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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9

179화 미국의 제안

세계각국의 거물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평소라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격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려주는 좋은 소식이었지만, 한국 대통령 안동길에게는 도무지 달가운 소식일 수가 없었다.

“그렇군요. 영국 여왕폐하께서는 정정하십니까?”

“그럼요. 게이트가 인류의 많은 걸 앗아갔지만, 반대로 준 것도 있으니까요.”

대격변 이후로 영국 왕실도 거대한 변화를 맞이했다.

가장 큰 변화라면 바로 퀸 빅토리아의 헌터 각성이다.

당시 70대라는 결코 젊다고는 못할 노년의 여왕이 마력을 각성하면서 육체도 젊어진 것이다.

노인이 청년이 됐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육체 나이가 40살은 젊어졌다나. 국내의 노장 헌터인 오강혁 협회장이나 천진수, 강진성 등이 70대의 나이에도 정정한 걸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건 아니다.

덕분에 현 왕태자가 먼저 죽는 게 사실상 확정이 된 상황.

‘눈앞의 이 공주가 유력한 차기 영국여왕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이자, 영국의 고위 헌터이기도 한 다이앤 제1왕녀는 찬란한 미모를 자랑하며 안동길 대통령의 넋을 나가게 했다.

“그럼 이번 FTA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데이비슨 장관과 진행하시지요. 사진 찍을까요?”

“아, 예에··· 그러면 좋지요.”

안동길은 다이앤 공주와 악수를 하는 사진을 찍으며 역시 현대문물 좀 먹은 왕족은 다르다고 느꼈다.

최근에 찐 중세 왕족만 상대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영국 왕족이 편해졌달까.

“그런데 다이앤 공주님. 이후의 일정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저희 정부가 신경 써서 모시겠습니다.”

“아, 괜찮아요. 오랜만에 한국에 왔으니 관광도 좀 하고 싶은걸요.”

안 대통령은 평범한 차량을 타고 사라지는 다이앤 공주를 지켜보며 데이비슨 장관과의 회담장으로 향하기 전에 나지막이 읊조렸다.

“백퍼 나주지?”

“······예, 아마도.”

영국 차기 여왕에 일본, 벨기에, 폴란드, 노르웨이 장관에 러시아 장군과 프랑스 장군까지.

미국 헌터관리국 부국장쯤 되면 아예 대놓고 레온을 스카웃하러 왔다고 공표하는 수준이다.

“나주에 국정원 인력 더 늘리라고 해! 관광객이든 뭐든 싹 밀어 넣어서 회담 내용을 알아야 해!”

지난주에 있었던 야당의 사퇴하세욧! 사태 이후 국내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만신전 광신도들은 의원들 족치겠다고 시위하고 나섰지, 여론은 왜 저 새끼들 제어 못 했냐고 대통령 욕하지.

이제 외국에서는 대놓고 레온을 채가겠다고 특사를 파견하지.

“한 대표 이 씨발새끼······.”

야당의 목표가 대통령에게 빅엿을 먹이는 거였다면, 아주 제대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었다.

* * * *

만신전이 최초로 터를 잡은 나주 평야.

이곳은 레온이 자리를 잡으며 마소로 오염된 땅을 정화하고, 생명과 풍요의 여신 데메라의 성배기사 게오브릭의 망치가 안치되며 성지로 거듭났다.

최근 만신전 나주 본교의 교세는 더욱 강화되었는데, 이곳에 상주하는 성물들이 이제 어마어마해졌기 때문이다.

게오브릭의 망치, 만신전의 기사들이 라이온하트 왕국 게이트에서 계승 받은 성물들. 그 외에도 성배기사만 넷.

그들이 가만히만 있어도 내쉬는 숨결만으로 나주라는 지역 전체가 성역화되고 있었다.

“공기가 다르군요. 이런 말을 할 줄 몰랐지만, 공간 자체가 상서러운 기운이 느껴져요.”

“듣기로는 에픽급 아이템만 열 가지가 넘게 모여있다고 합니다.”

“성배기사들의 장비들 말이죠? 그리고 그 절반은······.”

“사자심왕··· 검과 창, 성배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가 에픽급 아이템 중에서도 비교할 존재가 없을 정도라지요.”

과연. 만신전의 규모는 이미 한국 최대급. 그 미국의 매버릭 길드조차 숫자만 따지면 비교가 안 될 정도라고 한다.

무엇보다 무시무시한 건 그 개개인의 강력함.

베일에 감춰진 마술사 여왕이나 초과학병기들을 다루는 야크트 스피너, 최근에 생존자로 넘어온 불카누스만으로도 아시아에서는 비교할 존재가 없다.

‘그 모든 이들을 상회하는 존재라는 거죠?’

레온의 명성은 이미 영국 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영국의 대참사였던 런던 사변의 원흉 방랑의 마검을 쓰러뜨린 게 레온이었으니까.

“공주님, 이번 회담은······.”

“잘 알고 있어요. 이전부터 논의가 됐던 일이니까.”

일명 사퇴하세욧! 사태로 인해 레온이 불쾌감을 표현하고 청문회를 박찬 뒤, 일본이 첫 물꼬를 틀었다.

10조엔의 지원금을 약속하며 자국으로 만신전을 초빙하고 싶다고 말이다.

이에 자극받은 영국을 비롯한 열강들은 한국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앞다투어 특사를 보냈다.

다이앤 공주 또한 그런 특사 중 한 명.

“돈은 당연한 거고, 만신전을 배려하는 법 개정을 여럿 약속해야겠지요. 사실 이건 기본적인 판돈이에요.”

문제는 이걸 다른 나라 특사들도 모두 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국의 차기 여왕인 자신이 제안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자고로 왕족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써먹을 수 있는 최고의 외교패가 있죠.”

혼담.

다시 말해 정략혼.

다이앤은 레온에게 청혼할 생각이다.

‘내가 생각해도 나만한 신붓감은 없어.’

다이앤은 아직 미혼. 약혼관계조차 정해지지 않은 왕족 여성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와 혼인하면 차기 영국 여왕의 옆자리와 수백 조에 이르는 왕실재산, 영국이라는 나라의 왕족이 될 수 있다.

그뿐만일까? 다이앤은 자신의 미모도 만만찮은 재료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녀는 순혈 영국인답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허니블론디 머리카락과 보석처럼 푸른 눈, 고위 헌터로서 다져진 탄탄한 몸매를 자랑했다.

미모, 권력, 재산 삼박자가 조화를 이루는 영국 최고의 신붓감··· 아니, 세기의 신붓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주님은 괜찮으십니까?”

“후후, 왕족인걸요. 정략혼은 낡은 개념이지만, 여전히 유효하죠. 무엇보다··· 전 레온 폐하가 마음에 드는걸요.”

레온과 혼인함으로서 생기는 이득 이전에 다이앤 공주는 레온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삼백 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불로의 외견. 영국인이 사랑하는 가장 미형의 금발벽안은 다이앤의 취향에도 적격이다.

무엇보다 예전만 못한 왕실의 권위와 달리 그에게서는 권력자의 풍모가 느껴진다.

입헌군주제와 절대군주정의 차이. 사자심왕에게선 절대군주로서 쌓아온 관록이 있었다.

‘이상적인 신랑감이야. 그 사람도 내가 마음에 들걸?’

다이앤은 별다른 일이 없다면 이 혼담이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고 보았다. 망국의 국왕인 그에게 대영왕실만큼 매력적인 혼담처가 또 있을까?

“라이온하트 폐하에게 달리 여자가 없는 건 확실하죠?”

“예, 듣기로는 마술사 여왕과 꽤 가까운 사이로 보입니다만, 확인된 사실은 없습니다.”

“마술사 여왕이라··· 꽤 미인인 것 같긴 하지만, 항상 베일을 싸고 다니니 알 수가 있어야죠.”

“아무리 미인이라 할지라도 공주님에 비할 바는 아닐 겁니다.”

그래, 외모에 그리 자신이 있었다면 왜 베일을 쓰고 다니겠는가? SNS에는 가끔 살짝 얼굴이 드러난 사진이 돌아다니긴 하지만, 풀 페이스가 드러난 적은 없었다.

“그럼 사자심왕 폐하를 알현해볼까요? 어디로──”

발걸음을 옮기다 멈칫거리는 다이앤 공주. 그녀의 앞에는 베일을 쓴 드레스 차림의 여인이 있었다.

“영국 왕실에서 오신 다이앤 공주이신가요?”

마술사 여왕 베아트리체. 그녀가 다이앤을 마중하러 나왔던 것이다.

“아, 예··· 그 유명하신 마술사 여왕님이시군요? 다이앤 그레이스 필립스라고 합니다.”

무언가, 분위기에서 압도된다.

이계의 생존자. 스페로 왕국의 마술사 여왕. 꿈과 죽음의 여신 플르의 신관장.

그녀를 가리키는 여러 표어가 있지만, 그것을 체감하기에는 언제나 먼 존재.

하지만 눈앞에 있으니 알 것 같다. 타고난 여왕, 베일과 드레스 너머로도 느껴지는 무언가가······.

‘새, 색기?’

강렬한 권위 이전에 다이앤은 같은 여성을 눈앞에 두고도 얼굴을 붉힐 만큼 묘한 기류를 느꼈다.

‘마, 만만찮은 경쟁자네. 이거 쉽지 않겠는──’

“그럼 저를 따라오시지요.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시──어머나.”

그 순간,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 바람은 베아트리체의 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흔들었고, 아주 잠깐이지만 그녀의 얼굴이 다이앤 앞에 드러났다.

“아······.”

바람으로 인해 베일이 흔들린 건 찰나. 곧장 베일을 고쳐쓰자 다이앤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저 여인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공주님······.”

“······응.”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게.”

* * * *

결과적으로 레온을 만나러 온 특사들은 누구 한 명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

다이앤 왕녀의 혼담 제안도, 프랑스 특사의 종교특별법 제안도, 일본의 대규모 투자 제안도.

모두 레온의 흥미를 그다지 끌지 못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폐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세련된 정장 차림의 금발 백인중년은 예의 바르지만 당당한 자세로 레온에게 궁중예법으로 인사했다.

“그대인가? 스피너 경이 경우를 아는 자라고 하던데.”

“하하, 야크트 스피너 경께 적잖은 선물을 드렸는데,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백인 중년은 레온의 허락하에 조심스럽게 단상으로 올라오곤 선물이 담긴 상자를 바치며 말했다.

“미합중국 헌터관리국 부국장 도널드 쿠퍼입니다.”

21세기 현대.

헌터들을 아예 공군기로 이동시킨다는 천조국 헌터기관의 엘리트 관료. 그가 레온을 향해 시원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미합중국은 폐하를 위해 라이온하트 왕국을 재건해드릴 수 있습니다.”

* * * *

도널드 쿠퍼 헌터관리국 부국장.

레온은 대담하게도 라이온하트 왕국의 재건을 약속하는 미국인 관료와 눈을 마주했다.

‘빈말은 아니군.’

레온은 도널드의 말이 빈말도 허언도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미국의 한해 예산은 한화로 약 4천조. 한국의 1년 예산보다 두 배는 많은 돈인 천조원을 국방비로 사용하는 국가다.

중국의 붕괴와 러시아의 쇠락으로 미국의 국방예산은 산하의 헌터관리국으로 이전되었다. 듣기로는 내년에 배정될 예산만 이백 조원이라던가.

일개 산하 기관이 그 정도이니, 라이온하트 왕국을 재건해주겠다는 터무니없는 일도 그들에겐 불가한 일이 아니겠지.

당연히 자연스럽게 미국행 권유로 이어질 것이다.

“어떻게 짐의 왕국을 그대 국가가 재건해주겠다는 거지?”

레온이 흥미를 보이자 도널드 부국장은 자신만한 표정으로 청사진을 그렸다.

“저희 미국에 땅을 드리겠습니다. 나라를 세우기에 충분한 땅과 크라샤트리아 족을 위한 해양자원도 풍부한 곳도 고르시면 됩니다.”

도널드 부국장이 제시한 장소는 하나 같이 미국에 적잖은 영향력을 가진 도시들이었다.

후보지들 하나하나가 한반도만한 수준. 이 정도의 땅에 ‘왕국’을 건국한다는 선택지를 제시한 것이다.

“하루이틀사이에 논의된 게 아니군.”

“예, 저희 합중국은 폐하를 오랜 시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레온의 스카웃을 위해 계획을 세운 건 거의 처음부터였다.

이세계에서 온 중세 마인드의 왕. 그 성정은 둘째치고 데메라 여신의 권능을 이용해 오염된 땅을 정화하는 것은 대체할 수 없는 기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만신전이 제법 전파된 현재, 미국에서는 적잖은 데메라 교단의 신도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마소로 오염된 땅들도 하나둘씩 정화되고 있었다.

데메라 여신의 농부들이 십구조를 만신전에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논의가 있기야 했지만.

“하지만 폐하의 가치··· 실례했습니다. 폐하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자국에 어마어마한 이득이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10조엔을 제안했던가요? 그건 폐하를 너무 내려쳤군요.”

도널드 부국장은 레온의 전투력만 사도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자신했다.

“폐하뿐만이 아닙니다. 함께 오실 불카누스 경, 베아트리체 여왕, 야크트 스피너 경까지.”

그 엄청난 가치. 그것은 돈 따위로 가늠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었다.

“종교적으로도 폐하와 만신전이 저희 미국에서 뿌리박히길 원합니다. 물론 기존 종교와의 충돌이 있기야 하겠지만, 기독교도들은 사막의 토착종교들처럼 폭탄 테러를 하는 작자들이 아닙니다.”

레온은 도널드 부국장과 미국 정부의 의도를 가늠해보곤 주의를 주었다.

“짐을 기독교도의 교황과 같은 대우를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바티칸 시국··· 말씀이시군요.”

나라 안에 또 다른 나라가 있는 경우는 멀리 찾아볼 것도 없이 이탈리아의 바티칸 시국이 있다.

교황을 국가의 원수로 하는, 대부분을 이탈리아 정부에 의존하는 명목상의 독립국.

레온이 턱을 손등에 괴며 도널드 부국장에게 말했다.

“짐의 최우선 사명이 신들의 강령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나 그 이전에 짐은 라이온하트의 절대왕권자다. 짐의 권위와 권력은 신들이 내려주는 것이지. 인간의 사정으로 좌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요컨대 왕국을 세운다면 절대왕정제다. 레온은 그것을 명시해두고 있었다.

“하하하··· 물론, 숙지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부국장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물론 베스트 협상은 만신전이 이탈리아의 바티칸 시국처럼 명목상의 독립국인 종교적 성지로 남는 것이다.

하지만 만신전에게는 한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력이 있었다. 그 무력을 이끄는 존재부터가 초월적인 권력을 누리던 이였다.

미합중국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의 협상안만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폐하께서 세우실 왕국은 엄연히 미합중국과는 분리된 독립국이 될 것입니다. 저흰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고요.”

그렇게 해서라도 만신전을, 레온을 자국으로 편입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그에게서 느껴졌다.

“흥미로운 건 사실이다. 허나, 왕국의 재건은 짐 스스로도 할 수 있다. 뭐, 옵션의 하나로 고려는 해보마.”

“예?”

그 말에 도널드 부국장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설마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제안을 던졌는데, 확답은 아니어도 긍정적인 답변 하나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 이상으로 레온은 합중국이 제공할 수 있는 것들에 흥미가 없어 보였다. 그저 재미있는 제안을 들었다, 정도.

‘이래서야 앞선 다른 특사들과 다를 게 없겠어!’

도널드 부국장은 벌써 이 패를 드러내야 한다는 게 아쉬웠지만, 레온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빠르게 말을 이었다.

“폐하, 폐하는 이 세계에 신이 만신전의 신들뿐이라 생각하십니까?”

“흐음?”

야훼나 알라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가? 그러나 신이 언급되자 확실히 레온의 관심이 쏠렸다.

“폐하, 저희 합중국은 폐하와 만신전처럼 다른 세계의 신을 모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분명 레온에게 필요한 신일 것이라고 도널드 부국장은 확신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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