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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

빌어먹을 아이돌 18화

웨이프롬플라워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굴곡 없는 성공을 이뤄 냈지만, 데뷔곡은 그저 그랬다.

망한 것까진 아니지만, 무난한 성적에서 살짝 아래?

그들을 라이징 스타로 만들어 준 것은 타이틀곡이 아니라, 1집 앨범의 후속곡 였다.

회사에서 데뷔곡의 성적이 애매하자 빠르게 활동 곡을 후속곡으로 바꾼 게 신의 한수가 된 것이었다.

그래서 한시온의 선곡이 더 애매했다.

걸 그룹의 노래를 부르는 거야, 뭐 그럴 수 있다. 자신의 특색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라면.

하지만 플라워스 블룸은 너무 애매하지 않은가.

성적도, 곡의 특색도.

호기심 어린 분위기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이창준 작곡가였다.

“한시온 참가자. 혹시 이번 곡도 편곡을 했나요?”

“아닙니다. 멘토께서 이번에는 편곡 없는 원곡을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그럼 원곡 그대로를 부른다는 거죠?”

“네. 대신 전체적인 키는 조금 내렸습니다.”

음역대를 내렸다니 더 이상하다.

시원하게 고음 자랑을 하려는 것도 아니란 말인데.

막상 그랬으면 촌스러웠겠지만.

아마 다른 참가자였으면 이창준은 벌써 부정적인 감상을 던졌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한시온이 보여 준 무대가 너무 강렬했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한시온의 재능에 놀라는 정도였지만, 이창준은 그 정도 감상이 아니었다.

작곡으로 먹고 살아온 세월이 있기 때문에 한시온이 해낸 일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심심한 원곡 코드 진행을 살리기 위해서 목소리로 편곡을 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해낼 수 있는 편곡적 역량이 있더라도, 실제 목소리로 수행하는 건 별개의 영역이니까.

“솔직히 의아하군요. 하지만 기대는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의외로 혹평을 던진 건, 최대호 대표였다.

“노래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한시온 참가자 실력이면 덮어놓고 기대할 만하니까요. 하지만 퍼포먼스 측면에서 너무 기대가 안 되는걸요?”

몇몇 참가자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대호가 시청자들에게 설명하는 느낌으로 말을 보탰다.

“플라워스 블룸은 이름처럼 꽃이 피어나는 형태의 포인트 안무가 많습니다.”

당장 인트로만 해도 꽃봉오리처럼 웅크려 있는 멤버들이 피어나듯 흩어지며 시작한다.

“혼자서 표현하기 힘든 안무입니다. 꽃잎 하나가 흔들린다고 꽃이 피어나는 게 아니니까요.”

블루가 끼어들었다.

“여기서 설명을 하기보다는 무대로 직접 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네. 그게 맞겠네요. 제가 무대를 보기도 전에 조금 앞서 나갔군요.”

최대호가 깔끔히 인정하자, 멘트를 준비하던 유선화 트레이너도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정리되자 무대 위에 서 있던 한시온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무대의 정중앙에 선 한시온이 씩 웃었다.

의도하고 웃은 게 아니다.

저도 모르게 웃은 거다.

무대가 재밌을 것 같아서.

최대호는 그 미소를 보며 특별한 감상을 느꼈다.

한시온의 평소 분위기는 어딘지 모르게 눅눅한 느낌이 있다.

행동과 말은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우울해 보일 때가 있고, 강박적인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서는 이 순간만큼은 다르다.

스스로를 둘러싼 외피를 벗어 버리고, 진짜를 보여 준다.

오직 무대에서만.

‘저런 게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건데.’

그 순간, 경연곡의 MR이 흘러나왔다.

*  *  *

어린 시절엔 천재가 되고 싶었다.

한시온이란 이름이 나오면 ‘걘 천재야’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물론 난 천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특별한 척 천재 행세를 할 정도의 재능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흑역사로 가득한 회귀 초반에는 천재 행세를 좀 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애송이였고, 어렸고, 회귀가 그렇게 괴롭지 않았으니까.

코인이 무한정 주어진 게임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음악 실력이 늘고, 회귀가 버거워질 때쯤 깨달았다.

천재는 특별한 걸 특별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하는 사람이다.

배우지도 않은 악기로 세상에 없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그날 배운 모든 연주 기법을 당연하다는 듯 쓰는 사람이 진짜 천재다.

그동안 내 천재 행세를 보고 천재라고 했던 사람들은 립 서비스를 했던 것뿐이었다.

혹은 천재가 뭔지 판단할 능력조차 없는 쭉정이였거나.

이때부터 난 진짜 천재가 되었다.

남들이 모르는 모든 시행착오를 지난 생에 묻어 버리면, 당연한 것들만 남으니까.

특히 작곡에서 그러했다.

난 번뜩이는 감각과 천재적인 즉흥성으로 작곡하지 않는다.

이미 전부 표현해 본 것들 중에서 가장 적절한 것을 골라 쓸 뿐이다.

그냥 내 작곡 농장 안에 있는 수확물들이 남들보다 몇 십 배는 많을 뿐이었다.

그래서.

♬♪♪♩~

웨이프롬플라워의 데뷔곡 을 듣는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거…….’

남자 노래다.

메인 멜로디 구성하는 요소들과 곡 전체의 코드 진행이 그렇다.

플라워스 블룸은 분명 남성 보컬을 위해 만든 곡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프로덕션 과정에서 전체적인 피치를 높여서 걸 그룹 노래로 바꾸어 버렸다.

문제는 맨 버전과 우먼 버전의 수준 차이가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우먼 버전이 40점짜리 노래라면, 맨 버전은 80점 이상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단지 음역대를 올린 것만으로 그 정도 차이가 발생할 수 있냐고?

충분히 가능하다.

음을 쌓는다는 건 아주 섬세한 작업이다.

메이저 코드는 밝고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마이너 코드는 어둡고 슬픈 느낌을 준다.

하지만 C 메이저 코드는 도-미-솔, C 마이너 코드는 도-미 플랫-솔이다.

고작 플랫 음 하나 차이로 정반대의 느낌이 나는 것이었다.

그러니 곡 전체의 피치를 올린 건, 정말이지 무식한 짓이었다.

물론 우먼 보컬에 맞춘 부분적인 편곡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솔직히 없는 거나 다름없다.

대체 왜 좋은 곡을 망쳐 놨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관심도 없다.

작곡가가 빈정이 상해서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했거나, 돈과 관련된 어떤 사정이 있었겠지.

나한테 중요한 건 맨 버전의 플라워스 블룸이 아주 좋은 곡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부르는 것이고.

웨이프롬플라워는 이 노래로 ‘개화’를 표현했지만…….

나는 다른 걸 표현할 생각이다.

*  *  *

플라워스 블룸의 인트로는 플루트 소리가 차가운 느낌을 주는 냉정한 멜로디였다.

이는 꽃이 피어나기 전의 겨울을 뜻했다.

하지만 겨울은 영원하지 않고, 봄은 찾아온다.

인트로의 끝을 알리는 킥 드럼이 박히는 순간, 따뜻한 느낌의 메인 멜로디가 쏟아지며 꽃이 피어난다.

안무도 마찬가지였다.

차가운 인트로에 맞춰 꽃봉오리처럼 모여 있던 멤버들이 사뿐사뿐 피어난다.

완전히 피어났을 때, 첫 박에 박히는 킥 드럼과 함께 봄을 상징하는 안무가 시작되니까.

하지만 이건 원래 안무다.

“……?”

한시온은 인트로에서 어떤 동작도 취하지 않았다.

박자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며 사선으로 비스듬히 서있을 뿐이었다.

‘뭐야? 창작 안무야?’

‘미쳤나?’

현역 선배의 무대를 커버하면서 안무를 다르게 가져간다는 건, 기존 안무가 별로라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설령 본인은 그런 의도가 아니더라도 웨이프롬플라워의 팬들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욕을 안 먹을 리가 없다.

참가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인트로의 끝을 알리는 킥 드럼이 쿵 박혔다.

동시에 한시온이 움직임을 가져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길었던 밤에 마침표를 찍어

마침내 세상에 인사를 Hi

Dudu- Deh, Deh

무대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몇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춤을 잘 춘다는 것.

대단한 춤사위를 선보인 건 아니었다.

이제 막 시작한 노래에 뭐 얼마나 화려한 동작이 들어가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눈에 춤 실력이 보이는 건, 독무였기 때문이었다.

눈을 현혹시킬 요소가 전혀 없는데도 자연스럽다.

게다가 춤을 추면서도 안정적인 라이브를 선보이는 걸 보면, 연습이 된 거다.

꿈도 안 꿨던 Yesterday

기대한 오늘 Yes For Day

두 팔을 뻗어

Dudu- Deh, Deh

하지만 한시온의 춤보다 강렬한 건 노래였다.

노래가 좋다.

분명 첫 마디 때는 좀 어색하게 들렸다.

익히 알고 있는 원곡과 음계가 확 다른 저음이 꽂히다보니까 괴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괴리감은 금방 없어졌고, 멜로디가 귀에 꽂히기 시작한다.

사운드가 매력적이다.

원곡보다 훨씬 더.

마치, 이게 원곡인 것처럼.

‘뭐지?’

<가로등 아래서>와는 다르다.

그땐 MR은 그대로였고, 노래를 다르게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노래도, MR도 그대로다.

그저 옥타브를 내렸고, 낮아진 옥타브에 맞춰 보컬이 주는 느낌이 다를 뿐이다.

본래 플라워스 블룸은 피어나는 꽃처럼 밝게 부르는 노래였다.

하지만 지금의 한시온의 노래는 덤덤하면서도 블루한 느낌이다.

장르는 완전히 다르지만, 포스트 브릿팝이 주는 재미와 비슷했다.

고작 옥타브 변화로 이런 느낌을 낼 수 있다고?

또 뭘 한 거지?

날 둘러싼, 따뜻한 온도

살갗을 스치는 너의 손도

하지만 아니었다.

이번엔 정말 음계만 바꿨다.

다만 곡의 모든 부분을 균등하게 낮추진 않았다.

플루트가 메인인 인트로는 원곡 그대로.

첫 두 마디는 완전 8도 낮게.

다음 두 마디는 11 반음 낮게.

다음 두 마디는 7 반음 낮게.

다음 두 마디는 다시 원곡.

포근하게 감싸는 옷도

채우는 포근한, 포근함

사실 블루는 한시온의 행동을 보고 좀 어이없어했다.

편곡하지 말고 원곡을 부르라고 했더니, 이게 편곡과 뭐가 다르냐고.

이에 한시온은 악보를 전혀 건드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편곡이냐고 되물었고.

전부, 오늘을 위했나 봐

위했나봐, 그랬나 봐

그사이, 곡이 후렴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웨이프롬플라워가 플라워스 블룸으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건, 후렴이 평범한 탓이 컸다.

솔직히 조금 촌스럽기도 했다.

박자를 정박으로 쪼개며, 그럴듯해 보이는 단어들을 반복시켰으니까.

하지만 한시온은 반복하지 않았다.

피어나!

Bloom!

“……!”

후렴은 원곡이었다.

낮췄던 음계가 원래대로 돌아오며 확 튀어오른다.

여자 키를 진성으로 시원하게 올리는 한시온의 고음이 주는 청각적 쾌감이 굉장했다.

놀랍게도, 이것도 편곡이 아니었다.

원래는 여섯 명이 번갈아 가며 ‘피어나, 피어나, 피어나. Bloom, Bloom, Bloom’을 메아리처럼 불러야 했다.

여섯 개의 꽃잎이 활짝 펼쳐지는 안무와 함께.

하지만 한시온은 혼자였다.

그러니 음을 길게 빼서 딱 한 번만 부른 것이었다.

근데, 그게 너무 그럴듯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더욱 충격적인 세컨드 훅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 화려했냐고?

아니었다.

더 높은 고음을 터트렸냐고?

전혀 아니었다.

Always wait, Blossom

Always wait, flower

얼음물을 끼얹은 것 같은 저음.

완전 16도, 즉 2옥타브를 내려 버렸다.

그러면서도 성량이 전혀 죽지 않은 게 놀라울 정도였다.

저음은 노래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앞선 고음이 마지막 발악이었던 듯, 분위기를 일소한다.

덕분에 심사위원들과 몇몇 참가자들은 깨달았다.

한시온은 피어나는 꽃의 입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도 다시 피어나고 싶다고 소리치고 있는.

져 버리기 직전의.

낙화(落花).


           


Damn Idol

Damn Idol

빌어먹을 아이돌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a harrowing car accident that defies the odds of survival, Han Si-On finds himself once again at the crossroads of fate, quite literally. Miraculously walking away with his life, he faces the daunting task of navigating a life he’s all too familiar with—due to a cryptic deal that traps him in a cycle of regressions. [Mission failed.] [You will regress.] His mission? A seemingly impossible feat of selling 200 million albums, a goal dictated by the devil himself. With each regression, Han Si-On returns to the age of 19, burdened with the knowledge and memories of countless lives lived, all aimed at achieving a singular, elusive go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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