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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0

190화 드라고니아 제국

바닥은 축축했다.

현대인에게 습기가 차오른 돌바닥과 그 틈새의 이끼를 피부로 느끼기란 흔치 않은 일이다.

“어으으······.”

얼마나 오랫동안 바닥에 처박혀 있었던 건지, 온몸에 오한이 든다.

[──리야.]

“추, 추워··· 누가 이불 좀······.”

[하리야!]

“우왁! 아, 안자써요!”

학교 졸업한 지가 언젠데, 반사적으로 돌려주는 대답. 하리는 자신이 있는 곳이 교실이나 직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여긴 감옥이잖아!”

[그걸 이제 알았느냐?]

이끼가 낀 축축한 석재바닥과 녹슨 창살. 하리는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며 포마 신의 화신체에 시선을 돌렸다.

[카리나. 그 아이가 널 제압하지 않았느냐.]

“어엇, 카리나? 카리나? 레온 폐하의 따님이요?!”

[그래.]

어째서 레온의 딸이 자신을? 아니,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다른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은 황궁 아래로 뚝 떨어진 침입자. 제압하여 감옥에 처넣는 게 당연한 수순일 테니.

“으, 오해를 풀어야흐엣치!”

엣치! 엣치!

연신 기침을 하는 하리. 포마 신이 길쭉한 거북이 목덜미를 으쓱거렸다.

[배를 까고 누웠으니 어쩔 수 없지.]

“흐으으··· 감옥 바닥에서 잠에 드는 건 상정하지 못 했다구요······.”

평소 지적받는 의상 선호도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바꿀 생각 같은 건 없다. 포마 신은 자신의 신녀가 참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하리는 겨드랑이와 옆가슴과 배꼽과 허벅지를 까놓고 다니는 게 참 바람직하구나.]

“또 변태영감님 같은 소리······.”

[그립구나~ 전성기 시절의 이 바다의 주인께서는 숱한 처녀들과 운우지락을 누렸거늘.]

과연, 바다의 신. 배에 여자가 타면 부정 탄다는 소리를 하는 주제에 선수상에는 누드 여신상을 달아놓도록 지시하는 남신다웠다.

“여전히 여인을 밝히는군, 호색한 신. 요즘도 선수상에 애꿎은 신녀를 매다나?”

감옥에 울리는 목소리에 하리의 시선이 그쪽을 향한다.

어둑한 감옥 속에서 몇 안 되는 빛이 흘러나오는 곳. 복도의 입구 쪽에서 흑단처럼 검은 여인이 내려오고 있었다.

[여전히 신을 공경할 줄 모르는 아해로고. 네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신을 섬기건만.]

포마 신은 창살 너머의 여인에게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런 아버지를 두었기에 말이지.”

대수롭지 않게 반문하는 여인. 하리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올리며 물었다.

“저··· 카리나, 드라고니아 대공님?”

“그 명칭으로 불리는 것도 오랜만이군. 마지막으로 델보스케가 죽을 때나 한번 불렀나.”

여인, 카리나 드라고니아는 오랫동안 불리지 않았던 자신의 진정한 호칭을 떠올리곤 추억에 잠겼다.

하리는 그것이 언젠가 생각에 잠기었던 레온과 똑 닮았다고 생각했다.

“저, 대, 대공 각하.”

“지금은 폐하다. 이 자리라면 몰라도 황궁 내에서라면 네 목을 쳐도 부족하지 않을 대죄지. 사자심왕과 함께 있으면서 그런 예법도 배우지 못했나?”

“폐, 폐에하아아······.”

넙죽 엎드리는 하리. 레온을 상대하면서 하리가 겪어본 바로는 이 라이온하트의 권력자들은 농담이 아니라 진짜 권력자라는 것이다.

그들이 예법을 따져 묻는 것은 지구처럼 사회생활의 연장선이 아니라 진짜 계급의 차이에서 오는 질서였으니까.

“저어 폐하?”

“말해봐라, 바다의 신녀. 흠··· 이상하군. 네게선 또 다른 신성도 느껴져.”

카리나는 의아함을 느끼고 감옥 안으로 들어섰다. 묵직한 창살은 드라고니아 황제의 악력 앞에 의미가 없었고.

“폐, 폐하?”

“가만히 있어보라.”

카리나는 하리의 정수리부터 찬찬히 훑어보더니 무언가 감이 안 잡히는지 얼굴부터 만지작거리며 감촉을 느꼈다.

“폐, 폐하! 거, 거긴 좀!”

“보아하니 어린 계집 같은데, 배꼽은 왜 내놓고 다니는 것이냐. 찬바닥에서 배꼽을 내놓으면 고뿔에 걸린다는 것도 못 배웠나?”

“패, 패션이옵나이다!”

그렇게 얼마나 하리를 쪼물딱거렸을까? 카리나는 놀랍다는 듯 말했다.

“페토스 신의 성력인가. 설마 바다의 신이 자신과 상극인 불꽃을 함께 품을 생각을 하다니.”

[정확히는 내가 그놈이 낙점한 걸 선수 친 것이지만.]

“흥. 불카누스 경도 겨우 감당하면서 욕심도 많으시군.”

[그러게 말이다.]

카리나는 감옥 문에서 나오며 하리를 향해 뒤돌아봤다.

“나와라. 황궁 무단 침입죄는 이 정도로 넘어가주지.”

“으으, 고, 고의가 아니었사옵나이다······.”

하리는 레온에게 했듯이 어설픈 사극 말투를 쓰며 쫄쫄쫄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황궁의 병사, 시녀들이 넙죽 엎드린다.

‘조금··· 달라.’

군왕에게 엎드려 예를 갖추는 이들은 여럿 보았다. 라이온하트 왕국의 그 협소한 천막에서조차 병사와 백성들은 레온에게 최선을 다해 예를 갖췄다.

하지만 거기에 들어있는 건 신뢰와 존경.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다. 하지만······.

‘두려움··· 공포. 농노들한테서 본 것만큼은 아니지만······.’

충성이 아닌 굴종에 가까운 감정이 그들에게서 느껴진다.

이상했다.

하리가 만난 카리나는, 복수를 위해 3만 장병들과 함께 북부로 떠난 드라고니아 대공은 틀림없이 목숨을 걸고 따르는 장병들이 있었다.

그들에게서 강압적인 분위기나 굴종의 감정은 없었고, 마땅히 따라야 할 대공을 따랐을 뿐.

“시종장.”

“예, 예에! 폐하!”

늙은 시종장은 카리나 앞에 대령하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손님용 방을 하나 준비해라.”

시종장은 하리를 힐깃거리거나 누구에게 준비하라는 것인지도 묻지 않았다. 그저 복종할 뿐.

“저, 대··· 폐하.”

“무엇이지?”

하리는 시종장이 준비할 방에 향하기 전에 반드시 말해야 할 것이 있다 생각했다. 어째서 카리나는 자신에게 그 사람에 대해 묻지 않는지.

“폐하를··· 레온 폐하에 대해선──”

손을 들어 하리를 제지하는 카리나. 그녀의 표정은 한없이 무에 가까웠지만, 풍기는 공기는 사나웠다.

“곧 찾아오겠지. 네가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레온 폐하께선 폐하를······.”

“”······!!””

주변의 시선이 하리를 향한다. 감히 황제를 쳐다보는 무례를 범할 순 없다는 듯 곧장 숙였지만, 그들이 얼마나 경악했는지는 하리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시선 속. 하리는 무언의 압박감 속에 고개를 숙였지만, 그 와중에 무심코 알아차렸다.

레온처럼 푸른창공 같았던 카리나의 눈동자가, 불길할 정도로 시뻘겋게 변한 것을.

“그가 알아서 할 것이다. 네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야.”

“네, 네에······.”

시선을 피하는 하리의 어깨에 손을 얹는 카리나. 그녀는 씨익 웃었다.

“그나저나 네 녀석이 여인의 몸이라 좀 아쉽구나. 넌 꽤 훌륭한 후보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예? 그게 무슨······.”

“당분간은 지켜볼 생각이다. 나의 제국을 침범한 ‘게이트 너머’의 것들 말이야. 악마가 아니라면 그럭저럭 지켜봐 줄 인내력은 있다.”

“???!”

아리송한 숨을 쉬는 하리. 시종장이 하리가 더 돌발행동을 하는 걸 막겠다는 듯 서둘러 그녀를 인도했다.

“저와 함께 가시지요, 귀빈이시여.”

“아, 네에······.”

하리는 시종장의 손에 이끌려 내궁으로 향했다. 도착한 객실은 질려버릴 정도로 화려해서 손님을 대접하는 게 아니라 압도하는 것 같다.

“그럼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예에······.”

어쨌든 이곳에 도착한 지 반나절 만에 제대로 된 휴식이다. 하리는 포마 신의 화신체인 거북이를 껴안고 침대에 철퍼덕 몸을 던졌다.

“하아··· 두 번째로 뵙는 거지만 뭔가··· 분위기에서 압도당하네요.”

[······.]

“포마님?”

하리는 아무런 답이 없는 포마를 들어 올렸다. 삐죽 튀어나온 거북이 얼굴은 어딘가 생각에 잠겨있다.

[이거 참··· 나의 등대는 여러모로 고생길이 열려있구나.]

“무슨 말씀··· 이세요?”

[애매하지만 가정사다. 하지만 곧 알게 될 것이야.]

포마 신의 모호한 말투에 하리는 입을 삐죽였다. 신들이란··· 좀 알기 쉽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주면 안 되나, 하고.

[그런데 하리야. 그 퀘스트란 것 좀 확인해보자꾸나.]

“아, 맞다. 여기 게이트 안이었죠. 너무 멀쩡한 세계라서 미처 확인을 잊었네요.”

지금까지 많은 게이트를 보아왔지만, 이곳은 다른 게이트와는 조금 달랐다.

기존의 게이트들이 멸망한 세계의 파편 같은 곳이었다면, 이곳은 무언가··· 그야말로 이세계라고 해야 할까?

“게오브릭 경 때처럼 그저 과거를 재현한 게 아니···겠죠? 아무튼, 퀘스트가······.”

지구에서 각성한 헌터들에게 주어진 특권. 하리는 허공에 뜬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하다 금색 눈들이 커다랗게 뜨였다.

“어? 어어?!”

이게 대체 뭐야?!

* * * *

이 세계는 악마의 침공을 받던 곳이다.

300여년 전, 수많은 국가들이 악마의 침공 아래 무너졌고, 세상은 강욕의 악마대공 멜티모폴의 손에 무너지는 듯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악마들의 침공이 기세를 잃어갔다.

그들의 무한한 생명은 여전했지만, 숫자 그 자체가 줄었달지··· 가장 악명 높았던 강욕의 악마대공 멜티모폴과 그 대악마들이 대부분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세계가 멸망까지 코앞이었기에 역사가들은 이 시기의 공백을 의아해했다.

그렇게 악마들의 침식이 잦아들던 백여년이 다가왔을 때, 그들은 다시 돌아왔다.

강욕대공 멜티모폴이, 세계의 악몽이 돌아온 것이다.

“왕국들은 아직 악마의 침공으로부터 힘을 회복하지 못했었지요. 그뿐만 아니라 악마들이 물러난 지금이, 약해진 주변국을 집어삼킬 기회라고 봤습니다.”

“어리석군.”

“예, 어리석었지요.”

늙은 역사가는 자신의 생애보다도 오래된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며 자조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이 귀해 보이는 이에게 제국의 역사를 계속 설명했다.

“하지만 그날, 이 세계에 나타난 건 악마들뿐이 아니었습니다.”

카리나 드라고니아.

그녀가 수만 대군과 함께 이 세계에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강했습니다. 악마들조차 두려워할 만큼요.”

세계가 악마의 재등장에 절망하던 그때, 이 이계의 군단은 악마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악마의 출현에 무너져내린 군단을 대신해 도시를 지키고, 겨울철에도 쉬지 않고 진군하며··· 그야말로 복수귀들처럼 악마들을 사냥하고 다녔다.

“용의 군단. 그것은 그야말로 신화였습니다. 수많은 교차검증이 없었다면 믿지 못할 정도로.”

또한 살아있는 증거가 있었기에 늙은 역사가는 그것이 거짓된 신화나 전설이 아닌 실재하는 역사임을 인정했다.

“허나, 인간은 어리석었지요. 이 땅 위의 왕국들은 용의 군단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군단과 그 지휘관인 카리나 드라고니아를 융숭히 대접했다. 서로가 그녀의 군단을 확보하기 위해, 그녀 휘하의 기사와 전사들을 포섭하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그들은 그 어떤 제안에도 현혹되지 않았고 그저 묵묵히 악마들을 도살했다.

그것이 너무나.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초인의 그것이어서.

범용한 자들은 그 의도를 다르게 해석했다.

그들이, 악마를 다 사냥하고 나면 그 다음은 누구일까?

그런 의심암귀로 인해 빚어진 것이 역린 사건.

당시 강욕대공과의 기나긴 혈투를 끝내고 승리한 용의 군단을 일곱 개 왕국의 연합군이 급습했다.

이날, 악마들과의 싸움에서 지친 용의 군단 대부분이 죽었으며──

“일곱 개 왕국의 연합군 팔십오만 명이 남김없이 도륙당한 사건이지요.”

보통 전쟁에서는 아무리 대패를 당해도 20%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일은 드물다.

그것이 냉병기로 부딪치는 전근대적인 전쟁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이날, 용의 군단을 공격한 왕국 연합 군대의 대부분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도망칠 생각조차 못한 것처럼··· 그저 그 자리에서 도륙당했다.

그 뒤로도 학살은 계속됐다.

배신한 왕국의 수뇌부들. 이에 동조한 세력들.

생존한 용의 군단 천사백 명과 드라고니아 대공의 손에 모조리 죽었다.

“그렇게 어리석었던 일곱 왕국이 멸망하고 그 위에 새로운 제국이 세워졌습니다.”

드라고니아 제국.

카리나 드라고니아라는 절대권력을 신처럼 떠받들어 모시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이.

그렇게 이백여년에 이르는 드라고니아 황제의 집권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가······.”

레온은 그녀가 자신처럼 고단한 싸움의 역사를 반복해왔음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안심했다.

그 아이가 아비의 오랜 방치 속에서도 아직 건강히 잘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레온이 가장 감사했던 일이며, 안도한 일이다.

“카리나··· 드라고니아 황제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아이고, 그런 소리 마십시오. 황궁에 함부로 방문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더냐.”

“황제폐하께서는······ 아니, 대체 당신은 어디서 온 사람이기에 이것도 모르는 거요?”

“멀리서 왔다는 것만 이해해라, 평민. 짐의 시간은 너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허비되지 않는다.”

“······.”

꽃집 여주인이 데려왔을 때부터 보통 귀한 신분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늙은 역사가는 이 남자가 진짜배기라고 직감했다.

그렇기에 높으신 분의 사정을 캐묻는 건 위험하다고도 여겼기에 레온에 대한 호기심을 접었다.

“황제폐하께선 보통 황궁에서 나오질 않으십니다. 그분을 가장 쉽게 뵈려면··· 음, 요즘은 그게 제일 낫지요.”

“그게 무엇이지?”

여기서 레온은 황궁에 냅다 쳐들어간다는 품위 없는 짓을 생각하진 않았다.

비록 이세계라곤 하나 카리나는 이곳에서 엄연히 황제의 신분인 몸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녀를 황제의 예우를 해줘야만 했다.

느닷없이 아비랍시고 황궁 문을 두드렸다간 충실한 경비병들의 시비가 붙을진데, 평민이 왕에게 시비를 붙이면 레온으로선 두들겨 패서라도 그 무례를 벌할 수밖에 없다.

그럼 황제의 경비병을 두들긴 것이 되니 카리나의 면도 서지 못할 것이다.

[가만 보면 내 기사는 나보다도 고리타분한 경향이 있다.]

‘사자심왕 된 자, 다른 이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래그래.]

여신의 빈정거림에 사자심왕은 체통을 지켰지만, 곧 늙은 역사가의 말에는 그 고매한 체통도 지키지 못했다.

“황제폐하의 구혼 결투에 참전하시는 게 어떻소? 그 덕에 온 제국이 떠들썩하다네.”

“뭬이야──?!”

[퀘스트 : 국혼.]

클리어 조건 : 드라고니아 제국황제 ‘카리나 드라고니아’와 혼인에 성공하십시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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