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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2화 가장 특별한 스킬

2화 가장 특별한 스킬

눈을 뜨자마자 감지된 것은 코가 썩을 듯한 악취였다.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주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그러나 점차 눈이 어둠에 적응해 가고, 때마침 창밖으로부터 달빛이 새어 들어오자 어렴풋이 주위를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악취에 젖은 담요를 밀어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일어났냐. 138번.”

목소리를 향해 눈길을 돌리자 상반신을 벗은 117번이 창가에 서 있는 게 보였다.

희미한 달빛 아래서도 나는 그의 몸이 흉터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다.

“식었지만 먹어둬라. 그래야 몸을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의 눈짓에 옆을 돌아보니 나무 그릇에 담긴 수프가 보였다.

허겁지겁 수프를 먹는 나를 보며 117번이 피식 웃었다.

“새끼. 누가 안 뺏어가니 천천히 먹어라. 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수프를 입 안에 욱여넣으며 나는 생각했다.

갱도에서 들었던 여러 이야기를 미루어 보아, 그간 F조는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게다가 그 일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무래도 이 몸의 주인인 데미안 같았다.

‘그런데도 F조는 내 몫의 식사를 따로 챙겨왔다.’

쉽지 않은 일이다.

감독관이 이런 행동을 용인할지도 의문이고, 설령 그렇다 해도 소년들은 배고픔의 유혹을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117번의 입김이 작용했다.’

나는 그릇에 눌어붙은 수프를 혀로 핥으며 117번을 봤다.

생각대로 녀석은 뛰어난 리더십을 지녔고, 조원들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다.

갱도에 쓰러진 나를 이곳까지 옮겨온 것도 녀석일 테지.

‘아니. 어쩌면 그저 나를 살려두는 편이 할당량 채우는 데 유리할 거라 생각했는지도.’

나는 경계의 마음을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나는 내심 의아했다.

갱도 안에서도 느꼈었지만, 내가 ‘김우진’이던 시절의 말투와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무리 소설 속 세계로 진입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도, 이렇게 침착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도 쉬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고마워할 것 없다. 네가 살아서 한 사람 몫을 해야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거니까.”

이마의 땀을 훔쳐낸 117번이 상의를 걸쳤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새로운 의문을 느꼈다.

아무리 실내라도 밤공기는 차갑다.

어느새 나도 악취 따위는 무시한 채 담요를 덮어쓰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녀석은 조금 전까지 상의를 벗고 있었을까. 게다가 이마 위를 흐르던 땀은?

번득, 광산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작업을 마친 뒤 117번은 나에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었고.

‘내일은 더 열심히 해 보자고. 138번.’

그때 나는, 녀석의 품 안에서 무언가를 봤다.

“다 먹었으면 한숨 더 자 둬라. 내일도 고된 노동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나를 향해 씩 웃어 보인 117번이 자리로 돌아가 누웠다.

“넌 이름이 뭐지?”

그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이름을 먼저 밝히기로 했다.

“내 이름은 데미안이야.”

“테오.”

짧게 답한 그가 곧 깊고 고른 숨소리를 냈다.

하지만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오늘 하루 엄청나게 많은 일이 벌어졌다.

가이아 작가에게 처음으로 답신을 받고.

뜬금없는 리메이크 제안을 거절하고.

작가의 무책임한 말에 화를 내다가 소설 속 세계에 갇히고.

광석 캐는 일을 배우고, 또 작업을 마친 뒤에는 먼지를 닮은······.

‘······!’

두 눈이 부릅떠졌다.

먼지.

아니 먼지를 닮은 그 녀석은 어떻게 됐지?

나는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몇몇 소년이 잠꼬대하듯 시끄럽다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빌어먹을. 환각이었나.

나의 머릿속 세계는 이제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린 건가.

‘후우······.’

체념한 채 자리에 누웠을 때였다.

담요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났다.

이어 자그만 회색 강아지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헥. 헥. 헥.

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맺혔다.

물론 이 녀석이 진짜 ‘먼지’는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녀석의 존재는 이 낯선 세계에서 내게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나는 ‘먼지.’ 하고 불러봤다.

녀석이 혀를 헥헥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수프를 남겨둘걸.’

다행히 먼지는 배고픈 기색이 아니었다.

나는 먼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무한회귀 시스템에 접속합니다.]

[데미안 라플라스의 상세 스테이터스와, 리메이크에 필요한 여러 기능 및 설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

기억났다.

갱도에서 먼지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게임 시스템 같은 메시지가 나타났었다.

‘이건 기존의 무한회귀에서는 없었던 장치인데.’

게임의 형식을 차용한 판타지 소설은 많지만, 무한회귀는 아니었다.

무한회귀는 소위 말하는 ‘정통 판타지 소설’이었다.

‘하긴 달라질 수도 있지. 이건 리메이크니까.’

어찌 됐든 내게 나쁜 일은 아니다.

상태창은 대개 사용자에게 아주 직관적이고 실용적인 장치가 된다.

————————

◎ 데미안 라플라스 [14세], [Lv.1]

◎ 속성: 없음

◎ 특성: [비상한 적응력], [회복력], [불굴의 정신], [리메이커], [■■■■■■ ■■], ······

◎ 적성: [자연 감응 Lv.1], [■■■], ······

◎ 일반 스킬: 없음

◎ 전용 스킬: [미니맵 Lv.1], [■■■], ······

◎ 특수 스킬: [리메이크], [■■■■ ■■], ······

————————

나는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상태창 사용법에 익숙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레벨은 역시 1부터 시작인가.’

무한회귀 설정집에서 ‘레벨’이란 등장인물의 강함을 표현하는 가장 직관적인 척도였다.

‘명목상으로는 1레벨부터 99레벨까지 있었지.’

속성란은 비어 있었기에 바로 특성란을 봤다.

◎ 특성: [비상한 적응력], [회복력], [불굴의 정신], [리메이커], [■■■■■■ ■■], ······

아무래도 저 ‘비상한 적응력’이 내가 지닌 침착함의 근원인 듯했다.

자고 일어나니 몸 상태가 제법 괜찮아진 이유는 그 옆의 ‘회복력’ 덕분일 테고.

‘불굴의 정신’과 ‘리메이커’도 대략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알 수 없는 건 저 검은 사각형으로 가려진 부분.’

아마도 어떤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해금되는 설정일 테지.

◎ 적성: [자연 감응 Lv.1], [■■■], ······

‘자연 감응’은 정령술사와 드루이드가 지닌 대표적인 능력이다.

하지만 그들은 무한회귀의 세계에서 상당히 희소하고, 인간 중에서는 거의 없다시피 한 존재.

그런데 왜 저 적성이 나에게 있지?

나는 품에서 헥헥대는 회색 강아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먼지야. 너 혹시 정령인 거야?

◎ 일반 스킬: 없음

◎ 전용 스킬: [미니맵 Lv.1], [■■■], ······

일반 스킬은 비어 있었지만 전용 스킬의 ‘미니맵’에서 눈이 확 뜨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글자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시야의 한쪽 구석에 동그란 미니맵이 떠올랐다.

나는 만족의 미소를 머금었다.

이 스킬은 앞으로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이곳을 벗어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겠지.’

일 순위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지만, 언제까지고 이곳에 머무를 생각은 없다.

나는 광산을 탈출할 것이다.

◎ 특수 스킬: [리메이크], [■■■■ ■■], ······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특수 스킬.

가장 궁금한 부분이기도 했다.

스킬 이름이 ‘리메이크’라니.

스킬명에 정신을 집중해 봤지만 상세 설명은 떠오르지 않았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상세 설명을 볼 수 없습니다.]

‘써보면 알겠지.’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혹시라도 이 스킬이 어떤 가시적인 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기에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모두 곤히 잠들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조용히 심호흡했다.

그리고 ‘리메이크’ 스킬을 실행했다.

[스킬 발동에 실패했습니다.]

[특수 스킬 발동엔 RP가 필요합니다.]

[RP가 부족합니다.]

‘뭐?’

다시 실행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RP가 부족합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RP라고?’

RP라는 미지의 글자에 의지를 집중하자 찌릿, 머릿속에 전류가 흘렀다.

이어 상태창이 부옇게 흐려지는가 싶더니 새로운 메시지가 주르륵 솟아올랐다.

————————

– 수달꼬리팡팡: 엥? 이거 리메이크함?

[RP가 1만큼 상승합니다.]

– 바토리바라기: 뭐야 쥔공 바뀜?

– 박쥐인간: 그런 듯? 제목도 ‘무한회귀’가 아니라 ‘무한회귀의 리메이커’네

[RP가 2만큼 상승합니다.]

– 연중하면개새끼: 연중튀했던 작가놈이 미쳐서 돌아왔다!

[RP가 1만큼 상승합니다.]

◎ RP: 4

————————

나는 잠시 멍하니 그것을 바라봤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저 메시지들은 리메이크를 시작한 ‘무한회귀’에 달린 댓글이라는 것을.

아니, 내용을 보아하니 소설 제목도 ‘무한회귀의 리메이커’로 바뀐 모양이다.

‘RP란 건 Reply Point를 말하는 건가.’

확실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어찌 됐든 댓글이 달릴 때마다 RP가 상승했다.

‘독자의 댓글을 통해 RP를 획득하고, 그렇게 수집한 RP로 특수 스킬을 사용한다는 건가.’

악플이 달릴 경우에도 RP를 획득할 수 있는지 궁금증이 일었지만 머릿속에서 지웠다.

어차피 이 세계에서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일이다.

그것보다 나는, 댓글을 쓴 익숙한 닉네임들을 보며 감회에 젖었다.

‘수달꼬리팡팡, 바토리바라기, 박쥐인간, 그리고 연중하면개새끼.’

나와 마찬가지로 ‘무한회귀’의 세계에 푹 빠졌던 열성 독자들.

그들을 보니 내가 소설 속 세계에 들어왔다는 것이 뼈저리게 실감 났다.

그래.

이곳은 현실이 아닌 픽션의 세계.

이 세계와, 이 세계의 등장인물은 모두 활자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짜’다.

띠링.

그 순간 알림음이 울렸다.

부옇게 변했던 상태창이 다시 선명해지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조건이 충족되어 새로운 특성이 해금됩니다.]

◎ 특성: [비상한 적응력], [회복력], [불굴의 정신], [리메이커], [■■■■■■ ■■], ······

특성란의 검은 사각형으로 가려져 있던 부분이 부르르 진동했다.

[■■■■■■ ■■]

진동하던 도형이 뒤틀리고, 점차 무언가의 형상을 이뤘다.

.

.

.

[아스트레아의 천칭]

아스트레아는 이 세계를 떠받치는 광활한 대륙의 이름이다.

그런데 ‘천칭’은 뭐지?

나는 특성명에 정신을 집중해 봤다.

◎ 아스트레아의 천칭

[아스트레아 대륙의 정기(精氣)가 모여 태어난 환상의 저울대.

리메이커가 이 세계를 ‘픽션’으로 인지하는지, ‘현실’로 인지하는지 정교한 수치로 가늠할 수 있다.

리메이커의 심상에서 픽션의 무게추가 무거워지면 저울대가 ‘왼쪽’으로, 현실의 무게추가 무거워지면 ‘오른쪽’으로 기울어진다.]

예상치도 못한 내용.

그러나 핵심 문장은 그 아래 있었다.

[저울대의 방향과 기울기에 따라, 리메이커가 지닌 가장 특별한 스킬인 ‘리메이크’의 위력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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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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