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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0

180화 운명의 여신

레온이 누군가를 만나러 직접 행차하는 일은 아무래도 드물 수밖에 없다.

그는 단순한 시민이나 기사가 아니라 왕. 왕은 누군가가 알현하는 존재이지 결코 그 반대일 수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여기서도 나름의 급을 따지면 반대의 경우도 성립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같은 급의 왕을 만나러 갈 때. 안동길 대통령이나 총리 등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에게도 나름 격이 맞는다고 할 수 있다. 힘의 차이는 둘째치고 말이다.

그런 레온도 어디까지나 동격의 존재를 만나러 간다는 것이 기본 전제로 깔려 있다. 하지만 예외 중의 예외가 있다.

사자심왕인 그조차도 ‘알현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있기에.

“여기인가?”

레온과 도널드 부국장을 태운 외교관 차량이 유명한 호화 호텔 앞에 멈춰 섰다.

“예, 방에서 기다리시면 곧 그분을 모셔오라 이르겠습니다.”

도널드 부국장은 레온을 협상 테이블에 앉혔다는 생각에 쾌재를 띄웠다.

‘우리 미국은 만신전을 유치하기 위해 그 어떤 나라보다도 많은 걸 내줄 수 있다.’

그것이 미국의 힘이고 지구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나라의 저력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마찰이 있겠지만, 이미 백악관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레온이라는 초전력을 확보하라는 명을 받았다.

“폐하, 또 한 번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만, 저희 미합중국은 폐하와 만신전을 모시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도널드 부국장이 서류를 내밀었다.

“이민 서류더냐?”

“예, 폐하뿐 아니라 휘하의 그 누구든지. 바라신다면 도시 하나가 통째로 이주한다 해도 미합중국은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선정하신 곳에 폐하만의 라이온하트 독립왕국을 세워 드리겠습니다.”

“······.”

레온은 상대가 어지간히도 자신이 있는 모양이라고 여겼다.

단순히 이계의 신을 만나게 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지도.

물론 앞선 라이온하트 독립왕국 부지만 해도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선 어마어마한 제안이다.

그리고 만신전과 자신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고.

“이곳은 시장바닥이 아니다.”

“예? 아, 제가 무슨 실수라도······.”

“신을 알현하는 자리다. 경건한 자세로 마음을 정갈히 해야 할 터. 거래를 청하기에 어울리는 자리는 아니란 것이다.”

“그,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도널드 쿠퍼 부국장은 서둘러 차를 내오라 이르며 어색한 상황을 모면하려 들었다.

“그 신의 이름이나 성향에 대해선 알고 있느냐?”

“아, 메리엘 여신님은··· 이런, 그분의 신명은 메리엘이십니다. 운명의 여신이시지요.”

“운명의 여신?”

“대격변 이후 저희 합중국에 어떤 생존자 게이트가 열린 적이 있습니다.”

무려 흑색 게이트. 흑색 게이트가 출몰할 때마다 수백 만의 사람들이 죽거나 나라가 멸망했기에 미국 당국은 총력을 다해 게이트 공략을 준비했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나온 분은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운명의 여신 메리엘이라 칭하였다.

“우리 미합중국이 대격변 이후 가장 빠르게 재건에 성공한 건 메리엘 님 덕분이기도 합니다.”

“대단한 힘을 가진 신인가 보군.”

“폐하처럼 무력적인 의미는 아닙니다만, 신의 권능이란 놀라울 뿐이지요.”

[어찌 생각하느냐?]

레온은 제 속내를 묻는 여신 아리아나의 음성에 속으로 대답하였다.

‘한 번 만나는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이온하트가 아니더라도 다른 신들은 있을 법했다.

당장 짐승신들이 그러했고, 오크들의 신 또한 그 힘이 실로 강력했다.

레온의 세계에서만 수많은 신들이 있었는데, 지구의 야훼나 알라가 가짜이리란 법도 없다.

또한 레온처럼 이계의 신이 지구로 넘어오는 경우도 충분히 상정한 바였다.

곧 문틈으로 무언의 기운이 흘러들어왔다. 좀 전부터 느껴지던 강대한 마력의 기운. 그것이 헌터 관리국의 부국장과 예의 그 여신을 호위하는 자들의 기운임을 알아차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라이온하트 폐하.”

“오랜만에 뵙소.”

그들은 미국 최대의 헌터길드 매버릭의 S급 헌터들인 알렌 테일러와 미니트맨이었다.

지난 동해 용궁 게이트에서 미군이 파견한 헌터 공략대의 리더들.

“그간 수양은 충분히 하였느냐.”

“하하, 이래 봬도 만신전을 전파하는 데 제가 가장 열심입니다.”

그들은 혼돈의 악마대공 라크샤르의 마기에 짓눌려 굴복했던 경험이 있었다. 레온 덕에 제정신을 차렸지만, 그 뒤로 깊게 사죄한 뒤, 미국에서 만신전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야피가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았기에 레온도 생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 정도 인물을 호위로 붙일 정도로 안전에 신경 쓰고 있는 것 같군.’

곧이어 안전을 확보한 두 헌터가 희고 고운 피부의 젊은 여인을 방안에 모셨다.

인간의 것이 아닌듯한 백금빛 머리카락에서 느껴지는 명확한 성력의 기운에 레온의 고개가 숙여졌다.

“이계의 신을 뵙습니다.”

한눈에 그녀가 진정 여신임을 알아본 레온이 필멸자로서 예를 갖추었다. 그간 사자심왕의 오연함을 아는 이들이라면 놀랄 만한 자세다.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여인이 반가운 듯 미소 지었다.

“인간의 탈을 쓰고 계신다 한들 신의 기운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영락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이 모시는 신과는 다른 세계의 신입니다. 적대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 여겼습니다만.”

“제가 적대하는 존재는 오직 악일 뿐. 이교라 하여 배척하지 않습니다.”

[레온 왕이 섬기는 신들이 부럽군요. 이토록 선명한 낙원과 신성이라니.]

그때, 메리엘이 필멸자들을 들을 수 없는 음성으로 말하였다.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오직 레온 안의 만신전 신들과 레온뿐이다.

[흐음, 사람의 탈을 썼기에 신성을 잃었나 싶었는데, 그 정도까진 아닌 모양이구나.]

아리아나가 직접 나서 대답했다. 그녀가 신들 간의 대화를 원한다면 능히 응해줄 수 있다.

[네, 저희는 레온 왕과 같은 존재가 없었으니까요. 그와 같은 신도를 만나신 것은 여러분들의 홍복이지요.]

[하여 무슨 생각이느냐?]

아리아나의 물음에 메리엘은 싱긋 미소 지었다.

[그저 반가움에 이리 말을 걸어봤을 뿐이랍니다. 하지만 이것도 여기까지 하지요. 아해들이 불안해하니.]

메리엘의 시선이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도널드 부국장에게로 향했다.

분명 양자 간에 어떤 대화가 오가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없으니 안달할 수밖에.

“그럼 도널드 부국장. 제 소개를 부탁 드리지요.”

“아! 예, 예! 폐하, 이쪽은 메리엘 여신님. 본래 세계에서는 운명의 여신이었던 분입니다.”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도널드 부국장의 손에 의해 소개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저희 합중국이 대격변에서 가장 빠르게 피해를 회복하고 지금까지도 선전하고 있는 것은 메리엘 여신님의 ‘예지’ 덕분이지요.”

“예지?”

대격변이 일어난 후 수많은 나라가 폭락하고 멸망했다.

초기 게이트 공략 실패, 그로 인한 마소 유출과 땅의 오염. 세계 식량경제의 붕괴와 야생화된 몬스터의 안보 위협까지.

대격변 초기는 가히 지옥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많은 나라들이 이 사태를 회복하는데, 십수 년이 걸렸다.

그런 와중에 미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대격변의 피해를 빠르게 회복했고, 기습적으로 열리는 고레벨 게이트나 온갖 이변에도 손쉽게 대처했다.

“그것이 그 예지의 힘이라는 건가?”

“바로 그렇습니다. 메리엘 님께서는 미래의 운명을 보고 그것을 예방하실 수 있습니다.”

가령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적색 게이트의 내부가 어떤 위협이 있을지, 수많은 헌터들의 목숨을 잃게 만든 변동 게이트의 등장 등.

여신 메리엘은 그 위협을 감지하고 미국 정부에 경고해왔고 그로 인해 미국이 얻은 이득은 상상을 초월했다.

“과연, 허나, 짐이 미국에 이주하는 것과 여신의 가호가 어떤 의미가 있지?”

“메리엘 님께선 운명을 ‘확정’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운명을 확정한다고?”

“예.”

도널드 부국장은 여러 서류들을 끄집어내며 예시를 들었다.

거기에는 여러 헌터들··· 정확히는 미국을 대표하는 S급 헌터들만을 고르고 골라 어떤 ‘예지’가 있었으며 그 예지가 반드시 맞아떨어졌다는 증거였다.

“과연, 예지를 하는 것뿐 아니라 예지를 확정시킬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이로군.”

“그렇답니다. 본디 미래란 사소한 행동으로도 얼마든지 뒤바뀌는 것이지요.”

하지만 메리엘은 그 예지를 취사선택하여 확정시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힘도, 기회도, 목숨까지도 구할 수 있는 강력한 신의 기적이다.

레온의 만신전과 그 신들 또한 세계를 뿌리째 뒤흔드는 강력한 힘이었지만, 메리엘 여신의 힘도 충분히 강력했다.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그녀의 힘 또한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아닌가.

“폐하, 폐하께서 저희 합중국에 이주하시고 동맹관계를 맺으신다면 저희는 메리엘 님의 힘을 우선적으로 폐하에게 대여해드릴 수 있습니다.”

“신을 대여한다니, 무엄하구나!”

레온의 호통에 도널드 부국장은 아차 싶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메리엘은 싱긋 웃으면서 레온의 노기를 식혔다.

“저는 미합중국 정부와 협력관계랍니다. 제 안전을 위해 저의 존재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제가 그들을 돕는 대가로 그들은 절 신으로 모시고 신전을 지어주기로 했거든요.”

“메리엘 여신께서 먼저 힘을 빌려주는 대가로 말입니까?”

“후후, 그렇지요.”

“저들이 배반한다면? 정치적인 이유로 신조차 배반할 수 있는 게 인간입니다.”

제국이 그러했기에 레온은 인간의 방종함을 경계했다. 하지만 메리엘 여신은 여전히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땐 분노해야지요.”

“······!”

그 말에 파르르 떤 것은 도널드 부국장이었다.

힘을 동반하지 않은 분노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본디 신들이란 얼마나 경이로운 존재인가.

만일 미합중국이 모든 사태가 일단락된 뒤, 아무렇지도 않게 약속을 위반한다면 신의 분노와 그로 인한 리스크를 감히 계산할 수 없었다.

미국 정부도 굳이 그 리스크를 짊어질 생각도 없었고.

“하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미합중국은 러시아나 이란 같은 불량국가가 아닙니다.”

거래에는 응당 합당한 대가를 치른다. 지구상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국가답게 이런 부분에서는 계산이 확실하다.

“오늘은··· 제가 첫 만남의 선물을 드리려고 한답니다.”

“선물··· 말입니까?”

“예, 당신의 운명 한 가지를 확정시켜드릴게요. 단지, 이 힘을 쓰고 나면 한동안은 힘에 부친다는 걸 레온 왕이 기억해주셨으면 하는군요.”

메리엘 여신은 레온에게 구태여 대가를 요구하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레온이 대가를 약속으로 신을 섬기는 신앙을 천박하게 여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신과 신도들의 관계는 서로가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는 걸 미덕으로 삼는다. 서로가 어련히 알아서 챙겨주는 관계. 존중하는 그 이상적인 관계 말이다.

[잠시 당신들의 기사를 빌리도록 할게요.]

미리 아리아나와 만신전의 신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메리엘 여신은 레온은 손을 붙잡았다.

그녀는 인자한 미소로 레온에게 다가가 그의 눈빛과 마주쳤고 맑고 깨끗한 두 눈동자가 레온의 푸른 눈을 꿰뚫었다.

‘좋아, 됐어!’

도널드 부국장은 쾌재를 부르며 레온의 반응을 기대했다.

비록 신도와 세계를 잃은 메리엘 여신이지만, 그 힘은 아직까지도 강력하다.

그녀가 보여주는 운명과 그 운명을 확정지을 수 있다는 메리트를 이 사자심왕이 모를 리 없다.

‘어쩌면 당장 만신전에 메리엘 여신을 편입시키려 들 수도 있겠군. 그건 좀 곤란한데.’

미 정부는 메리엘 여신을 경외하지만, 그보다도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에 협력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미 상당한 신도를 확보한 만신전이 메리엘 여신을 꼬드겨 만신전으로 편입시킨다면 미 정부는 닭 쫓던 개꼴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도박을 해볼 만큼 만신전은 탐스러운 존재야.’

생명과 풍요의 여신이 가진 땅의 정화와 축복받은 작물.

빛과 정의의 여신, 전쟁과 불꽃의 신이 가진 강력한 전투의 가호.

철과 대장장이 신의 별철과 그 가공능력.

메리엘 여신의 예지도 엄청난 힘이지만, 만신전은 그 종합세트나 마찬가지.

괜히 미 정부가 알짜배기 영토 할양까지 약속하며 레온을 꼬드리겨는 것이 아니다.

‘그나저나 궁금하군. 메리엘 님께서 사자심왕의 어떤 미래를 보았을지.’

그것이 미합중국에도 이득이 되기를 기대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후우······.”

메리엘 여신이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 앉았다. 힘을 쓴 뒤에는 종종 저런 경우가 있었기에 도널드 부국장은 손수건을 그녀에게 바쳤다.

“메리엘 님?”

그러나 숨을 연신 들이쉰 메리엘 여신의 눈동자가 동요하며 흔들리고 있었다.

“레온 왕, 당신은······.”

무언가를 본 그녀의 목덜미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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