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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8

197. 약혼관계 – 냇물가

냇물이 흐른다.

물이 졸졸. 졸졸졸졸…

레나 아이나르는 아군 진영 근처 냇가에 나와 있었다. 냇물이 흐르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 이따금씩 돌을 던졌고, 퐁당! 가라앉은 돌은 다시 떠오르는 일이 없었다.

본래 준기사가 이렇게 단독 행동을 해선 안 되었다. 군인인 이상 엄격한 통제하에 있어야 했으나, 레나의 처지는 여타 준기사들과는 달랐다.

그녀에겐 장군이나 천인장을 호위하는 업무가 배정되지 않았다. 기사단의 일원으로서 전장에 뛰어들었지만, 그렇다고 기사인 것도 아니다.

애매한 위치.

헐거운 통제 속에서 레나는 갈피를 잃었다. 레오와 함께 진지로 돌아왔으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할 일도 없어 보였다.

– 퐁당!

마지막으로 돌을 던진 레나가 쪼그려 앉았다. 냇물에 얼굴이 비치기에 품에서 손거울을 꺼냈다.

꾀죄죄한 내가 보인다. 살이 좀 빠졌는지 뺨과 눈두덩이에 그늘이 생겨 있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두 다.

공허해진 레나가 거울을 내렸다. 머리를 잠시 움켜쥐었다가 도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 내겐 무엇이 남았나.

레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려는 것만 같다. 침을 삼켜보았지만 명치를 누르는 구토감은 더욱 심해졌다.

– 벌컥.

황급히 한 손을 종지처럼 오므려 냇물을 떠먹었다. 한 모금으론 부족해 두 모금, 다섯 모금을 연거푸 들이켰고, 그녀는 어느새 무릎을 꿇고 있었다. 거울을 치웠지만, 냇물에 비친 얼굴이 이젠 인정하라고 집요하게 묻는 것이었다.

– 네겐 무엇이 남아 있느냐.

사르륵 풀어진 머리칼이 물 표면에 닿았다. 무릎 꿇은 그녀의 손이 잠겼고, 성급히 떠먹은 물이 턱에서 뚝뚝 흘러내렸다. 떨어진 게 비단 그것만은 아니었지만.

“나, 나는…”

레나는 잠시 그대로 있었다. 아니, 꽤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다. 들이켠 것보다 더 많은 물을 냇물로 흘려보낸 뒤에야 움직일 수 있었는데, 그녀가 처음으로 한 행동은 세수였다.

뽀득뽀득, 얼굴을 닦아낸 뒤, 젖은 다리를 일으켰다. 수건이 없어서 그대로 걸어 돌아갔다.

“…충성.”

진지로 돌아오자 병사들의 의아한 시선이 따라붙었다. 그들의 시선은 그녀의 눈가에 머물렀다가 이내 떨어져 나갔다.

레나는 곧장 돌아가지 않고 어슬렁거렸다. 붉게 내리는 노을과 환자들의 신음이 끊이질 않는 병동. 얼굴에 묻은 물기와 미련을 닦아낸 레나가 걸음을 돌렸다.

레오는 아직도 천막 앞에 있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그의 주위에 깔린 풀들이 맥을 잃어가고 있었다.

“…레나.”

“응. 이제 괜찮아.”

레나는 살짝 웃었다. “하기 싫다니까!” 소리치고 달아난 게 미안해서 어렵사리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 널 믿고 있었어.

따뜻한 눈빛이 괴로워 고개를 돌리고야 말았다. 안도한 레오의 표정과 손에 쥐여준 검 손잡이의 촉감을 견디기 어렵다.

“그럼… 다시 해볼까? 서로 검이 닿았을 때부…”

레나는 손잡이를 놓아버렸다. 검이 뎅그랑- 떨어졌고, 멍해진 레오에게 말했다.

“우리 결혼해.”

레오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가 다가와 내 손을 움켜쥐는 것이었다.

“레나. 제발…”

하지만 레나는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되려 레오의 가슴에 이마를 묻으며 끌어안았다.

내게 무엇이 남았나.

내겐 레오밖에 남지 않았다.

이 남자와 함께 기사가 되어 결혼하고 싶었다. 수년 전, 나를 무릎 꿇린 이 남자와 대등해지려 애써왔고, 검과 레오, 이 두 가지만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아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 한다면, 망설임 없이 레오를 고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야속한 남자.

레나가 레오의 가슴에 이마를 박았다.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최연소 소드마스터의 옷섶을 움켜쥐곤 통곡했다. 축하해 줘야 할 일임에도 도저히 그럴 수 없는 내가 한심하다.

“레나. 넌 할 수 있어. 기사가 될 수 있다고. 내가 도와줄게. 응?”

상냥하기도 하지.

레오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도 모를 터였다. 어째서 결혼을 미뤄왔는지 알 턱이 없는지라, 레나가 둘러댔다.

“됐어. 나 기사 될 생각 없었어. 검술도 그냥 네가 하니까 재미로 따라 한 거야. 이젠… 그만할래.”

거짓말! 거짓말이다!

레오는 레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빤히 알고 있었다. 이를 악물곤

“거짓말하지 마. 그렇지 않다는 거 알아.”

말하려 했으나 올려다보는 레나의 표정이 끔찍했다. 단단한 얼굴에서 또록 흐르는 눈물이 내게 그만하라 애원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카트리나를 만나선 안 됐던 것일까 ─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다. 시나리오 시작 직후, 아버지와의 대련에서 이겼을 때부터 잘못되었고, 결국 이게 필연적인 결과임을 깨달았다.

회차를 반복하며 점점 강해지는 나를 대하는 레나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어 왔음을…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리 자신만만한 레나 아이나르라 할지라도 불태울 수 있는 의지와 따라잡을 수 있는 격차가 한정돼 있음을 배려해줬어야 했던 것이다.

레나가 킁, 코를 훔쳤다. 눈물을 닦아내고는 조금 초조하게 말했다.

“나, 준기사 그만둘 거야. 그러니까… 전쟁 끝나면 꼭 돌아와. 기다리고 있을게. 우리 그때 결혼하자.”

혹시 내가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한 것일까, 아니면 이 대~단한 소드마스터께서 자기를 잊을까 두려워한 걸까.

그녀의 눈은 답변을 갈구하였고, 레오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바보야. 네가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야.’ 생각했지만, 차마 입으로 뱉지는 못했다.

레나는 안심했는지 레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머뭇거리며 입맞춤을 청하였는데, 증명을 원하는 그녀가 한없이 작아 보였다.

“…들어가자.”

레나가 레오를 천막으로 이끌었다.

천막 앞에 떨어진 검을 버리고, 가죽 갑옷을 벗어 던진 그녀는 더 이상 자신만만한 검사가 아니었다.

올라탄 그녀의 상의에서 톡 떨어진 손거울만이 그녀의 정체성을 가리키고 있었다.

* * *

레나와 레오는 전역했다.

제3 기사단장, 옌센 바일레이를 찾아간 레오는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식으로 서임을 받지 않았으니 우스운 말이기도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요구이기도 했다.

“전쟁 중에 은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당연히 옌센은 역정을 냈다. 그러나 레오의 품에서 벨리타 왕국 기사의 증표가 나올 때마다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카트리나의 것까지 쌓여 14층 탑을 이루었을 때는 아예 말문을 잃어버렸다.

한참을 서성이던 기사단장은

“곧 도착하는 후발대에 왕자님이 계시네. 큰 포상을 받을 수 있으니 좀 기다리게.”, “이렇게 은퇴하면 자넨 영원히 기사가 되지 못할 거야! 영원히!”

레오를 회유하려 들었다. 하지만 감언이설과 협박이 총동원된 회유에도 레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옌센은 끝내 질린 얼굴로 말했다.

“자넨 정말 자네 아버지와 다르군. 아니, 이렇게 은퇴해버리는 걸 보면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좋아. 좋을 대로 하게.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기사단에 입단할 생각일랑 치워버리게. 자네의 종자… 그 약혼녀란 사람도 마찬가지야. 그럼 가서 잘 살기를 바라네.”

화가 나서 악담을 늘어놓은 건 아니었다. 그저 사실을 읊어준 것에 불과하다. 그는 언제고 아버님과 어머님을 뵈러 찾아가겠다고 말하며 악수를 청했다.

다음날. 레나와 레오는 진지를 떠났다. 옌센이 포상 명목으로 여비를 조금 챙겨주었고, {초기자금}이 그대로 남아있었으므로 여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다.

다만, 레오가 정한 행선지는 에이브릴 성이 아니었다. 그는 레나에게 제롬 신성왕국에 다녀오자 말했다.

“왜?”

레나가 물었으나 레오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다음다음 회차를 대비함이라고 말할 수 없어서 여행을 핑계로 들었는데, 레나는 레오의 말을 ‘거역’하지 않았다. “알겠어.” 다소 침울하게 답했다.

그 반응에 가슴이 미어졌으나, 다행히 레나는 차차 활기를 되찾았다. 차마 말 못 할 이유와 레나가 요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물론, 그녀의 요리 솜씨는 형편없었다. 신성왕국의 수도, 루테티아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 같지 않았으나 레오는 꾸역꾸역 맛있게 먹어주었다.

레오가 은퇴한 기사의 증표를 보여 수도교회에 견학을 신청했을 때는 무더운 여름이 지난 가을이었다.

무려 넉 달에 걸친 여행에 지쳤지만, 웅장한 교회를 본 레나 아이나르가 탄성을 질렀다.

“세상에! 사제가 바글바글해. 레오, 저기 봐봐. 저 사람이 성전사인가 봐. 성전사들은 어떤 검술을…”

레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재빨리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렸고, 레오도 못 들은 척하며 수도교회를 안내해주었다. 두 번인가밖에 안 와봐서 그도 길을 잘 몰랐지만 별 목적 없이 둘러보는 것이라 구경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주 목적이 없었냐면 거짓말이다. {추적술}을 따라간 레오는 도서관 앞 잔디에 앉아 책을 읽는 레아를 발견했다.

“아는 사람이야?”

“…아니.”

“근데 왜 그렇게 쳐다봐?”

레나의 눈매가 샐쭉해졌다.

사제인지 뭔지 하얀 옷을 입은 아가씨. 산들산들한 가을바람에 날릴까, 책장을 붙들곤 꿈쩍도 하지 않는 그녀는 꽤 예쁘장했다. 머리칼이 부스스 흩날리는 그녀에겐 레나 아이나르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차분함이 있었다.

“그냥 신기해서 본 거야. 아, 저기가 도서관인가 보다. 들어가 볼까?”

“말 돌리지 마. 넌 저런 타입이 좋아?”

“음… 레나야, 그럼 내가 어떤 타입을 좋아하는지 솔직히 말해줄까?”

불안하다. 괜한 걸 물었다고 생각한 레나는 가슴을 졸이며 “마, 말해봐.” 답했다.

“난 눈꼬리가 처진 사람이 좋더라. 조금 엉뚱하면 심심하지 않아서 좋구, 북부 출신이었으면 좋겠어. 요리는 못해도 괜찮아. 내가 하면 되니까. 그리고…”

“야! 너 지금 나 돌려 까는 거지?”

“어? 난 누구라고 말 안 했… 아야야야!”

레나가 레오의 옆구리를 콱! 꼬집었다. 두 사람은 아웅다웅하며 그 자리를 떠났고, 고개를 든 레아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아휴, 시끄러워.”

툴툴거렸다. 마침 점심시간이겠다, 집필 중인 논문 초안과 책을 챙겨서 베로니안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뭐, 별다른 일은 없었다.

* * *

몇 달 뒤, 루테티아와 수도교회를 충분히 관광한 레나와 레오는 에이브릴 성으로 돌아갔다.

언제쯤 레브가 올지 몰라서 차일피일 돌아가는 날을 미루던 레오는 겨울이 찾아오자 이만큼 기다렸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브가 짠! 하고 등장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나, 그건 적어도 ‘이번’ 회차에서 발생할 일이 아니었다. 레오는 슬슬 집으로 돌아가자 말했고, 레나는 기뻐했다.

그러기를 천만다행이었다.

에이브릴 성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레나가 임신했다. 입덧이 심하게 와서 밥을 거의 먹지 못하고 헛구역질까지 하기에 레오는 급히 마차를 빌렸다. 부족한 돈은 소지한 검을 팔아 충당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레나의 배는 눈치챌 수밖에 없을 만큼 불러 있었다.

그 때문일까.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귀환했느냐 질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레오의 아버지, 노엘 덱스터만이 그 이유를 알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결혼식은 서둘러 진행됐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나르 부족의 관례를 어길 수는 없기에 결혼식이 준비되는 동안 레오 덱스터와 레나 아이나르의 이름은 기다란 장대에 걸려 사흘 동안 나풀거렸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

아이나르 부족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든 가운데, 주례를 선 사제가 엄숙히 선언했다.

“…한 부부의 탄생을 신께 고합니다.”

레나는 밝게 웃었다.

더는 바라는 게 없다는 듯한 웃음. 레오 덱스터는 어쩐지 가슴이 아팠으나 밝은 웃음을 돌려주었다.

그 이후로 행복했냐고?

난 모른다.

[ 레나가 결혼했습니다! 축하합니다! ]

그러길 빌며 엔딩을 기다릴 뿐… 레나와 세상이 멀어지며 어둠이 깔렸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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