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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6

< 카리나 드라고니아(1) >

[어둠. 거기 있었나?]

벤타시스의 존재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같은 신성인 포마였다.

그는 자신처럼 첫날부터 사라졌지만, 영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벤타시스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의외인 모양이다.

[처음부터 여기 있었나? 황금을 밝히는 줄은 몰랐는데.]

[내게 황금은 의미가 없다. 내가 찾는 것은 오직 내 권리를 주장할 영혼들이니까.]

[······.]

어둠과 복수의 신 벤타시스.

그 신성은 자애와 사랑, 총애를 내려주는 여타 신성들과는 달랐다.

조금만 발을 걸치면 악신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신성.

빛의 개념과 정반대인 어둠의 개념을 가진 세상의 그림자와도 같은 존재.

그는 기사도와 정의를 노래하지 않는다. 필멸자들의 어두운 면모와 피로 씻는 복수를 긍정한다.

그런 탓에 만신전에서도 다소 경원시 되는 비주류 신. 하지만, 그를 찾는 신도들은 꾸준하다.

[카리나 드라고니아. 너는 내게 복수를 맹세하며 마땅한 대가를 약속했다. 나의 힘을 빌려 복수를 달성했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할 때다.]

세상의 어둠을 체현한 것 같은 존재에게 온갖 어두운 감정을 가진 자들이 몰려들었다.

폭력과 살인, 부당한 일들을 당한 자들. 수많은 복수자들이 어둠의 신에게 복수를 맹세하고 그에 필요한 힘을 얻는다.

[너뿐만이 아니지. 너희들은 내게 빚이 있어.]

이백 년 전, 악마들에게 고향을 잃은 드라고니아 대공과 그 군단이 어둠의 신에게 복수를 맹세했다.

영혼을 건 맹세였기에 사자심왕조차 그들의 이탈을 만류할 수 없었고, 그들은 원수들을 쫓아 이세계로까지 넘어오며 복수에 성공한 것이다.

이제 그 대가를 치를 때가 왔노라고, 어둠의 신은 말했다.

[허나, 어둠이여. 카리나 대공은 그렇다 쳐도 마지막으로 죽은 북부군은 족히 백 년도 전일 텐데.]

신들의 가호를 받지 못하는 영혼은 구천을 떠돌다 윤회를 반복하는 법이다. 지난 이백여년 간 신들은 새로운 영혼을 받아 들지 못했다.

최근에야 지구에서 신앙을 확보하면서 낙원의 체계를 다시 재현하고 있을 뿐. 이런 이세계까지는 신들의 손길이 닿지 못한다.

설사 벤타시스가 이제 와 영혼을 회수하려 해도 이미 그들의 영혼은 흩어진 지 오래인 것이다.

결국 벤타시스가 그나마 오랜 빚을 청구할 대상은 아직 살아있는 카리나 뿐일 터인데──

“어둠의 신이여. 이미 알고 있겠지만, 저당 잡힌 영혼들은 아직 내 손에 있다.”

그 말에 포마의 거북이 눈동자가 카리나를 향했다. 그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중얼거렸지만, 카리나는 말없이 금은보화의 산을 지나쳤다.

보는 것만으로 아찔해지는 황금과 보석의 산. 카리나를 따라 그곳을 지나치던 하리가 멍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자 포마가 경고했다.

[황금의 저주를 경계해라, 하리야. 이것은 단순한 금은보화가 아니다.]

“예? 그, 그게 무슨 뜻이세요?”

[용의 황금은 끝없는 탐욕을 부르고, 폭력과 약탈로 이어진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여긴 그런 마굴이다.]

포마의 경고를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경계하라는 것쯤은 똑똑히 깨달았다. 하리는 입술을 질끈 다물며 카리나를 따라갔다.

정신이 어질해지는 금은보화를 지나쳐 도착한 곳은 보물고의 깊숙한 곳이다.

보통 보물고의 깊숙한 곳일수록 더욱 귀한 보석과 보화들이 쌓여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 끝에 있는 건 깔끔하게 정돈된 선반과 비단방석 위에 놓인 돌들이다.

신줏단지처럼 귀하게 모셔진 돌들에는 하나같이 별개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놓여 있었고.

「델보스케」

「가스파르」

「유라한」

「루이나」

이름이 적힌 그 돌들의 형태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어서 하리는 단숨에 알아보았다.

“마, 마정석?!”

게이트를 공략하며 몬스터를 쓰러뜨리면 얻을 수 있는 특수한 돌. 이 돌의 정체를, 헌터라면 모를 수가 없다.

“마정석······.”

게오브릭과 라보니아 여명 기사단을 마주쳤던 제주도 게이트 이후로 마정석의 정체가 생명체의 영혼을 결정화한 것이라는 추측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어, 어째서 마정석이 여기에?”

“네 세계에서는 이걸 마정석이라 부르는 모양이지?”

카리나는 하나하나 명패가 붙은 마정석 중 하나를 집었다.

“중촌석이라고, 나는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들이 낙원으로 가기 전에 거쳐갈 곳.”

그 말에 하리는 이 마정석들이 어떤 사연으로 만들어졌는지 깨달았다.

라이온하트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죽으면 환생하거나 신들의 낙원으로 입장한다.

그것은 종교인에게 있어 천국과 다를 바 없는 곳. 모든 신도들이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신들의 권위가 닿지 않는 이세계에서 그들이 죽으면 영혼은 어떻게 될까?

카리나는 그것을 보고 넘길 수 없었던 것이리라.

다시 말해.

카리나 대공과 함께 이세계로 넘어왔던 북부군들.

그들 한 명 한 명의 영혼이 담긴 결정들이 보물고에 잠들어 있었다.

“짐을 따르고, 짐과 함께 이 타향까지 온 자들이다. 짐은, 나 카리나 드라고니아는 그들의 안온한 최후를 책임질 의무가 있어.”

[하지만··· 그것을 어찌······.]

영혼을 돌의 형태로 가공한다. 그것은 신들에게도 생소한 기술이다. 애초에 죽은 자들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들에게 영혼의 거취를 강제로 돌 안에 가두는 짓은 신성모독이나 다름없다.

이런 방법은 악마들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카리나가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것은──

[달라지는 건 없다. 그들 또한 나의 복수자들이다. 너, 카리나 드라고니아는 네 아비의 후광을 업는다 해도 저들은 아니야.]

마땅히 제 소유가 될 영혼들이라고, 벤타시스는 말했다.

바로 그 순간.

[아니, 너희들은 한발 늦었다.]

카리나의 그림자를 중심으로 거대한 암영이 드리운다.

그것은 황금으로 가득찬 보물고도 모두 끌어안을 만큼 거대해서, 신들조차 그 그림자를 올려다보아야 했다.

[드라고니아.]

시조룡 드라고니아.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사라지지 않은 용의 사념은 그 사념조차도 초월적인 무언가.

신들조차 이 고대 용왕 앞에 고전했다. 스스로를 신들보다도 위대하다 여기는 이 오만한 존재는 과연,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너희들은 늦었다. 신들도, 용살자의 후예도. 늦어도 한참 늦었어.]

용왕의 시선이 신들을 내려다보았다.

* * * *

구혼 결투장.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나 나흘 만에 재개된 결투를 구경하기 위해 헌터들과 만신전 기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이미 불카누스까지 꺾인 마당에 레온에게 도전장을 내밀 간 큰 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마냥 시간을 보내기도 뭐하니 의무적으로 찾아온 것이다.

“폐하께서는 무슨 생각이신 걸까?”

그렇게 경기를 기다리던 와중 말을 꺼낸 건 수호였다. 이에 재혁이 질문으로 대화를 이었다.

“뭐가?”

“용화(龍化)라는 걸 해결하려면 카리나 님이 자식을 낳고 용의 심장을 계승해야 하는 거잖아.”

이미 불타는 검 기사단이나 다른 이들로부터 카리나의 자초지종은 들었다.

시조룡을 쓰러뜨린 초대 대공이 뒤집어쓴 용의 피와 심장에 시조룡의 저주 또한 계승되었다고.

그것이 역대 대공들에게 엄청난 힘을 주었지만, 용화라는 부작용 또한 낳았다.

용화.

단순히 말해 용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드라고니아는 가장 위대하고 거대한 용이었고, 그 육신은 팔을 뻗어 화산을 움켜쥘 정도였으며 목덜미에서 솟구치는 브레스는 대륙을 태워버렸다고 한다.

그토록 거대했던 용왕이 담고 있던 영혼의 크기는 신들조차 어찌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 저주는 증상을 늦출 뿐, 막는 건 불가하다고.

“카리나 님은 너무 오랫동안 용의 심장을 이식하고 계셔서 후계자를 다급히 찾아야 하는 거지?”

“그렇지.”

“그럼 왜 폐하께서는 훼방을··· 음, 방해를 하시는 거지? 딸 결혼하는 걸 방해한다는 장인어른이라기엔··· 조금 사태가 심각하잖아.”

그 말에 재혁도 아차, 하고 동감했다. 그간 레온이 워낙 상식을 벗어난 기행과 현대 지구인들과 다른 가치관을 보여주었기에 이번에도 그런갑다 했다.

딸을 도적질하려는 승냥이들로부터 딸을 보호하기 위한 장인어른의 패악질 말이다.

“그러네? 아무리 폐하라도 이번 일은 좀 이상하긴 해.”

카리나의 용화는 불타는 검 기사단 등의 라이온하트 출신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공공연한 저주였다.

드라고니아 대공가가 용화를 늦추고 계승을 통해 초기화를 반복해오던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지금처럼 구혼자들을 쳐내는 레온의 행위는 퀘스트를 방해하는 것을 넘어서 카리나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닌가?

“폐하께서도 그걸 모르시지 않아요.”

“헉!”

“여, 여왕님?!”

두 사람의 뒷자리. 야피와 천소연과 함께 평범히 관중석에 앉아있던 베아트리체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두 사람의 의문대로 폐하께서는 의도적으로 카리나 대공의 계승을 방해하고 계시지요.”

솔직히 딸 가진 아버지 심정이야 그들이 공감하긴 어려워도 짐작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딸의 목숨이 걸려있다면 아무리 제멋대로인 아버지라도 고민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럼 폐하는 어째서 카리나 님의 혼사를 방해하는 건가요?”

“순수하게 아버지로서, 그분이 생각하시는 ‘별같이 빛나는 사랑’을 기대하시는 것도 있답니다.”

“별같이 빛나는 사랑··· 이요?”

“폐하께선 꽤나 로맨티스트시거든요.”

베아트리체는 쓴웃음을 지으며 레온의 성향을 떠올렸다.

그토록 꼰대에 권위주의자에 제멋대로인 주제에 연애 문제에 대해서는 순애파인 로맨티스트. 달과 순결의 여신조차 사자심왕의 순애보에 결국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던가.

그 점 때문에 참으로 파고들기 어려운 작자이지만, 어쨌든 레온이 카리나의 혼사에 사랑이 함께하길 바라는 건 옆에서 보면 알 수 있다.

제 딸의 결혼과 아이를 낳는다는 과정이 이런 난잡하고 정략적인 결혼이어선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선 참 왕족답지 못한 가치관··· 즉, 로맨티스트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폐하께선 용의 심장을 다시 회수하길 원하세요.”

“예?”

“그게 가능한 건가요?”

생각지도 못한 레온의 의중에 두 사람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본디 용의 심장은 전 대공이셨던 폐하가 품고 계셨으니 불가한 건 아니지요. 폐하께선──”

[오늘 무적의 챔피언에게 새로운 도전장이 내밀어졌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사자심왕에게 도전할 자는 누구인가──!!]

그때, 결투장에 레온이 입장하며 일대가 들끓었다.

* * * *

“카리나에게서 용의 심장을 되찾을 것입니다.”

[······.]

레온의 선언에 신들은 잠시 침묵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레온이 그런 선택을 내렸는지 짐작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계승까지 기다리지 못하겠느냐.]

“이백 년입니다. 카리나가 용의 심장을 품은 것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용화의 진행이 지나치게 진행됐으리라는 것이다. 카리나가 벤타시스의 성배기사이긴 해도, 이는 평균적인 대공가의 용의 심장 이식기간을 아득히 뛰어넘는 기간이다.

“후계자를 낳는다 해도 그 후계자가 장성하기까지 카리나가 버틸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여 네가 그때까지 용의 심장을 가지고 있겠단 것이냐?]

“바로 그렇습니다.”

그 말에 아리아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그마치 이백 년이다. 이백 년 동안 저주를 축적해온 용의 심장이야. 아무리 너라도 용의 저주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허나, 오직 저만이 그 저주를 감내할 수 있겠지요.”

레온은 사자심왕이다. 온갖 저주에 내성을 가진 살아있는 반신. 시조룡 드라고니아의 이백 년 묵은 저주라 할지라도 자신이라면 버텨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레온이 카리나에게 강요하는 선택지. 자신을 좀먹는 저주를 아버지에게 떠넘기라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너희들은 서투른 부녀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면서도 이런 해결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

“아버지니까요. 카스티야라 해도 그리했을 것입니다.”

레온은 새로운 도전자를 기다리며 이 결투의 끝이 결국 카리나의 패배로 끝날 것임을 자신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지만, 자식을 위해 희생을 자처할 부모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랑을, 카리나가 받아들이길 바란다. 그것이 레온이,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에.

하지만──

“당신의 방해도 오늘로 끝입니다.”

누구도 나서지 않는 구혼 결투장.

승리가 확정된 최강의 챔피언 앞에 나선 것은 구혼 결투의 당사자였다.

[레온, 나의 복수자여. 우리들은 이미 늦었다.]

그리고 만신전으로 복귀한 어둠의 신은 자조하며 실패를 알렸다. 그가 전한 소식은 신들조차도 침음성을 삼키게 하는 소식이었다.

[카리나 드라고니아는 이미 드라고니아에게 제 육신과 영혼을 넘겼어.]

자신을 따라온 3만 북부군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카리나는 용과 거래를 했다.

너무나도 닮은 두 부녀였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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