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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2

192화 장인어른이 너무 강함

-카앙!

깡마른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다. 그 다음으로 이어진 건 흙바닥을 긁는 소리다.

“흐읍!”

일본 랭킹 1위. 무소불위의 권력자 카미야 회장이 물러난 이후 새롭게 설립된 일본 헌터협회의 회장 다케다는 낭패감 가득한 신음을 흘렸다.

“이거 생각보다 단단한데?”

다케다는 제 레전더리 별철검이 흔들리는 것을 붙잡으며 큼직한 골렘상을 바라보았다.

용제가 직접 만들었다는 골렘. 구혼 결투의 챔피언 도전에 필요한 티켓팅을 위해 다케다는 골렘에 도전했다.

‘강함 그 자체는 별거 아니다. 골렘인만큼 둔하고 별다른 특수능력도 없어.’

하지만 그것을 커버하는 무식한 방어력. 별철 수준은 아니지만, 그 바로 아랫단계의 금속을 통짜로 뭉쳐놓은 것 같다.

“다케다 상! 힘내세요!”

일본 헌터들의 응원에 다케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평범한 S급 헌터라면 고생 좀 했겠지만···!”

다케다의 별철검이 눈부신 광휘에 휩싸였다. 빛과 정의의 여신 아리아나의 신도이자 만신전에 가면 레온도 다케다 경이라고 꼬박꼬박 불러주는 정식 기사다.

성법 <광휘의 칼날>

마(魔)를 가르는 빛의 칼날. 이것이 베지 못할 것은 없다!

-콰직!

골렘의 팔이 잘려 나간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케다의 장검이 화려하게 춤추며 골렘을 난도질했다. 그 연격이 끝날 무렵 장검에 깃든 빛이 서서히 줄어들었지만, 바닥에 남은 건 18개로 잘려 나간 골렘의 조각뿐이었다.

“와아아아!”

“역시 다케다 상! 슷~게!”

“훗, 이 정도쯤이야.”

다케다는 챔피언 도전권을 얻은 것에 대한 기쁨 이전에 골렘을 산산조각 내고도 이 하나 나가지 않은 제 별철검을 보았다.

만신전의 오리지널 별철무구는 기사급 작위를 받고 만신전의 신들에게 인정받은 자들만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성능은 철저하게 갈린다. 기본 별철검도 최소 유니크 최상위의 고품질이지만, 별철무구의 진가는 신이 그 무구를 장비한 자를 축복하느냐 마느냐에 갈린다.

믿음 끝에 성법을 사용하고 신들의 축복을 받은 나이트 오브 렐름만이 별철무구의 진정한 힘을 해방할 수 있다.

‘대단해. 여신께서 내게 힘을 빌려주시는 게 느껴진다.’

방랑의 마검 사태 이후로 다케다는 완전히 만신전에 빠져버렸다.

일본에서는 만신전 신드롬이라는 현상이 있을 정도로 신도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성법까지 사용하며 신에게 직접 축복을 받은 이들은 드물다.

다케다의 검술 제자들도 십수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다케다 상!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미치다. 너도 한 번 도전해봐야지.”

“아뇨아뇨, 저는 무리임다. 이제 겨우 A급 헌터인 걸요.”

“하하하, 원래 네 실력만이라면 힘들긴 할 거다. 골렘보다 먼저 나가떨어질 테니까. 하지만 너 또한 여신의 축복을 받은 엄연한 기사 아니냐. 성법의 힘이 있다면 고작 고철 덩어리쯤이야.”

“그, 그런가요?”

미치다는 다케다가 고전할 정도로 강력한 골렘의 잔해를 보면서 의아함을 느꼈다. 성법의 힘은 확실히 치트이지만······.

“그나저나 용제의 힘은 대단하군요. 저만한 골렘을 ‘수백 체’나 만들다니. 진짜 괴물 아닙니까?”

시련의 장. 챔피언의 자리에 도전하기 위해 준비된 용제의 골렘은 한눈에 봐도 수백 체를 넘었다.

최소 A급 헌터 이상인 골렘을 단 한 사람이 만들어내다니··· 그야말로 원맨아미가 아닌가?

“사자심왕 폐하도 그렇고 불카누스 경도 그렇고··· 그쪽 세계 사람들은 대체 뭘 먹었기에 하나같이······.”

“수백 년 동안 투쟁의 역사를 쌓아온 신들의 기사들이시다. 우리와는 짬부터 다르다는 거겠지.”

그때였다. 시험장을 나가려던 다케다는 입구에서부터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한 도전자를 보았다.

“우리 말고도 또 있··· 폐하?”

“”사자심왕 폐하!””

다케다와 일본 헌터들이 레온에게 뛰어가 넙죽 고개를 숙였다.

“역시 무사하셨군요. 폐하께서도 챔피언 도전을··· 위해?”

말하다 보니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다케다. 그걸 언급하기도 전에 레온이 물었다.

“네 녀석도 구혼 결투에 참가하는 작자이냐?”

“예? 아, 퀘스트가 그러하··· 헙!”

레온의 시선을 마주한 다케다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굉장히 못마땅하다는 그런 시선··· 자신이 어디에서 그의 심기를 거스른 걸까?

“골렘을 내와라.”

“먼저 골렘에 의해 부상을 입을 경우에 대한 동의서에 사인을──”

“어허! 무슨 말이 그리 많아! 내오라면 내올 것이지!”

절차를 따지는 시험관에게 호통을 치는 레온.

“끄응··· 아무튼 이곳에 찾아온 순간 동의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내 탓 하지 마시오!”

곧 골렘이 레온 앞에 쿵쾅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보다 족히 세 배는 큰 통짜 골렘은 그것만으로 위압감이 있다.

그토록 거대한 골렘이 레온을 내려다보는데도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무생물이라곤 하나, 감히 왕을 내려다보다니. 무엄하다!”

부릅뜬 시선이 거인을 관통한다.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꽈아아아아아앙!!

무언가에 짓눌리는 골렘. 공간이 요동치며 두 발이 맞닿은 땅이 흔들린다.

오직 골렘과 그 주변만을 무언가가 짓누르고 있었다.

[지엄한 신법 제1조 1항! 사자심왕은 만신전을 대리하는 권위를 가진다!]

거인의 형상이 강렬한 태양빛과 열기를 뿜으며 허공에 드러난다. 그가 오른손에 쥐고 있는 것은 거대한 망치요, 그가 왼손에 품고 있는 것은 신성왕국의 법전이다.

그것은 헌법의 그것과는 권위가 다르다. 신들이 인간세계에 내린 지엄한 율법. 그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할 필멸자들의 사명과도 같은 것.

살인하지 말라는 인간의 법은 정당방위나 야만인, 농노 등의 예외가 존재하지만, 신법은 절대적으로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태양과 심판의 타타르.

그 지엄한 율법의 수호자가 사자심왕을 대신해 그 모욕을 심판한다.

성법 <죄목 : 왕족 모독. 판결 : 압사>

망치가 내려진 순간, 골렘의 무릎이 강제로 꿇려진다. 골렘은 한순간을 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얼굴을 처박더니 움푹 파인 크레이터 속에 파묻혔다.

“무, 무슨······.”

크레이터 안, 잘게 쪼개진 골렘의 형상이 처참하게 방치된다.

레온은 박살난 골렘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벙쪄버린 시험관에게 다가갔다.

“바로 챔피언에게 도전할 것이다. 자리를 준비하라.”

“아, 예! 예예!”

골렘을 파괴하면서 받은 도전권을 바로 사용하는 레온. 그의 시선이 다케다에게 향했다.

“네 녀석도 구혼자더냐?”

“······아뇨.”

방금 포기했습니다.

레온이 당연히 챔피언이 될 것을 짐작한 다케다는 깔끔하게 기껏 얻은 도전권을 포기했다.

“현명하구나.”

다케다를 향하던 레온의 싸늘한 시선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가 떠나간 자리. 미치다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왜 저러신 걸까요?”

“······아버지란 누구나 저런 거겠지.”

“예?”

그에 무슨 소리냐는 듯 휘둥그레한 표정을 짓는 미치다. 다케다는 그가 아직 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 * * *

“······.”

“······.”

레온이 챔피언으로 나왔다.

이 사실에 헌터들은 잠깐이지만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퀘스트 깨려면 챔피언을 유지해야 하니까.

-레온 폐하라면 거의 확실하게 디펜딩이 가능하겠지.

-이거 용제와 결혼하는 건 정해졌는──응?

용제 카리나 ‘드라고니아’.

사자심왕 레온 ‘드라고니아’.

그 공통점을 깨달은 관객들의 시선이 의아해진다. 특히 카리나 드라고니아가 레온의 친딸이라는 걸 아는 이들도 있었기에 더더욱.

-레온 폐하의 수업에서 들은 적 있어! 순결의 신관 카스티야 왕비님 사이에서 낳은 딸 이름이 분명 카리나였다고!

-순결의 신관인데 어떻게 결혼함?

-신전에서 보쌈해서 항의하기도 전에 기정사실부터 만들었대.

-???

다시 말해 레온과 카리나는 친족. 그것도 직계혈족이다.

-어떻게 결혼함? 아버지와 딸인··· 설마 근──

-그럴 리가 있겠냐!

-너 그러다가 왕실 모독죄로 죽어!

어쨌든 친아버지인 이상 레온이 카리나와 혼인할 생각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레온의 목적은 하나로 귀추된다.

“끄응··· 폐하. 설마 구혼자들을 다 쳐낼 생각이십니까?”

결투장의 한가운데에서 레온을 마주한 콘월 옹이 그의 의도를 확인했다.

“왜, 그러면 안 되느냐?”

진짜군. 영국의 은기사 그레이엄 경이 예의를 갖추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어 폐하··· 저희들이 받은 퀘스트는 용제 폐하와 ‘혼인’하는 것이었습니다만?”

“그래서?”

“누가 됐던 구혼이 성공해야 게이트도 공략하고 빠져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노오오옴!”

레온의 호통이 온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왕족의 중대사를 한낱 미션 따위로 취급하다니!”

“아니, 사실이 그런 걸 어찌······.”

“너희들은 결코 나를 넘어서지 못하리라!”

틀렸어. 이 양반, 딸의 구혼 소식에 눈 돌아간 아버지야.

“시간 끌 것 없다! 네놈들 전원 덤벼라! 내 오늘 너희들의 자격을 시험하리라!”

자존심을 건드리는 그 말에 발끈한 건 독일의 S급 헌터 귄터였다.

“사자심왕. 그 명성은 유럽에서도 자자하지만··· 혼자서 우리 셋을 상대하겠다는 건 과용 아닌가?”

옆에서 그레이엄 경이 ‘될 거 같은데······’라고 말을 흘렸지만, 한 발자국 옆으로 피하는 것으로 그 이상의 의사표현을 멈췄다.

“호오? 네놈, 이름은 뭐지?”

“귄터 노르트. 독일 연방군 대령이오.”

“크크큭··· 과연, 전사를 자처할 만한 기개는 있구나.”

레온이 외쳤다.

“스탈리온!”

다음 순간, 공간을 찢고 나타나는 하얀 준마. 그 위에 올라탄 사자심왕이 마상창을 들었다.

“허나, 네놈은 결국 왕의 보물을 훔치려 드는 도적일 뿐.”

“자랑하는 그 기마돌격이란 녀석인가. 내 한 번 받아내 보지.”

“가자, 스탈리온!”

레온이 외치자 스탈리온이 맹수 같은 포효를 터뜨리며 지면을 박차기 시작했다.

“흥··· 말이 낼 수 있는 속력이라봤자.”

귄터는 자신의 거대한 방패를 들었다. 어지간한 사람보다도 큰 사각방패. 그것은 독일··· 아니, 유럽 최고의 탱커라는 그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고작 말이다. 헌터의 각력이 말 따위를 능가한다는 건 이젠 상식. 마력도 없는 말 따위가 빨라봤──’

-히힝!

‘음? 너무 빠른데?’

양자의 거리가 그렇게 멀었던 건 아니지만, 스탈리온의 돌진하는 기세는 너무나 맹렬하고 사나웠다.

-쾅쾅쾅쾅──!!

이건 말발굽 소리가 아니라 십수 톤의 거대 공룡이 사냥을 위해 달려드는 소리 같은 육중함.

극도로 발전한 하체가 내리치는 지면이 쿵쾅거리며 진동을 일으키고 있다.

‘말 따위’라고 하기에는 저 하얀 말의 기세가 끔찍하리만치 거대하다.

그럴 수밖에.

사자심왕과 함께 수백 년 전쟁의 역사를 함께한 맹우인 것이다.

전사로서의 격을 따지면, 지구의 그 어떤 헌터를 내놔도 대등한 이를 찾을 수 없는 전투마.

하물며 옛 피를 각성해 하늘조차 주파하는 신수가 아니던가.

“와, 완벽한 수호!”

그 압도적 존재감이 귄터로 하여금 성급한 스킬사용을 강요했다.

그가 철벽의 존재인 이유. 절대방어로까지 불리는 탱커 스킬 ‘완벽한 수호’.

체력과 마력으라 소모해 30초 동안 상대의 공격력 90%를 상쇄하는 초유의 치트 스킬.

그는 이것으로 S급 보스의 필살기술조차 막아냈다. 하지만──

“라이온 하트에──죽어라!!”

“······?!”

【 최강 돌격자 】 x 라이온하트 마상창 토너먼트 필살 랜스챠징.

사자심왕의 젊은 시절, 그는 이것으로 수많은 기사들을 쓰러뜨리고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

-꽈──!

충격의 순간, 귄터는 그 소리를 끝까지 듣지도 못했다.

소리보다 더 빨리, 귄터의 몸뚱아리가 저 멀리 튕겨 나간 덕이다.

“어?”

지나치게 강력한 충격에는 비명도 나오지 않는다던가.

손이 으스러진 것 같은 묵직한 충격은 둘째치고 귄터는 자신이 어딘가를 향해 빨려 들어가고 있다 생각했다.

‘결투장의 입구?’

귄터의 신형이 계속해서 비행한다. 그것은 자신이 입장했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는 길.

귄터의 여정은 거꾸로 흐른다.

“······.”

“······.”

구혼 결투에 장외패는 딱히 없지만, 귄터는 명백히 장외패였다.

쾅! 콰쾅!

하고, 들려오는 소리에 그레이엄 경과 콘월 옹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시선을 교차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역린을 건드린 듯하군.”

“······선택지가 없지 않습니까.”

그레이엄은 귄터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도 포기하지 못했다.

이곳에는 미국과 일본 그 외에도 세계각국의 헌터들이 모여 있다.

영국 헌터의 양대 자존심인 자신과 콘월 옹이 겁먹고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다.

‘쪽팔리니까.’

저 사자심왕 상대로라면 덜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나름의 호승심도 있다.

“방금 그거, 순간 가속에 가까웠지만, 대처하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과연, 최속의 기사. 그걸 눈으로 좇았나?”

“저 혼자라면 상대가 안 되겠지만, 콘월 공작께서 지원해주신다면야.”

“맡겨주시게.”

콘월 옹은 십이환장을 들었다. 그의 마력이 주입되며 에픽 아이템의 힘이 발휘된다.

십이환장 <아홉 번째 마법 : 강화>

열두 개의 대마법을 사용하는 기적의 에픽 아이템 그 아홉 번째 능력은 모든 버프 마법들의 강화.

콘월 옹의 마력 20%를 앗아가는 대신 10초 동안 그가 사용하는 모든 버프 마법들은 세 배의 효과를 발휘한다.

그리고 그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콘월 옹의 고유스킬이 발동한다.

고유스킬 <고속신언>

마법의 발동시간을 극단적으로 감축해주는 자가 버프스킬. 그다음──

“<슈퍼 스트랭스>, <트리플 어택>, <퍼펙트 인비지빌리티>, <매직 워드>, <타임 얼터>, <그레이터 레지스턴스>, <그레이터 매직실드>, <얼티메이트 아머>.”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버프 마법들. 하나하나가 최고위 마법사들에게나 가능한 궁극의 버프들이 단 한 사람을 향해 쏟아진다.

본래라면 파티 전원에게 분배되어야 할 궁극의 버프 마법. 그것을 그레이엄 단 한 명에게만 퍼부어진다.

“엄청난 힘··· 그야말로 전능감이 느껴집니다. 무엇이든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요.”

“내 마력의 절반 이상을 쏟았네. 지금의 자네라면 S급 헌터를 초월한 수준이지.”

“맡겨주십시오.”

다음 순간, 그레이엄의 신형이 사라졌다. 스탈리온의 돌격조차 넘어선 초신속.

“호오?”

레온은 말에서 내려 스탈리온의 소환을 해제하고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그레이엄을 훑어봤다.

빠르다.

그 속도는 실로 전광석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달리는 것만으로 결투장이 훼손될 정도로 지면을 밟아대며 레온의 주변을 맴도는 이유는 하나.

‘틈을 보인 순간, 최속최강의 일격으로 꿰뚫어주지!’

그레이엄은 체내시간조차 감속되어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레온을 주시했다.

콘월 옹의 버프 마법으로 압도적인 강함을 손에 넣었다곤 하나 사자심왕의 초인적인 강함은 널리 알려진 사실.

방심 따윈 하지 않는다. 사자심왕이 제 속도에 대응하기 전에 확실하게 박살낸다.

‘놈에겐 내가 보이지도 않을 거다.’

실제로도 그랬다. 퍼펙트 인비지빌리티로 불가시화한 그레이엄의 모습은 레온에게조차 보이지 않았으니까.

“날파리처럼 왱왱 시끄럽기도 하구나. 짐의 시야에서 벗어나면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느냐.”

다음 순간 레온이 성검을 높게 들었다. 검술의 자세라기엔 너무나 단순하고 비효율적인 자세.

그것은 검을 휘두르기보다는 망치를 내리치려는 자세에 가깝다.

“아무리 빠르다 한들, 대지의 여신께서 짐과 함께하시는 이상, 누구도 짐의 허락 없이 땅의 은혜를 벗어날 수 없다.”

“허억···!”

숨을 삼킨 것은 관중석의 두 사람이었다.

이용완과 하유리. 한국 불새길드의 두 사람은 레온의 저 준비자세가 어떤 기사의 그것과 닮았다는 걸 직감했다.

공기마저 포악스럽게 집어삼키며 빨려 들어가는 무형의 기운. 그것이 ‘위험하다’는 걸 깨닫고 그레이엄이 달려들려는 순간──

신벌 <대지분쇄>

검이 망치처럼 내리친다. 폭발하는 충격파를 가둬두었다 단번에 해방한 것처럼.

-꽈아아아앙!!

피할 수 없는 전방위로 충격파가 터져나갔다.

“크헉···!?”

무형의 전방위 충격파를 피하지 못하고 날아가는 그레이엄. 그가 숨을 토하며 얼얼한 표정으로 레온을 바라봤다.

“무슨 괴물이······!”

그러나 이미 그레이엄을 향해있는 성검의 검 끝. 그레이엄이 얼른 손을 들었다.

“하, 항복입니다.”

“흥···!”

레온은 잽싸게 백기를 든 그레이엄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더니 이내 늙은 노마법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 나도 항복하겠소.”

“패기가 없군. 그 지팡이를 쓴다면 몇 수는 더 버틸 수 있을 텐데.”

“승패가 정해진 싸움을 하기엔 내 나이가 좀 많소이다.”

“나이가 몇이더냐?”

“올해로 칠십을··· 넘었소만?”

“뭐냐, 한창 젊을 때가 아닌가.”

“······.”

새삼스럽지만, 눈앞의 새파란 청년 같은 사내가 사실은 300살 먹은 늙은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오늘 셋을 쓰러뜨렸으니 앞으로 팔십팔 명인가. 감질맛만 나는구나.”

세 명의 S급 헌터들을 그야말로 압도해버린 레온은 아연실색한 관중들을 향해 외쳤다.

“용제 카리나 드라고니아에게 구혼을 청하는 모든 사내들은 들으라!”

레온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구혼자들을 향해 선언했다.

“백 명을 다 채울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시간을 버리는 일이겠지. 누구든지 좋다. 몇 명이 모이든 상관없다! 전부 덤벼라! 이 사자심왕의 진노를 감내할 용기가 있다면!”

안 그래도 힘든 백 명의 챔피언 방어전을, 규칙 따윈 없는 무제한 룰로 바꿔버리는 레온.

그 오연함에 콘월 옹이 말했다.

“사자심왕, 그대가 강한 것은 알고 있지만, 너무 불가한 발언 아니오?”

“불가하다?”

“그렇소. 이곳엔 우리 말고도 세계각국에서 모인 최고의 헌터들이 있소. 그들을 홀로 상대하는 것은──”

“짐에게 불가함을 논하다니. 과연, 젊은이의 패기로구나.”

“······.”

졸지에 젊은이가 된 노신사는 300살 어르신 앞에서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어르신은 그가 다물 수밖에 없는 또다른 이유를 보여주었다.

-콰르릉! 쾅쾅!

마른하늘에 내리닥치는 번개.

-콰아아아아아!

물 한 모금 없는 허공에서 쏟아지는 파도.

-쿠와아아아아!

온 세상을 덮을 것처럼 치솟는 불꽃.

“보아라. 짐처럼 사랑받는 왕에게 불가함이란 없다.”

레온의 성검이 관중석을 향한다. 그것은 선전포고였다.

“누구도! 그 누구도! 이 사자심왕을 넘지 못한 자! 왕족의 사위를 자처할 순 없다! 그 누구도!”

그 꼴을 지켜보던 헌터들은 생각했다.

이러면 퀘스트 못 깨지 않나?


           


Chapter 192

Chapter 192

192화 장인어른이 너무 강함

-카앙!

깡마른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다. 그 다음으로 이어진 건 흙바닥을 긁는 소리다.

"흐읍!"

일본 랭킹 1위. 무소불위의 권력자 카미야 회장이 물러난 이후 새롭게 설립된 일본 헌터협회의 회장 다케다는 낭패감 가득한 신음을 흘렸다.

"이거 생각보다 단단한데?"

다케다는 제 레전더리 별철검이 흔들리는 것을 붙잡으며 큼직한 골렘상을 바라보았다.

용제가 직접 만들었다는 골렘. 구혼 결투의 챔피언 도전에 필요한 티켓팅을 위해 다케다는 골렘에 도전했다.

'강함 그 자체는 별거 아니다. 골렘인만큼 둔하고 별다른 특수능력도 없어.'

하지만 그것을 커버하는 무식한 방어력. 별철 수준은 아니지만, 그 바로 아랫단계의 금속을 통짜로 뭉쳐놓은 것 같다.

"다케다 상! 힘내세요!"

일본 헌터들의 응원에 다케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평범한 S급 헌터라면 고생 좀 했겠지만···!"

다케다의 별철검이 눈부신 광휘에 휩싸였다. 빛과 정의의 여신 아리아나의 신도이자 만신전에 가면 레온도 다케다 경이라고 꼬박꼬박 불러주는 정식 기사다.

성법 <광휘의 칼날>

마(魔)를 가르는 빛의 칼날. 이것이 베지 못할 것은 없다!

-콰직!

골렘의 팔이 잘려 나간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케다의 장검이 화려하게 춤추며 골렘을 난도질했다. 그 연격이 끝날 무렵 장검에 깃든 빛이 서서히 줄어들었지만, 바닥에 남은 건 18개로 잘려 나간 골렘의 조각뿐이었다.

"와아아아!"

"역시 다케다 상! 슷~게!"

"훗, 이 정도쯤이야."

다케다는 챔피언 도전권을 얻은 것에 대한 기쁨 이전에 골렘을 산산조각 내고도 이 하나 나가지 않은 제 별철검을 보았다.

만신전의 오리지널 별철무구는 기사급 작위를 받고 만신전의 신들에게 인정받은 자들만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성능은 철저하게 갈린다. 기본 별철검도 최소 유니크 최상위의 고품질이지만, 별철무구의 진가는 신이 그 무구를 장비한 자를 축복하느냐 마느냐에 갈린다.

믿음 끝에 성법을 사용하고 신들의 축복을 받은 나이트 오브 렐름만이 별철무구의 진정한 힘을 해방할 수 있다.

'대단해. 여신께서 내게 힘을 빌려주시는 게 느껴진다.'

방랑의 마검 사태 이후로 다케다는 완전히 만신전에 빠져버렸다.

일본에서는 만신전 신드롬이라는 현상이 있을 정도로 신도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성법까지 사용하며 신에게 직접 축복을 받은 이들은 드물다.

다케다의 검술 제자들도 십수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다케다 상!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미치다. 너도 한 번 도전해봐야지."

"아뇨아뇨, 저는 무리임다. 이제 겨우 A급 헌터인 걸요."

"하하하, 원래 네 실력만이라면 힘들긴 할 거다. 골렘보다 먼저 나가떨어질 테니까. 하지만 너 또한 여신의 축복을 받은 엄연한 기사 아니냐. 성법의 힘이 있다면 고작 고철 덩어리쯤이야."

"그, 그런가요?"

미치다는 다케다가 고전할 정도로 강력한 골렘의 잔해를 보면서 의아함을 느꼈다. 성법의 힘은 확실히 치트이지만······.

"그나저나 용제의 힘은 대단하군요. 저만한 골렘을 '수백 체'나 만들다니. 진짜 괴물 아닙니까?"

시련의 장. 챔피언의 자리에 도전하기 위해 준비된 용제의 골렘은 한눈에 봐도 수백 체를 넘었다.

최소 A급 헌터 이상인 골렘을 단 한 사람이 만들어내다니··· 그야말로 원맨아미가 아닌가?

"사자심왕 폐하도 그렇고 불카누스 경도 그렇고··· 그쪽 세계 사람들은 대체 뭘 먹었기에 하나같이······."

"수백 년 동안 투쟁의 역사를 쌓아온 신들의 기사들이시다. 우리와는 짬부터 다르다는 거겠지."

그때였다. 시험장을 나가려던 다케다는 입구에서부터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한 도전자를 보았다.

"우리 말고도 또 있··· 폐하?"

""사자심왕 폐하!""

다케다와 일본 헌터들이 레온에게 뛰어가 넙죽 고개를 숙였다.

"역시 무사하셨군요. 폐하께서도 챔피언 도전을··· 위해?"

말하다 보니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다케다. 그걸 언급하기도 전에 레온이 물었다.

"네 녀석도 구혼 결투에 참가하는 작자이냐?"

"예? 아, 퀘스트가 그러하··· 헙!"

레온의 시선을 마주한 다케다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굉장히 못마땅하다는 그런 시선··· 자신이 어디에서 그의 심기를 거스른 걸까?

"골렘을 내와라."

"먼저 골렘에 의해 부상을 입을 경우에 대한 동의서에 사인을──"

"어허! 무슨 말이 그리 많아! 내오라면 내올 것이지!"

절차를 따지는 시험관에게 호통을 치는 레온.

"끄응··· 아무튼 이곳에 찾아온 순간 동의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내 탓 하지 마시오!"

곧 골렘이 레온 앞에 쿵쾅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보다 족히 세 배는 큰 통짜 골렘은 그것만으로 위압감이 있다.

그토록 거대한 골렘이 레온을 내려다보는데도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무생물이라곤 하나, 감히 왕을 내려다보다니. 무엄하다!"

부릅뜬 시선이 거인을 관통한다.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꽈아아아아아앙!!

무언가에 짓눌리는 골렘. 공간이 요동치며 두 발이 맞닿은 땅이 흔들린다.

오직 골렘과 그 주변만을 무언가가 짓누르고 있었다.

[지엄한 신법 제1조 1항! 사자심왕은 만신전을 대리하는 권위를 가진다!]

거인의 형상이 강렬한 태양빛과 열기를 뿜으며 허공에 드러난다. 그가 오른손에 쥐고 있는 것은 거대한 망치요, 그가 왼손에 품고 있는 것은 신성왕국의 법전이다.

그것은 헌법의 그것과는 권위가 다르다. 신들이 인간세계에 내린 지엄한 율법. 그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할 필멸자들의 사명과도 같은 것.

살인하지 말라는 인간의 법은 정당방위나 야만인, 농노 등의 예외가 존재하지만, 신법은 절대적으로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태양과 심판의 타타르.

그 지엄한 율법의 수호자가 사자심왕을 대신해 그 모욕을 심판한다.

성법 <죄목 : 왕족 모독. 판결 : 압사>

망치가 내려진 순간, 골렘의 무릎이 강제로 꿇려진다. 골렘은 한순간을 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얼굴을 처박더니 움푹 파인 크레이터 속에 파묻혔다.

"무, 무슨······."

크레이터 안, 잘게 쪼개진 골렘의 형상이 처참하게 방치된다.

레온은 박살난 골렘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벙쪄버린 시험관에게 다가갔다.

"바로 챔피언에게 도전할 것이다. 자리를 준비하라."

"아, 예! 예예!"

골렘을 파괴하면서 받은 도전권을 바로 사용하는 레온. 그의 시선이 다케다에게 향했다.

"네 녀석도 구혼자더냐?"

"······아뇨."

방금 포기했습니다.

레온이 당연히 챔피언이 될 것을 짐작한 다케다는 깔끔하게 기껏 얻은 도전권을 포기했다.

"현명하구나."

다케다를 향하던 레온의 싸늘한 시선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가 떠나간 자리. 미치다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왜 저러신 걸까요?"

"······아버지란 누구나 저런 거겠지."

"예?"

그에 무슨 소리냐는 듯 휘둥그레한 표정을 짓는 미치다. 다케다는 그가 아직 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 * * *

"······."

"······."

레온이 챔피언으로 나왔다.

이 사실에 헌터들은 잠깐이지만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퀘스트 깨려면 챔피언을 유지해야 하니까.

-레온 폐하라면 거의 확실하게 디펜딩이 가능하겠지.

-이거 용제와 결혼하는 건 정해졌는──응?

용제 카리나 '드라고니아'.

사자심왕 레온 '드라고니아'.

그 공통점을 깨달은 관객들의 시선이 의아해진다. 특히 카리나 드라고니아가 레온의 친딸이라는 걸 아는 이들도 있었기에 더더욱.

-레온 폐하의 수업에서 들은 적 있어! 순결의 신관 카스티야 왕비님 사이에서 낳은 딸 이름이 분명 카리나였다고!

-순결의 신관인데 어떻게 결혼함?

-신전에서 보쌈해서 항의하기도 전에 기정사실부터 만들었대.

-???

다시 말해 레온과 카리나는 친족. 그것도 직계혈족이다.

-어떻게 결혼함? 아버지와 딸인··· 설마 근──

-그럴 리가 있겠냐!

-너 그러다가 왕실 모독죄로 죽어!

어쨌든 친아버지인 이상 레온이 카리나와 혼인할 생각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레온의 목적은 하나로 귀추된다.

"끄응··· 폐하. 설마 구혼자들을 다 쳐낼 생각이십니까?"

결투장의 한가운데에서 레온을 마주한 콘월 옹이 그의 의도를 확인했다.

"왜, 그러면 안 되느냐?"

진짜군. 영국의 은기사 그레이엄 경이 예의를 갖추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어 폐하··· 저희들이 받은 퀘스트는 용제 폐하와 '혼인'하는 것이었습니다만?"

"그래서?"

"누가 됐던 구혼이 성공해야 게이트도 공략하고 빠져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노오오옴!"

레온의 호통이 온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왕족의 중대사를 한낱 미션 따위로 취급하다니!"

"아니, 사실이 그런 걸 어찌······."

"너희들은 결코 나를 넘어서지 못하리라!"

틀렸어. 이 양반, 딸의 구혼 소식에 눈 돌아간 아버지야.

"시간 끌 것 없다! 네놈들 전원 덤벼라! 내 오늘 너희들의 자격을 시험하리라!"

자존심을 건드리는 그 말에 발끈한 건 독일의 S급 헌터 귄터였다.

"사자심왕. 그 명성은 유럽에서도 자자하지만··· 혼자서 우리 셋을 상대하겠다는 건 과용 아닌가?"

옆에서 그레이엄 경이 '될 거 같은데······'라고 말을 흘렸지만, 한 발자국 옆으로 피하는 것으로 그 이상의 의사표현을 멈췄다.

"호오? 네놈, 이름은 뭐지?"

"귄터 노르트. 독일 연방군 대령이오."

"크크큭··· 과연, 전사를 자처할 만한 기개는 있구나."

레온이 외쳤다.

"스탈리온!"

다음 순간, 공간을 찢고 나타나는 하얀 준마. 그 위에 올라탄 사자심왕이 마상창을 들었다.

"허나, 네놈은 결국 왕의 보물을 훔치려 드는 도적일 뿐."

"자랑하는 그 기마돌격이란 녀석인가. 내 한 번 받아내 보지."

"가자, 스탈리온!"

레온이 외치자 스탈리온이 맹수 같은 포효를 터뜨리며 지면을 박차기 시작했다.

"흥··· 말이 낼 수 있는 속력이라봤자."

귄터는 자신의 거대한 방패를 들었다. 어지간한 사람보다도 큰 사각방패. 그것은 독일··· 아니, 유럽 최고의 탱커라는 그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고작 말이다. 헌터의 각력이 말 따위를 능가한다는 건 이젠 상식. 마력도 없는 말 따위가 빨라봤──'

-히힝!

'음? 너무 빠른데?'

양자의 거리가 그렇게 멀었던 건 아니지만, 스탈리온의 돌진하는 기세는 너무나 맹렬하고 사나웠다.

-쾅쾅쾅쾅──!!

이건 말발굽 소리가 아니라 십수 톤의 거대 공룡이 사냥을 위해 달려드는 소리 같은 육중함.

극도로 발전한 하체가 내리치는 지면이 쿵쾅거리며 진동을 일으키고 있다.

'말 따위'라고 하기에는 저 하얀 말의 기세가 끔찍하리만치 거대하다.

그럴 수밖에.

사자심왕과 함께 수백 년 전쟁의 역사를 함께한 맹우인 것이다.

전사로서의 격을 따지면, 지구의 그 어떤 헌터를 내놔도 대등한 이를 찾을 수 없는 전투마.

하물며 옛 피를 각성해 하늘조차 주파하는 신수가 아니던가.

"와, 완벽한 수호!"

그 압도적 존재감이 귄터로 하여금 성급한 스킬사용을 강요했다.

그가 철벽의 존재인 이유. 절대방어로까지 불리는 탱커 스킬 '완벽한 수호'.

체력과 마력으라 소모해 30초 동안 상대의 공격력 90%를 상쇄하는 초유의 치트 스킬.

그는 이것으로 S급 보스의 필살기술조차 막아냈다. 하지만──

"라이온 하트에──죽어라!!"

"······?!"

【 최강 돌격자 】 x 라이온하트 마상창 토너먼트 필살 랜스챠징.

사자심왕의 젊은 시절, 그는 이것으로 수많은 기사들을 쓰러뜨리고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

-꽈──!

충격의 순간, 귄터는 그 소리를 끝까지 듣지도 못했다.

소리보다 더 빨리, 귄터의 몸뚱아리가 저 멀리 튕겨 나간 덕이다.

"어?"

지나치게 강력한 충격에는 비명도 나오지 않는다던가.

손이 으스러진 것 같은 묵직한 충격은 둘째치고 귄터는 자신이 어딘가를 향해 빨려 들어가고 있다 생각했다.

'결투장의 입구?'

귄터의 신형이 계속해서 비행한다. 그것은 자신이 입장했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는 길.

귄터의 여정은 거꾸로 흐른다.

"······."

"······."

구혼 결투에 장외패는 딱히 없지만, 귄터는 명백히 장외패였다.

쾅! 콰쾅!

하고, 들려오는 소리에 그레이엄 경과 콘월 옹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시선을 교차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역린을 건드린 듯하군."

"······선택지가 없지 않습니까."

그레이엄은 귄터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도 포기하지 못했다.

이곳에는 미국과 일본 그 외에도 세계각국의 헌터들이 모여 있다.

영국 헌터의 양대 자존심인 자신과 콘월 옹이 겁먹고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다.

'쪽팔리니까.'

저 사자심왕 상대로라면 덜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나름의 호승심도 있다.

"방금 그거, 순간 가속에 가까웠지만, 대처하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과연, 최속의 기사. 그걸 눈으로 좇았나?"

"저 혼자라면 상대가 안 되겠지만, 콘월 공작께서 지원해주신다면야."

"맡겨주시게."

콘월 옹은 십이환장을 들었다. 그의 마력이 주입되며 에픽 아이템의 힘이 발휘된다.

십이환장 <아홉 번째 마법 : 강화>

열두 개의 대마법을 사용하는 기적의 에픽 아이템 그 아홉 번째 능력은 모든 버프 마법들의 강화.

콘월 옹의 마력 20%를 앗아가는 대신 10초 동안 그가 사용하는 모든 버프 마법들은 세 배의 효과를 발휘한다.

그리고 그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콘월 옹의 고유스킬이 발동한다.

고유스킬 <고속신언>

마법의 발동시간을 극단적으로 감축해주는 자가 버프스킬. 그다음──

"<슈퍼 스트랭스>, <트리플 어택>, <퍼펙트 인비지빌리티>, <매직 워드>, <타임 얼터>, <그레이터 레지스턴스>, <그레이터 매직실드>, <얼티메이트 아머>."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버프 마법들. 하나하나가 최고위 마법사들에게나 가능한 궁극의 버프들이 단 한 사람을 향해 쏟아진다.

본래라면 파티 전원에게 분배되어야 할 궁극의 버프 마법. 그것을 그레이엄 단 한 명에게만 퍼부어진다.

"엄청난 힘··· 그야말로 전능감이 느껴집니다. 무엇이든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요."

"내 마력의 절반 이상을 쏟았네. 지금의 자네라면 S급 헌터를 초월한 수준이지."

"맡겨주십시오."

다음 순간, 그레이엄의 신형이 사라졌다. 스탈리온의 돌격조차 넘어선 초신속.

"호오?"

레온은 말에서 내려 스탈리온의 소환을 해제하고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그레이엄을 훑어봤다.

빠르다.

그 속도는 실로 전광석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달리는 것만으로 결투장이 훼손될 정도로 지면을 밟아대며 레온의 주변을 맴도는 이유는 하나.

'틈을 보인 순간, 최속최강의 일격으로 꿰뚫어주지!'

그레이엄은 체내시간조차 감속되어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레온을 주시했다.

콘월 옹의 버프 마법으로 압도적인 강함을 손에 넣었다곤 하나 사자심왕의 초인적인 강함은 널리 알려진 사실.

방심 따윈 하지 않는다. 사자심왕이 제 속도에 대응하기 전에 확실하게 박살낸다.

'놈에겐 내가 보이지도 않을 거다.'

실제로도 그랬다. 퍼펙트 인비지빌리티로 불가시화한 그레이엄의 모습은 레온에게조차 보이지 않았으니까.

"날파리처럼 왱왱 시끄럽기도 하구나. 짐의 시야에서 벗어나면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느냐."

다음 순간 레온이 성검을 높게 들었다. 검술의 자세라기엔 너무나 단순하고 비효율적인 자세.

그것은 검을 휘두르기보다는 망치를 내리치려는 자세에 가깝다.

"아무리 빠르다 한들, 대지의 여신께서 짐과 함께하시는 이상, 누구도 짐의 허락 없이 땅의 은혜를 벗어날 수 없다."

"허억···!"

숨을 삼킨 것은 관중석의 두 사람이었다.

이용완과 하유리. 한국 불새길드의 두 사람은 레온의 저 준비자세가 어떤 기사의 그것과 닮았다는 걸 직감했다.

공기마저 포악스럽게 집어삼키며 빨려 들어가는 무형의 기운. 그것이 '위험하다'는 걸 깨닫고 그레이엄이 달려들려는 순간──

신벌 <대지분쇄>

검이 망치처럼 내리친다. 폭발하는 충격파를 가둬두었다 단번에 해방한 것처럼.

-꽈아아아앙!!

피할 수 없는 전방위로 충격파가 터져나갔다.

"크헉···!?"

무형의 전방위 충격파를 피하지 못하고 날아가는 그레이엄. 그가 숨을 토하며 얼얼한 표정으로 레온을 바라봤다.

"무슨 괴물이······!"

그러나 이미 그레이엄을 향해있는 성검의 검 끝. 그레이엄이 얼른 손을 들었다.

"하, 항복입니다."

"흥···!"

레온은 잽싸게 백기를 든 그레이엄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더니 이내 늙은 노마법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 나도 항복하겠소."

"패기가 없군. 그 지팡이를 쓴다면 몇 수는 더 버틸 수 있을 텐데."

"승패가 정해진 싸움을 하기엔 내 나이가 좀 많소이다."

"나이가 몇이더냐?"

"올해로 칠십을··· 넘었소만?"

"뭐냐, 한창 젊을 때가 아닌가."

"······."

새삼스럽지만, 눈앞의 새파란 청년 같은 사내가 사실은 300살 먹은 늙은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오늘 셋을 쓰러뜨렸으니 앞으로 팔십팔 명인가. 감질맛만 나는구나."

세 명의 S급 헌터들을 그야말로 압도해버린 레온은 아연실색한 관중들을 향해 외쳤다.

"용제 카리나 드라고니아에게 구혼을 청하는 모든 사내들은 들으라!"

레온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구혼자들을 향해 선언했다.

"백 명을 다 채울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시간을 버리는 일이겠지. 누구든지 좋다. 몇 명이 모이든 상관없다! 전부 덤벼라! 이 사자심왕의 진노를 감내할 용기가 있다면!"

안 그래도 힘든 백 명의 챔피언 방어전을, 규칙 따윈 없는 무제한 룰로 바꿔버리는 레온.

그 오연함에 콘월 옹이 말했다.

"사자심왕, 그대가 강한 것은 알고 있지만, 너무 불가한 발언 아니오?"

"불가하다?"

"그렇소. 이곳엔 우리 말고도 세계각국에서 모인 최고의 헌터들이 있소. 그들을 홀로 상대하는 것은──"

"짐에게 불가함을 논하다니. 과연, 젊은이의 패기로구나."

"······."

졸지에 젊은이가 된 노신사는 300살 어르신 앞에서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어르신은 그가 다물 수밖에 없는 또다른 이유를 보여주었다.

-콰르릉! 쾅쾅!

마른하늘에 내리닥치는 번개.

-콰아아아아아!

물 한 모금 없는 허공에서 쏟아지는 파도.

-쿠와아아아아!

온 세상을 덮을 것처럼 치솟는 불꽃.

"보아라. 짐처럼 사랑받는 왕에게 불가함이란 없다."

레온의 성검이 관중석을 향한다. 그것은 선전포고였다.

"누구도! 그 누구도! 이 사자심왕을 넘지 못한 자! 왕족의 사위를 자처할 순 없다! 그 누구도!"

그 꼴을 지켜보던 헌터들은 생각했다.

이러면 퀘스트 못 깨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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