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187

186. 소꿉친구 – 정통 후계자

“명예와 돈. 자넨 어느 쪽이야?”

시기적절한 물음이었다. 세사르의 질문을 받은 전사가 고민에 빠졌다.

병사들의 마음속으로 어떤 기대감이 팽배해지는 시기였다. 승전에 승전을 거듭해 적군은 줄행랑쳤고, 적의 본진인 수도까지는 고작 하루를 남겨두고 있었다.

전사는 사뭇 심각하게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자랑스러운 드위너 부족의 전사로서 명예… 라고 답해야겠지만, 흠. 솔직히 고르기 어렵군.”

“자네도 그렇지?”

노랑드 부족의 전사가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최근 수염을 깎아 맨들맨들해진 턱을 쓸며 말했다.

“나는 돈이야. 세상이 이렇게 넓은 줄은 몰랐어. 뭣보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가질 수 있다니, 우리 부족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야.”

“푸하핫! 그래서 포상을 받아다가 새장가를 들려고?”

둘러앉은 전사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일처다부제인 노랑드 부족의 전사는 얼굴을 붉혔다.

“새장가라니! 우린 결혼이라는 개념이 없어. 그냥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사는 거지…”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는 노랑드 부족.

이 부족에선 마나가 깃드는 육체의 재능을 여성이 더 두드러지게 가지고 태어나는 경향이 있었다.

해서 노랑드 부족의 전사, 대전사는 여성인 경우가 많았고, 그런 만큼 많이 죽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노라면 종종 해수(海獸)가 출몰했다. 악어 또는 도롱뇽을 닮은 괴물이 배에 달라붙어 뒤집으려 하거든 전사들은 녀석을 떼어내려 안간힘썼는데, 아무래도 앞장서서 싸우는 여전사가 먼저 죽기 십상이었다.

이것이 일처다부제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여자가 적고, 강하니 가장(家長)자리를 꿰차게 된 것이다.

“결혼을 안 한다고?”

“그래. 우린 월말에 축제를 열어. 바다에 나가기 전에 축배를 드는 건데, 굳이 따지자면 이게 결혼이지.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여자한테 고백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남편이 많다 보니깐 마누라한테 섭섭한 경우가 많거든.”

멀리서 잠자코 듣고 있던 레브가 얼굴을 붉혔다. 방금 저 전사가 한 말이 굉장히 순화된 표현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반면 속사정을 모르는 전사들은 퍽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이야. 그거야말로 낙원 아니야? 누군 마누라 등쌀에 못 살겠는데, 언제든 바꿀 수 있으면… 하하하. 부럽구만.”

“부럽긴.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데.. 저어~기 장군님 정도 되는 남자면 모를까, 어지간해선 눈에 들기도 힘들어. 그러니까 난 돈이야. 세상이 이렇게 넓고, 한 여자를 독점하고 사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으면 진작 나왔을 거야.”

“다른 건 몰라도 세상 넓은 줄 몰랐다는 건 인정하겠네. 하하하하.”

전사들이 왁자지껄 웃음을 터뜨렸다. 오른 왕국의 야만인들. 그들은 노예로 잡히지 않으려 폐쇄적으로 살아왔기에 빛나는 문명(文明)을 접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거대한 도시. 득실거리는 사람들. 우물 안 개구리가 있다면 바로 그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좋아. 돈을 선택한 친구가 하나 더 나왔구먼그래. 그럼 하투, 너는 어때? 명예와 돈. 어느 쪽이야?”

세사르가 방향을 돌렸다. ‘바루가 부족’에서 만났던 청년에게 양자 일택을 권하였지만,

“전 가족이요.”

하투는 돈과 명예,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얼굴을 붉히며

“아들이랑 부인이 가장 소중해요. 빨리 돌아가고 싶네요.”

라 말하였다.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전사들은 “오오올~” 낮은 탄성을 터뜨렸다.

세사르는 잠깐 고개를 숙였다. 순간 레브는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다시 고개를 든 부관은 평소와 같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이 자식! 넌 정말 나보다 먼저 으른이 됐구나! 하하하하. 이 친구 신혼이랍니다!”

세사르가 하투의 머리를 팔로 감싸 안았다. “아앗! 왜 이래요.” 발버둥 치는 청년의 엉덩이를 전사들이 돌아가며 한 대씩 때렸다.

그때,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시니스가 날아왔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찾지 못한 시니스는 허공에서 잠시 퍼덕이다 주인의 머리를 깔아뭉갰다.

“그만. 조용히 해라.”

나무에 기대고 있던 레브가 손을 내저었다. 전황이 워낙 낙관적이라 잠시 시끌벅적했던 병사들은 일동 침묵했다.

세사르가 시니스의 발목에 묶인 편지를 떼어냈다. 편지에 레오 왕자의 인장이 찍혀있는 걸 확인하고 대장님께 바쳤다.

“…”

그런데 대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편지를 읽고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편지를 다시 읽었다. 그럼에도 아연한 표정이다.

“대장님? 왜 그러십니까?”

레브는 답하지 않았다. 직접 읽어보라 내주었는데, 세사르가 탄성을 질렀다.

“그럼 전쟁이 끝난 겁니까?”

네비스가 텅 비었다는 전갈이었다. 귀 기울이고 있던 전사들이 술렁거렸고, 레브는 고개를 저으며 신중하게 답했다.

“…그럴 리 없다. 모두 일어나라. 휴식은 끝났다. 각 분대에 연락해 네비스에 접근하라 일러라. 절대 경계를 늦추지 말라 하고.”

천인장 분대에서 전령 열 명이 뛰쳐나갔다. 레브는 멀거니 남쪽을 바라보다 작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쉬울 리가 없는데…”

* * *

오른 왕국의 수도 네비스는 분지(盆地)에 있었다.

산이 둘러쳐진 가운데 작은 평야가 있었고, 레브가 이끄는 병사들은 조심스럽게 산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도시. 드문드문 세워진 초라한 농가를 시작으로 건물들이 조금씩 크기를 키우며 시야를 가로막았다.

“시가전에 대비하라. 적군이 숨어있을지도 모르니 건물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

레브의 명에 수백 개의 분대가 흩어졌다. 네비스 외각으로 스며들어 정탐에 나섰다.

레브도 함께 발을 들였는데, 거리에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하나같이 여성이거나 노약자여서 다소 기괴한 풍경이었다.

‘성인 남성을 모두 징병한 건가.’

남아있는 시민들을 심문한 결과 그의 추측이 맞았다. 전쟁 직후 대대적인 징병이 있었고, 두어 달 전에는 퇴거 명령까지 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 질문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시민들이 알 턱이 없었다. 레브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에 입술을 씹었다.

“장군님. 이쪽엔 적이 없습니다. 수색을 보내보았는데, 성벽에도 적군이 없는 듯합니다. 성문도 파괴되었고요.”

천인장의 보고였다. 고개를 끄덕인 레브는 “내가 직접 가봐야겠다.” 네비스 북문을 향했다.

과연 천인장의 말이 맞았다. 팔 미터가 넘는 성벽 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갈기갈기 박살 난 성문이 경첩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다.

레브가 성벽을 올랐다. 천인장에게 성 내부도 수색하라 이르곤, 텅텅 비어있는 네비스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제야 상대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레브는 네비스를 둘러싼 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추적술}이 서쪽, 남쪽, 동쪽의 산들을 가리켰다. 왕과 왕자들, 쌍둥이 왕자의 편을 든 귀족들과 기사들 대부분이 네비스를 둘러싸듯이 숨어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함정이다. 저들은 수도를 미끼로 우리가 네비스를 점거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윽고 도착한 마법사가 레브의 추측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네비스 주변엔 이미 마나 로드를 무력화하는 결계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건 ‘공성전’을 대비한 사전 작업이었다.

아무래도 마법 전력에서 밀리니 사방에 결계를 쳐놓고 공성전으로 승부를 보자는 것 같은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성전은 수성하는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성문을 부숴놓기는 했지만, 그거야 병사들로 틀어막으면 그만이고, 성벽이 가지는 이점은 공성전을 치르는 내내 작용할 터였다.

그런데 왜 내주었지?

미끼라고 하기엔 너무 크다. 함정인 걸 알지만, 집문서가 미끼로 달렸으니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적들이 잘못 판단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레브는 망루에 앉아 고민을 이어갔다. 어느덧 뜨거워진 햇살이 그의 살갗을 빨갛게 데웠으나 레브는 움직일 줄을 몰랐다.

“저… 장군님. 어떻게 할까요? 아직 수색이 완료되지 않았으나, 성 내부에도 적군이 없는 듯합니다.”

더위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한 백인장이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찾지 못한 레브가 고개를 흔들며 상념에서 벗어났다.

“세사르더러 본진에 연락하라 해라. 네비스가 완전히 비었노라고. 하지만 이곳의 수색이 완료될 때까진 들어오지 말라 하고, 제군들은 저기, 저기, 저기 산들에 수색대를 보내라. 적이 숨어있을 것이다. 동향을 관찰하되, 너무 가까이 접근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공성 무기를 얼마나 만들어 놓았는지는 확인하도록.”

레브가 명령을 쏟아냈다.

성벽에 숨겨져 있을지 모를 폭발물을 찾으라 하고, 성문에 바리게이트를 치라 명했다. 시민 중에 간첩이 있을지도 모르니 모조리 성 밖으로 쫓아내라 일렀다.

레브는 결론을 내렸다. 어째서 수성의 이점을 버렸는지는 미지수이지만, 우리 반란군은 이 네비스를 목표로 해왔고, 또, 반드시 점령할 필요가 있었다.

원래 왕을 잡기는 어렵다.

달아나면 그만인지라 왕을 잡기보다는 왕국을 구성하는 귀족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게 정석이었다.

그런데 반란군이 여태껏 승승장구 전선을 밀어냈음에도 아직 귀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까닭은 기사들 때문이었다.

동부의 영지를 쓸어버린 왕실 기사들은 아직도 각 영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는 통에 중립을 선언한 귀족들이 반란에 동참하기를 주저하는 것이다. 제 영지가 공격받을 게 두려워서.

하지만 반란군이 수도를 점령하고 이를 선전한다면?

수많은 귀족들이 일시에 등을 돌릴 터였다. 그렇게 되면 구태여 쫓지 않아도 도망친 왕의 팔다리가 끊어지기 마련이었다.

물론, 적들이라고 이걸 모를 턱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저들은 공성전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친절하게도 마나 로드를 무력화하는 결계까지 설치해 주고(어차피 우리가 설치해야 했을 건데), 성까지 비워줬으니 공성에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레브가 고민한 게 바로 이것이었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몰라서 당황하다가 얼핏 실마리를 잡았다.

생각해보면, 적들은 전선에 증원을 보내지 않았다. 훈련조차 되지 않은 신병들로 시간을 끌기 바빴고, 기사들로 하여금 후방을 휘젓게 한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대응이었다.

왜 증원군을 보내지 않았을까?

짐작건대 적들은 마법 전력이 부족해서 전선에서의 싸움이 어려우리라 판단한 것 같았다.

해서 결계를 준비해 놓고 공성전만을 준비해온 것이다. 아마 전선이 밀리는 두 달 동안 공성 병기를 잔뜩 만들어 놨겠지. 네비스 수비병들은 새롭게 모집한 신병들에게 공성하는 요령을 가르쳐놓았을 테고…

‘그럼 이게 마지막이겠군.’

레브가 목을 양옆으로 꺾었다. 찜찜한 마음을 들숨으로 뱉어내고는 네비스 안팎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심지어 레브는 네비스 왕궁 아래 지하통로의 존재와 입구, 출구를 모두 알고 있었으므로 수성에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였다.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그로부터 며칠에 걸쳐 차근차근, 본대가 네비스에 입성했다.

북문을 통하여 최대한 조심스럽게 보급품을 성으로 나누어 넣고, 딱 그만큼씩만 병사를 들여보냈다. 갑작스러운 습격을 경계한 것이다.

한편 적들도 더는 저들의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산에서 수없이 많은 공성 병기를 이끌고 내려와 서쪽, 남쪽, 동쪽 삼면에 진지를 구축해 두었다.

그들은 정말로 공성전 단판 승부를 보자는 것 같았다. 저들에겐 소규모 교전에 도움이 되는 기사가 많고(성문을 부숴놨으니), 우리는 성이 있지만, 마법사를 못 쓰게 됐으니 어느 쪽이 꼭 유리하다고만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성을 가지고 있었으면 더 유리할 수 있던 걸 왜 포기했는지…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네비스 북쪽은 반란군이 점거한 상태였다. 병사들은 대부분 들어왔지만, 장기전이 될 것을 우려해 보급을 조금이라도 더 채워 넣고 있었다.

당연히 삼면을 둘러싼 적군의 동향에 온 초점을 기울였다. 레브와 레오도 {추적술}로 주요 인물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북쪽 보급로가 공격받았다. 큰 피해는 아니었으나, 레브와 레오는 화들짝 놀라 성벽으로 달려 올라왔다. 적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공격한 건 붉은 방패 문양을 휘날리는…

“테르탄 공작가다!”

콘라드 왕국의 서부 변경백, 라퍼트 테르탄 공작의 군대였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