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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

19화 사냥하는 거미(2)

오강혁 협회장의 제안은 레온에게 기꺼운 제안이었다.

1년 2개월 동안 그 누구도 클로징 하지 못한 난공불락의 게이트.

그러한 곳을 공략한다면 자신의 명성을 단박에 퍼트릴 수 있으리라.

레온은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다.

“허나, 노인장. 그동안 공략을 포기한 게이트라 들었는데, 어째서 갑자기 관심을 가지게 된 거지?”

레온은 난공불락의 게이트를 공략함으로서 떨칠 명성을 생각하면서도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던전 브레이크의 염려도 없는 특수 게이트다. 그런 곳을 구태여 다시 공략을 재개한다면 이유가 있을 터.

“흔한 일이지요. 위험을 무릅 쓰고 게이트를 공략한다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소상히 고해보아라.”

오강혁 협회장은 명백히 자신을 아랫것으로 취급하는 레온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헌터 협회의 협회장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세대 S급 헌터. 살아있는 전설이다.

하지만 그간 레온을 관찰해온 오강혁은 레온이 그를 굉장히 대우해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한하리 대리를 비롯한 소위 ‘평민’들을 대하는 태도와 그에게 접근한 두정그룹의 박 이사.

그들을 대하는 레온의 고압적인 태도를 생각하면 이조차도 꽤나 좋은 대우였다.

‘아쉬운 쪽이 굽힐 수밖에.’

레온은 마소로 오염된 땅을 정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 오강혁은 이 나라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굽히고 들어갈 수 있다.

“던전 클로징 조건인 ‘지혜의 보옥’이 미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최근에 클리어 된 주홍색 게이트의 보상이었지요.”

“상당한 가치를 지닌 모양이군.”

“예, 그렇습니다. 마탑이 이를 연구해 엄청난 힘이 압축되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에 협회 상층부도 고무되었지요.”

요컨대 그 지혜의 보옥을 확보하고 싶다. 설사 그 희생이 크더라도.

“동행하는 자는 있느냐?”

“10대 길드 중 하나인 황금사자 길드와 마탑에서 파견인원이 올 겁니다. 듣기로는마탑도 직접 마법사를 파견하기로 했다더군요.”

“10대 길드라… 이 나라의 기사단쯤으로 보면 되느냐?”

“국가 소속이 아니므로… 용병에 가깝다고 봐야겠군요.”

“흥. 금전을 밝히는 천것들인가. 백성의 수호는 기사의 의무이자 영예이거늘.”

오강혁 회장은 굳이 레온의 사고방식을 지적하지 않았다. 으레 이런 권위주의자들은 자신에게 달리는 이견에 분노하는 법이다.

자신만의 주관이 너무나 명확해 그 이외의 모든 것을 무시하는 타입.

능력이 없다면 모를까 그 능력마저 출중하다면 제3자가 지적해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좋다. 다만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희의 원칙을 벗어나는 일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지원하겠습니다.”

“뭐, 대단한 조건은 아니다. 첫째는 이번 전투의 승전 이후 짐의 명성을 그대들이 밝혀줘야겠다.”

“아직 생존자이신 폐하의 존재에 대해 공표하지 않았지요. 폐하께서 충분히 지구생활에 적응하신 뒤에 발표할 생각이었습니다만…….”

“대강은 파악했다. 이 지구가 처한 상황과 너희들의 생태를 말이야.”

과연, 정말일까? 너무나 시대착오적이고 다른 관념 속에서 살아온 레온은 지구인들의 유연한 사고방식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그 반대라고 쉬울까.

“둘째는…….”

레온의 시선이 협회장의 너머로 향한다. 그곳에는 협회의 직원들… 한하리도 있었다.

“여, 여기 있습니다!”

하리는 허겁지겁 달려와 준비된 메모지를 가져왔다.

“이건?”

“짐의 길드에서 양성할 훈련병 목록이다. 어중이 떠중이들이지만, 뭐, 지금은 그 정도가 딱 좋다.”

그곳에는 D급 헌터 ‘구대성’을 비롯한 몇몇 헌터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외에도 적당한 헌터들로 세 자리 숫자를 채울 것을 요구했고.

레온이 등급 테스트를 진행하며 눈여겨본 이들로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대부분이 D급… 아무리 높아도 C급이군요. 폐하 정도의 강자께서 눈에 찰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오강혁은 원하신다면 좀 더 유망주를 레온에게 붙여줄 수 있다고 언급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기사의 재목을 구하는 게 아니다.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해.”

“타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폐하, 선택은 그들의 몫이므로 전원 ‘만신전’ 가입을 강제할 순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오강혁은 그들이 제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들 모두가 말 그대로 어중이 떠중이. 10대 길드는 커녕 괜찮은 중소길드에도 들어가지 못할 저등급 헌터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협회장의 제안을 거절할까?

오강혁은 아니라 보았다.

“제 복을 걷어찬다면 그걸로 운이 다한 거겠지.”

레온은 레온대로 거절해도 상관없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제 제안이 얼마나 관대하며 축복받은 일인지 자신했다.

“언제쯤이면 되겠느냐.”

“사흘 뒤, 청주 종합운동장 앞에서 결집할 것입니다.”

“좋다. 너희들에게 보여주지. 사자심왕의 무용을.”

오강혁 회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애써 그에게 동조했다. 하리 양에게 연말 보너스를 두둑히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하며.

* * * *

청주 게이트 공략이 재개되었다.

적색 게이트로 상승한 청주 게이트의 무기한 공략 중지는 아시아에서도 상당히 주목 받는 사건이었다.

세 개 공략대가 궤멸당한 특수 게이트. 심지어 적은 야크트 스피너 단 한 기.

그 한 기를 이겨내지 못해 수많은 헌터들이 청주 게이트를 무덤으로 삼았다.

그렇게 청주 게이트는 청주시의 애물단지가 되어 지금까지 청주시민들을 불안에 빠뜨리는 원흉이 되었다.

-와아아아아아!

그때였다. 청주 종합운동장에 몰려든 시민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황금사자가 왔다!”

시민의 환호성을 시작으로 기자들은 종합운동장으로 진입하는 검은색 밴들을 향해 플래시를 터뜨렸다.

협회 직원들이 몰려드는 시민을 막는 사이 20여 대의 검은색 밴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한다.

“황금철! 황금철!”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내린 사내는 키가 2m를 넘는 거한이었다.

일견 위압감이 느껴질 사내였으나 미 대륙의 흑인 랩퍼들처럼 금목걸이와 팔찌 등으로 치장한 그는 잘나가는 랩퍼 같다. 아니, 실제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랩퍼이기도 했다.

“내가 왔도다~ 청주 시민들이여!”

언론사에서 가장 힙한 헌터로 손꼽히는 황금철은 혓바닥을 내밀며 시민들의 환호를 즐겼다.

“쪽팔리니까 그런 짓 좀 안하면 안 돼?”

“팬서비스~ 팬서비스~ 음반하고 티셔츠 팔아야지.”

딴지를 거는 여동생에게 히죽 거리는 황금철. 그녀는 걷다 말고 팬들과 포토 타임을 갖거나 사인을 하며 시간을 지체하는 그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그럴 거면 그냥 연예인 하지? 니 구린 랩 들어주는 호구들이 더럽게 많긴 해. 길드장 넘기고 연예기획사나 차려.”

“사랑하는 마이 시스터, 헌터가 더 돈이 된단다.”

“사랑은 니미.”

그때였다. 연예 활동은 하지 않는다 해도 A급 헌터로 유명인사인 여동생에게도 팬들이 몰려들었다.

“꺄아아악! 황연하 언니도 있어! 언니! 여기 봐줘요!!”

“그렇다는데? 사랑하는 마이 시스터 금순아?”

“금순이라 부르지 말랬지, 금돼지 새꺄.”

개명 신고도 끝난 판국에… 황연하는 협회가 마련한 청주 게이트 앞으로 향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법사 길태성.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흠, 안내 감사합니다.”

협회 직원들의 정중한 안내 아래 턱을 치켜세우며 등장한 것은 마탑의 마법사 길태성이다.

한국 마탑지부의 유망주로 마법사가 귀한 헌터세계에서는 거의 준S급 대우를 받는 전투마도사다.

그리고 그런 그를 따라나서는 수십 명의 외국인 헌터들.

“블랙맘바?”

“그 두당 2천이 넘는다던 용병 헌터들?”

“마탑은 그 정도로 진심인 건가?”

마법사의 전력이 온전히 발휘되는 것은 호위병력이 있을 때다. 길태성은 마탑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B급과 A급으로 이루어진 용병단 블랙맘바들을 동원했다.

“어, 저기 차량 한 대가 더 들어오는데?”

“협회차량이네?”

가장 뒤늦게 도착한 협회 차량에서 내린건 땋은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여검사였다.

정장의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그녀는 작년 아카데미 드래프트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이다.

“한하리?”

“오오, 설마 협회가 한하리를 투입하는 건가?”

과연,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A급 헌터 한하리. 그녀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천재로 유명하다.

A급 헌터야 국내에도 숫자가 꽤 되지만, 하리가 유독 주목받는 건 바로 그 나이다.

열네살에 각성해 아카데미에서 훈련 중 고유스킬을 각성. 최연소 A급 헌터가 되지 않았는가.

한국을 대표하는 10대 길드에서 거액의 계약금을 들고 러브콜을 했지만, 그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협회로 들어간 루키.

모두가 당연히 그녀의 참전을 기대했다. 하지만…….

“폐하, 도착하였습니다.”

그녀는 차량 안으로 허리를 숙이며 누군가를 안내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타난 건 생뚱맞게도 금발 외국인이다.

“뭐야, 저 외국인은?”

“블랙맘바…는 아닌 거 같은데.”

기자들은 물론이고 지켜보던 시민들도 남자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 * * *

한 게이트를 여러 세력이 공략하려 들 때는 사전 조율이 필요하다.

보스는 누가 먼저 공략할지, 나오는 아이템은 어떻게 배분할지… 순번부터 시작해 무엇하나 갈등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이 협의에만 몇 날 며칠이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청주 게이트 공략은 꽤나 간단하다.

보스몹은 야크트 스피너 한 체뿐이고, 보상이라고 해봤자 채굴 자원을 제외하면 ‘지혜의 보옥’ 정도다.

“저희 마탑은 모든 보상을 황금사자 길드에게 넘기겠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건 ‘지혜의 보옥’ 그거 하나면 됩니다.”

마탑의 길태성이 꺼낸 말에 황연하가 피식거렸다.

“그게 핵심인데, 그걸 가져가시면 우린 뭐 먹고 사나.”

예상했던 반응이다. 길태성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스 퇴치의 공은 모두 황금사자 길드에게 넘기겠습니다. 추가로 보옥을 무사히 넘겨주시면 오백억원의 보상을 약속하지요.”

“”……!””

생각지도 못한 거액에 황연하가 당황했다.

500억? 레전더리 등급의 무장이 얼추 100억이었다.

준 S급이라는 자신도 레전더리 등급의 무장을 구하기 위해 빠듯하게 돈을 모으고 있건만, 500억이면 무장뿐 아니 전신 풀셋을 갖출 수 있는 금액이다.

그 정도의 돈을 거리낌 없이 내놓는다고?

‘대체 그게 뭐길래?’

황연하는 상대를 떠봐야 하나 망설였다. 하지만 휘파람을 부는 황금철.

“통 크게 나오시네. 좋아, 우리가 야크트 스피너를 잡아도 보옥은 댁들에게 넘기지.”

“야, 그걸 그렇게…!”

“마이 시스터~ 어차피 모르는 물건이야. 펜타곤도 해석을 못 해서 마탑에 넘겼는데 우리라고 별거 있겠어?”

“…….”

황금철은 지혜의 보옥이 가진 가치를 짐작하지 못해서 넘기는 게 아니었다.

어차피 모른다. 모르는 물건을 굳이 마탑과 마찰을 빚어가며 차지할 필요가 없다.

전장에선 터프함과 과감함으로 유명한 황금철이었지만, 의외로 그는 안전주의자다.

“……600억. 아, 아니, 550억. 그 정도는… 요구해야겠어.”

그 말에 길태성이 싱긋 미소 지었다.

“그냥 600억으로 하시죠.”

“크흠…!”

통큰 결정에 황연하는 그냥 650억 불러볼 걸, 하고 후회했다.

그렇게 황금사자와의 협약이 끝난 길태성이 이번 공략의 결과를 확신하던 때였다.

“그런데 말이야, 마법사 나리. 저 친구하고는 따로 협상 안 하나?”

황금철이 힐끗 단상의 끝을 향했다. 거기에는 협회의 A급 헌터인 한하리가 보온병에 담겨 있던 차를 따르고 있었다.

“보리차라고 하옵니다.”

웬 사극 말투? 길태성과 황연하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레온은 우아한 자세로 컵을 입가에 대었다.

“흠, 나쁘지 않구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아아아…….”

길태성은 두 사람의 촌극을 지켜보면서도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면 협회에서 파견한 헌터 분이셨죠. 한 자리를 비워야겠다기에 어떤 분인가 했는데…….”

길태성은 고작 두 명을 유효한 전력이라고 보지 않았다.

이곳에 자신을 포함해 B급 이상의 공략대인 블랙맘바 49명이 있었고 10대 길드의 일원인 황금사자 49명이 있다.

그중에서 고작 두 명. A급인 한하리가 있다 쳐도 두 명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뒷말이 나오는 건 싫으니 협회 분께도 제안하지요. 저희가 보옥을 손에 넣으면 기여도와 상관없이 두 분에게 5억원을 지급하겠습니다. 나쁘지 않지요?”

“풋…!”

조소는 황금철에게서 흘러나왔다.

“무엇이 그리 우스운 겁니까?”

“마법사 나리, 협회가 자리를 비워두면서까지 보낸 양반이야. 그것도 올해의 루키인 한하리 양을 시종으로 붙여서. 그게 무슨 의민지 모르겠어?”

“……A급 헌터보다 강하다는 겁니까?”

최소로 봐도 준 S급. 어쩌면 S급. 물론 길태성도 황금철도 레온이라는 사내를 들어본 바가 없다.

하지만 황금철은 그의 정체가 짐작이 갔다.

‘최근에 사라졌다는 흑색 게이트. 그곳에서 튀어나온 생존자일 가능성이 높단 말이지.’

보통 연고도 없이 갑자기 등장한 강자들은 생존자인 경우가 많았다.

천마(天魔), 살성(殺星), 마녀나 선인 등 숱한 네임드 생존자들이 레온과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아마 협회가 주최한 일종의 데뷔전이겠지. 설마 다짜고짜 준 적색급 게이트에 밀어 넣다니.’

협회는 어지간히도 자신이 있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한 건 길태성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실례… 그럼 저희가 새롭게 제안을──”

“같잖다.”

레온이 처음으로 꺼낸 말은 길태성의 입을 틀어막았다.

“뭐라… 고요?”

레온은 이 모습이 모두 같잖았다. 당치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는 것처럼 보였다.

“전장에 서지도 않고 벌써부터 전리품을 들먹이다니. 너희들의 눈에 탐욕이 가득하구나.”

“마탑의 마법사를 무시하는 겁니까?”

“주문쟁이 따위가 무시할 만한 명예가 있느냐?”

생각지도 못한 폭언에 길태성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전리품에 눈이 먼 너희들이 얼마나 대단한 무용을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뭐, 선두는 네놈들에게 맡기마.”

마치 양보하는 투의, 그것도 아주 기분 나쁜 방법으로 말한다. 거기에 발끈한 건 황연하였다.

“뭐? 맡긴다? 그럼 우리가 죽어라 싸우고 있을 때, 넌 뒤에서 팔짱 끼고 구경이나 하겠다고?”

이 세계에서는 처음 받는 반말인 탓일까? 레온의 미간이 좁혀졌다.

“혓바닥을 가벼이 놀리는구나, 우먼.”

“뭐래는 거야, 아이씨, 한판 붙어?”

“너는 본왕에게 도전할 권리가 없다.”

“환장하겠네! 이게 진짜!”

발끈한 그녀는 등 뒤에서 어깨를 붙잡고 누르는 황금철에 의해 제지됐다. 그는 레온에이 아닌 하리에 시선을 보냈다.

-너네 생존자 관리 안 할 거야?

황금철의 시선에 하리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해보려고 했는데요. 안 됐습니다…….

-오케이. 개썅마이웨이 타입이라 이거지.

“좋아, 그 폐하 형씨? 그럼 우선 공략권은 우리와 마탑 나리한테 있다는 거지?”

레온은 답하지 않고 무언으로 긍정했다.

야크트 스피너.

살아남은 헌터들이 파악한 정보로는 꽤나 강력하다는 모양이지만, 그것이 자신이 직접 나설 정도의 전사냐 하면 별개의 문제다.

데메라의 신앙을 퍼뜨린 덕에 약간의 힘이 돌아온 자신이 직접 상대해줄 명예와 실력을 갖춘 이가 흔할 리 없으니.

“저… 폐하. 괜찮으십니까?”

“무엇이 말이냐?”

“이번 공략의 목표는 폐하께서 명성을 퍼뜨리는 것인데…….”

만약 황금사자나 마탑이 야크트 스피너를 쓰러뜨려 버리면 본말전도가 되지 않는가, 하리의 지적은 타당했다.

“아무리 명예가 중요하다 한들 아랫것들을 제쳐놓고 사자심왕이 먼저 나서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자칫 명예를 독점하는 길이 돼버리지.”

이 양반은 이상한데서 참 꼰대 같다. 하리는 그것을 입 밖으로 내밀지 않는 참다운 사회생활을 익혔다.

* * * *

“영상에서 봤던 대로… 날씨가 개판이군.”

청주 게이트는 황야 한가운데의 도시가 펼쳐진 곳이다.

랜덤하게 모래폭풍이 불어 조금만 지체해도 금방 모래폭풍에 갇혀버린다. 운이 나쁘게도 공략대는 게이트에 진입하자마자 모래폭풍을 마주했다.

“도시 내부로 진입하지 마. 야크트 스피너는 내부로 진입할수록 높은 확률로 출몰하니까.”

황금철은 그간 궤멸한 공략대들의 정보를 토대로 ‘도시 안’이 아닌 바깥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했다.

도시 외곽에도 건물들이 꽤 모여 있어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는 건 어렵지 않다.

“폐하! 여기 이쪽에 자리를 마련했사옵나이다!”

“오냐.”

한 자리에 모여있기 편하고 주변 경계를 하기 쉬운 큼직한 건물. 그 내부에 자리를 깐 하리가 도시락을 열었다.

“폐하, 부족한 음식이나마 차려보았나이다~ 드셔~ 주시옵소서!”

“전장에서 군량으로 불평을 할 정도는 아니다.”

하리는 식사를 준비하면서도 어딘가 불안한 낯이었다.

“어찌 그러느냐.”

“으음… 잘 풀려도 걱정이고, 안 풀려도 걱정이옵니다.”

잘 풀리면 잘 풀리는 대로 레온이 활약할 거리가 사라진다.

안 풀리면 그게 제일 안 좋은 것이고.

“사실 폐하께서 나서실 필요도 없이 잘 풀리는 게 제일 좋은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하리는 힐긋 레온의 눈치를 봤다. 이 시대착오적인 사자심왕이 혹시 자신의 명성을 떨칠 기회가 없어지라 고사를 지내냐며 호통을 칠 것 같아서였다.

“그래, 그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예?”

“사자심왕이 직접 나서지 않는다는 건 일의 경중이 그만큼 가볍단 소리다. 너는 짐의 왕국에서 왕의 역할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어음… 다스리는 역할… 아니옵니까?”

“그거야 당연한 것. 허나, 이 또한 누구든지 대체 가능하다. 어지간히도 하자가 있는 이가 아니라면 비슷비슷하겠지.”

왕이 하는 일 같은 건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다는, 절대왕권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발언을 하는 사자심왕.

“그, 그럼… 기사들의 왕으로서 선두에 서는… 아.”

그는 호남 평야 게이트에서도, 서울역 게이트에서도… 지금의 청주 게이트에서도 한 번도 먼저 나선 적이 없다.

그는 계속해서 행동으로 주장했다. 하찮은 전투에 왕의 검이 뻗는 일은 없다고.

“설마… 사자심왕이라는 직책은…….”

“최후의 보루다.”

그 말에 하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간 그녀와 협회는 레온을 중세시대의 야만적인 왕 정도로 여겼다. 거기에 성력이라는 신앙의 힘을 곁든.

하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레온은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다. 꽉 막힌 기사나 장군도 아니었다.

라이온하트 왕국 최후의 보루.

다시 말해 그가 나선다는 건 최종병기가 출격한다는 걸 의미했다.

“알겠느냐. 사자심왕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 자체가 기사들에게 치욕적인 일이며 사태가 심각함을 의미한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드물게 한숨을 쉬었다.

“공교롭게도 한심하고 나약한 너희들을 대신해 이번에도 짐이 수고해야 할 것 같구나. 짐의 영광의 기사단이 그리워지는군.”

섬뜩한 예고였다.

마치 그가 나서야 할 정도로 큰일이 벌어진다는 것처럼.

“하지만 이곳에는 S급 헌터인 황금철 헌터님도 계시고, 마탑의 마법사도 계시는 걸요.”

상대는 하나였다. 지금까지 끔찍한 전과를 달성한 킬링머신이라고는 해도 S급 헌터와 마법사까지 있는 공략대를 어찌할 수는──

“헌터들이라고 했나. 놈들이 평범한 인간치고는 나름 힘깨나 쓰는 것들이라는 걸 인정하마.”

레온은 코웃음을 치며 현대 지구의 초인들을 비웃었다.

“하지만 놈들은 전쟁을 몰라. 외곽은 지금까지 안전했다? 고작 세 번 싸워본 경험으로 잘도 자신하는구나.”

“네? 그게 무슨…….”

“너희들은 스스로를 공략대라고 부르지. 몬스터의 패턴을 알아내고 그에 대응한다고. 이 얼마나 우스운 소리냐.”

불안하다.

그의 말은 기이한 신뢰가 있다.

그것이 좋은 일이건, 안 좋은 일이건.

“장수는 상황에 맞게 유연히 임하는 법. 거기에 패턴 따윈 없느니라. 내 보기에 그 야크트 스피너라는 자는 타고난 전쟁꾼이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증명이 시작된다.

-끄아아아아아악!

-뭐, 뭐야, 이건!

-저, 적이다! 놈이 습격──!

모래폭풍 속에서도 선명하게 울리는 절규. 모래바람에 섞인 비명이 섬뜩하게 울렸다.

야크트 스피너가,

캠프를 습격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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