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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6

166화 자오 총통의 악몽

대격변 이후 몇 년, 최초의 생존자가 발견되었을 때, 지구는 한동안 떠들썩했다.

게이트 너머 이계의 생존자. 그 존재의 등장은 인류사의 특이점이다. 인류는 그들에게서 새로운 세계의 기술을 배웠고,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게이트에서 계속해서 생존자가 넘어오면서 생존자의 희소가치가 줄어들면서 이들에 대한 대우에 애로사항이 생겼다.

전 귀족이나 장군 등 고위층 출신의 생존자들은 지구에서도 비슷한 대우를 받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귀족과 왕족은 어디까지나 명예직일 뿐, 그들에게 조세권도, 영토도, 사면권도 줄 수 없다.

하지만.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 폐하! 베아트리체 알리기에리 스페로 여왕폐하 입장하십니다!”

그것도 S급 헌터를 넘어선 무언가들이라면 그 대우는 국가로 하여금 고민할 수밖에 없다.

대만의 총통관저. 상시 대기 중인 군인들과 사용인들에 의해 대대적인 환영식이 있었다.

행사 규모에 비해 의외로 기자는 적은 편이었는데, 레온이 기자들이 떠드는 꼴을 못 봤기 때문이다.

[어디 왕의 어전에 제 할 말만 지껄이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일단 카메라와 마이크부터 들이대고 보는 기자들의 무례함을 레온은 매우 혐오했고, 사자심왕의 분노는 저주파를 일으키며 기자들을 병상으로 보내버렸으니 그들도 알아서 피할 수밖에.

덕분에 레온을 취재할 때는 엄선된 질문과 엄선된 기자만을 소수 파견하는 게 국룰이 되었던 것이다.

매스컴이 일개 개인에게 굴복하는 희대의 사태였으나 선배 기자들의 쇠약화를 목격한 이들은 사자심왕이 사람을 저주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믿었다.

어쨌든, 이 이세계 왕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는 한국 정부가 모범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영국 왕실 등의 현대 왕정제 군주들을 대하는 국빈 대우에 그 이상의 존중을 알아서 보여야 할 것이며 어지간한 요구는 그냥 들어주는 게 편하다.

당장 일본만 해도 한국 정부수령 안 대통령과 헌터협회의 닦달에 덴노를 대하는 것처럼 극도의 주의를 기하지 않았던가.

자오 총통 또한 이에 대해 충분히 숙지한 뒤였다.

‘이건 뭐··· 절대군주정의 왕이나 다름없군.’

중국이 무너진 뒤, 눈치 볼 것 없이 외교관을 파견하고 매년 여러 나라의 대통령과 왕족들의 방문을 준비하던 자오 총통도 이렇게나 까다롭게 국빈 대접을 준비한 것은 처음이다.

‘내 짬밥이 있지. 어떻게든 해낸다!’

무려 교황도 대접해본 몸이다. 자오 총통은 필사적으로 이 대사건을 자연스럽게 넘길 생각이다.

“하하, 폐하. 어떻습니까? 저희 관저가?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지요.”

“흠, 백 년 전에 지은 건물이라고?”

“예, 국공내전 이후 이 섬으로 국부천대한 장제스 총통께서 새로운 관저를 지으며 이곳을 국민들에게 개방토록 했지요.”

국빈들이 대만에 처음 방문하면 모시는 VIP 풀코스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자오 총통.

그리고 그런 자오 총통의 대우가 레온도 마음에 든 듯 표정이 풀어져 있었다.

‘좋아! 청신호군!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주지 않으려나!’

무엇보다 그에게는 레온을 극진히 모셔야 할 이유가 있었는데──

‘이 양반이 빡돌아서 갑자기 날뛰면 난 무조건 죽는단 말이지’

그가 바로 악마 추종자라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오 총통은 악마 추종자가 아니다.

여타 높으신 양반이 그러하듯 자오 총통도 나름대로 과잉된 쾌락을 추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쾌락과 타락의 악마대공과 마주쳐버렸다.

‘빌어먹을 스이란 놈! 끝내주는 신입이 들어왔다고 꼬드겨서 들어갔을 뿐인데!’

의회의 막역한 중역이 괜찮은 여자를 소개해주겠답시고 들어간 곳에서 마주친 타락대공은 그에게 모든 저항 의지를 상실케 했다.

[제 말만 잘 듣는다면, 후일 지구가 우리 것이 됐을 때, 불멸의 삶을 드리죠.]

자오 총통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죽으면 천국을 갈 생각이었기에 딱히 불멸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 자리에서 거부했다간 죽는다는 것쯤은 잘 알았다.

악마대공의 힘은 너무나 무시무시하고 강대해서 지구 따위로는 대항할 수 없다. 이 대공급 악마 한 명만으로도 지구는 파멸적인 피해를 입을 테지.

그렇다면 승자의 편에 서야 하지 않겠는가?

자오 총통은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고 그 선택을 지금 끔찍하리만치 후회 중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왜 악마에게 부역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이리 대답할 것이다.

‘몰랐으니까! 악마대공도 때려잡는 이계의 생존자가 올 줄 몰랐으니까! 알았다면 그리했겠나!’

퀘이는 쌍십절까지 시간을 벌라고 했지만, 자오 총통은 당장이라도 레온을 돌려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어떻게 식사들 괜찮으셨는지 싶습니다! 허허허!”

그렇게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를 만찬을 끝내고 다음 스케줄로 나아가려던 그때였다.

“의외로군.”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요즘 정부를 대표하는 자들과 만날 일이 많았네. 그들은 짐에게 예를 다해 정중히 대하지만 결국 시커먼 속이 있었지.”

“예? 그, 그게 무슨······.”

설마 내가 악마 추종자라는 걸 알아챈 건가!

그럴 리가! 악마가 되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악마화 축복이니 뭐니 하는 것도 피해왔는데!

“요즘은 죄 똑같단 말일세. 짐만 보면 별철무구니 드론이니 하는 것들을 팔아달라 사정을 하지. 정작 그 힘의 근원인 신앙을 뒤로 하면서 말이야.”

레온은 불만을 토로했으나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만신전의 별철무구와 축복받은 작물, 첨단기술장비들은 세계각국에서 혈안이 되어 확복하려 드는 전략장비다.

다른 국가원수라면 이렇게 레온이 직접 방문한 것을 커넥션의 기회로 삼겠지만 자오 총통은 그저 레온이 얼른 대만을 나가줬으면 할 뿐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내 총통에게 선물할 것이 있네.”

“아, 영광입니다. 폐하.”

레온은 웃으면서 총통에게 한 함을 건넸다.

“이것은?”

함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자 그곳에는 올드한 디자인의 목걸이가 담겨 있었다. 작년 환갑을 넘긴 그도 목에 거는데 부담스럽지 않은 디자인이다.

“별철로 만들어낸 목걸이일세. 별다른 힘은 없으나 건강을 보존하고 삿된 것들을 쫓아내는 힘을 가지고 있지.”

“그렇···군요.”

삿된 것? 설마 악마도 쫓아내나?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폐하.”

“어서 착용해 보시게.”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받은 이상 자오 총통은 그것을 걸어보면서 좋은 그림을 연출해야했다.

“잘 어울리는군.”

“감사합니다, 폐하.”

실제로 목걸이를 착용하니 무언가 기분이 상쾌해지고 몸에 활기가 불어넣어지는 것 같았다.

“그럼 오늘 하루 고마웠네. 짐과 여왕은 잠시 거처에서 쉬도록 하지.”

“아, 예예! 두 분 폐하께서 저희 공화국을 방문해주셔서 영광이었습니다.”

드디어 끝나는가! 마지막으로 레온과 가까운 듯한 제스처를 취한 사진을 찍고 돌아가는 길.

자신의 관저로 향하는 리무진에 탑승한 순간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비서실장님도 흡족──키이이익?!

리무진에서 대기하고 있던 운전기사. 인간의 거죽을 쓴 하급 악마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닌가?

“뭐, 뭐야?”

“끄, 끄힑! 끄르르르륵···!”

운전수로 위장한 악마는 둔갑한 거죽조차 긁어내면서 피거품을 토해냈다. 그 모습이 마치 고농축 방사능에 피폭된 것 마냥 부글부글 끓고 있다.

‘목걸이 때문인가!’

그 원인을 찾는 건 쉬웠다. 제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가 형형한 빛을 일으키며 운전수 악마를 강타하고 있었으니까.

“나, 나가, 나가야···!”

악마가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 자오 총통은 좆됨을 직감하고 그를 붙잡았다.

“아, 안 돼, 임마! 밖에 기자 쫙 깔렸는데 나가면···!”

저도 모르게 운전수 악마의 손을 붙잡은 자오 총통.

그는 자신의 정치생명이 끝장나는 건 둘째 치고 악마라면 발작하고 보는 사자심왕이 어떤 참사를 일으킬지 떠올리며 악마를 만류했다.

“아, 안···! 놔, 놔아아···!”

그리고 신기하게도 악마는 제 늙은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파르르 떨더니 서서히 재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

그 모습을 지켜보며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할 말을 잃은 자오 총통. 리무진 안에는 잿가루가 되어버린 운전수 악마와 자신뿐이었다.

“차오니마······.”

자오 총통은 잿가루를 털어내고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은 악몽을 꿀 것 같다.

* * * *

“부어라! 마셔라!”

“꺄아악~! 옵빠, 머싯써!”

딸보다도 어린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는 것쯤이야 정치인들에게는 그리 과한 부정은 아닐 것이다.

“흐하하핫! 어떻습니까, 총통님! 오늘 물 좋지 않습니까?”

껄껄 웃으며 뒤룩뒤룩 살찐 엉덩이를 쿰척이는 스이란 행정원장.

노는 취미가 비슷해서 이따금 어울려 다니던 친구.

오늘도 그가 소개해준다는 아이돌 연습생을 만나러 온 참이다.

“스이란 원장! 소개해준다는 아이돌 연습생은 언제 나오는 거요?”

“으흐흐흐··· 급하시기는. 제가 안 그래도 밖에 대기시켜뒀습니다!”

딱! 하고 손짓을 하자 문이 열리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미녀가 들어왔다.

은을 녹여 실처럼 늘어뜨린 것 같은 머리카락, 큼직한 자수정처럼 반짝이는 자안. 요염한 미소는 늙은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다.

“오오, 저, 정말 아름답구만. 스이란 자네···! 아주 큰일을 해냈어!”

이런 엄청난 미녀가 아이돌 연습생 따윌 한다고? 셀카만 찍어서 SNS에 올려도 올해 가장 아름다운 미녀로 손꼽힐 텐데 뭣하러?

당장이라도 손을 뻗고 싶지만, 감히 손 댈 수 없는 아우라가 펼쳐지는 여인은 어쩐지 한숨을 쉬며 자조했다.

“정말이지. 어느 세계에서든 하는 짓거리가 똑같군요.”

다른 세계의, 생소한 현대 문화권의 접대장소였지만, 베아트리체는 이것이 결국 어느 세계에서든 통하는 쾌락의 상징으로 여겼다.

술과 마약, 섹스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쾌락을 자극하는 요소. 특히 미남, 미녀들과 질척이며 허우적 거리는 타락자들을 베아트리체는 너무 많이 태워죽였다.

“욕구는 절제되어야 하거늘.”

그녀로선 이 과잉된 쾌락과 그로 인한 타락을 불쾌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원초적인 욕구를 절제하지 못해 제 가족을, 나라를, 세계를 팔아먹다니.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일은 일. 베아트리체는 이 타락자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뽑아내야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으흐흐, 목소리도 천상의 것이로구나~”

침을 질질 흘리며 더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자오에게 베아트리체는 싱긋 웃어보였다.

“내일 아침까지 ‘절대’ 깨지 못할 것이니 안심하세요. 먼저··· 손톱부터 시작할까요?”

달콤한 꿈이 악몽으로 변질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

쾌락과 타락의 악마대공 퀘이는 ‘연회’의 준비에 정신없었다.

그런 그에게 다가와 보고하는 비서실의 악마.

“총통의 운전수를 맡던 악마가 소멸했습니다.”

자오 총통을 비롯해 이 나라의 주요 핵심인물들에게는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 쓴 악마들을 배치시켜놨다.

레온의 방문으로 그들을 만신전과 최대한 멀리 떨어지게 했지만······.

“누구한테 당한 거죠?”

“총통의 말로는 선물받은 목걸이가 원인 같다더군요.”

“저런······.”

기이하다. 물론 성력이 깃든 물건을 악마들이 꺼려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하급 악마라도 고작 별철 목걸이를 앞에 뒀다고 삽시간에 소멸하다니?

“라이온하트에서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무언가 다른 비장의 수단이 있는 거겠지. 퀘이가 태연하자 다소 조급해진 비서 악마가 말했다.

“목걸이를 떼어내라고 지시할까요?”

“아뇨, 이미 늦었습니다. 아마 무언가 수작을 부려뒀겠죠.”

“그, 그렇다는 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건 이미 간파하고 있는 겁니다. 오히려 우리가 먼저 나서는 걸 기다리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군요.”

“······!”

비서 악마는 두려움에 파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힐깃거리며 퀘이는 한숨을 쉬었고.

누가 불멸의 존재인 악마들을 이토록 두렵게 할 수 있겠는가.

마술사 여왕도 상당한 걸물이었지만, 진정 두려운 존재는 그 사자심왕이었다.

악마들의 불멸성도, 위대한 마법도, 압도적인 숫자로도 굴복시키지 못한 악종의 공포.

그를 이겨내려면 힘으로는 불가하다.

“연회 준비를 가속화하지요. 쌍십절까지는 준비를 마쳐야 하니까요.”

“그것이··· 통할까요? 군주님도 돌아가신 마당에······.”

퀘이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존재도 타락시켜온 위대한 힘이었다.

쾌락과 타락의 군주를 상징하는 그 끔찍한 타락의 아성 앞에서 필멸자는 그 누구도 견디지 못했다.

설마 다 멸망해버린 필멸자의 세계에서 단 한 명에게 당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도트라돈은 끝내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고 죽어버렸지만.

“뭐, 저는 도트라돈 님이 아니니까 불안한 것도 이해합니다.”

게다가 지금 연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악마 군주가 아니라 대공인 퀘이.

새로운 쾌락의 군주 베아트리체를 우화시키지 못한 지금, 그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하지만 말이죠. 이런 저라도 딱 한 명을 나락으로 밀어뜨리는 것쯤은 가능하답니다.”

사자심왕은 실수를 범했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Chapter 166

Chapter 166

166화 자오 총통의 악몽

대격변 이후 몇 년, 최초의 생존자가 발견되었을 때, 지구는 한동안 떠들썩했다.

게이트 너머 이계의 생존자. 그 존재의 등장은 인류사의 특이점이다. 인류는 그들에게서 새로운 세계의 기술을 배웠고,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게이트에서 계속해서 생존자가 넘어오면서 생존자의 희소가치가 줄어들면서 이들에 대한 대우에 애로사항이 생겼다.

전 귀족이나 장군 등 고위층 출신의 생존자들은 지구에서도 비슷한 대우를 받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귀족과 왕족은 어디까지나 명예직일 뿐, 그들에게 조세권도, 영토도, 사면권도 줄 수 없다.

하지만.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 폐하! 베아트리체 알리기에리 스페로 여왕폐하 입장하십니다!"

그것도 S급 헌터를 넘어선 무언가들이라면 그 대우는 국가로 하여금 고민할 수밖에 없다.

대만의 총통관저. 상시 대기 중인 군인들과 사용인들에 의해 대대적인 환영식이 있었다.

행사 규모에 비해 의외로 기자는 적은 편이었는데, 레온이 기자들이 떠드는 꼴을 못 봤기 때문이다.

[어디 왕의 어전에 제 할 말만 지껄이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일단 카메라와 마이크부터 들이대고 보는 기자들의 무례함을 레온은 매우 혐오했고, 사자심왕의 분노는 저주파를 일으키며 기자들을 병상으로 보내버렸으니 그들도 알아서 피할 수밖에.

덕분에 레온을 취재할 때는 엄선된 질문과 엄선된 기자만을 소수 파견하는 게 국룰이 되었던 것이다.

매스컴이 일개 개인에게 굴복하는 희대의 사태였으나 선배 기자들의 쇠약화를 목격한 이들은 사자심왕이 사람을 저주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믿었다.

어쨌든, 이 이세계 왕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는 한국 정부가 모범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영국 왕실 등의 현대 왕정제 군주들을 대하는 국빈 대우에 그 이상의 존중을 알아서 보여야 할 것이며 어지간한 요구는 그냥 들어주는 게 편하다.

당장 일본만 해도 한국 정부수령 안 대통령과 헌터협회의 닦달에 덴노를 대하는 것처럼 극도의 주의를 기하지 않았던가.

자오 총통 또한 이에 대해 충분히 숙지한 뒤였다.

'이건 뭐··· 절대군주정의 왕이나 다름없군.'

중국이 무너진 뒤, 눈치 볼 것 없이 외교관을 파견하고 매년 여러 나라의 대통령과 왕족들의 방문을 준비하던 자오 총통도 이렇게나 까다롭게 국빈 대접을 준비한 것은 처음이다.

'내 짬밥이 있지. 어떻게든 해낸다!'

무려 교황도 대접해본 몸이다. 자오 총통은 필사적으로 이 대사건을 자연스럽게 넘길 생각이다.

"하하, 폐하. 어떻습니까? 저희 관저가?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지요."

"흠, 백 년 전에 지은 건물이라고?"

"예, 국공내전 이후 이 섬으로 국부천대한 장제스 총통께서 새로운 관저를 지으며 이곳을 국민들에게 개방토록 했지요."

국빈들이 대만에 처음 방문하면 모시는 VIP 풀코스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자오 총통.

그리고 그런 자오 총통의 대우가 레온도 마음에 든 듯 표정이 풀어져 있었다.

'좋아! 청신호군!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주지 않으려나!'

무엇보다 그에게는 레온을 극진히 모셔야 할 이유가 있었는데──

'이 양반이 빡돌아서 갑자기 날뛰면 난 무조건 죽는단 말이지'

그가 바로 악마 추종자라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오 총통은 악마 추종자가 아니다.

여타 높으신 양반이 그러하듯 자오 총통도 나름대로 과잉된 쾌락을 추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쾌락과 타락의 악마대공과 마주쳐버렸다.

'빌어먹을 스이란 놈! 끝내주는 신입이 들어왔다고 꼬드겨서 들어갔을 뿐인데!'

의회의 막역한 중역이 괜찮은 여자를 소개해주겠답시고 들어간 곳에서 마주친 타락대공은 그에게 모든 저항 의지를 상실케 했다.

[제 말만 잘 듣는다면, 후일 지구가 우리 것이 됐을 때, 불멸의 삶을 드리죠.]

자오 총통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죽으면 천국을 갈 생각이었기에 딱히 불멸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 자리에서 거부했다간 죽는다는 것쯤은 잘 알았다.

악마대공의 힘은 너무나 무시무시하고 강대해서 지구 따위로는 대항할 수 없다. 이 대공급 악마 한 명만으로도 지구는 파멸적인 피해를 입을 테지.

그렇다면 승자의 편에 서야 하지 않겠는가?

자오 총통은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고 그 선택을 지금 끔찍하리만치 후회 중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왜 악마에게 부역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이리 대답할 것이다.

'몰랐으니까! 악마대공도 때려잡는 이계의 생존자가 올 줄 몰랐으니까! 알았다면 그리했겠나!'

퀘이는 쌍십절까지 시간을 벌라고 했지만, 자오 총통은 당장이라도 레온을 돌려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어떻게 식사들 괜찮으셨는지 싶습니다! 허허허!"

그렇게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를 만찬을 끝내고 다음 스케줄로 나아가려던 그때였다.

"의외로군."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요즘 정부를 대표하는 자들과 만날 일이 많았네. 그들은 짐에게 예를 다해 정중히 대하지만 결국 시커먼 속이 있었지."

"예? 그, 그게 무슨······."

설마 내가 악마 추종자라는 걸 알아챈 건가!

그럴 리가! 악마가 되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악마화 축복이니 뭐니 하는 것도 피해왔는데!

"요즘은 죄 똑같단 말일세. 짐만 보면 별철무구니 드론이니 하는 것들을 팔아달라 사정을 하지. 정작 그 힘의 근원인 신앙을 뒤로 하면서 말이야."

레온은 불만을 토로했으나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만신전의 별철무구와 축복받은 작물, 첨단기술장비들은 세계각국에서 혈안이 되어 확복하려 드는 전략장비다.

다른 국가원수라면 이렇게 레온이 직접 방문한 것을 커넥션의 기회로 삼겠지만 자오 총통은 그저 레온이 얼른 대만을 나가줬으면 할 뿐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내 총통에게 선물할 것이 있네."

"아, 영광입니다. 폐하."

레온은 웃으면서 총통에게 한 함을 건넸다.

"이것은?"

함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자 그곳에는 올드한 디자인의 목걸이가 담겨 있었다. 작년 환갑을 넘긴 그도 목에 거는데 부담스럽지 않은 디자인이다.

"별철로 만들어낸 목걸이일세. 별다른 힘은 없으나 건강을 보존하고 삿된 것들을 쫓아내는 힘을 가지고 있지."

"그렇···군요."

삿된 것? 설마 악마도 쫓아내나?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폐하."

"어서 착용해 보시게."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받은 이상 자오 총통은 그것을 걸어보면서 좋은 그림을 연출해야했다.

"잘 어울리는군."

"감사합니다, 폐하."

실제로 목걸이를 착용하니 무언가 기분이 상쾌해지고 몸에 활기가 불어넣어지는 것 같았다.

"그럼 오늘 하루 고마웠네. 짐과 여왕은 잠시 거처에서 쉬도록 하지."

"아, 예예! 두 분 폐하께서 저희 공화국을 방문해주셔서 영광이었습니다."

드디어 끝나는가! 마지막으로 레온과 가까운 듯한 제스처를 취한 사진을 찍고 돌아가는 길.

자신의 관저로 향하는 리무진에 탑승한 순간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비서실장님도 흡족──키이이익?!

리무진에서 대기하고 있던 운전기사. 인간의 거죽을 쓴 하급 악마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닌가?

"뭐, 뭐야?"

"끄, 끄힑! 끄르르르륵···!"

운전수로 위장한 악마는 둔갑한 거죽조차 긁어내면서 피거품을 토해냈다. 그 모습이 마치 고농축 방사능에 피폭된 것 마냥 부글부글 끓고 있다.

'목걸이 때문인가!'

그 원인을 찾는 건 쉬웠다. 제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가 형형한 빛을 일으키며 운전수 악마를 강타하고 있었으니까.

"나, 나가, 나가야···!"

악마가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 자오 총통은 좆됨을 직감하고 그를 붙잡았다.

"아, 안 돼, 임마! 밖에 기자 쫙 깔렸는데 나가면···!"

저도 모르게 운전수 악마의 손을 붙잡은 자오 총통.

그는 자신의 정치생명이 끝장나는 건 둘째 치고 악마라면 발작하고 보는 사자심왕이 어떤 참사를 일으킬지 떠올리며 악마를 만류했다.

"아, 안···! 놔, 놔아아···!"

그리고 신기하게도 악마는 제 늙은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파르르 떨더니 서서히 재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

그 모습을 지켜보며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할 말을 잃은 자오 총통. 리무진 안에는 잿가루가 되어버린 운전수 악마와 자신뿐이었다.

"차오니마······."

자오 총통은 잿가루를 털어내고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은 악몽을 꿀 것 같다.

* * * *

"부어라! 마셔라!"

"꺄아악~! 옵빠, 머싯써!"

딸보다도 어린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는 것쯤이야 정치인들에게는 그리 과한 부정은 아닐 것이다.

"흐하하핫! 어떻습니까, 총통님! 오늘 물 좋지 않습니까?"

껄껄 웃으며 뒤룩뒤룩 살찐 엉덩이를 쿰척이는 스이란 행정원장.

노는 취미가 비슷해서 이따금 어울려 다니던 친구.

오늘도 그가 소개해준다는 아이돌 연습생을 만나러 온 참이다.

"스이란 원장! 소개해준다는 아이돌 연습생은 언제 나오는 거요?"

"으흐흐흐··· 급하시기는. 제가 안 그래도 밖에 대기시켜뒀습니다!"

딱! 하고 손짓을 하자 문이 열리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미녀가 들어왔다.

은을 녹여 실처럼 늘어뜨린 것 같은 머리카락, 큼직한 자수정처럼 반짝이는 자안. 요염한 미소는 늙은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다.

"오오, 저, 정말 아름답구만. 스이란 자네···! 아주 큰일을 해냈어!"

이런 엄청난 미녀가 아이돌 연습생 따윌 한다고? 셀카만 찍어서 SNS에 올려도 올해 가장 아름다운 미녀로 손꼽힐 텐데 뭣하러?

당장이라도 손을 뻗고 싶지만, 감히 손 댈 수 없는 아우라가 펼쳐지는 여인은 어쩐지 한숨을 쉬며 자조했다.

"정말이지. 어느 세계에서든 하는 짓거리가 똑같군요."

다른 세계의, 생소한 현대 문화권의 접대장소였지만, 베아트리체는 이것이 결국 어느 세계에서든 통하는 쾌락의 상징으로 여겼다.

술과 마약, 섹스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쾌락을 자극하는 요소. 특히 미남, 미녀들과 질척이며 허우적 거리는 타락자들을 베아트리체는 너무 많이 태워죽였다.

"욕구는 절제되어야 하거늘."

그녀로선 이 과잉된 쾌락과 그로 인한 타락을 불쾌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원초적인 욕구를 절제하지 못해 제 가족을, 나라를, 세계를 팔아먹다니.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일은 일. 베아트리체는 이 타락자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뽑아내야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으흐흐, 목소리도 천상의 것이로구나~"

침을 질질 흘리며 더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자오에게 베아트리체는 싱긋 웃어보였다.

"내일 아침까지 '절대' 깨지 못할 것이니 안심하세요. 먼저··· 손톱부터 시작할까요?"

달콤한 꿈이 악몽으로 변질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

쾌락과 타락의 악마대공 퀘이는 '연회'의 준비에 정신없었다.

그런 그에게 다가와 보고하는 비서실의 악마.

"총통의 운전수를 맡던 악마가 소멸했습니다."

자오 총통을 비롯해 이 나라의 주요 핵심인물들에게는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 쓴 악마들을 배치시켜놨다.

레온의 방문으로 그들을 만신전과 최대한 멀리 떨어지게 했지만······.

"누구한테 당한 거죠?"

"총통의 말로는 선물받은 목걸이가 원인 같다더군요."

"저런······."

기이하다. 물론 성력이 깃든 물건을 악마들이 꺼려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하급 악마라도 고작 별철 목걸이를 앞에 뒀다고 삽시간에 소멸하다니?

"라이온하트에서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무언가 다른 비장의 수단이 있는 거겠지. 퀘이가 태연하자 다소 조급해진 비서 악마가 말했다.

"목걸이를 떼어내라고 지시할까요?"

"아뇨, 이미 늦었습니다. 아마 무언가 수작을 부려뒀겠죠."

"그, 그렇다는 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건 이미 간파하고 있는 겁니다. 오히려 우리가 먼저 나서는 걸 기다리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군요."

"······!"

비서 악마는 두려움에 파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힐깃거리며 퀘이는 한숨을 쉬었고.

누가 불멸의 존재인 악마들을 이토록 두렵게 할 수 있겠는가.

마술사 여왕도 상당한 걸물이었지만, 진정 두려운 존재는 그 사자심왕이었다.

악마들의 불멸성도, 위대한 마법도, 압도적인 숫자로도 굴복시키지 못한 악종의 공포.

그를 이겨내려면 힘으로는 불가하다.

"연회 준비를 가속화하지요. 쌍십절까지는 준비를 마쳐야 하니까요."

"그것이··· 통할까요? 군주님도 돌아가신 마당에······."

퀘이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존재도 타락시켜온 위대한 힘이었다.

쾌락과 타락의 군주를 상징하는 그 끔찍한 타락의 아성 앞에서 필멸자는 그 누구도 견디지 못했다.

설마 다 멸망해버린 필멸자의 세계에서 단 한 명에게 당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도트라돈은 끝내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고 죽어버렸지만.

"뭐, 저는 도트라돈 님이 아니니까 불안한 것도 이해합니다."

게다가 지금 연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악마 군주가 아니라 대공인 퀘이.

새로운 쾌락의 군주 베아트리체를 우화시키지 못한 지금, 그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하지만 말이죠. 이런 저라도 딱 한 명을 나락으로 밀어뜨리는 것쯤은 가능하답니다."

사자심왕은 실수를 범했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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