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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6

185화.

브라운 교수는 NBC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멕시코 남부의 대지진은 결코 빅원의 전조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번 지진으로 불의 고리의 에너지가 분출되며 샌 안드레아스 단층의 움직임이 잦아든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다른 전문가들 얘기 역시 비슷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모한 교수의 주장에 대해 어느 정도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멕시코 남부 대지진 이후 상황은 완전히 변했다.

주류언론들은 비난을 퍼부었다. 이번 일과는 전혀 관련 없는 우리의 개인사까지 끄집어내며 공격했다.

보수언론에서는 모한 교수의 할머니가 인디언이라는 것과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문제 삼았다. 한마디로 순수 백인도 아닌 놈들이 멋대로 설쳐대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내가 IS와 연계되어 있다거나, 페이스잇 밀실에서 포르노배우들을 만나 섹스를 했다는 얘기까지 튀어나왔다.

이런 걸 보면, 어느 나라나 기레기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언론만큼이나 인터넷도 시끌시끌했다.

-진짜 강진후가 틀린 건가?

-중부에서 대지진이 일어난다고 하더니 남부에서 터졌네. 꼴좋다!

-그런데 대지진이라고 해도 별로 피해가 크지 않은 것 같은데.

-빅원 오면 100만 명 죽는다는 건 다 헛소리.

-거기는 멕시코 시골이니까. 샌프란시스코에서 터지면 얘기가 다르겠지.

-대신 샌프란시스코는 내진설계가 훨씬 잘돼 있습니다. 비슷한 지진이 발생했어도 인명피해는 훨씬 적었을 겁니다.

-며칠 동안 걱정되어서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오늘은 푹 잘 수 있겠네.

-빅원은 절대 오지 않는다!

?온라인 도박사이트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각 사이트에서는 9월 중 샌프란시스코에 M9.0 이상의 지진발생 여부를 두고 베팅을 벌였다.

사람은 돈을 걸고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각종 예측에서 도박사이트의 적중률은 꽤 높은 편이다.

그전까지는 81대19로 ‘No’가 우세했다. 그런데 멕시코 남부 대지진 발생 이후에는 그 비율이 92대8로 바뀌었다.

택규는 그걸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8퍼센트는 우리말을 믿어주네.”

“…….”

진짜 믿어서 그런 건지, 일확천금을 노리고 있는 건지 모를 일이다.

“배당 꽤 나오겠는데. 나도 돈 좀 걸어볼까?”

“도박은 불법이야.”

한국은 속인주의를 택하기 때문에, 외국에서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도박사이트에 베팅해도 처벌받는다.

택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안 걸리게 해야지.”

뭐, 안 걸리면 죄가 안 되긴 하지.

난 모한 교수의 전화를 받았다. 언론의 비난 때문인지 노교수는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이상하군.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멕시코시티에서 지진이 발생해야 하는데.]

내가 본 것 역시 분명 ‘멕시코시티 대지진’이었다.

“남부에서 먼저 터졌을 뿐,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멕시코시티 대지진은 아직이에요. 아마 조만간 발생할 겁니다.”

모한 교수의 분석대로라면 그것은 빅원 이전이다.

문제는 그게 정확히 언제냐는 것이다.

지금 언론이고 정치권이고 우리 주장이 틀렸다고 신나게 떠들어대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피계획을 실행할 리 없다.

흐름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멕시코시티 대지진이 증명돼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처럼 다른 정보라도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멕시코의 지진은 어디까지나 빅원의 전조현상이네. 이미 한 번 지진이 일어난 만큼, 다음 지진은 그보다 규모가 작을 거네.]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래도 멕시코시티는 멕시코의 수도인 만큼, 파히히아판 지진보다는 피해가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

“다른 건 신경 쓰지 마시고, 연구에만 집중하세요.”

[알았네.]

통화가 끝나자 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이제 20일밖에 남지 않았다.

* * *

기사를 본 박시형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언론과 대중 앞에 나설 때는 항상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는데, 이렇게 마음 놓고 웃어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천하의 강진후도 틀릴 때가 있군.”

모한 교수가 학계에 빅원 가능성을 주장한 건 아주 예전부터다. 그전까지는 누구도 그의 주장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강진후가 나선 뒤로 강력한 힘을 얻었다. 그런데 이번 일로 그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괜히 캘리포니아에 혼란만 불러일으킨 셈이다.

앞으로 3주 안에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강진후는 OTK컴퍼니 지분과 경영권을 모두 잃게 된다.

어디까지나 임의로 공탁한 것이지만,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리 없다.

금융대책회의를 하며 국내 지진 전문가들 얘기도 전부 들어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지진발생 위치와 규모를 예측하는 것도 어렵고, 그 시기까지 정확하게 맞추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그런데 대체 왜 이런 멍청한 짓을 한 거지?’

성공한 사람은 때로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계속된 성공에 도취해 자신만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투자로 몇 차례 대박을 터트리더니, 재난마저 예측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건가?

어쩌면 지진으로 쓰러졌다 깨어난 후 정신이 이상해졌거나, 모한 교수의 말에 속아 넘어갔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제 와서 정신을 차린다고 해도, 돌이키기는 늦었다.

박시형은 강진후와의 악연을 떠올렸다. 압수수색, 국정원 사찰, 호성저축은행 사태 등등.

그로 인해 도덕성과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대국민사과를 하고, 측근을 쳐내고, 사돈을 구속시켜야 했다.

박시형은 꼼꼼한 성격이고, 결코 원한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대통령이 된 뒤 언론, 보수단체, 사정기관 등을 동원해 가차 없이 보복했다.

그동안 강진후를 건드리지 못한 이유는 그의 뒤에 로날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로날드도 강진후를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 한국 대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가 아직 권력을 지니고 있고, 강진후가 몰락을 앞둔 지금이야말로 손을 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미국 언론들은 강진후와 모한 교수에게 비난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중에는 근거도 없고 말이 안 되는 기사들도 많았다.

데일리월드 뉴스(Daily World News).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가 리비아 독재자의 아들을 임신했다거나, 미국정부가 외계인을 잡아 실험한다는 등 말도 안 되는 기사를 내기로 유명한 곳이다.

사실상 언론 축에도 못 끼는 타블로이드고, 한국으로 치면 스포츠신문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강진후가 페이스잇 밀실에서 포르노 배우들과 성관계를 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미국인들조차 웃고 넘기는 찌라시지만…….

진실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만약 언론이 진실을 보도했다면, 그는 대통령 자리에 앉지도 못했을 것이다.

‘대중이 믿는 게 곧 진실이지.’

박시형은 그 기사를 보며 중얼거렸다.

“당한 건 갚아줘야겠지.”

* * *

멕시코 남부 대지진 이후, OTK컴퍼니 직원들은 심하게 동요했다.

다행히 실무를 맡은 헨리는 빈틈없이 일을 수행했다. 컨테이너선은 차례대로 항만에 입항했다.

난 택규와 함께 호텔에 틀어박힌 채 상황을 검토하며 지시를 내리는 한편, 다른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아무리 대비를 한다한들 이건 어디까지나 일이 터진 이후의 대책일 뿐이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선제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은 당장 대피시키기는커녕 계획조차 세울 생각이 없어보였다. 민주당은 일전에 실시한 대피훈련을 문제 삼으며 로날드를 향해 정치공세를 펼쳤다.

괜한 말에 속아 필요 없는 훈련을 강행하는 바람에 혼란을 키웠다는 것이다. 언론들 역시 로날드 공격에 가세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난 초조함을 느꼈다.

이제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내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게 무슨 카산드라의 저주도 아니고…….”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여자?”

“응.”

카산드라(Cassandra)는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력을 지녔지만, 누구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았다. 아폴론의 저주 때문이었다.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군이 목마를 남기고 철수하자, 카산드라는 그 목마를 성안으로 들이면 트로이는 멸망하게 될 거라 예언했다.

하지만 역시나 사람들은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고 목마를 성안으로 옮겼고, 결국 트로이는 멸망했다.

택규가 말했다.

“일단 멕시코시티 대지진이 터지기를 기다려. 그럼 좀 믿어주겠지.”

“환장하겠네.”

샌프란시스코의 대지진을 막기 위해 멕시코시티에 대지진이 터지기를 기도해야 할 판이라니.

대체 멕시코는 무슨 죄야?

* * *

9월 19일 오후 1시 15분.

멕시코 중부에서 M7.1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여기에는 멕시코시티와 인근 지역이 포함되었다.

마침 이 날은 1985년 멕시코시티 대지진으로 4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날이었다. 그런데 오전에 추모행사가 끝나자마자 또 다시 지진이 멕시코시티를 덮친 것이다!

도시 곳곳에서 정전과 단수 사태가 벌어졌고, 치안부재를 틈타 강도 사건이 줄을 이었다.

다행히 멕시코시티는 강진후의 경고 이후 지진 대비태세를 유지해왔고, 직전에 대대적인 대피훈련을 벌였다.

주민들은 우왕좌왕하는 와중에도 침착하게 대피했다. 자칫 잘못하면 큰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으나, 사망자는 300명 이내였다.

미국 언론들은 멕시코의 지진상황을 생중계했다.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수십 층짜리 고층빌딩이 피사의 사탑처럼 기운 모습이 그대로 카메라에 잡혔다.

[멕시코 중부 M7.0 이상의 대지진 발생!]

[멕시코시티 대지진으로 건물 수백여 채 붕괴]

[강진후가 옳았다!]

[모한 교수, 9월 중순 멕시코시티 대지진 정확하게 예측해!]

[빅원의 전조인가?]

[브라운 교수, 여전히 빅원 가능성은 극히 적어……]

뉴스를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직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모한 교수의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다시 상황이 반전되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강진후 말이 맞았어!

-이게 빅원의 전조라고?

-대체 빅원이 온다는 거야, 안 온다는 거야?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를 떠나려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직장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이들은 다른 주에 있는 친척 집으로 가족들 먼저 대피시켰다.

도심을 빠져나가는 사람들로 인해 캘리포니아 주경계선에 인접한 숙박업소는 방이 없을 지경이었다.

늘 중국인들로 붐비던 관광지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일부 기업들은 예정된 출장이나 행사 등을 취소하고, 전부 10월 이후로 미뤘다.

미국 3대 지수는 줄줄이 폭락했고, 금과 엔화 등 안전자산은 또다시 신고가를 경신했다.

95대5까지 떨어졌던 도박사이트의 확률은 이제 74대26으로 변했다.

택규와 함께 뉴스를 지켜보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다짜고짜 말했다.

[당장 이쪽으로 오게!]

“알겠습니다.”

난 통화가 끝나자마자 택규에게 말했다.

“짐 챙겨.”

우리는 바로 호텔을 나와 비행기에 올라탔다.

워싱턴 내셔널 공항에 도착한 건 해가 질 무렵이었다. 공항 밖으로 나가자 백악관에서 나온 경호원들이 대기 중이었다.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 * *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대통령 집무실에는 로날드와 바우어 부통령이 같이 있었다. 둘 다 기진맥진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마 멕시코시티 대지진을 보고 받은 후 백악관도 한바탕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바로 불러들였겠지.

아까 공항에서 통화했는데, 모한 교수도 백악관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연구실에 남기로 했다. 그 편이 더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로날드는 나를 보며 말했다.

“정말로 멕시코시티에서 대지진이 터졌군.”

난 고개를 끄덕였다.

“모한 교수가 정확하게 맞췄죠. 빅원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로날드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뭘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전에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당장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 지역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구조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바우어 부통령은 나를 향해 쏘아붙이듯 말했다.

“무작정 대피시켰다가는 지지율이 폭락할 거네.”

얼마 전까지, 로날드의 지지율은 간신히 25퍼센트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빅원으로 인한 혼란 때문에 2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

택규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팩트를 날렸다.

“어차피 더 떨어질 지지율도 없지 않나요?”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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