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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

19화 검의 재능 (1)

19화 검의 재능 (1)

“누구냐!”

에티엔의 외침과 동시에 나는 숲의 바닥을 굴렀다. 한발 앞서 일어난 카인이 부릅뜬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그러고는 휘익! 손가락을 물고 휘파람을 불었다.

C조 소년들이 숲으로 산개했다. 얼핏 정해진 방향 없이 달리는 듯했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저들의 목표는 카인이다.

“일어나라.”

카인이 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우리는 가까운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단검을 던졌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거지?’

에티엔이 발현한 ‘강철 심장의 오러’ 때문인지 모든 괴물은 이제 에티엔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렇게 되자 에티엔도 더 이상 우리에게 신경 쓰지 못했다.

“뭘 하는 거냐! 어서 탈주자들을 잡아!”

이제 보니 기사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명령받은 병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생존자는 많지 않았다. 두 기사를 포함해도 열 명이 안 되었다.

“대장.”

C조 소년들이 합류했다. 나는 병사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도 에티엔의 전투에 집중했다. 치열한 접전이지만 결국 에티엔의 승리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저들이 공멸하지 않는다면 어쩔 생각이지?”

내 물음에 카인이 피식 웃었다.

“역시 알고 있었나.”

“당연한 거잖아. 저 오러 블레이드의 기사가 차원의 그림자들을 몰살시키면 다음은 네 차례일 테니까.”

“그건 그렇고 재미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더군. 데미안.”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떻게 할 것인지나 말해.”

“어이. 죽고 싶은 거냐 138번.”

내 말이 거슬렸는지 69번이 으르렁댔지만, 카인이 제지했다.

“우선 병사들을 처리한다.”

나는 카인의 의도를 이해했다.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우리를 찾고 있었고, 몸이 성한 자도 드물었다.

나는 병사들의 레벨을 떠올렸다.

20레벨 후반이 셋. 나머지는 20레벨 초반.

“놈들을 처리하며 상황을 살핀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소드마스터를 제거한다.”

“그게 가능할까?”

“차원의 그림자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 말은 맞다.

우리는 차원의 그림자를 타격할 수 없으니까.

“이쪽으로 오는 병사가 둘 있군. 처리는 맡기겠다, 데미안.”

카인이 C조를 이끌고 사라졌다. 20레벨이 넘는 병사 두 명을 혼자서 잡으라니. 카인은 나를 상당히 과대평가하고 있다.

혼자가 된 나는 차원의 그림자들을 통찰해 보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혹여 통찰을 감지한 놈들이 내게 몰려올 수 있으니까.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

자연 감응력 덕분에 시야는 맑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쪽으로 다가오던 병사들의 횃불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그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목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있는 두 병사의 시체를.

‘······!’

서둘러 주위를 둘러봤다. 자연 감응력에 관찰력을 더해 봤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설마 카인이 쓰러뜨리고 간 건가?

‘아니. 그럴 리 없어.’

카인은 맞은편 숲으로 갔다. 게다가 나에게 이 병사들의 처리를 맡긴다고 했다. 그랬던 녀석이 굳이 되돌아와 병사들을 죽이고 사라진다고?

나는 시체의 상처를 살펴봤다. 두부를 썰어놓은 것처럼 깔끔한 절단면. 저항의 흔적은 없다.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렸다.

‘차원의 그림자에게 당한 것은 아니야.’

그렇다면 몬스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것은 검이 만든 흔적이다.

‘그렇다는 건.’

싸늘한 소름이 덜미를 타고 흘렀다. 이 숲에는 내가 모르는 존재가 있다. 그 존재는 병사들의 편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편일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겠지.

에티엔에게 단검을 던졌던 의문의 그림자를 떠올렸다. 나는 ‘그것’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이럴 때 먼지에게 물어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불가능하다. 차원의 그림자가 등장한 후 먼지는 패닉 상태에 빠졌으니까.

***

카인은 무표정으로 눈앞의 현장을 바라봤다.

병사들이 죽어있다.

게다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카인은 벌써 세 번째 병사 시체를 발견했다.

‘차원의 그림자나 몬스터의 짓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작품이다. 그것도 최소 기사급에 달하는.

설마 이들을 지휘하던 기사의 짓인가? 그럴 리가. 무엇 때문에 기사가 이런 행동을 하겠는가.

“주위를 경계해라. 제3의 세력이 있다.”

카인은 단정했다. 이 숲에는 추격대에게 적대적인 세력이 있다. 그 세력은 숲의 어둠에 은닉해 병사들을 노렸고, 한순간에 죽였다. 병사들은 자신이 왜 죽었는지조차 몰랐던 것 같다.

귀신같은 솜씨다. 카인은 이와 비슷한 솜씨를 지닌 자들을 알고 있었다.

‘설마 그들이.’

카인의 심장이 뛰었다.

그날 밤 가문을 습격했던 자들. 그들은 기사도, 마법사도 아니었다. 달빛이 닿지 않는 그림자 속을 유영하듯 넘나드는 자들.

카인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의 머리를 채운 것은 짙은 복수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그들이 맞든 아니든, 그게 우선이 아니다. 당장 중요한 건 이 숲이 위험하다는 것. 죽은 병사들처럼 자신도 그들의 먹잇감이 될지 모른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차원의 그림자와 소드마스터 문제는 잠시 미뤄두자. 우선 군마를 훔쳐 달아나고, 추격자가 나타난다면 그때 다시 대처하면 된다.

“군마를 탈취한다.”

69번, 70번, 71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소년은 말을 탈 줄 안다. 카인이 그들을 측근으로 삼은 것에는 그 이유도 포함돼 있었다.

“70번이 62번을, 71번이 72번을 태우고 간다.”

불안하게 눈을 굴리던 62번과 72번이 안도의 숨을 뱉었다. 여섯 소년은 보급로를 향해 이동했다. 그러던 중 무슨 소리가 들렸고, 카인이 왼손을 들며 멈춰 섰다.

부스스슷.

숲을 헤치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검댕이 가득한 얼굴에 아무렇게나 뻗친 긴 머리.

79번이었다.

“······.”

당연하게도 79번은 말이 없었다. 평소처럼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소년들은 잠시 말을 잃었다.

저 녀석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분명 숲의 미로를 벗어난 뒤 낙오했을 텐데.

“69번이 79번을 태우고 간다.”

“대장. 군마를 탈취하면 바로 움직일 생각이야?”

69번이 물었다.

무심한 목소리로 카인이 답했다.

“데미안을 구한 뒤에.”

***

나는 다시 보급로 근처로 돌아왔다.

에티엔과 검은 괴물들은 여전히 전투 중이었다.

승기는 에티엔에게 확연히 기울었다.

‘하지만 에티엔도 많이 다쳤어.’

에티엔은 상처투성이였다. 플레이트 아머가 부서지고 투구도 절반이 날아갔다.

오러도 약해졌다. 기사든 마법사든 마력의 사용량에는 한계가 있다. 에티엔이 평범한 기사가 아니기에 아직 버틸 수 있었겠지.

저런 위대한 기사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무시했다. 그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다.

콰득!

지면에 검을 꽂은 에티엔이 휘청이는 몸을 지탱했다. 역시 최후의 승자는 에티엔이었다. 차원의 그림자들은 모두 소멸했다.

에티엔이 자조적인 웃음을 뱉었다. 전멸한 것은 괴물들만이 아니다. 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에티엔이 눈을 치뜨며 균열을 노려봤다.

“······저기서 이 악마 같은 놈들이 나타난 건가.”

에티엔이 균열을 향해 걸었다. 나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를 주시했다. 죽여야 한다. 지금의 에티엔은 탈진 상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눈에는 기회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기력이 쇠했다 해도 그는 소드마스터였다. 공격해 봐야 반격당할 뿐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일한 가능성이 허공에 떠 있었다.

고오오오오.

균열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차원의 그림자도 더 이상 뱉어내지 않고 있다. 왜일까. 균열의 목적은 대체 무엇이기에.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그리고 어쩌면 내가 에티엔의 숨통을 끊을 유일한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기다렸다. 균열 앞에 도달한 에티엔의 검에서 오러가 피어났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남겨둔 것처럼 찬란하고, 아름답게.

그 순간 균열에서 날카롭고 어두운 것이 튀어나왔다.

콰드득!

그것이 에티엔의 가슴을 뚫고 등 뒤로 불거져 나왔다. 나는 보았다. 인간의, 아니 악마의 그것처럼 길고 어두운 손. 그 손아귀에 쥐인 건 팔딱팔딱 맥동하는 에티엔의 심장이었다.

에티엔의 입에서 피가 뿜어졌다. 그 피가 균열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 균열은 에티엔의 육체 전부를 빨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큭······! 크헉······!”

심장이 뽑혔음에도 에티엔은 저항했다. 사라진 심장 언저리에 둘러진 ‘강철의 마력’이 보였다. 에티엔이 검을 쥔 채 뒷걸음질 쳤다. 무서운 삶의 의지였다. 그것을 넘어 에티엔은 균열에게 반격하려 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균열에서 튀어나온 다른 손이 에티엔의 오른팔을 잘랐다. 검이 바닥에 떨어졌고, 절단된 에티엔의 어깨에서 피가 솟았다.

“쿨럭······! 컥······! 크흐윽······!

에티엔의 얼굴빛이 검게 변했다. 만약 에티엔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이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는 지쳤다. 많은 괴물을 상대했고, 한계까지 마력을 소모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심장을 잃은 에티엔은 어차피 죽는다. 그가 아직 살아있는 이유는 ‘강철의 심장’ 덕분이다. 하지만 길게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중요한 건 에티엔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균열을 닫는 것이다.

파짓······! 파지지짓······!

균열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에티엔의 피와 마력을 흡수하며 덩치를 키우는 것 같았다. 이대로 두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차원의 그림자들이 추가로 튀어나올까? 아니면 더 크게 확장한 균열이 온 숲에 타락의 기운을 드리울까.

모른다. 짐작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무엇이 되었든 이 세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일으킬 거라는 것.

‘안 돼. 그렇게 두지 않아.’

나는 떨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상한 기분이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깊은 분노가 온몸에 스며들고 있었다.

[아스트레아의 천칭이 크게 기울어집니다.]

내 머릿속에서 폭발이 일었다. 지난 회차에서 기사를 쓰러뜨리던 장면이 머리를 스쳤다. 나의 무의식은 알고 있다. 이럴 때면 내가 지닌 특별한 힘이 극적으로 증폭한다는 것을.

하늘과 땅이 서로의 위치를 바꿨다. 균열을 중심으로 세계가 회전을 시작했다. 나는 그 맹렬한 소용돌이의 중심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검을 들어! 에티엔!”

에티엔의 검에는 오러가 깃들어 있다. 그리고 에티엔에게는 왼팔이 남아있다. 검을 들어 균열을 타격해야 한다. 내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의 내가 저 검을 쥐었다가는 오러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혼절할 거다.

에티엔이 나를 돌아봤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그의 눈동자에는 의구심이 깃들어 있었다.

“에티엔 쾨르다시에! 검을 들어! 균열을 타격해!”

목이 터져라 외치며 나는 마석 단검을 꺼냈다.

[리메이커가 세계의 현상에 간섭합니다.]

환기된 현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활자처럼 보이는 세계의 원소들이 단검을 중심으로 율동했다. 마치 밤하늘의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처럼.

【······데미안은 깊게 호흡하며 의지를 집중했다. 그의 마석 단검이 아름다운 빛깔로 변화하며 라이프 스톤으로 개화했다. 데미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단검의 칼날을 더욱 단단하고, 길게 늘였다. 활자들이 반딧불처럼 빛나며 그의 의지에 반응했다. 마침내 모든 변화가 마침표를 찍었을 때, 그의 단검은 ‘라이프 스톤 검’이 되었다.】

내가 부리는 기현상이 에티엔의 의식을 흔들어 깨웠다. 에티엔의 눈이 커졌다. 왼손을 뻗어 검을 움켜쥐었다.

화르륵!

꺼져가던 검의 오러가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의 눈도 본래의 생기를 되찾았다. 어두운 손이 에티엔을 공격했다. 그러나 에티엔은 대비가 되어 있었다. 그의 칼날이 깔끔하게 어둠을 가르고, 그 너머의 균열을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발사했다.

귀궤궤게게겍······!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어두운 손이 소멸했다. 불꽃처럼 타오르던 에티엔의 검은 찬란한 과거의 영광을 잃고 손잡이만 남았다. 에티엔은 자신의 ‘생명력’을 불살라 최후의 오러를 발현했고, 그 힘은 그의 검신마저 파괴해 버렸다.

생명력을 발산한 오러는 균열의 확장을 막고, 수축시켰다. 하지만 완전하지는 못했다. 균열은 소멸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 마석 단검을 ‘라이프 스톤 검’으로 변환시킨 이유다.

차앙!

개화를 마친 생명의 검이 눈부신 광채를 뿜었다.

나는 검을 머리 위로 들었고, 기시감을 느꼈다. 머릿속에서 어떤 장면이 스크린처럼 스쳐갔다.

무대의 주인공은 에티엔이었다.

빛나는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그는 검술의 심해(深海)를 탐험하고 있었다.

은백색 칼날에 깃든 오러.

아름다운 검의 궤적.

그곳에서 뻗어 나가는 오러 블레이드.

[조건이 충족되어 새로운 특성이 해금됩니다.]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그 광경은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 ■■]

오러의 발현과 오러 블레이드의 궤적이 반복됐다. 그 오의(奧義)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는 가능해지지 않을까.

.

.

.

[검의 재능]

나의 몸 안으로 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낯설지만 충만하고, 따스함이 넘치는.

나는 손에 든 검의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발을 움직였다. 눈앞에는 내 얼굴 크기만큼이나 작아진 균열이 있었다. 균열이 위협하듯 몸을 꿈틀거렸다. 그 안에서 새로운 어두운 손이 튀어나왔고, 그것을 향해 나는 검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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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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