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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2

171. 거지남매? – 편지

무도회는 이른 파장을 맞았다.

무도회의 주인공이었던 아놀프 드 클라우스 왕자가 자리를 박차고 떠나면서, 그리고 그 난리를 수습해야 했을 클리안 드 타탈리아 왕자까지 레오에게 “또 봐요.” 말하는 클로에 공주를 데리고 가버리면서 무도회는 끝이 났다.

레오는 근위기사단장에게 끌려갔다. 주위 사람들이 값진 구설수를 건지려 레오에게 다가왔으나, 근위기사단장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레오를 무도회장에서 빼냈다.

그리고 이어진 질책과 물음. 어처구니없음. 근위기사단장실에서 해가 기울도록 질문이 이어졌다.

무언가를 부탁할 처지가 아니었으나,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공주님이 막무가내로 한 짓입니다.” 변론하던 레오는 뻔뻔하게도 외출해도 좋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곁에 있던 행정기사가 어이없어하며 끼어들었다.

“기사님께서 지금 외출할 처지인 줄 아십니까? 방금 노엘 경을 데려오라는 왕명이 떨어졌습니다. 당장 가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저… 사실은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소문이 퍼졌을 텐데, 빨리 가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레오가 무릎을 꿇었다. “제발요.” 애원하며 빌기를 한참, 근위기사단장이 끄응-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까지 돌아올 수 있나?”

“단장님!”

[ 업적 : 클리안 드 타탈리아를 만남 – 타탈리아 왕가를 섬기는 모든 귀족에게 미약한 호감을 얻음. 클리안 드 타탈리아에게 미약한 호감을 얻음. ]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돌아오겠습니다. 정말 잠깐이면 됩니다.”

“좋아. 그러도록 하게. 자네는 아무 말 말게.”

행정기사는 못마땅한 얼굴로 레오를 이끌었다. “아주 잘 났어, 정말.” 중얼거리며 외출증을 끊어 주었는데, 집무실에 홀로 남은 근위기사단장은 복잡한 표정이었다.

“여자친구라…”

왕께서 언제까지 노엘을 데려오라 말씀하시진 않았으므로 알현은 다소 늦어져도 괜찮았다. 다만, 노엘 경이 무릎 꿇고 빌던 모습이 퍽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씁쓸하게 입을 다신 근위기사단장이 책상에 앉았다. 서랍을 뒤적여 차마 보내지 못한 편지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정말 오래전에 적은 편지. 먼지가 뽀얗게 쌓이고, 갖은 감정을 쏟아낸 그 편지지 말미에는 떠나간 친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Ophelia.

* * *

옷을 갈아입을 겨를도 없이 왕성을 빠져나온 레오는 뒤에서 쑥덕이는 소리를 들으며 마차를 잡아탔다.

“에라린 대로로. 최대한 빨리.”

근위기사의 제복을 본 마부는 두말할 것 없이 거듭 채찍질했다.

마차는 황혼이 지는 거리를 쏜살같이 질주했고, 레오는 말이 없었다. 찬바람이 들이닥치는 창가에 팔꿈치를 얹고,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의 저택. 실낱같은 가능성을 점치러 온 레오의 바람은 역시나, 거절당했다.

“백작님께서 만나고 싶지 않으시답니다.”

그러시겠지.

레오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었음을 느끼며, 다시 마차를 타고 오랑주 극장을 향했다.

극장 앞에는 크세니아가 있었다.

연극이 끝난 길거리에는 팜플렛이 어지럽게 버려져 있었고, 크세니아는 극장 앞에서 팔짱을 낀 채 레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올 거라곤 생각지 못하였는지 놀란 기색으로 레오를 바라보다 이내 싸늘하게 뱉었다.

“역시 당신이었군요.”

“…크세니아.”

크세니아는 레오가 입은 제복을 언급하지 않았다. 입안을 깨물어 눈물을 참아내고 분노를 터뜨렸다.

“무슨 변명을 하러 온 거죠? 듣고 싶지 않아요. 당장 동생을 데리고 꺼져요.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얼씬거리지 말아요.”

“크세니아.”

“날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요! 아니… 됐어요. 돌아가요. 죽여버리기 전에.”

“…알았어요. 돌아갈게요. 하지만 부탁이 있어요. 아마 제 마지막 부탁일 거예요.”

“당신은…!”

이 남자는 어찌 이렇게 뻔뻔한가. 첫 만남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하지만 크세니아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운명이라 생각했던 남자의 첫 모습. 지금은 비록 멀끔한 제복을 입었음에도, 공주와 진한 키스를 나눈 속물임이 밝혀졌음에도 크세니아는 그때 만난 거지가 좋았다.

크세니아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이를 긍정으로 받아들인 레오는 그녀를 지나쳐 극장으로 들어갔다.

“레오! 오늘 못 온다고 들었는데, 왔구나. 이야- 네가 꼭 봤어야 했는데. 글쎄 레나가…”

오베르가 술과 안주를 나르고 있었다. 멀리 무대 위에선 아직 꺼지지 않은 조명 아래, 배우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 레나는 안주를 오물오물 집어 먹으며 이젠 동료가 된 배우들과 웃음꽃을 피웠다.

그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던 레오는 오베르에게 종이와 잉크를 달라 부탁했다. 벽에 종이를 대고 빠르게 글씨를 남겼다.

“크세니아. 레나에게 이걸… 전해 주세요. 지금은 말고, 나중에 동생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됐을 때.”

편지는 두 통이었다. 하나는 레나의 것이고, 다른 하나에는 크세니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것도 받아주세요.”

돈 꾸러미. 크세니아의 손에 묵직한 주머니가 들렸다.

“이게 무슨 짓이죠?”

“레나를 돌봐주세요. 이게 제 부탁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죠? 설마 공주와 결혼할 때까지 맡아달라는 뜻인가요? 제가 그렇게 우스운가요?”

“아니요. 전 당신을…”

레오는 감정을 삼켰다. 분노한 크세니아에게 희미하게 웃어 보이고는

“당신을 믿어요.”

라 말하였다.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크세니아는 잠시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어두운 복도를 따라 사라진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뻔뻔한 인간!

하지만 레나에게 갈 편지까지 찢지는 못하였다. 레나는 저 낯짝 두꺼운 속물의 동생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아끼는 동생이자, 동료였다.

크세니아가 돌아섰다. 성큼성큼 무대에 올라가 “언니!” 어떤 빌어먹을 놈이 먹였는지 살짝 얼굴이 달아올라 있는 레나에게 편지와 돈 꾸러미를 건넸다.

“으응? 이게 뭐예요?”

크세니아는 말하지 않았다. 언니의 심상찮은 표정을 읽은 레나는 서둘러 편지지를 펼쳤다.

/ 사랑** 동생, 레나**.

** 미안*** *** *****. 오빠는 이제 **** ***. ** 읽고 ** **** 너도 ** ****, 공주님* *** * 오빠* *** * ****.

오빠는 *** 반드시 *** **, 크세니아 언니 말 * ** *****. ** 다시 만날 때까지 행복** **. /

아직 글을 잘 읽지는 못한다.

산티안과 동화책을 읽으며 배운 몇 가지 인사말과 ‘행복’, ‘공주’와 같은 단어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것으로 충분했다.

레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 언니. 이게 무슨 말이에요? 혹시 오빠가… 오빠가…”

떠났어요?

레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크세니아 언니의 당황한 표정을 지레짐작하고 뛰쳐나갔다.

오빠를 이렇게 보낼 순 없다.

“레나! 레나! 거기 서! 그런 게 아니야. 오베르 아저씨! 레나 좀 잡아줘요.”

크세니아 언니와 오베르 아저씨가 뒤쫓아왔다. 붙잡히면 오빠를 못 쫓아가게 할 것이라 생각한 레나는 뜀박질에 박차를 가했다.

허나 레나는 순식간에 따라잡혔고, 설상가상으로 출구로 이어지는 긴 복도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가로막았다.

꽃을 든 산티안 라우노가 레나의 앞에 있었다.

“레… 아니… 누나. 어디 가요? 왜, 왜 울어요?”

“티안, 저리 비켜.”

“산티안! 레나 잡아!”

“비켜줘. 제발. 나 빨리 쫓아가야 해. 오빠가… 우리 오빠가…”

산티안이 울먹이는 레나를 벽으로 밀쳤다. 복도 벽에 걸린 망토를 뜯어 레나의 어깨에 둘러주고는 양팔을 펼쳐 길을 가로막았다.

“가! 얼른!”

“너 이 자식이!”

산티안은 레나보다 어리다. 당연히 조그마한 소년이 거구의 오베르를 막을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는 오베르의 팔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밀려났으나, 뒤에서 온몸으로 매달렸다. 발꿈치에 맞아 코피가 흘렀지만, 오베르가 콰당 넘어지면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아오, 이걸 차 버릴 수도 없고.

산티안은 보스의 손자다. 아무리 오베르라지만, 차마 그를 걷어찰 순 없었다. 산티안이 지나치려는 크세니아의 치맛자락까지 잡아당기면서 레나는 극장 밖으로 달아나버렸다.

오빠를 쫓아, 검은 망토를 펄럭이며 노을 진 길거리로 사라졌다.

* * *

레오는 마차를 탔다. 왕성에 도착한 그는 마부에게 “미안하지만, 돈이 없다. 나중에 만나게 되면 꼭 보답하겠다.” 말하여 돌려보냈다.

씨발.

행여나 들릴세라, 마부는 작게 욕했고, 레오는 왕성 앞을 서성거렸다.

여길 들어가면… 살아 나오지 못할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레오는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각오를 다졌다.

공주가 내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때, 보았다. 그녀의 금빛 눈동자 너머로 무언가가 검붉게 일렁인 것을.

바보가 아닌 이상, 그게 무얼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공주는 매혹당한 인간이었고, 매혹을 건 당사자는 십중팔구…

왕이다.

재위 16년 차. 왕궁 심처에 틀어박혀 움직이지 않는 ‘카로만 드 타탈리아’ 왕은 사도임이 틀림없었다.

이제야 이해가 갔다.

평소 행실이 단정하기로 소문난 공주가 어째서 길버트 포르테와 키스했는지, 타티안 후작의 아들 ‘토턴 타티안’까지 건드렸는지. 또, 어째서 토턴 타티안이 더는 공주를 만나지 말라는 후작의 명을 거부하고 왕성을 계속 출입했는지…

레오가 떨어지지 않는 발을 들어 바닥의 돌맹이를 탁- 걷어찼다.

달아날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동생을 데리고 콘라드 왕국으로 도망치건, 아니면 이젠 레나를 지킬 힘도 있겠다, 산에 들어가 숨어 살건… 내 한 몸 살겠다고 마음먹으면 살아날 길은 많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레오 드 예리엘은 레오 덱스터를 떠올렸다. 모든 {이벤트}를 무시하며 행복을 좇았던 그도 결국 죽었다. 죽지 않고 살았더라도 레나와 결혼하며 엔딩을 맞았을 터였다.

그럼 모든 게 없었던 일이 된다. 행복했든, 그렇지 못했든.

레오 덱스터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할 수 없었다. 우린 이 게임이란 걸 끝내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하지만 민서. 내 생각엔 네가 틀린 것 같다.’

정말로 레나를 공주로 만드는 게 ‘진엔딩’일까. 그래야만 ‘클리어’란 게 되는 것일까. 전부터 의아했지만, 레오 드 예리엘의 생각은 달랐다.

– 아신을 모두 잡아 죽이는 것.

이것이 이 빌어먹을 게임이 원하는 목표인 것만 같았다. 이 게임을 만든 작자가 주신이라면, 확실하게 주신일 테니, 그가 바라는 것을 십자교회의 움직임으로 맞춰볼 필요가 있었다.

악신을 믿는 야만인들을 때려잡는 십자교회. 그렇다면 신은 민서에게 교회가 하지 못한 일을 맡긴 것이 아닐까 ─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데모니오스>의 아즈라 성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게 옳은 판단일까.’

머릿속으로 질문했으나,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 회차가 시작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고, 지난 회차에서 레오가 죽었음에도 민서는 희미해질 대로 희미해지고 없었다.

민서였으면… 아마 달아났을 거다.

어쨌거나 길버트 포르테와 공주가 키스하는 걸 막았고, 페테르 백작의 도움 없이도 에릭 왕자를 물리칠 방안이 남아 있으니까.

베르크 추기경을 납치해다가 에릭 왕자 앞에 던져버리면 된다.

하지만…

[ 업적 : 왕 2/7 ]

왕을 만날 기회는 드물다. 레나를 공주로 만들겠노라 한다면 이대로 달아나는 게 맞지만, 그건 다음 회차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레오 드 예리엘이 아까 걷어찼던 돌멩이를 쫓아갔다. 다시 탁- 걷어차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번엔 내 차례다.

죽는 건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난 민서가 없었으면 길바닥에서 죽을 운명이었으니까.

그는 되려 동생이 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연결고리를 끊어둔 민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레나는 극장 사람들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갈 터였다. 당장은 많이 슬프겠지만… 슬퍼하겠지만…

변명하려던 레오가 입을 다물었다. 또다시 홀로 남겨질 동생을 생각하니 그저 미안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못난 오빠를 용서해라. 다음에… 다음에는 꼭…’

레오는 각오를 다졌다. 팔 벌려 심호흡하고, 쪼그려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해 우울을 떨쳐버렸다.

이제 가자. 가서 알아낼 것 다 알아내고, 당당하게 죽자. 뭣 하나라도 남겨 놓아야지.

검집을 꽉 움켜쥔 레오가 걸었다.

그런데 왕성 정문을 향하는 그때, 누군가가 그에게 달려왔다. 레오가 돌아보니 거기엔 숨을 헐떡이는…

레브가 있었다.

[ 업적 : 다른 레오를 만남, 2/3 ]

“아아…”

레오의 눈에서 안개가 걷혔다. 잠시 멀거니 레브를 바라보던 왕자가 앞뒤를 건너뛰었다.

“레나는 어떻게 됐지?”

레오 드 예리엘의 금빛 눈동자가 총명하게 빛났다. 그는 자신의 차례가 끝났음을 깨닫고 미래를, 아니, 과거를 묻는 것이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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