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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7

176. 소꿉친구 – 시에라 가이단

가이단 가문의 영지는 구릉(丘陵, 땅이 비탈지고 조금 높은 곳) 위에 있었다.

남서쪽 바닷가를 따라 로드란 산맥이 자리하고, 대륙 중앙부로 갈수록 점차 고도가 낮아지는 오른 왕국의 특성상, 벨리타 왕국과 가까운 가이단 가문의 영지 주변에는 산보다는 언덕이 많았다.

그리고 그 언덕들은 울긋불긋했던 단풍마저 다 떨어진 수림(樹林)으로 빽빽하였는데, 가이단 영지의 밥벌이였다.

– 히이잉! 푸르르르륵.

가파르진 않지만 꾸준히 경사진 길을 따라 마차를 끌고 올라선 쿠스가 기분 좋게 투레질했다. 두꺼운 목으로 땀을 흘리며 우쭐, 뒤돌아보는 것이었다.

“고생했어.”

– 히히힝?

맨입으로?

“당근은 도착해서 줄게. 일단은 좀 더 가자.”

레브가 채찍으로 쿠스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쿠스는 제 갈기를 불만스럽게 흔들었으나, 마차를 다시 성실히 끌어나갔다.

이내 도착한 영지.

언덕 위, 소박한 영주성을 중심으로 세워진 가이단 영지는 벌목과 제재(製材)를 생업으로 삼은 영지답게 곳곳에 원목이 쌓여 있었다. 상당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고, 일부는 제재(Sawing)된 상태로 건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가 가장 바쁜 시기다.

작업에 방해가 될 눈이 아직 내리지 않았고, 낙엽을 떨군 나무들이 땅속 수분을 적게 흡수하는 때여서 벌목하기에 최적이었다.

레브는 인부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원목을 가득 실은 수레가 오가는 영지를 가로질렀다.

“하나! 후욱, 둘! 후욱, 하나!”

그때, 지나치는 제재소에서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두 청년이 커다란 원목 하나를 놓고 기다란 톱을 눕혀 반으로 가르는 중이었다.

레브는 어딘가 낯익은 그들을 잠시 바라보았으나, 원목을 다 내린 수레가 길을 비켜주면서, 쿠스가 마차를 끌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레나, 레오. 도착했어.”

레브가 마차를 두드렸다.

영주성이 코앞이었다. 안에서 준비를 마친 레오와 레나는 마차에서 우아하게 내렸다.

영주성을 지키던 경비병은 고귀해 보이는 남매를 멀거니 바라보다 물었다.

“…누, 누구십니까?”

레나와 레오는 입을 열지 않았다. 시종을 자처한 레브가 말했다.

“총관을 불러 주시오.”

다니젤라 타탈리아 공주의 패.

경비병은 레브가 보여준 게 무엇인지 몰랐으나 대단히 높으신 분이 행차하였음을 깨닫고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윽고, 레오 일행은 이곳 가이단 영지를 관리하는 총관을 만났다.

총관은 예의를 차리면서도, 미심쩍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다니젤라 공주님?’

나이 지긋한 총관은 다니젤라 공주를 알고 있었다.

후작 부인을 따라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수도에 있는 저택에서 일했고, 전대 가이단 후작까지 모셔본 인물이었다. 옛날 큰 화제가 됐던 ‘다니젤라 드 로그넘’ 공주를 모를 턱이 없었다.

하지만 총관은 모르는 척 남매를 응접실로 들였다. 추워진 날씨를 언급하며 따뜻한 차를 권하였는데, 그의 머리는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저들의 아카이아 제국 황실의 상징, 금빛 눈동자만을 믿고 사기를 치는 협잡꾼들일까? 아니면 벨리타 왕국으로 시집간 다니젤라 공주님께서 보낸 전령일까?

아니지, 그랬으면 진작 말했겠지.

총관을 더 헷갈리게 만드는 건 그들의 상이한 태도였다.

태연한 척하고 있으나 찻잔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눈동자를 불안하게 굴리는 ‘자칭’ 공주와 자신을 밝히진 않았으나 진짜 왕족인 것 같은 품위를 보이는 청년…

총관은 자신이 아는 왕족의 계보를 훑었다.

오른 왕국에는 이만한 나이의 왕족 남매가 없다. 그건 콘라드 왕국도 마찬가지고, 벨리타 왕국과 제롬 신성왕국에는 있다고 들었으나 금발이 아니었다. 설마 북부의 야만인 왕족이 예까지 내려왔을 리는 없고.

‘아이셀 왕국?’

총관의 기억이 마법 왕국에 닿았다. 그 대륙 동부의 왕국에는 ‘엘리카 이사도라’ 공주와 ‘오스카 드 이사도라’라는 왕자가 있었다. 그들은 금발에 금안(金眼)이었다.

총관은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귀빈을 모심에 허술함이 있어 죄송합니다. 연락을 주셨으면 미리 준비해 놓았을 것인데… 혹시 더 도착할 인원이 있으십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그렇군요. 조촐한 여행을 즐기시는가 봅니다. 먼 길을 오셨을 텐데… 다니젤라 공주님께서는 많이 피로하시겠군요.”

레나는 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총관의 눈에 짙은 의심이 깔리려는 순간 레오가 입을 열었다.

“이쪽은 다니젤라 타탈리아 공주가 아닙니다.”

“그러십니까?”

단답한 총관은 기다렸다.

곧 밝혀질 정체가 예상한 것과 다르거든 당장 기사를 불러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줄 생각이었다.

허나 이 수상쩍은 사내의 답변은 그의 예상을 한참 빗나가는 것이었다.

“저는 레오 드 예리엘이라 합니다. 여기는 제 동생, 레나 드 예리엘입니다.”

총관은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죽은 거로 알려진 왕자와 공주. 그들도 금발에 금안이라 들었음을 기억해내고는 안색을 고쳤다.

“…믿기 힘들군요. 그럼 이 다니젤라 공주님의 패는 무엇입니까?”

“그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벨리타 왕국에서 숨어지내다 막 오른 왕국에 당도하였습니다. 하르베이 가이단 후작님을 뵙고 싶습니다.”

총관은 이건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허나 타국의 왕자가 부른다고 오른 왕국의 대귀족, 가이단 후작이 냉큼 달려와야 할 이유도 없었다. 이들이 교묘한 사기꾼일 가능성도 아직은 배제할 수 없었으므로 총관은 판단을 유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가이단 후작님께 연락을 넣겠습니다. 방을 마련해드리지요. 며칠 이내로 답신이 돌아올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이단 후작 부인께서 여기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손님으로 묶게 된 이상, 안주인께 인사를 드리는 게 도리가 아닐까 싶네요.”

총관이 공손하게 고개 숙였다.

“…죄송합니다. 후작 부인께서는 투병 중이십니다. 손님을 맞이할 형편이 못 되셔서 제가 사죄드리겠습니다. 부인께서는 이해하실 겁니다.”

“그렇다면 저도 실례하겠습니다.”

레오가 마주 인사했다.

유감을 표하는 동작을 섞어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예법을 보였는데, 총관은 그 예법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그가 다니젤라 공주님의 도움을 받았다는 걸 믿어버리고야 말았다.

그렇지. 다니젤라 공주님은 시집가셨지만, 결혼하지 못하셨으니까.

옛날, 벨리타 왕국의 ‘크메안 드 타탈리아’ 왕자에게 시집갔던 그녀는 소박맞았다.

후계자로 선택받지 못함에 실망한 1 왕자는 결혼식 전날 돌연 사제가 되겠다며 십자교회로 떠나버렸고, 다니젤라 드 로그넘 공주는 타국에서 길을 잃었다.

오른 왕국과 벨리타 왕국 간 화평의 증거가 되어야만 했기에 그녀는 결혼하지 않았으나, ‘다니젤라 타탈리아’가 되어 조용히 늙어갔다.

그런 분과 죽은 줄로만 알았던 콘라드 왕국의 왕자, 공주의 만남이라니. 그건 지나치게 극적인 일이어서, 총관은 되려 납득이 되었다.

그는 왕자와 공주, 그리고 호위로 보이는 청년에게 방과 시녀를 하나씩 배정해주었다.

그리고 가이단 후작에게 이 기묘한 사건을 전하고자 교회를 향하였는데, 통신을 마치고 영주성으로 돌아왔을 때는 정말이지 믿기 힘든 일이 벌어져 있었다.

[ 업적 : 시에라 가이단의 마음을 녹인 남자 – 시에라 가이단에게 미약한 호감을 얻음. ]

“오랜만… 이라고 해야 할까요? 고생이 많으셨어요.”

아들을 잃고 무려 7년간 넋을 잃었던 후작 부인이 그를 온전한 정신으로 맞이하는 것이었다.

* * *

내가 공주라는 사실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오르빌을 떠나온 날, 나는 마차에서 “이 편지는 뭐야. 날 두고 떠나려 했단 말이야?”로 시작된 투정과 질문을 쏟아내었다.

오빠는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우리의 신분이 본래 왕족임을, 그리고 내가 공주임을 강조하였다. 편지에 ‘공주’라 쓴 것은 내 신분을 알려주려 한 것이었다고.

도무지 믿기 어려웠고, 여전히 아리송하지만, 이곳에 온 이후로 서서히 실감이 나고 있었다.

“공주님. 일어나셨어요?”

기지개를 켜기 무섭게 따뜻한 세숫물이 앞에 놓였다. 자신을 ‘마리사’라 소개한 아주머니는 내 입술에 연지를 바르고, 오늘은 머리를 땋아주겠다고 했다.

나는 “감사합니다.” 말하곤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에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렸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필요 없는 아침. 갖은 배려가 넘치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단장을 마친 레나는 예쁜 옷이 구겨질세라 조심조심 걸어 식당을 향했다.

“어머나, 오늘은 머리를 땋으셨네요. 잘 어울리세요.”

식당에는 수척한, 그럼에도 고상한 중년의 부인이 나와 있었다. 레나를 기다렸는지 그녀의 접시는 아직 비어 있었다.

달그락-

열댓의 시녀가 보는 가운데 시작된 식사시간. 음식은 늘 그랬듯 환상적이었지만, 레나는 무언의 압박을 느꼈다. 누구도 탓하지 않았으나 시녀가 내려놓은 포크의 위치를 바로잡아 줄 때마다, 자신이 무언가를 계속 실수하고 있음을 알았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고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

후작 부인이 살포시 미소지었다. 엉터리로 식사하는 공주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나 공주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자리를 옮기지 않으시겠어요? 제 몸이 안 좋아서… 식탁에서 밥을 먹기가 어렵네요.”

후작 부인은 레나를 이끌고 샬롱을 향했다. 푹신한 소파에 공주님을 앉히고, 맞은편에 앉아 시녀들에게 ‘퐁드르(fondre)’를 준비하라 일렀다.

한입 크기로 썰어둔 고기나 과일, 빵 따위를 녹인 치즈에 찍어 먹는 음식으로 딱히 정해진 식사 예법이 없었다.

이렇게 탁자에 둘러앉아 간식처럼 먹는다면 더욱 그렇다.

“입맛에 맞으신가요?”

“네. 맛있어요.”

어떤 압박이 사라졌다.

레나는 그제야 맛을 느끼며 배를 채웠고, 후작 부인은 간단한 다과와 차를 대접하며 말했다.

“몸이 나으면 제가 요리를 해 드릴게요. 아직 잘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옛날엔 종종…”

후작 부인의 말이 끊어졌다.

죽은 아들이 떠오르면서 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으나 숨을 가다듬었다. 꼭 비슷한 또래의, 늠름하게 성장한 아들 같은 청년이 다독여준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종종 요리하곤 했지요. 제 하나뿐인 취미였답니다. 공주님께서도 어떤 취미가 있으신가요?”

“네. 전 연극을 좋아해요.”

레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무대 위에서 자신을 잊고 다른 사람이 됐던 경험과 성녀가 됨과 동시에 사라지는 아즈라를 향해 힘껏 소리친 기억, 잠시간의 정적 끝에 쏟아졌던 박수갈채가 그녀를 당당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어느새 재잘재잘, 본인이 연극을 했던 것을 떠들고 있었다.

공주님이 연극 관람을 좋아하시는가 보다 생각했던 후작 부인은 놀란 표정이었다. ‘역시… 평범하게 살아오진 않으셨구나.’ 생각하고는 경청하는데, 의아한 점이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공주’로서의 자각이 없었다. 마치 최근에야 자신이 공주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 같은 뉘앙스가 풍김을 후작 부인은 알아차렸다.

아무리 7년을 몸져누워있었다 한들, 그녀는 귀족이다. 평생을 냉혹한 귀족 사회에서 살아왔고, 지체 높은 가이단 후작가의 안주인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하지만 이 예쁜 아가씨에게 어떤 악의도 없음은 자명했다. 후작 부인은 결국 아리송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사연이 있나 본데…’

한 달 이내로 남편이 영지에 도착한다. 설마 남편이 날 깨워준 은인들을 해코지하지는 않겠지만, 무슨 일인지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이 순진한 아가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으니…

후작 부인은 ‘그 청년들’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공주님을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근 일주일 만에 상처투성이로 돌아온 레오, 레브를 앉히고 질문을 던졌다.

“당신들은 누구죠?”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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