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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

18화 변수 (2)

18화 변수 (2)

“기마병들이 왔어. 최소 두 명의 기사가 포함된 대규모 추격대야.”

나는 내가 아는 사실을 테오에게 전했다.

테오의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방법이 있을까? 데미안.”

그렇게 묻는 테오의 눈은 올곧았다.

강한 신념을 지닌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눈이었다.

테오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기 신뢰가 강하고, 필요하면 거리낌 없이 남을 이용하는 카인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리더다.

“곧 추격대를 상대할 괴물들이 나타날 거야.”

“괴물이라고?”

“응. 그 괴물들이 추격대와 싸우게 될 거야. 하지만 가까이 가면 우리도 위험해져.”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테오는 나를 믿었다. 곳곳에서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횃불이 번득인다. 이대로면 병사들에게 발각된다.

‘서둘러야 해.’

그러나 우리가 달리는 속도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난 회차와 비교해 조원들의 능력은 향상됐지만 처한 상황이 달랐다.

우리는 지난번보다 멀리 달아나지 못했다. 이러다가 병사들을 만나면 몰살당할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해도 10레벨이 안 되는 조원은 버리고 가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테오가 용납하지 않겠지.’

방법은 있다. 10레벨 미만의 조원을 버리는 게 안 된다면 조원 전체를 버리면 된다. 나는 혼자라면 지금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위험한 상황에서 몸을 빼는 것도 쉬워질 것이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지난 회차보다 하루 먼저 차원의 그림자가 등장할 것이라는 사실을 카인에게서 확인한 뒤, 마음 한구석으로 애써 밀어뒀던 생각이 있었다.

‘이번 탈출에 실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다음 회차에서 차원의 그림자는 이번 회차보다 하루 먼저 나타날 거다.

그 상황에서도 나는 충분히 준비할 수 있을까. 숲의 미로는 한층 복잡해지고 몬스터들의 타락도 더 심화되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숲의 타락이 광산으로 번져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

나는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는 인간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고민할 것 없이 동료를 버려야 한다. 아니, 그들이 언제부터 나의 동료였다는 말인가.

나는 F조를 만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 더욱이 내가 빙의하기 전까지 이 몸의 주인인 데미안은 조원들에게 멸시받았다. 심지어 저들 모두는 활자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이다.

“테오.”

나는 테오를 돌아봤다. 족제비와 덩치를 포함한 조원들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말을 끌었다.

테오는 눈을 조금 크게 뜨며 나를 봤다. 테오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어색했다. 그의 얼굴에서는 불안감이 드러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더 속도를 내야 할 것 같아. 몸이 빠르지 않은 조원들의 무장을 해제시켜 줘.”

“아. 그래. 그렇게 하자 데미안.”

테오의 얼굴에 안도감이 스쳤다.

나는 생각했다. 테오는 원래 내가 하려던 말을 짐작했을까. 그런데 왜 나는 이성의 목소리를 저버리고 이런 결정을 내린 거지?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억눌린 감정은 무엇일까.

“덩치와 조를 제외하고 무장 해제! 달리는 것에만 집중해!”

이후 조원들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빨라졌다. 그렇지만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무언으로 조원들을 재촉했다. 그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나 누구도 불평하거나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 기분을 더욱 상하게 했다.

“하아······! 하아······!”

C조의 표식이 다시 나타났다. 그들의 움직임은 이상할 정도로 느렸고, 인원도 적었다. 기척을 느낀 그들이 우리에게 울먹이며 손을 내밀었다. 그들은 낙오자였다.

“도, 도와줘······!”

“우리는 버려졌어······! 제발 부탁이야······!”

“이, 이번엔 79번까지 우리를······ 히익, 힉······!”

나는 망설이는 테오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저들을 구하면 우리가 죽어. 선택해. 다 같이 죽을 것인지, 아니면 우리 조를 살릴 것인지.”

“너, 너 금발 약골! 감히 테오를······!”

족제비가 언성을 높였지만 내가 사납게 노려보자 바로 꼬리를 내렸다. 선택해라 테오. 나는 내 안의 목소리를 억누르며 너희와 함께하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야.

테오의 고민은 짧았다. 우리는 낙오자를 무시하고 달렸다. 머지않아 C조의 본대를 따라잡았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우리는 보급로에 가까워져 있었다.

“테오. 곧 C조가 보급로로 뛰어들 거야. 전투가 시작되더라도 무시하고 달려. 나는 나중에 합류할게.”

“뭐라고? 너 설마 전투에 참여할······!”

나는 테오의 손에 힐링 블룸을 쥐여줬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내가 사용할 하나만을 남기고.

“꼭 필요할 때만 아껴서 써. 상처를 치유하는 데뿐만 아니라, 씹어 삼키면 얼마간의 체력도 회복될 거야.”

“하지만 데미안······!”

“나에게 어떤 일이 생겨도 상관 말고 달려. 너는 훌륭한 리더야. 반드시 조원들과 탈출에 성공할 거야.”

지난 회차에서는 테오가 나를 먼저 보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 이전 회차에서도 테오는 털북숭이로부터 나를 구해줬다.

“걱정하지 마. 반드시 돌아갈 테니까.”

카인이 고개 돌려 나를 봤다. 그의 옆얼굴은 지난 회차보다 진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이제야 따라붙었나. 데미안.”

카인이 눈짓했고, 나는 그의 시선이 가리키는 숲 너머의 하늘을 봤다. 지난번보다 한층 커다래진 균열이 그곳에 있었다.

“지금이다! 이동!”

카인과 C조가 보급로로 돌진했다. 카인의 검이 군마의 다리를 베었다. 나머지 소년들도 저마다의 무기를 휘둘러 군마를 공격했다.

나도 보급로를 향해 달렸다.

“달려! 테오!”

“데미안!”

당장이라도 날 뒤따라올 것 같은 목소리. 하지만 테오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조원들에게는 테오가 필요하다. 테오 없이는 지금의 결속력을 유지할 수 없다.

테오도 그것을 안다. 따라서 그는 조원들을 버리지 못한다. 그게 테오다.

“빌어먹을! F조! 그대로 달려!”

“하, 하지만 데미안이······!”

“시끄러워 조! 그냥 달려!”

조금 전 테오의 멱살을 잡았을 때는 금발 약골이니 뭐니 하던 족제비였지만, 막상 내가 혼자서 뛰쳐나가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나는 불필요한 목소리와 발소리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눈앞의 상황에 집중할 시간이다.

파지지짓······!

전투 현장으로 옮겨진 균열에서 차원의 그림자들이 튀어나왔다.

지난번보다 더욱 크다.

그러고 보니 지지난 회차의 그림자들은 지난 회차보다 작았던 것 같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놈들도 강해지는 거야.’

“으악!”

“저, 저게 뭐야!”

“끄아아아악······!”

지면에 내려앉은 괴물들이 주위의 모든 것을 공격했다.

유령처럼 몸을 늘여 병사를 잡아찢고, 가위처럼 펼친 두 팔로 군마의 몸통을 잘랐다.

C조의 몇몇 소년도 놈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히익! 히이이익······!”

두 다리가 잘린 병사가 비명을 질렀다. 내장을 쏟아낸 군마가 힘없이 눈꺼풀을 떨었다. 종이처럼 찢겨 죽은 C조의 소년도 보였다.

그리고, 그가 나타났다.

차아아앙!

눈부신 오러 블레이드가 괴물 하나를 두 동강 냈다.

소드마스터의 등장이었다.

[관찰력을 발현합니다.]

나는 소드마스터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군마를 조종하며 양팔로 힘을 전달하는 방식.

칼날을 휘감은 오러.

그것이 형상을 이루며 방출되는 오러 블레이드!

“에티엔 경!”

기사 하나가 소드마스터에게 말을 달려왔다.

나는 놀랐다. 그가 지난 회차에서 내가 죽였던 기사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에티엔이라고?’

무한회귀 세계관에서 에티엔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드마스터는 한 명밖에 없다.

‘에티엔 쾨르다시에.’

일명 ‘강철 심장의 에티엔’. 오를리안 왕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다.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나는 한편으로 안도했다. 저 정도 실력자는 되어야 괴물들을 처치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마지막에는 에티엔도 죽어야겠지만.

“저 괴물들은 대체······!”

기사가 아연한 얼굴로 전투 현장을 봤다. 그는 괴물에게 검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며 당황해하고 있었다.

“경은 탈주자를 확보하는 데 전념하시오. 그 안에 내 아우를 죽인 녀석이 있겠지.”

카인이 죽인 귀족은 무려 에티엔의 아우였다. 그러니 저 정도의 대규모 추격대가 나설 수 있었던 거다.

“그에 대해 들은 것이 있습니다. 조금 전에 잡힌 탈주자들의 말에 따르면 66번이 주모자라고 합니다.”

“66번?”

에티엔의 투구가 전장을 훑어봤다. 그리고 머지않아 카인을 찾아냈다. 투구 속 그의 눈동자가 복수심으로 타올랐다.

‘빌어먹을.’

나는 보급로로 뛰어들며 생각했다.

카인은 죽으면 회귀의 분기점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나는 녀석과 동기화하지 않았으니 회귀에 끌려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카인이 부활한 세계선과 지금의 세계선으로 나뉘는 건가?

알 수 없다. 다만 소설은 카인이 존재하는 세계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 세계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카인이 죽어 없어진 세계는 더 이상 세계의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차앙! 차아아앙!

에티엔이 괴물들을 베며 카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차원의 그림자들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제 몸을 복원시키며 다시 에티엔에게 달려들었다.

그럼에도 에티엔은 카인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그는 물밀듯 밀려드는 검은 괴물의 바다를 뚫고, 카인에게 검을 뻗었다.

부웅.

그러나 닿지 않았다. 카인이 회피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카인이라도 고작 20레벨의 몸으로 소드마스터의 검격을 피할 수는 없다.

원인은 차원의 그림자의 집요한 방해와, 내가 던진 거미줄에 있었다. 나는 에티엔보다 한발 앞서 카인에게 거미줄을 붙였고, 수축시켰다. 그 결과로 카인과 내 몸이 자석처럼 서로를 향해 날았다.

투트트틋!

나는 카인과 부딪히기 전에 거미줄을 풀고 낙법을 펼쳤다. 카인도 같은 선택을 했다.

에티엔의 투구가 이쪽을 돌아봤다. 그 순간 송곳처럼 변한 괴물의 일부가 에티엔의 옆구리를 찔렀다.

“에티엔 경!”

놀란 기사와 기병들이 말을 달려왔다. 그러나 에티엔이 손을 들어 막았다. 에티엔은 쓰러지지 않았다. 괴물에게 당한 곳은 급소가 아니다. 저 정도로는 소드마스터를 무력화할 수 없다.

에티엔의 가슴에서 발산한 마력이 칼날로 집약됐다. 강철 심장의 에티엔. 그의 이명을 닮은 강철의 오러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뻗쳤다.

트카카캉!

검은 괴물들이 무너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그 충격파에 휩쓸려 나와 카인도 뒤로 던져졌다. 여러 번 땅에 구르며 멈춘 후, 나는 두 팔로 땅을 짚으며 멍해진 머리를 흔들었다.

“설마 날 구하러 온 건가. 데미안.”

대답할 틈은 없었다. 에티엔이 말을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검에 다시 한번 오러가 깃들었다. 나는 직감했다. 곧 오러 블레이드가 날아온다.

이대로면 나와 카인은 죽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는 소드마스터. 통찰이 통하지 않는 상대다. 따라서 동기화도 사용할 수 없다. 게다가 나의 레벨로는 그의 능력을 카피할 수조차 없을 거다.

[자연 감응(Lv.1)을 발현합니다.]

왜인지는 모른다. 나는 본능적인 직감을 느끼며 자연 감응을 발현했다. 시야가 순식간에 확장되고, 나는 숲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유령처럼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다.

‘······!’

‘그것’의 손에 들린 날붙이를 본 순간 나는 카인의 팔을 붙잡고 가까운 나무를 향해 거미줄을 쐈다. 거미줄이 수축하며 우리를 숲의 그늘로 끌어당겼다. 그와 동시에 에티엔의 검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쏘아졌다.

나는 허공에 뜬 채로 에티엔을 돌아봤다. 에티엔의 타깃은 우리가 아니었다. ‘그것’이 던진 단검. 이유는 명확했다. 그 단검이 에티엔을 노리고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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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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