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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5

164화.

난 병원 침대에 누워 태블릿으로 밀린 뉴스를 훑어보았다.

한동안은 지진으로 시끌시끌했다.

캘리포니아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걸쳐 있어 평소에도 지진이 잦은 편이다. 대부분 해상지진인 데다 규모가 크지 않아 일반인들은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다. 그런데 이번 지진은 규모가 꽤 컸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이 일시적으로 멈추고, LA에서도 흔들림이 감지되었을 정도였으니. 언론에서도 몇 년 만에 가장 규모의 큰 지진이 일어났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지진 이슈는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가라앉았다. 그 이후부터는 나와 관련한 기사가 줄을 이었다.

심지어는 내가 못 깨어날 경우 자동차업계와 포르노업계에 미칠 파장을 분석해놓은 기사도 있었다.

“…….”

자동차야 그렇다 치고, 포르노는 왜?

긴장이 풀렸는지 엘리와 어머니는 옆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동안 걱정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

호텔로 가서 주무시라고 얘기했지만, 둘 다 계속 옆에 있겠다고 했다.

“저도 좀 쉬어야죠. 사람 많으니 집중이 안 되어서 못 쉬겠어요.”

몇 번의 설득 끝에 어머니와 엘리는 현주 누나와 함께 호텔로 돌아갔다. 택규는 옆에서 아까 먹다 남은 피자를 마저 먹었다.

혼자서 한 판 다 먹을 기세다.

나도 같이 먹고 싶었지만, 간호사는 위장이 약해져 있어서 당장 피자 먹으면 탈날 수 있다며 걸쭉한 수프를 건네주었다.

배가 고파 먹긴 했지만, 맛은 더럽게 없었다.

병원밥 맛없는 건 만국공통인가?

난 계속해서 지진에 관한 뉴스를 검색해보았다.

그러고 보니 샌프란시스코로 갈 때부터 느낌이 좀 이상했다. 도착해서 공항에 내렸을 때는 뭔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고.

그때는 몸 상태가 안 좋았기 때문이라 여겼는데, 지진 예지와 뭔가 관련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내가 쓰러진 것 역시…….

“의사가 그러는데, 완전히 푹 잠든 상태였대.”

“그런데 어째서 일주일이나 못 깨어난 거지?”

택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예지의 부작용이 아닐까?”

“흐음.”

이제까지 부작용이라고 해봐야 잠시 동안 멍해지는 게 전부였다. 운전 중만 아니라면 딱히 문제될 건 없었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어?”

난 곰곰이 생각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처럼 이명과 두통이 생겼던 건 두 번 있었어.”

“그게 언제였는데?”

“처음 예지를 봤을 때. 그리고 L6가 언제 폭발하는지 보려고 했을 때.”

“그럼 이번까지 총 세 번인가?”

다른 때는 자연스럽게 예지가 떠오른 반면, 그 세 번의 경우는 마치 감각을 비집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과부하가 걸린 것처럼?”

“비슷해.”

택규는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생각해보면 이런 엄청난 능력이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나? 큰 힘에는 큰 대가가 따르는 법인데.”

“그렇긴 하지.”

“어차피 돈도 벌만큼 벌었겠다, 이제부터 예지력은 봉인하는 게 어때?”

“…….”

이게 뭔 소리야?

이 능력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 얻은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났다.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보기 싫다고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다 때려치우고 뉴스가 들리지 않는 외딴섬으로 들어가 낚시나 하며 산다면 모를까, 금융계에 몸을 담고 있는 이상 계속해서 저절로 예지가 떠오를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괜찮은 거지?”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일주일이나 잤더니, 그동안 쌓인 피로마저 다 풀린 것 같다.

당장 퇴원해도 되겠는데.

* * *

난 날이 밝자마자 퇴원의사를 밝혔다.

“병원비 때문에?”

“……아니.”

설마 내가 병원비 아까워서 아픈 몸 이끌고 퇴원하겠냐?

진료비 내역을 받아보고 안 사실이지만, 미국 의료비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큰 병에 걸리면 웬만한 중산층 가정은 완전히 거덜 나지 않을까?

이걸 보니 한국의 의료보험체계가 얼마나 훌륭한지 알 것 같다.

출장 중에 입은 업무상 재해인 만큼 법인비용으로 다 처리가 된다. 그 법인 돈의 80퍼센트가 내 거긴 하지만.

택규와 함께 호텔로 가자 병원으로 올 채비를 하던 어머니와 엘리는 깜짝 놀랐다.

“병원에 있어야지, 왜 벌써 퇴원해?”

난 태연하게 뻥을 쳤다.

“의사가 퇴원하래요.”

사실 담당의사는 CT와 MRI를 촬영하고 며칠 더 상태를 지켜보자고 했다. 못 들은 척하고 그냥 퇴원했지만.

“그래도 오래 누워 있다가 바로 움직이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알았어요.”

어머니 의견에 따라 한국에는 하루 있다가 돌아가기로 했다.

현주 누나는 안심하고 호텔 방에 틀어박혀서 일했고, 계속 내 옆에 있던 엘리는 이제 기운을 차렸는지 호텔 피트니스센터에 잠시 운동하러 갔다.

옆에서 과일을 깎고 계시던 어머니는 엘리가 나가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너 저 아가씨랑 사귄다며?”

“누구한테 들었어요?”

“현주한테.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는데, 애가 참 싹싹하더라. 그동안 너무 일만 하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언제 저런 괜찮은 아가씨를 낚았데?”

난 슬쩍 말했다.

“외국인인데 괜찮으세요?”

내 물음에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문제될 게 뭐 있니? 한국말도 잘하니 외국인 같이 느껴지지도 않고. 현주가 그렇게 저 아가씨 칭찬을 많이 하더라. 골든게이트 변호사라며?”

“그렇죠.”

“예쁘지, 똑똑하지, 직업 괜찮지.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네.”

벌써 며느리 스캔(?)을 다 끝내신 모양이다. 빠르기도 하셔라.

“너 입원했을 때 옆에서 하는 걸 보니까, 믿어도 되겠더라. 예쁘고 돈 많은 거 다 소용없다. 사람은 심성이 제일 중요한 거야. 엄마가 살아보니까 말이지…….”

“…….”

대체 이 잔소리는 언제 끝나는 거야?

난 어머니 몰래 엘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엘리는 돌아와서 재빨리 샤워를 하고 나와 어머니에게 말했다.

“같이 나가요, 어머님.”

“응? 어디를요?”

“미국은 처음이시잖아요. 여기까지 오신 김에 샌프란시스코도 둘러보고, 골든게이트 브릿지도 가보셔야죠.”

“골든게이트 브릿지?”

난 등을 떠밀었다.

“금문교요. 한 번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전 여기서 쉬고 있을 테니, 엘리랑 구경 좀 하고 오세요.”

“그래도 너 이제 퇴원했는데…….”

내가 옆구리를 찌르자, 열심히 과일을 집어먹고 있던 택규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 진후는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몇 번 사양하던 어머니는 결국 엘리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관광에 나섰다.

* * *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은 금세 언론에 보도되었다. OTK컴퍼니에서는 진작 깨어났지만, 각종 검진을 받느라 발표가 늦었다고 해명했다.

괜한 건강이상설이 불거지는 걸 막기 위함이다.

담당의사와 간호사는 진실을 알지만, 환자의 정보에 대해서는 외부에 말할 수 없다.

M피자는 내 퇴원을 기념해 병원 전체에 피자를 돌리는 이벤트를 열었다.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페이스잇에서는 의료진들에게 포르노사이트 6개월 무료이용권을 배포하고, 포르노 배우들과 함께 병원에서 이벤트를…… 벌이겠다는 걸 뜯어 말렸다.

기사가 나가고 나자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울렸다.

난 먼저 상엽 선배와 통화했다. 내가 멀쩡하다는 사실에 상엽 선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괜찮은 거야?]

“예. 덕분에 며칠 동안 푹 잤죠.”

[진짜 뭔 일 생기는 줄 알고 걱정했다. 너 쓰러졌다는 기사 나오자마자 주식이 아주 널뛰기를 하더라. 네 건강에 나는 물론 직원들의 생계가 달려있다는 걸 명심해.]

“알았어요.”

[한국에 언제와?]

“내일 갈 거예요. 회사에서 봐요.”

[조심해서 와.]

이어서 데릴과 임진용 회장과도 통화했다.

데릴은 안도했고, 임진용 회장은 축하인사를 건넸다. 이어서 골든게이트 CEO 제임스 C. 골드맨과 아시아지사장 체이스 사우스웰과도 짧게 통화했다.

백악관에서도 전화가 걸려왔다. 로날드는 바쁜 몸인 관계로 보좌관이 대신 퇴원 축하인사를 전해주었다.

* * *

타고 온 전용기가 있으니, 이걸 타고 다시 돌아가면 그만이다.

서성그룹은 총 네 대의 전용기를 가지고 있다. 전 세계에 법인과 공장을 두고 있는 만큼 임원들이 타고 돌아다니며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함이다.

그중에서 가장 최신식 고급 기종은 당연 회장 전용기인데, 임진용 회장은 그것을 빌려주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이번에 신세를 졌으니, 나중에 갚아야겠지.

난 전용기에 올라타 기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건강해지셔서 다행입니다. 회장님께서 잘 모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까지 가시는 길에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희야말로 도착할 때까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머니는 놀란 표정으로 비행기 안을 둘러보았다.

“비행기는 다 똑같은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생긴 비행기도 있네. 우리 아들 덕분에 이런 좋은 비행기도 타보고.”

“올 때도 타셨잖아요.”

“얘는. 그땐 정신이 없어서 이렇게 좋은 건지 몰랐지.”

대기업 회장님이 타고 다니는 전용기답게 좌석은 안락했고, 내부는 회의와 업무처리가 가능하도록 꾸며져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안에는 여러 종류의 위스키와 와인을 포함해 각종 음료가 구비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임진용 회장은 위스키를 좋아하던가?

난 맥주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물었다.

“남의 건데 마음대로 마셔도 되는 거니?”

“그럴걸요.”

대답하기가 무섭게 옆에서 택규가 샴페인을 꺼냈다. 그러고는 말릴 새도 없이 뚜껑을 땄다.

“기념으로 다 같이 한 잔해요.”

“…….”

돔 페리뇽 한 병 없어진 걸 알면, 임진용 회장이 충격 받지 않을까?

뭐, 필요하면 나중에 비용 청구하겠지.

우리는 다 같이 건배를 했다.

전용기는 태평양 상공을 날아갔다. 많이 피곤했는지, 어느새 다들 잠들었다. 승무원은 실내의 불을 꺼주었다.

난 좌석에 기댄 채 생각에 잠겼다.

이번 일을 겪고 나니, 문득 이 능력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내가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투자자가 된 건 전부 예지력 때문이다.

만약 언젠가 이 능력 사라진다면…….

그래도 계속 회사를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 * *

전용기는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어머니는 기장과 승무원들과 일일이 인사했다.

“비행기 조종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회장님께도 꼭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예.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입국장 밖에는 차가 대기 중이었다.

“아프면 바로 병원 가고, 엄마한테 연락하고. 조만간 집으로 한 번 갈 테니까.”

“알았어요. 걱정 마세요.”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어머니는 엘리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우리 진후 좀 잘 부탁해요.”

엘리는 붙임성 있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어머님.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아니, 무슨 일 없어도 자주 연락드릴게요.”

어머니는 바로 동탄으로 가시고, 우리는 회사로 향했다.

공항에서 강남까지는 금방이다.

현주 누나와 엘리는 골든게이트 빌딩으로 들어갔고, 나와 택규는 OTK빌딩으로 들어갔다.

상엽 선배는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이제 몸은 괜찮은 거야?”

“그럼요.”

옆에 있던 기홍 선배는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걱정했습니다, 대표님.”

홍보팀장으로서 기사내고 해명하느라 이래저래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저 없는 동안 고생했어요.”

“아닙니다! 이렇게 건강하신 모습을 보게 되니 감격스럽습니다.”

말하는 걸 보니, 이 선배도 직장인 다 됐구나.

나는 층별로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직원들은 내 얼굴을 직접 보고는 안도했다.

OTK컴퍼니는 투자회사다 보니, 신규 투자가 아니면 딱히 할 일이 없다.

그동안의 업무를 정리해 놓은 보고서를 훑어보는데, 회사로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김호민 교수였다.

[몸은 이제 괜찮은 거야?]

“예. 기사가 좀 과장되게 나간 거예요.”

[다행이네. 기사보고 진짜 깜짝 놀랐어.]

“걱정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아, 그런데 계속 이렇게 편하게 말해도 되는 건가?]

“그럼요. 교수님은 연구소장님이시고, 전 그 연구소에 투자한 투자자일 뿐인데요.”

따라서 수평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김호민 교수는 웃으며 말했다.

[바쁘지 않으면, 지금 연구소로 올 수 있어?]

“무슨 일인가요?”

[보여줄게 있어.]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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