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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4

163. 거지남매 – 자립

“레나. 이제 일어나야지.”

“이잉, 오빠 조금만 더… 핫!”

비몽사몽, 오빠와 숨바꼭질하는 꿈을 꾸던 레나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폭신한 감촉과 낯선 목소리에 놀라 토끼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잘 잤어?”

– 히끅!

레나는 자기도 모르게 이불을 턱까지 들어 올렸다. 딸꾹질하며 눈앞의 여자를 잠시 바라본 뒤에야 여기가 어딘지 깨달았다.

“어, 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레나는 후닥닥 침대에서 내려왔다. 침대 옆, 바닥에 깔린 이부자리를 밟고 일어나 꾸벅 배꼽 인사를 올렸다.

크세니아 언니의 방이었다.

어제, 오빠가 앞으로 여기서 지내라고 말했다. 오빠와 떨어지는 게 싫어서 떼를 써보았지만, 오빠는

“자주 찾아올게. 너라도 좋은 집에서 지내고 있어야 오빠 마음이 편치 않겠니?”

라며 애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내일 올 거지? 매일 올 거지?”

“그래. 내일도 오고, 모레도 올게. 언니 말 잘 듣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극장 밖으로 나오는 건 이번만이야, 알겠지? 약속.”

오빠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하지만 레나는 울상이 된 얼굴로 물었다.

“…약속하면 매일 올 거야?”

오빠가 날 두고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오빠를 믿지만, 약속이라도 받아내고 싶었다.

찰나의 망설임. “그래.” ─ 오빠의 대답은 아주 작은 간격을 두고 튀어나왔다. 불안감에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 했으나 오빠가 나를 포옥 끌어안았다. 등을 토닥이며 “그럴게. 꼭 매일 올게.” 말하자 불안이 다소 가라앉았다.

“크세니아. 동생을 잘 부탁할게요. 그렇게 오래 신세 지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시겠죠.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오빠는 떠났다. 어딘가 서두르는 발걸음으로 골목길을 꺾어 사라졌다. 어느덧 노을이 내리려 하고 있었다.

“우리도 들어갈까?”

“…네.”

관객이 떠난 극장은 조용했다. 자신을 크세니아라 소개한 언니가 어깨를 차분히 두드려주는 걸 느끼며 레나는 그녀를 따라 극장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늦었으므로 두 사람은 이내 방으로 돌아왔다. 침묵이 깔린 극장 1, 2층과 달리 사람이 거주하는 3층은 부산스러웠다.

“어머나, 예뻐라. 처음 보는 애네. 누구야?”

복도를 지나가는데 몇몇 아주머니들이 말을 걸었다.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는 통에 바짝 긴장한 레나는 크세니아의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제 남자친구 동생이에요. 한동안 여기서 머물기로 했어요.”

“남자친구? 크세니아. 너 애인이 있었어?”

레나를 향해 쏟아지던 관심이 방향을 틀었다. 좁은 복도, 열린 방문으로 아주머니들이 너도나도 말을 거는 사이, 레나는 등을 미는 크세니아의 손짓을 느꼈다.

“어떤 사람이야?”, “언제부터 사귄 거야?” 재잘대는 물음이 방문이 닫히며 희미해졌다. 크세니아의 방으로 밀려 들어온 레나는 우물쭈물, 문가를 떠나지 않았다.

좋은 방이다.

활짝 열린 창으론 노랗게 물들어가는 하늘이 보였고, 달콤한 향수 냄새가 옅게 풍겼다.

하지만 감히 카펫을 밟지 못하고 제자리에 덩그러니 서 있던 레나는 문득 또렷한 현실감을 느꼈다.

낯선 공간.

만져도 될지 안 될지, 앉아있어도 될지 안 될지 모를 공간은 그녀에게 고독을 안겨주었다.

“히이이잉… 오빠아아…”

레나의 눈에 닭똥 같은 눈물이 맺혔다.

오빠와의 이별이 갑작스럽다. 오늘 하루 일어난 놀라운 일들을 미처 소화하기도 전에 홀로 남겨진 레나는 난생처음 입어본 깨끗한 원피스 자락을 움켜쥐고 훌쩍거렸다.

그 시간은 꽤 길었다. 바깥에서 들려오던 재잘거림마저 사라져 조용해지자 겁에 질린 레나는 결국 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나, 세상에. 이걸 어쩜 좋아.”

크세니아가 돌아왔다.

양손에 접시를 든 채,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문가에 쪼그려 앉아 통곡하는 레나를 재빨리 감싸 안았다.

“오빠가 없어서 그렇구나. 그래서 많이 슬프구나.”

무릎 꿇고 레나를 끌어안은 크세니아가 자장자장, 몸을 좌우로 느릿하게 움직였다. 심장 박동에 맞춰 등을 두드리자 레나도 크세니아를 끌어안았다.

가엽다. 비쩍 마른 소녀의 머리에 뺨을 댄 크세니아는 간질간질한 모성애를 느꼈다.

아까까지만 해도 참 밝은 아이였다. 레오가 오베르와 함께 신발을 구하러 나갔을 때만 해도 별로 걱정이 없던 아이였다.

오빠가 자길 맡겨놓고 떠난다는 말을 듣고도 실감하진 못했나 보다.

두 사람은 잠시 그러고 있었다. 크세니아가 가져온 먹거리가 차게 식어갈 무렵에서야 울음이 잦아들었고, 크세니아가 손을 뻗어 손수건을 찾았다.

“흥 해. 흥.”

“힉… 히익… 흥. 흐으응.”

그렁그렁한 눈물을 닦은 뒤, 손수건을 뒤집어 콧물 범벅이 된 입가를 닦았다. 앙증맞은 코를 붙잡아 코 푸는 걸 도와주었다.

“이제 좀 괜찮아?”

끄덕끄덕.

“그럼 우리 밥 먹자. 배고프지? 식당에서 맛있는 것만 골라왔어.”

끄덕끄덕.

크세니아는 레나의 손을 꼬옥 잡아 일으켜 세웠다. 탁자에 앉은 레나의 발이 동동, 바닥에 닿지 않는 걸 보곤 의자를 하나 더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내후년이면 성년이라는 애가 어쩜 이렇게 작을까. 못 먹고 자란 모양인데, 어쩌다 이렇게 안쓰러울 정도로 예뻐져 버렸을까.

크세니아는 자기 접시에 놓인 파이 한 조각을 레나의 접시에 덜어주었다. 레나는 후로스카(hruska)라는 과일이 들어간 그 달짝지근한 음식을 처음엔 깨작깨작, 훌쩍이며 먹다가 나중엔 으에엥-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퍼먹었다.

“어이구… 또 울어? 이번에는 맛있어서 그러는 거지? 응?”

크세니아가 일어나 다가갔다. 레나의 뺨을 간지럽히며 우쭈쭈, 장난치자 레나는 푸히힛 울상이 된 얼굴로 실소했다.

“누가 보면 오빠가 아주 떠난 줄 알겠어. 내일이면 올 텐데 부끄러워서 어쩌려고 그래? 그만 뚝. 그래. 그래야 이쁜 아이지.”

크세니아가 자리에 앉았다.

“난 크세니아야. 넌 이름이 뭐니?” ─ 피차 아는 내용으로 운을 떼자 레나는 차분해진 목소리로 답했고, 자근자근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어떻게 살았는지, 그런 호구조사는 없었다. 크세니아는 “아까 내가 연기하는 거 봤어? 무슨 실수를 하진 않던?”이라며 사소한 이야기로 주의를 환기했다.

밥을 먹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같이 살아야 할지 이야기할 생각이었는데, 나중으로 미뤄야겠다.

크세니아가 말하고, 레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시간이 흘렀다. 해가 떨어지면서 사위가 어두워지자 크세니아는 피곤한지 눈을 비비는 레나를 위해 바닥에 이불을 깔아주었다.

“여기 누워.”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잠깐만.”

크세니아가 창문을 닫고 돌아왔다. 어둠 속에서 잠시 레나의 곁을 지키던 그녀는 “잘 자렴.” 말하곤 침대에 올라 잠을 청했다.

오빠는 잘 들어갔을까.

레나는 볼품없는 집에서 혼자 잠들었을 오빠를 걱정했으나 이불의 폭신한 감촉을 견디지 못하고 이내 까무룩 잠이 들었다.

생소한 환경에서의 첫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 * *

레나는 극장에서의 생활에 점차 적응해나갔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나오는 밥은 맛있었고, 극장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 아마 크세니아 언니 덕분이겠지만, 누구도 그녀를 괄시하지 않았다.

이 극장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크게 네 부류였다.

연극을 하는 배우들과 무대를 관리하는 아저씨들, 극장을 지켜주는 라우노 패밀리의 깡패 아저씨들,

그리고 극장 꼭대기에서 생활하는 아주머니들.

레나는 이 아주머니들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들에게 특출난 귀염을 받았다. 그들은 레나를 볼 때마다 “아휴, 예뻐라. 참 곱기도 하지…” 아련한 눈으로 때 묻지 않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건 레나에게 행운이기도 했다.

크세니아가 하는 공연을 훔쳐보기 위해 객석으로 내려왔다가 레나가 그녀의 외모에 반해 질척이는 사내에게 붙들리거든, 그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헤픈 관객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오베르 씨! 이 사람 당장 내쫓아욧!” 소리쳤다.

레나는 극장 사람들의 보살핌 속에서 환한 웃음을 되찾아갔다.

“잘 지내고 있지?”

“오빠!”

오빠는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왔다.

첫날에 잠시 오베르 아저씨와 할 이야기가 있다며 일찍 자리를 비웠던 걸 제외하면, 처음 몇 주일간은 하루 종일 곁에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오빠. 아침에 티안이랑 놀았는데, 있지~”

“산티안?”

“응. 걔가 아무래도…”

연극 연습이 한창인 무대를 바라보며 객석에 앉은 레나가 작게 귓속말했다. 딱히 엿들을 사람도 없지만.

“날 좋아하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한 레나는 얼굴을 가리고 꺄르르 웃었다.

티안은 귀엽다.

종종 극장에 놀러 와 말동무가 되어 주었는데, 알고 보니 그 녀석은 나보다 어렸다!

그런 주제에 나한테 사내다운 모습을 보이겠다고 하는 꼴이 가관이다. 무대 밑에 작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에 있으면 분장실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다 들을 수 있다나 뭐라나, 큰소리쳤지만 다 헛소리였다.

레나와 산티안은 순식간에 오베르 아저씨에게 붙잡혀 훈계를 들었고, 티안은 꼴에 책임을 지겠다고

“레나는 잘못 없어요! 제가 꾸민 일이에요.”

말했다. “당연히 네가 꾸몄겠지. 그걸 누가 몰라?” 더 혼이 났다.

‘꺄아, 어떻게 해! 오빠한테 말해 버렸다.’

레나는 슬그머니 손가락을 벌려 그 사이로 오빠를 봤다. 그런데 그는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야 저 얼굴은?

“어떻게 생각해?”

“…좋겠네. 하지만 레나야.”

“응?”

“티안이랑은 친구로만 지내야 한다?”

“…왜?”

사귈 생각도 없지만, 공연한 반발심이 들었다. 자기는 크세니아 언니랑 사귀고 있으면서 왜 나한텐 안 된다고 하는 거야?

다행히도 오빠의 뒤따른 답변이 그녀를 진정시켰다.

“아직 내가 티안이라는 애를 잘 몰라서 그래. 설마 오빠 허락도 없이 사귈 생각은 아니었겠지?”

“꺄악! 간지러, 이것 놔아!”

“응? 아니지?”

“꺄하하하하하. 아니야. 안 그럴게. 꺄아악! 사람 살려!”

레나는 오빠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났다. 호다다닥 분장실로 달아나 탁자 아래로, 탁자 아래 환풍기를 타고 무대 아래로, 다시 객석으로 빠져나왔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오빠는 나를 쉽게 찾아냈다.

티안, 이 멍청이. 우리 오빠도 아는 곳을 자기만 안다고 허풍을 치다니. 나중에 혼내줘야겠다.

이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오빠가 매일같이 찾아오고, 티안과 종종 극장에서 숨바꼭질하고, 오베르 아저씨에게 쫓기면 크세니아 언니나 다른 아주머니의 방에 숨어서 동화책을 읽던…

하지만 몇 주일이 지나자 오빠의 방문이 조금씩 뜸해졌다.

이틀 걸러 한 번 오던 게 사흘에 한 번이 되고, 나중엔 기껏 일주일 만에 찾아온 게 어두운 저녁이었다.

오빠는 일자리를 구했다고 말했다. 어떤 일인지 알려주진 않았지만, 바빠서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것이니 이해해 달라 말했고, 레나도 점차 자립해나가고 있었다.

이 오랑주 극장에 들어온 지 고작 한 달 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분장실을 들락이며 크세니아 언니의 연극 연습을 구경하고 있던 레나에게 머리칼이 희끗한 장년의 남성이 다가왔다.

“레나 씨? 아가씨 이름이 레나가 맞지요? 안녕하세요. 저는…”

레나는 멀끔히 차려입은 아저씨를 말똥말똥 바라보다 그가 내민 손에 손을 올렸다.

“브레틴이라 합니다.”

진회색 눈동자와 금빛 눈동자가 얽혔다. 이 극장의 주인이자 한때 창관의 지배인이었던 그는 우아하게 레나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 혹시 시간이 되시면 잠깐 안에서 이야기할까요?”

또, 그는 오르빌에 존재하는 모든 창관의 지배자, 브리안 자우어 자작의 배다른 형이기도 했다.

“네.”

순진하게 답한 레나는 브레틴을 따라 개인 분장실을 향했다. 멀리서 연습 중이던 크세니아는 “잠깐만. 곧 돌아올게.” 후다닥 무대에서 내려와 두 사람을 뒤쫓았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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