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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8

167화.

김호민 교수는 흔쾌히 서성SB의 도움을 받아들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쪽 세계도 좁아서 한 다리 건너면 대부분 아는 사이라고 한다. 서성SB 연구진들 중에는 한국대나 MIT 출신들도 많고, 김호민 교수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이들도 여럿이다.

소식을 전해들은 데릴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하반기에 출시할 두 종의 차는 카로스의 첫 번째 내연기관차이자 마지막 내연기관차다. 이후부터는 전기차 개발에 매진할 계획이다.

만약 그전에 신소재 배터리가 개발된다면 바로 탑재해서 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서성SB와 공동연구를 진행한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CL화학 쪽에서도 계속 연락이 왔다.

얘기를 전해들은 임진용 회장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지금 CL화학 사정이 말이 아닐 겁니다.]

서성SB의 주력은 원래 소형배터리다. 현재도 수익 대부분이 스마트폰 등에 탑재되는 소형배터리에서 발생한다.

반면 CL화학은 초기부터 차량용 대형배터리를 주력으로 키워왔고, 폭스바겐그룹 등과 납품계약을 성사시켰다.

원래 장기계약을 할 때는 원자재가격이나 환율을 납품가격과 연동시켜서 리스크 헤지를 해야 하는데, CL화학의 경우 10년치 납품을 변동가격이 아닌 고정가격으로 계약을 맺었다.

당시만 해도 리튬이나 코발트 등의 원자재 가격이 이 정도로 급등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정가격으로 장기 납품계약을 맺은 건 다른 배터리업체들 역시 비슷합니다만, CL화학은 회사의 생산케파가 되는 만큼 납품규모 역시 압도적으로 큽니다.]

거래규모를 보면 작은 게 수십억 달러고, 큰 건 100억 달러가 넘는다.

계약에 따르면 2020년 이후부터는 물량이 몇 배씩 늘어난다. 현재의 제조원가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팔수록 손해다.

몇 년 안에 해법을 찾지 못하다면,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코발트 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동안 투기세력이 얼마나 장난질을 쳐댔는지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코발트 하락은 분명 잘된 일이지만, 그로 인해 우리 쪽 신소재의 가격경쟁력은 더욱 떨어졌다. 연구개발을 통해 얼마만큼 가격을 낮추고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느냐가 상용화의 관건이다.

임진용 회장과 통화가 끝나자, 상엽 선배가 말했다.

“CL화학이라.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는군.”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CL화학이었죠.”

상엽 선배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말도 마. 지금도 그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예전에 상엽 선배는 CL화학 콜옵션에 전재산을 투자했다. 그런데 그 직후 직원 실수로 이메일 피싱을 당하는 바람에 수천만 달러를 날려 먹었다. 주가는 폭락했고, 상엽 선배는 전 재산을 날리고 대부업체에 빚까지 졌다.

“그거 갚느라 공사판에서 노가다까지 했었지.”

은성차는 전장 분야에서는 CL전자와, 전기차 분야에서는 CL화학과 협력하고 있다. 그런 만큼 내 입장에서는 더더욱 CL화학을 챙겨줄 이유가 없다.

택규가 물었다.

“그런데 신소재 배터리가 진짜 상용화되면, 수소차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은성차가 유일하게 기술적 우위를 갖고 있는 부분이 수소차다. 원래는 전기차와 수소차 투트랙 전략을 구사했으나, 현재는 수소차를 중점적으로 밀고 있다.

난 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수소차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겠지.

* * *

한국에 돌아온 뒤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봄 날씨를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여름이 시작되었다. 점점 더워진다 싶더니, 한낮에는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다.

어째 겨울이 끝나자마자 여름이 시작된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날씨가 더워지며, 사람들 옷도 얇아졌다.

우리 회사는 딱히 복장에 관한 규제가 없다. 부대표가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회사를 돌아다니지만, 직원들은 다들 정장을 갖춰 입고 출근했다.

원래 금융권이 좀 보수적이다.

며칠 사이 별다른 일이 없는 관계로 출근해서 택규와 함께 게임을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통화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너 건강검진 언제 받을 거야?]

“조만간 받으러 갈게요.”

[건성으로 대답만 하지 말고. 모름지기 건강은 건강할 때 챙겨야 하는 거야. 알았지?]

“알겠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건강을 잃으면 다 소용없다는 거 명심하고.]

“예. 지금 일하고 있으니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밥 꼭 챙겨 먹고.]

“알았어요.”

택규가 물었다.

“또 어머니?”

“응. 걱정되시는지 매일 전화하셔.”

“그런데 진짜 병원 안 가봐도 되나?”

“어차피 검사란 검사는 미국에서 다 받았잖아.”

내가 쓰러져 있는 사이 온갖 정밀검사가 진행되었다. 특히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 뇌를 집중적으로 스캔했다.

“내가 그때 얼마나 식겁했는지 알아?”

“못 깨어날까 봐?”

“그것도 그건데, 혹시 니 초능력이 들통날까봐.”

다행히 뇌를 포함한 내 몸은 일반인과 아무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걸 보면 역시 이 능력은 신체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모양이다.

“생각해봐. 만약 능력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어?”

“어떻게 되는데?”

“실험실 같은 데 끌려들어가서 해부 당할걸.”

“에이, 설마…….”

택규는 단호하게 말했다.

“설마가 아니야. 엑스맨도 안 봤어? 거기 보면 뮤턴트들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나오잖아.”

난 어이가 없어졌다.

“내가 뮤턴트냐? 주먹 쥔다고 클로(Claw)가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잖아.”

내 말에 택규는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랬으면 간지났을 텐데.”

“……만약 그런 게 생기면 기념으로 널 먼저 찔러줄게.”

쓸데없는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또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이번에는 모르는 번호였다.

난 일단 통화버튼을 눌렀다.

“누구세요?”

[오랜만이네.]

너무 뜻밖의 인물이라 난 당황했다.

상대는 나에게 물었다.

[누군지 알겠어?]

“응.”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 * *

“나 다음 달에 결혼해.”

내 표정을 본 그녀가 물었다.

“놀랐어?”

난 솔직하게 말했다.

“조금.”

졸업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결혼이라니.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아무 이유 없이 빨리 결혼하는 일은 흔치 않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실례가 될 것 같아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 선배랑?”

선아는 실소를 지었다.

“그럼 누구겠어?”

선아를 다시 보는 건 작년에 다시 휴학한 이후로는 처음이다. 그 1년 사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여전히 주위의 시선을 끌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다. 머리스타일, 화장, 옷, 가방, 구두 등은 한층 더 세련돼졌고, 표정과 동작에서 상류층 분위기를 풍겼다.

당장 재벌집 며느리로 들어가더라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은 실론호텔 2층의 커피숍. 호텔이라고 해서 딱히 커피가 더 맛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가격만 비쌀 뿐이지.

“이것 때문에 보자고 한 거야?”

“응. 얼굴 보고 직접 청첩장 주고 싶어서.”

선아는 옆에 둔 버킨백에서 청첩장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난 청첩장을 살펴보았다. 날짜는 다음달 12일. 장소는 그랜드파로스호텔 크리스탈홀.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넘쳐나지만, 실제로 재벌이 일반인과 결혼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꼭 재벌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력이나 학력, 집안, 외모 등 서로 수준을 맞춰서 배우자를 찾는다. 아무래도 결혼에는 현실적 조건이 크게 작용하기 마련이지.

그렇다고 현실에서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얼마 전, 발표된 영국 해리 왕자와 미국 여배우 메건 마클의 열애가 대표적이다. 영국 왕실이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조만간 결혼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메건 마클이 외국인에 연예인, 그리고 흑백혼혈에 이혼 경력까지 있음에도 큰 반발이 없었던 데에는 해리 왕자가 왕위계승권과는 관계없는 둘째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준형은 후계자와는 거리가 먼 삼남. 본인이 좋아서 결혼하겠다고 밀어붙이면, 집안에서도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점까지 생각해서 그를 택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고준형을 처음 본 건 학교축제 때였다. 당시 나는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했고, 그는 재벌집 아들이었다. 우리 둘의 차이는 명백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GH건설이라고 해봐야 일개 대기업에 불과하다. OTK컴퍼니가 마음만 먹으면 비슷한 기업쯤은 얼마든지 인수할 수 있다.

난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예전부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는데.”

“뭔데?”

“넌 왜 나랑 사귄 거야?”

전역 후,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선아는 성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지, 아마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긴 했지만, 우리 집이 대단히 잘사는 편은 아니었다. 선배나 동기들 중에는 훨씬 집안이 괜찮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왜 하필 나였을까?

그 의문에 대해 선아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니가 제일 빛나 보였으니까.”

“뭐?”

“그때도 말했잖아. 처음 봤을 때부터 너는 다른 애들과 뭔가 달랐다고.”

“…….”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대체 선아는 나에게서 뭘 봤던 거지? 그때는 예지력 같은 것도 없었는데.

선아는 마치 건반을 두드리듯 손가락으로 컵을 만지작거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나오는 버릇이다.

“어째서 숨긴 거야?”

“뭘?”

“OTK컴퍼니 CEO라는 걸.”

“안 물어봤잖아.”

“농담하자는 거 아니야.”

“진짠데.”

RCK브로스 부회장 딸도 정체를 숨기고 있는 판에 OTK컴퍼니가 뭐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겠는가?

OTK컴퍼니가 유명세를 타게 된 건 브렉시트 이후다. 그 전까지는 금융계 사람들만 간간히 알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반트코인, L6폭발, 스타트업 투자, 브렉시트 등등. 다 알지 않아?”

내가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었는지는 언론이 수도 없이 보도했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선아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단지 그것뿐이야?”

당연하지만, 투자로 그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면 누가 힘들게 일하겠는가?

이게 가능했던 건 예지력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운이 좋았지.”

선아는 그것과 관련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다른 걸 물었다.

“그때 학교에 같이 왔던 외국인 변호사랑 만난다며?”

“어떻게 알았어?”

“유리한테 들었어.”

유리와는 가끔씩 연락하는 모양이다. RCK브로스 류철균 부회장 딸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너는…….”

선아가 뭔가 말을 하려는데, 한 여성이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녀는 나를 향해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강진후 대표님.”

누군가 해서 봤더니, 다름 아닌 이 호텔 사장이다. 실론호텔은 서성그룹 계열사로 현재는 임진용 회장의 누나인 임수미가 운영하고 있다.

갑자기 나타난 사장으로 인해 직원들도 일제히 긴장한 듯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임수미 사장님.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그녀는 웃음을 지었다.

“일하던 도중 강진후 대표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어요.”

실론호텔 본사는 호텔부지 안에 같이 있다. 직원 중 누군가 내 얼굴을 알아보고 위에 보고한 모양이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 만남이다. 처음 본 건 장례식장, 마지막으로 본 건 야구장이다.

일상복 차림에 편한 모습이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정장을 갖춰 입었고, 마치 여장부 같은 강한 분위기를 풍겼다.

참고로 옆에서 항상 현주 누나를 봐온 나는 이런 분위기에 상당히 익숙하다.

임수미 사장은 농담처럼 말했다.

“요즘 동생이 많이 신세지고 있던데요.”

“무슨 말씀을. 제가 회장님께 신세지는 중이죠.”

“지진 때문에 쓰러지셨다는 얘기 듣고 걱정 많이 했어요. 지금은 괜찮으신 건가요?”

“그럼요.”

그 일이 크긴 컸나보다. 날 만나는 사람 치고 내 건강 안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러고 보니 선아는 예외인가?

임수미 사장은 선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미팅 중이셨나 보네요. 이 분은……?”

“…….”

이거 뭐라고 얘기해야 돼?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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