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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7

176화.

난 이제까지 돈을 벌기 위해 투자해왔을 뿐이다.

그로 인해 사회에 끼치게 될 영향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런 차원을 완전히 넘어섰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세계의 운명이 걸려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왜 나에게? 난 이제 겨우 20대일뿐인데.

“빅원이 온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어째서 그게 올해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모한 교수 외에도 빅원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이들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근시일 내에 일어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봤다.

재난이란 그 규모만큼이나 발생시기가 중요하다.

내가 알아낸 시기와 맞아든 건 그가 유일했다.

“그에 대한 대답을 하려면 먼저 할머니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군.”

사실 그가 인디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그의 친할머니가 정말로 인디언이기 때문이다.

모한 교수의 할아버지는 인류학자로,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생태를 연구하는 일을 했다. 원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은 현재 보호구역에서 근근이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연구 과정에서 한 인디언 여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가족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했다.

즉, 겉보기에는 평범한 백인처럼 보여도 모한 교수에게는 4분의1쯤 인디언의 피가 섞여 있는 셈이다.

“할머니의 조상들은 대대로 인디언 주술사였네.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께서는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네.”

“어떤 얘기였나요?”

“원주민들의 신화, 역사, 문화, 삶…… 그리고 이 땅에 대한 얘기였지. 할머니께서는 입버릇처럼 이 땅에 큰 재앙이 닥칠 거라고 하셨고, 그 시기는 올해 9월이라 말씀하셨네.”

“예?”

나와 택규는 깜짝 놀라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택규는 입을 벌리며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내 표정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다.

난 스스로 생각하기에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다.

당연히 초능력이나 미신 같은 것은 믿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나한테 믿을 수 없는 능력이 생겨났다.

그러자 이러한 의문이 생겼다.

어쩌면 다른 누군가에게도 비슷한 능력이 있지는 않을까?

우리의 표정을 보고 오해했는지 모한 교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네.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본 결과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된 거지.”

어떻게 보자면 결과를 정해놓고 그에 맞는 근거를 찾는 연구를 한 셈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한 것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마 모한 교수가 지진학자가 된 것도 할머니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혹시 할머니를 한 번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모한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15년 전에 돌아가셨네.”

“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모한 교수가 60대니, 그의 할머니가 아직 살아계실 리 없다.

돌아가셨다고 하니 정말로 그녀가 나와 비슷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건지 아닌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나에게 캘리포니아를 떠나라는 유언을 남기셨네.”

그녀가 정말로 지진이 일어날 것을 예지했다면, 손자에게 피하라고 경고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어째서 아직 이곳에 계신 건가요?”

“캘리포니아에 수많은 사람들을 놔두고 나 혼자 도망쳐서 뭐하겠나?”

“그렇군요.”

모한 교수는 웃음을 지었다.

“뭐, 말은 이렇게 해도 여기는 비교적 안전한 편이네. 위험한 건 샌프란시스코지.”

난 내가 보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진 것은 그곳이 진원지에서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그 주변 지역 역시 피해를 입겠지만,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형태는 아니겠지.

모한 교수는 환태평양 조산대에서 일어나는 지진에 대한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예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주력했다.

지진은 10초만 먼저 알려도 인명피해의 90퍼센트는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진짜 대지진이 일어나면 10초로는 어림도 없겠지만.

“관련 연구는 계속 되고 있나요?”

캐리가 재빨리 말했다.

“현재 연구는 중단되었어요.”

난 당황했다.

“어째서요?”

“주정부의 지원금이 끊겼거든요.”

“…….”

역시 세상을 움직이는 건 돈이구나.

“돈만 있으면 연구를 계속 할 수 있겠네요.”

“그럼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전 돈이 많으니까요.”

난 모한 교수와 캐리를 보며 말했다.

“앞으로 연구자금은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지원할 테니, 돈 문제는 신경 쓰지 마시고 바로 연구를 재개하세요.”

캐리는 뛸 듯이 기뻐했고, 모한 교수 역시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로 인해 앞으로 겪게 될 일을 안다면, 이렇게 좋아서 기뻐하지만은 못할 거다. 하지만 그걸 이 자리에서 바로 얘기해줄 필요는 없겠지.

우리는 권위 있는 전문가를 만났고 그의 주장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믿고 따를 생각이다.

물론 사람들은 내가 괴짜나 사이비 교수에게 속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는 앞으로 내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 * *

얘기가 끝난 후 우리는 연구실을 나왔다.

일단 예언자(?)는 확보했으니,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해결되었다.

난 회사에 전화해 바로 연구자금을 집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말 한마디에 1차로 100만 달러가 칼텍으로 송금되었다.

이어서 임진용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은 한밤중이지만, 다행히 바로 통화가 연결되었다.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임진용 회장은 반갑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미국에 출장을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일이 좀 있어서요.”

난 바로 본론을 꺼냈다.

“혹시 엔폰Z 출시일이 언제인지 알고 계신가요?”

서성전자는 프리미엄폰 시장에서 엔플과 경쟁하고 있다. 그런 만큼 경쟁사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9월 말에 출시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한 날짜는요?”

[그건 저희도 아직 모릅니다. 출시일에 대한 정보는 극비사항입니다. 아마 엔플 측에서는 제품발표 때나 공개할 겁니다.]

보통 제품발표 후 일주일 안에 출시가 이뤄진다.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임진용 회장은 의하다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타사 스마트폰 출시일을 궁금해 하니 이상하기도 하겠지.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꼭 필요해서 그러니 부탁 좀 드릴게요.”

다행히 그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확인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엘리.

전화를 받자마자 그녀가 물었다.

[진후 지금 칼텍이에요?]

엘리의 말에 난 깜짝 놀랐다.

“어! 어떻게 알았어요?”

[칼텍 학생 한 명 페이스노트에 사진을 올렸어요. 진후가 자신의 학교에 왔다구요. 기사도 몇 개 떴어요. OTK컴퍼니 CEO 칼텍 방문이라고.]

“아…….”

무슨 파파라치도 아니고.

[진후가 MIT보다 칼텍을 먼저 간 걸 놓고, 지금 MIT 학생들과 칼텍 학생들이 댓글로 싸우고 있어요.]

“…….”

대체 왜?

[그런데 칼텍에는 무슨 일로 간 거예요?]

“만날 사람이 좀 있어서요. 그보다 엘리에게 할 얘기가 있는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빨리 말하는 편이 좋겠지?

[뭔데요? 말해 봐요.]

“여름휴가 말이에요. 미안하지만, 미뤄야 할 것 같아요.”

잠시 후, 엘리가 물었다.

[어째서요?]

“일이 좀 생겼어요.”

충격이 큰지 엘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휴가 간다고 그렇게 들떠있었는데…….

[중요한 일이에요?]

“예. 많이요.”

잠시 후, 엘리는 애써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히잉, 그럼 어쩔 수 없겠네요. 대신 그 일 끝나면 꼭 휴가 가겠다고 약속해요.]

“약속할게요.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해요.”

[한국에는 언제 돌아와요?]

“내일 바로 출발할 거예요.”

난 현주 누나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우리는 다시 다섯 시간을 달려 실리콘밸리로 돌아왔다. 그저 왔다갔을 했을 뿐인데, 하루가 다 지나갔다.

“힘들어 죽겠네. 밥부터 먹자.”

우리는 호텔에 주차를 하고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빌딩에는 불이 켜져 있고, 도시는 북적거렸다.

밤이 되자 더욱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다.

난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모자를 눌러쓰고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식당 안에는 여러 인종들이 뒤섞여 자유분방하게 대화하고 정보를 교류했다.

이러한 다양성과 연결성이 이 도시가 가진 힘이겠지?

식사가 준비되는 사이 맥주가 먼저 나왔다.

택규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난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그걸 이제부터 생각해봐야지.”

* * *

어디에도 통보하지 않았지만, 내가 실리콘밸리에 왔다는 사실은 다 알려졌다. 여기저기서 만남요청이 쇄도했다.

기업가, 투자자, 정치인 등등.

그들을 다 만나려면 한달은 이곳에서 머물러야 할 것이다.

난 적당히 양해를 구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돌아가는 내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초대형 재난을 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난 다시 책을 훑어보았다. 모한 교수는 책 전반에 걸쳐 빅원의 위험성을 얘기하며, 정부의 대책을 주문했다.

그중 핵심적인 사안은 진원지에 가장 가까운 위험지역 인구의 대피, 이재민 수용시설 건설, 즉각적 지원이 가능한 구호물자 비축, 구조대책 수립 등이다.

난 열 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미리 인쇄해온 자료들을 검토하며, 일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그리고 공항에 도착할 때쯤 결론을 내렸다.

“돈이 필요해.”

“얼마나?”

“아주 많이.”

그동안 돈 나갈 곳은 많았는데, 들어오는 건 별로 없었다. OTK게임즈에서 분기별로 배당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필요한 액수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다행히 그 사이 지분을 가진 기업들의 가치가 많이 올랐다. 카로스 하나만 해도 100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받는다.

인천공항에 내린 우리는 차를 타고 강남으로 향했다. 그리고 OTK컴퍼니 빌딩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골든게이트 빌딩을 들렀다.

지사장실로 올라가자 현주 누나가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출장은 잘 다녀왔어?”

“엘리는요?”

“잠깐 지점에 갔어. 금방 돌아올 거야.”

택규는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내밀었다.

“선물 사왔어 누나.”

그래도 이 와중에 누나 선물한다고 면세점에서 던힐 1밀리 두 보루를 샀다. 애연가에는 이 이상 좋은 선물이 없다.

현주 누나는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잘했어.”

우리는 소파에 앉았다. 비서가 커피를 내왔다.

“많이 바빠요?”

“늘 그렇지.”

현주 누나는 바로 면세담배를 뜯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바쁘신 건 알지만, 일 하나 부탁드릴게요.”

“무슨 일?”

“채권을 발행하려구요.”

기업이 현금을 마련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주식매각이고, 다른 하나는 채권발행이다.

채권은 마치 예금처럼 약정된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원금보장이 안 되는 만큼 회사가 망하면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호성저축은행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때문에 발행하는 회사의 신용도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현주 누나는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회사채를?”

“예. 달러표시에 만기는 3년 생각하고 있어요. 이율과 지급방식 등은 누나가 정해주세요.”

“OTK컴퍼니 회사채면 수요가 꽤 있을 거야. 금액은 얼마나 생각하는데?”

“200억이요.”

내 말에 현주 누나는 깜짝 놀랐다.

“200억 달러? 원이 아니라?”

“달러표시라고 했잖아요.”

말이 좋아 200억 달러지, 이 정도면 회사채가 아니라 국채 발행규모다.

현주 누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쓰려고?”

“투자할 데가 있어서요.”

“투자?”

난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미래에 투자를 해보려구요.”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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