있었고, 자신을 돌아보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본 루나는 왜인지 마음이 불안해졌다.

“뭐······ 뭐야? 왜 이렇게 심각한 분위기로······.”

“일단 앉아.”

엘리샤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교수실 문을 닫은 루나와 세실리아는 빈자리에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루나.”

“네, 네?”

엘리샤의 부름에 답하며, 루나는 세실리아의 손을 꼭 쥐었다.

세실리아도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루나는 다가올 무언가가 두려웠다.

“내일 새벽에 마차가 올 거야.”

“마, 마차요? 아······. 플랑브아즈 저택의?”

엘리샤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플랑브아즈 저택으로 가지 않아.”

“네?”

“은월섬으로 간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루나는 아르카넘 홀의 생활이 좋았지만, 그렇다고 섬을 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니,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면 주저 없이 섬을 택할 것이다.

“하, 하지만 플랑브아즈 저택으로 가기로 약속했어요. 겨울방학은 기니까 저택에 다녀온 뒤에 출발해도······.”

“루나.”

엘리샤가 루나의 손을 잡았다.

그 손에서 생각지도 못한 떨림이 느껴져서 루나는 왈칵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리아논이 위독해.”

***

창밖은 어두웠다.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엉엉 울던 루나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미안.”

카인이 방문을 열며 나를 불렀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미리 꾸려두었던 짐가방을 들고 기숙사를 나섰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기분이다. 저만치 여자 기숙사 앞에 웅크려 앉은 루나와 세실이 보였다.

“루나.”

가까이 다가가자, 루나가 고개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뚝뚝 눈물을 흘렸다. 루나의 저런 얼굴을 보는 것이 괴롭다. 이 감정만큼은 카인과 내가 쌍둥이처럼 닮은 부분일 것이다.

이제 보니 아리엘, 미아, 앙투안, 그리고 데르맛까지 나와 있었다. 다음 학기에 4학년으로 월반하게 된, 그래서 다 함께 플랑브아즈 저택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한 친구들이었다.

“가자.”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루나는 몇 번인가 걸음을 멈추며 울음을 견뎠고, 그때마다 카인이 그녀를 다독였다. 굳이 녀석의 감정을 알아내려 노력하지 않아도 보인다. 카인은 진심으로 루나를 걱정하고, 슬퍼하고 있다.

정문 근처에 다다르자 마차가 보였다. 놀랍게도 우리를 보자마자 마부석에서 뛰어내리는 이는 벨락이었다.

루나는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벨락······! 벨락······! 흐흐흑······!”

벨락은 말없이 루나를 안아주었다.

잠시 후, 우리는 마차에 올라탔다. 엘리샤는 아르카넘 홀 바깥에서 만나기로 했다. 혹 다른 이들에게 우리와의 관계를 들킬까 염려해서였다.

“미안해 아리엘. 저택에 초대해 주었는데······.”

“아니야 루나. 조심해서 다녀와. 어머니의 쾌유를 기원할게.”

마차가 출발했다.

갑자기 아리엘이 마차를 쫓아 달리며 우리를 불렀다. 생각지 못한 상황에 우리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고, 아리엘을 향해 마주 손을 흔들었다.

아리엘의 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아리엘의 뒤를 쫓아온 미아가 그녀의 손을 잡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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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넘 홀을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샤가 동석했다. 이후 마차는 나는 듯이 달렸다. 벨락은 거의 잠을 자지 않았고, 말들이 지칠 때마다 미리 준비해 둔 다른 마차로 갈아타며 계속 이동했다.

어쩔 수 없이 벨락이 쉬어야 할 때는 엘리샤가 말고삐를 쥐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해와 달이 저물었고, 우리는 흰 새 여관에 도착했다.

“브란델!”

루나가 브란델의 품에 안겼다.

우리는 곧장 은월호가 정박한 동굴로 향했다. 브란델도 함께였다.

“오셨습니까! 부단장!”

은월호는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배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은월의 단원들만이 아니었다.

“왔니?”

에스틸리아 교수가 왜 여기에 있지?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은월섬의 존재는 섬 바깥의 사람에게는 절대로 알려서는 안 되는 비밀 아니었나?

“뭘 그리 얼빠진 표정으로 서 있니? 출항해야 하니 올라와. 어이, 얼간이 엘리샤. 빨리빨리 안 움직여?”

“히익! 네, 네! 지금 갑니다! 가요!”

번쩍 루나를 안아 든 엘리샤가 허겁지겁 배에 오르며 외쳤다.

“뭐, 뭐해 이것들아! 어서 움직여!”

우리는 멍한 얼굴로 엘리샤의 뒤를 따랐다. 혼란스럽다. 방금 에스틸리아 교수는 엘리시아가 아닌, ‘엘리샤’라는 본명을 말했다.

“은월호! 출항합니다!”

배는 묵직한 소음을 발하며 나아갔다.

동굴 입구를 벗어나자 선명한 햇빛이 들이쳤다.

그리고, 무언가를 발견한 내 눈이 커다래졌다.

사르륵.

에스틸리아 교수의 다홍빛 머리카락이 마법처럼 색을 바꿨다.

마치 증발하듯 허공으로 사라진 다홍빛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은백색이었다.

‘머리카락을 염색했나요?’

언젠가 에스틸리아 교수가 루나에게 했던 말이 머리를 스쳤다.

에스틸리아 교수가 히죽 웃으며 딱!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굽신거리며 달려온 엘리샤가 그녀의 등에 은빛 망토를 둘렀다.

“정식으로 소개하지. 내 이름은.”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그녀의 망토를 하늘 위로 흔들었다.

“에스틸리아 이그드라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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