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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6

배신 (9)

어떻게 된 일일까.

‘일단 상황을 정리해 보자.’

눈알은 움직이지 않는다.

의식도 움직이지 않는다.

일류 시절 절정에 들어가기 위해 한껏 감각을 증폭시켰던 방식을 사용해 주변을 탐사한다.

그리고, 저 뒤쪽에서 홍국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서휼 님, 시, 시키신 것은 다 했습니다. 헤헤….”

‘아, 그렇군….’

나는 홍국을 이용해 서휼의 혈음계와의 연관성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애당초 홍국은 서휼에게 포섭된 시점인 것이었다.

‘다른 곳으로 출타한 줄 알았는데 애당초 현음 아래에 있었고, 사축기 초기인 줄 알았는데 애당초 하계에서 기축제의를 미리 전부 지내고 와서 영력을 쌓기만 하면 되는 수준이었고, 봉명주 최하층을 규련의 눈을 피해 숨어들어 갔다고?’

도대체 이놈이 내뱉는 말과 언행 중 거짓이 아닌 게 몇 개나 될까.

나는 천량과 다른 반서파 요족들의 숨소리와 고동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홍국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서휼의 편은 아니었나….’

상황이 조금씩 파악된다.

홍국을 만난 것부터 잘못되었던 것이다.

‘천량이 병신 짓을 해서 이 시각에 규련의 농장을 호족으로 끌고 간 게 아니었군.’

아마 홍국이 천량을 옆에서 있는 대로 부추겼으리라.

그리고 서휼은 아마 규련이 이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를 쓸어버릴 수도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도 굳이 규련이 와서 그녀를 기습해 짓밟은 이유, 그것은….

“…규, 선배가, 더는 필요 없나 봅, 니다?”

나는 서휼에게 목이 잡힌 상태에서, 숨을 끊어 쉬며 질문했다.

서휼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묻는 것에만 답하시지요.”

“너무, 하시는, 군요… 규 선배는, 정말로 당신을….”

뚜두둑!

내 왼팔이 뒤로 꺾였다.

그러나 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고 히죽 웃을 뿐이었다.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당신은, 마음을, 너무 쉽게 가지고, 노는 게, 아닙니까?”

“흐음… 고통을 못 느끼는 겁니까? 아니면 내성이 강한 건가…. 내성이 강한 편인 것 같군요. 역시나 당신은 너무 이상합니다.”

우득, 우드득….

서휼이 내 왼팔을 아예 영력으로 으스러뜨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씨익 웃어 줄 뿐이었다.

“역시, 몇 번을 봐도 고작 50년도 안 살아온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의지력은 아니군요. 혜서 양은 고통에 내성이 전무한 수준이었는데, 그녀의 동료라는 당신은 도대체 뭐지요?”

“…너, 오혜서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뭘 했길래 고통에 내성 같은 소리가 나온단 말인가.

“별 건 아닙니다. 몇 가지 실험을 조금 했을 뿐이지요.”

“….”

나는 서휼의 눈동자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서휼은 그냥 내 감정을 고조시키려고 말을 던져 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오혜서한테 관심이 많다는 걸 들키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차라리….

그때였다.

“서휼….”

철퍽… 철퍽….

규련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신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서휼의 일격에 멀쩡한 곳이 없더라도, 그녀는 마치 소녀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왜 그러는 거냐? 나는, 나는 너를… 사랑했는데….”

“….”

서휼은 웃음을 지으며 규련을 돌아보았다.

“당신을… 사랑했어! 좋아했어! 예, 예쁘게 보이고 싶었고, 내 좋은 점만 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나만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당신 손을 잡고 있으면 너무 기분이 좋았어…. 그런데 왜, 왜 나한테….”

“아, 규 선배님. 그건 말입니다….”

서휼은 나를 휙 내팽개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는 여전히 친절한 얼굴로 뒷짐을 지고서 규련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에게 번식 욕구가 생겨서, 저와 교미하고 싶었을 뿐이랍니다. 그것 외에는 별것이 없답니다.”

“아, 아니야! 성욕 같은 게 아니야! 나는 정말로, 감정을 담아서….”

“규 선배님.”

스륵….

서휼의 손이 규련의 뺨을 매만졌다.

그의 손은 점차 그녀의 턱선을 타고 내려가, 목을 어루만지고, 다시 쇄골을 만지면서 점차 내려갔다.

마치 악기를 다루는 듯이 조심스럽게.

“감정이란 건 말입니다.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서휼의 손이 규련의 가슴에 닿았다.

“이 안쪽에.”

그리고 그의 손은 그녀의 가슴에서 조금 더 내려가, 규련의 늑골을 짚었다.

푸확!

서휼의 손이 우악스레 그녀의 늑골을 비집고 들어간다.

“폐 안쪽에서 이뤄지는 작용이 곧 감정입니다.”

서휼은 규련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외부로부터 자극이 오면, 뇌가 그를 인지하고, 횡경막이 내려가며 공기가 폐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폐 안으로 들어간 공기의 진동을 정리해서 바깥으로 몸짓, 발짓, 시선 처리와 함께 표출하면. 그것이 바로 ‘감정’이라는 것이랍니다. 그게 끝이에요.”

“끄헉…!”

나는 듣다 듣다 못 해 피를 토하며, 몸을 일으켰다.

“개… 소리, 하지 마라…! 네가 말하는 건… 감정이 아니야…!”

“감정이 아니라니요, 이게 감정의 전부입니다.”

“네가 말하는 건… 감정 연기이지, 감정 그 자체가 아니야…!”

그렇다.

그가 말하는 건 무대에 올라간 광대나 극단의 배우들이 하는 감정 연기일 뿐, 진짜 감정이 아니다!

그러자 서휼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재밌는 말씀이군요, 서 도우. 이 세상은 운명의 아래에서 이뤄지는 연극이고, 우리는 연극 안에서 연기하는 연기자들일 뿐입니다. 연기자가 연기를 하는 것이, 어째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

순간,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서휼의 모습에 괴군이 비취는 듯했다.

둘의 사상은 극단적으로 달랐다.

감정을 대하는 태도만 하여도 정반대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양극단으로 향한 두 미치광이가 향한 곳은, 어째서인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기자답게, 그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대에서 쫓겨나고 말지요. 그게, 당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랍니다. 규 선배님.”

서휼은 딱하다는 눈빛을 띠며 그녀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정말로 그가 연기자라면 훌륭한 연기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심상은 딱딱하고 차가운 어둠이었고, 내 눈에 그는 연기자가 아닌 사람 흉내를 내는 흉내쟁이 괴물일 뿐이었다.

서휼의 손이, 그녀의 폐부터 시작하여 그녀의 몸 곳곳을 헤집기 시작했다.

“분명 당신은 쓸모가 있었습니다. 적당히 혜서 양에게 질투를 해 주고, 적당히 저를 도와주시고, 적당히 구석에서 조연의 역할에 만족하셨으면 계속 무대에 출연할 수 있었겠지만… 과하셨습니다. 혜서 양에 대한 질투였습니까? 저를 향한 소유욕이셨습니까? 어찌 되었든… 정말로 규 선배님께서 합체기 요왕이 되어 저를 차지하겠다고 하면 곤란해집니다.”

“…서, 휼….”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배님.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간악한 반서파 요족들이 혈음계와 내통하여 혈음계의 마족을 이 자리에 불러낼 것이고. 당신은 그런 그들을 저지하려다 간악한 혈음계 마족에게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슬픈 일이지요. 저는 연인을 잃고 슬픈 마음으로, 혈음계에 대항하고자 전 지족을 규합할 것입니다.”

“서휼….”

“모두 당신이 오늘 죽음으로써 벌어질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규 선배님, 잠들어 주십시오. 지족의 광영을 위하여.”

“서휼…!!”

뚝, 뚝뚝….

규련이 울음을 터트렸다.

우우웅!

그녀의 몸에서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나, 난… 너를 정말로, 정말로 사랑했어…!”

“말씀드렸잖습니까. 감정이란, 폐에서 나오는 공기의 양에 불과하다고. 아, 폐(肺)는 오행에서 금(金)에 대응되니, 어쩌면 감정은 금(金) 속성일 수도 있겠군요. 후후….”

“광한지약을, 나와 광한지약을 맺었잖아…? 나, 나는, 나는….”

혼란에 빠진 규련은 서휼을 강하게 밀쳤다.

그리고 그녀는 공황에 빠진 눈으로 한 손을 치켜들었다.

파아아앗!

그녀의 손에 찍힌 관주사자의 인장이 빛났다.

그와 동시에, 공간 균열이 열리며 목화 농장 전체가 공간 균열을 통해 시커먼 공간으로 진입하였다.

봉명주 최하층.

관주사자 규련의 관리 구역이었다.

파아앗!

그녀가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봉명주 상층으로 날아가려 할 때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압박하면 이쪽으로 전송해 오실 줄 알고 있었지요.”

타앗!

서휼은 그녀의 발목을 잡은 후, 다시 아래쪽으로 내동댕이쳤다.

꾸우우웅!

폭음이 울리며, 농장 전체가 우그러진다.

그리고, 나는 이를 악물며 결인을 맺었다.

기이이잉!

그와 동시에 농장 곳곳에서 빛이 번뜩이며, 괴군의 회로가 작동하고 서휼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호오, 괴뢰 회로라…. 이건 또 언제 깔아 놓으신 겁니까? 늘 궁금했습니다만, 괴군에게 제자가 있을 리는 없고, 이 회로는 대체 어디에서 익힌 겁니까? 괴군의 것과 상당히 비슷하군요.”

콰드득!

그러나 서휼이 힘을 한번 주자 농장 전체가 붕괴하기 시작한다.

‘사실상 합체기나 다름없다…!’

역시나, 천 년 후 괴군의 앞에서 사축기의 수행을 드러낸 건 그냥 내숭이었을 뿐.

실제로는 천 년이면 해룡‘왕’의 칭호를 충분히 되찾을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도, 도망….”

번쩍!

천량과 반서파들이 도망치려 했으나, 서휼이 허공을 움켜쥐자 모조리 으스러져 한 줌 육편이 되어버렸다.

서휼은 일어서려는 규련에게 다가가, 다시 목을 짓밟았다.

콰득!

“규 선배님께는 감사드립니다. 봉명주 최하층은 어둠의 공간인지라 이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제대로 신경 쓰는 이들이 없지요. 괜히 바깥에서 흔적이 남으면 그게 더 곤란하니….”

“끄…윽…!”

“그나저나 이건 또 무슨 벌레인지, 재밌는 은신술이군.”

따악!

서휼이 손가락을 튕기자, 서휼의 뒤편 허공에서 유화가 튕겨 나갔다.

“호오, 그때 그 악사가 아닌가? 자네도 심족이었나? 하하, 과연 심도공법은 기오막측하군.”

유화는 두 눈을 부릅뜨고 연주를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서휼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양팔이 바로 부러져 버렸다.

“…!”

“요선루에서 자네와 서 도우의 열애설이 파다하더니만, 과연 특별한 관계였나 보군. 이런 날에도 서 도우와 함께하다니….”

서휼은 유화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파아앗!

서휼과 규련 사이에, 황금빛 실 같은 것이 반짝였다.

서휼은 흠칫 몸을 떨며 규련을 쳐다보았다.

“이건….”

“광한지약, 광한지약을, 맺었잖아, 서휼…. 우리는, 우리는….”

그녀는 서휼에게 당했다는 사실에, 제정신이 아닌지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공황에 빠져 있었다.

“아, 규 선배님. 아직도 뭔가 하실 마음이 있는 겁니까?”

“광한지약… 우리, 광한지약을….”

“후후, 규 선배님. 광한지약을 좋아하시는군요.”

“광한지약을 맺어서, 한날한시에 죽기로….”

서휼은 미소를 지으며, 쓰러져서 혼란에 빠져 중얼거리고 있는 규련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상냥하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규 선배님, 선배님도 알고 계시잖습니까. 광한지약이 백홍주의 제례로 대체된 이유를…. 분명 부부가 연을 맺고, 운명의 인력을 끌어 한날한시에 죽게 하는, 조금은 무서운 비술이지요. 하지만… 광한지약은 먼 고대 적에 이미 효력을 잃은 법술입니다. 특정 조건을 만족해야 발동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진선이 아니라면 광한지약의 발동 조건은 영원히 알 길이 없지 않습니까.”

우득, 우드득….

서휼은 규련의 뿔을 꺾었다.

그녀의 뿔을 손에 든 서휼은 빙긋 웃었다.

“이제 와서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비술이지요. 처음 제게 광한지약을 거실 때는 무슨 비술인지 몰라 조금 당황했으나, 별로 의미도 없는 법술이란 걸 알고 나니 우스울 뿐입니다. 후후… 마치 당신 같지 않습니까, 규 선배님.”

“아, 아니야… 서휼…! 서휼…! 나, 나를 버리지 마…! 나, 난 너를 사랑했어, 정말로 좋아했어… 서휼…! 난, 나는….”

그녀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상냥하게 웃고 있는 서휼의 얼굴에서 괴리감을 느끼는 듯, 무너져 내렸다.

“자, 그럼… 아까 설명드렸듯이, 당신이 죽으면 저는 연인을 잃은 슬픔을 중심으로, 혈음계의 간악한 책략에 당한 선량한 광한계의 젊은이라는 배역을 바탕으로 지족을 규합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만 퇴장해 주십….”

다음 순간.

규련은 서휼의 말에서 도망치려는 듯이 눈물을 흘리며 아래쪽의 땅을 부숴 버리고, 시커먼 어둠의 공간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여파에 나와 유화 역시 말려들어 그녀에게 딸려 갔다.

“어딜 가십니까. 함부로 최하층에서 힘을 쓰시면….”

푸콱!

서휼이 날카로운 무언가를 날렸다.

그것은 물방울이었다.

서휼의 손끝에서 쏘아진 물방울은, 정확히 그녀의 요단을 노렸고, 규련의 요단은 산산조각이 났다.

하지만 동시에, 규련은 허공을 잡고, 공간을 벌렸다.

기기기기긱!

공간 균열이 인다.

봉명주의 최하층에서, [아래]로 향하는 입구가 열렸다.

서휼은 그녀가 공간 균열을 여는 것을 보고 쫓아오려다가, 그녀가 연 것이 어디로 향하는 균열인지를 알아본 후 산뜻하게 웃으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스스로 무대를 내려가시겠다니, 훌륭한 선택입니다.”

나는 규련의 영력과, 그녀에게서 뿜어지는 기이한 인력(引力)에 이끌려 그녀와 함께 공간 균열로 빨려 들어갔다.

공간 균열 너머,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웃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며.

동시에 전혀 웃고 있지 않은 눈으로 끝까지 우리를 관찰하며 우리의 최후를 살피는 서휼의 모습이었다.

* * *

“흐음… 서은현을 놓친 건 안타깝군. 천거자들은 뭘 하는 존재들인지 연구해 보고 싶었지만… 오혜서를 더 연구해 보면 될 일이니 아쉬울 건 없겠지. 나름 만족스럽군.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서휼은 싱긋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홍국이 아부하는 표정으로 서휼에게 굽신거리고 있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전부 서휼 님의 작전대로 되었습지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서은현을 놔두고 가시면 그가 반대파를 결집시킬 것을 어찌 아셨는지! 반대파를 일소하고, 사악한 혈음계 마족에게서 연인을 잃으셨다는 명분을 얻으셨으니….”

“그래, 그렇지. 지금까지 자네의 공이 참 컸다네.”

“아닙니다. 전부 서휼 님의 책략이 뛰어난 탓이지요. 저는 그저 말씀해 주신 대로….”

“알겠네, 혈음계의 마족으로 진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홍국은 그의 말에 뛸 듯이 기뻐하며 웃었다.

“감사합니다! 하하, 사실 700년 전 혈음계 마족들과 싸우며 느낀 게 있습니다만, 그 혈음계 마족 놈들 참 편리하게 싸우더군요. 저 역시 그런 고명한 천마들로 진화할 수만 있다면….”

서휼이 홍국을 본체만체하며 결인을 맺자, 서휼의 반대파였던 반서파.

그들의 피륙이 서휼의 앞에 모여들며 음산한 기운을 토해 냈다.

서휼은 혈육의 기운을 모아 주문을 외웠고, 얼마 후, 혈육의 기운이 모인 덩어리 안쪽에서 시커먼 뭔가가 튀어나왔다.

“자, 받게나. 이걸 입에 넣으면 자네도 혈음계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걸세.”

“아, 감사합니다. 혈음계에 가서도 서휼 님의 은혜는… 꿰에에에엑!”

그리고 다음 순간, 서휼이 건넨 시커먼 것이 홍국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꿰에에엑! 꿰에엑! 서, 서휼 님, 서휼… 님…!”

홍국은 시커먼 것을 떼어 내려 했으나 검은 것은 그의 얼굴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홍국은 비명을 지르며 혈음계에서 온 생물에게 머리가 뜯겨 나가 죽어 버렸다.

얼마 후, 홍국의 머리를 뜯어먹은 검은 것은 홍국의 머리에 안착해, 홍국의 머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하여 그의 몸을 차지했다.

서휼은 홍국의 몸을 차지한 것에게 말하였다.

“인족 영역으로 가서, 진마계와 전쟁을 벌이고 싶어하는 인족들에게 명분을 만들어 주게나. 봉명주에서 나가서 흑룡왕께 말씀드려 흑린어령문 사람을 숙주로 구해 주지.”

“알, 겠, 습니, 다.”

“그리고 최하층에 힘을 써서 자네가 규 선배를 죽였다는 티를 좀 내 주게. 어차피 진룡맹 늙은이들에게 혈음계의 법술이라면 심족 급으로 기오막측하게 여겨질 테니,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혈음계의 법술만 남아 있다면 다들 그러려니 하겠지.”

“명, 받드, 옵니, 다.”

홍국의 입으로 어색하게 말한 그 존재는 서휼에게 예를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본 서휼은 다른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약속은 지켰네. 이제 자네가 알던 홍국은, 혈음계 마족에게 혼백마저 잡아먹혀, 죽어서도 명계에 가기 전까지는 고통을 받을 테니 충분히 잔인한 죽음이 아닌가.”

그리고, 허공에서 백녕이 나타났다.

백녕은 얼마간 서휼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제 동족들을, 구해 주십시오.”

“내가 언제 허언을 하는 것을 보았는가?”

“….”

백녕은 침음성을 흘리며 서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서휼은 기분 좋은 듯이 어둠 속을 바라보며 웃었다.

“실로 기분 좋은 배신자들의 밤이로군.”

* * *

여긴… 어디지?

쏴아아아아―

빗소리가 들린다.

나는 정신을 차리며 눈을 떴다.

하늘이 보였다.

먹장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여기는….’

어쩐지 천지영기가 희박하다.

광한계가 물속이었다면, 이곳은 진공 상태인 것 같다.

“하계(下界)…?”

나는 희박한 천지영기를 들이키며, 서휼에게 부러진 팔을 잡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산맥만 한, 산맥만 한 거체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규련이었다.

“아….”

그녀는, 하계로 떨어지면서, 본체로 변하여 공간의 압력으로부터 나를 지켜 준 것이었다.

“규… 선배님….”

내가 그녀의 머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규련 선배님!”

그리고, 그녀의 머리가 있는 곳으로 갔을 때.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

[서휼… 서휼… 서휼….]

그녀는 혼이 나간 듯, 흐릿해진 눈으로 끝없이 서휼의 이름만을 되뇔 뿐이었다.

그리고 그마저 서휼에게 요단이 깨진 탓인지 점차 눈빛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선배님, 일단 화형을 하십시오! 화형을 하면 제가 어떻게든 상처를 봐드리겠습니다, 선배님! 선배님!”

그러나 그녀의 정신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 덕인지 완전히 붕괴한 듯했다.

그녀는 끝없이 서휼을 중얼거리다, 어느 순간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규련은, 죽은 것이었다.

“선배님….”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죽은 규련의 사체를 쳐다보았다.

다음 순간이었다.

쩌억….

규련의 입속에서, 뭔가가 굴러 나왔다.

왈칵!

그것은 핏덩이었다.

“…!”

시뻘건 용혈 속에서, 나는 뭔가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저건….”

나는 황급히 달려가 핏덩이 속에서 움직이는 것에 다가갔다.

그리고, 내가 발견한 것은….

“선… 배님?”

규련이었다.

전라의 형태로, 핏덩이 속에서 기어 나온 규련은 혼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서휼… 서휼… 서휼….”

“규 선배님…!”

사축기 수사부터는, 자신의 수행을 소모하여 죽어도 부활할 수 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영력은 범인과 다를 바 없었지만, 나는 일단 그녀가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하며 규련을 바라보았다.

“살아 계셔서 다행….”

“서휼…!!!”

그리고, 나는 그녀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죽여 버릴 테다!!!”

뚝, 뚝….

그녀의 눈가에서,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쏴아아아….

사방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고, 빗물은 그녀의 피눈물을 씻어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녀의 절규는 마치 폭풍 속의 뇌성벽력처럼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반드시, 반드시 네놈을 죽인다, 서휼…! 너를, 너를…!”

그렇게.

이름 모를 하계의 어느 대지 위에서.

그날, 사랑하던 자에게 배신당해 마음이 산산조각 난 존재는 피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부르짖었다.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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