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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6

175. 소꿉친구 – 들미자리풀

“…이만하면 먹을 만할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레오 드 예리엘은 본인이 끓인 스프 앞에서 머리를 긁적였다.

동생 레나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레브가 잡아 온 고기가 들어가 어지간해선 맛있어야 할 요리임에도 그랬다.

“어디 보자…”

레브는 끈적해진 스프를 한 입 맛보았다. 비린내가 나는 걸 확인하고,

“괜찮네. 하지만 물이 너무 적게 들어갔어.”

물을 부어 끓이면서 ‘들미자리풀’을 슬쩍 집어넣었다.

노상에서 마땅한 재료가 없기에 한 심폐소생술. 다행히 가을 향기를 간직한 풀 내음이 고기 비린내를 잡아주었다.

그놈의 손재주.

요리가 꼭 손재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레오 드 예리엘의 손은 뭘 해도 엉망이었다. 레나는 그걸 알고 있었는지 “잘 먹겠습니다~” 말하곤 극장에서 생활하는 동안 높아진 입맛을 내리눌렀다.

비린내를 잡았다지만, 그래도 맛은 없다.

들미자리풀은 대륙 남부에 흔하게 깔린 풀이었다. 원추형의 이파리가 예쁘고, 먹을 수 있으나, 이파리 안에 날카로운 심이 박혀 있어서 식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 심은 끓일수록 더 단단해졌다.

들미자리풀을 골라내며 스프를 먹던 레오가 한탄했다.

“…앞으론 내가 사냥하는 게 낫겠어. 레브 너보단 느리겠지만, 네가 모든 일을 도맡을 수는 없잖아.”

“괜찮다니깐.”

“아니야. 나도 그 정도는 해야지. 마차도 네가 모는데…”

레브는 어깨를 으쓱했다. 좋을 대로 하라는 제스쳐를 보이곤 냄비와 그릇을 챙겼다.

“어… 레브 오빠,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동생 레나가 발딱 일어났다. 괜찮다는 레브에게서 (스프가 좀 남은) 냄비를 빼앗더니 개울가로 영차영차 들고 가버렸다.

하지만 부지런한 레브는 또 다른 일감을 찾았다.

알아서 풀을 뜯으라고 풀어둔 ‘쿠스’를 데려와 마차에 메고는 잡풀이 묻은 몸을 털어주었다. 한 번 씻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풀었다.

“같이 가자.”

레오가 빨랫감을 가져왔다.

많지는 않았으나 갈아입을 옷도 많지 않았기에 기회가 있을 때 틈틈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레오는 점심을 준비하느라 만든 모닥불에서 잿가루를 긁어내 시냇가를 향했다.

– 히히힝!

하나뿐인 물통은 레오가 사용하고, 레브는 쿠스의 몸에 물을 끼얹었다. 왠지 전에도 이랬던 적이 있는 것 같았는데, 덩치 큰 흑마 ─ 쿠스는 까다롭게 굴지 않았다.

첨벙첨벙, 물통에 잿가루를 풀은 레오가 빨래하고 레브가 쿠스의 몸을 닦아주는 사이 레나가 다가왔다.

“설거지 다 했어. 뭐 도와줄 것 없… 꺄악!”

오빠 손에 들린 속곳을 발견한 레나가 달려들었다. 아직 잿물이 묻은 속곳을 빼앗더니 등 뒤로 감췄다.

“오빠 이게 무, 무슨 짓이야!”

“…뭐가?”

“아니 내 빨래를 오빠가 왜…”

멀뚱멀뚱한 레오의 표정. 무척이나 새삼스럽다는 표정이어서 레나는 얼굴을 붉혔다. 레브 오빠를 힐끗 곁눈질했으나 그도 똑같은 표정이었다.

‘오빠는 바보, 멍청이.’

해줄 거면 몰래 하던가, 이걸 왜 레브 오빠 앞에서 하고 난리야.

부끄럽게.

“빠, 빨래는 원래 내가 하던 거잖아. 저리 가. 내가 해서 가져갈게.”

“응? 네가 언제…”

“얼.른.”

아드득, 레나가 인상을 찡그렸다. 레브에게 보이지 않게 바짝 다가서서 눈썹을 한껏 치켜들었지만, 레오 눈에는 귀엽기만 했다.

레오는 레브에게 ‘얘 왜 이러는 거야?’ 눈짓을 보냈고, 레브는 어깨를 으쓱, ‘낸들 아냐?’ 돌려주었다.

레나의 성화에 레브와 레오는 개울가에서 쫓겨났다. 쿠스까지 덩달아 내쫓겨 세 수컷은 멀뚱멀뚱, 레나가 빨래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쪼그려 앉아 참방이는 동생의 모습이 애달프면서도 대견스럽다.

“…우리 동생 많이 컸네. 빨래도 할 줄 알고.”

“그러게. 전에는 카시아 누나가 해줬었는데… 크세니아가 잘 가르쳤나 보다.”

“…”

레오가 침묵했다. 그는 작별한 연인, 크세니아를 떠올렸고, 레브는 카시아의 마지막 모습을 회상했다.

쿠스는 당근 생각을 했다.

* * *

“다음!”

관문 앞에 오른 왕국으로 나가려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간간이 다음을 알리는 관문 수비병의 목소리가 들렸고, 레브와 레오는 아주 멀리서 마차를 세우고 작당 중이었다.

“좋아. 다행히 들어가네.”

“…조금 끼는데?”

“그래도 너니까 입지. 레오 덱스터였으면 못 입었어.”

“그야 그랬겠지.”

근위기사 제복을 입은 레브가 짧은 소매를 잡아당겼다. 레오 드 예리엘이 입었던 그 제복은 레브에겐 약간 작았다.

두 달 가까운 여정 끝에 레오 일행은 관문에 도착했다.

제법 느긋한 여행이었는데,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듣고도 불안했는지 레오 드 예리엘이 물어봤었다.

“이렇게 천천히 가도 되는 거야?”

“아마도.”

“난 이해가 안 된단 말이지. 아스타로트가 나한테 호감을 보였다고?”

말로 전달받은 사람과 ‘직접’ 경험한 사람의 온도 차이였다. 레브는 고개를 끄덕여 ‘왕을 만나본 적이 없는 레오’를 안심시켰다.

아스타로트(Astroth).

그 고대의 대공(大公)은 분명 레오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며 팔을 벌렸고, 매혹된 타탈리아 공주도 키스한 직후 “또 봐요.” 만남을 기대하였다.

레브도 왕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가 레오를 좋아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덕분에 이렇게 여유롭게 관문까지 올 수 있었다. 아스타로트는 레오의 손을 붙들어 그가 ‘신의 장난감’임을 알기 직전까지는 화를 내지 않았으니까.

또, ‘현재까지’ 레오 드 예리엘이 한 잘못이라곤 공주와 키스했다는 것밖에 없었다.

기사단을 출동시킬만한 일도 아니고, 공주를 만나러 왔던 아놀프 드 클라우스 왕자가 분노해 돌아가면서, 벨리타 왕국은 아스틴 왕국과 사이가 악화된 상황이라 기사단은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터였다.

물론, 아주 태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노엘’이라는 가짜 신분증이 들통났을 터라, 레오 일행은 최대한 남들의 시선을 피해 여행해왔다.

아마 수배령 정도는 내려졌을 거다. 전쟁과 큰 관련이 없는 근위기사단은 비록 출구는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왕궁의 비밀통로 구조를 알아간 수상쩍은 기사 ‘노엘’의 행방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터였다.

해서 관문을 통과할 때, 근위기사인 척해야 할 사람은 레오가 아니라 레브였다. 레오 드 예리엘은 그에게 이렇게 하면 될 것이다, 조언해주고는 마차에 올라 몸을 숨겼다.

– 따그닥.

연기 준비를 마친 극단, 아니, 레오 일행의 마차가 출발했다.

레브는 관문 앞에 늘어선 줄을 무시하고, 곧장 관문으로 마차를 몰았다.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관문 수비병들을 내려다보았다.

“추, 충성!”

“그래. 수고가 많다.”

“저어… 기사님, 죄송합니다만 잠시 정지해주세요.”

그대로 통과했으면 얼마나 편했을까마는, 병사들이 마차를 가로막았다. 그들은 무척이나 송구하다는 표정으로 굽신거렸고, 레브가 호통을 쳤다.

“감히! 이 마차가 네놈들이 막아서도 되는 마차인 줄 아느냐?”

레브는 얼굴을 붉혔다.

가장 작고 초라한 마차. 자기가 말해놓고도 너무 뻔뻔해서 양 뺨이 달아올랐으나, 정말로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 병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기사님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오나, 통행증이나 신분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신분증? 통행증? 근위기사에게 그런 게 왜 필요하단 말이냐.”

병사는 ‘아니- 당신이 근위기사인지 아닌지 우리가 어찌 알아.’라고 생각하였으나 진짜면 큰일이었기에 다시 허리를 굽혔다.

“현재 어떤 금발의 근위기사를 잡으라는 수배령이 내려져 있습니다. 절차를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라… 죄송합니다. 저희 입장을 헤아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웃기는군. 자네 눈에는 내 머리가 금발로 보이나?”

“아, 아닙니다! 그렇지는 않사오나 절차상…”

흥.

레브가 코웃음 쳤다. 아주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병사를 위축시키고는 마부석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움찔, 겁먹은 수비병의 헬멧을 잡아당기려는 찰나…

“바르트 경, 그만두세요.”

마차 창문이 열렸다. 화를 내려던 레브는 즉시 무릎 꿇으며,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공주님.” ─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공주님?! 병사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기겁했다.

창문으로 엄청나게 예쁜 여인이 보였다. 빼꼼 내민 고개가 여리여리하고, 입술은 열매처럼 고왔다.

병사는 절대로, 틀림없이 저분은 공주님이라 생각하고는 고개를 박았다. “고개를 드세요.”라는 촉촉한 음성을 견디지 못하고 감히 공주님의 얼굴을 다시 훔쳐보았다.

아름답다.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부시셨는지 눈을 찡그리는 것조차 우아해 보였다. 꽃잎같이 고운 손을 뻗어 내게 이리 오라 이르셨을 때는 심장이 덜컹거렸다.

“고, 공주님을 뵙습니다… 죄송합.. 니다. 저희가 감히 공주님의 행차를 몰라뵈고…”

“아니에요. 본인의 업무에 충실한 모습에 소녀는 무척 감동하였답니다. 여기 있어요. 이것이라면 제 신분을 증명할 수 있을 거예요.”

레나는 레오가 받아온 ‘다니젤라 타탈리아 대자공주(大姉公主)’의 패를 건네주었고, 그 황금빛 패를 받아든 병사는 황송함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

“미, 미천한 백성을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그럼…”

왕족을 만났을 때 병사는 어찌해야 하는가? 그딴 건 근무수칙에도 적혀있지 않아서 그는 최대한 공손하게 패를 돌려주려 하였다.

하지만, 공주님께선 받지 않으셨다.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무, 무엇이든 하명해주십시오.”

“저는 오른 왕국으로 가고 있답니다. 몰래요. 그러니… 제가 여기에 들렸다는 건 비밀로 해주시겠어요?”

“그, 그럼요. 절대 함구하겠습니다. 누구도 공주님께서 이 관문을 통과했다는 걸 알지 못할 겁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그의 이십일 년 인생에 이보다 숨 가쁜 날이 있었던가. 아름다운 공주님께서 두 눈을 찡긋여주자 유부남임에도 병사의 심장이 덜렁거렸다.

“오른 왕국 쪽에도 관문이 있다고 들었어요. 거기서도 이와 같은 일이 있을 것인데… 소녀가 타국의 병사들에게도 얼굴을 비춰야 할까요?”

“아, 아닙니다!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허락해주신다면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순찰을 돌며 안면을 익힌 친구들이 있으니 제게 맡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레오 일행은 관문을 통과했다.

오른 왕국의 관문에서는 레브가 ‘노엘’의 패를 보이며 자신이 전령임을 자처하였고, 병사는 마차 수색이 필요 없음을 강조해주었다.

그는 마차 안에서 레오가 “우리 동생 연기 솜씨가 대단한데?” 칭찬해주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 * *

“레브, 이제 어쩔 생각이야?”

오른 왕국에 들어서고, 조수석에 앉은 레오가 물었다. 레나는 마차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마차를 몰던 레브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가이단 후작을 먼저 만나려고. 야만인 부족들을 끌어들일 생각이지만, 후작을 매혹해 충성을 받아내는 게 우선이겠지.”

“매혹?”

“응. 이 팔찌로.”

레브의 팔에는 붉은 구슬 두 개가 남은 {바르바토스의 팔찌}가 있었다. 레오의 팔에도 똑같은 것이 있었지만, 그의 팔찌 구슬에는 색깔이 없었다.

“글쎄…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왜?”

“그걸로는 후작의 충성심이 오래가지 못할 거야. 네가 더 잘 알겠지만, 매혹은 영구적이지 않아. ‘주종 관계’ 업적도 그렇고.”

[ 업적 : 주종 관계 – ‘0’, 충성심이 흔들리지 않는 한, 충성을 맹세한 자들은 레오를 믿고 따릅니다. ]

“…그렇지.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 야만인들을 아무리 많이 모아봤자 귀족들의 도움이 없으면 반란은 불가능해.”

“맞아. 하지만… 나라면 후작을 매혹하지 않을 거야.”

“그럼?”

레오 드 예리엘이 미소지었다. 뭔가 좋은 생각이 있는데, 이번 시나리오의 주인공인 레브의 선택을 방해하기 싫다는 기색이었다.

“괜찮으니까 알려줘.”

“좋아. 나라면… 후작 부인을 매혹하겠어.”

“뭐?”

순간 레브는 이 얼굴만 번지르르하게 생긴 친구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시녀에게서 들었던 가이단 후작가의 비사가 떠올랐다.

“아.. 맞아. 가이단 후작 부인은…”

지난 소꿉친구 회차에서 들었다. 가이단 후작가의 후계자 ‘하브니 가이단’은 조랑말에게 차여 죽었다.

가이단 후작은 십자교회와 관련된 저택의 모든 물건을 때려 부쉈고, 후작 부인은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멍하니 허공만 응시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나마 반응하는 사람이 그녀의 남편과 딸 뿐이었다는데, 그들을 보거들랑 왈칵 울어버리며 기절했기에 후작 부인은 오른 왕국 북동부에 있는 가이단 영지에서 요양 중이었다.

“그래. 나라면 후작 부인에게 매혹을 걸겠어. 기억나? 매혹당한 하르베이 가이단 후작은 네게 아들의 방을 내줬었지. 어쩌면… 후작 부인도 너를 아들이라 생각할 수도 있어. 그러면 정신을 차리겠지.”

감탄한 레브는 자기도 모르게 마차를 세웠다. 내심 걱정이 많았는데, 그렇게 한다면 후작을 일시적으로 매혹하는 것보다 훨씬 큰 호감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아무리 못해도 후작 부인을 치료해준 은인으로서 후하게 대접받을 것이다.

“그러자. 그게 훨씬 낫겠다. 고마워. 정말 좋은 생각이야.”

레브가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레오 드 예리엘은 아직 조언해주고 싶은 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테오빅 패밀리의 무기 상단이 곧 이쪽으로 온다는 것도 잊지 마.”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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