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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8

< 카리나 드라고니아(3) >

[만신전에 합류하라, 드라고니아. 우리는 너를 운명공동체로서 함께할 용의가 있다.]

“”···············.””

여신의 음성에 오랫동안 누구도 반응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신들을 모셔온 사자심왕도, 신들의 숙적으로서 끝내 패배했던 용왕 드라고니아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레온이었다. 그는 만신전에 합류하라는 제안이 가지는 의미를 알아차린 것이다.

만신전에 드라고니아를 합류시킨다. 그것의 의미는 하나.

드라고니아를, 신중의 한 명으로서 인정하고 신성을 내주겠다는 뜻이었다.

[그하하하하하하하하···!]

사념이 된 용의 영혼이 미친듯이 폭소한다. 그럴 만도 할 것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싸워왔던 숙적이, 끝내 승리한 놈들이 이제 와 굴욕적인 협상안을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협상안이 고작 인간 한 명 때문이라니.

고작 한 명의 인간을 구하기 위해 신들이 자신들의 신성을 양보한다는 파격적인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웃기는구나. 고작 한 명을 위해 신성을 내주겠다고? 한낱 인간 한 명에게 그런 가치가 있느냐?]

[한낱 한 명이 아니다. 내 기사의, 만신을 대리하는 사자심왕의 고명딸이며 신성을 대리하는 성배기사다.]

[너희들에게 사자심왕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써먹기 편리한 사냥개지. 너희들이 역대 사자심왕들에게 그러한 편리를 제공한 적이 있느냐? 초대 사자심왕조차 그런 특별대우를 해준 적이 없을 텐데?]

당연했다.

신들은 섭리의 수호자들이다. 그들은 원리원칙을 지켜야 하며 자신들의 대리자들을 아끼고 축복하되 이치를 벗어난 적은 없었다.

이것은 낙원에서 이미 죽은 이를 살려내는 것보다도 더 파격적인 일이었다.

“불가! 불가한 일입니다!”

레온은 신들의 제안을 들은 것조차 황송하다는 듯 드라고니아에게 겨누던 검을 거두고 양 무릎을 꿇었다.

“한낱 한 인간의 편의를 위해 고매한 신성의 좌를 내어준다니요! 그것도 사악한 도마뱀 따위에게!”

[이놈이?]

드라고니아는 가장 듣기 싫어하는 비하에 발끈했지만, 아리아나는 조곤조곤 레온을 설득했다.

[레온아, 나의 기사야. 너는 한낱 한 인간이 아니다. 만신이, 세계가, 역사가 시작된 이래 축적된 모든 영혼들이 네게 빚을 졌음이야. 신들은 네게 갚아줘야 할 책무가 있다.]

“하지만···!”

[더는 말하지 말거라, 나의 기사. 너에 대한 신들의 사랑이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인 것을. 너는 그럴 자격이 있다.]

[하······.]

용왕은 신들이 이토록 편애하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단순히 이치를 벗어난 일이 아니라 신들의 절대적인 권위인 신성을 내주는 일이었다. 그것도 오랜 시간 서로를 멸하려 반목해온 원수에게 말이다.

‘악마 놈들을 기어코 홀로 멸했다고 했던가?’

거기에는 대공급 악마뿐 아니라 군주들도 있었을 것이다.

악마 군주의 초월적인 강함은 용왕도 잘 아는 바이다. 대공의 바로 윗단계 정도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지만, ‘대공 따위가’ 범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들은 시조룡인 자신보다도 오래된 존재들이었고, 만신전의 신들 또한 악마 군주의 아성을 넘보지는 못했다.

그런 악마 군주들을 쳐 죽이고 멸망했어야 할 저들의 사후세계조차 구원한 존재라면 과연······.

‘유일한 희망인가.’

신들이 아끼지 못해 안달인 이유가 납득이 갔다.

신들은, 만신전과 그들의 낙원은 저 레온이라는 사내 한 명의 존재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니까.

[허나, 오만한 신들아. 내가, 이 드라카라의 용왕이 너희들과 같은 방석을 깔고 앉으리라 생각하느냐. 내가 곧 신화다. 너희들은 후발주자에 불과해.]

“이 도마뱀 놈이 감히? 주면 넙죽 엎드리며 받지 못할까!”

[찬성인지 반대인지 하나만 해라······.]

드라고니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한마디 했지만, 레온은 원색적인 욕설과 비난으로 되돌려줬다.

[용왕이여, 우리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하라. 이건 그대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일 것이다.]

여신은 굴욕적인 제안이 반려되고도 차분하게 용왕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세계는 이미 악의 손에 멸해졌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다. 그곳에서 우리가 신앙을 회복하는 건 그리 먼 일이 아니야.]

다시 말해 숟가락만 얹으면 드라고니아도 얼마든지 신 중의 한 명이 될 수 있다는 뜻.

드라고니아가 반박했다.

[나는 이미 이곳에서 절대권력을 수립했다. 이 세계가 곧 나의 세계다.]

드라고니아 제국. 세계유일의 패권국가. 카리나는 그러한 제국의 살아있는 절대권력이다.

이미 신과도 같은 위치에 있건만 구태여 제 세력권을 넘어 궁상맞은 전세살이를 할 필요가 있을까?

[이곳에서 넌 신이 아니다. 황제에 기생한 사념에 불과하지.]

[뭣이?]

[그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역대 대공들의 심장에 기거하면서 끝내 부활하지 못한 이유를. 그대가 육신에 의존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리아나 여신은 드라고니아가 신성을 획득할 경우의 이득을 이야기했다.

[그대가 신성을 획득한다면 그대는 신앙의 주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숭배로 얻은 신앙으로 구성할 육신은 그대 영혼을 가두는 수육이 아닌 화신체가 될 것이야.]

다시 말해 진정한 불멸. 그리고 이를 위해선 드라고니아가 숭배가 아닌 신앙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아리아나.

[무엇보다도──]

아리아나는 결정타를 내놓았다.

[그대 종족의 부활 또한 가능해진다.]

[······.]

신들의 가장 원초적인 권능. 그것은 창조의 힘이다.

빛, 어둠, 태양, 달, 하늘, 바다, 불꽃, 생명, 죽음, 철.

그 모든 원초적인 관념들은 세계를 가꾸고 살아있는 것들을 번성케 한다.

[우리들이 협력할 것이다. 나 아리아나의 빛이 태어날 용들의 껍질을 비출 것이고, 데메라의 생명이 그들을 싹 틔울 것이다. 하늘과 바다와 불꽃이 축복하고 태양과 달이 그들의 낮밤을 가호할 것이야.]

하여 모든 생명들이 그러했듯, 생육하고 번성할 것이다.

[······.]

그것은 용왕의 책무를 상기시켰다.

그 또한 종족의 왕. 신화 그 자체라 해도 그가 왕을 자처하는 이상, 그에게도 책무가 존재함이다.

용왕의 고뇌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발생한 흑색 게이트는 내내 미국 전역을 불안에 떨게 했다.

수도 한복판에 적색 게이트만 떠도 난리가 나는데, 인류사의 재앙이라는 흑색 게이트의 출현은 당장 미국의 모든 행정업무를 마비시키며 수십 만 명의 피난민을 발생시켰다.

지금까지의 흑색 게이트들이 하나 같이 국가를 멸망시키거나 멸망의 위기를 가져왔다는 걸 생각하면 이러한 조치는 조금도 부족하지 않으리라.

“젠장, 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안토니 홉슨 미 대통령은 하루가 멀다하고 워싱턴 D.C.의 한 구역을 차지한 흑색 게이트에서 헌터들이 귀환하는 날만 기다렸다.

차라리 공략이 실패해서 생존자라도 귀환한다면 모를까 이렇게 누구 한 명 나오지도 않고 20일이 넘었으니 기다리는 입장에선 미치고 활짝 뛸 지경이다.

“이겼겠지?”

“그건 저희도······.”

“아니, 우리나라의 강력한 헌터들은 죄 갔고, 만신전도 총전력이 왔는데, 클리어를 못할 리가 없잖습니까!”

그럼 왜 물어본 거야··· 보좌관들은 홉슨 대통령의 호통에 어이없어하면서도 그의 심정이 이해됐다.

흑색 게이트의 던전 브레이크가 수도에서 터지며 생길 사회적, 경제적 여파를 생각하면 그저 끔찍하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

무엇보다 이번 게이트에 동원된 헌터들은 미국 최고의 정예전력을 왕창 들이밀었다. 그들을 잃는다는 건 워싱턴이 날아가는 것보다 더 큰 피해를 야기할 수도 있다.

“각하, 한국의 안 대통령으로부터 연락입니다.”

이번 사태를 위해 연결된 핫라인이 바쁘게 울린다. 분명 게이트가 어떻게 됐냐느니 우리 헌터들은 무사하느냐 이런 걸 물으려 드는 거겠지.

자국의 최정예 헌터를 보내놓고 똥줄이 타는 건 미국뿐만이 아니란 거다.

‘젠장! 기자들 파견해놓고 다 알면서 뭘 또 물어봐?’

홉슨 대통령은 각국의 지도부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인내심이 적다는 걸 알게 된 계기였다.

당장 오랜 동맹인 영국에서도 이번 사태에서 S급 헌터들을 잃는다면 어떻게 책임을 지워야 할지 난리라던가.

확실한 공략 성공을 위해 동맹국의 최정예 헌터들을 끌어다 쓴 홉슨 대통령으로선 이번 사태가 실패시 정치생명도 끝장난다고 봐야 했다.

물론, 미국에 자국의 최정예 헌터를 파견하기로 결정한 동맹국 행정부들도 저승길 동반자가 되겠지만.

하여튼 간에 이번 공략이 실패로 돌아가면 한두 사람 죽는 걸로는 안 끝난단 소리다.

“하느님, 미국을 보우하소서······.”

대통령이 신께 기도를 올릴 때, 보좌관 중 몇몇은 만신전의 신들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들이 그나마 안심하고 있는 건 한국 본토에 있는 만신전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덕이다.

만약 게이트 내부에서 사자심왕이 죽기라도 했다면, 그 피드백은 즉시 만신전의 홈그라운드인 한국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졌으리라.

한국의 안동길 대통령이 매일 같이 만신전 담당자들을 청사로 불러재끼는 건 차치하고 말이다.

그렇게 온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흑색 게이트 공략 23일째.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예상되는 가운데, 모두가 축제 분위기를 즐기지 못하는 나날이었다.

“각하! 각하아아아···!”

워싱턴으로부터 떨어진 임시 대통령 집무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홉슨 대통령에게 보좌관들이 넥타이도 매지 못한 채 달려왔다.

“게이트에서···! 게이트에서 헌터들이 귀환하고 있습니다!!”

“다, 당장 출발하지!”

홉슨 대통령은 헝클어진 넥타이를 고쳐잡으며 서둘러 군 비행장으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사태를 파악하고 싶었다.

* * * *

“정말로 철로 된 짐승들이 돌아다니는군요.”

워싱턴 D.C.의 번화가. 카리나는 레온과 함께 거리를 거닐며 감탄하고 있었다.

높디높은 건물들과 상점으로 가득한 거리는 사람이 없어 황량하다. 이토록 번화한 거리임에도 사람이 없다는 것에 카리나는 의문을 가졌다.

“게이트란 것이 생기면 혹 내부의 몬스터들이 나올 것을 대비해 피난을 간 것이다. 이 게이트는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이었으니 이 일대에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과연······.”

생각해보면 당연한 조치임을 짐작하며 카리나는 빈 상점가들을 구경했다.

“몸은 괜찮으냐?”

“성배기사의 육신입니다. 나쁠 리가 없지요.”

“그래··· 그러면 됐다.”

레온은 어색하게 거리를 앞서 걸었다. 수백 년 만에 함께하는 산책은 반가우면서도 어색하다.

“아직, 짐을 원망하느냐?”

많은 것이 함축된 말.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백 년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그것은 폐하께서 응당 하셔야 할 선택이셨습니다.”

“사자심왕이 아니라, 드라고니아 대공이 아니라··· 카리나 네 아비인 레온으로서 말이다.”

“······.”

카리나는 레온의 질문에 발걸음을 멈췄다. 눈 내리는 거리에 발자국이 멈춰 선다. 발등에 눈이 쌓여가면서도 카리나는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레온의 행동은, 판단은 지극히 옳았다. 왕으로서는 그렇다. 하지만 카리나의 아버지인 레온으로서는? 카스티야의 남편으로서는?

그것은 틀렸다고··· 그리 말해야 했다. 어떤 논리적인, 대국적인 이유를 들더라도 남편인 레온은, 아버지인 레온은 그리해선 안 됐다.

그 명료한 답이, 카리나의 입에서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책무를 지닌 이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기에. 단지 카리나가 아니라, 카리나 드라고니아인 그녀로서는 그 말을 내뱉기가 힘들다.

“나는 네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아니, 정확히는 그리하지 말았으면 했다.”

3만의 북부군을 위해, 그들의 영혼의 안위를 위해··· 아버지인 레온은 딸인 카리나가 희생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것이 틀렸다고 말한다.

“······저도요.”

레온이 먼저 그리 말해주었기에, 카리나는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품어온, 말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말. 생각해서도 안 된다고 여겼던 그런 원망을, 카리나는 처음으로 토해냈다.

“어머니의 남편인 아버지는 그리해선 안 됐습니다. 어머니를 구했어야 했습니다.”

탓하는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없다.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할 뿐.

이백 년 만에 서로 처음으로 내뱉은 솔직한 감정. 서로가 가진 책무를 알기에 탓할 수 없었던 부녀 사이에서 터진 최초의 원망은 두 사람을 오히려 웃게 하였다.

잘 웃지 않는 두 사람에게 있어, 아주 옅은, 희미한 웃음이었지만,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끼이이이이익···!

피난으로 적막한 워싱턴 거리. 두 사람 앞에 급정거하는 큼직한 SUV.

“레, 레온 폐하!”

헐레벌떡 차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안토니 홉슨 대통령이다.

그는 두 사람이 게이트를 넘어온 지 두 시간 만에 군용 수송기와 방탄차량을 타고 쉬지 않고 달려온 참이다.

“무사하셨군요!”

“누구입니까?”

“이 나라의 왕 비슷한 것이다.”

“???”

왕이면 왕이지, 왕 비슷한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과는 별개로 레온의 무사귀환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홉슨 대통령은 연신 반가움을 표현하다 레온의 옆에 있는 카리나를 발견했다.

“이분은?”

의문을 표현하는 홉슨 대통령에게 카리나는 제 소개를 했다.

“본작은 카리나 드라고니아. 사자심왕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의 적법한 후계자이자 드라고니아령의 ‘대공’이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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