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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

빌어먹을 아이돌 19화

*  *  *

무대가 끝이 났다.

참가자들은 제작진의 지시에 맞춰 박수를 쳤지만, 심사위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상의하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끝에 손을 든 건 블루였다.

“피디님, 혹시 원곡 무대 영상을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오디션 프로그램은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기획된 쇼다.

많은 부분에 대본이 있으며, 즉흥적으로 보이는 일에도 A to Z가 정해져 있을 때가 있다.

심지어 경쟁이 치열해진 후반부에는 무대를 보기 전부터 탈락과 합격이 정해진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아니었다.

참가자들의 선곡이 사전에 고지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사위원들이라고 모든 곡의 모든 무대를 기억하는 건 아니었다.

“그럼 스크린으로 다 함께 보셔도 괜찮죠? 참가자들과 함께.”

“네. 그러시죠.”

금방 무대 뒤의 스크린으로 웨이프롬플라워의 무대가 송출되기 시작했다.

“아, 그치.”

“이런 느낌이었지.”

참가자들은 입을 움찔거리면서도 말을 조심했다.

걸 그룹의 팬덤은 보이 그룹 팬덤보다 라이트한 편이지만, 코어 팬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여기서 입을 잘못 놀리면 1군 걸 그룹 팬덤에게 오체분시를 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색하다.’

‘왜 음을 높였지?’

‘높인 게 아니라 한시온이 낮춘 거긴 한데…….’

한시온의 버전이 원곡이고, 웨이프롬플라워의 버전이 커버 같다.

그것도 썩 훌륭하지 않은 커버.

이건 꽤 놀라운 일이었다.

한시온 버전은 딱 한 번을 들었을 뿐이고, 원곡은 많이 들었으니까.

즉, 한시온의 한 번이 원곡의 수십, 수백 번보다 강렬한 맛이 있다는 뜻이다.

그사이, 심사위원들이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 송출이 끝나고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건 멘토인 블루였다.

“한시온 참가자?”

“네.”

“왜 말을 안 했어요? 나도 몰랐잖아요.”

“안무 말씀이시죠?”

“네. 춤의 방향성을 반대로 가져갔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한시온이 모든 춤을 반대로 춘 건 아니었다.

기본 동작을 반대로 추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핵심 동작들은 분명 반대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밀어서 펼치는 손동작은 핀 채로 쥐고 당겼다.

안에서 밖으로 뻗는 스텝들은 밖에서 안으로 닫았다.

몸을 펼치는 상체의 움직임은 편 채로 접었다.

놀라운 건, 이게 아주 자연스러웠고, 바뀐 노래가 주는 느낌과 잘 어울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심사위원들은 긴가민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블루조차.

이에 대한 한시온의 대답은 간단했다.

“모르고 보셔야 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건방진 말이다.

블루를 한 명의 심사위원이자 멘토로 보는 게 아니라 관객으로 봤다는 의미니까.

하지만 실력이 수반될 때 이런 건방짐은 매력으로 다가온다.

최대호가 말을 이었다.

“낙화를 표현한 거죠?”

“네. 맞습니다.”

“왜요?”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가사에서 중의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개화의 입장에서도 어울리지만, 낙화의 입장에서도 어울린다고.”

“좀 더 자세히 말해 볼래요?”

구색을 맞춘 대답이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길었던 밤에 마침표를 찍어

마침내 세상에 인사를 Hi

본래 이 가사는 추웠던 겨울밤에 마침표를 찍고 봄을 맞이하는 꽃의 인사다.

하지만 한시온의 귀에는 져 버리기 직전에 하는 마지막 인사처럼 들렸다.

날 둘러싼, 따뜻한 온도

살갗을 스치는 너의 손도

전부, 오늘을 위했나 봐

따뜻한 온도라는 가사가 주는 느낌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맞이할 따스함에 대한 기대보다 마지막 온기에 대한 아쉬움이 먼저 느껴졌다.

이 따뜻함을 기억하기에, 앞으로 다가올 겨울을 버틸 수 있다는 것처럼.

물론 누군가는 대놓고 봄을 표방한 음악을 굳이 이렇게까지 해석해야 하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예술이라서 그렇다.

이제 막 데뷔를 하는 이들이, 어설픈 곡을 가지고, 아쉽게 불렀지만…….

그래도 음악이고, 예술이다.

예술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온전히 소비자의 몫이다.

설령 그 소비자가 무한회귀에 갇혀 활짝 피어났다가 형편없이 져 버리기를 반복하는 사람일지라도.

한시온의 가사 해석에 최대호가 묘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해석한 방식의 느낌을 잘 표현하기 위해 편곡을 한 건가요?”

“편곡은 없었습니다. 음계만 건드렸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냥 음계만 건드리면 어색해질 부분들이 꽤 있었다.

한시온은 그런 부분에서는 노래의 표현을 살짝살짝 바꾸긴 했다.

하지만 이도 편곡이라고 보긴 애매하고 허용되는 수준의 루바토(개인 해석에 맞춘 자유로운 템포)였다.

“확실히 편곡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애매하죠. 옥타브의 스케일만 바꾸고 편곡료를 달라고 하면 욕먹을 거니까요.”

기술적 멘트를 담당한 이창준 작곡가가 농담처럼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곡 분위기가 확 바뀐 건 신기한 일이었어요.”

이어서 두 사람은 방송에 나갈 리가 없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듣고 있던 제작진이 그만 끊어야 하나를 고민할 때쯤, 대화가 방송에 쓸 만한 지점에 닿았다.

“잠깐만, 한시온 참가자. 뭔가 좀 이상한데요?”

“네?”

“말하는 걸 들어 보면 본인이 뭔가를 바꿨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 같네요?”

“아, 맞습니다. 저는 이게 원래 형태였다고 생각합니다.”

“원래의 형태?”

“플라워스 블룸은 초창기 작곡 단계에서는 남성 보컬을 위한 곡이었을 겁니다. 아마 프로덕션 과정에서 가수가 정해져서, 여성 보컬에 맞춰 바꾼 게 아닐까요?”

“…….”

“그러니까 제가 뭘 바꾼 건 없고, 그저 초창기 버전으로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멘트를 듣고 가만히 있으면 방송감이 없는 사람이다.

한시온이 마음에 드는 것과는 별개로 방송은 늘 화제를 만들어 내야 하니까.

아마 한시온도 그걸 원하고 던진 질문일 거다.

“그러니까,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이 버전이 더 좋은 버전이다?”

최대호의 질문에 한시온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제가 남자라서 이 버전을 부른 겁니다. 여자였다면 원곡을 불렀겠죠. 이 노래를 꼭 부르고 싶었거든요.”

“왜요?”

“정말 좋아하는 노래니까요. 가사가 와닿습니다.”

“하지만…….”

최대호는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한시온의 함정을 깨달았으니까.

저놈은 의도적으로 두 곡의 수준 차이에 대해서는 언급을 배제하고 있다.

아니, 그런 게 전혀 없다고 가정을 한 채 말하고 있다.

여기서 한시온의 본심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하지만 두 버전의 수준 차이가 너무 나지 않나?’같은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가불기다.

‘와, 이 자식 뭐야?’

심지어 더 강력한 가불기도 있다.

한시온에게는 굳이 봄 노래를 낙화로 과잉 해석할 필요가 있었냐는 질문을 던질 수가 없다.

그의 부모님과 관련된 사연을 생각해 보면.

즉, 한시온은 아쉬운 말이 나올 수 있는 여지 자체를 남기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 무대를 실력으로 깔 수도 없고.

이제 심사위원들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다.

“춤, 보컬, 심지어 노래 해석까지 매력적인 무대였습니다. 한시온 씨는 완성된 가수 같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춤에 약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독무로 이렇게 꽉 찬 느낌을 주는 게 쉽지 않은데요.”

“피어나는 안무는 혼자서 역부족이었겠지만, 꽃이 지는 느낌의 안무는 오히려 혼자라서 맛이 살았던 것 같습니다.”

칭찬.

‘영리한 건가, 본능적인 건가.’

분명 본인의 재능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걸 자랑하는 순간 원곡의 수준에 대한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나온다는 걸 알고 있다.

최대호는 한시온의 음악 수준보다 그게 더 놀라웠다.

그렇게, 심사평이 끝나고 공개된 점수는 39점.

하마터면 함정에 빠질 뻔했던 최대호가 살짝 삐져서 9점을 주었다.

*  *  *

무대를 끝내고 자리에 앉자, 참가자들이 힐끗거리는 게 느껴진다.

내가 아무리 오랜 시간 살아왔다지만 눈을 보고 속마음을 읽는 재주는 없다.

하지만 없는 재주를 부려 보자면.

‘아, 진짜 저 새끼는 왜 첫 번째로 하고 지랄이야…….’

‘말 좀 걸어 볼까? 일단 이 새끼는 B팀 확정 같은데.’

‘씨발, 세상 더럽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뭐 이 정도가 아닐까?

참고로 이 속마음들은 무수히 많은 생 속에서 들었던 뒷담화에 근거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앉아 있는데 구태환이 날 쓱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잘했다는 뜻이겠지.

나도 잘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 준 다음에, 무대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내 다음 차례는 박성주라는 래퍼였다.

사전 미션에서 구태환과 함께 공동 꼴등이었는데, 가위바위보에 져서 내 다음 순서가 되어 버렸다.

‘얘는 탈락이고.’

그 다음은 최재성이라는 보컬.

노래는 나쁘지 않았다.

모든 부분에서 특출 난 장점을 보이면서도, 특별한 단점은 안 보이는 육각형 보컬의 느낌?

지금은 좀 아쉽지만 트레이닝을 하면 괜찮아질 것 같은 느낌이다.

근데 최재성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분명히 어디서 본 사람인데, 어디서 봤는지 도통 모르겠다.

무대를 보고 있으면 기억이 날 줄 알았다.

난 얼굴, 이름은 까먹어도 음색은 기억하니까.

근데 모르겠다.

분명 착각이 아닌데.

저 음색으로 굉장히 놀라운 무대를 선보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것 같은데.

‘흠. 그런 것치고는 포텐셜이 높아 보이진 않는단 말이지.’

혹시 뮤지컬 배우 같은 걸로 성공해서 기억이 안 나는 건가?

답답함에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는데, 노래를 부르던 최재성이 날 힐끔 보더니 갑자기 실수를 했다.

“…….”

심사위원 눈치를 봐야지 왜 내 눈치를 봐?

뭔가 괜히 미안해져서 시선을 돌려 주니까, 좀 편안해진 얼굴로 다시 노래를 부른다.

소심한 친구인 거 같다.

소심한 건 안 고쳐지는데.

탈락해서 같은 팀으로 안 만나면 좋겠다.

다음으로, 내가 도와준 구태환의 차례였다.

구태환은 재미있는 선곡을 했다.

미국의 R&B 슈퍼스타인 LAZY BOY의 .

레이지 보이는 한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가수.

아마 얼굴은 모르는 사람들도 노래를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거다.

예능에서 분위기를 잡는 씬이 나오면 꼭 레이지 보이의 곡을 쓰니까.

슬로우 다운은 이런 레이지 보이의 곡 중에서도 유독 호불호를 많이 타는 곡이었다.

굉장히 느린데, 가창력으로 승부한다.

노래의 구성 자체가 ‘가창력을 뽐낸다.’라는 하나의 명제를 위해 존재하기에, 가창력이 없으면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창력 판독기’라는 밈이 있었고, 그 밈 때문에 유명해진 곡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곡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의 생에서 레이지 보이랑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있는데, 본인은 사람들이 듣고 웃을 거라고 생각해서 만든 곡이라고 했다.

근데 아무도 웃지 않고 진지하게 부르는 유투브 챌린지가 유행해서 당황했다고.

아무튼 아이돌 서바이벌에서 부르기엔 적합하지 않은 곡이었고, 구태환과도 어울리지 않는 곡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하나같이 ‘저걸 부른다고?’ 하는 표정으로.

그사이, 날 힐끔 쳐다본 구태환이 마이크를 움켜잡았다.


           


Damn Idol

Damn Idol

빌어먹을 아이돌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a harrowing car accident that defies the odds of survival, Han Si-On finds himself once again at the crossroads of fate, quite literally. Miraculously walking away with his life, he faces the daunting task of navigating a life he’s all too familiar with—due to a cryptic deal that traps him in a cycle of regressions. [Mission failed.] [You will regress.] His mission? A seemingly impossible feat of selling 200 million albums, a goal dictated by the devil himself. With each regression, Han Si-On returns to the age of 19, burdened with the knowledge and memories of countless lives lived, all aimed at achieving a singular, elusive go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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