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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8

167. 거지남매 – 신력 간파

“넌 뭐냐고 물었다.”

포르테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오 덱스터보다 큰 거구가 경계하는 낯빛으로 따지자 선임 근위기사가 중재에 나섰다.

“죄송합니다, 왕자님. 이번에 입단한 신입인데, 이 녀석이 뭣도 모르고…”

‘얼른 사과드리지 못해?’ ─ 선임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레오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 숙였다. “죄송합니다.” 말하곤 슬그머니 뒷걸음질 치려 했으나, 소드마스터는 그를 순순히 보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잠깐. 거기 서라. 신입이면 용건 없이 왕자님의 거처를 들락거려도 되는 것이냐?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 한 건지 난 알아야겠다. 네 이름과 근무처를 밝혀라.”

선임 근위기사의 안색이 딱딱해졌다. 그는 왕자님의 용태를 힐끗 확인하곤, 불쾌한 어투로 말했다.

“…개수작이라니요. 포르테 백작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그리고 아무리 백작님께서 기사단장이시라지만, 근위기사의 신상을 파헤칠 권한은 없습니다.”

“어허, 기사님도 말씀이 과하시군요.”

분위기가 흉흉해지려는 찰나, 베나르 타티안 후작이 끼어들었다.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는 그는 이 상황이 무척 재미있다는 듯한 태도였는데, 그의 눈동자는 레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백작께선 단지 왕자님을 걱정하는 마음에 그리 말씀하신 겁니다. 설마 백작님께서 왕자님을 앞에 두고 월권을 하려 드셨겠습니까? 왕자님께선 아직 아무 말씀도 안 하셨는데 말이지요.”

이건 왕자를 자극하는 말이었다. 클리안 드 타탈리아 왕자는 레오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물러가게.”

왕자가 명했으니 그것으로 끝이었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은 여전히 경계 어린 표정이었으나 반론을 제기하진 못했다.

레오는 주춤주춤 뒷걸음질 쳐 왕자의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닫히는 문틈 사이로 베나르 타티안 후작이 빙긋 미소지었다.

‘저 인간이 왜…?’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선임 근위기사가 레오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잔소리를 퍼부었으나, 그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은 날 모를 텐데.’ ─ 무사히 왕자 업적을 챙기는 데 성공했음에도 레오는 숨이 불규칙하게 가빠져 오는 것이었다.

* * *

오랑주 극장은 <데모니오스> 연극 준비로 분주했다. <데모니오스>는 아즈라 성인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한 연극이었는데, 레나에게 맡겨진 배역은 ‘레이나 성녀’ 였다.

최초의 성녀.

듣기만 해도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데모니오스>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아즈라 성인이다.

그 위대한 성인이 대륙을 반시계방향으로 돌며 악을 물리치는 과정이 연극의 주요 골자였고, 극 중간에 등장하는 산골 소녀 레이나는 인간성을 잃어가는 아즈라의 마음을 붙들어주는, 보조적인 인물이었다.

사실 레이나 성녀가 아즈라 성인과 동행했었는지에 관한 역사적 증거도 없었다.

모든 악을 물리친 업적으로 내려진 성녀가 아즈라와 생판 관계없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였으면 좋으리라 ─ 라는 극작가의 상상이 가미된 결과였다.

그러다 보니 역사를 너무 곡해하지 않고자, 극 중의 레이나에겐 대사가 많지 않았다.

아즈라와 처음 만났을 때, 남쪽 바닷가에서 모든 걸 홀로 떠안으려 하지 말고 사제와 성전사를 키우라 조언할 때, 마지막 일곱 번째 악이 있었던 ‘바도보나 성’에서 주신의 선택을 받아 성녀가 됐을 때.

단 세 번의 짧은 대사가 있을 뿐 연극의 얼굴마담을 책임지는 역할이었다.

레나는 다른 배우들의 조언을 받으며 연기를 배워나갔다.

멀리서 보는 관객을 위한 과장된 동작, 또랑또랑한 목소리, 다른 배우의 연기에 호응하는 자잘한 몸동작, 표정, 배우의 입장과 퇴장까지.

또 그녀는 <데모니오스>의 전체 줄거리도 알아야 했으므로 크세니아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언니. 혹시… 우리 오빠랑 싸웠어요?”

요즘 크세니아 언니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게 <데모니오스> 대본을 읽어주다가도 가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저번에 오빠가 다녀간 이후로 종종 저랬다.

크세니아는 “싸우기는… 그냥 요즘 네 오빠를 잘 모르겠네.”라고 말하곤 더는 말이 없었다.

우울은 쉽게 전염된다. 같은 방을 쓰는 크세니아가 우울해하자 레나도 덩달아 우울해졌다.

그리고 그 불똥을 맞은 사람은 다름 아닌 산티안 라우노였다. 그는 오늘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 일찍 찾아왔는데, 레나가 물었다.

“너 나 좋아해?”

“어? 가, 가,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

“말 돌리지 말고. 너 나 좋아하냐고.”

당황한 산티안은 자신의 둥근 코를 매만졌다. 본심을 들킨 것 같아 두려워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으, 으응. 조, 좋아해.”

“왜? 날 왜 좋아해?”

날카로운 목소리.

하지만 연애 경험이 없는 산티안은 이 질문의 중요성을 모르고 고지식하게 답했다.

“…예뻐서.”

레나는 팔짱을 꼈다.

저런 걸 답변이라고 내놓고 혼자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티안에게 실망을 금치 못했다.

내가 예쁜 거, 이젠 나도 안다.

극장 사람들 모두가 예쁘다 예쁘다 칭찬해줬고, 3층 아주머니들은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대체로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충고였는데, 개중에 남자들은 다 똑같다며 욕하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생식기에 휘둘려 욕정을 풀기 급급한 동물이라며 레나가 듣기에 조금 이른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그 말들을 다 믿지는 않았지만, 충격이었다.

오빠가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왔는지 깨달았고, 만약 산티안이 내 외모만 보고 날 좋아하는 거라면…

실망이다.

“그게 다야?”

“어, 어응. 아니야. 너랑 같이 있으면 재미있고, 편하고… 다 좋아.”

믿을 수 없는 말. 참인지 거짓인지 분별할 수 없는, 호감을 사고자 그냥 주워섬기는 말처럼 들렸다.

레나는 “알겠어.” 서글픈 심정을 안고 등을 돌렸다. 욱하고 치밀어오른 것을 순화해 뱉어버렸다.

“앞으론 누나라고 불러.”

그녀는 무대로 돌아가 다시 연습을 시작했는데, 티안이 객석을 떠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이 보였다.

이게 잘한 짓인가.

레나는 크세니아 언니처럼 “모르겠네.” 중얼거렸다. 오늘도 오빠는 오지 않았다.

* * *

레오는 징계를 받았다.

완고한 근위기사단장에게 불려가 질책을 받았고, 봉급이 삭감되었으며, 별도의 근무가 추가되었다.

아직 받아보지도 못한 첫 봉급이 삭감된 것은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하지만 왕성 지하의 비밀통로를 익히라는, 누구라도 지루해할 근무가 부여되면서 일주일간 외출하지 못하게 된 것은 타격이 컸다.

왕자를 만나 타탈리아 왕가를 섬기는 귀족들에게 호감을 얻는 업적도 얻었겠다, 이제 빨리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을 찾아가 회유해야 할 것이었으나, 아직 왕성에서 할 일이 남아있었다.

길버트 포르테와 공주가 키스하는 걸 막아야 한다.

이 두 가지 일만 해결되면 레오는 즉시 오르빌을 떠날 생각이었다. 콘라드 왕국으로 달려가 오리아스를 섬기는 에릭 왕자를 몰아낼 것이다.

해서 동생이 연극을 한다는 말을 듣고도 걱정은 했지만 허락할 수 있었다. 크세니아가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 단언하기도 했고, 오랑주 극장의 주인 ‘브레틴’은 믿어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사람을 믿는다기보다는 카시아를 믿는 것이었다.

오베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오랑주 극장은 십 년 전만 해도 창관이었다. 브레틴이란 사람은 그 창관의 지배인이었는데, 당시 창녀였던 카시아가 일을 그만두면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창관을 극장으로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똑똑한 애야. 불쌍한 애고. 난 걔 아버지가 목매달고 죽은 걸 봤어. 어린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솔직히 난 카시아도 따라 자살할 줄 알았어. 그런데…”

오베르는 떠벌떠벌, 카시아에 관해서라면 침을 튀기며 쉽게 떠들어댔다.

“내가 극장주랑 좀 친해서 들었어. 아버지 장례를 치르자마자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더군. 그때 퇴직금을 주려고 했는데, 카시아가 거절하면서 뭐라고 했다는 줄 알아?”

– “저는 이제 제 인생을 살아갈 거예요. 아저씨도… 과거에 너무 얽매이지 말아요.”

“하하! 성년도 안 된 꼬맹이한테 들을 말은 아니지. 그 이후로 도저히 일할 수가 없었다대. 그래서 창관을 폐쇄하고 극장을 세운 거야. 지금도 창관에서 일하던 아가씨들을 차근차근 독립시키고 있지. 이게 다 카시아 덕분이야.”

굴레 퀘스트는 카시아 한 사람만 변화시킨 게 아니었다. 아예 과거부터 그녀의 삶에 큰 변화가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도 바꿔버렸다.

레오는 오랑주 극장은 안전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큰 변화가 생겼는데, 알고 보니 그것도 함정이었습니다 ─ 이건 도가 지나친 처사였다.

적어도 이 ‘레나 키우기’라는 게임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레오는 성실히 근무를 수행했다. 밤잠을 줄여가면서 왕성 지하 비밀통로를 헤집었고, 아스틴 왕국의 왕자가 도착하기까지 일주일을 남기고 외출을 허락받았다.

종자(준기사)의 가장 좋은 옷을 빌려 입은 레오는 즉시 ‘에라린 대로’를 향했다.

에라린 대로는 귀족들이 몰려 사는 곳이었다. 타티안 후작과 같은 대귀족들의 저택이 밀집되어 드넓은 오르빌에서도 가장 잘 정돈되고 번화한 장소였는데, 레오는 처음 와봤음에도 익숙한 그 거리를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그래. 저 골목으로 달아났었지…’

청부를 받아 타티안 후작의 저택에 들어가고, 후작의 아들을 암살하려 대기하고, 예쁜 옷을 입은 레나와 마차에서 내리고, 이렌느라는 여기사에게 쫓겨 달아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마치 먼 길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것만 같다. ─ 생각한 레오는 상념을 털어내고 걸음을 재촉했다.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의 저택은 조금 동떨어진 곳에 있었다.

같은 에라린 대로이지만 중심부와 다소 멀리 떨어진, 잘 나가는 남작 또는 가세가 기운 자작의 저택이 있는 곳이었다.

레오는 페테르 백작의 저택 앞에 섰다. 제법 규모는 있지만, 장식하나 없이 을씨년스러운 저택 앞에서 심호흡한 뒤 경비병에게 근위기사의 증표를 보였다.

“백작님께서는 지금 다른 일정으로 바쁘십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가서 말씀을 여쭙겠습니다.”

집사는 왕의 전령임이 틀림없는 레오를 공손히 대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와 다과가 나왔다. 잠시 차를 홀짝이며 응접실을 둘러보던 레오는 처음에 한 생각을 고쳐먹었다.

검소함이 지나쳐 저택을 꾸미지 않을 줄 알았다. 실내에도 장식품이 거의 없기는 매한가지였으나 우중충한 바깥과 달리 내부엔 색깔이 있었다.

과감한 벽지. 일견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색상의 커튼과 카펫을 배치한 응접실은 지루하지 않은 운치가 있었다.

‘…안 어울리는데?’

항상 어두운 계통의 옷을 입고, 흑마가 끄는 검은색 마차를 타고 다니는 페테르 백작의 저택이라고는 믿기 힘들다.

어쩌면 페테르 백작 부인의 취향일지도 모르겠다 ─ 생각하는 그때,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이 은발 머리를 휘날리며 서둘러 나타났다.

근위기사라는 신분이 좋기는 좋다.

하지만 레오는 이내 빠드득, 이를 깨물고 말았다. 겉에 어떤 장식도 걸치지 않은 백작, 그가 나와 동생의 정체를 후작에게 일러바쳤던 게 떠올라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왕실에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베르크 추기경이 그랬던 것처럼 내 정체를 한눈에 알아보고도 의뭉을 떠는 모습이 역겨워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단지,

[ 업적 : 성녀의 세례(洗禮) – 레오에게 {신력 간파} 능력이 부여됩니다. ]

‘빌어먹을.’

게스타브 백작의 몸에는 하얀 신력이 담겨 있었다. 마치 사제처럼. 주신의 신력을 품은 그는 절대로 매혹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팔찌가 쓸모없게 됐다. 레오는 터져 나오려는 욕지거리를 삼키며 말했다.

“…백작님께서는 절 알아보지 못하신 모양입니다.”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멀뚱멀뚱 바라볼 뿐…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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