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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

4화 주인공

4화 주인공

“저 고문관 새끼 하룻밤 만에 말짱해져서 돌아다니는 거 봐라.”

······응?

나는 몇 차례 눈을 깜빡거렸다. 저 목소리와 대사. 분명 들은 적이 있다.

“역시 아픈척했던 게 맞다니까?”

이것도.

“빌어먹을. 나 여태 속은 거야? 119번은 그렇게 죽어 버렸는데.”

이것도.

‘······.’

발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나는 걷고 있었던 건가. 왜. 언제부터?

나는 내 발등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어이. 138번.”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고개를 들었다.

저만치에서 나를 바라보는 태평스러운 얼굴.

테오였다.

두근.

심장이 뛰었다.

당연한 일이다.

테오는 죽었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괴물들의 손에.

‘데미안!’

나는 테오의 몸이 둘로 나뉘던 순간을 기억한다.

내장을 쏟으며 지면을 구르던 모습을 기억한다.

하지만 저기 서 있는 건 분명 테오다.

그렇다는 것은.

‘꿈이었다고?’

“저, 저 빌어먹을 새끼 눈깔 좀 봐 테오! 너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잖아! 이 배은망덕한 새끼! 어제 갱도에 쓰러져 있던 너를 업고 숙소까지 간 게 누구인지 알아? 네 몫의 수프를 몰래 챙기다 감독관한테 처맞은 게 누구인지 알기나 하냐고!”

족제비가 복어처럼 부어오른 제 볼을 내밀며 소리친다.

발끈한 족제비의 면상을 본 나는 괜히 화가 치밀었다.

“닥쳐. 족제비.”

족제비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녀석은 잠시 어버버하더니, 방금 저 새끼가 한 말을 들었냐며 테오에게 하소연했다. 하지만 테오는 나의 말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웃겼는지 박장대소를 했다. 그러고는 족제비에게 말했다. 족제비. 그거 딱이다. 너 이제부터 족제비 해라!

족제비는 울상이 됐다. 깔깔대며 웃는 조원들을 괜히 사나운 눈으로 돌아봤다.

“아직 잠이 덜 깬 거냐 138번. 아니면 역시 몸이 좋지 않은 건가.”

테오가 다가와 말했다. 녀석은 얼마나 웃었는지 눈가에 눈물방울이 고여 있었다. 그 모습이 더욱더 테오의 마지막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몸이 두 동강 났던 테오의 눈에도 저런 눈물방울이 고여 있었으니까.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만 움직이자. 늦으면 또 감독관이 지랄할 테니.”

나는 무리의 끝에서 홀로 걸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감정적일 필요 없어. 테오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일 뿐이야. 내가 이 세계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그저 활자 속에서나 존재하는 가짜야.

“······뭐지 저 새끼? 조금 전까지는 발정 난 쥐새끼처럼 돌아다니더니 갑자기 얌전해졌잖아.”

“뭐야 족제비. 네가 발정 난 쥐를 봤어?”

“아 씨! 족제비라고 하지 말라고!”

소년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기계적으로 발을 움직였다.

직전까지의 혼란은 사라졌다.

나는 나에게 벌어진 기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논리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다.

‘꿈은 아니야.’

그렇게 선명한 꿈은 꿔본 적도 없다.

아니 설령 꿈이었다 해도, 지난밤 꿈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대사를 읊는 상대를 만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것도 세 명이나. 똑같은 순서로.’

나는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 데미안 라플라스 [14세], [Lv.7]

레벨이 1이 아니라 7이다.

나는 상태창의 분류를 ‘일반’에서 ‘전투’로 변경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분명했다.

이건 나에게 몹쓸 짓을 하려던 털북숭이 감독관이 죽었을 때 떠오른 메시지다.

그것만이 아니다.

미니맵 속의 세상이 선명하다. 어둠으로 가려진 구역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정보가 가리키는 답은 하나였다.

‘나는 회귀했다.’

하지만 어떻게.

나에겐 회귀와 관련된 특성이 없다.

————————

◎ 데미안 라플라스 [14세], [Lv.7]

◎ 속성: 없음

◎ 특성: [비상한 적응력], [회복력], [불굴의 정신], [리메이커], [아스트레아의 천칭], [■■■], ······

◎ 적성: [자연 감응 Lv.1], [■■■], ······

◎ 일반 스킬: 없음

◎ 전용 스킬: [미니맵 Lv.1], [동기화 Lv.1], [■■], ······

◎ 특수 스킬: [리메이크], [■■■■ ■■], ······

————————

특성란뿐 아니라 적성란과 스킬란을 뒤져봐도 회귀와 관련된 능력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중 시선을 잡아끄는 게 있었다.

[동기화 Lv.1]

‘아······!’

생각났다.

A조부터 D조가 머무는 숙소.

그 숙소의 유리창 안을 들여다봤을 때, 돌연 심장이 크게 뛰며 메시지가 떠올랐었다.

[조건이 충족되어 새로운 전용 스킬이 해금됩니다.]

그 스킬이 바로 ‘동기화’.

게다가 스킬을 실행한 적도 없는데 제멋대로 추가 메시지가 뜨며 동기화를 시작했었다.

그래서 상세 설명을 확인하려 했지만 병사들이 오는 바람에 못 했었지.

‘그렇다면.’

나는 스킬의 상세 설명을 열었다.

◎ 동기화

[선택한 대상과 동기화한다.

리메이커는 동기화한 대상의 속성, 특성, 적성, 스킬 중 하나를 선택해 ‘카피’할 수 있다.

카피한 능력은 동기화가 유지되는 동안만 사용할 수 있다.]

‘뭐라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상대의 능력을 카피하는 스킬이라니.

무한회귀의 세계에서 이런 스킬을 지닌 등장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선택한 대상과 동기화한다.]

나는 지난밤 대상을 선택한 적이 없다.

다만 숙소의 유리창 안을 들여다봤을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심장이 뛰었을 뿐.

그런데 사실일까.

정말로 나는, 내 심장이 갑작스레 박동한 이유를 모르는 걸까.

[리메이커가 대상의 능력을 알지 못하거나, 혹은 어떠한 이유로 카피할 능력을 선택하지 않았을 시 ‘무한회귀 시스템’이 선택을 대신한다.]

나는 카피할 능력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한회귀 시스템’이 대신 선택했을 것이다.

[1레벨의 동기화는 90분 후 자동 소멸하며, 카피한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지속 시간이 추가로 감소한다.

동기화 소멸 후 24시간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필요하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나의 머릿속은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사고를 확장 중이었고, 그렇게 도출될 결론을 나는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설마······.’

믿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나의 회귀를 설명할 길이 없다.

쿵쿵,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웹소설 무한회귀의 주인공.

소설 속 세계관에서 유일하게 ‘회귀의 권능’을 지닌 등장인물.

‘카인.’

그 녀석이, 그날 유리창 안에 있었다.

***

“빨리빨리 처먹고 들어가! 이 빌어먹을 돼지 새끼들아!”

갱도로 들어간 나는 미니맵을 보며 적당한 마석 하나를 채굴했다.

물론 테오와 함께.

“너······ 어떻게······.”

테오는 그때처럼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봤다.

나는 되도록 그날과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어쩌면 나를 위해 목숨을 던졌던 지난밤의 테오를 잃고 싶지 않아서였을지도.

“뭐, 뭐야 저 새끼. 곡괭이질을 저렇게 잘했다고?”

“엇. 진짜네?”

“금발 약골의 곡괭이질이 족제비를 능가했다!”

“족제비라고 하지 말라니까!”

[도끼술 Lv.1]

작업하는 동안 적성에 ‘도끼술’이 추가됐다.

놀랍게도 곡괭이는 도끼에 속하는 도구였나 보다.

“작업 종료!”

숙소로 돌아온 나는 곧장 담요 속으로 들어갔다.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이 심했던 하루였다. 머지않아 조원들의 깊은 숨소리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지친 몸 상태와 별개로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녀석’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인.’

다시금 심장이 두근거렸다.

수년 동안 나의 머릿속을 장악했던 세계 ‘무한회귀’.

그 세계의 독보적인 주인공이었던 카인이.

나를 심각할 정도로 소설 속 세계에 이입하도록 만든 카인이.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모든 동료를 살해하고 타락의 힘을 손에 넣은 카인이.

지금,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

나는 담요를 밀치며 일어났다.

잠을 잘 때가 아니다.

이대로라면 사흘 뒤, 그 시커먼 괴물들이 다시 이곳을 습격할 거다.

헥. 헥. 헥.

나의 의도를 읽은 먼지가 헥헥 혀를 내밀었다.

먼지를 쓰다듬던 나는 무언가에 생각이 닿아 시스템 창을 열었다.

————————

– 수달꼬리팡팡: 뭐야 주인공 죽음?

– 딱풀전사: 모가지 뎅겅한 거 같은데? 그럼 죽었겠지?

[RP가 2만큼 상승합니다.]

– 강아지는야옹야옹: 쟤 주인공 아니었음? 설마 그럴 리가

[RP가 1만큼 상승합니다.]

– 박쥐인간: 이건 아니지 ㅅㅂ 작가 너 내가 다시는 글 쓰지 말라 했지 개ㅅㄲ야

[RP가 상승하지 않습니다.]

– 바토리바라기: 나는 한 화만 더 기다려 보겠음 작가가 무슨 생각이 있겠지

– 아이시테루나: 안 돼! 아직 나의 루나짱도 안 나왔는데!

[RP가 2만큼 상승합니다.]

– 연중하면개새끼: 미쳐서 돌아왔던 연중튀 작가놈은 역시 미친놈이었다!

[RP가 1만큼 상승합니다.]

◎ RP: 10

————————

댓글이 달려 있었다.

그것도 일곱 개나.

내용을 보니, 아무래도 내가 죽었던 순간에 한 화가 종료된 듯하다.

알게 된 정보는 또 있었다.

[RP가 상승하지 않습니다.]

악플에는 RP가 상승하지 않는다.

그 말은 즉, 아무리 댓글이 많아도 그게 악플이라면 도움 될 것이 없다는 거다.

◎ RP: 10

이번의 댓글로 RP는 10이 되었다.

그렇다는 것은.

[현 플레이어 레벨(Lv.7)에서 스킬 발동을 위해서는 최소 10의 RP가 필요하다.]

리메이크 스킬 발동을 위한 ‘최소 보유 조건’이 충족됐다.

나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주머니 안에 먼지를 갈무리한 뒤 테오의 마석 단검을 손에 들었다.

‘잠깐 빌릴게. 테오.’

숙소를 벗어난 나는 가까운 벽으로 갔다.

보급로를 지키는 병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어쩌면 벽을 넘는 것이 더 확률 높은 탈출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역시 올라갈 수 없나.’

나의 완력으로는 벽을 오를 수 없었다.

벽의 높이는 어림잡아 내 키의 세 배는 됐고, 손으로 쥐거나 발을 디딜 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다.

사다리나 밧줄 같은 도구가 필요할 것 같다.

‘벽에 올라 숲을 살펴보고 싶었는데.’

자리를 벗어난 나는 통문 근처를 지나 카인의 숙소에 다다랐다.

건물은 기억 이상으로 컸다.

달빛에 물든 지붕 위엔 독특한 형태의 잎을 가진 덩굴이 얼키설키 자라 있었다.

‘저것은.’

조별로 건물을 사용하는 우리와 달리 이곳엔 A조부터 D조가 전부 모여있는 듯했다.

나는 조심스레 유리창 안을 들여다봤다.

건물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좁은 실내엔 스무 명가량의 소년들이 잠들어 있었다.

‘조별로 방은 따로 쓰는 모양이네.’

내가 병사들의 숙소를 확인하기 전에 이곳을 먼저 찾은 것엔 이유가 있었다.

조금 전, 통문을 지키던 병사들과 새로 교대된 병사 모두가 낯선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광산에 최소 16인의 병사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 정도의 병력을 지휘하는 자는 제법 실력자일 가능성이 컸다.

수많은 전쟁을 경험한 백전노장 병사라든지, 혹은.

‘기사.’

기사는 병사와는 궤를 달리하는 존재. 한 마디로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자들이다.

따라서 나는 기사에게 발각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 죽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이곳을 먼저 찾았다.

카인과 ‘동기화’하기 위해.

물론 소설 속 카인의 성격을 생각하면 위험이 따르는 일이지만, 감수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사흘 뒤 나를 포함한 광산의 모두가 죽을 테니까.’

“누구냐.”

그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어른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에 우선 안도한 나는 뒤를 돌았다.

가슴에 66번을 단 소년이 저만치 서 있었다.

밤하늘을 닮은 흑청색 머리카락.

그 아래 맹수의 그것을 떠오르게 하는 호박색 눈동자.

“너는······ 그때의······?”

소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나 이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는 내 심장이 무서운 속도로 박동하는 것을 느꼈다.

이유는 분명했다.

‘카인.’

무한회귀의 주인공이자, 훗날 이 세계 최강자가 될 인물이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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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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