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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3

193화 아버지와 딸

“잘도 그런 실력으로 짐의 사위를 자처하는 게냐!”

인도네시아의 S급 헌터 조코가 당했다. 사람이 구름보다 높게 날아갈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은 처음 알았다.

“이노오오옴! 이 정도도 못 버텨서 어찌 내 딸과 결혼하겠다는 거야!”

호주의 S급 헌터 제리 맥도웰도 박살 났다. 그는 유독 심하게 얻어터졌는데, 아마 경기장에서 ‘장인어른!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라고 해서일 것이다.

“이용완, 네 이노오오옴!!”

“기, 기권하고 싶다.”

“다른 헌터들한테 도전은 했다고 시늉은 해야 할 거 아니야······.”

한국 불새길드의 S급 헌터 이용완 또한 그 도전자 중 한 명이었다. 이미 도전권을 획득한 뒤라 물릴 수도 없었고.

“폐, 폐하! 잠깐! 좀! 살살!”

“천한 짤쟁이가 어딜 넘보느냐!”

원거리 혐오라서 그런가 레온한테 얻어맞는 것이 더 아프고 서러운 이용완이었다.

그렇게 스물일곱 번째 도전자도 처참히 패배하고 돌아가는 길. 그들은 한숨을 쉬며서로를 바라봤다.

“안 될 거 같은데?”

“그럴 거 같음.”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다들 말하지만, 이게 정말 되는가 싶었다.

* * * *

레온이 챔피언에 자리에 올라 압도적인 디펜스 성적을 낸 것도 벌써 열흘하고도 사흘이 지났다.

“예, 예에~ 챔피언님, 부족하신 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씀만 주십시오. 저희가 모두 준비하겠습니다.”

“목욕물이나 준비하라.”

특히 역대 챔피언 중에서 유례없이 구혼자들을 압도하고 ‘구혼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레온쯤 되면 웃돈이라도 얹어서 데려올 귀인이다.

물론 레온에게 친딸과 혼인한다는 망측한 짓거리는 있을 수 없지만.

“흥.”

레온은 구혼자들을 한껏 두들겨 놓고서 방안에서 휴식하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한 노인이 다가왔다.

“레온 라이온하트 되십니까?”

드라고니아를 빼놓고 말하는 그에게 레온은 눈을 부라렸다. 그 지엄한 시선에 노인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용제 폐하의 존함을 함부로 언급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노인. 황궁의 시종장을 맡은 그는 굽실거리며 레온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 애썼다.

황궁의 시종잠쯤 되면 어지간한 고위귀족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상대지만, 노인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자가 황제폐하의 아버지를 자처하는 자라는 걸 고려해야 했다.

무엇보다 그 자신의 초인적인 힘만으로도 레온은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였고.

“흥, 충성은 네가 모시는 이에게 우선되는 것은 옳다. 어린 나이에 그 정도 이치는 알고 있어 다행이다.”

“······.”

올해로 손주의 아카데미 입학을 바라보는 시종장은 눈앞의 20대 같은 청년에게 미묘한 괴리감을 느꼈다.

하긴, 황제폐하도 올해로 춘추가 이백 살이 넘지 않던가. 눈앞의 사내는 그런 폐하보다도 어려 보였지만, 그가 정말로 폐하의 아버지라면 그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다.

“카리나가 짐을 만나고자 하더냐.”

“······! 그, 그렇사옵니다!”

황제의 존함을 부르는 행위에 기겁한 시종장이었지만, 그는 명받은 것을 따를 뿐이다.

“가지. 내 언제 불러줄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인내심이 생각보다 부족한 모양이야.”

“모, 모시겠습니다.”

레온은 시종장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제 군주가 가벼이 불렸는데, 어찌 단검이라도 뽑지 않을꼬.

라이온하트에서 사자심왕이 함부로 대해졌다면 그 밑의 기사들이 그자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간 제대로 된 신앙이 없는 자들이란.’

왕의 권위는 곧 신이 내려주는 것. 그것을 존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천것들의 가벼움은 교육과 교화를 통해 개선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못마땅한 시종장의 안내를 받아 준비된 마차. 레온은 그 마차를 보며 혀를 찼다.

“어찌 마차가 이리 천박할꼬.”

마차는 화려한 보석과 금테로 장식되어 있었다. 물론 고위귀족의 마차라 하면 평민들의 것과 비교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것이 왕족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이건 좀 과하다 싶었다. 하지만 레온은 참았다. 황궁에 도착할 때까지도. 황궁에서 그를 위해 배정된 방에 들어갈 때도.

“······.”

화려하다. 입구에서부터 오직 한 사람만 걷는 것이 허용된 어로(御路)는 새하얀 대리석에 녹인 금으로 장식된 길이었고, 처맛길부터 태피스트리에, 미술품까지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방 또한 그야말로 최고급. 호사스러울 정도로 돈을 쓴 티가 팍팍 난다.

“쯧.”

“마음에 안 드십니까?”

“사치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행태다. 그저 비싸기만 한 보석과 금으로 화려함만을 꾸몄어. 귀족이 아니라 귀족을 흉내 내는 벼락부자들의 취향이야.”

레온은 처음부터 이 방 안에 있었던, 레온을 기다리고 있던 검은머리의 여인을 보았다.

카리나 드라고니아.

드라고니아의 적법한 대공이자 이 세계에서 용제라 불리는 황권의 주인.

200년 전 잃어버린 자신의 딸.

레온은 자신을 닮은 푸른 눈과 그녀를 닮은 검은 머리카락을 번갈아 보았다.

“못 본 사이에 취향이 고약해졌구나.”

“나이가 드니 반짝이는 것에 눈길이 가더군요.”

“황금의 저주를 잊지 말아라. 아니, 이미 그 저주에 걸렸느냐?”

“······.”

카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레온도 그것이 대답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고.

그는 스스로 꺼낸 주제를 돌렸다.

“제국을 둘러보았다. 꽤나 발전했더구나. 평민들은 배고픔을 모르고 귀족들은 그럭저럭 의무에 충실해. 신들의 도움 없이 꽤 볼만한 나라를 만들었더구나.”

“절대권력이란 절대무력이 존재하면 어떻게든 성립하는 법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죠.”

“그래. 뭐, 그런 건 됐고.”

그리고 양팔을 벌렸다.

“이리 오너라. 안아보자꾸나.”

카리나는 말없이 레온에게 다가갔다. 레온은 그녀가 품에 안기기 쉽게 더욱 크게 양팔을 벌렸고.

하지만 카리나는 레온의 품에 안기지 않았다. 그저 정면에서 마주 볼 뿐. 그것은 마치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만두십시오.”

“무엇을?”

“구혼자들을 쳐내는 것 말입니다.”

레온은 기껏 벌린 양팔을 풀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아비가 되어 사위를 고르는 것이 무엇이 나빠.”

“이는 중대한 국책사업입니다. 차기 황위를 위한, 적절한 씨앗을 확보하는 국책이죠.”

“······짐은 네가 사랑으로 혼인하길 바란다. 짐과 네 어미가 그랬듯.”

“폐하, 둘 중 하나만 하시지요.”

카리나의 시선이 레온을 향했다. 그녀의 시선은 무미건조하다.

“왕국의 톱니바퀴든, 따뜻한 가정의 가장이든. 폐하께서는 이미 선택하셨습니다.”

레온은 이미 선택을 했다. 아내보다 왕국을 선택했다.

“당신의 선택은 지극히 옳습니다. 그렇기에, 본 황제의 국책 또한 지극히 옳소.”

그녀가 드라고니아 대공이 아닌, 사자심왕의 혈족이 아닌, 드라고니아 제국의 황제로서 내린 결론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네가 그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이는 게 아니지 않느냐.”

“······.”

레온의 지적에 카리나는 침묵했다. 이에 레온이 말을 이었다.

“네가 구혼자들을 급히 찾는 이유. 짐이 모를 것 같으냐. 짐은 너의 선대 드라고니아 대공이었느니라.”

“그래서. 사자심왕께선 어쩌실 생각이시오.”

“아비와 그 짐을 나누자꾸나. 선대 대공들께서는 이러한 일을 언제나 대비하셨다.”

“거절하지.”

카리나는 레온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녀는 매몰차게 등을 돌려 방문을 열었다.

“그만두시오. 이곳은 당신의 왕국이 아니오. 본인의 제국이지. 이 땅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짐의 책임이고 적법함을 따져 묻는 것도 짐의 책무요.”

“카리나···!”

레온의 외침에 그녀가 멈춰 섰다. 너무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끝이 좋지 못했던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매일같이 그것을 후회 속에서 되새겼기에, 레온은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말했다.

“나는 카스티야와 사랑으로 너를 낳았다. 나는 네가, 별처럼 빛나는 사랑을 하길 원한다. 그것이 네 아버지로서 나의 책무다.”

나는 나의 책무를 저 버러지 않을 것이다.

* * * *

“화, 황제폐하!”

카리나를 발견하고 다급히 고개를 숙이는 시녀와 시종들을 지나친다.

카리나는 자신의 집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어떤 한마디도 없이 묵묵히 걸어왔다.

[크크크큭, 정말이지 눈물겨운 부성애와 효심이로군.]

내부에서 울리는 웅혼한 목소리. 그 비웃음에 카리나의 미간이 좁혀졌다.

“시끄럽다.”

[이백 년 만에 만난 아비지 않더냐. 너희 난쟁이들에겐 긴 시간일 텐데.]

좀 더 부녀의 재회를 즐기지 않고?

카리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말했듯이 카리나는 레온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때의 그 선택에 그름이 없다는 것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 이것은 다른 것이다.

[하지만 대단하군. 그토록 많은 악종 놈들의 군세를 결국 이겨냈다는 것인가. 그 지혜의 군주란 놈은 보통 놈이 아니었는데 말이지. 의외로 그 전쟁은 깡통 놈들이 이길 수 있는 전쟁이었을지도 모르겠어.]

“아니, 그건 아니다.”

[흐음?]

카리나는 누구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허공에 맺힌 스산한 검은 기운은 마치 고개를 기웃거리는 듯했다.

“사자심왕의 심장에 만신전이 있다. 신들의 영핵이 모여있다는 소리지.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피난처였을 것이다.”

[호오, 이거 참··· 그렇군. 그 같잖은 것들이 영락하긴 했구나. 그토록 웅장한 신전을 버리고 비좁은 심장 속에 파고들어 생존을 도모하다니.]

검은 것의 목소리에는 유쾌함마저 담겨 있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 신들과 경쟁하며 세계의 패권을 두고 다툰 그이기에 경쟁자의 몰락은 유쾌할 수밖에.

[카리나, 너는 그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것이 네 유일한 살길이었는데 말이야.]

“내게도 충분히 네놈을 감내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네 시조조차 나를 감내하지 못해 제 자식에게 떠넘겼거늘, 여전히 난쟁이들은 제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는군.]

검은, ‘용의 형상’을 한 그림자는 카리나를 비웃었다. 참으로 눈물겨운 부성애와 효심이라고 할까?

[어찌 됐든 달라지는 건 없어. 너희들은 신비를 살해한 책임을 치러야만 해. 나의 저주는 너희들의 혈족이 멸해질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며 너희들이 그 심장을 잃는 순간, 필멸자들의 재앙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되지 않을 거다.”

[그럼 어찌할 거지? 네겐 시간이 많지 않다. 그리고 저 사자심왕에게 대적할 수 있는 강자는 이 세계에 나 외에는 없어.]

“아니, 한 명 있다.”

* * * *

한편 국제 헌터 연합군은 수도 내의 숙소를 잡아 그곳에서 대책회의 중이었다.

“미스터 리! 여기야!”

이용완을 반긴 건 미국 매버릭 길드의 S급 헌터 알렌 테일러였다.

“테일러 씨. 미니트맨은요?”

“그 친구는 숙박비 벌러 바깥에. 미스 하 양도 같이 간 거 아니었어?”

“유, 유리도요?”

“오우~ 누군가는 숙박비를 벌어야 하니까.”

수천 명의 국제 헌터연합군이 수도로 모였다. 당연히 그들이 먹고 자는 데 필요한 경비가 있었고, 그것은 헌터들이 드라고니아 제국으로부터 일거리를 받아 충당하고 있었다.

퀘스트를 깨기 위한 구혼 결투가 끝날 때까지는 이런 식으로라도 거주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그나저나 큰일이구만. 구혼 결투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사자심왕께서 떡하니 버티고 계시니까요.”

문제는 용제에게 구혼하기 위한 길목에 레온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십수 명의 S급 헌터들이 도전했지만, 처참히 깨져 전의를 상실했다.

“다구리라면 모를까 일대일로 그 사자심왕을 어떻게 해볼 수는 없을 겁니다.”

“정말이지 동감이야. 여기 세계 최고의 헌터들이 우글거리는데도 사자심왕에겐 터럭 하나 상처 입히지 못했으니.”

이용완은 일전 제주도 게이트에서 마주쳤던 녹색의 성배기사를 떠올렸다.

성배기사 게오브릭.

그 괴물 기사 또한 4명의 S급 헌터들이 협공했음에도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지 않았나.

사자심왕과 그래도 한 번 붙어볼 만한 이를 손꼽자면 적어도 그 정도급은 되어야 할 것이다.

‘될 리가 없지. 그 성배기사들이 죄 사자심왕 그 양반 부하들인데.’

마술사 여왕 베아트리체.

킬링머신 야크트 스피너.

도살자 불카누스.

만신전의 무시무시함은 레온 단 한 명의 힘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부하들조차 하나 같이 괴랄한 스펙을 가진 괴물 중의 괴물들.

규격 외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그들은 신이라는 상식을 초월한 존재를 배후로 두고 있다.

“그럼 슬슬 출발하자고.”

“결투장 말입니까? 오늘은 우리 쪽에서 선수가 안 나갈 텐데요?”

“뭐, 이 세계에도 다른 강자가 있을지도 모르지. 싸움 구경은 그 자체만으로 재밌는 법이잖아.”

알렌 테일러도 다다음 순번이었던가. 그는 라크샤르 전 이후 꽤나 혹독하게 자신을 단련했다고 들었다.

그는 자신보다 아득히 강한 강자의 싸움에서 무언가를 배우려는 듯 들떠 있었다.

‘뭐, 사자심왕 앞에선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이용완은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오늘로 45번째 구혼자였나.

이대로 가면 백번째가 와도 레온이 무난하게 승리하겠지.

“내가 누구인가!”

쩌렁쩌렁 울리는 웅혼한 목소리.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 인정할 수 없을 만한 성량이 경기장을 뜨겁게 달궜다.

[[도살자!]]

[[참수기사!]]

[[이교도 학살자!]]

“어어?”

뭐야. 왜?

“내가 누구인가──!!”

[[신벌의 대행자!]]

[[파멸의 전쟁기수!]]

-쿵! 쿵! 쿵! 쿵!

경기장을 아득히 메우는 열렬한 목소리. 그것에 잔뜩 취해 양팔을 거수하는 갑옷 덩어리는 마치 프로레슬링의 인기 빌런 같다.

[아아! 이 열렬한 반응! 과연, 이해가 될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 용제 폐하께서 제작하신 골렘을 한 체도 아니고 백체를 일격으로 쓸어버렸다는 괴인이 오늘 챔피언에게 도전권을 내밀었다! 그 이름은 바로──]

붉은 갑주의 사내가 두 자루의 성검을 뽑는다. 상서로운 기운과 폭력적인 기운이 공존하는 타오르는 성검은 마치 이 사내의 흉폭함을 대변하는 듯 하다.

[──불카~~~~~~누스!!!!]

여기서 댁이 왜 나와?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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