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190

배신 (3)

“…하!”

나는 순간 그녀의 말을 듣고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이제 딱 두 번 만난 자를 자신의 집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너무 조심성이 없는 게 아닌가.

“어머나, 귀하께서 제 입장이시라면 어쩌실 건가요?”

“그야….”

“똑같은 심족을 만나 한판 붙어 보신다면 알 수 있는 게 아닌가요?”

“….”

웃기는 소리지만,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긴 했다.

심족끼리 한번 서로의 기예를 겨루어 보면 서로의 본질을 읽을 수 있다.

물론 내 경우야 지족의 시야까지 합해져, 순간 과거까지 읽어 내기까지 했고,

유화는 내 심상을 접해 내가 어떤 존재인지만 그럭저럭 알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쉽사리 그녀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본질을 접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충분히 서로에 대해 알아 버린 것이었다.

“…뭐. 무슨 느낌인진 알겠군.”

“후후, 귀하께서도 올곧은 분이신 건 알았으니, 약속은 지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지키지. 서휼이 차후에 해룡궁을 떠나면 반드시 자리를 주선해 보마.”

“감사드리지요.”

촤락, 촤라락!

그녀는 이리저리 뱉었던 거미줄을 다시 회수하고, 어질러진 대기실을 치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완벽히 그녀의 과거를 읽은 것은 아니다.’

원영기 때에 느꼈던 그 눈 깜짝할 만한 사이에 스쳐 지나가는 주마등을 살짝 읽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입천에 달한 경위는 대강 이해할 수 있었지만.

달리 말하자면 그녀가 입천에 달한 경위를 읽는 게 고작이었다는 것이었다.

기억의 편린 몇 조각을 읽는 것이 정말로 끝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상대가 살아오며 격한 감정을 느꼈던 순간을 읽는 건 분명 가능하다.’

그렇다면.

나는 위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이 시야로 서휼을 바라보면 서휼의 과거도 알 수 있을까.’

* * *

덜컹.

나와 유화는 지하 3층 대기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지하 2층으로 올라가니, 그곳에서 유화의 동료 악사들이 있는 것이 보였다.

혹시나 싶어 그들의 심상도 읽어 보았으나, 홍합 요족을 제외하면 그들은 그냥 평범한 노예종족인 듯싶었다.

“아, 유화 왔구나.”

“네. 후, 덥네요.”

그녀가 땀을 훔치며 2층으로 들어서자, 어쩐지 그녀의 동료들의 눈빛이 이상해졌다.

그들은 나와 그녀를 번갈아 바라보고, 우리 둘이 모두 땀을 흘리는 것을 보자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서로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 왜 저러는 거지….’

나는 의아해하며 그들을 바라보다 다시 요선루로 올라가기로 했다.

“오늘은 좋았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나기로 하지.”

“예, 저 역시 고대하겠습니다.”

나는 언젠가 유화와 다시 대련을 하게 될 날을 기대하며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 역시 거미의 형태인 하반신을 굽히며 내게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어쩐지 그녀의 동료 악사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수군거림이 들려왔지만 나는 신경을 끄고 다른 것에 생각을 집중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일단 기억을 보는 시야는, 그녀와의 격렬한 대련 중에 잠시 보았던 것.’

그리고 그녀는 같은 심족이었고, 답천경 이상의 심족끼리는 대련할 때 서로의 심상이 얽힌다.

그런 현상 덕에 내가 그녀의 기억 몇 조각을 읽었던 것이었다.

‘만약 심족이 아닌 이의 심상에 진입하여 그 속내와 기억을 보려면 어찌해야 하지?’

일단 첫 번째로 떠오른 것은 의해은산이었다.

의해은산으로 서휼의 머리통을 내리꽂으면 내 원영이 그 녀석의 의식 안쪽으로 직접 들어가서 심상을 엿보며 기억을 엿보는 게 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 계획은 기각시켰다.

‘내 영혼이 썩어 버릴지도.’

의해은산도 어느 정도는 감당이 가능한 상대에게 써야지, 서휼 같은 녀석의 심상에 내 원영을 담근다면 농담이 아니라 원영이 부식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의해은산은… 생각하지 말자.’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나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도중, 기묘성심전에 생각이 닿았다.

‘음, 어쩌면 기묘성심전이라면….’

기묘성심전으로 나와 서휼의 의식을 잠시 잇고, 그 사이에 심상을 통해 기억을 엿보는 것은 어떠한가.

‘그것도 의식이 썩어 버릴 듯하겠지만, 의해은산보다는 조금 더 낫겠군.’

어쩌면 괴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조금 더 제대로 된 서휼의 정보 탐색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괴군과 손을 잡고 서휼을 납치해서 서 대군으로 개조해 버린 후, 괴뢰에 갇혀 있을 서휼의 의식을 조사하면….’

그러나 이건 너무 서휼 같은 방법이라 기각했다.

거기에 괴군을 도와 서휼을 납치하자고 하면, 괴군은 일단 나부터 대뜸 개조하려 할 터였다.

‘말이 안 통하는 상대니 상식을 기대하면 안 된다.’

저벅, 저벅….

어느덧 요선루 1층에 다시 올라온 나는, 4층에서 있을 서휼과 규련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면, 이 주루에는 사축기 수사의 의식도 제어하는 금제가 펼쳐져 있지.’

물론 사축기 수사쯤 되면 의식이 금제 당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 관람을 위해 금제를 ‘당해 주는’ 것이고, 언제라도 풀어헤칠 수 있었지만.

분명 어쨌든 그들의 의식은 분명하게 금제당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서휼이 규련과 함께 있으면서 가장 큰 틈을 드러내고 있는 순간일 수도 있겠어.’

그렇다면, 일단 오늘 깨달은 이 시야를 한 번은 시도해 보자.

만약 심상과 섞이지 않고, 외부에서 심상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기억의 조각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이득일 테니.

‘일단 공연이 다시 시작되길 기다리지.’

지금도 주루 안쪽의 의식들은 조금은 제약당하고 있었으나, 공연 도중만큼 제약당하진 않았다.

나는 일단 때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얼마 후.

다시금 주루의 불이 꺼졌고, 유화와 악사들이 다시금 올라와서 연주를 준비했으며, 모두의 의식이 다시 제약당했다.

일반적인 수사들은 의식이 제약당한다면, 감각이 제약당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제대로 행동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본래 의식 영역을 가지지 않던 범인 시절부터 잘 살아왔던 것이 나였다.

‘어디….’

슈칵!

나는 월수궁무록을 사용하며, 어둠 속에서 수많은 이들의 인지의 틈새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지족의 시야와 원영의 시야로, 기의 흐름 자체를 베어 버려 누구도 찾을 수 없게 몸을 숨겼다.

‘그리고, 내 생명의 흐름 역시 감춘다.’

지족의 경지로 원영에 도달하고 난 후 깨달은 게 있다면, ‘생명’에 대한 깨달음이 그것이었다.

‘사축기는 생명의 깨달음을 얻은 이들….’

내 생명의 흐름도 베어 내어, 일순간 생명의 깨달음을 얻어낸 이들에게 들키지 않게 한다…!

슈칵!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베어 내어 완전히 인식과 영기, 생명의 흐름 그 틈새에 숨어든 나는 4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혹시나 싶어 귀식대법까지 사용한 나는 소리를 죽이고 4층에 올라섰다.

우웅!

비록 억제당했다지만, 서휼과 규련의 의식은 4층 전체를 거의 꽉 채우다시피 하고 있었다.

물론 본래 그 둘의 의식 크기를 생각하면 그 역시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억제당한 것이었으나, 나는 긴장을 곤두세우며, 그 둘의 의식 틈새를 베어 내며 겨우겨우 안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나 신경을 세우며 그들에게 다가갔을까.

“…?”

나는 규련과 서휼이 앉아서 악사들의 연주를 듣는 게 아닌 선 채로 서로 말다툼을 하는 것을 보았다.

‘…?’

무슨 일이지?

규련이 방음 법술을 펼쳐 놓고, 4층 전체가 어두운지라 왜 싸우는지는 몰랐으나, 분명 규련은 서휼에게 강력한 질투심과 안타까움.

그리고 집착심과 연심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서휼은 겉으로는 쩔쩔매는 것 같았지만 역시나 속으로는 아무 감정이 없었다.

그때였다.

우웅!

어두운 4층 안쪽.

규련이 연분홍빛이 도는 기이한 법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결인을 맺자, 무언가 형이상학적인 변화가 주변으로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그러자 그동안 잠잠하던 서휼의 심상이 조금 요동치는 것이 보였다.

서휼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호오….’

규련은 울분과 질투심, 그리고 연심으로 가득 찬 채 서휼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서휼의 얼굴을 그대로 자신에게 끌어당긴 후 서휼에게 입을 맞췄다.

규련에게 기습 입맞춤을 당한 서휼은 당황하는 듯했으나, 이내 감정을 가라앉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하지만 잘 됐다.

서휼이 조금이라도 당황한 지금이라면, 어쩌면 그의 심상을 파고들어 그의 기억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

규련이 서휼에게 입을 맞추자, 그 둘에게서 무언가 형이상학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듯하며,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나 역시 그 변화에 무언가 엮이는 듯했다.

‘이게 무슨…!’

그때였다.

우우웅!

규련이 서휼에게서 입을 떼고, 방음 법술을 해제한 채 이쪽을 쳐다보았다.

“웬 놈이냐! 누가 훔쳐보고 있는 것이야!?”

‘이런…!’

월수궁무록의 문제라기보단, 규련이 펼친 법술을 제삼자가 ‘보는’ 것 때문에 걸린 듯했다.

나는 황급히 4층에서 내려갔고, 규련의 노호성이 뒤쪽에서 울렸다.

“어떤 놈이 감히…!”

쿠구구구!

억제당해 있던 그녀의 의식이 금제들을 박살 내며 사방으로 팽창한다.

하지만, 아슬아슬하다!

파앗!

나는 그녀의 의식이 나를 찾아내기 전에 그녀의 의식 영역에서 벗어나 요선루 1층, 내 원래 자리에 도착하는 데에 성공했다.

‘휴우….’

내가 자리에 앉아 신체 반응을 정상화시키고, 백홍주를 홀짝인 직후.

규련의 의식이 요선루 전체를 마구 훑었다.

‘뭔가 서휼에게 법술을 사용했다.’

그리고, 규련의 행태에 그 서휼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상황으로 보아, 입맞춤으로 성립하는 주술의 일종인 것 같은데….’

결혼을 강제하는 주술이라도 쓴 건가?

나는 서휼이 당황하는 모습을 떠올리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규 선배께서 그래도 서휼에게 한 방 먹였군.’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규련이 서휼에게 강제로 그 주술을 사용하기 이전엔, 둘의 사이가 뭔가 틀어지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규련은 뭔가 억울함과 질투심, 집착심과 연심이 들끓어 오르는 모습이었다.

아니, 지금도였다.

쿠구구구구!

그녀의 의식 영역이 인근을 샅샅이 훑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의식 영역 전체에 실린 짜증과 질투심, 연심을 관찰할 수 있었다.

아닌 척 연주를 이어 가던 유화 역시 규련의 질투심을 본 것인지, 순간 흠칫하며 연주에 흠을 낼 뻔했다.

물론 일류 악사답게 바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금을 계속 뜯어 갔지만.

‘…재밌는 일이 많이 벌어지는군. 오늘 저녁은….’

나는 백홍주를 전부 들이키며 유화의 공연을 편안하게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요선루에서의 일정과, 서휼의 송별회가 끝났다.

이제 서휼은 해룡궁으로 돌아가서 출발 준비를 할 차례.

해룡궁 일행과 규련이 요선루 앞에서 인사를 마치고 헤어지려 할 때였다.

“서은현, 너는 잠시 남거라.”

“예?”

규련이 갑자기 나를 불러세웠다.

서휼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나와 그녀를 번갈아 보았다.

“잠시 이 녀석에게 할 말이 있어 그러니, 서 대군은 먼저 가시오.”

“예, 알겠습니다.”

서휼은 부끄러운 듯 그녀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헛기침을 하며 빠르게 요선루에서 날아갔다.

‘소름 끼치는 연기력이군.’

나는 서휼의 심상과 그의 태도를 비교하며 속으로 혀를 찼다.

그때였다.

“너였느냐, 서은현?”

“예?”

“우리를 훔쳐본 것 말이다.”

“….”

규련이 냉랭한 표정으로 내게 물어 왔다.

나는 한동안 입을 다물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규련이 쓴 주술의 변화에 내가 끌려들었다.’

어쩌면 규련은 그 변화를 찾아내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만큼 발뺌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리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규련은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디부터 봤지?”

“…규 선배님께서, 대군께 그… 입을….”

“그래, 알겠다. 후우….”

그녀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왜 우리를 엿본 거지?”

“실례했습니다. 다만 대군께 보고드려야 할 일이 있었는지라….”

“그래, 뭐. 서 대군이 맡고 있는 일이 많으니 이해하겠다. 뭐… 오히려 너라서 다행일 수도 있겠지.”

그녀는 잠시 나를 노려보다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나는, 광한가약(廣寒佳約), 혹은 광한지약이라고도 불리는 고대 주술을 사용했다.”

규련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주 아주 아주 먼 옛적. 백홍주를 이용한 혼례의 예식이 없던 시절, 정말로 상상하기조차 힘든 까마득한 그 시절에는 광한지약을 통해 서로가 혼인을 증명했지.”

그러나 그녀는 그토록 바라던 서휼과 맺어지는 주술을 사용했음에도 어쩐지 조금 씁쓸한 표정이었다.

“축하… 드립니다. 규 선배님께선 서 대군과 맺어지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뭐… 그이와 맺어지고 싶어 했지. 이런 식으로 억지로가 아니라,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하고 싶었거늘….”

나는 그녀의 의념을 읽으며 그녀가 원하는 질문을 해 주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규련은 지금 누군가에게 답답한 속내를 풀어놓고 싶어 했다.

“…지난번에, 서휼이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누구입니까?”

“백의를 입은 인족 여성이었지. 그녀와 서휼이 손을 잡고 봉명주의 거리를 거니는 것을 봤어. 둘은… 너무나 행복하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

“한 번이면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서휼을 몇 번이고 미행해 본 바… 둘은 주기적으로 만나서, 더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는 듯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휼과 같이 다닌다는 인족 여성의 이야기에 흠칫 놀랐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를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나와 함께하고 싶다고 했으면서…! 왜 다른 여자와, 그것도 인족과 함께 있는 거냔 말이다…!!”

그녀가 울분을 토하며 말을 이었다.

“이번 기회에 그녀가 누구냐고 물었다. 서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어. 서휼은 나 말고 그녀를 더더욱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어! 아니, 설령 인족 첩을 들이고 싶다면 이해를 한다. 하지만 나한테 상의는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

“그래서… 이번에 광한지약을 서휼과 억지로 맺어 버렸다. 서휼은 내 것이라고, 그렇게 세계에 대고 맹세하고 싶었다.”

그녀는 갑자기 자괴감이 든 듯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한숨을 쉬었다.

“그… 그 여자만 없었으면, 이렇게 다급하게 그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어. 내가,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느냐…?”

“…제가 서 대군을 잘 압니다만.”

나는 그녀에게, 서휼과 거리를 두라고 충고를 해 주기 위해 말을 꺼냈다.

“서 대군의 여성 편력은 굉장히 심한 편입니다. 아시겠지만 해룡궁의 인사 중 몇몇은 서 대군의 자손이기도 하니까요. 하계에서부터 무수한 처첩을 축첩해 온 자가 서휼 대군이십니다.”

“…그런가.”

“예… 그러니 서 대군에 대한 기대는 안 하는 것이 어쩌면….”

“뭐… 좋다.”

내 말을 들은 그녀의 황금빛 눈이 노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황금빛 뿔과 함께 불타오르는 그녀의 황금안이 세로로 찢어졌다.

“그렇다면, 서휼이 기축수행을 다녀올 동안, 합체기에 반드시 도달하겠다.”

“…?”

“합체기 요왕이 되어서, 내가 서휼을 거두겠다. 하면 감히 더 이상 축첩을 할 엄두를 못 내겠지.”

“….”

나는 그녀에게 뭐라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침묵하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어쩌면 잘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련은 사축기 대원만의 수행을 가지고 있다.’

꾸준히 수행을 이어 가면 합체기 용왕이 되는 것이 예정된 용.

그것이 황룡 일족의 규련이었다.

‘규련이 서휼을 남편으로 맞아들이고, 서휼보다 높은 수행으로 의부증이 걸려 서휼에게 집착하면서 그를 계속 의심해 댄다면….’

어쩌면 서휼의 행동 반경이 확 줄어들 수도 있다.

‘계산적인 속셈으로 응원해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응원해 드리겠습니다. 저도 사실 대군께서 여성 편력을 즐기시는 걸 마음에 안 들어 했습니다.”

“응원해 주어 고맙구나.”

“그리고 아마 규 선배께서 보셨다는 인족 여성 말입니다만….”

“그래, 그 마음에 안 드는 여자?”

“예, 그 여인은 본래 서 대군께서 저와 함께하게 해 주실 예정이었던 여인입니다. 다만 서 대군께서 데리고 다시니는 거지요. 하여 만약 규 선배님께서 경지를 이루시고 서 대군님과 혼약을 이루신다면, 그 여인은 제게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서 대군님이 다른 여성을 만나는 것도 신경 쓰이실 테니 말입니다.”

“그래, 그것도 좋겠군.”

물론 서휼이 함께 다닌다는 인족 여인.

오혜서일 확률이 높을 그녀가 나와 ‘함께할 예정’이었다는 뜻은 중의적인 의미였다.

혼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이 세계에 떨어지지만 않았다면 동료로서 계속 함께했을 테니까.

‘어찌 되었든, 규련을 통해서라도 할 수 있다면 오혜서와 서휼을 떨어뜨려 놓아야 해.’

규련은 둘이 행복하게 거리를 거닐고 있는 모습을 봤다고 했지만, 나는 솔직히 그녀가 서휼에게 무슨 짓을 당하는 중인지 몰랐기 때문에 불안할 뿐이었다.

“흠흠!”

그녀는 갑자기 머리를 부르르 떨더니 입에서 희미한 기운을 내뿜었다.

‘아….’

취기였다.

아무래도 선주를 마시고 조금 취했던 모양이었다.

“…추한 꼴을 보여 주어서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규 선배님과 서 대군님의 사이를 응원하는 것은 진심입니다.”

“그래, 고맙구나. …술에 취해 조금 이상한 것들만 떠들었다만… 사실 내가 할 말은 따로 있다.”

“말씀하십시오.”

“내가 서휼에게 건 광한지약은, 본래라면 아주 많은 이들이 보는 곳에서 맺거나, 혹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맺어야 하는 주술이다.”

“…혹시 저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긴 겁니까?”

“아니, 큰 문제는 없다. 광한지약을 맺을 때 보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자를 ‘증인’으로 삼아 우리의 혼약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아….”

“한 마디로, 너는 본녀와 서휼의 유일한 혼약의 증인인 셈이다. 하지만 오늘 맺은 광한지약은 제대로 된 지약이 아닌, 본녀가 술에 취하고 울분과 질투심에 휩싸여 서휼에게 강제로 건 것에 불과하니….”

그녀가 조금 부끄러운 듯이 머리카락을 손으로 꼬며 내게 물어왔다.

“추후에, 본녀가 합체기 요왕이 된 후. 제대로 서휼과 혼인식을 치르면, 광한지약의 유일한 증인인 네가 우리 혼약의 진행을 봐 줄 수 있느냐?”

‘그래서 나를 바로 알아챈 건가.’

나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어쨌든, 규련의 제안은 내게 하나도 나쁠 것이 없었다.

“예. 두 분의 광한지약이 제대로 이뤄지는 그 날에는 반드시… 두 분의 지약을 진행해 드리겠습니다.”

“고맙다.”

규련은 활짝 웃으며 내게 감사를 표했다.

‘서휼을 어찌 상대해야 할지 조금은 해법이 보이는 것 같군.’

그동안 온갖 음흉한 수를 꾸미는 그에게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는지, 어떻게 서휼을 따라갈 수 있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오늘 규련의 속내를 듣고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서휼을 결혼시킨다!’

집착이 강한 규련이 합체기 요왕이 된 후, 서휼과 결혼하면 서휼은 몇백 년 동안은 그녀에게 잡혀 살며 행동 반경이 좁아질 터였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이번에 결심한 목적들을 이룰 확률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면 천뢰번은 새신랑인 서휼의 입에 꽂는 게 아닌, 흑룡왕 현음의 입에 꽂아야겠지만.

‘서휼이 나가 있는 동안, 서휼이 돌아오면 서휼이 규련과 결혼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짜 놓자!’

나는 이번 생의 목표들을 수정하며 각오를 다졌다.

작가의 말: 악역 영애 규련과 편 먹고 로판 남주를 강제 결혼시킨 후 여주를 차지하려는 사악한 흑막 서은현….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