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17

16. 약혼관계 – 전초전

레나와 레오, 병사들과 전사들은 중무장하고 에이브릴 성을 떠났다.

멀어진 성에서 뿔피리와 북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레오는 뒤를 돌아보며 묘한 감상에 젖었고, 곁에 있던 레나도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쯤 돌아올 수 있을까?”

“글쎄…”

적어도 여름까지는 전쟁이 지속될 거다. 끝은 아직 몰랐다.

전사들과 병사들은 인솔하는 기사를 따라 한 달간 행군했다.

행군은 정말 힘들었다. 온갖 무거운 장비를 걸친 병사들은 날씨가 쌀쌀했음에도 땀을 뻘뻘 흘렸고, 다들 발이 퉁퉁 부르텄다.

밤이 찾아오자 행군이 멈추고 늦은 저녁 식사와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병사들은 장비를 벗어던지곤 절뚝거리며 밥을 받았다.

레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으아. 발 아파 죽을 것 같아.”

“내가 신발 끌지 말랬지.”

레나의 발은 물집이 잡혀 엉망이 됐다.

레나뿐만 아니라 행군 경험이 없는 전사들도 다들 주저앉아 끙끙거렸다.

전사들 대부분은 직접 물집을 터뜨렸지만, 레오는 취사장에서 끓는 물을 받아왔다.

“발 줘봐.”

레나의 발을 뜨거운 물에 담갔다.

뜨거운 물에 한동안 물집을 담그면 저절로 물집이 터졌다. 직접 터뜨리는 것보다 훨씬 위생적이었고 피로한 발을 쉬이는 데도 좋았다.

군대에 있을 때는 바늘로 물집을 뚫어서 실을 매달았는데, 그러면 매달린 실이 물에 젖으면서 천천히 말랐다. 최소한의 구멍만으로 물집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바늘이 없어서 차선책을 택했다.

“아으… 이제야 좀 살겠네. 레오, 넌 어째 멀쩡하냐?”

“힘들다고 발을 끄니까 물집이 잡히는 거 아냐. 차분하게 걸으면 물집이 안 잡혀.”

그는 군대를 다녀와서 행군 경험이 있었다. 대한민국 육군 병장쯤 되면 어지간해선 물집이 잡히는 일이 없었다.

“잠깐 그러고 있어. 천막 쳐놓을게.”

레오는 레나를 놔두고 천막을 가지러 갔다.

병사들은 밤이면 뒤따르는 마차에서 천막을 내려 잠을 잤다. 그냥 넓고 두꺼운 천을 나뭇가지로 세우고 들어가 자는 정도였다.

한 천막에 세 명씩 들어가야 했는데, 레나와 레오는 둘이서만 사용했다. 병사들은 전사들과 같이 생활하지 않았고, 아이나르 부족원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아서 끼어들지 않았다.

레나는 발을 절뚝이며 천막으로 들어왔다. 나란히 누워 피로를 풀기 잠시, 레나가 돌아누웠다.

“이러고 있으니까 벌써 결혼한 기분인데?”

“이런 집에서 살고 싶진 않지만, 신혼집으로 이 정도면 과분한가?”

두 사람은 맑은 웃음을 교환했다.

레나는 레오를 그윽하게 쳐다봤다.

달빛에 비치는 그가 사랑스럽다. 전쟁터까지 따라와 준 내 남자다.

행군하면서도 어찌나 잘 챙겨주는지… 레오가 전보다 더 좋아졌다.

“레오, 할래?”

“뭘?”

“뭐긴 뭐야.”

“씻지도 못한 거지꼴로 하고 싶냐?”

레나는 입을 삐쭉였다.

“에이 재미없어. 애들 말로는 남자한테 이렇게 말하면 눈이 뒤집힌다던데.”

레오는 레나의 그런 모습이 귀여워서 딱밤을 때려줬다.

“아야! 너 죽을래?”

“빨리 잠이나 자자. 피곤해 죽겠다.”

“남자 새끼가 허약해 가지곤. 너 고추도 안 서지? 내 팔자도 완전 기구하네. 고자랑 결혼이라니.”

“자꾸 그렇게 도발하면 가만 안 둔다?”

“뭐. 왜. 어쩔 건데.”

“아 진짜, 얘 오늘 왜 이래. 회양풀이라도 핥았냐?”

회양풀은 찜질 약으로 쓰였다. 이건 아버지가 알려준 팁이었는데, 오랜 행군에 지친 다리를 푸는 데 좋다고 해서 많이 챙겨왔다.

그런데 회양풀을 쥐어짠 즙은 흥분제로도 쓰였다.

“아니거든!”

둘은 티격태격하면서 밤을 보냈다.

* * *

우리는 한 달 만에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것도 중간지점에 불과했다. 에이브릴 성에서 출발한 병사들은 다른 곳에서 차출된 병력과 합쳐져 다시 행군하기 시작했다.

이젠 제법 대규모가 돼서 뒤를 돌아봐도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병력 규모가 커지면서 각 부대를 인솔할 임시 지휘관들이 배정됐다. 아이나르 부족 전사들은 하나의 부대로 묶여 한 백인장의 휘하로 들어갔다.

꼬장꼬장한 인상의 그 백인장은 들창코를 습관적으로 킁킁거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숙영 첫날부터 레나와 레오에게 다가와 트집을 잡았다.

“왜 너희만 천막을 둘이서 쓰나? 아주 개판이야. 둘이서 알콩달콩 소꿉놀이라도 나온 겐가?”

레나는 어쩔 줄 모르고 당황했지만, 레오는 이럴 때의 해결책을 알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약혼한 사이라…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레나 몰래 백인장한테만 보이도록 손짓했다. 슬그머니, 은화가 보인다.

“그래? 음, 그러면 다른 전사가 굳이 끼어들기도 좀 그렇겠구먼. 알겠네.”

백인장은 이해해주는 척하면서 가버렸다.

뇌물은 군대에서도 요긴하게 쓰였다. 이렇게 돈을 쓰면 사소한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었다. 조금 있다가 저 백인장을 찾아가서 은화 몇 푼을 쥐여주면 더는 귀찮게 굴지 않을 거다.

{초기 자금}과 {뒷골목의 규칙}을 적절히 활용한 것 같아서 뿌듯했다.

레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천만다행이라는 듯이 파닥거렸다.

“어라? 엄청 혼날 줄 알았는데 그냥 가시네? 다행이다.”

“그러게. 배려심이 있는 분인걸.”

레오는 능청을 떨었다.

얘는 이런 지저분한 현실을 오래도록 몰랐으면 좋겠다.

* * *

우리는 오랜 행군 끝에 전선에 도착했다. 에이브릴 성을 출발한 지 무려 두 달만이었는데, 전선에선 한 달 전부터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아버지께 들은 이 세계의 전쟁은 레오가 아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가 알기로는 보통 이런 시대의 전쟁은 수백 명 단위로 밀집대형을 이루고 거대한 회전(會戰)을 겨루는 식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았다.

‘마법사’라는 전략 병기들 때문이다.

마법사는 전 대륙을 통틀어 이백에서 삼백 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전장에선 단 몇 명만으로도 승패에 영향을 끼쳤다.

대규모 살상이 가능한 마법사 앞에서 밀집대형을 이루는 건 어리석은 행위여서 마법사의 화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군대는 잘게 쪼개졌다.

병사들은 열 명의 단위로 묶여 분대를 이루었고 십인장이 배정되었다. 그런 수백, 수천 개의 분대가 전장으로 넓게 흩어져서 전선을 밀었다.

현대의 유격전을 방불케 하는 현상이었다.

레나와 레오는 한 분대에 편성됐다.

아이나르 부족 6명과 병사 3명, 그리고 분대를 통솔할 십인장이 하나로 묶였다. 십인장은 자기소개도 생략하고 분대원을 챙겼다.

“우린 우측 능선으로 간다. 식량은 다 보급받았지?”

장비 점검과 함께 우리 분대는 바로 출발했다.

팽팽했던 전선은 남쪽으로 한 발자국 더 밀렸다. 아스틴 왕국이 벨리타 왕국보다 먼저 병력을 충원하는 데 성공하면서 적군은 몇몇 언덕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큰 그림은 장군들이나 아는 내용이었고, 최전선에서는 명령에 따라 각 분대가 격돌했다.

레나와 레오가 속한 분대도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시작했다.

“레오! 뒤!”

레오가 레나의 경고에 급히 몸을 비틀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뒤를 치려던 적 병사의 손가락이 우수수 떨어졌다.

레오는 손가락을 잃은 놈을 내버려 두고 맞상대하던 녀석이 찔러온 칼을 가까스로 피했다. 이윽고 레오의 검이 녀석의 목을 시원하게 관통했다.

[ 업적 : 병사 열 명 – 병사를 상대할 때 더 강해집니다. ]

벌써 열 명째였나.

그는 숫자도 세고 있지 않았다. 업적 덕분인지 손가락을 잃은 놈은 더 쉽게 잡았다.

싸움이 끝나자 십인장이 레나와 레오에게 감탄한 듯 말했다.

“자네들은 마치 기사 같군. 대단한데.”

상대의 두 개 분대가 연합한 걸 막아냈다. 우리 측 분대도 여섯이나 죽었지만, 저쪽은 몇 명만 살아 도망쳤다.

하지만 기뻐하기에는 쌓인 시체가 너무 많았다. 살아남은 네 사람은 죽은 전우들을 가지런히 눕히고 묵례했다.

그리고 전사자 옆에 작은 깃발을 꽂고 떠났다. 뒤에서 오는 다른 여유 있는 분대가 시신을 수습할 거다.

숫자가 넷으로 줄어든 우리 분대는 빨리 다른 분대와 합류해야 했다. 시신을 바로 챙겨주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여기서 어물쩍거리다 적을 만나면 큰일이 난다.

“레나, 괜찮아?”

“응. 난 괜찮지. 너 잘 싸우던데?”

레나는 조금 슬퍼 보였다. 씩씩한 기운을 잃지 않았지만, 부족원들이 죽은 게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 * *

마음의 상처와 시체를 남기는 자잘한 교전은 하루가 멀다고 이어졌다. 레나와 레오는 몇 번이나 분대를 옮겼고, 처음 만났던 십인장은 죽었다.

그사이 봄이 끝나고 무더운 여름이 시작됐다.

수풀이 우거지며 시야가 좁아지자 각 분대는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기사들이 좋아하는 환경이다.

보병들이 밀집대형을 이루지 못하고 분대별로 흩어져 있다 보니 이 세계의 전장에서는 기사들이 미쳐 날뛰었다.

기사단도 마법사 때문에 기병대를 적극 활용하지는 못했다. 기마병이 몰려다니거나 여러 개의 분대가 뭉쳐 수십 명의 부대를 이루면 즉각 마법사가 파견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사들은 무성한 수풀 속에서 두셋씩 짝지어 돌아다니며 분대들을 섬멸했다. 그들에게 있어 열 명의 일반 병사들은 손쉬운 사냥감이었다.

“저기 있네.”

두 기사가 은밀하게 눈앞의 분대를 살폈다.

“선배님. 숫자가 좀 많은데요?”

“고작 열댓 명 가지고 징징거리지 마.”

여기사는 붉은 머리를 다시 묶었다. 경무장한 젊은 기사는 불안한지 앞의 분대를 계속 살폈다.

“양손검 든 녀석이 둘이나 있는데… 저거 혹시 기사는 아니겠죠?”

“기사라고 하기엔 너무 어려. 한 분대에 기사가 둘씩이나 있을 리도 없고. 가자.”

이 녀석은 갓 기사단에 들어와서 아직 자신의 힘을 몰랐다. 그래서 일반 병사를 상대로 기사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숫자만 보면 움츠러드는 경향이 있었다.

여기사는 후배를 다독거리며 수풀을 헤치고 뛰쳐나왔다.

“기사다!”

한 분대원이 외치기가 무섭게 다른 병사가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전령이다.

기사를 발견한 분대는 즉시 근처 분대를 부르고, 가능하면 우리 쪽 기사님이 와주기를 기대해야 했다.

남녀 두 기사는 지체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버텨! 곧 지원이 온다!”

레나와 레오는 남성 기사를 막아섰다.

십인장은 레나와 레오를 믿고 남성 기사에게 다섯 명을 할당했다. 그리고 나머지 열 명으로 여성 기사를 견제했다.

여기사는 순식간에 일곱 명을 차근차근 베어버렸지만, 레오 쪽은 두 명밖에 죽지 않았다.

“야! 이 멍청아! 고작 다섯 명인데 뭐 이리 오래 걸려!”

“…카트리나 선배님! 이놈들 장난이 아니에요.”

카트리나!

레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그의 검에 진득한 살기가 섞였다.

“저쪽이다! 돌격!”

그때, 한 개 분대가 지원을 왔다.

카트리나는 초조해졌다. 여기서 시간이 더 끌리면 다른 분대가 더 도착할지도 모른다. 재빨리 섬멸하고 몸을 숨겼어야 했는데 저 멍청이가 미적거린다.

그녀는 한 명을 더 갈라버리면서 소리쳤다.

“야! 장난치지 마!”

“장난 아니라니까요! 엌!”

레나의 검이 기사의 머리를 스쳤다.

기사가 상체를 크게 젖혀 피하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함께하던 병사가 펄쩍 뛰어 검을 내리쳤다.

“이 자식이!”

그는 상체가 뒤로 젖혀진 채로 몸을 빙글 회전해 뛰어오른 병사의 배를 갈라버렸다.

육편이 튀어 오르는 가운데, 레오가 자세가 무너진 기사의 허벅지를 찔렀다. 기사는 풀썩 넘어졌다.

“이얍!”

레나가 기합을 내지르며 그의 가슴을 노렸지만, 검이 닿기 직전 기사가 몸을 뒤틀어 발로 레나의 팔을 쳐냈다.

검이 아깝게 땅에 박힌다.

그의 위기를 눈치챈 카트리나가 다급히 외쳤다.

“데로스!”

레오는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내리찍었다.

한 번은 막혔지만, 레오가 몸무게를 실어 다시 찍어내리자 검은 저항 없이 들어갔다. 데로스라는 기사는 앓는 소리를 내며 버둥거리다 움직임을 잃었다.

[ 업적 : 기사 한 명 – 기사를 상대할 때 더 강해집니다. ]

처음으로 기사를 잡았다. 아버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약한 놈이었지만, 다섯 명이어서 달려들었는데도 쉽지 않았다. 레나와 레오는 잠시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봤다.

여기사는 화가 났는지 검을 맹렬하게 휘두르고 있었다. 조금 다치더라도 서둘러 끝내려는 듯 호흡을 아끼지 않았다.

끝내 카트리나는 몇 군데에 칼을 허용하면서도 분대를 전멸시켰다. 그녀의 붉은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카트리나가 침을 탁 뱉으며 머리를 다시 묶는 사이 두 병사가 다가왔다.

“네가 카트리나냐?”

“맞아. 그런데 이름은 알아서 뭐하게?”

레오는 씨익 웃었다. 그는 두 개 분대를 섬멸한 기사 앞에서 고양감을 느꼈다.

드디어! 지난 시나리오에서 레나를 죽인 놈을 만났다. 무더운 여름의 대낮, 레나가 전사한 날이 딱 이쯤이었을 거다.

그날 엔딩에서 카트리나라는 이름을 봤었지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카트리나가 고개를 까닥이며 물었다.

“데로스를 죽인 건 너냐, 네년이냐?”

내밀어진 그녀의 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지난번의 레나가 저 검에 맞았겠지.

“나다!”

레오는 분노를 토하며 달려들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