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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8

178화 사퇴하세욧의 여파

정치의 기본 골자는 상대방을 끌어내리는 것이다.

정권탈환이라는 미명하에 온갖 짓거리가 용납되는 복마전.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대다수가 더럽고, 치사하며 또한 집요하다.

[안동길 행정부! 만신전산 드론 무기체계 수출 성공! 올해 세계 방산수출순위 3위 달성하나?]

[K-방산의 성공신화. 만신전과 함께하다.]

[일본이 부러워하고 러시아가 질투하며 미국이 제발 와달라고 하는 만신전. K-농업과 협동발전계획 발표!]

그런 의미에서 제1야당의 입장에서 볼 때, 만신전은 상당히 눈에 거슬리는 집단일 것이다.

안동길 대통령과 오강혁 한국 헌터협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날이 가면 갈수록 고공행진을 이루고 있는 만신전의 위세는 곧 안 행정부의 치적이기도 했으니까.

“저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건드려볼 구석은 많긴 한데······.”

물론 야당의 입장에서 현 정권에 협조적인 만신전을 물어뜯고 싶은 건 당연한 사실.

하지만 내부의 반응이 심상찮다.

사실상 농업계는 데메라 여신의 신도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일반 시민들도 만신전으로 개종한 사례가 무서울 정도로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만 만신전 신도가 벌써 삼백만입니다. 생긴 지 반년 좀 넘은 종교가 벌써 삼백만이에요. 일본도 비슷한 숫자고 전세계를 합치면 천만을 넘긴지 오래예요.”

만신전이 곧 한국 최대종교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이대로 십년만 지나도 세계 최대종교가 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정도.

그런 와중에 대만에서 만신전의 불법적인 전투행위와 불법 무기소유가 발각됐다.

-와, 뭐임? 대만에 악마가 저리 많았나?

-가스 테러 후 타락자들 핀포인트 저격 ㅋㅋ 여윽시 라이온하트 폐하시다

-야피경 슈퍼 로봇병기 뭔데? ㅋㅋㅋㅋ

-불카누스 미쳤네. 대악마 둘을 걸레짝으로 만든 거 보소.

-전쟁신 제단에 긴급 기도회 공지 올라왔는데 이거 뭐냐?

안 행정부가 그러했듯 야당 또한 만신전의 행위에 경악했다.

타국에서 불법 전투라니? 고위관료를 한둘도 아니고 행정부를 갈아치울 만큼 죽였다.

물론 대다수는 대만 시민들에 손에 의한 쿠데타지만, 개중에는 외국에서 온 장관이나 대사도 있었다.

물어뜯기 딱 좋은 사례란 것이다.

“이 기회에 만신전 대표에서 그 이계인을 끌어내리면?”

“공격할 거리는 넘칩니다. 탈세 문제도 심각하고, 내부에 인권 문제도 공공연한 사실이에요. 무엇보다 이번 프랑스 장관까지 죽은 일로 외국에서 항의도 있고요.”

“만신전을 끌어내려 여당 지지율을 깎아내려야 합니다!”

물론 만신전이 벌인 일들이 오직 악마를 쓸어버리기 위한 정의에서 비롯된 일임을 그들은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의 세계에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전세계의 암을 치료할 수 있는 기적의 약이 발표되어도 그게 상대쪽 당에 이득이 된다면 묻어버려야 하는 것이 당파정치다.

오강혁 협회장을 시작으로 현 정권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성장한 만신전은 앞으로도 정권탈환에 방해가 될 것이다.

“여당에는 협조하는 척하면서 당일에 몰아붙이죠.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헌법소원까지 가면 반드시 이깁니다!”

라고 생각했던 때가 그들에게도 있었다.

* * * *

“············.”

“············.”

의원의 폭탄 발언에 청문회장이 경악으로 놀란 채 굳어버렸다.

“좆됐다!”

그 영상을 대통령실 청사에서 시청하고 있던 안동길 대통령은 육성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저, 저 미친년 저거! 저거 왜 저러는 거야!”

이번 만신전 청문회는 여야가 합의를 이룬 사항이었다. 적당히 추궁하고 문화 상대주의 뭐 이런 거로 대충 넘어간 뒤 주의와 협력을 구하는 훈훈한 전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 안희옥 의원입니다.”

안희옥. 야당의 싸움개.

정권의 물어뜯을 구석이 있다면 어디서든 싸움을 걸어오는 투견이다.

“아니, 근데 왜 저 지랄을 하는 건데! 서로 합의 봤잖아! 만신전은 안 건들기로! 사전에 예법 교육도 따로 했잖아!”

야당 이놈들이 뒤통수를 친 건가? 그러고 보면 주변의 야당 의원들 반응이 심상찮다.

“청문회 중단해! 당장 중단해!”

“시, 실시간 중계 중입니다, 각하!”

“이런 망할!”

안 대통령은 당장 야당 대표에게 항의성 전화를 걸었지만, 실시간 중계로 이어지는 청문회를 중단시킬 순 없었다.

* * * *

“······.”

레온은 자신에게 무례한 언사를 내뱉은 의원을 향해 시선을 찡그렸다.

“이름을 말하라, 여자.”

“지금 제게 여자라고 한 겁니까? 사죄하세요! 그리고 청문회장입니다! 당장 일어서지 못하겠습니까?”

“맞습니다! 어디 신성한 국회 청문회장에서 그게 무슨 태도입니까!”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그들은 레온을 위해 마련된 특별상석을 지적하고 나섰다.

레온의 자리는 여타 청문회장과는 달리 계단을 만들어 상석을 배치하고,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권위적인 위치에 있다.

청문회장까지는 들어가겠지만, 거기에는 레온에 대한 존중과 합의가 들어갔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적어도 안동길 행정부는 레온이 가진 왕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

그들이 만신전이나 라이온하트를 존중하는 것 이전에, 레온이라는 존재의 힘을 존중하기에.

이런 면에서 보면 현 한국 정부는 충분히 합리적이다. 그들은 실용적인 노선을 취할 줄 알았고, 힘에 대한 존중은 곧 레온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쭉 그래왔기에 레온은 그들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았다.

‘개개인의 폭주는 아닌 것 같군.’

혹은 제3세력의 사주일 수도 있다. 더 멀리 볼 것도 없이 여당을 견제하려는 야당의 꼼수일 수도 있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볼 때는 그렇다. 저들 입장에선 이번 기회를 놓치기 싫겠지.

“사퇴하실 겁니까!”

“함부로 언성을 높이지 마라. 이곳은 시장바닥이 아닌 어전이다.”

“어전? 이봐요, 레온 증인.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제가 묻는 거에만 답변하세요!”

-콰르릉···!

그때였다. 청문회장 바깥에서 요동치는 번개소리. 창창한 마른 하늘에 내리치는 번개는 한두 번의 이상현상이 아니었다.

-콰르릉! 쾅쾅!

갑자스런 번개는 기어코 청문회장이 있는 국회 건물까지 내리꽂혔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온 건물이 요동칠 정도였다.

“서, 설마 울티마 신이?”

청문회장에는 만신전의 신도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 분노한 신성의 존재가 하늘과 천둥의 신이라는 걸 깨달았고, 몇몇 신실한 신도들은 번개 속에 심어진 신의 분노한 언사를 들었다.

[감히! 이 울티마의 천둥왕관을 공유하는 사자심왕을 모욕하느냐!!]

천둥의 신이 분노하였다. 그리고 분노한 신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어? 태, 태양이 이상반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천체의 권능을 가진 심판자. 태양의 신이 비치는 태양열이 청문회장까지의 건물 외벽 콘크리트를 녹여버렸고 그 안으로 빛의 여신이 조사하는 강렬한 섬광이 강림했다.

그저 우연으로 치부되기엔 너무나 강렬한 의사를 띈 이상 현상.

사자심왕을 대신해 분노하는 신들의 의사를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았다.

“지, 지금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겁박하는 겁니까? 이딴 짓거리를 당장 그만두──”

“그 입 다물어라.”

“······!”

레온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조곤했다. 하지만 그 음성에 실린 노기는 좌중을 압도하는 기백이 존재했다.

파르르 떨리며 침을 꼴깍 삼키는 의원들. 신들의 분노를 동반한 사자심왕의 위세 앞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이 파리만도 못함을 깨달았다.

“본왕은 그대들을 충분히 존중했다. 그대들이 민주주의라는 제도 아래서 적법하게 국민을 대표하는 자들이라는 걸.”

레온은 이들이 평소 어디까지 추해지고 언성을 높이는지 알았지만, 그것은 저들끼리의 리그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사자심왕의 어전 앞에서 그래선 안 됐다.

“허나, 너희들 앞에 있는 존재는 단지 왕좌의 주인이 아닌, 신들의 대리인임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레온은 자신에게 무엄하게 군 의원을 응시했다.

저것이 개인적인 신념에 의해서든, 정치적 야욕을 위해서든 거기에 사자심왕을 모욕하는 길을 택해선 안 됐다.

“이 무엄함과 관계된 모든 이들이 만신전의 어떤 가호도 받지 못할 것이다.”

레온은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청문회는 여기까지다.”

레온이 자리를 벗어나기까지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 * * *

“이 빌어먹을 작자들이··· 감히! 감히! 구원자 님을···!”

전 사이비 종교 교주 한빛궁주 박용신. 대한민국 십대 헌터길드의 한 축이자 광신적인 만신전 추앙자.

그는 이 천인공노할 사태에 대한 보복을 위해 한 길드장을 찾았다.

“제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참을 수가!”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저··· 왜 절 찾아오신 거죠?”

“이용완 길드장님!”

같은 십대 길드인 불새길드의 길드장 이용완은 박용신의 분노에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뭐, 뻔한 거 아니야? 좀 도와달라는 거겠지.”

옆에서 부길드장이자 S급 헌터인 하유리가 차를 내오며 박용신의 용건을 콕 집었다.

“과연, 하유리 부길마님! 불새길드의 진정한 실세라고 말 많이 들었습니다!”

“아니, 길마 앞에 두고 뭔 소립니까! 왜 왔는지 구체적으로 말이나 하세요!”

만신전에 입교하더니 사람 참 희한하게 변했네, 이용완은 혀를 내둘렀다.

“다름이 아니라 이용완 길드장님이 야당 쪽에 가지고 있는 패가 좀 있다고 들었습니다.”

“예? 아니, 뭐 그런 걸······.”

그야 십대 길드쯤 되면 유력정당의 약점 한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유령회사를 통한 뇌물이나 정치자금 전달 같은 것 말이다.

당장 이용완의 불새 길드 계열사에는 전 야당 출신의 의원이 대표직을 맡은 경우도 있었고.

“이용완 길드장님. 만신전 입교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

박용신은 다 안다는 듯 이용완의 어깨를 두드렸다.

“최근 세제 개혁법안 모임에 출석도 안 하시고, 게이트 공략 때도 착실하게 공략하시는 모양이더군요.”

헌터 길드에 대한 세금 면세 법안이나 헌터협회를 협박하기 위한 게이트의 고의적인 공략실패··· 불새 길드는 이쪽에서 상당히 악랄한 유명세가 있었다.

“그야 성실한 헌터 길드라면 당연한······.”

“내 이용완 형제님의 눈빛을 보아하니 참된 신앙을 갈구하는 목마른 어린 양 같았습니다.”

“누가 형제······.”

“게오브릭 경을 직접 목격하셨다죠? 용궁 게이트에서 악마들의 우두머리를 보셨고요. 방랑의 마검 사태는 또 어떻습니까?”

정녕 그곳에서 느끼신 바가 없으십니까?

“······.”

이용완은 박용신의 진지한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제주도 게이트에서 게오브릭과 영광의 기사들의 희생을 목격한 뒤로 줄곧 고뇌하고 있었다.

명예로운 기사도와 영광을 추구하는 영웅을 눈앞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배금주의자에 현실주의자인 수전노의 가슴을 뛰게 한 기사의 선한 영향력은 연이어진 사건을 통해 계속해서 그를 자극해왔다.

혼돈의 악마대공 라크샤르 앞에서는 아무리 강한 S급 헌터라 할지라도 미쳐버렸고, S급 헌터의 연합으로도 방랑의 마검 아카샤를 상대로 손도 못 쓰고 당했다.

레온이 보여준 수많은 기적과 용력 앞에서 이용완은 진정 만신전 입교를 고민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일이 좀 많습니다만.”

이용완은 불법적인 일들도 얼마든지 자행해왔다. 빛과 정의의 여신 아리아나의 기준에서 보자면 그는 꽤나 죄인의 부류에 들 것이다.

“저 같은 악마에 홀린 죄인에게도 기회를 주신 그분입니다. 이용완 형제님의 죄 사함을 위해 힘을 써주실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 그게 누굽니까?”

끼룩!

어디에선가 익숙한 비음이 들려온 것은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구체적으로 제가 어떻게 도우면 되겠습니까?”

* * * *

만신전 청문회장에서 벌어진 ‘사퇴하세욧!’ 발언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와, 미쳤나?

-재 지금 뭐라 한 거임?

-개또라이년 아이가.

-폐하 앞에서 존나 무엄하네 X련이.

-야당 ㅆXX들 뭐하는 짓거리냐?

국가 청문회는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그중에는 윱튜브 등의 비디오 플랫폼도 많았고 안 의원의 ‘사퇴하세욧!’은 당장 수만 명이 지켜보고 있었단 소리다.

청문회 중계 시청자 수가 사상 초유인 기록을 세운 상황에서 말이다.

이 사태로 인해 야당이 욕을 먹을 거란 건 당연히 각오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욕 먹는 게 어디 하루이틀 일인가?

그들은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만신전을 깎아낼 작정이었다.

-만신전 수천 억대 탈세 혐의 고발.

-만신전의 불법무기 수량 도를 지나쳐.

-만신전은 헌터 길드인가 사병 집단인가.

여론전으로 가면 반드시 양비론자가 나오고 만신전에 적대적인 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당장 만신전의 경쟁 종교단체들이나 데메라 교단에 속하지 않은 농업단체. 그 외에도 만신전의 적이 될 만한 이들은 수두룩하다.

문제는.

“그게 무슨 소리야? 기사를 안 올리겠다니!”

[아 저희는 만신전에 부정적인 기사는 안 싣는다니까요! 이쪽에 소문이 파다해요! 만신전 건드리면 이상하게 모든 게 꼬인답디다!]

야크트 스피너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론사들을 조져놨으며 친 야당 성향의 국영언론조차 아홉 시 뉴스 발표 이후 기이한 불행에 휩싸였다.

편집장의 불법행위가 밝혀지거나, 뉴스 캐스터의 치부가 인터넷에 떠돌거나.

지구 최고의 해커가 작정하고 조지려 들면 이 글로벌 네트워크 세상에서는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야당 대표가 강수를 두었다.

“저희는 민주주의와 법치의 수호를 위해 만신전을 고발할 것입니다! 레온 길드장은 부패하고 부정을 명명백백히 밝혀낼 것입니다.”

결국 법적인 근거는 자신들에게 있다. 만신전의 불법행위는 증거가 너무 적나라해서 도저히 질 수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종교적 광신자들을 너무 가볍게 봤다.

“이 새끼 어디 있어?”

“매달아서 일단 불부터 질러봐야 한다니깐!”

야당 의원들의 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청문회에서 직접적으로 만신전을 비판했던 의원들은 물리적인 습격을 받기도 했다.

-우리 딸이 소아마비였는데, 만신전 쌀을 먹고 나았어요.

-저는 말기 암이었는데, 게오브릭 경의 망치 순례회 코스 덕분에 건강을 되찾았다고요.

-저는 탈모가 나았습니다. 흑흑···!

데메라 여신의 축복받은 농산물뿐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에서 만신전에 은혜를 입은 자들은 많다.

-방랑의 마검에 살해당한 부모님의 원수를 폐하께서 갚아주셨습니다.

-마소로 오염된 우리 땅을 폐하의 사제들이 정화시켜줬어요!

-폐하께서 악마의 손에서 우리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형세는 아무리 둘러봐도 만신전의 편이었다.

“이런 광신도 놈들!”

야당 대표 한정호는 곳곳에서 들고 일어나는 시민들을 보며 혀를 찼다.

잘 알지도 못하는 서민들이 야만적인 칼 든 깡패 하나 고발 좀 했다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습격하다니!

오다가도 계란을 얻어맞은 한 대표는 즉각 그들을 고발조치하겠다며 엄포를 놓았지만, 다음으로 들려온 소식은 그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대, 대표님! 신검 길드에서 당 기부금을 철회했습니다! 내년부턴 어떤 선거 지원금도 없을 거라고 합니다!”

“뭐?”

신검 길드를 시작으로.

“부, 불새 길드와 황금사자 길드도 기부금을 철회했습니다! 한빛궁주 박용신과 함께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국 십대 길드의 대다수가 야당에 비판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나섰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 대체 왜?”

“방랑의 마검 사태 이후로 십대 길드에 우호적입니다. 지난번 대규모 게이트 사태 때도 만신전의 성배기사에게 협조한 바가 있고요.”

안 그래도 성난 시민들만으로 골치 아픈데, 한국의 실세 권력집단인 대형 길드까지 이런다고?

당 기부금이 철회된 것도 크지만, 그들과의 관계가 악화된 것부터가 문제였다. 대한민국에서 십대 길드의 지원 없이 정치질은 못하는 판국이란 말이다.

여기에 쐐기를 박는 사건이 일어났다.

[저희 당국은 만신전의 본교 이전시 10조엔의 지원금과 헌법개정을 약속드립니다.]

한국에서 곤욕을 치른 레온의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정부가 TF를 차리며 만신전의 귀화를 종용했던 것이다.

-와, 일본이 미친··· 10조엔?

-이러다가 만신전을 열도 놈들한테 뺏기겠다!

-만신전 덕에 오염된 땅도 정화되고 이득만 수십, 수백 조인데 뭐? 탈세? 인권탄압? X새끼들아 레온 폐하는 그래도 돼!

-악마 놈들 조진 거 가지고 이렇게 발작하다니 야당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이 새끼들 대만처럼 악마 추종자들인 거 아니냐?

결정적으로.

대통령 청사에서 핫라인으로 통화가 들어왔는데──

“대통령 각하, 어쩐 일──”

[야이개새끼야아아아아아아!!]

안 그래도 협조 요청을 묵살당하고 일을 터뜨린 야당 대표에게 대통령은 공직자의 품위고 뭐고 내던지고 원색적인 욕설을 퍼부었다.

한정호 대표는 안동길 대통령이 욕을 얼마나 잘하는지 삼십 분 동안 폰을 끄지도 못하고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여기로군요. 한국에는 이번으로 두 번째네요. 그쪽 핫라인하고는 연락이 된 거겠죠?”

“네, 공주님. 자리를 마련해두었으니 곧장 방문하시면 됩니다.”

“한국 대통령에겐 에둘러 둘러대고 서둘러 나주로 가야겠어요.”

영국 버킹엄에서 파견된 데이비슨 장관이 다이앤 공주와 함께 급작스럽게 한국을 찾았다. 명목은 한영 FTA에 대한 논의였지만──

“다케다 상. 정말 다케다 상을 통하면 곧장 라이온하트 황상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저만 믿으시지요, 요리모토 관방장관.”

일본의 관방장관과 신 일본 헌터연합 협회장이──

“장군님, 만신전은 우리 경제부 장관을 죽였는데, 이 부분을 그냥 넘어간다고 합니까?”

“르노 길드장. 그 장관은 악마였으니 오히려 감사하다면서 선물까지 이렇게 준비하지 않았나. 빌어먹을 악마 쁘락치 놈 죽여버리고 이렇게 만신전과 연이 닿았으니 오히려 이득이지.”

프랑스 군무부에서 2성 장군이 한프 국방협력차 특사로 파견됐다.

다들 제각각의 이유로 한국에 입국했고, 그것이 평소에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하필 일본의 후지사와 총리가 10조엔 발언을 한 직후라 기묘한 전운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뭐임?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벨기에, 인도네시아에 인도에 뭐 이리 많음? 무슨 날임?

-그 와중에 미국은 또 안 보이네.

-설마 이미 접촉한 거 아니냐?

갑작스러운 거물 특사들의 방한. 그리고──

“예, 곧 한국에 도착합니다.”

미합중국 헌터관리국 간부를 위한 특별전세기. 그곳에 탄 인물은 미국의 거물 정치인이자 핵심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도널드 쿠퍼 부국장이었다.

“그 왕은 상당히 급수를 따지는 모양인데, 저로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관리국 부국장쯤 되면 나름 궁중 대신쯤은 되겠지요? 하하하.”

그는 안 그래도 떠들썩한 대한민국에서 자신까지 합류하면 꽤나 큰 이슈가 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의 방문이 한국에 매우, 아주 크게 달갑지 않을 것이란 것도.

그가 처음 헌터 관리국 간부로서 이곳에 방문했을 때는 한국의 S급 헌터 두 명이 미국으로 귀화하고 말았으니까.

“한국 정치계의 실수로 터무니없는 매물이 시장에 나왔군요. 승냥이 떼들이 저마다 선물을 한가득 끌어안고 온 모양입니다만······.”

도널드 부국장은 이미 도착했다는 각국의 거물들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저희 미합중국의 제안을 넘어설 만한 건 없을 겁니다.”


           


Chapter 178

Chapter 178

178화 사퇴하세욧의 여파

정치의 기본 골자는 상대방을 끌어내리는 것이다.

정권탈환이라는 미명하에 온갖 짓거리가 용납되는 복마전.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대다수가 더럽고, 치사하며 또한 집요하다.

[안동길 행정부! 만신전산 드론 무기체계 수출 성공! 올해 세계 방산수출순위 3위 달성하나?]

[K-방산의 성공신화. 만신전과 함께하다.]

[일본이 부러워하고 러시아가 질투하며 미국이 제발 와달라고 하는 만신전. K-농업과 협동발전계획 발표!]

그런 의미에서 제1야당의 입장에서 볼 때, 만신전은 상당히 눈에 거슬리는 집단일 것이다.

안동길 대통령과 오강혁 한국 헌터협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날이 가면 갈수록 고공행진을 이루고 있는 만신전의 위세는 곧 안 행정부의 치적이기도 했으니까.

"저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건드려볼 구석은 많긴 한데······."

물론 야당의 입장에서 현 정권에 협조적인 만신전을 물어뜯고 싶은 건 당연한 사실.

하지만 내부의 반응이 심상찮다.

사실상 농업계는 데메라 여신의 신도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일반 시민들도 만신전으로 개종한 사례가 무서울 정도로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만 만신전 신도가 벌써 삼백만입니다. 생긴 지 반년 좀 넘은 종교가 벌써 삼백만이에요. 일본도 비슷한 숫자고 전세계를 합치면 천만을 넘긴지 오래예요."

만신전이 곧 한국 최대종교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이대로 십년만 지나도 세계 최대종교가 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정도.

그런 와중에 대만에서 만신전의 불법적인 전투행위와 불법 무기소유가 발각됐다.

-와, 뭐임? 대만에 악마가 저리 많았나?

-가스 테러 후 타락자들 핀포인트 저격 ㅋㅋ 여윽시 라이온하트 폐하시다

-야피경 슈퍼 로봇병기 뭔데? ㅋㅋㅋㅋ

-불카누스 미쳤네. 대악마 둘을 걸레짝으로 만든 거 보소.

-전쟁신 제단에 긴급 기도회 공지 올라왔는데 이거 뭐냐?

안 행정부가 그러했듯 야당 또한 만신전의 행위에 경악했다.

타국에서 불법 전투라니? 고위관료를 한둘도 아니고 행정부를 갈아치울 만큼 죽였다.

물론 대다수는 대만 시민들에 손에 의한 쿠데타지만, 개중에는 외국에서 온 장관이나 대사도 있었다.

물어뜯기 딱 좋은 사례란 것이다.

"이 기회에 만신전 대표에서 그 이계인을 끌어내리면?"

"공격할 거리는 넘칩니다. 탈세 문제도 심각하고, 내부에 인권 문제도 공공연한 사실이에요. 무엇보다 이번 프랑스 장관까지 죽은 일로 외국에서 항의도 있고요."

"만신전을 끌어내려 여당 지지율을 깎아내려야 합니다!"

물론 만신전이 벌인 일들이 오직 악마를 쓸어버리기 위한 정의에서 비롯된 일임을 그들은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의 세계에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전세계의 암을 치료할 수 있는 기적의 약이 발표되어도 그게 상대쪽 당에 이득이 된다면 묻어버려야 하는 것이 당파정치다.

오강혁 협회장을 시작으로 현 정권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성장한 만신전은 앞으로도 정권탈환에 방해가 될 것이다.

"여당에는 협조하는 척하면서 당일에 몰아붙이죠.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헌법소원까지 가면 반드시 이깁니다!"

라고 생각했던 때가 그들에게도 있었다.

* * * *

"············."

"············."

의원의 폭탄 발언에 청문회장이 경악으로 놀란 채 굳어버렸다.

"좆됐다!"

그 영상을 대통령실 청사에서 시청하고 있던 안동길 대통령은 육성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저, 저 미친년 저거! 저거 왜 저러는 거야!"

이번 만신전 청문회는 여야가 합의를 이룬 사항이었다. 적당히 추궁하고 문화 상대주의 뭐 이런 거로 대충 넘어간 뒤 주의와 협력을 구하는 훈훈한 전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 안희옥 의원입니다."

안희옥. 야당의 싸움개.

정권의 물어뜯을 구석이 있다면 어디서든 싸움을 걸어오는 투견이다.

"아니, 근데 왜 저 지랄을 하는 건데! 서로 합의 봤잖아! 만신전은 안 건들기로! 사전에 예법 교육도 따로 했잖아!"

야당 이놈들이 뒤통수를 친 건가? 그러고 보면 주변의 야당 의원들 반응이 심상찮다.

"청문회 중단해! 당장 중단해!"

"시, 실시간 중계 중입니다, 각하!"

"이런 망할!"

안 대통령은 당장 야당 대표에게 항의성 전화를 걸었지만, 실시간 중계로 이어지는 청문회를 중단시킬 순 없었다.

* * * *

"······."

레온은 자신에게 무례한 언사를 내뱉은 의원을 향해 시선을 찡그렸다.

"이름을 말하라, 여자."

"지금 제게 여자라고 한 겁니까? 사죄하세요! 그리고 청문회장입니다! 당장 일어서지 못하겠습니까?"

"맞습니다! 어디 신성한 국회 청문회장에서 그게 무슨 태도입니까!"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그들은 레온을 위해 마련된 특별상석을 지적하고 나섰다.

레온의 자리는 여타 청문회장과는 달리 계단을 만들어 상석을 배치하고,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권위적인 위치에 있다.

청문회장까지는 들어가겠지만, 거기에는 레온에 대한 존중과 합의가 들어갔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적어도 안동길 행정부는 레온이 가진 왕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

그들이 만신전이나 라이온하트를 존중하는 것 이전에, 레온이라는 존재의 힘을 존중하기에.

이런 면에서 보면 현 한국 정부는 충분히 합리적이다. 그들은 실용적인 노선을 취할 줄 알았고, 힘에 대한 존중은 곧 레온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쭉 그래왔기에 레온은 그들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았다.

'개개인의 폭주는 아닌 것 같군.'

혹은 제3세력의 사주일 수도 있다. 더 멀리 볼 것도 없이 여당을 견제하려는 야당의 꼼수일 수도 있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볼 때는 그렇다. 저들 입장에선 이번 기회를 놓치기 싫겠지.

"사퇴하실 겁니까!"

"함부로 언성을 높이지 마라. 이곳은 시장바닥이 아닌 어전이다."

"어전? 이봐요, 레온 증인.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제가 묻는 거에만 답변하세요!"

-콰르릉···!

그때였다. 청문회장 바깥에서 요동치는 번개소리. 창창한 마른 하늘에 내리치는 번개는 한두 번의 이상현상이 아니었다.

-콰르릉! 쾅쾅!

갑자스런 번개는 기어코 청문회장이 있는 국회 건물까지 내리꽂혔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온 건물이 요동칠 정도였다.

"서, 설마 울티마 신이?"

청문회장에는 만신전의 신도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 분노한 신성의 존재가 하늘과 천둥의 신이라는 걸 깨달았고, 몇몇 신실한 신도들은 번개 속에 심어진 신의 분노한 언사를 들었다.

[감히! 이 울티마의 천둥왕관을 공유하는 사자심왕을 모욕하느냐!!]

천둥의 신이 분노하였다. 그리고 분노한 신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어? 태, 태양이 이상반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천체의 권능을 가진 심판자. 태양의 신이 비치는 태양열이 청문회장까지의 건물 외벽 콘크리트를 녹여버렸고 그 안으로 빛의 여신이 조사하는 강렬한 섬광이 강림했다.

그저 우연으로 치부되기엔 너무나 강렬한 의사를 띈 이상 현상.

사자심왕을 대신해 분노하는 신들의 의사를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았다.

"지, 지금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겁박하는 겁니까? 이딴 짓거리를 당장 그만두──"

"그 입 다물어라."

"······!"

레온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조곤했다. 하지만 그 음성에 실린 노기는 좌중을 압도하는 기백이 존재했다.

파르르 떨리며 침을 꼴깍 삼키는 의원들. 신들의 분노를 동반한 사자심왕의 위세 앞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이 파리만도 못함을 깨달았다.

"본왕은 그대들을 충분히 존중했다. 그대들이 민주주의라는 제도 아래서 적법하게 국민을 대표하는 자들이라는 걸."

레온은 이들이 평소 어디까지 추해지고 언성을 높이는지 알았지만, 그것은 저들끼리의 리그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사자심왕의 어전 앞에서 그래선 안 됐다.

"허나, 너희들 앞에 있는 존재는 단지 왕좌의 주인이 아닌, 신들의 대리인임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레온은 자신에게 무엄하게 군 의원을 응시했다.

저것이 개인적인 신념에 의해서든, 정치적 야욕을 위해서든 거기에 사자심왕을 모욕하는 길을 택해선 안 됐다.

"이 무엄함과 관계된 모든 이들이 만신전의 어떤 가호도 받지 못할 것이다."

레온은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청문회는 여기까지다."

레온이 자리를 벗어나기까지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 * * *

"이 빌어먹을 작자들이··· 감히! 감히! 구원자 님을···!"

전 사이비 종교 교주 한빛궁주 박용신. 대한민국 십대 헌터길드의 한 축이자 광신적인 만신전 추앙자.

그는 이 천인공노할 사태에 대한 보복을 위해 한 길드장을 찾았다.

"제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참을 수가!"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저··· 왜 절 찾아오신 거죠?"

"이용완 길드장님!"

같은 십대 길드인 불새길드의 길드장 이용완은 박용신의 분노에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뭐, 뻔한 거 아니야? 좀 도와달라는 거겠지."

옆에서 부길드장이자 S급 헌터인 하유리가 차를 내오며 박용신의 용건을 콕 집었다.

"과연, 하유리 부길마님! 불새길드의 진정한 실세라고 말 많이 들었습니다!"

"아니, 길마 앞에 두고 뭔 소립니까! 왜 왔는지 구체적으로 말이나 하세요!"

만신전에 입교하더니 사람 참 희한하게 변했네, 이용완은 혀를 내둘렀다.

"다름이 아니라 이용완 길드장님이 야당 쪽에 가지고 있는 패가 좀 있다고 들었습니다."

"예? 아니, 뭐 그런 걸······."

그야 십대 길드쯤 되면 유력정당의 약점 한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유령회사를 통한 뇌물이나 정치자금 전달 같은 것 말이다.

당장 이용완의 불새 길드 계열사에는 전 야당 출신의 의원이 대표직을 맡은 경우도 있었고.

"이용완 길드장님. 만신전 입교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

박용신은 다 안다는 듯 이용완의 어깨를 두드렸다.

"최근 세제 개혁법안 모임에 출석도 안 하시고, 게이트 공략 때도 착실하게 공략하시는 모양이더군요."

헌터 길드에 대한 세금 면세 법안이나 헌터협회를 협박하기 위한 게이트의 고의적인 공략실패··· 불새 길드는 이쪽에서 상당히 악랄한 유명세가 있었다.

"그야 성실한 헌터 길드라면 당연한······."

"내 이용완 형제님의 눈빛을 보아하니 참된 신앙을 갈구하는 목마른 어린 양 같았습니다."

"누가 형제······."

"게오브릭 경을 직접 목격하셨다죠? 용궁 게이트에서 악마들의 우두머리를 보셨고요. 방랑의 마검 사태는 또 어떻습니까?"

정녕 그곳에서 느끼신 바가 없으십니까?

"······."

이용완은 박용신의 진지한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제주도 게이트에서 게오브릭과 영광의 기사들의 희생을 목격한 뒤로 줄곧 고뇌하고 있었다.

명예로운 기사도와 영광을 추구하는 영웅을 눈앞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배금주의자에 현실주의자인 수전노의 가슴을 뛰게 한 기사의 선한 영향력은 연이어진 사건을 통해 계속해서 그를 자극해왔다.

혼돈의 악마대공 라크샤르 앞에서는 아무리 강한 S급 헌터라 할지라도 미쳐버렸고, S급 헌터의 연합으로도 방랑의 마검 아카샤를 상대로 손도 못 쓰고 당했다.

레온이 보여준 수많은 기적과 용력 앞에서 이용완은 진정 만신전 입교를 고민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일이 좀 많습니다만."

이용완은 불법적인 일들도 얼마든지 자행해왔다. 빛과 정의의 여신 아리아나의 기준에서 보자면 그는 꽤나 죄인의 부류에 들 것이다.

"저 같은 악마에 홀린 죄인에게도 기회를 주신 그분입니다. 이용완 형제님의 죄 사함을 위해 힘을 써주실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 그게 누굽니까?"

끼룩!

어디에선가 익숙한 비음이 들려온 것은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구체적으로 제가 어떻게 도우면 되겠습니까?"

* * * *

만신전 청문회장에서 벌어진 '사퇴하세욧!' 발언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와, 미쳤나?

-재 지금 뭐라 한 거임?

-개또라이년 아이가.

-폐하 앞에서 존나 무엄하네 X련이.

-야당 ㅆXX들 뭐하는 짓거리냐?

국가 청문회는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그중에는 윱튜브 등의 비디오 플랫폼도 많았고 안 의원의 '사퇴하세욧!'은 당장 수만 명이 지켜보고 있었단 소리다.

청문회 중계 시청자 수가 사상 초유인 기록을 세운 상황에서 말이다.

이 사태로 인해 야당이 욕을 먹을 거란 건 당연히 각오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욕 먹는 게 어디 하루이틀 일인가?

그들은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만신전을 깎아낼 작정이었다.

-만신전 수천 억대 탈세 혐의 고발.

-만신전의 불법무기 수량 도를 지나쳐.

-만신전은 헌터 길드인가 사병 집단인가.

여론전으로 가면 반드시 양비론자가 나오고 만신전에 적대적인 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당장 만신전의 경쟁 종교단체들이나 데메라 교단에 속하지 않은 농업단체. 그 외에도 만신전의 적이 될 만한 이들은 수두룩하다.

문제는.

"그게 무슨 소리야? 기사를 안 올리겠다니!"

[아 저희는 만신전에 부정적인 기사는 안 싣는다니까요! 이쪽에 소문이 파다해요! 만신전 건드리면 이상하게 모든 게 꼬인답디다!]

야크트 스피너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론사들을 조져놨으며 친 야당 성향의 국영언론조차 아홉 시 뉴스 발표 이후 기이한 불행에 휩싸였다.

편집장의 불법행위가 밝혀지거나, 뉴스 캐스터의 치부가 인터넷에 떠돌거나.

지구 최고의 해커가 작정하고 조지려 들면 이 글로벌 네트워크 세상에서는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야당 대표가 강수를 두었다.

"저희는 민주주의와 법치의 수호를 위해 만신전을 고발할 것입니다! 레온 길드장은 부패하고 부정을 명명백백히 밝혀낼 것입니다."

결국 법적인 근거는 자신들에게 있다. 만신전의 불법행위는 증거가 너무 적나라해서 도저히 질 수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종교적 광신자들을 너무 가볍게 봤다.

"이 새끼 어디 있어?"

"매달아서 일단 불부터 질러봐야 한다니깐!"

야당 의원들의 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청문회에서 직접적으로 만신전을 비판했던 의원들은 물리적인 습격을 받기도 했다.

-우리 딸이 소아마비였는데, 만신전 쌀을 먹고 나았어요.

-저는 말기 암이었는데, 게오브릭 경의 망치 순례회 코스 덕분에 건강을 되찾았다고요.

-저는 탈모가 나았습니다. 흑흑···!

데메라 여신의 축복받은 농산물뿐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에서 만신전에 은혜를 입은 자들은 많다.

-방랑의 마검에 살해당한 부모님의 원수를 폐하께서 갚아주셨습니다.

-마소로 오염된 우리 땅을 폐하의 사제들이 정화시켜줬어요!

-폐하께서 악마의 손에서 우리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형세는 아무리 둘러봐도 만신전의 편이었다.

"이런 광신도 놈들!"

야당 대표 한정호는 곳곳에서 들고 일어나는 시민들을 보며 혀를 찼다.

잘 알지도 못하는 서민들이 야만적인 칼 든 깡패 하나 고발 좀 했다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습격하다니!

오다가도 계란을 얻어맞은 한 대표는 즉각 그들을 고발조치하겠다며 엄포를 놓았지만, 다음으로 들려온 소식은 그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대, 대표님! 신검 길드에서 당 기부금을 철회했습니다! 내년부턴 어떤 선거 지원금도 없을 거라고 합니다!"

"뭐?"

신검 길드를 시작으로.

"부, 불새 길드와 황금사자 길드도 기부금을 철회했습니다! 한빛궁주 박용신과 함께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국 십대 길드의 대다수가 야당에 비판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나섰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 대체 왜?"

"방랑의 마검 사태 이후로 십대 길드에 우호적입니다. 지난번 대규모 게이트 사태 때도 만신전의 성배기사에게 협조한 바가 있고요."

안 그래도 성난 시민들만으로 골치 아픈데, 한국의 실세 권력집단인 대형 길드까지 이런다고?

당 기부금이 철회된 것도 크지만, 그들과의 관계가 악화된 것부터가 문제였다. 대한민국에서 십대 길드의 지원 없이 정치질은 못하는 판국이란 말이다.

여기에 쐐기를 박는 사건이 일어났다.

[저희 당국은 만신전의 본교 이전시 10조엔의 지원금과 헌법개정을 약속드립니다.]

한국에서 곤욕을 치른 레온의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정부가 TF를 차리며 만신전의 귀화를 종용했던 것이다.

-와, 일본이 미친··· 10조엔?

-이러다가 만신전을 열도 놈들한테 뺏기겠다!

-만신전 덕에 오염된 땅도 정화되고 이득만 수십, 수백 조인데 뭐? 탈세? 인권탄압? X새끼들아 레온 폐하는 그래도 돼!

-악마 놈들 조진 거 가지고 이렇게 발작하다니 야당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이 새끼들 대만처럼 악마 추종자들인 거 아니냐?

결정적으로.

대통령 청사에서 핫라인으로 통화가 들어왔는데──

"대통령 각하, 어쩐 일──"

[야이개새끼야아아아아아아!!]

안 그래도 협조 요청을 묵살당하고 일을 터뜨린 야당 대표에게 대통령은 공직자의 품위고 뭐고 내던지고 원색적인 욕설을 퍼부었다.

한정호 대표는 안동길 대통령이 욕을 얼마나 잘하는지 삼십 분 동안 폰을 끄지도 못하고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여기로군요. 한국에는 이번으로 두 번째네요. 그쪽 핫라인하고는 연락이 된 거겠죠?"

"네, 공주님. 자리를 마련해두었으니 곧장 방문하시면 됩니다."

"한국 대통령에겐 에둘러 둘러대고 서둘러 나주로 가야겠어요."

영국 버킹엄에서 파견된 데이비슨 장관이 다이앤 공주와 함께 급작스럽게 한국을 찾았다. 명목은 한영 FTA에 대한 논의였지만──

"다케다 상. 정말 다케다 상을 통하면 곧장 라이온하트 황상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저만 믿으시지요, 요리모토 관방장관."

일본의 관방장관과 신 일본 헌터연합 협회장이──

"장군님, 만신전은 우리 경제부 장관을 죽였는데, 이 부분을 그냥 넘어간다고 합니까?"

"르노 길드장. 그 장관은 악마였으니 오히려 감사하다면서 선물까지 이렇게 준비하지 않았나. 빌어먹을 악마 쁘락치 놈 죽여버리고 이렇게 만신전과 연이 닿았으니 오히려 이득이지."

프랑스 군무부에서 2성 장군이 한프 국방협력차 특사로 파견됐다.

다들 제각각의 이유로 한국에 입국했고, 그것이 평소에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하필 일본의 후지사와 총리가 10조엔 발언을 한 직후라 기묘한 전운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뭐임?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벨기에, 인도네시아에 인도에 뭐 이리 많음? 무슨 날임?

-그 와중에 미국은 또 안 보이네.

-설마 이미 접촉한 거 아니냐?

갑작스러운 거물 특사들의 방한. 그리고──

"예, 곧 한국에 도착합니다."

미합중국 헌터관리국 간부를 위한 특별전세기. 그곳에 탄 인물은 미국의 거물 정치인이자 핵심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도널드 쿠퍼 부국장이었다.

"그 왕은 상당히 급수를 따지는 모양인데, 저로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관리국 부국장쯤 되면 나름 궁중 대신쯤은 되겠지요? 하하하."

그는 안 그래도 떠들썩한 대한민국에서 자신까지 합류하면 꽤나 큰 이슈가 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의 방문이 한국에 매우, 아주 크게 달갑지 않을 것이란 것도.

그가 처음 헌터 관리국 간부로서 이곳에 방문했을 때는 한국의 S급 헌터 두 명이 미국으로 귀화하고 말았으니까.

"한국 정치계의 실수로 터무니없는 매물이 시장에 나왔군요. 승냥이 떼들이 저마다 선물을 한가득 끌어안고 온 모양입니다만······."

도널드 부국장은 이미 도착했다는 각국의 거물들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저희 미합중국의 제안을 넘어설 만한 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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