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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2

191. 약혼관계 – 꿈

“그럼 다들 수고하게.”

레오가 무기고에서 나왔다. 경례하는 병사들에게 “부족한 물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게. 보급관에게 이야기해두겠네.” 말하여 안심시키곤 성벽을 올랐다.

레오는 근무 중이었다.

빳빳한 붉은색 제복 차림. 성벽 위에서 보초를 서던 병사들은 차례차례 경례를 올렸고, 레오는 절제된 동작으로 받아주었다. 성벽을 한 바퀴 돌며 병사들의 근무 태도와 복장을 점검하였다.

사뭇 진중한 태도였다.

신참 기사인 만큼 어리버리, 군대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헤매야 할 것이었으나, 레오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되려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을 보여 에이브릴 성의 병사들은 “기대했는데, 재미없다.”라는 평을 주고받았다.

신참 기사가 사고를 치는 건 병사들에게 즐거운 안줏거리다.

전시가 아닌 이상에야 사실 병영 내에서 터질 수 있는 사고들은 모두 사소한 헤프닝에 불과했고, 경험 많은 병사들은 이를 알고 있었다.

해서 근 일주일간 그들의 시선은 레오 덱스터라는 어린 기사에게 쏠려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기사가 건방을 떨다 망신을 당할 것인지 아니면 지나치게 수줍어 상관으로서의 체면을 지키지 못하고 의기소침해질 것인지가 무료한 군 생활을 보내는 병사들에겐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그는 둘 중 어떤 경우에도 속하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아는 것이 많기도 했거니와, 모르는 게 있으면 당당하게 밝혔다. 에이브릴 성의 병사들은 그 당돌한 어린 기사님의 매력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이봐! 거기 준기사들! 식후에 태우는 연초가 몸에 좋다는 건 알지만 자네들은 기사가 될 사람들일세! 그런 냄새를 풍겼다간 아리따운 영애께서 달아나버리실걸?”

레오가 성벽 아래로 소리쳤다. 태만한 준기사들은 후닥닥 연초를 짓밟곤 줄행랑쳤다.

“기사님도 식사하셔야지요.”

“그래야지.”

병사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고개를 끄덕인 레오는 병사들이 근무 교대하는 걸 확인하고 연병장을 향했다.

연병장에는 식사를 마친 병사들이 몰려 있었다. 한창 교육이 진행되는 중이라 레오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크게 돌았고, 연병장 한쪽에 세워진 숙소 앞에 있던 준기사들이 경계를 올렸다.

“충성!”

풋.

레오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재빨리 돌아서서 경례하는 준기사들 중에는 레나가 섞여 있었다.

“그래. 다들 수고가 많다. 레나 아이나르는 이리 오도록.”

“…네.”

그는 최대한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하지만 숙소에 들어서면서 남들의 시선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빙긋 뒤돌아섰다.

“레나.”

그런데 레나는 영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다. 입을 삐죽 내밀곤 볼멘소리를 뱉었다.

“왜 불렀어? 나 부르지 말라니깐.”

레나는 준기사가 됐다.

본인도 테스트를 보겠노라 호기롭게 나섰지만, 시나리오가 시작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그녀는 약했다.

레오의 실력에 놀라 바짝 긴장한 기사의 상대가 될 리 만무했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이겨보겠다고 분투한 덕분에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준기사는 될 수 있겠군요. 아직 미숙한 점이 많지만, 나이를 감안했을 때 훌륭합니다.”

“준기사도 좋아요!”

굳이 따지자면 멍청한 선택이다. 노엘 아저씨한테서 검술을 계속 사사하는 게 훨씬 이득일 것이었으나, 레나는 준기사 직함이라도 달아서 기사가 된 레오를 따라잡고 싶었다.

다행히 영주님께선 나를 준기사로 만들어 주셨다. 준기사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직책이 아니어서 운이 좋았다고 해야겠지만, 작은 불운이 따랐다.

“어허. 그게 종자가 기사에게 할 말버릇인가?”

울컥. 레나의 미간으로 혈압이 쏠렸다. 어쩐지 능글능글해진 약혼자를 한껏 쏘아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네네. 죄송하네요. 왜 부르셨어요?”

하필이면 레오의 종자로 붙여줄 건 또 뭐람. 마침 생겨난 기사에게 때마침 나타난 준기사를 붙여준 게 이상할 것은 아니었으나 레나는 무척 불만이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낫지…

“그냥 뭐… 잠깐 쉬려고 들렸는데, 종자님 노랫가락이나 한번 들…”

“죽고 싶냐?”

“어허허. 기사님께 죽고 싶냐니. 그게 무슨 망발…”

“집에서 죽인다. 진짜.”

레나가 쌍심지를 켜자 얼굴을 씰룩거리던 레오는 기어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알았어. 미안해. 그만할게. 나 밥 먹으러 왔어. 아직 안 먹었지?”

“난 먹었는데?”

“뭐? 아니! 좀 기다렸다가 같이 먹자니깐. 그리고 밥은 원래 종자가 챙겨주는 거야.”

“기사는 뭐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네가 직접 식당에 가서 받아먹어.”

사실은 안 먹었다.

레오가 밥을 같이 먹자며 보챈 게 벌써 일주일째다. 해서 오늘은 일부러 먹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괜한 심통이 나는 것이었다. 레나는 레오가 시무룩해진 모습을 보고서야 마음을 풀었다.

“농담이야. 나도 안 먹었어. 같이 가서 먹자.”

레오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레나.”

그는 복도에 보는 사람이 없는지 둘러보고는 손을 잡았다. 깍지끼고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터진 손등을 문지르다 입을 열었다.

“준기사, 안 힘들어?”

“내가 힘들 게 뭐가 있어. 나야 아~주 좋은 기사님 만나서 하는 일도 없는걸. 그보다 밥 먹으러 안 가? 왜 이러는 거야?”

“너 보려고.”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한 대꾸.

레오가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았고, 레나의 목덜미가 붉게 물들었다. 깍지낀 손을 쏙 빼내곤 팔짱을 꼈지만, 레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을 따라 그녀의 뺨과 코, 이마, 눈두덩이가 차례로 달아올랐다.

“또 왜… 왜 이래, 징그럽게.”

그녀는 최근 들어 심해진 레오의 애정표현이 낯설지만, 싫지 않았다. 다만 다소 격식을 차리던 레오가 요즘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레오가 내게 무슨 짓(?)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그런 거면 얘가 드디어 발정이 났구나 이해하겠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저 아련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만해.”

레오는 한 번 이러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묘하게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에 낯부끄럽지만 레나는 단호하게 대처했다. 그의 코를 붙잡고 대차게 흔들었다.

“아야!”

“그만하라고 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영주성 구석에 나와 있었다. 우리의 관계를 알 사람은 알겠지만, 티를 낼 생각은 없어서 식당에서 받아온 음식을 숨어서 나눠 먹었다.

배가 많이 고팠는지 빵을 우걱우걱, 쉴 틈 없이 밀어 넣는 레오를 보며 레나는 심란했던 기분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레오와 함께 기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조급했다.

하지만 레오가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는데, 조금 늦어지는 게 뭐 그리 대수냐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레오를 따라잡을 거고, 레오는 기다려 줄 텐데…

“레오. 너 뭐 흘렸다.”

레오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 혼자 심각해져서 그를 일주일이나 방치한 게 미안하다.

레나가 접근했다. 제 옷 어디에 음식이 흘렀나 내려다보는 레오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 * *

그 이후로 레오는 레오대로, 레나는 레나대로 바빴다.

누가 더 바빴냐를 굳이 따진다면 레나가 훨씬 바빴는데, 이는 준기사들의 숙명이었다.

마법사가 등장하면서 준기사들의 업무에 변화가 있었던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종자로서 기사를 보필하는 데만 충실하면 됐던 과거와는 달랐다. 기사가 전장에 짝을 이루어 스며드는 방식이 정착되었고, 그 때문에 기사의 무장(武裝, 전투에 필요한 장비)이 단출해졌다.

더는 말을 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매일매일 손질해야 하는 갑옷의 필요성도 크게 떨어졌기에 준기사는 할 일이 많지 않았다. 기사가 전장에 나가고 나면 진지에 덩그러니 남기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준기사씩이나 되는 고급 인력을 놀릴 만큼 전장이 여유롭지는 않다. 해서 준기사들에겐 장군을 호위한다거나 분대를 이끄는 등의 업무가 부과되었는데,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의 교육이 필요했다.

이는 준기사들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기사가 되지 못한 준기사는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행정기사가 되어 기사단에 눌러앉을 수 있다면 좋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대부분의 준기사는 병사가 되었다. 그래서 준기사일 적에 지휘술을 배워두는 건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물론 레나야 그렇게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반쯤은 의무적으로 교육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훈련 시간을 빼앗겼다고 느낀 레나는 더욱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고, 레오는 퇴근한 이후, 집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짜식이. 텃세를 부리길래 가랑이를 걷어차 줬지. 웃기지 않아? 지가 나보다 먼저 준기사가 됐는데, 나더러 뭐 어쩌라고.”

가죽 갑옷을 벗어 화장대에 올려둔 레나가 침대에 벌러덩 쓰러졌다. 고단했는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누워 기지개를 켜는 것이었다. 레오는 침대가에 앉아 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돼? 그래도 최대한 좋게 지내야지.”

“아- 나도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보자 보자 하니깐 끝이 없드라구. 제가 해야 할 일을 나한테 넘기려 들고.”

레나가 돌아누웠다.

레오를 향해 몸을 세우는가 싶더니 아예 허벅지를 베고 눕는 걸 봐서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게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솔직히 텃세를 부리면 내가 부려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감히 나한테 텃세야? 확 그냥, 친구들 불러서 밤길에 묻어버릴라.”

조금 과격하지만 못할 것도 없었다.

에이브릴 성이 왕의 직할령이기에 여길 지키는 병사들, 준기사들은 이곳의 토박이가 아니라 수도에서 파병 온 이들이었다.

앞으로 석 달 뒤쯤이면 돌아갈 사람들이기도 하였는데, 매년 겨울이 끝날 무렵에 수도 바르나울에서 교대 병력이 도착하기 때문이었다.

반면 레나는 여기서 태어난 토박이다. 에이브릴 성의 주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이나르 부족에서 인기가 좋았고, 대전사의 딸이었다.

이번 회차에서는 준기사가 되는 바람에 사냥을 다녀오지 않아 전사가 되지 못했지만, 그런다고 그녀의 입지가 줄어든 건 아니었다.

정말로 레나가 못된 마음을 먹는다면 외부인 하나쯤은 쓱싹 묻어버릴 수도 있었다. 옛날 내전 당시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기도 했고, 고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달아나는 준기사가 제법 있기에 하나쯤 사라진다 해서 문제 될 것 같지 않았다.

레나는 제가 말해놓고는 “…어? 괜찮은데?” 궁리하는 기색이었다. 어이가 없어진 레오가 그녀의 이마를 찰싹! 때렸다.

“아야! 왜 때려.”

“사람 죽일 궁리나 하고 있으니까 때리지. 정말 뭣하면 내가 도와줄까? 내가 한마디 해 줘?”

레나가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러길 잠시, “됐거든.” 단답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베개를 찾더니 돌아누웠다.

“네 일이나 잘해. 너도 요즘 시끄럽더만.”

레오는 어깨를 으쓱였다. 침대에 올라 다리를 꼬아 앉고는 레나를 하염없이 내려다보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

그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기임을 알고 있었다. 겨울이 채 가시기 전에 {전쟁}이 터질 것이고, 그때부터는 여유가 없었다. 그도 그때는 사람 죽일 궁리를 해야만 했다.

이런 하루하루가 계속되기를 간절히 빌었으나 야속하게도 날씨는 계속해서 따뜻해졌다. 대륙에서 바다로 불어 나가는 ‘날넋바람’이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레오가 레나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었다.

“하지 마.” 말하는 그녀의 귓불을 만지작거렸고, 못 이기겠다는 듯이 말문을 연 레나와 한참을 떠들다 제 방으로 돌아갔다.

기분이 풀린 레나는 입을 삐죽였다. 같이 자자고 할 걸 그랬나? 아쉬워하다가 이내 자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즉시 잠이 들었다.

[ 업적 : 사진 스무 장 – 레나가 종종 꿈으로 과거를 미약하게 기억해냅니다. ]

하지만 꿈은 꾸지 않았다. 그녀는 악몽이든 길몽이든, 꿈을 꿔 본 적이 없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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