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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9

< 아버지 레온(1) >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을 간 졸이게 한 25일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끝이 났다.

“기념비적인 순간입니다. 미합중국은 처음으로 게이트 너머의 온전한 세계와 마주했고, 제국의 황제폐하와 홉슨 행정부의──”

“실종되었던 선발 정찰대 또한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귀환──”

“심지어 드라고니아 황제는 범세계적인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는 만신전의 사자심왕의 무남독녀인 것으로 밝혀져 더욱──”

숱한 게이트가 발생한 이후로 처음으로 있는 온전한 세계와의 접촉. 게다가 그 너머의 지배자가 레온의 하나뿐인 친자식이라는 소식까지.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이 사실을 보도했으며 그들은 새로운 세계와의 접촉을 기대했지만······.

“드라고니아 제국은 당분간 지구와의 접촉을 자제할 생각이다.”

단상에 오른 이계의 황제, 카리나 드라고니아는 그들의 기대를 처참히 뭉갰다.

“그, 그게 무슨 뜻이십니까?”

“말 그대로다. 본작의 말을 곡해하지 말도록.”

“어째서입니까? 제국과 미국의 교류는 분명 양쪽의 발전을──”

“발전?”

그 말에 카리나가 대놓고 피식 웃었다. 그녀의 이어지는 말은 차가우리만치 현실적이다.

“나는 짐의 제국을 지구의 식민지로 만들 생각이 없다.”

“시, 식민지라뇨! 오해십니다!”

“무력에 의한 점거는 불가하겠지. 내가 있으니까. 하지만 문화, 정치, 경제 그 모든 것이 독이 든 성배다.”

그 말의 뜻을 몇몇은 알아들었다. 제3세계의 빈민국들이 열강들의 경제, 문화 식민국이 된다는 논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증명된 사실이니까.

“그러니 나를 드라고니아 황제가 아닌 라이온하트의 드라고니아 대공으로 인지해라. 내가 이 세계에 온 것은 오롯이 사자심왕을 돕기 위함이다.”

그것을 끝으로 카리나는 입장표명을 끝냈다.

심지어 워싱턴 D.C.에 열린 게이트도 카리나와 베아트리체가 함께 철거하였으니 미국이 게이트 너머의 세계에 간섭할 일은 당분간 사라진 셈이다.

“임시 계획이긴 했지만, ‘민주주의 배달’ 계획은 보류해야겠습니다.”

홉슨 대통령은 보좌관들의 보고에 아쉬움을 내비치며 잠시 엇나갔던 방향을 되돌렸다.

“그럼, 워싱턴의 위기를 해결한 영웅들의 축하연이나 진행합시다. 곧 크리스마스 아닙니까.”

어쨌든 주가는 회복했고, 폭락하던 워싱턴의 부동산은 진정됐다. 홉슨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에 더이상 이런 빅 이벤트가 터지지 않길 바랐다.

* * * *

워싱턴 한가운데 최고급 5성 호텔 인터컨티넨탈의 스위트룸. 만선전을 위해 미 정부가 최고층을 통째로 내어준 곳에서 카리나는 야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대단히 발전한 도시군요. 이런 건 상상에서도 떠올리지 못했는데요.”

“그래봤자 신들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범속한 자들이다. 그들이 화려함으로 치장했을지언정 마음의 안식은 얻지 못했어.”

레온은 천박한 자본주의와 무책임한 민주주의를 멸시했다. 그에게 있어 인간의 과욕은 책임지지 못할 욕망이다.

등 따습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누릴 건 누리면서 살면 그만인 것을,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과욕을 부리는 자들이 문제였다.

“그렇기에 이토록 눈부신 발전을 이룬 것이 아니겠습니까.”

카리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지만, 냉철하게 경계심을 숨기진 않았다.

그렇기에 제국과 미국을 잇는 게이트를 닫아버린 것 아니겠는가.

물론 양쪽을 완전히 차단할 생각은 없다. 베아트리체를 통해 제국으로 이동할 것이고 카리나가 지구에 대해 충분히 파악한 뒤에는 기술력을 확보할 생각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카리나의 판단하에 필요한 것만 옮겨질 것이다.

“그나저나 괜찮은 것이냐?”

“무엇이 말입니까?”

“너의 제국 말이다. 그리 대충 넘겨버리고 이곳에 왔어도 괜찮겠느냐?”

카리나는 드라고니아에서 있었던 구혼 소동을 일단락 짓고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았다.

정확히는 일시적으로 맡겨둔 것에 가깝다. 귀족들이 어찌 생각하든, 카리나는 언제든지 권력을 탈환할 절대적 무력이 있다.

“저는 여전히 그들의 황제입니다. 딱히 선위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황제의 부재는 그들로 하여금 크나큰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이건 시험입니다.”

“시험?”

“본디 제국은 제가 아니라 관료들에 의해 움직였습니다. 저는 군림할 뿐, 지배하지 않는 군주였죠.”

“라이온하트였다면 틀리지 않다. 다들 어련히 알아서 할 테니까. 하지만······.”

다른 세계는 라이온하트와는 다르다.

귀족이 고결하고, 기사가 자유민을 지키는 건 마땅한 의무이며 그렇기에 자유민들은 그들을 섬기고 세금을 바친다.

헌데 이 지구는 그런 당연한 공존의식이 부재했다. 말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떠들지만, 부패하고 탐욕적이며 제 의무조차 지키지 않는 것이 허다하다.

라이온하트의 우월함은 흔들리지 않는 고결함과 기사도에서 온다. 이를 카리나도 짐작했다.

“압니다. 그들은 아마 실패할 겁니다. 정확히는 나라를 좀먹겠지요.”

“그럼 어째서?”

“그들의 실패가 저를, 용제의 귀환을 기다리게 할 것입니다. 저는 두려운 황제였으나 실패하지 않는 황제였으니까요.”

그리고 그건 용신 드라고니아의 신앙 전파에도 유리해질 것이라 덧붙이는 카리나. 그때, 그녀의 그림자에서 사이한 웃음소리를 흘리는 무언가.

[크크큭, 우매한 난쟁이들은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하니 말이야.]

레온은 그런 드라고니아에게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

“나쁜 전략은 아닌 듯하오. 당신께서 생각해내신 것이오?”

[이런, 제법 어법이 부드러워졌군. 언제는 도마뱀이라더니?]

“당신께서 신을 자처하신다면, 악신이 아닌 이상에야 제가 모실 신들 중 한 분이 되겠지. 물론, 용신의 선택에 달린 일이오.”

[내 하기에 달렸다? 마음에 안 든다면 단칼에 베어버리겠단 말을 어렵게도 말하는구나.]

“······.”

드라고니아의 추측을 레온은 부정하지 않았다. 드라고니아는 그의 공경한 태도에 흡족해하면서도 여전히 시건방진 레온을 꽤나 관대한 태도로 받아들였다.

[뭐, 좋다. 이 용신 드라고니아, 네놈 딸의 수호신이 되었으니 조금은 관대해질 수도 있지.]

드라고니아는 이 거래에 꽤 흡족했다.

오만한 신들이 신성을 내어줬다는 굴욕적인 제안부터 자신이 치러야 할 대가는 사로잡은 한 명의 영혼과 육신이었으니.

물론 부가세로 3만 북부군의 영혼을 내주긴 했지만, 대국적인 측면에서는 드라고니아의 이득이다.

“그대는 이제 신들의 좌를 차지한 몸. 응당 악종들을 멸하는 데 협력해야 할 것이오.”

[말하지 않아도 어련히 알아서 할까. 내가 신들보다도 더 혐오하는 것이 더러운 악의 파편들이다.]

악마라는 공통된 적 앞에 용왕은 기꺼이 신들의 손을 붙잡았다.

카리나는 제 안의 심장에 기거하는 용왕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스스로 칭할 신성은 정하셨소? 신앙을 퍼뜨리려면 마땅한 강령이 필요할 터인데.”

[클클클··· 내 안 그래도 생각해둔 게 있다.]

레온은 여전히 이 옛 망령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공과 사는 구분했다.

“대축성 의식 때, 새로운 신의 강령을 선포할 것이오. 그때까지 신들과의 협의를 끝내시오.”

[어련히 알아서 하려고.]

“신을 자처한다면, 신민을 위해 마땅한 사랑을 베푸시오. 강령이란 신들이 인간과 이어지기 위한 교량이 될 것이니.”

레온은 드라고니아에 대한 충고 아닌 충고를 하고서 카리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카리나. 이후에 별다른 일정이 있느냐?”

“네, 뭐··· 크리스마스라는 기일에 이것저것 제안이 있기야 합니다.”

당장 이번 게이트 공략 성공을 기념하는 축하연이나 미국 내 유수의 경제, 정치 단체들은 라이온하트의 사자심왕과 드라고니아 제국 황제에게 관심이 많았다.

이번에 동아시아로 귀환하면 언제 올지 모르니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으려는 이들로 가득할 수밖에.

“그런가······.”

레온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다 말기를 반복했다. 그를 아는 이라면 누구나 놀랐을, 우물쭈물한 사자심왕의 태도.

카리나는 철옹성 같았던 아버지의 태도에 의아한 눈치다.

하지만 결국, 레온은 자신이 꺼내고자 한 말을 내뱉었다.

“그럼 짐과··· 아니, 이 아비와 데이트라도 하지 않겠느냐?”

레온이 어렵사리 말한 제안에 카리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 * * *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만신전 기사들은 워싱턴에서 휴가를 보낸다는 말에 들떠 있었다.

불타는 검 기사단이야 어딜 가든 비슷하게 놀랍고 색다른 경험이라지만, 레온이 지구에서 결성한 나주 기사단원들은 대다수가 아직은 아카데미에 적을 둔 학생들이다.

게이트 공략을 위해 미국에 출병한 것만 해도 반쯤 해외여행 기분이었는데, 크리스마스까지 미국에서 보내다니.

심지어 기사 한 명 한 명에게 지극정성으로 보필해주는 미 정부의 지원이 있다면 더더욱 들뜰 수밖에.

-디즈니랜드 갈 사람 손!

-멍충아. 디즈니랜드는 캘리포니아에 있어. 워싱턴의 정반대라고.

-워싱턴 미슐랭 레스토랑을 예약해준다는데 투어 한 번 가보즈아!

-나는 올림픽 국립공원 가볼래! 우리 쭌이하고 신나게 달려볼 거야!

-그 동네 부지가 백만 에이커라는데, 곰도 있지 않냐? 말 잡아먹히면 어쩌려고?

-손가락으로 곰 줘패면 됨.

-응천연기념물. 잡으면 감옥감.

하여튼, 그들은 크리스마스 직전까지 온갖 계획을 짰다. 졸업반의 기사단원들에게는 올해가 학생이라는 신분의 마지막 겨울.

백악관이 편의를 봐주는 최고의 크리스마스를 즐길 작정이었지만······.

-끼룩! 똑바로 서라, 유기체. 그렇게밖에 못하냐.

날카로운 강철 와이어가 채찍처럼 휘둘러지며 위압감을 조성한다.

미니멀 사이즈의 귀여운 거미로봇은 사납게 와이어를 휘두르며 기사단원들을 도열시켰다.

-A-37번. 차렷자세 똑바로!

“아, 옙!”

야피의 지시에 바짝 자세를 잡는 소년. 야피는 맨 앞줄의 천소연에게도 새빨간 적외선 시선을 향했다.

-유기체 대장이 똑바로 하지 않으니 유기체들이 엉망임. 군기 똑바로 잡아.

“읏···! 아, 알았어요.”

기사단장인 천소연이 긴장한 자세로 자세를 유지했으나 뭐가 또 불만인지 야피의 기계다리가 옆자리의 하리의 정강이를 찰싹 때렸다.

“아얏! 저, 저는 왜 때려요?!”

-불만 있음, 유기체?

“······.”

불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감히 내보낼 수 없는 말이었다.

군대에 끌려왔는데, ‘훈련병들, 군대 지금 끌려왔습니까?’라는 질문에 누구도 예! 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것처럼.

따지고 보면 사실 기사단원들은 엄연한 군인 신분이라는 게 또 다른 공통점이다.

-우리 언제까지 이래야 해?

-몰라, 폐하께서 그만하라 할 때까지?

그들의 군기 잡힌 모습과 야피의 지시대로 척척 움직이는 모습을 감상하며 레온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떠하냐? 신앙의 한 줄도 없던 무지몽매한 것들을 내 이리 볼만하게 키웠다.”

“그렇군요.”

카리나는 적당히 레온의 자랑에 맞장구쳤다.

빈말은 아니다. 레온이 이 세계에 온 지도 1년여가 다 되어간다.

불타는 검 기사단이야 200년 전에도 손꼽히는 정예 기사단이었지만, 이곳 지구에서는 만신전의 신앙 한 톨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이곳에서 기사단을 꾸리고 수천 명의 맨앳암즈를 재건한 레온의 수완은 드라고니아 대공으로서도 본받을 만했다.

“기사 한 명을 키워내는데 수고가 보통이 아닐 텐데, 어찌 이리 빨리 기사단을 꾸리신 겁니까?”

“신들께서 도와주신 덕이지. 본래라면 기사 서임을 받을 정도의 공훈을 세우지 못한 아해들이다.”

레온은 만신전의 신들이 이례적으로 직접 기사들과 이어지기를 희망했으며 서임식도 라이온하트라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음을 알렸다.

“확실히··· 그런 방법이라면 정식 기사 수준은 아니더라도 양질의 병력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겠군요.”

물론 사자심왕에게 너무나 협력적인 만신전 신들의 가호가 있어야겠지만.

“나처럼 사랑받는 왕은 이토록 많은 것이 가능하다.”

레온의 자랑을 들으며 카리나는 피식 튀어나오는 웃음을 억눌렀다.

그는 자신의 것을 누군가에게 자랑하듯 내보이는 사람이 아니다. 신들의 권위를 빌려 자신의 위세를 드높이는 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자신이 신들의 대리인임을, 신들이 자신을 위해 행하는 모든 사랑을 그저 순수하게 기뻐하는 충실한 신도일 뿐.

그것을 딸에게 자랑한다는 것은 긴박했던 과거와 달리 조금 유해진 여유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하여 즐겁기도 했다.

이런 분이기에 신들이 마땅히 그를 사랑하는 거겠지.

“그중에서도 저 네 명은 특별하군요. 모두 성물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데다, 한하리와 천소연이라고 했던가요? 솔직히 놀랐습니다.”

“그래, 재능 있고 신의 총애를 자격이 있는 기사들이지. 그것 아느냐? 저 기사들에게 성물을 계승하기로 한 건 달의 신관장이다.”

“이사벨 이모님이··· 말입니까? 아··· 그때군요. 폐하께서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실 적에······.”

카리나는 게이트가 과거의 사건들을 기록해둔 거대한 기록관이라는 추측을 들었다.

그곳에서 라이온하트의 마지막 싸움도, 자신이 사자심왕을 떠나 다시 돌아왔다는 것도, 사자심왕이 마지막까지 어떤 싸움을 했는지도.

“······.”

실제 역사에서도 자신이 그랬다면 어땠을까? 그럼 사자심왕은 홀로 그토록 오랜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까?

그런 만약을 떠올리며 씁쓸해하는 것과 별개로 레온은 좁쌀 같은 목소리로 궁시렁거렸다.

“폐하. 음··· 폐하라. 음··· 그래, 폐하지. 음······ 이사벨은 이모지만, 나는 음······.”

공교롭게도 카리나 대공은 그것을 듣지 못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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