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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2

182화 편력기사 구대성(1)

벌판이었다.

제대로 된 도로라곤 도시로 이어진 커다란 자동차 도로 하나뿐. 그마저도 관리가 되지 않아 우거진 수풀과 잡초에 반쯤 가려졌다.

깨진 돌바닥을 밟을 때마다 격통이 쑤셔온다. 소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악한 도로의 끝에 구명이 있으리라 믿는 듯 숨을 헐떡인다.

“허억···! 허억···!”

살기 위해 그저 전력으로 바닥을 박찬다.

도움을 청할 곳을 찾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면······.

“흐윽···!”

그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발상인지 소년도 안다.

그 게으른 깡패들은 자신들을 기생충이라 생각한다.

세금도 내지 않으면서 산에 불이나 질르는 거렁뱅이들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버려진 이들이다.

마소로 오염된 땅을 벗어나 어떤 정부의 도움도 없이 그저 막막하게 살아가는 이들.

산이라도 불태워 화전을 일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만큼 가난한 기민들.

그런 취급을 받는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나서줄 리가 없다.

이 나라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랬으니까.

그래도.

소문을 들었다.

차를 타고 두어 시간 쭉 내려가 화전으로 일군 농산물을 파는 읍. 트럭을 운전하며 농산물을 매입하는 촌장을 만난 아버지가 의아한 듯 물었다.

[요즘 이 일대에 괴물들이 잘 안 보이는군요. 용병 놈들이 일 좀 하던가요?]

촌장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놈들이야 평소 같지.]

[그런데 왜 몬스터들이 줄었죠?]

[확인된 건 아니지만, 요즘 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무상으로 몬스터를 잡아주는 사람들이 있다지 뭔가.]

무상으로 몬스터를 사냥하고 사람들을 지켜준다고?

아무리 시골 벽지라지만, 실없는 소문이다. 하지만 어린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읍내를 구경하면서도 그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어떤 사람들인데요?]

읍의 촌장 할아버지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겨우 떠오른 한 명칭을 말했다.

[기사수행···이라던데.]

기사수행.

아무리 문명과 동떨어져 낙후된 삶을 살아가는 화전민들에게조차 그 이야기는 너무나 낡고 오래되었다.

[거참 실없는 양반이 다 있군요.]

그들조차 실없다며 넘어가 버린, 하지만 소년의 마음속에는 이상하게도 깊이 박힌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기에, 소년은 달린다.

“하, 하아···! 하···!”

낙후된 국가에서도 산간벽지. 포장도로의 흔적만이 남은 낡고 낡은 길을 내달리며.

“기···사! 기사가···!”

앞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닿을 것 같은 도시의 야광을 앞에 두고──

-카악!

날카로운 파공성이 소년의 다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

짤막하게 터져 나오는 숨결, 달리던 속도 그대로 지면에 내동댕이쳐 가혹한 충격이 전신을 강타한다.

“아, 아, 윽···!”

너무나 큰 고통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첫 충격의 시작이었던 무릎은 깨진 것처럼 아려오고 피부의 쓰라림이 생살을 저며낸 것 같다.

-키이익···!

전신이 들끓는 고통 속에서 고막만은 그 소리를 포착한다. 소년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주시하는 선혈의 눈동자들을 돌아보곤 숨을 삼켰다.

“아, 안 돼. 오지 마···!”

그것들은 짐승들이다.

숲의 맹수들과 다르게 총화기 따위로는 대적조차 못 하는 이계의 괴물들. 단지 공통점이 있다면······.

숲의 맹수도, 이계의 괴물도 자신들을 먹잇감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뿐.

“살려줘······.”

그것이 괴물에게 얼마나 무의미한 말인가는 소년도 뼈저리게 알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가 닿지 못할 것도, 누구도 소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거란 것도.

하지만······.

“사, 살려주세요! 누가! 누가 저 좀 살려주세요!!”

듣는 귀가 없더라도, 소년은 비명을 질러야 한다.

-캬아아악!

무의미한 비명을 지르는 먹잇감을 향해 괴물들이 아가리를 벌리며 뛰어든 순간──

-푸르헝!

어디선가 들려온 말발굽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공기를 가르고 날아왔다.

-깨갱!

푸콱! 하고 괴물의 목덜미에 박히는 큼직한 창. 동시에 다급한 목소리가 소년을 불러 일으킨다.

“내 손을 잡아!”

목소리의 주인은 말을 탄 사내였다. 그는 소년을 향해 손을 뻗었고, 소년은 그 팔을 잡았다.

“이럇!”

소년을 붙잡아 올리고는 그대로 내달리는 말을 탄 사내. 그런 그를 향해 괴물들이 쫓는다.

하지만 그 추격도 그리 오래 이어지진 않았다. 말이 두 사람을 얹고 내달리는 속도보다도 괴물들이 대지를 박차는 도움닫기가 훨씬 빨랐으니까.

“히익···!”

소년이 가까워지는 괴물들에게 움찔한 순간, 사내가 소년을 꽉 붙잡으며 안심시켰다.

“괜찮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이쪽이야!”

그곳에는 한 무리의 병사들이 있었다. 이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 창과 검, 방패로 무장한 원시적인 전사들.

그들은 길을 열어 말을 탄 사내와 소년을 통과시킨 뒤, 빽빽하게 밀집해 마치 고슴도치처럼 창날을 세운다.

“전투개시!”

말을 탄 사내가 외쳤다.

소년은 끝내 잡아챈 희망의 끈에 감격하며 흐릿한 눈망울로 사내를 올려다본다.

“아저씨는··· 기사님이에요?”

소년의 무구한 물음에 사내는 멋쩍은 듯, 어쩌면 소년보다도 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그리되려고 노력 중이란다.”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다.

* * * *

“후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비 오듯 땀이 흐르는 얼굴에 생수병째로 들이붓는 김도한 대장. 그는 노곤한 얼굴로 자신들이 구한 사람들을 보았다.

“만학아!”

“아빠!”

도로를 순찰하다 발견한 소년은 야생 몬스터들에게 습격당한 화전촌의 주민이었다.

“야피 경 덕분에 쉽게 찾았어.”

“감사한 일이죠.”

구대성은 통신으로 이어진 야피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보냈다. 통신기 너머에서 끼룩! 하는 깜찍한 기계음이 들린다.

-신형 병기의 테스트 결과는 어떰?

야피의 물음에 구대성과 김도한은 맨앳암즈 병사들에게 쥐어진 근미래적인 총기를 보았다.

“이거 아주 끝내주는 뎁쇼? 웬만한 마력궁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강력합니다요.”

“활에서 총으로 진화한 인류를 보는 것 같습니다.”

본디 맨앳암즈의 편제는 검병과 창병, 궁병이 기본편성이다.

하지만 끼끼룩족의 합류와 야크트 스피너의 별철 가공공방이 세워진 이후로 실험적인 무기체계들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그냥 병사들 싹 다 이거로 무장하면 되는 거 아닌가? 게이트의 괴물들한테도 충분히 먹히는 것 같은데.”

“근데 이게 또 막상 고위 몬스터들에게는 안 먹힌답니다. 아직 고위 헌터의 육체능력에 비할 바는 못 되니까요. 특히 ‘기사’들은 더욱 그렇고요.”

레온의 사례를 보아 널리 알려졌듯이 라이온하트의 기사들은 원거리 무기를 혐오한다.

자유민 병사들이 원거리 무기를 쓰는 것까진 뭐라 하지 않지만, 기사가 그런 무기를 쓰는 건 극혐하는 것이다.

일견 시대착오적인 편견과 오만함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원거리 무기보다 약한 기사는 기사질을 못한다지 않습니까. 성배기사쯤 되면 이런 무기로 군단을 도배해도 콧방귀도 안 뀔 걸요.”

그들은 이토록 대단한 무기도 기사··· 그것도 성배기사라는 규격 외의 초인들 앞에선 무의미함을 익히 알았다.

성배 수호자 레온까지 갈 필요도 없이 야크트 스피너, 베아트리체, 불카누스 같은 성배기사들 외에도 당장 한하리 정도만 해도 아예 자연재해 그 자체였으니까.

“우리 구 기사님은 언제 그렇게 되려나.”

말하면서도 김도한은 그것이 현실성 없다고 여겼다.

이 부대의 유일한 기사인 구대성은 끈기와 인내심을 가진 된 놈이긴 하지만, 한하리나 천소연 같은 타고난 재능의 소유자들하곤 비교가 될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놈이란 말이지.’

김도한은 구대성이 끝내 이뤄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그나저나 최근 이쪽에 몬스터들이 좀 많이 보이는군요.”

“뭐, 헤이룽 인민국이야 워낙 게이트 관리가 개판이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게다가 여긴 구 조선족 자치구야. 연변이라고. 자기들 살기도 바쁜데 소수민족까지 챙겨주진 않겠지.”

두어 달 전, 대규모 게이트 사태에서 헤이룽 인민국의 곡창지대를 방어하기 위해 만신전의 전투부대가 파견되었었다.

편력기사 구대성과 수백 여명의 맨앳암즈는 야피가 고용한 용병 헌터들과 함께 곡창지대 방어에 성공했지만, 수시로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며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헤이룽 인민국의 실태를 본 구대성이 남기로 했다.

그렇게 남은 편력기사 한 명과 맨앳암즈 오십여 명은 두 달 동안 많은 일을 했다.

“어쨌건 이번 일만 마무리하고 도시로 가서 좀 쉬자고. 벌써 12월이야. 몬스터들도 활동이 줄어들 시기니 괜찮을 거야.”

“조금만 더 돌아다니다가 겨울을 나죠.”

세계는 여전히 레온과 만신전으로 시끌벅적하지만, 구대성과 그 친구들 또한 헤이룽 인민국에서는 알음알음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들은 국토를 순회하며 무상으로 야생 몬스터들을 처리해주고 사람들을 구한다.

그것이 마치 옛이야기에 나오는 기사 여행담 같다고, 누군가가 올린 그들의 사연에 취재가 오기도 했다.

구대성은 자신은 그럴 주제가 못 된다며 인터뷰를 거부했지만.

“구씨! 여기 옥수수 좀 먹어.”

김도한은 구대성에게 화전촌 주민들이 대접한 찐 옥수수를 권했다.

“잘 먹겠습니다.”

찐 옥수수를 먹은 구대성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맛이 없어?”

“아뇨, 옥수수가 달고 맛있습니다. 헌데······.”

끝맺지 못한 의도를 안 듯 김도한이 껄껄 웃었다.

“만신전에서 먹던 느낌은 아니긴 하지.”

“이 사람들, 마소 오염으로 땅을 잃고 여기까지 왔다더군요.”

게이트가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며 쏟아내는 것은 몬스터뿐만이 아니다.

게이트 내부에 있던 농밀한 마력까지 함께 쏟아지며 그것은 땅을 오염시켰다.

마소로 오염된 땅에서는 농작물이 자라지도 않고, 사람이 살 수도 없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이들은 그런 수많은 이들 중 하나일 것이다.

‘데메라 여신님의 축복이 있다면······.’

생명과 풍요의 여신 데메라. 그녀의 축복은 마소로 오염된 땅을 정화하고 그 안에서 자라는 작물들을 축복한다.

그 작물을 섭취한 이들은 병에 걸리지 않았고, 있던 병도 나았다.

기사의 미덕으로서 빛과 정의의 여신 아리아나와 전쟁과 불꽃의 신 페토스를 섬기는 구대성이었지만, 민초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생명과 풍요의 여신 데메라가 아닐까?

‘아니, 신들의 우열을 내가 정할 순 없는 법이다.’

순간 자신이 불경한 생각을 했다며 자책하는 구대성.

“야피 경.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만, 한 가지 요청드릴 게 있습니다.”

-끼룩?

“만신전에서 생명과 풍요의 신관님을 한 분 파견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쪽 지역에 데메라 여신님의 강령을 가르칠 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데메라 여신의 신관들은 모두 바쁨. 여유인력이 없음.

“끄응······.”

구대성은 안타까웠다. 지금 이 사람들에게, 이 민초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살 수 있는 땅이었다.

물론 이 주변에 몬스터들을 해치우는 것도 시급했지만, 이런 산속으로 내몰릴 만큼 마소 오염이 심각했다.

-폐하께서 전하라 하심.

“폐하께서 말입니까? 화,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네가 데메라 여신의 강령을 그들에게 가르치고 땅을 가꾸게 해라. 그리 전하셨음.

“제가요?”

구대성은 데메라 여신의 강령을 문구로만 숙지하고 있을 뿐이다. 만신전의 최 영감을 비롯한 신관들과 달리 성법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편력기사가 무얼 가르친단 말인가.

“그··· 강령만 적어서 포교하면 되겠습니까?”

-그러함.

“그것뿐이라면··· 그래도 나중에 여유가 되면 제대로 된 신관님을 한 분 파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고려함.

그것으로 야피와의 통신은 끝났다. 구대성은 이번 화전촌 전투를 끝으로 당분간 겨울을 날 생각이다. 한동안 이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데메라 여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들이 만신전 신들의 가르침을 곧이곧대로 믿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구대성은 현재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렇게 그가 지금껏 순회해온 헤이룽 인민국을 돌아다니며 여신의 가르침을 전하기를 며칠.

-똑똑!

“계, 계십니까?”

연변의 호텔. 그들이 묵고 있는 호텔에 어떤 남자가 찾아왔다.

“뉘십니까?”

“여, 여기 오면은··· 남조선 동포들을 만날 수 있다고 들었소.”

그는 북한인이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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