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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5

194. 약혼관계 – 전장

“저기 있다.”

레오가 손가락질했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적군 십여 명이 숨어있었고, 레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첫 출전이다. 전장에 나와보기도 처음이지만, 누굴 죽이기 위해 검을 들어보기도 처음이었다. 레나는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다스렸다.

이제껏 검술을 훈련한 건 이 순간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난 할 수 있다, 레나 아이나르. 쫄지 말자.

“가자.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너무 무리하진 말고.”

마음을 다잡는데, 레오가 평이한 말투로 등을 떠밀어주었다.

저건 별것이 아니며, 네가 할 수 있다는 걸 확신하는 말투여서 불안감이 다소 잦아들었다. 검을 움켜쥔 레나는 레오와 함께 수풀에서 뛰쳐나왔다.

“기사다!”

경계를 서던 병사가 외쳤다.

그 외침과 동시에 열 명의 병사들이 우르르 방어대형을 갖췄고, 한 병사가 반대 방향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전령이다.

마음이 급해진 레나는 곁에 있는 레오를 힐끔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레오는 여전히 태평한 얼굴이었다. 시선을 눈치채곤 빙긋 웃었는데, 레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레오에게 못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시선을 바로 하였다.

“레나, 내가 앞장설게.”

– 저벅.

레오는 어떤 긴장감도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병사들의 지척에 이르러서야 검을 뽑았고, 레나는 분위기가 반전되었음을 알아차렸다.

눈앞의 병사들이 만만해 보인다. 레오가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저 방어대형을 어떻게 깨뜨리지? 무작정 달려들어야 하나? 걱정이었는데, 이젠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레오의 {합격술}이 그녀가 향할 방향을 정해주었다.

– 콰직!

레오가 휘두른 검에 가장 전방에 나섰던 병사의 방패가 산산조각이 났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병사들이 와르르 달려들었지만, 레오의 차분한 동작에는 변화가 없었다.

옆 사람의 검을 쳐내며 벤다. 뒤에서 달려드는 병사에겐 돌려차기를 날렸는데, 때마침 날아든 화살까지 툭, 같이 걷어차 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회전 베기가 걷어차인 병사를 마무리했다.

레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합격술}이 일러준 방향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된다.

레나는 저 싸움에 자신이 끼어들 필요가 없음을 알아차렸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레오는 털끝만큼도 상처 입지 않을 것이다.

“레나, 뭐 해? 여기 좀 맡아줘.”

“…으, 응.”

레오가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그냥 돌아서서 베면 되었을 걸 굳이 미적거렸고, 레나는 그제야 병사 한 명과 맞닥뜨릴 수 있었다.

“흐… 흐으으…”

하지만 그렇게 양보받은 적군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뚜벅뚜벅 걸어와 동료들을 파리 잡듯이 때려죽이는 기사에게 겁먹었는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레나는 그 병사를 정말 간단하게 죽였다. 전의를 잃은 검을 쳐내곤, 발버둥 치는 상대의 가슴에 칼을 박아넣었다.

첫 살인. 검사로서 맞이한 첫 수확이 고작 이런 것이라니.

레나는 허무함을 느꼈다. 사람을 죽이면 죄책감을 느끼겠지. ─ 각오해두었는데, 그런 것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 허무함은 레나가 고개를 들었을 때 배가되었다. 레오가 남은 다섯 명의 병사를 문자 그대로 ‘가지고 놀고’ 있었다. 다친 사냥감을 죽이지 않고 남겨둔 어미 새처럼 레나를 돌아보며

– 얼른 와서 싸워. 그리고 성장해.

떠먹여 주는 것이었다.

자존심이 엄청나게 상한다. 하지만 이것도 각오한 일이었으므로 레나가 달려들었다.

기사가 된 레오가 함께 짝을 이뤄 전장에 파고들자는 말을 했을 때, 레나는 화를 냈다. 그런 걸 왜 멋대로 정했느냐 따졌지만, 레오는 이건 네게도 좋은 기회라고 반박했다.

“어차피 준기사는 전장에 못 나가. 기껏해야 장군이나 천인장의 호위를 서게 될 거야. 그러고 싶어?”

전장에 나가야 경험도 쌓고, 공을 세우지. ─ 이게 레오가 하는 주장의 요지였고, 레나 또한 이에 동의하였다.

다만, 레오가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몰랐다. 일대일 대련과 달리 여럿에게 둘러싸이면 도와줄 일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난 대체 뭘…

‘…애처럼 굴지 말자.’

눈을 질끈 감았던 레나가 검을 다잡았다. 비록 겁에 질린 적일지언정 성실하게 상대했고, 덕분에 조금 과감한 검술을 시험해볼 수 있었다.

역시 노엘 아저씨의 검술은 내게 조금 안 맞는다. 한 합을 숨기는 것까지는 좋은데, 지나치게 수비적으로 운용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이 검술을 내 입맛에 맞게 바꿔보는 거야. 그러다 보면 나만의 검술을 완성할 수 있겠지. 그럼 언젠가는…’

마지막 병사를 마무리한 레나가 레오를 돌아보았다.

이제 다른 분대가 몰려들기 전에 몸을 숨겨야 할 텐데, 레오는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뭘 잃어버렸는지, 아니면 사주를 경계하는지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레오? 우리 이제 숨어야지.”

“으, 응. 그러자.”

레오는 레나의 손에 이끌려 수풀에 들어가면서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눈동자가 어째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레오가 멈춰서서 말했다.

“레나. 그.. 음… 우리 저쪽으로 가 볼래? 은신처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도 안 좋으니까, 이쯤에서 새로 구하자.”

“엥? 그걸 꼭 지금 해야겠어? 좀 쉬었다가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봄이라 수풀이 제법 돋아났지만, 녹림이 우거지는 여름만큼 몸을 숨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하늘에 뜬 구름과 적의 시선을 피해서 관목과 관목 사이를 뛰어다녀야 했다.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특히나 이렇게 분대 하나를 습격한 직후라면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레오는 뜻을 굽힐 마음이 없어 보였다. 굉장히 초조해 보이기까지 해서 레나는 ‘이게 그렇게 급한 일인가?’ 생각하며 자리를 옮기는 데 동의했다.

“어?”

“쉿!”

숲속 능선을 따라 한참 걸어가던 레나가 뭔가를 발견했다. 저쪽 관목 사이에… 기사다!

벨리타 왕국의 기사 두 명이 관목 사이에 숨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땅을 조금 파내고 드러누워 있어서, ‘저기에 숨으면 딱 좋겠다.’ 생각하며 보지 않았더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터였다.

레오가 흥분한 레나의 어깨를 붙들었다.

“여기 있어. 내가 처리하고 올게.”

“뭐? 싫어. 나도 싸울 거야.”

“안 돼, 레나. 저건 기사야. 아직은 네가 상대하기 버거워.”

“하, 하지만…”

고집을 부리려던 레나는 레오의 옅은 한숨을 느꼈다. “네가 좀 도와주면 되잖아.”라고 말하려다가 이내 비참해졌다.

대체 얼마나 더 한심해질 작정이냐, 레나 아이나르. 이젠 레오의 등에 업힌 것마저 자연스럽구나.

이익. ─ 레나가 이를 악물었다. 어쩐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서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

“…알았어. 나 여기 있을게, 빨리… 다녀와.”

“미안해.”

[ 퀘스트 : 듀얼리스트 988/1000 – {검술} 능력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

저건 내가 잡아야 하거든. 아까처럼 설렁설렁 봐주면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기사가 약하지도 않고…

레오가 능선을 따라 크게 돌았다. 파릇파릇하게 돋아난 잡초를 조심스럽게 밟아가며 고지를 선점했고, 이내 빠르게 내달렸다.

“흐아아압!”

“뭐…! 으앗!”

– 까앙!

고지에서 양발로 도약한 레오가 한 기사를 찍어눌렀다.

가까스로 눈치챈 기사가 검을 뽑아 막았으나 레오의 몸무게가 실린 검압을 견디지 못하고 검을 놓쳤다.

손아귀가 터지면서 핏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자식이!”

– 부웅!

곁에 있던 다른 기사가 검을 휘둘렀다. 레오는 무기를 놓친 기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빙글, 뜀박질해 공중제비를 돌았다.

– 챙!

허공에서 한 찌르기. 검을 휘두른 이 자가 사수인지 실력이 제법이었다. 그는 레오의 찌르기를 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커억!”

레오가 땅에 내려서며 그를 모질게 밟아버렸다. 녀석의 안면과 검이 땅에 도로 처박혔다.

“선배님…!”

검을 놓친 기사가 허둥지둥했다. 거구의 기사가 하늘 같은 선배를 짓밟은 채 검을 푹푹 내리찍었다.

선배는 바둥바둥, 찍히는 검을 막으려 안간힘쓰고 있었다. 안면이 밟히고도 눈을 부릅떴고, 찍히는 검을 팔로 쳐냈다. 팔뚝이 갈기갈기 찢기며 피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어서 거믈…! 빠립!”

밟힌 기사가 외쳤다. 벗어나려 몸부림치더니 발을 들어 레오의 팔을 걷어차려 드는 것이었다.

“미안하게 됐어, 율리안.”

“웁?”

레오 덱스터는 이 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제3 기사단의 기사, 율리안이다.

지난 거지남매 회차 때, 오르빌 왕궁의 근위기사로 있던 왕자 레오가 벨리타 왕국의 기사들을 죄다 만나두었다.

{추적술}이 꼭 이름까지 알아야 발동하는 건 아니었으나, ‘연회’에 참석한 기사들이 방명록을 쓰는 걸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게 {전쟁}에 참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듀얼리스트 퀘스트를 깨기에 최적의 환경이었고, 조심하기만 한다면 목숨을 위협받을 일도 없었다.

벨리타 왕국의 소드마스터, 헤르만 포르테 백작은 오지 않는다. 지난 거지남매 회차가 끝날 때, 봤다.

[ 약혼관계 시나리오 엔딩이 변경되었습니다. ]

[ 레나 아이나르 ]

[ 최종직업 : 에이브릴 성의 기사 ]

[ 결혼 상대 : 레오 덱스터 ]

[ 레오 덱스터 ]

[ 최종직업 : 에이브릴 성의 기사 ]

[ 결혼 상대 : 레나 아이나르 ]

[ 약혼관계 엔딩 : 에이브릴 성의 평화 ]

+ 에이브릴 성에서 태어난 레나 아이나르는 행복한 유년기를… (중략) …간의 전쟁에 참전한 레나는 혁혁한 전공을 세워 기사가 되었다. 에이브릴 성으로 돌아와 성을 지키는 기사로 살았고, 세 명의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았다. +

+ 수도 바르나울에서 태어난 레오 덱스터는… (중략) …간의 전쟁에 참전한 레오는 혁혁한 전공을 세워 기사가 되었다. 에이브릴 성으로 돌아와 레나 아이나르와 결혼했고, 레나와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사냥을 다니며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

이것이 우리가 맞이할 엔딩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도리가 없으나, 헤르만 포르테 백작은 이번에는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게… 아니, 않을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나는 퀘스트만 클리어하면 된다.

물론, 저것과 똑같은 엔딩이 나면 곤란하다. 한 가지 더 해두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 잘 가라.”

레오는 미리 작별을 고했다. 저항이 워낙 격렬했고, 덜떨어진 부사수 놈이 검을 집었기에 숨통을 쉽게 끊어주는 걸 포기했다. 대신 밟고 있던 오른팔 손목을 찔러버렸다.

“끄아아아악!”

“선배님! 이, 이 개자식! 기사된 자가 이렇게 치졸한 짓을…!”

“치졸?”

– 부웅!

레오가 거세게 휘둘러진 검을 가볍게 피하며 비웃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내가 다칠지도 모를 상대라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치졸하다니.

우스울 따름이다.

답해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레오는 눈앞의 기사를 재빨리 그어버렸다. 몇 번의 공방이 오갔으나, 레오의 검이 목을 꿰뚫었고, 이내 율리안도 후배를 따라 저세상에 갔다.

오른 손목이 반쯤 잘리고, 왼팔이 걸레짝이 되었음에도 장렬하게 달려든 율리안은 명예롭게, 심장을 관통당했다.

[ 퀘스트 : 듀얼리스트 990/1000 – {검술} 능력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

이제 얼마 안 남았다.

피투성이가 된 레오는 율리안과 부사수 놈의 품에서 벨리타 왕국 기사의 증표를 꺼내며 미소 지었다.

전공과 퀘스트 카운터가 착착 쌓여가고 있다. 앞으로도 큰 위협이 없을 게 분명하니 절로 미소가 그려지는 것이었다.

‘곧 모든 게 끝난다.’

쌓은 전공으로 나는 이 전쟁에서 빠질 것이다. 듀얼리스트 퀘스트를 마치는 즉시 제롬 신성왕국을 향할 것이고, 나는 그곳에서 레나와 결혼하리라. 레나가 기사가 되어 직업 엔딩이 떠오를 것 같거든, 미리 말해두면 된다.

그리고 다음 소꿉친구 회차에서… 이 빌어먹을 게임을 끝마치겠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하!”

레오 덱스터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웃었다. 기사를 둘이나 잡고도 힘이 남아서 적군이 몰려올 게 두렵지가 않았다.

한편, 저쪽 멀리 숨어있던 레나는 우거지상을 쓰고 있었다. 레오의 전력을 다한 무위에 압도되어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애, 애처럼 굴지 마. 나는 반드시 바, 반드시 레오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네까짓 게, 저 괴물을?

“레나, 기다려줘서 고마워.”

괴물이 다가왔다. 레오가 상냥하게 미소 지었으나, 레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 * *

이와 비슷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레오는 전장을 누비며 기사를 사냥했고, 퀘스트 클리어가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레오는 뜻밖의 손님을 만났다.

“뭐, 뭐야! 선배님!”

“…아이고. 병사를 찾으라니깐, 기사를 찾아왔네. 데로스! 비켜!”

타오르는 붉은 머리. 카트리나가 레오와 레나가 숨어있던 덤불을 헤치고 들어왔다. 깜짝 놀란 후배, 데로스를 밀치며 검을 뽑는 것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라긴 레오도 마찬가지였다.

‘이 여자가 왜 벌써 나타났지? 또 뭐가 변했나?’

아직 늦봄이다. 카트리나가 튀어나올 시기가 아니었다.

그녀는 언제나 한여름에 나타났고, 그 까닭은 그녀가 속한 제2 기사단이 늦게 출발했기 때문이었다.

여태껏 거지남매에서 본 바에 따르면, 벨리타 왕국의 제1, 2 기사단은 헤르만 포르테 백작의 명에 따라 느지막히 출병한다. 여기에 있을 게 아니라 이제야 오르빌에서 출병하고 있어야 하는데…

레오의 등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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