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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4

183화.

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중국에서 생산한 재난용품과 구호용품을 실은 컨테이너선이 샌프란시스코 항만을 통해 입항했다. 서성전자가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해 실어 보낸 전자장비들도 차례대로 도착했다.

그것들은 임대해 놓은 창고에 쌓아 놓을 예정이다.

초기 생산물량이야 배로 실어 나르더라도 나중에 생산될 물량은 항공으로 운송해야 할 판이다.

우리는 계속 실리콘밸리 호텔에서 머물며 회사상황을 보고받았다. 그리고 미 정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백악관에서 브리핑한 이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대피훈련에 대한 발표는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지진에 대한 불안감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무산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바우어 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와이 출신인 저는 어렸을 때부터 킬라우에아 화산이 폭발할 거라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아무 일 없지 않습니까? USGS(미지질관측소)에서 모든 데이터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학계의 자문을 받아본 결과 빅원의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운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만에 하나 소규모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모든 대책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언론도 불안감을 부추기는 기사는 자제해주시고, 정부의 발표를 신뢰해주십시오. 또한 유언비어와 헛소문을 퍼트려 사회불안을 일으키거나 이를 통해 이익을 취하려는 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조사해 엄단하겠습니다.”

사실상 나보고 입 닥치고 있으라는 경고나 다름없었다. 언론들 역시 그 점을 꼬집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모한 교수가 이전보다 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여론 악화에 굴복해 주장을 철회하기라도 했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을 것이다.

난 현주 누나의 전화를 받았다.

[그 정도면 할 만큼 했어. 더 이상은 위험해. 지금 상황이 어떤지는 알지?]

“예.”

빅원 가능성이 부정되며, 여론은 점점 악화되었다. 지금 호텔 밖으로 나간다면 썩은 토마토가 날아와도 이상할 게 없다.

[빨리 택규랑 한국으로 돌아와.]

이어서 어머니와도 통화했다.

[요즘 뉴스만 틀면 자꾸 니 얘기가 나오는데, 대체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니? 너 자꾸 엄마 속 썩일래?]

“……죄송합니다.”

한참 동안 잔소리를 듣고 한숨 돌리는데, 이번에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모한 교수였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빗발쳐서 내 핸드폰은 잠시 꺼두었네. 이건 캐리의 핸드폰이네.]

노교수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보다 방금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아냈네.]

“뭔가요?”

[빅원이 오기 전에 먼저 멕시코시티에서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네. 빅원의 전조현상이라고 보면 될 거네.]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요?”

[지금으로서는 80퍼센트 이상이네.]

“그렇군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 순간 눈앞에 뭔가 떠올랐다.

<멕시코시티 대지진>

?또 지진인가?

남미 역시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해 있는 것은 마찬가지인지라 심심치 않게 지진이 터진다. 2015년 발생한 칠레 대지진이 대표적이다.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 들리나?]

난 정신을 차렸다.

“규모는요?”

[아마 M7.0 수준으로 예상되네. 빅원에 비하면 50분의1도 안 될 거네.]

그런데도 대지진이라는 건가? 그럼 대체 빅원은 어느 정도인 거야?

“알겠습니다. 또 새로운 사실 나오면 연락주세요.”

통화가 끝나자마자 택규가 물었다.

“이번엔 뭐가 보였어?”

“빅원이 오기 전 또 다른 지진이 터질 거야.”

“뭐?”

역시나 시기와 규모 등은 알 수 없지만, 모한 교수는 분명 빅원의 전조현상이라고 했다.

이걸 어떻게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난 엘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탁할 게 좀 있어요.”

* * *

사흘 후.

난 긴급 기자회견을 신청했다. 장소는 우리가 머무는 호텔 2층 홀이었다.

“부탁한 서류는 준비됐어요?”

[방금 보냈어요.]

난 컴퓨터를 켜보았다.

“확인했어요.”

엘리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할 생각이에요?]

“지금으로서는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네요.”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 큰 용기가 필요하다.

“현주 누나에게는 말 안 했죠?”

[그럼요.]

누나가 알면 당장 날아와서 뜯어말릴지도 모른다. 나중에 알게 되면 우리 둘 다 크게 혼나겠지만.

엘리는 나에게 물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거예요?]

전에 그녀에게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괜찮겠냐고 물은 적이 있다.

“미안해요.”

[뭐가요?]

“먼저 말하지 않은 것도, 이런 서류 부탁한 것도.”

엘리는 일부러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면 됐어요. 지진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진후의 진심은 믿어요.]

“고마워요.”

누군가가 날 믿어준다는 것이 이렇게 힘이 되는지 몰랐다.

엘리는 장난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흐음, 고맙다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있을 텐데요.]

“그건 만나서 하려구요.”

[기대할게요.]

통화가 끝난 후, 난 프린터기로 엘리가 보내준 서류를 뽑았다.

난 택규를 보며 말했다.

“너까지 같이 할 필요는 없는데.”

“무슨 말이야? 기왕 하려면 화끈하게 해야지. 어디에 사인하면 돼?”

내가 먼저 사인했고, 이어서 택규가 펜을 붙잡았다. 녀석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사인했다.

“어차피 지진은 일어날 거잖아.”

“그래도 일이 잘못되면?”

“괜찮아. 나한테는 누나가 있잖아. 누나 지분 3퍼센트만 해도 평생 놀고먹는데 지장 없어.”

“아…….”

이 자식이 설마 이렇게 될 줄 알고, 누나에게 자신의 지분을 떼어준 건가?

택규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가끔 용돈 챙겨주겠네, 친우여.”

“……꺼져.”

뭐, 말은 이렇게 해도 나름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나 챙겨주겠다는 사람은 많으니 앞으로 굶어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난 엘리가 사준 시계를 보았다.

“시간 다 됐네. 갔다 올게.”

“잘 다녀와.”

* * *

기자회견장에는 이미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CNN, NBC, 폭스뉴스 등 웬만한 미국 주요언론들은 물론 지역 신문사들까지 와있었다.

내가 기자회견을 한다고 하니, 이렇게 많은 언론사들이 모일 줄이야. 새삼 꽤나 출세했다는 생각이 든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카메라 세례가 쏟아졌다.

난 준비된 자리에 앉아서 말했다.

“이 기자회견의 목적은 빅원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빅원 규모는 여러분들께서 상상하시는 것 이상입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즉시 주민대피 계획과 구조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난 모한 교수가 피해구역을 A1, A2, A3로 나눠서 세운 대책을 언론에 그대로 전달했다. 다들 기가 차다는 반응이었다.

“질문 있습니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자들은 질문을 퍼부었다.

“저번 지진으로 일주일 동안 코마 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는데, 사실입니까?”

“정신과의사의 검진은 받아보셨습니까?”

“헛소문을 퍼트려 이익을 챙기려 한다는 소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그런 의도는 없습니까?”

갑자기 청문회장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누구도 빅원의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이러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미쳤거나, 다른 목적이 있거나.

그래서 나를 미친놈이나 투기꾼 취급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얘기해봐야 변명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일단 전 멀쩡합니다. 그리고 그런 오해가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개인적 이익을 위해 투자한 것은 결코 아니고, 중간에 되팔아서 이익을 챙길 생각도 없습니다.”

기자들은 일제히 소리쳤다.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차명으로 파생상품 거래를 한 적은 없습니까?”

“거래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할 의향은 있습니까?”

투자로 인한 비난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투자자가 위기를 예측하면서도 투자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웃기는 일이다.

실제로 헤지펀드 사이언 캐피탈(Scion Capital) 운영자 마이클 버리(Michael Burry)는 미국 부동산 위기를 예측하고 투자해서 큰돈을 벌었다. 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펀드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조차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전 모한 교수님의 말씀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9월 중순에 먼저 멕시코시티에서 대지진이 일어날 겁니다. 그것은 빅원의 전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9월 말에는 빅원이 오게 될 겁니다.”

기자들은 일제히 소리쳤다.

“대체 근거가 뭡니까?”

“빅원 가능성은 없다는 정부의 주장을 부정하는 겁니까?”

“정말 투기목적이 아니라는 걸 이 자리에서 증명할 수 있습니까?”

내가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누가 내 말을 믿어줄까?

난 들고 온 서류를 꺼내보였다.

“대표인 저와 부대표의 지분 전체를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공탁하겠습니다. 만약 9월이 지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OTK컴퍼니 지분 97퍼센트는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귀속될 겁니다.”

장내는 한순간에 침묵에 휩싸였다.

난 그들을 보며 물었다.

“아직도 제가 미쳤거나, 투기로 이익을 보려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있으신가요?”

방금 전까지 질문을 가장한 비난을 퍼붓던 기자들은 놀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난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The Big one is sure to come.(빅원은 반드시 옵니다)”

* * *

기자회견이 끝난 후.

우리는 변호사의 공증을 받아 공탁서류를 법원으로 보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9월 안에 빅원이 오지 않으면, 둘 다 빈털터리가 될 판이다.

그동안 배당과 월급으로 챙긴 수십억 원과 살고 있는 집은 남을 테니, 그나마 다행인가?

사방에서 미친 듯이 전화가 걸려왔다. 체이스 사우스웰, 워렌 보트, 임진용 회장, 상엽 선배, 자회사 경영진들 등등.

다들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냐고 물었고, 난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을 반복했다.

빅원이 올 테니 준비하라는 것이다. 이들 중 몇 명만 내 말을 믿어줘도 큰 도움이 될 텐데.

내가 이곳저곳에 전화를 받는 사이 택규 역시 현주 누나의 전화를 받았다. 표정만 봐도 얼마나 심하게 박살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통화를 끝낸 택규는 울먹이며 말했다.

“귀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아.”

“응. 멀쩡해.”

당분간 현주 누나 전화는 안 받는 게 좋겠다.

수십 통의 전화를 받고 한숨 돌리는데, 이번에는 호텔 전화기가 울렸다.

누가 찾아오기로 했나?

난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상대는 호통을 치듯 말했다.

[지금 뭐하자는 건가?]

드디어 연락이 왔구나.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회견 보셨나 보네요.”

[모든 미국인이 봤을 거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기자회견을 한 건가? 내 경고가 우스웠나?]

난 차분하게 말했다.

“저에게 공수표가 아닌 현금을 가져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OTK컴퍼니의 가치가 얼마나 될까?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00억 달러 이상이다.

“전 빅원이 온다는 것에 제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이게 모한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근거이자,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현금입니다.”

그는 기가 차다는 듯 물었다.

[정말로 미친 건가?]

이제 공은 미행정부로 넘어갔다. 몰랐으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은 뭔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

만약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면 정치적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혼란을 감수하고 대피를 시켰는데 지진이 일어나지 않으면 역시나 정치적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결국 그 둘을 놓고 저울질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다.

난 로날드에게 물었다.

“이제 시간은 한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 *

기자회견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빅원의 가능성을 믿으며 샌프란시스코에 남아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부 사람들은 먼저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몇몇 기업들도 이주에 동참했다. 대형트럭과 무진동차량을 구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비상식량과 생수, 응급의약품 등의 재난용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월마트 진열대는 텅텅 비었고, 최대 온라인 쇼핑몰AMZ에서 대부분의 물품에 ‘Sold Out’ 이라는 글자가 떴다.

이와는 반대로 그 지역에 계속 거주하는 주민들의 불만은 폭발했다.

평생 모은 돈으로 아파트를 한 채 샀는데, 이제 곧 지진이 터질 거라는 얘기를 들으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동안 경기회복과 IT기업들의 성장과 맞물려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 일대의 부동산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많던 거래가 한순간에 실종되었다.

여러 굵직한 매매계약이 무산되었고, 예정되어 있던 분양계획이 미뤄졌다. 도심에 빌딩을 짓던 건설사들은 고민에 빠졌다.

금융시장 역시 충격에 빠졌다. 실리콘밸리에 본사나 사업체를 둔 IT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했고, 경기둔화 우려로 별 관련 없는 주식들도 일제히 하락했다.

혼란은 이제 캘리포니아주를 넘어서 미국, 그리고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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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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