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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1

190화.

미국 대통령 탄핵표결은 한국시간으로 한밤중에 진행되었다.

골든게이트 한국지사는 건물 전체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퇴근을 포기하고 회사에 남았고, 다들 초조한 모습으로 TV를 지켜보았다.

아마 다른 금융회사들 역시 비슷한 모습일 것이다.

폭락하던 미 증시는 하원에서 탄핵안이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반등을 시도했다. 로날드의 퇴진으로 불확실성이 해소될 거라 기대하는 것이다.

현주도 지사장실에서 나와 직원들과 함께 TV를 지켜봤다.

엘리는 당황한 표정으로 현주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진후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현주는 피고 있던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망했네.”

그녀는 처음부터 이번 일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말리지 못한 것은 둘의 의사가 너무 확고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때처럼 모든 것을 걸고 베팅하는 것도 아닌 만큼, 이번 기회에 실패를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OTK컴퍼니 지분을 공탁하질 않나, 미국 대통령을 움직여 긴급조치를 선포하게 하질 않나. 결국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쯤 되면 돈 날리는 건 문제도 아니다.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엘리는 다급하게 말했다.

“당장 미국으로 가요.”

현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게 좋겠네. 지금 바로 공항으로 가자.”

만약 비행기표를 구할 수 없다면, 서성전자 쪽에 얘기해 전용기라도 빌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임 발표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허억!”

“맙소사!”

“이런 말도 안 되는…….”

TV 화면에 붕괴된 도시의 모습이 펼쳐졌다.

저기가 정말로 샌프란시스코란 말인가?

한국지사에는 미국인도 여럿 일하고 있었다. 자국에서 벌어진 참사 장면을 본 그들은 너무 놀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거나 울음을 터트렸다.

모두가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엘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진후 말이 맞았어요. 정말로 빅원이 왔어요.”

현주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책상을 짚었다.

“진짜 얘들 때문에 제 명에 못 살겠네.”

대부분의 금융회사들과는 달리 골든게이트는 빅원이 온다는 것에 베팅했다. 아마 엄청난 수익을 거두게 될 것이다.

폐하가 된 도시를 보며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동생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로 했다.

* * *

OTK컴퍼니 본사 역시 절반 이상의 직원들이 퇴근을 미룬 채 회사에서 TV를 지켜보았다.

강진후는 몇 달 전부터 시장에서 원자재를 사재기했다. 그러나 원자재를 사들인 것은 재난복구를 위함이지, 돈 벌 목적이 아니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렇다고 진짜 돈 벌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재난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그걸 사방에 알리기까지 했는데, 돈 벌지 못할 건 또 뭔가?

“와아아!”

함성을 터트리던 직원들은 헨리와 마이클 리를 보고 표정을 고쳤다. 지금 미국인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그런 걸 떠나서 이런 재난을 보고 기뻐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박상엽은 어이없어 하며 중얼거렸다.

“정말로 이걸 맞출 줄이야.”

강진후는 이제까지 여러 위기 상황을 예측하며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브렉시트도 로날드 당선도 예정된 투표일에 이변이 벌어진 것뿐이다.

그것을 맞춘 전문가들은 여럿 있었다.(물론 거기에 돈을 투자해서 번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러나 지진은 달랐다.

이건 빅원이 오느냐 마느냐에 대한 문제를 넘어서, 빅원이 언제 오느냐에 대한 문제였다.

물론 강진후가 잘못된 선택을 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모한 교수라는 사람의 말만 믿고 확신을 갖기는 무리였다.

‘왠지 그 교수가 사기꾼 같다는 생각도 좀 들고.’

어쨌거나 빅원에 베팅하라는 지시를 받은 만큼 박상엽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크게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강진후가 지분을 캘리포니아 주정부 앞으로 공탁한 뒤로는 얘기가 달라졌다.

빅원이 오면 큰 이익을 얻고 지분 공탁은 무효화된다. 반대로 빅원이 오지 않으면 큰 손실을 보겠지만 지분은 캘리포니아 주정부로 넘어간다,

다시 말해 이익은 회사의 몫이고, 손실은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몫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박상엽은 아무런 부담 없이 회사 돈을 위험상품에 투자할 수 있었다. 레버리지를 최대한 일으켜 풋옵션을 사들이는 한편, 외환시장에서는 달러와 엔을 매수하고 신흥국 통화를 매도했다.

강진후가 말한 시기는 9월 말까지였고, 이제 그 날짜는 며칠 남지 않았다.

모두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그 일이 벌어졌다!

당장 미국을 포함한 아메리카 증시 전체가 충격을 받고 휘청거렸다. 반면 금과 원유, 원자재는 폭등했고, 원달러 환율은 순식간에 1400원을 돌파했다.

날이 밝으면 아시아증시부터 줄줄이 폭락하게 될 것이다. 주식 투자자들은 오늘밤 잠들기 글렀다.

정확한 수익은 포지션을 청산해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100억 달러 이상은 될 것이다. 이 정도면 그동안 빅원에 대비하느라 쓴 돈을 메우고도 남는다.

돈도 돈이지만, 박상엽은 다른 것을 떠올렸다.

최근 한달 동안 당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매일 같이 회사 앞에서 벌어진 보수단체의 시위, 쓰레기 같은 기사를 써댄 기레기들, 언론의 선동과 날조, 팔짱 낀 채 구경만 하던 경찰, 검찰의 압수수색, 폭행, 구설수 등등.

이런 일들이 그냥 벌어졌을 리는 없다. 배후가 있음이 분명하고, 누군지도 짐작이 갔다.

‘호성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보복이겠지.’

그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아마 강진후가 몰락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일을 벌였겠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이제 강진후는 미국을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 되었다!

박상엽은 머리를 묶고 있던 붕대를 풀며 소리쳤다.

“반격 시작이다, 개새끼들아.”

* * *

빅원의 위험성이 대두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

이유는 당연히 강진후 때문이다. 그때부터 미 연방정부와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지진에 대비해 왔다.

각종 재난에서 초동대처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재난발생 초기에 얼마나 많은 인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투입하느냐에 따라 구조의 성패가 판가름 난다.

군대고 소방서고 할 것 없이 한동안 구조훈련을 강도 높게 실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게 뭔 미친 짓인가 싶었다.

다들 강진후와 로날드 때문에 필요 없는 훈련을 한다고 투덜거렸다. 그런데 막상 일이 터지자 얘기가 달라졌다.

캘리포니아 군기지.

헬기들은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고정시켜 놓았다. 때문에 꽤 큰 충격이 휩쓸고 지나갔음에도 망가진 헬기는 거의 없었다.

루카스 대령은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군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의 임무는 최대한 많은 국민을 구해내는 것이다! 알았나?”

부하들은 일제히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모든 헬기들은 연료를 꽉 채우고, 구조장비를 탑재하고 있었다. 출동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군 기지에서 수십 대의 헬기가 차례대로 날아올랐다.

비슷한 일은 소방서에서도 벌어졌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일대가 긴급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며, 주유소나 가스충전소 등에서는 인화물질을 전부 반출하고 저장탱크를 비워놓았다.

덕분에 대규모 폭발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전기선이 끊어지고 도시가스관이 파괴되며, 곳곳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화재는 탈출과 구조를 더 어렵게 만든다.

구조헬기는 물론 소방헬기도 즉시 출동했다.

* * *

군 병력과 소방구조대는 위험지역을 중심으로 구조에 나섰다.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입은 외곽 지역은 구조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민간구조대가 투입되었다.

빅원은 캘리포니아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시도 때도 없이 틀어대던 재난방송이 이럴 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마리오는 재빨리 가족들을 데리고 저택에 있는 방공호에 들어가 여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 순간, 치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전이 들려왔다.

[CK4875. 들리면 응답하라!]

마리오는 바로 무전기를 들고 응답했다.

“CK4875. 듣고 있다.”

[구조를 위해 즉시 출동 바란다. 가능한가?]

마리오는 떨고 있는 가족들을 보았다. 가족들은 가지 말라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GPS장비와 무전기를 설치해준 젊은 직원이 한 말을 떠올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선생님의 헬기가 누군가에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바로 지금, 그 누군가는 자신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리오는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물론이다. 즉시 출동하겠다.”

[생존자 위치는 GPS로 보내겠다.]

“알았다.”

마리오는 헬기에 올라탔다. 직원이 장착한 서성전자 GPS에는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엄마의 품에 안긴 손자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헬기에 오르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할아버지 어디 가세요?”

마리오는 손자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사람들을 구하고 오마, 디에고.”

* * *

실리콘밸리 팔로알토.

정부의 대피계획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시민들은 여전히 도시에 남아있었다. 그곳에 집과 생활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쉽게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대다수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은 여전히 빅원 가능성을 부정했다. 때문에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있는 수많은 IT기업들의 본사와 연구소는 활발하게 돌아갔다. 그러나 정부의 강압적인 조치로 기업들은 기약 없는 휴무에 들어갔고, 할 일이 없어진 사람들은 대낮부터 고층빌딩 안에 있는 펍에 모여서 술을 마셨다.

다트판에는 두 장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바로 로날드와 강진후의 얼굴이다. 사람들은 사진을 향해 다트를 던지며 놀았다. 사진에는 무수히 많은 구멍이 나있었다.

벽에 걸린 대형 TV에는 로날드의 사임발표가 흘러나왔다.

“누가 저딴 놈을 대통령으로 뽑은 거야?”

“강진후 말만 듣더니 꼴좋게 됐네!”

다들 술을 마시며 기쁨의 웃음을 터트렸다.

삐비비!

그런데 그 순간 모두의 스마트폰에서 일제히 알림이 울렸다.

[샌프란시스코 남쪽 해상에서 대지진 발생!

해당 지역 주민들은 즉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이게 뭐야?”

“설마……?”

처음에는 다들 장난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순간.

콰아앙!

강렬한 충격이 건물을 뒤흔들었다.

“으아악!”

“꺄아악!”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유리창이 일제히 깨졌다. 천장에 매달려있던 조명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사람들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가린 채 기어서 테이블 밑으로 들어갔다. 건물은 계속해서 사방으로 흔들렸다.

TV화면이 꺼지기 직전 앵커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빅원이 왔습니다! 모두 도망…….”

방금 전까지 강진후 얼굴에 다트를 던지던, 백인 남성은 울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빌어먹을! 강진후 말이 맞았어!”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그 말을 안 들었던 거지?”

“대체 어떤 놈이 빅원이 안 온다고 한 거야?”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진동이 멈췄다.

“다 끝난 건가?”

“사, 살았나?”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들은 건물을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멈췄고, 내려가는 계단은 붕괴되었다.

그 순간, 또다시 건물이 세게 흔들렸다.

“여진이다!”

아직 지진은 끝나지 않았다!

건물은 조금씩 옆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무너지게 될 것이다.

누군가 소리쳤다.

“옥상으로 가요!”

대부분의 빌딩들은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옥상 문을 잠가놓는다. 하지만 긴급재난지역으로 지정된 이후에는 대피를 위해 개문이 의무화되었다.

그들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옥상 위에 올라서자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던, 고층빌딩들이 붕괴했다. 도로는 크레바스처럼 갈라졌고, 사람이고 차량이고 할 것 없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게 정말로 팔로알토의 모습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이건 꿈일 거야.”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진작 피난을 갔어야 했는데!”

“나, 난 이대로 죽기 싫어! 제발 살려줘!”

“우린 다 죽을 거야!”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다들 절망에 빠져 어쩔 줄 몰라 하는데, 한 젊은 여성이 소리쳤다.

“그렇지 않아요! 저기를 보세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고,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태양마저 가릴 듯 셀 수도 없이 많은 헬기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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