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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

#외전 2. 크리스마스 선물

-경수 형!

“헉.”

-제 말 좀 들어봐요!

무심결에 이어폰을 끼고 전화를 받았다가 고막이 터지는 줄 알았다. 전화 예절을 알려줘도 들뜨면 무작정 할 말부터 꺼내는 버릇을 고쳐줘야 했다.

“내가 여보세요, 부터 하라고….”

-네에. 여보세요? 저 노을인데요!

마침내 버릇이 고쳐졌다.

“그래, 이제 말해.”

-형, 어차피 크리스마스 때 할 일 없죠? 없다고 했었죠, 그날 저랑 놀 거죠!

“하나씩 말해. 그리고 벌써 그 얘기야?”

-벌써라뇨, 크리스마스가 다음 주인데.

노을은 누구보다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12월 초부터 미리 일기 예보까지 찾아가며, ‘그날 눈 안 오면 기상청에 문의 남길래요.’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부터 했었다.

기상청이 날씨를 지배하는 것도 아닌데… 물론 농담인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러지 않을 것을 약속받았다. 뭔가 아쉬운 듯 보였던 표정은 아마 착각이었을 것이다.

“왜?”

-저 형이랑 꼭 하고 싶던 게 있었거든요, 잠시만요! 톡으로 사진 보내줄게요.

경수는 휴대폰 화면을 켜고 노을에게서 사진이 오기를 기다렸다. 조금 뒤 이어폰을 통해 ‘앗.’이란 소리가 흘러나옴과 함께 사진 하나가 도착했다.

「노을이: (사진)」

폭신해 보이는 붉은 털로 감싸인 수갑에 하얀 솜 방울 몇 개가 붙어 있는 수갑 사진이었다. 경수는 순간 머리가 굳었다. 이건 무언가를… 예고하는 사진인 건가?

-앗, 죄송. 이건 이번에 할 게 아니구요….

“…….”

이번에 할 게 아니라니, 언젠간 한다는 소리야? 사진을 눌러 확대를 하려는데 갑자기 사진이 사라지며 삭제된 메시지란 말풍선으로 대체되었다.

「노을이: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노을이: (사진)」

-이거예요. 방금 사진 보냈어요!

두 번째로 도착한 것은 빨간 바탕에 흰 글씨가 쓰인 사진이었다. 그런데 거기 쓰인 말을 보니 아무래도 노을이 직접 만든 것 같았다.

――――――――――

♡제1회 노을이와 경수 형의 선물 주고받기 대회♡

심사위원: 천노을

우승 유력 후보: 천노을

참가상 후보: 김경수

――――――――――

“뭔데, 이게.”

-제1회 노을이와 경수 형의 선물 주고받….

“읽을 줄 몰라서 한 소리가 아니야!”

-다행이다.

“…….”

-저랑 이거 해요, 네? 재밌을 것 같잖아요….

노을은 이미 제게 어떤 선물을 줄지 생각을 해뒀다며 들뜬 목소리로 종알거렸다. 그는 그날 밖에 나갈 게 아니라 집에서 놀 거라면, 특별한 날에 걸맞게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고 경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안 돼요? 네? 왜 안 돼요?

“안 되는 건 아니고… 넌 모르는 외국인 생일을 왜 이리 챙겨? 이해 안 가.”

-크리스마스가 모르는 외국인 생일이에요?

“아는 사이는 아니잖아.”

-…참나. 그래 놓고 형, 크리스마스 아이템 제일 먼저 다 모았잖아요! 남는 템 파는 거 제가 어제 똑똑히 봤는데! 이해 안 가는 사람이 일루전 크리스마스 이벤트는 왜 챙겼는데요?

“…똑똑한 새끼. 꽤 설득력 있다?”

-알아요.

선물 교환식을 하자니. 게임에서든 기념일이든, 하여간 이벤트를 참 좋아하는 놈다운 생각이었다. 하지만 경수는 노을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브든 크리스마스 당일이든 사람 많다고 나가기 싫다면서요, 형은… 나는 놀이공원 가서 너구리 솜사탕 먹고 싶은데 다음 달에 가준다고 해서 꾹 참았잖아요. 그런데 이것까지 안 해주면 나 진짜 서운해애….

“너 …울어?”

-킁, 흑흑흑….

가증스럽긴. 일부러 우는 소리를 내는 게 틀림없다. 진짜 울면 아니라고 했을 테니 혼자 처량하게 울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경수는 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며 하는 수 없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러다 진짜 울릴라….

-앗싸! 기대할게요!

노을은 수화기에 대고 쪽 소리를 내고는 전화를 끊었다. 무작정 걸려왔던 것만큼이나 갑작스러운 종료였다.

경수는 빠르게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으며 입술을 물어뜯었다. 분명히 계략이다.

‘얘가 생각이 없는 애도 아니고, 그 사진을 실수로 보냈을 리가 없어. 나 보라고 보낸 거야.’

아마… 본인이 받고 싶은 선물 같은 게 아니었을까? 스무 살이면 한창 수갑이 갖고 싶을 나이인가 보지.

*

선물은 만나서 교환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자신의 말에, 노을은 ‘들고 가기 좀 번거롭지 않을까요?’라며 서로의 집에 전날 도착하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노을은 자신의 선물은 정말 기대해도 좋단 말을 하며 피식피식 웃었다. 도대체 얼마나 무거운 거길래 들고 가기 힘들다는 말을 하는 거지.

경수는 몇 번이고 노을을 떠보려 노력했지만, 그의 입은 도통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자신은 그가 준비한 선물이 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인데, 노을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너는 왜 내 선물 뭔지 안 물어봐?’라는 자신의 말에, 그는 ‘쓰레기 빼고 형이 주는 건 다 좋아요.’라며 기대와는 다른 대답을 했다.

그렇게 서로의 집에서 택배를 받기로 약속했고, 경수가 주문한 상품은 아슬아슬하게 준비되어 크리스마스이브 오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천노을은 자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정상적인 물건을 보낼 리 없었다. 제게 수갑 사진을 보여줬을 때부터 알아봤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어떤 기구 같은 게 아닐까, 하고 경수는 혼자 생각했다.

「금일(23일 목요일) 천노을 님께서 주문하신 상품이 19~22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받는 이 전화번호에 제 번호를 적은 건지 점심을 먹고 나자 배송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나: (사진)」

배송 예정이라는 문자를 캡처해 노을에게 보냈다.

「노을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노을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쁜가?

「노을이: 받고 인증샷ㅇㅅㅇ♥」

「나: ㅇㅇ」

「노을이: 셀카로!!! 얼굴 나오게!! 쓰는 거 보여줘요 꼭!!!」

“…….”

쓰는 걸 보여줄 자신은 없었다. 이상한 거면 어쩌려고… 천노을을 하루 이틀 안 것도 아닌데 무턱대고 이런 약속을 할 정도로 경수는 어리석지 않았다.

「나: 뭐길래 그럼??」

「노을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을이: 곧 알게 돼여ㅇㅅㅇ 형한테 진짜ㅋㅋㅋㅋ 유용한 거!!!」

유용한 거라니, 그게 뭘까. 경수의 머릿속에 이상한 물품들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지만, 딱 ‘이거다!’ 싶은 것은 없었다. 문자로 온 송장 번호를 어플로 조회해봐도 품목은 ‘생활용품’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보내는 이의 이름도 천노을이라 주문처가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치밀한 놈.”

경수는 그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하루 종일 현관문 근처에서 기웃거렸다. 그러다 시곗바늘이 9시 35분을 가리키던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수는 아닌 척하며 슬금슬금 현관문 앞으로 다가섰고, 발소리가 가까워지며 마침내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

경수는 기다렸다는 듯 황급히 문을 열고 나가, 택배를 받아 안으로 들어왔다. 까만 봉투로 둘러싸인 것 하나, 그리고 조그만 박스 하나가 같이 왔다.

“들고 가기 엄청 번거로울 정도는 아닌데….”

도대체 뭐길래 놈이 그렇게 기대해도 좋다고 말을 했을까. 택배를 받아 든 지금조차도 이것의 정체를 알기는 힘들었다. 경수는 봉투에 붙어 있는 테이프를 손톱으로 긁어 뜯어냈다. 그리고 겉봉투를 찢어발기듯 벅벅 벗겨내자 그 안에 새하얀 솜 뭉텅이 같은 게 들어 있었다.

“……?”

솜 뭉텅이가 구깃구깃하게 눌려 있고, 투명한 비닐 끝에 지퍼백에 달린 플라스틱 같은 게 붙어 있었다. 그걸 잡고 봉투를 벌린 순간, 분명 품에 쏙 들어올 만큼 작았던 솜뭉치들이 투명한 비닐 밖으로 마구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천노을…!”

솜뭉치가 몸집을 불리고 나니 얼추 제 키 정도 되는 긴 베개가 되었다. 왜 이딴 걸 보냈지. 뭘 안고 자는 잠버릇을 고려해서인가? 아직도 알쏭달쏭했다. 그렇게 기대했던 것만큼 대단한 선물은 아니었다.

“아. 하나 더 있었지.”

베개를 압축시키고 있던 비닐과 겉봉투를 모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자, 함께 도착했던 작은 박스가 눈에 띄었다. 경수는 방에서 칼을 가져와 박스를 조심히 개봉했고, 그 안에는 차곡차곡 접힌 천 쪼가리가 비닐에 감싸인 채 들어 있었다.

“…뭐야.”

경수는 뒤로 슬쩍 물러나며 중얼거렸다.

“뭐냐고.”

아직 꺼내지도 않았지만 뭔가 불길했다. 뭔가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 같은 게… 천 쪼가리에 인쇄되어 있는 것 같았다.

「노을이: 택배 도착했대요ㅇㅅㅇ! 형 어디?」

“…….”

노을이 보낸 메시지가 미리 보기 창으로 화면에 크게 떠올랐고, 경수는 고개를 저으며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야. 우리 노을이가 그럴 리가 없어.

“…천노을 가만 안 둬!”

그럴 리가 있었다.

경수는 곱게 포장된 ‘천노을 커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인쇄된 것의 실체를 확인하기가 무섭게 경수는 커버를 허공으로 휙 집어 던졌다. 씨발! 그는 혼잣말로 화를 내는 와중에도 다시 바닥에서 베개 커버를 주섬주섬 주워 들었고, 커다란 베개를 잡고 투덜거리며 커버를 씌웠다.

그렇게 완성된 천노을 베개를 침대 위로 휙 던져버리자, 제 침대 위에서 노을이 얌전히 눈을 감고 자는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으아악!”

짜증 나! 사진은… 잘 나왔네. 뭐 하러 저렇게 잘 찍었지. 자는 사진을 누가 찍어준 거지? 자는 체를 하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대체 그 사람한텐 뭐라고 하면서 부탁했지? 대체 왜 찍어준 거지? 쌍으로 제정신이 아니야! 크기마저 얼추 사람과 비슷해서 머리에 열이 올랐다.

“미친 새끼. 미친 새끼!”

경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딴 걸 어디서 만들어주는 건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천노을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니,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제정신이 아니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성장하고 말았다! 경수는 분노했다. 아주 크게 분노했다.

「나: 택배 분실됐음ㄷㄷ」

「노을이: 뻥인 거 다 알아여ㅋㅋ」

「나: 진짜임ㄹㅇ 너 걸고 맹세」

「노을이: 절 왜 걸어요ㅠㅠ」

「노을이: 기사님한테 배달 완료했다고 연락 받았는데용? 보여죠!!ㅇㅅㅇㅋㅋ」

「나: 개놈」

「노을이: ㅇㅅㅇ?」

이게 뭐야. 왜 이런 걸 선물로 줘! 경수는 노을이 바라는 대로 수십 장의 인증샷을 찍어 보내주었다.

「노을이: ……?」

욕조에 들어가 누워 있는 천노을 베개. 벽에 비스듬히 세워진 야구 배트를 바라보는 천노을 베개. 가스 불을 켜고 온찜질을 하려는 천노을 베개. 창밖으로 다이빙을 준비하는 천노을 베개….

노을은 매번 사진을 받을 때마다 ‘그렇게 쓰는 거 아니에요ㅠㅠㅠ’라며 안절부절못했다. 마지막으로 선심 쓰듯 침대에 누운 경수가, 눈을 감고 있는 천노을 베개를 끌어안아 브이를 하고 찍은 사진을 보내주자, 그제야 노을은 ‘아껴줘요ㅎㅎㅎ’하고 안심했다.

“…편하긴 하네.”

애가 은근히 안목은 있어. 유용하다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고….

다리 사이에 베개를 끼고 안아보자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뭔가 이러고 있으면 잠도 잘 올 것 같은데… 집에 사람이 하나 더 생긴 느낌이다.

“헉.”

「노을이: 내일 일어나자마자 우리 집으로 와요♥♥」

그나저나 지금 그 고민을 할 때가 아니었다. 갑자기 잠이 확 달아났다.

“…내 선물!”

갑자기 위기감이 급습했다. 내일 오전 중으로 도착할 예정인 경수의 선물은 이런 베개 같은 귀여운 물건이 아니었다. 선물을 주문할 때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여덟 시부터… 10분 단위로 알람 맞추면 되나? 일어날 수 있어야 할 텐데.’

우선 천노을보다 먼저 택배를 사수하는 게 시급했다.

*

“어으으.”

침대 위로 내려앉는 귀찮은 햇살을 피해 이불 속으로 꼬물꼬물 기어 들어가던 경수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눈을 번쩍 떴다.

“…열한 시… 사십…?”

너무 개운한 기분에 휴대폰 시계를 확인해보니 벌써 열두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중요한 시험이 있는 날 늦잠을 잔 것처럼 갑자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노을이: (사진)」

「노을이: 티비에 형 닮은 고양이 나와요! 혼자 문도 열어… 정민재보다 똑똑해요ㅇㅅㅇㅋㅋ (오전 07:00)」

「노을이: 아직도 자요? (오전 07:10)」

「노을이: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직도ㅇㅅㅠ…? (오전 07:23)」

「노을이: 이따가 따뜻하게 입고 나와요 오늘 눈 온대요!! (오전 08:01)」

심지어 천노을은 벌써 일어나 있었다! 놈은 꼭 이런 날 일찍 일어나서 폭탄같이 메시지들을 와다다다 보내는 편이었다. 당장 서두르지 않으면 위험하다. 경수는 헐레벌떡 욕실로 달려가 얼굴에 물을 묻혔다. 여느 때보다도 빠르게 씻고 나온 경수는 옷까지 재빨리 챙겨 입으며 운송장 번호를 조회해보았다. 다행히 아직 배송 예정이라고만 떠 있고 도착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 인형, 오늘 줘야겠다.”

술김에 뽑은 인형은 노을의 침대 옆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천노을 토끼 인형’의 다른 표정 버전이었다. 일부러 노을에게 말하지 않고 줄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는데, 매번 잊는 바람에 한 달이나 경수의 책장에 방치되어 있었다. 경수는 천노을 토끼의 귀를 손으로 움켜쥐고 침대에 누워 곤히 잠을 자는 천노을 베개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집을 나섰다.

「나: 잘 잤다~~ 이제 일어났어」

「노을이: 뛰어와요! 오늘 추우니까 목도리 하고요」

「나: 너도 이불 덮고 있어. 금방 씻고 갈게. 택배는?」

「노을이: 아직 안 왔어요ㅠ」

완벽해. 이제 일어난 척을 하고 택배를 받아서 근처 지하철 물품 보관함에 맡겨두면 된다. 경수는 1분에 한 번씩 택배 위치를 추적하며 불안에 떨었다. 그러다 천노을 토끼를 쥔 채 걷던 와중, 달콤한 냄새가 풍겨나오는 베이커리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안쪽 진열대에 놓인 새하얀 케이크가 경수에게 ‘안녕’ 하고 인사하는 것 같았다.

“…….”

정신을 차리고 보니 크리스마스를 노린 기업의 상술에 넘어간 지 오래였다. 한 손에는 케이크, 그리고 한 손에는 인형.

“이 정도면 선물 같겠지, 뭐.”

경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노을의 집 쪽으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건물 바로 앞에 택배차가 있었다. 기사님이 짐수레로 박스를 옮기고 있었다. 저기에 문제의 그 택배가 있음이 분명했다. 경수는 확신을 하고 택배 기사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예?”

“저 1004호인데 지금 나가는 중이었거든요, 바빠서 그런데 택배 지금 가져갈 수 있을까요?”

“아, 예. 1004호… 어디 보자… 아, 있네요. 성함이?”

“천노을입니다. 전화번호는….”

경수가 천노을에 빙의를 하여 택배 절도를 시도하고 있던 그때, 건물 안에서는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노란 개나리색의 후드티를 푹 눌러쓴 노을이 추위에 몸을 한껏 움츠리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형?”

“……?”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경수의 표정이 굳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경수는 입을 쩍 벌리고 노을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뭐야…? 형 진짜 빨리 씻었네요? 날아왔어요?”

“…….”

안 돼, 망했다. 진짜 망했다.

“여깄네요, 1004호.”

“가, 감사합니다.”

경수는 수령인 사인을 마치고 어쩔 수 없이 천노을에게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노을은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와아, 내 택배다.”

“…….”

“빨리 가서 뜯어봐요.”

망할.

“참, 제 선물은 마음에 들어요?”

“…넌 내 손이 두 개인 데 감사해라.”

한 손에는 케이크 상자, 그리고 한 손에는 택배 상자와 인형을 들고 있어 뺨을 쥐어뜯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노을은 맞기라도 할세라 얌전히 입을 꾹 다물었고, 경수는 끌려가는 사람의 표정을 한 채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일부러 택배 기사에게 들리게끔 ‘아, 뭘 두고 와서 어쩔 수가 없네.’라는 어색한 말을 남긴 채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잘 잔 얼굴이네요.”

빨리 내 선물 때문이라고 말해! 마음에 들었다고 해줘! …꼭 이렇게 말하는 듯, 노을의 눈빛이 무척 반짝거리고 있었다.

“악몽 꿨어. 우리 집에 사람 한 명이 더 있는 느낌이라….”

“솔직히 마음에 들죠?”

노을은 경수를 피해 엘리베이터 구석으로 슬쩍 뒷걸음질을 치며 물었다.

“…버릴 정돈 아니었어.”

경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렇게 마음에 들지도 않았지만, 볼수록 괜찮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놈의 얼굴을 본 것도 꽤 마음에 들었고, 나름대로 제 생각을 해서 한 선물인 게 태가 났으니까 이번만큼은 넘어가 주는 게 형으로서의 도리였다.

“뭐야. 반응이 그게 다예요?”

“무슨 반응을 더 해야 해?”

“그럼 그냥 내놔요.”

“뭐? 줬다 뺏는 게 어디 있어! 이제 그건 내 거야!”

경수는 반사적으로 소리쳤고, 그에 노을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위로 올라붙었다.

“네, 형 다 해요.”

뭐야아, 마음에 든 거 맞으면서… 노을은 히죽히죽 웃으며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경수는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자마자 택배 박스를 슬쩍 거실로 던져버렸다. 폭신한 러그 위에 박스가 떨어지는 순간, 경수는 노을의 뺨을 붙잡고 입을 맞췄다.

“…….”

“…….”

기습적으로 입맞춤을 당한 노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얼굴을 보니 경수도 괜히 민망해져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노을은 손을 들어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수줍게 중얼거렸다.

“형, 남사스럽게 대낮부터 뭐 하는 거예요…?”

“내 마음이야….”

“그럼 한 번만 더 해봐요….”

“꺼져….”

그에 노을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럼 형이 택배 거실에 던지고 제 주의 돌리려고 일부러 뽀뽀한 거 모른 척해주려고 했는데….”

“……?”

그 말을 내뱉은 노을은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빠르게 움직여 거실 구석에 떨어진 택배를 주워 들었다. 안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안 돼!’

뒤늦게 신발을 벗고 경수가 그에게로 달려들었지만, 노을은 이미 택배를 주워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지 오래였다.

“야, 나와!”

“아, 무슨 테이프를 이렇게 많이 감아뒀지. 여기 칼 없는데.”

“나오라니까!”

“형이 그러니까 더 못 나가겠어요! 저… 무서워요!”

무서워? 경수는 심호흡을 하며 쿵쿵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노을아, 뭐라고 안 할 테니까 뒤지기 전에 당장 나와.”

경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문틈에 대고 속삭이자, 똑같이 상냥한 말투로 노을에게서 답이 돌아왔다.

“경수 형, 이게 뭐예요…?”

“…아냐!”

“뭐냐고 물은 건데 뭐가 아닌데요…?”

씨발, 뜯었나? 벌써?

“형!”

달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양 뺨이 상기된 채 신이 난 노을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상자는 이미 해체된 후였고, 한 손에는 털 수갑, 반대쪽 손에는 하얀 테두리로 둘러싸인 붉은 안대가 들려 있었다. 경수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만세! 크리스마스 러브 이벤트 A 세트!”

“아, 씨발….”

홈페이지 메인에 걸렸던 상품 이름이었다. 뭐 하러 엽서까지 넣어줬는지 모를 일이다.

“이걸 줘서 뭐 하려고요. 써달라는 거예요, 아니면 저한테 쓸 속셈이었어요?”

천노을이 하는 말이 뭐든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경수는 수치심에 머리부터 목덜미까지 온통 빨개진 채 입술만 뜯었다.

“형이 산 거 맞죠?”

그냥 뻔뻔하게 너랑 쓸 거 아니라고 나갈까? 아니, 그러면 놈이 무슨 반응을 보일지 안 봐도 뻔하다. ‘그럼 누구랑 쓰려고 샀어요. 저 말고 또 누구 있어요? 왜 그런 말을 해요!’ …뭐, 이런. 그러니 그냥 솔직하게 나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샀어! 불만 있으면 버려!”

“아뇨! 원래도 크리스마스… 아, 러브 이벤트 A 세트! 이거 좋아했어요!”

“제발 상품명 좀 읽지 마!”

“형이 이상한 구석에서 확 치고 들어와서 좋아요. 누가 크리스마스에 이런 걸 줘요….”

“누가 들으면 넌 되게 정상적인 거 준 줄 알겠다.”

“아, 너무 좋아! 그런데 진짜 오늘 제대로 마음먹은 거예요?”

“…….”

“그래요, 어디 한 번 써봐요!”

노을은 실실 웃으며 경수에게 포장이 다 뜯긴 물건들을 내밀었고, 뒤이어 그의 시선이 바닥에 대충 놓인 케이크로 이동했다. 그는 또다시 픽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 상황이 좋아 미치려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 어떻게 해….”

“뭐가.”

“손도 못 쓰고 눈도 가려져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저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엥?”

“저한테 크림 묻혀서 빨아먹으려고 일부러 형이 제일 좋아하는 맛으로 사 온 거잖아요. 으아, 언제부터 이렇게 절 잡아먹을 검은 마음을… 아야! 왜 때려요!”

이게 매를 벌지. 경수는 수치심에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노을은 부끄러움에 붉게 달아오른 경수의 얼굴을 보며 눈을 꼭 감은 채 손을 내밀었다.

“자요, 아무것도 모르는 저한테 빨리 수갑 채워요.”

“아, 제발. 노을아. …나 이런 거 못 해.”

“뭐래.”

노을은 정말 어이없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저 아직도 기억나거든요? 저한테 특별한 경험 어쩌고 하면서 첫날부터 형 가방에서 뭐 나왔는지 기억 안 나요? 진짜 범상치 않았어요….”

물론 없었던 일은 아니지만….

“근데 그때도 얼굴은 진짜 내 취향이어서 무슨 말도 못 하고, 형은 진짜 형 얼굴에 감사해야 해요.”

“…….”

천노을 얘는 왜 자신이 할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진짜 얼굴로 사람 여럿 홀려놓는 게 누군데? 경수는 밖으로 꺼내지 못할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곤란하게 수갑을 꼭 쥐었다.

“손이 차네요.”

물건들을 들고 오느라 계속 바깥에 노출되었던 손을 노을이 감싸 쥐었다. ‘그러니까 저랑 따뜻한 데 좀 누워 있을까요? 제발요, 제 소원이에요!’ 등등, 별소리들을 다 해가며 자신을 살살 꼬여내려는 노을을, 경수는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연한 갈색의 눈동자가 자신에게 똑바로 향해 있었다. 배시시 웃으면 달콤한 초콜릿 향이 풍길 것만 같았다. 제 손을 조물거리는 노을의 손이 무척 따뜻했다.

‘봄 같아.’

천노을이랑 있으면 늘 어떻게든 되겠지. 될 대로 되라지, 라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철컥.

쇳소리를 내며 노을의 손목에 보송보송한 털 수갑이 채워졌다. 노을은 어, 소리를 내며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들어 경수를 바라보았다.

“…뭘 봐?”

“혀엉…!”

소원 성취에 감동한 천노을이 눈을 빛내며 경수에게 냅다 달려들었다. 그는 얼굴에 쪽쪽거리며 입을 맞춰, 경수를 귀찮게 했다. 결국 그에게 시달리던 경수는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말았다. 쏟아지는 입맞춤 탓에 남은 한 손마저 구속하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으읏…!”

연신 가해지는 자극에 발간 입술이 살짝 부어올랐다. 부드러운 혀가 입안을 훑고 빨아올렸다. 노을이 입고 있던 노란 후드티는 침대 아래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경수의 얼굴이 내려가 노을의 목덜미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아, 응.”

노을은 평소보다 더 민감해져 조그만 입맞춤에도 몸을 움찔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하얀 몸에 혈색이 돌다 못해 불긋하게 달아올랐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어울려줄 생각은 아니었는데 안타깝게도 자신은 고자가 아니었기에 불가피한 일이었다. 눈도 가려지고 손까지 묶여 바르작거리며 오직 제 움직임에만 집중하는 천노을을 보고 안 서면 그게… 사람인가.

손목에서 잘그락거리는 수갑이 붉어 시각적으로도 경수를 무척 즐겁게 했다. 이딴 같잖은 물건에 흥분하는 자신이 바보 같았다. …대낮부터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그런데 좋아. 경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딱딱하게 발기한 노을의 성기로 손을 내렸다. 손가락으로 아래부터 형태만을 덧그리며 올라와 젖은 끝을 꾹 눌렀다. 속옷 한 장만을 사이에 두고 자극이 가해지자 노을은 숨을 헐떡이며 떨었다.

“읏, 아으, 안 돼. 형….”

“하아….”

경수는 습한 숨을 내뱉는 노을의 위에 올라타 그를 내려다보며 정신을 다잡았다. 앞으로도 종종 써야 하나? 형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야한 거였던가. 게다가 신음 소리가 아주… 아주 맛있었다.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면 분명 변태 아저씨 같다며 노을이 자신을 놀릴 게 분명했지만, 맛있다는 말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속옷을 살짝 잡아당기자, 흠잡을 데 없이 예쁜 성기가 퉁 하고 튀어나왔다. 그대로 손을 대지 않은 채 크기를 보고 혀를 차고 있자, 노을이 위로 묶인 손을 움찔거리며 ‘형?’하고 불렀다.

경수는 흥분에 벌게진 눈을 깜박이며 끝에서 말간 물이 반짝이는 성기를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남은 손을 성기 옆에 가져다 대고 크기를 재보았다. 안간힘을 써서 손을 쫙, 벌려보아도 귀두가 남았다. 모양도 색깔도 예쁜 좆을 가지고 태어난 것도 모자라, 크기까지 해서 사람을 매우 빡치게 만든다.

“아, 흐윽.”

억눌린 신음 소리가 또 한 번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다 천노을 네가 자초한 일이야. 경수는 손에 들어간 힘을 빼고 그대로 성기를 위아래로 훑었다. 어느새 손이 질척한 액체로 젖어 들기 시작했다. 경수는 노을이 허리를 떨 때마다 손을 떼어내고 잠시 기다렸다.

“아, 뭐 하는… 응, 윽, 손 좀 풀어봐요.”

“한 입으로 두말하지 마. 아까 먼저 손 내민 건 너였어.”

경수는 그렇게 말하며 노을의 성기를 손끝으로 위에서부터 쭉 쓸어내렸다. 그에 노을은 허벅지까지 움찔거리며 곤란해했다. 경수는 그동안 몰랐던 취향에 눈을 떴다. 자신 때문에 안달복달 못 하는 연인의 모습은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아, 으응, 경수 형… 거기 만지지, 헉…!”

사출 직전까지 갔다가 강제로 끌려 내려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자 노을은 조그만 자극에도 달뜬 숨을 내뱉으며 울상을 지었다. 귀여운 놈… 노을의 것과 제 것을 함께 잡고 훑어 내리고 싶었다. 그리고 마무리로 노을의 몸에 정액을 토해내면 완벽하다. 빈약한 상상력만으로도 아랫배가 막 뜨거워졌다. 오늘부터 경수가 제일 좋아하게 될 색은 빨간색이 될 예정이었다. 제 마음대로 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떠는 노을의 모습이 이렇게나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형, 제발….”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났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애타게 부탁했다. 하지만 경수는 이따위 애원쯤에 마음이 약해질 사람이 아니었….

“흑, 저 손목이, 손목이 너무 아파요….”

“뭐?! 아, 아파?”

털 때문에 부드러운 줄 알았는데, 그 말에 고개를 들어 침대 머리맡에 끈으로 묶어 고정한 놈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목이 조금 붉어진 것 같기는 했다. 자신이었다면 저쯤이야 참을 수도 있겠지만, 노을은 워낙 엄살이 심하고 작은 아픔에도 잉잉거리는 나약한 놈이었다.

“잠, 잠깐만…!”

노을은 킁, 소리를 내며 훌쩍였다. 설마 아파서 우나? 어떻게 해! 경수는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발견하고 재빨리 그것을 주워 들었다. 손에 칭칭 동여매 뒀던 끈을 풀고 열쇠로 수갑을 풀어주자, 흰 손목이 아주 조금 부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괜찮아?”

노을의 눈을 가린 안대를 머리 위로 올리며 물었다. 아직도 단단한 성기가 경수의 허벅지에 문질러졌다. 노을은 풀려난 손을 살짝 내려 자신의 허벅지를 콱 꼬집었다. 반사적으로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고, 노을이 운다고 생각한 경수의 눈이 흔들렸다.

“야, 울지 마….”

“흑, 안 울어요.”

손목은 어느새 제 색을 되찾았고, 노을은 계속해서 가식적으로 훌쩍이며 눈물을 짜내느라 바빴다. 당황한 경수는 안절부절못하며 그런 노을의 뺨을 붙잡은 채 미안하단 말만 반복해서 내뱉었다.

“그렇게 아파하는 줄 몰랐어. 미안, 많이 놀랐어…? 내가 이런 도구 써보는 건 진짜… 처음이라… 노을아, 진짜 미안해.”

내가 이렇게 하면 기분이 좀 풀릴까? 경수는 침대 모퉁이에서 달랑거리는 수갑을 가져와 자신의 왼쪽 손목에 채우고는 물었다.

철컥, 잠금장치가 걸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풋 하고 웃음이 터질 뻔했다. 하지만 여기서 웃으면 배로 혼날 것임을 아는 노을은 경수의 어깨에 이마를 대며 말했다.

“…그럼 안대도 써줘요.”

“그걸로 괜찮아?”

“네, 완전….”

경수는 노을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알았어.’라고 대답하고 그를 달래듯 입술에 쪽 소리를 내며 입을 맞췄다. 노을은 그만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비죽 올렸지만, 경수는 스스로 안대를 잡아 내린 후라 안타깝게도 그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 잔뜩 신이 난 노을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

“야, 이 개새끼야아아!”

“웅?”

노을은 덜덜 떨리는 경수의 등허리를 쓸어내리며 입가에 묻은 크림을 쪽 빨아먹었다. 경수를 묶어둔 노을은 잠깐 코 좀 풀고 오겠다며 방을 빠져나갔고, 경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울음을 집어삼켰던 건가, 하고 생각해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아, 차가…!’

몸에 차가운 것이 갑자기 묻었다. 뭐야? 경수의 물음에 노을은 목을 울려 작게 웃을 뿐이었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경수는 알 수 있었다. 코를 풀고 오겠다던 천노을은 애초에 그것을 위해 나간 게 아니었다는 것을. 달달한 냄새가 풍겼다. 꼭 생크림 같은….

‘이번엔 형이 이겼어요.’

노을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단단하게 경직된 경수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그는 ‘무슨 짓이야, 먹는 거로 장난치면 벌 받아!’라고 말하는 경수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뺨에 쪽쪽대며 입을 맞췄다. 노을의 입술이 목덜미로 옮겨지며 차근차근 내려왔다. 그러고는 쇄골 근처를 잘근거리다 내려와 뭔가 묻어 있는 가슴에 닿았다.

그 뒤로는 소리 지르고, 욕하고 신음한 기억만 있었다. 노을은 온몸을 녹진하게 애무하다, 제 것에도 생크림을 묻히고, 그대로 경수의 입에 물렸다. 노을은 그대로 제 위에서 경수를 뒤집어놓고 경수의 것에 묻은 크림을 핥아 올렸다. 먹을 것으로 장난을 치면 안 된다는 생각보다도, 천노을 개새끼가 기껏 사 온 예쁜 케이크를 망가뜨렸다는 것에 화가 났다. 내 케이크…!

“물어내!”

“우으.”

“허억, 흣…! 아니, 거길 물라는 게…!”

노을은 경수의 몸에 자신이 묻혔던 크림을 깨끗하게 핥고, 넓혀놓았던 뒤에 성기를 가져다 대고 자리를 잡았다. 하도 느껴 기진맥진해진 경수는 ‘그래, 걍 해라, 해.’ 하며 빈정거렸다. 사랑하는 형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던 노을은 성기를 안으로 꾹 밀어 넣었다. 앓는 소리가 목에서 흘러나왔다.

“괜찮아요?”

“손 풀어!”

“헉… 말투가 너무 무서워요, 흑흑.”

“씨발! 이 천노을 개, 개놈의… 너 아까도 울던 거 아니었지! 연기였지!”

“으음… 누가 나보고 연기하지 말라던데, 그 누가 자꾸 속네요.”

노을은 키득거리며 내벽을 긁듯이 성기를 움직여, 입구에 귀두만 걸리게 쭉 빼냈다. 뇌까지 침범하는 쾌감에 경수의 발가락이 시트를 밀쳐내며 오므라들었다.

“왜! 왜 진작 몰랐을까! 나는 왜… 흐아, 윽!”

후회를 해도 이미 지나간 일이라 소용이 없었다. 점막이 잘게 움츠러들며 성기를 꽉꽉 씹었다. 노을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경수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안을 휘저었다. 점진적으로 쌓아온 쾌감이 성기가 내벽을 찌를 때마다 불꽃이 되어 온몸으로 퍼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쾌감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생크림보다 형이 더 달아요.”

노을은 경수의 입술에 제 입술을 겹치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뭐라는 거야. 방 안이 온통 인공적인 단내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경수는 숨을 헐떡이며 입술을 꽉 짓씹었다. 이후에도 뭐라고 지껄이는 것 같기는 했는데, 노을이 하는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노을은 잠깐 움직임을 멈추고 손을 멀리 뻗었다. 그에 성기가 살짝 뒤로 빠져 겨우 숨을 쉴 수가 있었다.

“허으….”

“입술 깨물지 마요. 피 나면 나중에 저한테 뭐라고 할 거면서….”

그는 제 입술에 뭔가를 묻혔다. 생크림이었다. 우유 향과 설탕 단 내가 섞여 부드러운 맛이 났다. 반사적으로 입술에 묻은 것을 날름거리며 먹었다. 노을은 크림을 모두 혀로 훑어내고 입맛을 다시는 경수에게 입을 맞췄다. 줬다 뺏는 꼴이 되었지만, 입맞춤이 무척 달았다. 첫 키스도 아닌데.

노을의 성기가 내벽을 콱콱 긁어내릴 때마다 떨어져 죽을 것 같은 아찔한 감각이 경수를 꿰뚫고 지나갔다. 앞을 만져줬으면 좋겠는데, 요즘 노을은 삽입하고 나면 앞을 잘 만져주려 하지 않았다. 그걸로도 모자라, 그는 경수가 저 자신의 것을 만지려는 것도 은근히 막았다.

“좋은 말로 할 때 손 풀어라.”

“…좋은 말로 안 했으면서….”

노을은 땀에 젖은 경수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그 말은, 자신이 풀려나려면 어떻게 해서든 노을을 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힘으로 이걸 부숴버리거나.

“흐으, 흣.”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다시 불꽃이 튀기를 반복했다. 노을의 움직임에 맞추어 자신의 성기가 함께 흔들렸다. 잔뜩 젖은 성기 끝에서 물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노을이 안을 침범하고 제 몸을 만지는 감각만이 느껴졌다. 노을의 숨소리 때문에 죽을 것 같았다.

…이 새끼는 왜 숨도 이따위로 쉬지. 아무래도 숨 쉬는 법을 다시 가르쳐서 내보내야 할 것 같았다. 밖에서도 이따위로 하고 다니면 불안해서 살 수가 없으니.

“헉, 형! 저거 봐요!”

“안, 허윽, 보여. 눈, 눈!”

“그래요! 눈 와요!”

“아니! 눈이 안 보인다고!”

“아, 맞다.”

“흣!”

눈 온다는 말을 왜 허리 짓과 함께 하는지 모르겠다. 눈을 답답하게 가리고 있던 안대가 올라감과 동시에 성기가 내벽의 어딘가를 정확하게 스쳤다. 경수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젖히며 사정했다. 머릿속에 별이 튀었다. 쾌감의 물결에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성기를 꽉꽉 쥐어짜는 내벽 탓에 움찔거리던 노을은, 몸에서 힘이 빠진 경수를 꼭 끌어안고 안쪽 깊숙이 좆을 박아 넣었다. 자신을 꽉 끌어안은 노을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아직도 밝기만 한 창밖에는 흰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앞에 손도 안 댔는데….”

“…….”

“이제 그만 인정해요. 형은 이제 저 없이 못 살아요. 저한테 잘해요, 이제.”

“…아.”

하도 꼼지락거려서 그런지, 수갑과 연결해서 침대 헤드에 묶어둔 끈이 풀렸다. 경수는 하나로 모인 손을 그대로 앞으로 가져와 노을을 끌어안았다. 노을은 행복에 젖어 있느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날이 추워서 잘하면 눈 쌓이겠다. 올해는 진짜 화이트 크리스마스 됐네요?”

“화크고 뭐고, 넌 뒤졌어.”

“아, 으아악! 혀, 형! 저 머리!”

노을은 그날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못 하게 하려면 수갑만 채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손목이 꼭 붙어 움직임에 제약이 있어도 사람 머리를 마구 쥐어뜯기에는 충분했다.

*

얼굴을 보자마자 인사할 겨를도 없이 시작된 섹스는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마무리가 지어졌다. 거실에 내팽개쳐진 천노을 토끼 인형은 노을의 침대 위에 기존의 인형과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하나는 콩알 같은 눈에 입을 벌리고 있고, 하나는 윙크를 하고 있었다. 노을은 일 년에 하나씩 주는 거냐며 내년의 경수에게 부담감을 안겨주었다.

“눈이 와서 다행이다.”

“그러게요. 눈 쌓이면 더 예쁘겠죠?”

“응….”

그게 아니라 기상청이 다행이란 소리였지만, 굳이 그 얘기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노을은 창을 열고 눈 내리는 광경을 구경 중인 경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형한테서 제 냄새나요.”

“네 냄새가 아니라 그냥 샴푸 냄새겠지.”

“뭔 말을 그렇게 해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되지! 형 바보.”

“너 무거워.”

“그 수갑 다음 주에 또 써봐요.”

“또? …네가 쓰면 생각해볼게.”

“그러죠, 뭐. 그동안 형 집에 있는 저 보면서 순진한 저한테 어떤 짓을 할지 미리 생각해놔요.”

그냥 누워서 눈을 꼭 감고 자는 노을의 얼굴이 새겨진 베개인데, 그걸 보고 나쁜 상상을 어떻게 해. 경수는 경멸을 담은 눈으로 노을을 올려다보았다.

“그냥 수갑뿐이면 식상한데… 뭔가 노린 형이 케이크까지 사 와서 이번엔 형이 이겼어요! 의외의 결과네요. 형이 제 거 못 이길 줄 알았는데….”

“…노려? 내가?”

“내년엔 더 기대해도 되죠?”

그 케이크, 먹어보지도 못하고 위에 덮인 생크림만 덩그러니 사라졌다. 왜 먹을 거로 장난을 치냔 말이야. 생크림으로 만들어진 조그만 눈사람도 있었는데… 경수는 잠시 제 안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너그러이 노을을 용서해보고자 했다.

“아야….”

“실수야.”

“앗, 왜 또 밟아요.”

“이번에도 실수.”

발을 밟힌 노을은 작게 투덜거리며 경수의 어깨에 턱을 얹어놓았다. 강아지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이야. 경수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런 노을을 힐끗 보고는 이내 피식 웃었다.

창밖에는 포근한 눈이 쉬지도 않고 내려앉았다. 내일 아침이 되면 온 세상이 새하얗게 변할 것이다.

“에취!”

경수는 자신을 꼭 끌어안은 채 재채기하는 노을을 돌아보며 창문을 닫자고 말했다.

“…그래도 내년 크리스마스엔 제가 이길 거예요.”

“그래라.”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 내년 이맘때를 기약했다. 따뜻한 겨울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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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rk Mage’s Return to Enlistment

The Dark Mage’s Return to Enlistment

gwihwanhaessneunde ibdae jeonnal-ida I returned, but it was the day before enlistment.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
Score 3.3
Status: Ongoing Native Language: Korean

Kim Minjun, who was a normal high school senior in South Korea, was suddenly summoned to another world and became a dark magician.

Minjun, who persevered through all sorts of hardships with the single-minded goal of returning home, saved this other world with his dark magic.

Casting aside a life as a hero and guaranteed riches, he returned to Earth.

Just when he was about to fully enjoy his life, a problem arose. A dungeon break occurred, and monsters began pouring out. Not only did this threaten the peaceful Earth life that Minjun had just returned to… But on his very first day back, he was also ordered to enlist in the mili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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