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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2

172화 타락의 시험

텅 비고 아득히 넓은 들.

광야에서 레온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걷는 것뿐이었다.

“후우······.”

레온은 사자심장을 지닌 자다.

성배의 수호자이며 스스로 성력을 활성화하는 성자를 넘어선 반신.

결코 지치지 않는 완벽한 활력과 굴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가진 존재.

“후우······.”

그런 그가 숨을 고른다. 수십 년을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도 견뎌낼 수 있음에도 그는 허기와 갈증을 느끼고 있다.

그에게 있어선 실로 오랜만인, 오히려 일찍이 성배기사로 승화하여 오래도록 잊은 감각이다.

신들이 그를 사랑하매, 완벽한 육신과 고매한 정신을 가졌으니 그가 천하무적인 것은 바로 그 덕이었다.

어느덧 밤이 찾아온다.

뜨겁고 건조한 태양의 시간이 지나고 춥고 싸늘한 달의 시간이 시작된다.

광야에는 그 어떤 생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냥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그 고기를 취하고 피로 목마름을 해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광야에선 레온의 욕구를 해결해줄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낮이군.”

태양이 떠오르자 그는 다시 걷는다.

굶주림과 목마름을 자극하는 열사의 뜨거움 위로 어떤 대비도 없이 그저 걷는다.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 기사의 미덕이 아닌 탓이다.

설령 무의미한 한 발자국이라 할지라도 레온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신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아득하기만 한 수행길조차 그는 묵묵히 걸었다. 라이온하트의 세계에서 신앙조차 없었던 시절, 그는 까마득한 허상의 미래를 향해 계속 걸었다.

신의 은혜가 닿지 않는 외딴곳을 찾아 괴물을 쓰러뜨리고, 오크들의 습격을 받는 촌락을 구하기 위해 단기필마로 돌진했다.

축축한 육포를 질겅거리면서 늪지대를 헤쳐나갔고, 구더기가 생긴 짐승의 죽은 피를 마시며 정글을 탐사했다.

그의 생애, 멈춰선 일은 없었고, 오직 앞으로.

[정말이지, 대단하군. 사십 일 밤낮으로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다니.]

사악한 영혼의 그림자가 레온 앞에 나타났다. 그것이 무어라 더 말하려는 순간 레온의 검이 그를 베었다.

그림자는 흩어지며 이내 형상을 되찾았고 음산한 웃음소리가 광야 전체로 퍼졌다.

[사자심왕이여, 이곳에서 너는 나를 상처입힐 수 없다. 이곳은 너의 생애로도, 신들의 예지로도 다다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지.]

레온은 멈추지 않고 그림자를 계속해서 베어 나갔다. 베이지 않으면 베일 때까지 벤다. 그것이 기사의 삶, 기사의 무훈, 기사가 승리로 나아가는 법.

수백 번, 수천 번에 이르러 꼬박 하루가 지날 때가 되어서야 레온은 숨을 골랐다.

무의미한 공격 속에서 흩어지고 뭉치기를 반복하던 악마조차 질릴 정도였다.

[배고픈 모양이군. 목마른 모양이야. 기사야, 네가 정녕 신들에게 사랑받는다면 어찌 빵을 달라 청하지 않느냐. 물을 내려달라 하지 않느냐.]

네가 그토록 신앙하는 신들은 어디로 갔느냐?

악마의 그림자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양손이 내밀어졌다.

거기에는 빵과 물이 있었다. 사십일 광야를 헤매고, 하루 꼬박 악마의 허상과 싸운 레온에게 너무나 절실한 것.

[주마. 네 굶주림과 네 목마름을 내가 해결해주마. 너는 한 가지만 하면 된다.]

한쪽 무릎을 꿇어라.

오직 그것뿐이면 된다.

굴종하라는 것도 아니고, 신앙을 저버리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쪽 무릎.

그거면 충분하다.

악마는 기대 섞인 표정을 지으며 지친 숨을 고르는 레온을 바라봤다.

본디 인간은 사흘 밤낮을 굶주려도 참지 못한다.

고결한 의지를 가진 이라도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는 법이다.

지금 레온은 사십일을 꼬박 굶었다. 지친 체력과 정신에도 하루를 종일 허상과 싸웠다.

어떤 성인이라 할지라도 견뎌내기 어려운, 가장 강력한 육신의 고통이다.

“······.”

[무릎을 꿇어라! 그러면 네게──!]

악마의 말을 더 이어지지 못했다. 휘두른 검이 그의 형상화된 입을 흩어버렸기 때문이다.

곧장 다시 뭉친 악마가 고개를 기웃거렸다.

[이해가 안 되는군. 한쪽 무릎이다. 그저 한쪽 무릎만 꿇으면 너는 허기와 갈증에서 해방됐을 텐데.]

“쫑알쫑알 시끄럽군. 네놈들은 항상 말이 많았지.”

허기와 갈증 속에서도 레온의 목소리는 청명했고, 푸른 눈을 맑고 깨끗했다.

“악마야. 이 시덥잖은 것아. 사람이 빵과 물로만 사는 줄 아느냐. 나의 육신은 피와 살뿐 아니라 믿음과 신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

악마는 굶주림과 목마름으로는 그를 굴하게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세상이 변한다.

그곳은 드넓은 우주였다.

수많은 행성이 있었고, 차원을 넘어 또다른 세계가 있었다.

“”가장 위대한 기사시여···!!””

셀 수도 없이 많은 기사들이 있었고 레온을 향해 환호했다.

세계의 왕들이 레온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신들조차 레온을 올려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황제였다.

여러 차원을 정복한 대제국의 지존이자 형상화된 신이었다.

신들에게 인정받아 승화된 반신이 아닌, 스스로 등극한 살아있는 신.

무한한 권력과 힘을 휘두르는 절대자.

숭배받고 경외 받는, 인간이 가진 끝없는 욕심이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형을 앞에 두고 악마가 속삭였다.

[내 손을 붙잡아라. 이 손을 잡고 우리의 동맹이 되어라. 그러면 너는 이 모든 것을 가질 것이다.]

보이지 않느냐? 이 무한한 세계의 가능성이?

너는 수많은 차원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능히 그리되리라. 악마들조차 너를 군주로 섬길 것이다.

악마의 간교한 손이 레온에게 내밀어졌다. 레온은 그 손목을 붙잡았다.

“시끄럽구나, 마귀야. 내가 스스로 경배의 대상이 되길 원하겠느냐. 강대한 권력이 있다 한들 믿음이 없다면 제 자리를 보전하기 위한 끝없는 의심암귀만 있을 뿐.”

무한한 세상에 울타리 친들 거기에 끝은 없다.

레온의 손아귀에 악마의 손목이 부러졌다.

딱!

그곳은 레온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라이온하트의 왕성. 사자문장이 그려진 방패가 성안을 장식하고 오직 사자심왕과 그 왕족만이 걸을 수 있는 황금 융단 양쪽에 관료들이 도열해 있다.

사자심왕과 그 왕후가 앉을 왕좌에는 왕후의 자리가 비어있다.

“폐하, 어째서입니까.”

황금 융단을 밟은 여자가 있었다.

어미를 닮아 검은 머리를 가졌으며 용의 심장을 이식받아 강렬한 붉은 눈을 가진 북부의 대공.

또한 왕의 딸.

“당신께선 어머니를 구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뿐인 왕후 대신 선택했던 대의가 그토록 중요했습니까?”

뼈아픈 과거. 힐난의 시선을 보내는 딸.

“당신은 그래선 안 됐습니다. 온 세상의 사람들이 당신을 옳다 했어도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여선 안 됩니다.”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서 악마가 속삭였다. 그가 사이한 목소리로 유혹했다.

[너는 신들의 낙원을 향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다. 너만큼은 죽은 자들의 세계에 다다를 수 있지 않느냐.]

네 아내를 되살려라.

너의 바람에 신들이 어찌 거부할까.

레온은 그럴 수 있었다. 레온은 그럴 자격이 있었다. 신들에게 어떤 바람이라 할지라도 이뤄달라 요구할 수 있는 위업을 세웠다.

하지만 레온은 신들에게 요구하기보다 속삭이는 악마의 목덜미를 우악스럽게 쥐어 잡았다.

“사단마귀야, 네가 내게 순리를 거스르라 하느냐. 삶의 고귀함을, 죽음의 숭고함을 저버리라 말하느냐? 네놈 따위의 간언으로 내게 질서를 무너뜨리라 하느냐?”

짐은 신들의 기사요, 만백성의 어버이이며, 질서의 수호자다.

졸린 악마의 목덜미가 힘없이 늘어졌다.

악마는 계속해서 사자심왕을 시험했다.

끝없는 황금과 보석의 바다를 지나게 했으나 그는 동전 하나 줍지 않았고,

아름답게 꾸면 연회장에서 천상의 오케스트라와 화려한 무희들이 춤추었으나 눈길 하나 주지 않았으며,

커다랗고 하얀 침대와 그 옆에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시녀들이 있었으나 한 줌의 휴식도 취하지 않았다.

그가 타락의 유혹을 저버리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악마의 손목이 꺾이고, 입이 찢어졌으며, 다리가 부러졌다.

[······.]

악마는 이 금발 기사의 굴하지 않는 여정을 지켜보며 질릴 정도였다.

어찌 한낱 인간이 이토록 굴강한 정신을 지닐 수 있단 말인가.

어째서 굴하지 않고, 일말의 타협조차 없단 말인가.

그에겐 생존욕구도, 자존의 욕구도, 존재욕구도 없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생명체인 이상, 생물인 이상 그것은 존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곳은 쾌락과 타락의 정수로 만들어진 근원적 공간.

모든 우주의 ‘욕망’이라는 감정이 얽혀 만들어진 악마라는 존재의 무한한 에너지 그 심층의식.

이곳에서는 어떤 욕망도 이뤄지며 그렇기에 어떤 존재도 타락할 수밖에 없는 곳.

[어째서······.]

“궁금하느냐?

처음으로 레온이 말을 걸어왔다. 마치 승자처럼 고고하게,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악마를 깔아보며.

시험하는 자와 시험받는 자의 입장이 역전된 것 같은 모순 속에 악마가 일그러진 목소리를 흘렸다.

[이곳에서 넌 사자심왕이 아니다. 이곳에서 넌 한낱 인간일 뿐이야. 네겐 황금빛도 나지 않는 쓸모없는 검 한 자루와 몸뚱아리 뿐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있는 것은 모든 생명의 근원적인 힘이다. 욕망을 추구하고 바랄 수밖에 없는 감정이 모여 만들어진 악마란 존재의 근원이다.

생물에게 주어진 폭력성이 파괴의 군주를 만들고,

지식에 대한 무한한 탐구심이 지혜의 군주를 만든다.

이해할 수 없는 혼돈 속에서 파멸의 군주가 나타나고,

인색함과 욕심 끝에서 강욕의 군주는 탄생하는 것이다.

“아니, 네가 가진 것은 무의미한 혓바닥과 내가 타락하길 바라는 희망뿐이다.”

레온이 앞으로 걸었다.

악마가 뒤로 뒷걸음질쳤다.

수많은 욕구들이 극복되었고, 수많은 욕망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째서냐. 어째서 너는 타락하지 않지?]

왜··· 타락하지 않지?

“짐이 라이온하트이기 때문이다.”

신념을 가진 기사이고, 신앙을 가진 신도이며,

모든 자유민들과 귀족들과, 기사들의 의지를 관철하는 총의이기 때문이다.

레온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짐이 곧 국가다.」

그것은 어떤 오만함에서도, 과시욕에서도 비롯된 선언이 아니었다.

라이온하트는 신들과 그 신도들의 왕국이며.

기사도의 명예와, 귀족의 고매함과, 자유민의 봉사를 아우르는 자.

말 위에서 드넓은 전장을 두 눈으로 견지해야 하며,

왕좌에 앉아 왕국과 그 너머의 세상을 살펴야 하고,

제단 앞에 검과 창으로 만신전을 수호해야 하니.

따라서 라이온하트의 어깨에 짊어진 짐은 무거우며 또한 그렇기에 고귀하다.

[아니, 너는 결국 인간일 뿐이다! 필멸자일 뿐이야!]

불멸의 악마는 필멸자의 불멸한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고작 삼백 년을 산, 지고한 악마들에 비하면 갓난아기와 다를 바 없는 자의 존재가 자신의 세상보다도 거대하다는 것을 어찌 인정할 수 있을까?

[도락에 빠져라! 쾌락에 빠져라! 운우지락 속에 잠식되어라! 가장 강력한 욕망 속에서 너는 굴복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욕구와 욕망을 쉼 없이 헤쳐나온 사자심왕에게는 가소로울 수도 있는 선언.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다르다.

지난 백 년 간 숙성된, 백 년의 대계 속에서 타락하고 군주가 될 수 있었던 존재를.

[내가 그녀를 군주로 점지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아라!]

보라빛의 연기 속, 너무나도 아름답고 관능적인 소년소녀들이 반 나체인 채로 춤추는 곳.

달콤한 육신의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받는 궁전의 끝에서.

“폐하.”

요사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것 같은 요염한 여인이 있었다.

베아트리체 알리기에리 스페로.

타고난 교태를 지닌 요염한 여인.

레온조차 그 아찔한 아름다움에 무심코 손이 가게 만드는······.

“흥.”

레온은 성큼성큼 환락의 무희들을 지나쳐 그녀에게로 향했다.

베아트리체가 있는 그곳. 그녀의 침대 바로 앞까지 찾아갔다.

악마의 표정에 비열한 만족감이 서렸으나 그것도 잠시뿐이다.

-쿵!

성검을 바닥에 향하고, 검 자루를 짚듯이 기대 그녀를 내려다본다.

맑고 강인한 벽안이 흐릿하고 요사한 자안과 마주쳤다.

[무슨 속셈이지?]

레온은 그저 베아트리체를 응시했다.

그녀가 스스로 꿈에서 벗어날 때까지.

“꿈에서 깨시게. 그대는 꿈의 노예가 아닌, 꿈의 주인이니.”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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