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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0

169. 거지남매 – 외출 허가

서류가 흩날리는 근위기사단 집무실에서 한 행정기사가 볼멘소리를 뱉었다.

“또요? 노엘 님. 외출이 너무 잦으신 것 아닙니까?”

행정기사의 앞에는 레오가 있었다. 그는 멋쩍게 웃으며 재차 부탁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다음 주에 꼭 나가봐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하지만 레오가 아무리 잘생겼다 해도 수컷의 웃음이 다른 수컷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삼십 대 초반의 행정기사는 골치 아프다는 듯이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하아… 누구는 안 그렇겠습니까. 근무가 없더라도 자꾸 이런 식으로 요청을 넣으시면 곤란합니다. 왕성에는 최소한 서른 명의 기사가 상주해야 한단 말입니다. 가정이 있으신 것도 아닌데 이러시면…”

다시 한번 근위기사들의 전체 일정과 근무표를 훑어본 행정기사는 결국 짜증을 내고야 말았다.

“죄송하지만, 안 되겠습니다. 아무리 맞춰보려 해도 자리가 없군요. 그리고 노엘 님은 충분히 많이 외출하셨습니다. 제가 십 년 넘게 근무하면서 신입 기사가 이렇게 많이 외출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이봐. 너무 화내지 말게. 뭔가 사정이 있겠지.”

그때, 레오의 선임 기사가 끼어들었다. 그는 눈을 찡긋하며 행정기사를 달랬는데, 두 사람은 동기였다.

엄밀히 말해 동기라기보다는 함께 준기사 시절을 헤쳐나간 친구라 함이 맞았다. 하나는 기사가 되고, 다른 한 명은 그러지 못하여 존칭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친구 사이에 그런 게 뭐 중요한가. 두 사람은 여전히 사이가 좋았다.

“그럼 내가 그날 왕성에 남겠네. 그러면 되겠나?”

“그러면 가능하긴 합니다만… 기사님께서 그렇게까지 해주셔야 하겠습니까? 솔직히 징계는 끝났지만, 아직도 포르테 백작이…”

“어허.”

선임 근위기사가 행정기사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이미 레오의 귀에 들어간 지 오래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포르테 백작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별것 아닐세. 그만 가지. 교대까지 얼마 안 남았어.”

그는 뚜벅뚜벅, 집무실을 빠져나갔고, 레오는 끈질기게 따라붙어 물었다.

“선배님. 알려주세요. 무슨 일인가요?”

“쯧. 그 친구가 괜한 말을 해가지곤… 기왕 알게 됐으니 자네 한동안 몸 좀 사리게. 포르테 백작이 무슨 억하심정인지 자네 신상을 파악해달라는 공문을 계속 보내고 있어.”

그는 “근위기사단이 아주 만만해 보이는 모양인데…” 중얼거리곤 레오에게 조언을 건넸다.

헤르만 포르테 백작의 집무실이 왕성 동쪽에 있으니 가급적 그쪽으로는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레오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소드마스터가 왜?

물론 내가 잘못을 하긴 했다.

근위기사라는 작자가 왕자의 집무실을 박차고 들어갔으니 헤르만 포르테 백작 입장에서야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그가 왕자를 감싸고 도는, 왕당파와 반대되는 세력의 수장이라지만 기사단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물고 늘어지기엔 다소 사소한 일이기도 했다.

‘…설마 내 신분증이 가짜라는 걸 눈치챈 걸까?’

레오는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뭣 하나 순탄하게 풀리는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서둘러 ‘풍요의 회랑’을 향했다. 그래도 다다음 주쯤엔 난 오르빌을 떠나고 없을 테니까…

기분이 착잡해졌으나, 다행히 기쁜 소식이 하나 떠올랐다.

내일모레가 첫 봉급이 나오는 날이었다. 드디어 크세니아에게 얻어먹은 밥값을 할 수 있고, 레나에게 옷 한 벌이라도 사다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이었다.

* * *

오르빌 왕궁이 부산스러워졌다.

아스틴 왕국의 왕자가 방문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녀장들이 시녀들을 닦달하기 시작했고, 왕궁의 사용되지 않던 구역이 개방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시원한 가을바람과 함께 아놀프 드 클라우스 왕자가 도착했다.

잡티 하나 없이 새까만 흑마를 타고, 군청색 머리칼을 흩날리며 나타난 왕자.

그는 수백의 정예병과 시종, 시녀가 뒤따르는 행렬을 이끌며 오르빌 왕궁에 입궐하였다.

레오는 그 보무도 당당한 행진을 생경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여태껏 딱 두 번, 이 행진을 보았다. 북적이는 군중에 파묻혀 저 왕자의 신분을 질투했었고, 일개 깡패로서 새삼 까마득하다 느꼈던 게 엊그제 같았다.

빳빳하게 다림질한 제복을 입은 레오가 대열에서 이탈했다. 벨리타 왕국의 최연소 기사로서 근위기사단장과 함께 왕자를 맞았다.

“북부의 귀공자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타탈리아 왕가의 근위기사단장, 햄릿이라 합니다.”

귀공자. 귀한 집안의 남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소 부족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북부를 야만인의 땅이라 업신여기는 벨리타 왕국에 온 이상, 감내해야 하는 일이라 아놀프 드 클라우스 왕자는 의연하게 답했다.

“반갑습니다. 아놀프 드 클라우스입니다. 제게 곁에 계신 분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아차!

감상에 젖어있던 레오는 물벼락을 뒤집어쓴 것처럼 놀랐다.

할 수만 있다면 근위기사단장의 입을 틀어막았겠지만, 그는 야속하게도 레오의 가명을 넙죽 밝혀버렸다.

“이쪽은 ‘노엘’이라 합니다. 저희 벨리타 왕국의 최연소 기사이지요. 놀랍게도 올해 성년이랍니다.”

“…노엘이요?”

당연하게도, 클라우스 왕자는 놀란 기색이었다.

노엘 덱스터. 약혼관계 시나리오 레오의 아버지. 내가 왜 그의 이름을 사용했을까. 레오는 정말이지 땅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돌이킬 수 없었다.

왕자가 말했다.

“신기하군요. 저희 왕국에도 노엘 덱스터라는 아주 유명한 기사가 계셨습니다. 제가 알기로 그분도 저희 왕국의 최연소 기사셨는데… 참으로 공교롭군요.”

“그렇습니까? 왕자님께서 기억하실 정도라면 정말 대단한 기사님이신가 봅니다.”

“그렇습니다. 구일 전쟁 당시 바르나울에서 용맹을 떨친 분이십니다. 바르나울의 시민들 모두가 그 기사님을 알고 있지요. 하하. 만나서 반갑습니다. 노엘 경.”

[ 업적 : 왕자와의 첫 만남 – 모든 왕자로부터 미약한 호감을 얻음. ]

[ 업적 : 아놀프 드 클라우스를 만남 – 클라우스 왕가를 섬기는 모든 귀족에게 미약한 호감을 얻음. 아놀프 드 클라우스에게 미약한 호감을 얻음. ]

왕자가 악수를 청해왔다. 하지만 레오는 그가 말할수록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내 이름이 가짜인 게 들통나면 어쩌지 ─ 걱정하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근위기사단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젊고 전도유망한 기사가 있다!’ 과시한 것에 왕자가 지지 않으려 애쓰는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레오를 들여보내고 예식을 진행해나갔다.

대열로 돌아온 레오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거지남매 시나리오에서 노엘이라는 가명을 사용한 건 꽤 오래전부터의 습관이었다.

예전 거지남매 시나리오에서 처음으로 카트리나를 만났을 때, 그녀가

“너도 이름이 레오야?”

약혼관계 시나리오의 레오와 이름이 같다며 의심했던 것 때문에 그 이후로 카트리나에게 자신을 ‘노엘’이라 소개해왔다.

그랬던 것이 이런 식으로 위기를 초래하리라곤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놀란 가슴이 가라앉고, 별것도 아닌 가명 때문에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자, 어처구니가 없어진 레오는 그만 웃고 말았다.

십 년 감수했다.

* * *

아놀프 드 클라우스 왕자를 맞이하는 예식은 금방 끝이 났다.

저 먼 북부에서부터 수 개월간 여행해온 왕자에겐 휴식이 필요했으므로, 첫날은 오르빌 왕궁을 가볍게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이 잡혔다.

왕궁을 안내해줄 근위기사가 필요했고, 클라우스 왕자가 ‘노엘’을 지목하였지만, 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레오가 예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외출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연극이 있는 날이었다.

레오는 봉급을 받아 두둑해진 주머니를 품에 넣고 장터를 향했다.

‘뭘 사가면 좋아할까…’

너무 비싼 것을 살 수는 없었다.

마음 같아서야 여태까지 내게 밥을 먹여주고, 동생을 돌봐준 크세니아에게 값비싼 선물을 해주고 싶지만, 이 돈은 콘라드 왕국으로 갈 여비였다.

근위기사를 포함한 모든 기사는 그렇게 많은 돈을 받지 못했다.

일반 백성들에게야 엌! 소리가 날 정도로 큰돈이겠지만, 기사라는 존재의 희귀성을 생각하면 사실 지독한 박봉이었다.

기사는 생명 수당조차 포함되지 않은 명예직이라 할 수 있었는데, 그건 엑스퍼트와 같은 대단한 무력이 전쟁과 같은 국가적 상황을 제외하면 쓸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음지로 파고들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도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경우고, 그만한 실력자가 음지에서 설치면서 세력을 키우면 종국에는 귀족을 만나게 되기 마련이었다.

왕자의 도착으로 시끌벅적해진 장터. 한참을 이곳저곳 둘러보던 레오는 고심 끝에 옷을 구입했다.

드레스같이 비싼 것은 못 사고, 얼마 후면 콘라드 왕국으로 떠날 것이니 단출하지만 활동적인 겉옷 몇 벌을 골랐다.

이건 레나 거. 저건 크세니아 거. 나머지 하나는 내 것.

레오는 부탁하거든 크세니아가 함께 여행을 떠나줄 것이라는 데에 추호의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왕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설마 카시아처럼 그러지는 않겠지…’

심장이 내려앉았다.

창백한 안색으로 무릎 꿇었던 카시아. 내가 왕자임을 알자 천한 계집의 무례를 용서해달라 빌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사랑? 아니다. 이건 연민이었다.

그 무엇도 갚아주지 못했는데, 훌쩍 떠나버린 애증의 존재가 그에게 족쇄처럼 매달리는 것이었다.

‘…차차 나아지겠지.’

그때, 보랏빛 가운(gown)이 눈에 들어왔다.

걸쳐 입을 수 있는, 면으로 된 그 직물을 한참 매만지던 레오는 홀린 듯이 값을 치렀다.

이제 가을이 돼서 추워지는데… 카시아한테 딱 잘 어울리겠는데…

이런저런 변명이 많았지만, 레오는 그 가운을 챙겨 카시아의 가게를 향했다.

“어? 너 크세니아 남자친구 아니야?” 아는 체하는 그녀의 가게에서 신발을 둘러보는 척하다 가운을 두고 나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이제 저기에 두 번 다시 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으며 레오는 오랑주 극장으로 갔다.

그런데, 슬슬 관객이 몰려 북적거렸어야 했을 극장은 한산했다. 곧장 극장으로 들어가 크세니아를 찾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일로 연기됐어요.”

“내일요? …왜요?”

“모르셨어요? 오늘 아스틴 왕국의 왕자님이 오셨잖아요. 시민들이 다 동원될 거라고 하길래 미뤘지요. 언제 오실지도 몰랐고… 설마 이렇게 일찍 도착해서 끝날 줄 알았으면 미루지 않았을 텐데, 표 바꾸고 홍보 다시 한다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

“…내일 올 수 있어요?”

레오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크세니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레오는 크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요. 내일은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요. 도저히… 시간을 빼지 못할 것 같아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내일 저녁. 무도회가 열린다.

그 무도회에서 클로에 드 타탈리아 공주가 길버트 포르테와 진한 입맞춤을 나누고, 면전에서 모욕당한 아놀프 드 클라우스 왕자는 곧장 아스틴 왕국으로 돌아가 버린다.

이걸 놓칠 수는 없었다.

소꿉친구 시나리오의 레아를 위해, 길버트 포르테가 수도교회로 가지 않게 막아야 하고, 마수가 없는 약혼관계 시나리오를 위해 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지 시도해봐야 했다.

어차피 이젠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의 도움을 받든 못 받든 떠날 생각이니 길버트 포르테를 그냥 죽여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내일을 위해 너무나도 많은 공을 들여온 것이었다.

“동생이 실망하겠네요…”

레오는 의기소침해졌다. 미안함에 중얼거리자 크세니아가 쾌활하게 말해 분위기를 환기했다.

“괜찮아요. 내일 공연이 마지막인 것도 아니고, 몇 번 더 할 텐데요. 레나한테 못 오게 됐다고만 말해두죠. 이해해줄 거예요.”

“…그래야겠네요. 아 참, 이것 받아요. 선물이에요.”

레오가 옷을 건네주었다.

크세니아는 활짝 웃으며 좋아했고, 무대에서 한창 연습 중이던 레나도

“오빠! 괜찮아! 헤헤. 실수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차라리 잘됐네. 다음에 보러 와.”

라며 레오를 달래주었다. 하지만 그의 심정은 바닥까지 가라앉아 떠오를 줄을 몰랐다.

미안하지만… 다음은 없다.

소드마스터가 내 신분이 거짓임을 알아챘을지도 모르는 이상, 최대한 빨리 오르빌을 떠날 필요가 있었다.레나의 두 번째 공연까지 기다려줄 시간이 없는 것이다.

크세니아와 손잡고, 객석에 앉아 레나가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레오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일 와야겠다.

무도회가 끝나자마자 뛰어온다면 마지막 3극은 볼 수 있겠다. <데모니오스>의 레이나를 연기하는 레나가 성녀가 되는 순간을 볼 가망이 있었다.

그러면 동생은 기뻐하겠지…

레오는 어떻게 하면 외출 허가를 받을 수 있을지 궁리하기 시작했고, 그런 그를 크세니아가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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