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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2화 흑색 게이트

서울 한복판에 게이트가 열렸다.

이것 자체는 그리 진귀한 일은 아니다.

잠실 게이트, 남양주 게이트, 송도 게이트 등 30년 전 지구 전역에 게이트가 열린 이후 도심 한복판에서 게이트가 등장하는 건 이제 일상이 되었다.

문제는 게이트의 등급이다.

“흑색…….”

세계 헌터협회의 공식 측정등급에서도 논외로 치는 ‘규격 외’ 등급.

게이트 내의 에너지량으로 측정하는 것이기에 99.9%의 적중률을 자랑한다.

한국 헌터협회는 이에 전면적인 대비를 했다. 세계 헌터협회에 지원을 요청했고 국내의 내로라 하는 헌터 길드들에 게이트 진입을 요청했다.

“씨발 새끼들… 이럴 때만 바쁘다 이거지.”

“헌터 길드들이 그러는 거 한두 번인가요.”

헌터 협회의 김진수 과장의 말에 소속헌터 한하리는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표정을 했다.

13년 만에 나타난 흑색 게이트. 국내의 대형 길드들은 초기 진입을 거부하고 관망에 나섰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A등급 게이트인 주홍색만 해도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 일쑤다. 그런데 S등급의 적색도 아닌 규격 외 등급의 흑색이라니?

어떤 대형 길드도 자신의 귀중한 전력을 위험도 측정불가의 게이트에서 소모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결국 게이트의 용태를 살피기 위해 정부 산하의 헌터협회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선발대가 먼저 진입해 위험도를 살피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들고 귀환해 대형 길드들에게 배포한다.

사전 정보만 제대로 숙지한다면 공략법에도 큰 이득이 있기에 정석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문제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진입해야 하는 선발대다.

“하리야… 너 괜찮겠냐?”

김 과장은 헌터 협회 선발대로 따라온 하리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했다.

위험한 선발 정찰 임무였다. 협회에서도 지원자만 뽑아 유서를 남기고 출발할 정도로 비장한 결의를 했다.

그런 곳에 이제 겨우 스물에 유망주인 협회 신입이 나선다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괜찮아요. 지원자 중에 A급 헌터는 저밖에 없잖아요. 제대로 된 격수 한 명은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도 말이다…….”

A급 헌터는 확실히 큰 전력이다. 무엇보다 헌터 협회에는 소속된 A급 헌터가 없다시피 했다.

그 정도로 재능 있는 헌터들은 죄 대형 길드에 들어갔으니까.

“시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녕을 위해! 그게 우리 협회의 모토 아니겠어요?”

“……미련한 년.”

그녀는 협회의 몇 안 되는 유망주다.

대형 길드가 인재들을 죄 흡수해버린 현대 지구에서 국가 소속 공무원이 되길 자청하는 헌터들은 대개 D급이나 C급. 짬이 차도 겨우 B급에 불과했다.

그런 협회에 아카데미를 졸업하자마자 입사 신청을 낸 A급 헌터 유망주. 잘만 키우면 협회장을 제외한 유일한 S급 헌터를 노려볼 만한 인재.

마음 같아서는 미래를 위해 제발 돌아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대로 돌려보내기엔 선발대의 전력이 너무나 부족하다.

13년 만의 흑색 등급이다. A급 헌터가 아니라 S급 헌터를 대동해도 부족할 선발 임무였음에도 A급 헌터는 하리 한 명뿐이었던 것이다.

“후… 제발 살아서 돌아가길 빌자고.”

-진입합니다! 다들 준비하십쇼!

* * * *

“흐으… 하필이면 필드형 게이트인가.”

진입한 게이트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몇몇 게이트들은 멸망한 것처럼 황폐해져 있기도 했지만, 협회 선발대가 입장한 흑색 게이트는 그들의 상상을 벗어났다.

먼저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선홍빛으로 물든 하늘은 석양빛이니 뭐니 하는 수준이 아니다.

마치 하늘이 뒤집어진 것처럼 섬뜩한 붉은빛이었다.

지상은 풀 한 포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정말로 생명체가 살아있었던 곳일까 싶을 정도로 메마르고 황폐해져 있다.

“세상에, 이런 게이트는 처음 봐요. 대체 여긴 어디죠?”

“긴장해, 하리야. 측정불가 게이트는 13년 만이라고. 뭐가 나올지 몰라.”

“알아요… 그런데 이쪽 세계는 대체 뭐가 있기에 등급측정도 안 되는 거죠?”

“몰라… 상급 악마라도 있는 거 아니야?”

“끔찍한 소리 좀 하지 마세요.”

그때였다. 하리를 비롯해 입장한 협회 소속 헌터들에게 메시지창이 날아왔다.

[게이트 미션]

세계에 게이트들이 등장하고 헌터들이 마력을 각성하게 된 이후 생겨난 미션 시스템창.

게이트에 진입한 헌터들에게 게이트의 최소한의 정보와 클리어 목표를 알려주는 귀중한 시스템이다.

“과, 과장님….”

“씨발…….”

하지만 시스템창을 확인한 헌터들은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파르르 떨었다.

[모든 악마를 사냥하십시오.]

남은 악마 : 117 / ????????

“악마…….”

숱한 게이트 중에서도 고등급 게이트에서 간간이 등장하는 종족.

6년 전 주홍색 등급 게이트에서 등장한 상급 악마 칸발라는 한국의 S급 헌터 고진혁을 살해하기도 했다.

그뿐일까. 22년 전, 중국에서 발생한 대악마 스카쟈카리어나 군주급 악마의 등장은 항상 끔찍한 참사를 일으켰다.

“씨발! 씨발! 당장 나가야 해!”

“과장님!”

최악의 사태에 잔뼈 굵은 김 과장마저 혼란에 빠졌다.

이 게이트는 수많은 게이트 중에서도 악마가 출몰하는 데몬 게이트다.

“그 새끼들은 죽여도 안 죽는다고!”

정말로 죽지 않는 존재인 건 아니다. 다만 부활할 뿐.

22년 전, 중국 상해 데몬 게이트에서 등장한 대악마 스카쟈카리어는 지금까지 토벌 횟수만 다섯 번을 넘었다.

하지만 데몬 게이트는 소멸되지 않고 4년마다 부활해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것이다.

“진정하세요, 과장님. 악마라곤 해도 고작 117마리예요. 의외로 쉽게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게 더 문제야! 고작 117마리인데 흑색 등급이 떴어! 그렇다는 건 최소로 잡아도 대악마는 있다고 봐야 해!”

던전의 등급 측정은 던전 내의 에너지량으로 결정된다.

고작 117마리의 악마들이 있음에도 등급이 흑색이라는 건 그만큼 개체 하나하나가 끔찍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의미였다.

무엇보다 대악마급의 데몬 게이트라면 상해 데몬 게이트처럼 던전이 클로징 되지 않고 영구히 남을 우려가 있었다.

끔찍한 일이다. 당장 상해만 해도 그 데몬 게이트 때문에 유령도시가 되지 않았는가.

“일단 후퇴해! 데몬 게이트라는 걸 협회에 알려야 해!”

이건 고작 20명도 되지 않는 선발대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파티 리더인 김 과장이 후퇴를 결정했을 때였다.

“과장님! 저길 보십시오!”

한 헌터가 가리킨 방향. 그곳에는 커다란 가면 면상을 한 악마가 헌터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망할… 그레이트 소드다!”

하급 악마 그레이트 소드.

제 육신보다 거대한 검을 든 1.5m 가량의 소인종 악마.

그러나 하급 악마라고 방심할 수 없다. 악마들 중에서도 그레이트 소드는 유독 강력한 공격력을 지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거대한 검을 가진 그레이트 소드의 공격에 스치면 인체를 멈추지 않는 출혈을 유발했다.

“아아……”

그리고 그레이트 소드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속속 등장하는 그레이트 소드들. 거기에 다른 악마들까지 벌써 숫자가 백을 넘었다.

“버, 벌써부터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킨다고?”

어떤 게이트라도 미션 클리어까지는 유예기간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이렇게 몰려오다니?

-게이트다! 게이트야!

-살았어살았어!

-도망쳐도망쳐!

기괴한 환호성을 일으키며 기뻐하는 악마들. 헌터들은 숨이 터져라 달려오는 악마들을 보며 무기를 쥐었다.

“저, 전부 정신차려! 악마들이 게이트를 넘어가게 해선 안 돼! 놈들이 지구로 넘어가면 바로 숨어들 수 있다!”

악마들의 특징이다.

그들은 인간으로 둔갑하거나 인간의 그림자 속에 숨어들었다.

한 마리의 악마만 숨어들어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기에 데몬 게이트는 무조건 게이트 내에서 클로징 하는 것이 원칙.

“진열을 갖춰요! 제가 선두에 설게요!”

“하리야!”

김 과장의 만류에도 하리는 최선두에서 검을 뽑았다.

탱커도 아닌 그녀가 선두에 서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지만, 지금 공포에 사로잡힌 헌터들을 격려하기 위해선 그녀가 필요했다.

-도망쳐! 도망쳐!

-살고 싶어! 소멸되고 싶지 않아!

알 수 없는 언어로 뇌까리며 돌진해오는 악마들. 가장 먼저 선두로 달려온 건 헬 하운드다.

최하급 악마지만 그 속력이 자동차보다도 빠른 사족보행의 마수. 그것들이 하리를 향해 숨을 헐떡이며 돌진해왔다.

-캬아아아아아!

뛰어드는 헬하운드. 하리는 검에 마력을 실어 헬 하운드들을 베어냈다.

마력을 실은 검은 손쉽게 놈들의 가죽을 베어냈고, 괴로워하며 버둥거리는 헬하운드.

‘좋았어! 시작이 좋아!’

단번에 네 마리를 처치했다. 자신의 분투를 보며 사기라도 오르길 바라던 그때, 배가 갈라진 헬하운드들이 이상행동을 일으켰다.

“뭐, 뭐야?”

치명상을 입었을 터인 헬하운드들이 피를 쏟아내면서 우직하게 달렸다. 마치 어떻게든 게이트를 넘어가려는 것처럼.

“막아!”

하지만 그건 진열을 짠 헌터들의 저지로 가로막혔다.

헬하운드들 뿐만이 아니다. 그레이트 소드들도 정면의 헌터들과 부딪치더니 거의 대응조차 하지 않고 게이트를 향해 기어갔던 것이다.

-온다! 온다!

-오고 있어! 놈이 오고 있어!

-안돼! 도망쳐! 게이트를 넘어!

“뭐, 뭐지?”

“이놈들이 단체로 약을 쳐 드셨나…….”

덕분에 손쉽게 악마들을 쓰러뜨렸지만, 하리를 비롯한 헌터들은 찝찝한 기분을 버리지 못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면 또 부활하는 놈들이라지만 왜 이렇게 무식하게 달려드는 건지. 마치 ‘도망가는 것처럼’.

“하리야, 피해!”

그때였다. 쾅! 하고 지상을 덮치는 무언가. 충격파의 여파만으로 지형을 휩쓰는 압도적인 무언가가 하리를 비롯해 모두를 휩쓸었다.

“크흑…!?”

지면을 나뒹구는 하리. 그녀는 혼미한 정신을 부여잡으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한다.

“대, 대체 뭐가…….”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것을 하리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시야에 들어온 거대한 무언가.

찢어진 날갯자국과 사람의 것을 한참 넘어서는 거대한 크기의 도끼.

시뻘건 피부와 꿈에서라도 보고 싶지 않은 흉신악살의 시선.

“아아…….”

대악마.

날개 달린 거인.

S급 헌터조차 산채로 찢어발겼던 데몬 게이트의 악몽.

“비켜라, 하등한 것들! 전부 죽여버리기 전에!”

악마는 소름 끼치는 파공음으로 헌터들을 압도했다.

헌터들은 그가 내뿜는 기운에 억눌려 감히 움직이지 못했고.

“끄, 끝이야.”

움직이지 않는 다리와 차오르는 숨. 절망과 공포가 모두를 짓누른다.

“아, 안 돼. 저놈이 지구로 넘어가면…….”

막아야 한다. 저런 괴물이 서울 한복판에서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킨다면… 천만 명의 시민들이 위험하다!

“안 돼.”

하리는 검을 들었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끌었다. 항거할 수 없는 절망의 앞에 섰다.

“하찮은 인간 주제에…!”

대악마는 자신의 앞에 선 하리를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살의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다급함이다.

“비켜라, 벌레!”

말 그대로 벌레를 치우려는 듯 휘두른 가벼운 일격. 하리는 모든 마력을 집중해 그 도끼질을 막았고…….

“끄헉?!”

단 일격에 게이트까지 튕겨져나갔다.

“커흑…!”

그 자체로 흉기가 되어 하리의 몸뚱이를 난도질하는 지면. 단 일격에 실감했다.

괴물.

저것은 괴물이다.

단 일격에 실감했다.

생존의 의지마저 꺾어버리기에 충분한 위용이었다.

“흐윽…….”

꺼져가는 불씨가 위태롭게 흔들리던 그때, 한 인기척이 그녀 앞에 멈춰 섰다.

처음에는 김 과장님인가 싶었다. 하지만 시야에는 대악마의 위세에 압도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협회의 헌터들이 보였다.

베테랑인 김 과장 또한 달달 떨며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바닥을 구르는 대악마의 머리통도.

“어?”

지금 제 앞에서 구르고 있는 게… 방금 전까지 자신들을 절망시킨 그 대악마의 머리인가?

“사, 사자심왕! 안 돼! 안 돼!”

절규하는 대악마. 그는 절단면에서부터 타들어 가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변의 악마들도 겁에 질린 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어어?”

대악마의 모습이 기이했다. 기록된 영상에서 대악마들은 으레 그러하듯 부활을 예고하며 인류에 대한 저주를 토해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악마는 어떤가?

“안 돼! 안돼! 성법이…! 내 영혼이… 소멸한다!”

마치 진짜 죽음을 눈앞에 둔 것처럼 절규하며 필사적으로 버둥거린다.

“아…….”

알겠다.

악마들은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기 위해 몰려든 게 아니다.

살기 위해… 누군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게이트를 향해 달려들었던 것이다.

대체 누가? 누가 저 잔혹한 악마들을, 무한히 부활하는 악마들을 떨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걸로 네놈들이 마지막이로구나.”

전라의 사내였다.

내가 헛것을 보고 있나?

이 멸망한 세계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그저 맨몸으로 낡은 롱소드 한 자루만 쥔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후광에서 비치는 빛은 은혜로울 정도로 성스럽고 찬란하다.

“일어서라, 용기 있는 자여.”

광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라고는 기품마저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말투.

흘러나온 음색, 태도, 자세… 모든 것이 남자의 차림새를 덮어씌웠다.

그저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렸다.

“하, 하하…….”

대체 이게 뭐지? 눈앞의 남자는 대체…….

“지금은 쓰러질 때가 아니니… 일어서 맞서 싸워라.”

그저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 힘이 흘러들어온 기분이다. 넘쳐나는 활력과 생기가 다친 몸을 일으켰다.

“당신은… 누구시죠?”

하리의 질문에 찬란한 금발의 사내는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짐이야말로 사자심왕. 영광된 기사들의 왕이며 만신전의 뜻을 대행하는 자.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이다.”

남자가 검을 들었다.

[모든 악마를 쓰러뜨렸습니다.]

남은 악마 : 0 / ????????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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