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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1

181화 반신의 운명

여신 메리엘.

그녀는 여타 생존자들이 그러하듯 악마들에 의해 멸망한 세계의 생존자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본디 천상의 존재인 그녀가 사람의 형상으로 빚어진 육신에 빙의했다는 것.

게이트를 통해 세계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곤 하나 덕분에 신성으로서의 힘은 크게 줄어들고 말았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미합중국이라는 지구 최강의 강대국.

그곳에서 메리엘 여신은 자신의 힘을 합중국 정부에 선보이며 미국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보호를 받았다.

그녀가 미국으로 넘어온 지도 어느덧 십오년. 그동안 그녀는 숱한 미국 대통령들과 만나며 그들의 운명을 확정 지어주고, 미 정부에 빚을 늘려왔다.

이 세계에 악마가 도사렸음을 알고 있는 그녀와 미 정부로선 당장의 결제는 미뤄두었지만, 언젠가 그 거대한 빚을 갚을 때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해도 메리엘 여신의 힘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미국이란 나라의 국교를 메리엘 교로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종교계의 힘이 어느 때보다도 약해진 현대였다. 미국 정부가 진심으로 그럴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가진 힘은 개인을 대상으로는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한 사람의 운명을 확정 짓는 것.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인가.

확정된 순간까지 해당 헌터는 죽음조차 피해가며 그 미래를 결정짓기 위해 모든 것이 변한다.

만신전의 성법이 그러하듯 여신의 예지는 가히 ‘개념의 힘’이라 할 수 있었다.

‘과연, 메리엘 님이 본 이 사내의 운명은 무엇일까?’

순수한 호기심도 없잖아 있다. 도널드 부국장은 메리엘 여신이 볼 레온의 운명이 궁금해졌다.

“후우······.”

메리엘 여신이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레온을 응시했다. 그녀는 드물게 동요하고 있었다.

“레온 왕, 당신은······.”

그녀는 한동안 레온을 쭉 지켜보았다. 혹시 자신이 들을 수 없는 방식으로 대화를 하는가 싶었지만, 레온을 흘겨보니 그런 것도 아닌 듯하다.

“미안해요, 도널드 부국장.”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

“레온 왕에게 저는 도움이 안 될 것 같군요.”

“예에?”

이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례였다. 메리엘 여신은 쭉 미합중국 정부와 협조적이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여겼는데, 그녀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은 것이다.

“안 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예요. 이 차이점을 착각하지 마세요.”

“그, 그게 무슨······.”

“레온 왕. 저는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없지만, 미 정부의 제안은 고민해보도록 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군요.”

“고려해두지요.”

레온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정장을 고쳐잡곤 메리엘 여신의 손등에 키스하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끝인가? 정말로 이대로 그냥 돌아간다고?

도널드 부국장은 레온을 배웅하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메, 메리엘 님······.”

번뜩 정신이 든 그는 메리엘 여신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어딘가 묘하게 책망의 시선이 담긴 것이 그가 마냥 신실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메리엘 님···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혹시··· 사자심왕의 운명을 보지 못한 겁니까?”

“저는 그의 운명을 보았습니다.”

“헌데 어찌······.”

“그의 삶은 투쟁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수많은 투쟁이 그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기꺼이 그 길을 걸을 거예요.”

여신의 권능은 분명 레온의 미래를 예지했다. 하지만 그것은 의미가 있으면서도 그리 의미 있는 일이 아니다.

미래는 예지된 것만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확정할 수 있는 권능은 메리엘이라는 운명의 여신이 가진 힘이다. 하지만······.

“불가하더군요. 레온 왕의 운명을 확정 짓는 것이.”

여신은 레온이 가진 운명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골라 그를 확정 지으려고 했다. 그가 애타게 바라는 것, 미련으로 남은 것··· 그도 아니면······.

그의 숙적이라던가.

“후··· 설마 정말로 인간의 몸으로······ 도널드 부국장은 미 정부에게 이 사실을 전하는 게 좋을 거예요. 레온 왕과는, 무조건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말이에요.”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실상 불발된 이주계획에 대한 아쉬움은 둘째치고 여신의 이 태도는 어딘가 이상했다. 언제나 명확한 답을 주던 그녀 아니던가.

“본디 제가 가늠할 수 있는 운명은 필멸의 신분을 가진 자들뿐이지요. 하지만 그는 제가 가늠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가 반신이어서 그렇습니까? 윱튜브에서는 그런 홍보를 하던데요.”

그 말에 메리엘 여신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격은 반신에 머물러 있지만, 이미 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자신이 어떠한 개념이 되어 있어요.”

“어떤···?”

“승리.”

승리의 운명을 타고난 신.

메리엘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으며 어딘가 흥분한 듯 보였다. 좀전의 식은땀도 그 때문이라는 것처럼.

“수많은 세계가 악마들에 의해 멸망했고, 또 수많은 신들이 제 세계를 잃어버렸지요. 레온 왕과 그 세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들과 자신과 같은 신들의 차이점은 명확했다.

“레온 왕. 그 살아있는 신의 존재야말로 만신전과 우리들을 구분 짓는 명확한 경계입니다.”

신이 신의 운명에 개입할 수는 없는 법.

만신전의 신들이 어찌하여 그토록 한 필멸자를 아끼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의 몸으로 신이 된 사내라니. 그야말로 기적의 산물. 역사의 가장 큰 축이 될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숱한 차원 속에서도 만신전의 신들을 우뚝 서게 할 영광의 기둥이 될 존재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레온 왕을 적으로 삼거나 견제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게 미합중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테니까.”

여신은 확고한 예지를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남겼다. 그녀 나름의 예의였다.

‘하지만··· 이 내가 가늠할 수 없었던 존재가 하나 더.’

그의 운명을 지켜볼 때,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너무나 파괴적이며, 교활한··· 이 세상 모든 폭력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가.

「꺼져라.」

미래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불쾌하다는 것처럼.

놈의 파괴적인 시선이 여신의 예지를 깨뜨리고 쫓아내 버렸다.

사자심왕의 숙적이.

* * * *

-미국 헌터 관리국 부국장이 레온 폐하와 만났다! 내가 봤음!

-좆됐다! 저 인간 때문에 S급 헌터만 두 명이나 귀화했잖아!

-야당 이 개새끼들아!! 꼭 이래야 속이 시원했냐!

-똥길이 뭐함? 왜 보고만 있냐? 쪽바리, 양키 놈들 싹다 잡아서 감옥에 안 처넣을 거임?

-무슨 근거로?

-내 눈물이 곧 근거임.

안동길 대통령은 날이 가면 갈수록 악화되는 여론에 골머리를 썩이며 국정원장의 보고를 들었다.

“영국은 차기 여왕인 다이앤 공주와의 혼담을 걸었고, 그 외에도 프랑스, 일본, 인도, 벨기에, 독일 등이 비슷한 제안을 했고······.”

“미국. 미국은 뭘 어쩌겠데?”

“미국 영토의 할양과··· 독립왕국 건설입니다.”

“미국이 그렇게까지?”

안동길 대통령은 레온과 만신전에 제안된 어마어마한 지원 앞에 숨을 삼켰다.

이렇게 된 이상 한국도 뭐라도 해야 했다. 특별법을 제정하던, 자치구를 제안하던!

“가, 각하!”

“무슨 일이야!”

“폐, 폐하께서! 레온 폐하께서 각하를 뵙자 하십니다!”

“······!”

설마 이미 이주를 마음 먹은 것인가! 한 대표 이 개새끼!!

안 된다. 레온 덕분에 올라간 지지율이 얼만데! 레온이 해외로 이주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자신은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다.

“어, 어디 계시는데!”

안동길 대통령은 서둘러 레온이 기다리고 있다는 응접실로 향했다.

“오, 안 대통령. 잠깐 산책이나 하지 않겠나.”

“아, 예예!”

한국 대통령과 만신전 사자심왕의 산책길. 안동길 대통령의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레온은 별거 없는 신변잡기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가는 거야? 진짜 가려는 거야? 작별인사 하러 온 거 아냐?!’

안동길은 필요하다면··· 나라를 위해서 무릎이라도 꿇을 생각이었다.

그는, 악마들의 침공이 가속화된 작금에는 더더욱 대한민국에 필요한 사람이다. 필요하다면··· 차기 대통령 선거라도 지원할 생각이었다.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아버지!’

독립군이었던 할아버지와 민주투사였던 아버지에게 연신 사죄하는 안 대통령.

한때, 한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할 거라며 경계하던 레온이 이토록 커다란 존재가 될 줄은 그도 몰랐을 것이다.

“그나저나 안 대통령. 내 그대에게 선물할 것이 있네.”

“그, 그게 무슨······.”

레온은 돌연 아공간에서 검 한 자루를 꺼냈다. 갑작스레 등장한 무기에 경호원들이 당황했으나 감히 권총을 뽑는 자는 없다.

애초에 사자심왕이 마음먹는다면 누가 그를 막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여신 아리아나의 축복이 담긴 별철검이지. 내 안 대통령에게 주는 선물일세.”

그것이 얼마나 귀한 아이템인지는 안 대통령도 너무나 잘 알았다. 하지만 이 시국에 이런 선물이라니? 마치 작별 선물 같지 않은가!

“폐하!”

안 대통령이 돌연 무릎을 꿇었다. 기자가 보았더라면 당장 오늘 뉴스에 대서특필될 돌발행동이었다.

“가지 마십시오! 한국을 저버리고 어디로 가시렵니까!”

“안 대통령?!”

드물게 레온이 당황하여 눈을 크게 떴다. 그는 곧장 안 대통령을 일으키려 했으나 그가 완강히 거부했다.

“다 제가 못난 탓입니다! 야당 그 개새끼들··· 아니, 그놈들을 제어하지 못한 제가 죄인입니다! 반드시 바로잡을 테니 제발 이주만은···!”

“자네, 어찌 그런 소릴 하는가? 짐은 한국을 떠날 생각이 없네.”

“흐흑! 경기도라도 내어드릴깝쇼······예?”

한국을 떠날 생각이 없다. 그 말에 안 대통령은 흘러내리려던 눈물을 삼키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안 떠나시는 겁니까? 미국으로?”

“미국뿐 아니라 어디에도 가지 않을 생각이네. 뭐, 만신전 지부를 세우는 것 정도는 협약을 맺었지만 말이야.”

“어, 어째서······.”

안 대통령이 생각해도 그들의 제안은 매혹적이었다. 한국도 상응하는 제안을 할 수야 있지만, 왕족과의 혼담이나 영토 할양 같은 건 야당의 반대 때문이라도 힘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사자심왕은 이 좁은 땅떵어리에 남겠다고 한 것인가?

“하하, 내 자네를 두고 어디에 가겠는가. 짐은 어려울 때 도운 친구를 잊지 않네.”

“폐하······.”

안동길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 느꼈다.

솔직히 광신도 야만인 깡패 기사라고 욕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는 또한 사내였다.

의리와 우정으로 가득 찬 옛 낭만 있는 사내대장부 말이다.

“하지만 짐이 활동하는 것에 대해 여러 법적인 문제가 많은 듯하더군. 자네도 알다시피 짐에게는 지켜야 할 법도와 품위가 있네. 그 부분은 자네가 좀 신경 써줬으면 하는군.”

“무, 물론입니다. 세금이나 불법 무기 같은 건 오강혁 협회장과 야크트 스피너 경을 통해 해결토록 하겠습니다. 야당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 신경 써주겠다니 내 한시름 덜었군 그래.”

레온은 안 대통령의 어깨를 토닥이며 껄껄 웃었다. 두 사람의 산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안 대통령은 곧장 이 야당 놈들부터 족쳐야겠다 마음먹었고.

* * * *

돌아가는 길, 레온은 수행인원으로 함께 왔었던 불카누스와 함께 나주로 향하는 헬기에 탑승했다.

“의문이 있는 듯하군, 불카누스 경.”

“음! 나로써는 조금 이해가 안 되오.”

“어째서 미국의 제안을 받지 않았냐는 것이겠지?”

“그렇소. 영국 공주야 뭐··· 베아트리체 여왕전하를 냅두고 그 공주와 혼인하면 바보등신이오만.”

“한 나라의 공주이시다. 예를 갖추게.”

“큼···! 이거 실례. 뭐, 처첩 정도라면야 가능하겠지만, 신녀조차 아닌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도 조금 문제가 있긴 하외다.”

라이온하트 왕국의 사자심왕은 보통 독실한 신녀와 맺어졌다. 레온도 다사다난한 러브 스토리가 있지만, 달과 순결의 여신 디나의 신녀를 보쌈해서 왕비로 삼았고.

“하지만 합중국의 제안은 내가 보아도 대단한 이득이외다. 단번에 라이온하트를 재건할 수 있었을 텐데.”

“뭐, 쉬운 길이긴 하다. 허나, 한계도 명확한 길이지.”

“으음?”

불카누스의 의문에 레온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의 원대한 계획대로라면 미국 땅에 자리 잡아서야 불가할 텐데?”

“······그렇다면!”

“짐도 제국의 타락에 생각한 바가 많다는 것이다.”

불카누스는 예상치 못한 답을 들었다는 듯 경직하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GRARARARARA────!!”

* * * *

사퇴하세욧 사태로 촉발된 전세계 열강들의 파격적인 만신전 구애로 야당의 지지율은 날이 갈수록 파국으로 치달았다.

결국 한국 제1야당이 손을 들었다.

“저희는 만신전에 대한 고발을 철회하며 불미스러운 일로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 폐하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죄 드립니다.”

야당의 대국민 기자회견과 함께 공식적인 항복선언이 벌어졌고, 이후에도 나락으로 떨어진 지지율로 인해 내부가 대거 물갈이 됐으며 새롭게 당 대표가 된 인사는 청문회 의원들을 징계했다.

야당은 지지율 반등을 위해 만신전 신도들을 대거 비례대표로 선출하니 이에 맞서기 위해 여당 또한 만신전 의원 경쟁에 참전했으니──

“빛과 정의의 여신의 이름으로 정의로운 사법체계 개혁을 이룩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전쟁신 페토스 님의 권세와 함께 악마 놈들을 색출합시다!”

“목포의 아들 이 신세길이가! 포마 신님의 신전을 유치하겠습니다! 여기 크라샤트리아 족 부족장 리오나르도 안터섹트 클라우디우스께서 저를 지지해주시는 게 그 증거입니다!”

바햐흐로 대한민국 정치계의 혁명에 준하는 파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 * *

중국이 53개의 국가로 찢어진 가운데, 헤이룽 인민국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과 북한 회령과 맞닿은 국경선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중국 붕괴 이후 이 국경선은 상당히 유명무실해졌는데, 53개로 찢어진 구 중국의 잔재국가들은 여전히 국가로서는 거대했지만, 국경을 관리할 힘도, 군대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격변 이후 저마다 제 살길 바쁜 와중에 유일한 스폰서인 중국마저 저꼴이 났으니 북한은 그야말로 생지옥이 된 지 오래였고, 날이 갈수록 탈북자들은 늘어만 갔다.

“끄응··· 이봐, 구씨. 정말 저 강을 건너야겠어?”

“저도 고민입니다.”

구대성.

두어달 전 있었던 대규모 게이트 사태 이후로 헤이룽 인민국에 남았던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얼어버린 두만강을 지켜보며 고뇌에 빠졌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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