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2

#2 개인 강습

「ㅈi9별: 뭐야 냥님 닉이 왜 그래요?」

길드 톡방에서의 닉네임을 바꿨다. 앙심을 품고 ‘부길마추방’으로 바뀐 경수의 닉네임을 보고 모두 미친 듯이 웃었다. 다들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부길마인 할로윈가지는 그저 웃으며 자꾸 깝치면 강등해버릴 거라고 협박을 했다. 길드 마스터가 바빠서 못 들어오는 이상, 부길마는 법이었다. 경수는 얌전히 원래 닉네임으로 돌아왔다.

「완두완댜: 아 나도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는데ㅠ 냥님이랑 천노을이 운명적으로 엮이는 장면을 캡처로만 보다니 서러워서 죽어버릴 거야ㅠㅠ」

「나: 당분간 냥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ㅈi9별: ㅡㅡ 다들 호칭에 주의해주세요!! 냥(x) ㅊㄴㅇㄲ(o)」

「ㅈi9별 님께서 공지를 등록하셨습니다. ‘ㅡㅡ 다들 호칭에 주의…(더 보기)’」

「나: 그건 더 싫음 ㅅㅂㅠㅠ」

「ㅈi9별: 싫어도 어쩔 수 없어! 사람이 어떻게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사니!」

「나: 이건 무슨 컨셉이에요;?」

「ㅈi9별: 잔소리하는 울 엄마요」

「나: 갈수록 짜증 나내」

이제 천노을은 경수가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접속 여부를 알 수 있었다. ‘냥이냥나냥 님께서 게임에 접속하셨습니다.’라는 길드 안내창이 놈의 화면에도 뜰 것이기 때문이었다. 경수는 부길마인 할로윈가지가 왜 천노을을 길드로 끌어들였는지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할 마음도 없었다.

「포세이돈대장: ㅋㅋㅋㅋ천노을한테 길드 톡 알려주셨나요?」

「나: 누가 알려줘요 왜 알려줘요 알려주지 마세요」

「ㅈi9별: 안 그래도 물어봤는데 그건 괜찮대요!」

벌써 물어봤다니, 배신감이 치밀어 올랐다. 아니, 그보다… 괜찮다고? 냉큼 좋다고 들어올 줄 알았는데. 모두 경수의 생각과 같은지, 물음표를 띄워댔다.

「ㅈi9별: ㅋㅋㅋㅋㅋ자기는 첫 톡 하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다고ㅋㅋㅋ시발ㅋㅋㅋㅋ」

「neutaaa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할로윈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ㅈi9별: 누군지(ㅊㄴㅇㄲ)는 안 알려줘서 전 모르겠네용ㅎㅎㅎ」

「완두완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누군지(ㅊㄴㅇㄲ) 하나도 모르겠다(know)….」

「박휘벌래: 와… 누구(ㅊㄴㅇㄲ)지? 너무 궁금하다!!!!」

「나: ㅋ」

「할로윈가지: 제가 이렇게 또 큐피드(ㅎㄹㅇㄱㅈ) 역할을 하나요^^?」

「포세이돈대장: 다들 즐거워 보이셔서 다행이에요.ㅎㅎ」

게임 업데이트 창이 아래로 내려갔다. 업데이트가 끝나자 메인 서버 선택 창이 떠올랐다.

「ㅈi9별: 근데 차라리 천노을 님을 빼고 하면 승산이 있는데… 걔가 방해돼서 좀….」

「ㅈi9별: 근데 대머리는 좀 웃겼으니까 용서함ㅋㅋㅋㅋㅋ 이제 실패망들 보면 다 대머리라고 하고 지나가는 거 아세요?ㅋㅋㅋㅋ」

「박휘벌래: ㅡㅡ그러게 누가 함부로 GM이 주신 모발을 훼손하래…?」

「완두완댜: 유교 국가다운 마음가짐 보기 좋아요」

어젯밤에 이시스 마을의 지붕에서 게임 접속을 종료했더니, 접속할 때도 이시스 지붕으로 떨어졌다.

‘냥이냥나냥 님께서 게임에 접속하셨습니다.’

[귓속말] 천노을: 냥님 안녕하세요ㅇㅅㅇ/

내비게이션 시발.

[길드] ㅈi9별: ㅎㅇㅎㅇ

[길드] 냥이냥나냥: ㅎㅇ

그런데 쟤는 길드 챗으로 인사하면 되지, 왜 아직도 귓속말로 말을 걸지? 경수가 지붕에서 폴짝 뛰어내리자, 시계탑 앞으로 워프한 천노을이 ‘안녕!’하고 인사하는 이모티콘을 사용했다. 경수의 머릿속에서 부길마에 대한 반감이 조금 더 커졌다.

일단 6일 뒤로 다가온 길드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천노을의 능력치와 스킬을 조금 손볼 필요가 있었다. 200까지는 무리더라도 레벨 180까지는 키워, 3차 전직까지는 끝내둬야 어느 정도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경수는 천노을에게 쩔을 해 줄 생각으로 천노을의 캐릭터에 대고 오른쪽 마우스를 눌러 파티 신청을 했다.

‘천노을 님께서는 이미 파티에 참여 중이라 파티 초대가 불가능합니다.’

[귓속말] 냥이냥나냥: 님 지금 파티 중임?

[귓속말] 천노을: ??

[귓속말] 냥이냥나냥: 바쁘신가 보네요 ㅇㅋㅇㅋ

[귓속말] 천노을: 아 저 안바ㅃ

[귓속말] 천노을: 안 바ㅃ요

[귓속말] 천노을: ㄱ래ㅈㅇ

[귓속말] 천노을: 아니 거래 중이었어요ㅠ 잠시만요!

거래? 천노을이 뭘 팔거나 살 게 있던가? 그러고 보니 그 많은 돈은 다 어디서 나오는 거지? 경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렇게 궁금한 사안은 아니라 금세 잊어버리고 말았다.

‘천노을 님께서 파티에 초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엔터를 누르자 왼쪽에 천노을의 HP와 MP를 나타내는 팝업이 떠올랐다.

‘아이템 획득 설정이 자유 획득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인스턴트 던전이 초기화되었습니다.’

[파티] 냥이냥나냥: 오….

잇따른 설정 변경 창에 경수는 조금 감탄했다.

[파티] 천노을: 왜용?

[파티] 냥이냥나냥: 아니 파티 설정 기본은 안다 싶어서… 좀 의외라서요ㅋㅋ

바로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천노을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저 ‘ㅋㅋㅋ’라며 웃었다.

[파티] 천노을: 파티는 왜요?ㅇㅅㅇ

[파티] 냥이냥나냥: 님 레벨 올려야죠

‘천노을, Lv. 105’

그런데 천노을은 그새 레벨이 조금 올라있었다. 레벨 120에 2차 전직을 하는데, 벌써 105레벨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파티] 냥이냥나냥: 레벨은 언제 그렇게 올렸어요? 어젠 80 겨우 넘지 않았었나?

[파티] 천노을: 퀘스트 깼어요ㅎㅎ

[파티] 냥이냥나냥: 혼자요?

[파티] 천노을: 넵ㅎㅎ

[파티] 냥이냥나냥: 힘들었겠네….

그 실력으로 용케도 100레벨을 넘겼다. 또 얼마나 많은 부활 아이템이 사용되었을까 생각을 하니 웃기기도 했다. 경수는 천노을의 캐릭터에 마우스를 가져다 대고 우클릭을 해 장비 창을 열어보았다.

“엉망이네.”

여전히 레벨에 맞는 세트 장비도 맞추지 않았고, 아직도 50레벨 무기를 끼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저 능력치 저 장비로는 혼자 올리기 힘들었을 텐데.

[파티] 냥이냥나냥: 일단 오늘 2차 전직까지 해볼까요?

[파티] 천노을: 헉 저요?

[파티] 냥이냥나냥: ??네

[파티] 천노을: 도와주시게요?

[파티] 냥이냥나냥: 네….

[파티] 천노을: ㅎㅎㅎㅎㅎㅎㅎㅎ

[파티] 천노을: 냥님 저 지금 파르테논 깰 단계예요ㅎㅅㅎ!!!

냥님이라는 글자를 보니 또다시 등골이 오싹해졌다. 천노을은 텍스트로만 봐도 오늘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열정과 시간으로 키운 발키리를 지키기 위해서야. 경수는 천노을에게 따라오라고 말하며 파르테논 신전으로 가는 산림 온천으로 먼저 이동했다.

산림 온천은 8-90 레벨대가 사용하는 사냥터라 그런지 거의 아무도 없었다. 1맵에서 2맵으로 넘어가는 포탈 앞에 선율의 길드원 두어 명이 앉아있었지만, 사람이 없고 얘기하기 좋으며 스킬을 시험해보기 적합한 장소를 찾아온 것 같았다. 천노을은 바주카 위에 타고 날아가는 경수의 캐릭터 뒤를 열심히 달려 쫓아왔다.

[길드] ㅈi9별: 냥님 소환 얍

[길드] 냥이냥나냥: 얍

[길드] ㅈi9별: 할 일 없으시면 저 신발 속도작 하나만 하게 그루터기 두 번만 돌아주시면 안 돼요?

[길드] neutaaaa: ㅁㅊ 속도작을 또 해??? 지긋지긋하다

[길드] ㅈi9별: 1퍼를 어따 써요ㅡㅡ 개1쓰레기 같음ㅠㅠ 저 지금 쳐느려요ㅠ

[길드] al0ha: ?

[길드] 허니문: ?

[길드] 콩팥쥐쥐: ?

[길드] ㅈi9별: 뭐

[길드] neutaaaa: 나중엔 그러다 아예 안 보이겠음;

경수는 답장을 하기 위해 잠깐 멈춰 섰다. 저 앞에 인스턴트 던전으로 들어가는 커다란 관문이 보였다. 경수를 앞질러나가던 천노을은 다시 뒤로 돌아와 경수의 캐릭터 근처를 뱅뱅 맴돌았다.

[파티] 천노을: 냥님 가시게요?ㅠㅠ

[파티] 냥이냥나냥: ㄴㄴ

[길드] 냥이냥나냥: 저 지금 천노을님 전직 도와줘야 하는데

[파티] 천노을: 냥ㅎㅎ

천노을의 말에 갑자기 기억이 되살아나 손이 떨렸다.

[길드] 냥이냥나냥: 아 ㅅㅂ

[길드] ㅈi9별: ??

[길드] 냥이냥나냥: 아니ㅜ

[길드] 냥이냥나냥: 2차 전직이니까 금방 끝날 거예요~ 끝나고 같이 돌아요

[길드] ㅈi9별: 넵^^7 그럼 뉴님이랑 먼저 돌고 있을게요

[길드] neutaaaa: ??나?

[길드] ㅈi9별: 여보 파티 받아용ㅇㅅㅇ

[길드] neutaaaa: ㅅㅂ 누구세요 저 지금 개 바쁜데;

[길드] ㅈi9별: 그러면서 팟초 개 빨리 받내^^ 그루터기 앞으로 오세요ㅎㅎ

neutaaaa는 억지로 그루터기 인던으로 끌려갔다. 천노을은 근처의 곤충 몬스터를 때려잡고 있었다. 맞을 때마다 체력이 4분의 1씩 깎였다. 경수가 약 공격으로 한 번 살짝 때리자 치명타가 뜨며 몬스터가 쓰러졌다.

“…….”

이 새끼 도대체 얼마나 약한 거야?

[파티] 냥이냥나냥: 가요

[파티] 천노을: 넹!

[파티] 냥이냥나냥: 2차니까 금방 할 거예요 주말에 뭐 안 하죠?

[파티] 천노을: 네 주말 내내 시간 비어요!!

[파티] 천노을: 그런데… 2차도 금방 안 끝날 것 같은데ㅠㅠ

[파티] 천노을: 저 어제 새벽에도 내내 돌려서 겨우 100 찍었어요ㅠ

새벽에 내내? 한 달 전 있었던 대 패치 이후로, 2차 전직까지는 하루 정도면 금방 끝낼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레벨이 잘 안 오르기는 하지만, 120레벨 전까지는 신규 유저를 늘린다는 명목하에 난이도를 조금 더 낮게 패치한 것이었다.

[파티] 냥이냥나냥: 그럴 것 같았어요

하지만 천노을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쟨 진짜 게임에 재능이 없으니까.

[파티] 냥이냥나냥: 님은 그냥 뒤에 서 있기만 해요 죽지 말고… 몹은 제가 다 잡을 테니까

[파티] 냥이냥나냥: 님은 퀘스트만 받아오세요

경수는 펫 창을 열어, 아이템 자동 루팅 기능을 껐다. 일단 천노을은 방어구나 무기부터 맞추는 게 더 시급해 보였다. 몬스터를 때려잡다 보면 가끔씩 옵션이 붙은 아이템이 나오는데, 마을에서 장비를 사는 것보다 옵션 붙은 장비를 주워 끼는 것이 더 좋았다.

이미 천노을은 전사 트리를 타고 있으니, 방어 장비만 제대로 갖추면 쓸 만한 탱커나 딜러가 될 수 있었다. PVP는 합산 데스(death)로 승패를 결정짓는다. 쉽게 말하자면, 천노을은 이미 컨트롤부터가 글러 먹었으니 최대한 방어력을 높여 뻐겨볼 생각이었다.

[파티] 천노을: ㅠㅠ

“아 진짜 개발컨, 그새 죽냐?”

천노을은 그새 곤충 몬스터에게 맞아 한 번 죽었다. 경수는 근처에 갈고리 시드를 깔아 잡몹이 생겨나는 대로 금방 처리해버렸다.

[파티] 천노을: ㅠㅠ죄송해요 제가 못해서

빈말로도 괜찮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파티] 냥이냥나냥: ;;; 저 위에서 퀘부터 전부 수락하고 오세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천노을을 키워줄 시간이었다.

*

“이 씨발! 아! 미친 새끼! 또 뒤졌어! 아! 아….”

시나리오 던전은 부활 아이템이 먹히지 않는다. 6맵까지 오는 동안 천노을은 ……열여섯 번을 죽었다. 열여섯 번이다. 믿고 싶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이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경수는 오늘 다시 한번 천노을의 대단함을 실감했다.

[길드] 냥이냥나냥: ㅅㅂ….

[길드] 박휘벌래: ㅊㄴㅇ인가요?

[길드] 천노을: ㅠㅠ

[길드] 냥이냥나냥: 수박….

안 그래도 스스로 못해서 자괴감이 심할 텐데 거기다 대놓고 욕을 하는 건 조금 잔인해 보였다.

[길드] al0ha: 수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박휘벌래: 냥님 말 돌린다ㅋㅋㅋ 까먹고 욕할라다 말 돌렸다!

[길드] 천노을: ㅠㅠ

경수의 대나무숲이었던 길드 채팅창마저 천노을에게서 자유롭지 못했다. 경수는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몰라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파티] 냥이냥나냥: 괜찮… 빨리 오셈

[파티] 천노을: 넹!ㅠㅠ

“아니 씨발… 내가 왼손으로만 해도 쟤보단 잘하겠다. 쟨 왜 가만히 있으라니까 뛰어서 뒤지지?”

길은 경수가 뚫으니 그 뒤를 열심히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데, 천노을은 필요 없는 곳에서 폴짝 뛰다가 아래 깔린 용암에 녹아 죽고,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실수로 이전 맵으로 돌아갔다가 생겨난 몬스터에게 맞아 죽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었다.

“…오늘 안에 전직 퀘 들어가는 것도 힘들겠다.”

[파티] 천노을: 석탑 저장해둬서 그래도 금방 가요ㅠ0ㅠ

경수는 마지막 보스 방 한가운데 주저앉았다. 서버 발키리 1위쯤 되면 100레벨대의 보스 몬스터가 필살기를 써도 피가 깎이지 않는다. 회색 글씨로 1이나 miss라고 뜨는 데미지 효과를 멍하게 바라보던 경수는 우편함에 부캐릭터로 보내 둔 장비가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경수의 부캐는 트럼프 카드를 무기로 사용하는 포커 직업이었다. 무기는 맞지 않을 테지만 장비는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었다.

[파티] 냥이냥나냥: 안 되겠다; ㄱㄷ

[파티] 천노을: 어디 가시게요??

경수는 워프 캡슐을 사용해 이시스 마을로 이동해왔다.

[파티] 천노을: ㄴ니@

[파티] 천노을: 냥님 저 이제 진짜 잘할게요ㅠ 가만있을게여ㅠㅠㅠ!

천노을은 이시스 마을로 이동한 경수를 애타게 찾았다.

[전체] 냥이냥나냥: 대머리ㅎㅇ

우편함까지 달려가는 동안 실패 어쩌고의 길드원 하나를 보고 대머리라고 외쳐주는 것은 필수였다. 언제부터 실패 길드가 대머리 길드가 된 건지, 이번에는 파란 피부의 대머리였다.

[서버] 스쿼드테일: 가만있는 사람한테 시비 털고 가는 냥이냥나냥<<이님 존1나 비매 유저^^ㅗ 이런 건 제재 안 하나요???

[서버] ㅈi9별: ㅇ!! ㅇ!!

[서버] neutaaaa: 아니 님 그 동그라미는 뭐죠? 쭈꾸미 대가리인가요?

[서버] ㅈi9별: 아니요? 단단히 화가 난 대머리입니다.

[길드] 냥이냥나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ㅋㅋ

[길드] al0h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뼈도 못 추렸어ㅠ

[길드] neutaaaa: 발골왕 지구별… 짭러브 순살 됐을 듯

[길드] 박휘벌래: 그러게 누가 머리카락 없으래?

[길드] 할로윈가지: 그런데 대머리 진짜 왜 하는 거예요? 미적 감각에 심히 문제 있어 보이는데… 전 죽었다 깨어나도 대머리 캐릭터는 안 만들 것 같아요. 어떻게 꾸며도 이상해ㅋㅋㅋ

패망도 지지 않고 서버 마이크 아이템을 마구 쓰기 시작했다. 운영진은 우리한테 고마워해야 해, 이렇게 서버 마이크를 열심히 소비해주잖아.

경수는 뿌듯하게 미소를 머금은 채 창고로 달려가 100레벨대의 +4강화 투 옵션 대검을 챙겼다. 옵션이 괜찮은 무기나 방어구는 따로 모아두는데, 이게 지금 와서 빛을 발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부캐에서 전송시킨 우편물에는 100레벨대와 110레벨대 방어구들이 들어있었다.

[파티] 천노을: 냥님??

[파티] 냥이냥나냥: 기다리세요 창고 왔음

[파티] 천노을: ㅇㅅㅇ

[파티] 냥이냥나냥: 일단 인던 초기화부터 하고… 2차 퀘 뜬 거 다시 다 받아서 인던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파티] 천노을: 넹

[파티] 냥이냥나냥: 그리고 컴이나 폰에 홀블루 어플 깔아보세요 음성 채팅 어플인데….

뭐라고 하지? 네가 너무 답답해서 타자 속도가 하려는 말을 못 따라가겠다고? 잠시 생각하던 경수는 최대한 말을 순화시켜 말했다.

[파티] 냥이냥나냥: 그냥 말로 하는 게 더 편할 것 같아서….

[파티] 천노을: 앗 저 깔려있어요ㅎㅎ

[파티] 냥이냥나냥: 그래요?

[파티] 천노을: 네!

[파티] 냥이냥나냥: 왜요…?

이 간단한 게임도 이렇게 못 하는 걸 봐서는, 다른 게임이라고 잘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홀블루가 깔려있다니, 조금 의외였다. 이 게임 말고 다른 게임도 한다면… 그 게임에서도 아마 네임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안 좋은 의미로 말이다.

[파티] 천노을: 친구들이랑 같이 지뢰 찾기랑 마피아 해서….

[파티] 냥이냥나냥: 대박 지뢰 찾기도 온라인이 돼요?

[파티] 천노을: 아 넵 되더라고요ㅎㅎ

[파티] 냥이냥나냥: 와 진짜 재미없겠다

[파티] 천노을: 재미없어요ㅠㅠ 제가 방 팔까요?

[파티] 냥이냥나냥: ㅇㅇ

천노을이 알려준 코드를 입력하자 방 이름’1234’가 떠올랐다. 상대 유저의 이름은 역시나 천노을이었다. 얜 도대체 왜 본명을 사용하지? 그것도 게임에서. 경수는 헤드폰이 연결된 것을 확인하고 홀블루 프로그램을 하단으로 내렸다.

“여보세요.”

-…….

“안 들려요? …뭐지, 마이크가 연결이…? ……됐는데.”

-아니요, 들려요!

“시바, 깜짝이야….”

-죄송해요, 놀라셨어요?

“아니, 뭐….”

경수는 헛기침을 하며 다시 산악 온천 석탑으로 이동했다. 로딩 게이지가 차는 동안 헤드폰 너머로 들리는 백색 소음을 어색하게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때린 뺨은 괜찮나? 왜 화를 안 내지? 나인 걸 확인도 했으면서. 우리 학교 알면서 왜 찾아오지는 않은 거야? ……그리고 왜 아직도 나를 따라다니지?

-…님.

설마 맞는 걸 좋아하나? 변태 새끼.

-냥님.

“…….”

귓가에 선명히 내리꽂히는 닉네임에 경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냥님. 음성 챗 힘드시면 안 해도 돼요. 전 채팅만 해도 괜찮아요.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가 경수를 달래듯 헤드폰에서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냥이라는 듣기 민망한 닉네임보다 그 내용이 먼저 귀에 들어왔다.

“힘들다니? 저 괜찮은데요?”

-말이 없으셔가지고, …정말 괜찮아요?

“괜찮고 말고 할 게 있나?”

길드들끼리 공성전을 하거나, 다수 PVP를 할 땐 홀블루를 자주 쓰고는 했다.

-부끄러워하시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우시면 종료해도 돼요. 전 좀 더 기다릴 수 있어요.

“예? 뭘 기다려?”

-지난번에도 부끄러워서 먼저 가셨잖아요, 냥님. 괜찮아요, 원래 사람들이 저 보면 좀 그래요. 제가 이해해야죠.

“아니 잠깐. 내가 언제?”

-왜, 그때 영화관에서요, 냥님.

“…….”

-냥님이 제 얼굴 보고….

“일단 냥… 그거부터 그만하시는 게.”

-냥냥?

“씨발!”

경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그래 그거! 그만하라고요.”

-냥이라고 부르지 말라구요?

“네.”

-왜요?

“…….”

-냥님인데 어떡해요? 그럼 저는 냥님을 뭐라고 불러요? 이름 안 알려주실 거잖아요.

“…….”

확실히 그랬다. 이름을 알려주기가 좀 껄끄러웠다. 본명을 당당히 게임에서 사용하는 천노을과는 다르게, 경수는 정상인이었기 때문이다.

-알겠어요. 그러면 그냥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형?”

이것 때문에 그냥 형이 가지고 싶은 초딩인 줄 알았지. …형이 갖고 싶은 고딩일 줄이야. 그것도 굉장히 멀쩡하게 생긴.

“…제가 몇 살인 줄 알고.”

-지구별 님이 알려주셨어요. 십팔 세라고.

“아….”

-맞죠? 십팔 세.

“…….”

어감이 조금 그랬다. 하지만 천노을이 내게 욕을 할 리는 없을 것이다. 경수는 떨떠름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아 맞아요. 그렇게 부르던가….”

-냥님, 어떻게요?

냥이라고 부르지 마! 경수는 눈을 질끈 감고 다시 한 번 인내의 자세를 가졌다.

“씨발… 형이라고 불러요, 그냥… 근데 님 지금 어디예요? 인던 앞에서 기다리라고 제가….”

-말 돌리시는 거죠? 냥님, 닉네임이 그렇게 싫어요? 냥.

“아 시발….”

-귀여워.

그 말에 길드 창을 눌러보려던 손가락이 삐끗했다. 고요한 사냥터에 한바탕 쇠사슬 비가 쏟아져 내렸다. 주변에 있던 곤충 몬스터들은 영문도 모른 채 순식간에 소멸됐다.

“…….”

귀엽다니? 인던 앞에서 기다리라는 게 귀여운 건가? 아니면 몬스터가 귀엽다고?

-형, 저 초기화하고 안에 들어와 있어요. 들어오세요.

“씨발, 귀여, 그, 그런 말 다시는 하지 마세요.”

-제가 귀엽다는데 형이 왜요? 무슨 상관이시지.

“…….”

소름 끼친다고. 이제는 조금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 새끼 컨셉질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단순히 게임을 잘한다는 이유에서 나를 따라다니는 줄 알았는데.

“……하면 죽는다, 진짜….”

-알겠어요, 그럼 앞으로는 자제할게요.

현실로도 ‘ㅎㅎ’라고 웃는 듯 목을 울려 웃는 천노을을 잡아다가 한 대 더 때리고 싶었다. 그때 한 대만 친 게 한이 될 줄이야. 헛소리를 하는 동안 로딩 게이지가 모두 차오르고 시나리오 던전 1맵에 들어왔다. 경수는 기다란 줄에 매달려 공격을 피하고 있는 천노을을 보고 기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놈의 캐릭터에다 거래를 걸자 1초도 안 되어 수락했다. 경수는 창고와 우편함에서 가져온 장비들을 거래 창에다 끌어놓았다.

-형?

“일단 끼다가 더 좋은 거 나오면 갈아껴요.”

-헉 넹.

천노을은 경수가 준 방어구들을 하나씩 끼기 시작했다. 방어구를 가리는 패션 아이템이 없어, 빨간색의 방어구들이 차곡차곡 얹히는 것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파티] 천노을: ㅠㅠ

왜 이래, 갑자기 왜 울지?

“왜요? 뭐가 안 끼워져요? 직업 전용 아이템은 없을 텐데?”

-냥님, 아니, 형. 저….

“네?”

-평생 이것만 입을게요.

“…….”

천노을. 알수록 더 진짜 이상한 놈이다.

*

전에 끼던 방어구가 정말 쓰레기는 맞았는지 방어구를 바꿔 끼웠을 뿐인데, 천노을이 한 방에 사망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아, 님! 거길 왜, 아 진짜. 저 거기서 떨어지는 사람 처음 봐요. 거기 절벽 있는 줄도 몰랐음….”

-금방 올라갈게요!

“…….”

-생각보다 빨리 안 죽네요?

그 말에 경수는 뿌듯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 죽어야죠 그럼. 전부 기본 SS 붙은 건데 떨어져서 뒤지면 제가 그걸 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었겠음?”

-고마워요, 형.

천노을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격도 유하고 고맙다는 말도 잘하고. 일을 못 하면 착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꼭 천노을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님 자동 포션은 몇 퍼로 맞춰 뒀어요?”

파티 창에 뜨는 천노을의 HP는 벌써 반이나 줄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지가 다시 차오르지 않았다. 놈은 패션 숍에서 파는 백호 펫을 사용하고 있었다. 펫을 사용하면 이동속도도 약간 빨라지고, 아이템도 자동으로 먹어줄 뿐만 아니라 HP나 MP가 일정 이상으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포션을 사용해주는 기능도 있다. 보통 70%에 포션 하나, 그리고 50%에 이벤트 포션 하나를 끌어 놓아 체력을 회복한다.

-그게 뭐예요?

“……몰라요?”

-뭐가요?

“그럼 펫은 왜 꼈어요?”

-아이템 먹어주니까요.

“…….”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었다. 아니, 튜토리얼 퀘스트를 할 때 다 알려주는 건데 이걸 모른다고? 이 정도면 공략을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이다. 경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천노을은 제가 또 뭘 잘못했냐며 쩔쩔맸다.

“잠깐, 넘어가지 말고 거기 있어 봐요.”

-넹.

“U 눌러서 애완동물 창 열면 세 번째 탭에 스킬 있잖아요.”

-네네.

“거기 포션 자동 활성 시켜 놓고, 아. 그리고 백호면 크뎀 10% 증폭 스킬 있지 않아요?”

-…그건 쓰고 있었는데요?

“와아… 대박, 근데 왜 그 지경이지?”

-공격하기 전에 맞으면 죽어서요. 그래서 잘 안 써요….

하긴, 그렇지. 크리티컬 데미지가 백배 천배 증폭된다고 해도 몬스터가 공격을 받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었다. 천노을은 일대일 PVP에서도 제대로 스킬을 사용하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한 대 맞아 허리가 꺾이고 나면 다음 공격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킬 트리는 뭐 타고 있어요?”

-스킬 트리?

“…아니, 됐다. 기대도 안 했다. 그러면 2차 전직은 뭐 하고 싶어요?”

-…음.

말이 없었다. 경수가 볼 때, 스킬도 엉망으로 찍은 것은 기본이고 능력치 분배도 엉망일 것 같았다. 현재 110레벨이기는 했지만 마지막 전직 퀘스트는 천노을 혼자서 해내야 했다. 물론 전직 퀘를 실패하는 머저리가 있다는 것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어쩐지 천노을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경수는 Esc를 눌러 로그아웃부터 했다.

-어, …형?

“로그아웃하고 아이디랑 비번 좀 알려주세요. 계정 보호 걸어 뒀어요?”

-…넹? 아니요.

“다행이다.”

-왜요?

“스킬 좀 맞춰 보게요. 뭐 안 훔쳐 가요.”

천노을한테 뭘 훔쳐 간다고.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지. 천노을에게 괜찮은 아이템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지금 백만 벨 정도는 있죠? 능력치 재분배하려는데. 2차 전직 딱히 마음에 둔 거 없으면 소드 마스터 쪽으로 가도 괜찮아요. 그게 블레이즈 트리거든요. 조작도 무난하고, 스킬만 다시 찍을 건데 그냥 제가 찍어주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요. 템은 안 건드릴게요.”

-아… 네! 일단 로그아웃했어요. 아이디는 천노을 영어로 친 거구요.

ID: cjsshdmf

-비번은 천노을짱짱일이삼. 일이삼은 숫자예요.

Password: *****************

혹시 부캐릭터가 있지는 않을까 했는데, 캐릭터 선택란에는 천노을 하나밖에 없었다. 다른 서버는 활성화되어있지도 않았고 말이다. 하긴 본캐도 이 지랄인데 부캐를 키울 시간이 있었을 리가 없다.

‘천노을 님께서 게임에 접속하셨습니다.’

[길드] ㅈi9별: 아 다시 왔다

[길드] ㅈi9별: 님 ㅊㄴㅇㄲ이랑 동시에 나가서

[길드] ㅈi9별: 둘이 같이 사는 줄ㅋㅋㅋㅋㅋㅋ?

“…….”

[길드] 천노을: 디쟐ㄹ래?

[길드] ㅈi9별: ??

천노을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지 길드 창이 조용했다. 경수는 K를 눌러 스킬 창부터 열고 다시 엔터키를 쳐 메시지를 입력했다.

[길드] 천노을: 누가 같이 살아요ㅅㅂ

[길드] 천노을: 아 스킬 개1 엉망이네

[길드] ㅈi9별: ??

-…그렇게 엉망이에요?

“아, 내가 또 입으로 말했어여?”

-네.

“죄송.”

-근데 귀여우니까 괜찮아요.

[길드] 천노을: 아 시바ㅁㄴㅇㄹ;ㅏ니ㅏ

[길드] 박휘벌래: ???????

[길드] neutaaaa: ??????

헤드폰에서 또 목을 울려 웃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새끼 내가 어떻게 해야 싫어하는지 너무 잘 알아. 경수는 키보드를 탕탕 두드리며 소름 끼쳐했다.

[길드] 천노을: ㅅㅂ

[길드] 천노을: ㅅㅂ

[길드] 천노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길드] ㅈi9별: 아… 냥님이네….

[길드] 박휘벌래: ㅇㅎ .oO(같이 사내)

[길드] neutaaaa: 같이 사내 .o0(ㅇㅎ)

[길드] 천노을: 미쳤냐?

[길드] 천노을: 요

[길드] neutaaa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젠 붙여쓰기도 귀찮다 이건가…?ㅜ

[길드] neutaaaa: 존댓말을 쓰려는 의지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내요; 반존대 금지

-형?

“뭐요.”

-형, 저한텐 말 놔도 되는데요.

경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참나, 저 아무한테나 말 안 놔요. 길드원들이랑도 말 안 놓는데 님한테 말을 왜 놓음?”

-그럼 누구한테 놓는데요?

“아무랑도 안 놨는데요?”

-패망한테는 놨잖아요.

“그건 말 놓은 게 아니라 싸운 거죠… 아무튼 지금 스킬 다시 찍으려는데 재분배할….”

헐, 미친. 돈 개 많아. 이거 죽을 때마다 데스 페널티로 백만 벨씩은 기본으로 빠지겠는데? 경수는 눈을 끔뻑거리며 숫자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일, 십, 백, 천, 만, …억? 3억을 그냥 가지고 다닌다고?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 아직 3억 정도면 더 많았다는 말 아니야?

“미친. 돈이 왜 이리 많아?!”

-아.

“이게 본캐던데요? 다른 캐릭터도 없잖아요.”

-퀴즈, 퀴즈 맞혀서 돈 벌어요. 퀴즈 템 은근 쏠쏠하잖아요.

3시간마다 열리는 일루전 상식 퀴즈를 말하는 것이었다. 총 60개의 문제를 푸는 데 30분이나 걸리고, 1번 문제부터 도전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었다. 또 은근히 어렵다는 이유로 퀴즈를 공략하는 사람은 적었다. 1등 아이템인 행운 증폭 포션은 시세가 5000 정도이니 그거라면 납득이 갔다.

“그게 돈이 되는구나… 신기하다. 그래도 그 시간에 레벨업이나 하지….”

-…형 찾아다녀야 하니까요.

“아…….”

-그래서…… 돈… 열심히 벌어야 해요….

말꼬리가 늘어졌다. 처량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였다.

“아, 네….”

그래 결국 다 내 탓이지.

경수는 애써 천노을의 말을 무시한 채 천노을이 찍어 둔 스킬 꼴을 확인했다. 1차 전직을 한 전사는 세 가지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천노을은 세 개의 무기의 기본 스탯을 전부 찍어 스킬 포인트를 60개나 낭비했고, 캐릭터 능력치는 쓸모도 없는 확정 데미지만 15포인트까지 올려뒀다.

“일단 임시니까 이도류로 찍을게요. 제가 그거밖에 안 키워봐서.”

-네!

전직하고 나면 스킬을 다시 찍어야 하니 그전까지는 방어력으로 버텨야지. 경수는 방어력을 최대로 올리고 펫 스킬도 조금 손본 뒤 키보드 배치까지 확인했다.

[길드] 천노을: 혹시 풋풋했던 시절의 전직퀘가 그리운 사람?(도와줘)

[길드] ㅈi9별: ㅋㅋㅋㅋㅋㅋ아직도 천노을님 전직퀘 중? 여태 안 끝났어요?

[길드] 천노을: ㅋㅋ….

[길드] ㅈi9별: 제 신발은요? ㅡㅡ

[길드] 천노을: 지구별 말고 도와줄 사람만

[길드] ㅈi9별: ㅡㅡ?

[길드] neutaaaa: 저요 저요 저요^^!!!!!!!!!!!!!!!!!!!!!! 탈출이다!^0^

[길드] ㅈi9별: 여보?ㅡㅡ

[길드] neutaaaa: 머; 우리 헤어져;

지구별에게 단단히 쥐어 짜인 게 분명했다. 키득거리는 소리에 천노을이 ‘응?’이라며 궁금해했지만 경수는 간단히 무시했다.

[친구] 스페이드퀸: 야

[친구] 스페이드퀸: ㅁㅎ??

“스페이드퀸?”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닉네임이었다. 경수의 중얼거림에 천노을은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대답했다.

-제 퀴즈 친구인데, 그냥 무시하셔도 돼요.

“퀴즈 친구?”

-퀴즈같이 푸는 애예요.

“아, 네….”

퀴즈를 같이 풀기도 하는구나. 그렇게 어려운가? 경수는 접해보지 못한, 그리고 앞으로도 접할 일이 없는 퀴즈 콘텐츠는 신기하게까지 느껴졌다.

[길드] 박휘벌래: ㅋㅋㅋㅋㅋㅋㅋ저도 도와드릴게요

[길드] ㅈi9별: ㅠㅠ저두여… 전직 끝나면 신발 맞춰 주세여ㅠ

[길드] 천노을: ㅇㅋ

사람이 많으면 아무리 천노을이라 해도 금방 끝날 테니까. 경수는 뿌듯하게 웃으며 접속을 종료했다.

“다시 로그인해도 돼요. 아, 그리고 지구별 님이랑 뉴 님이랑 다들 도와주신다고 하셔서 금방 끝날 것 같아요.”

천노을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다 끝날 일이었지만, 이제 그 발컨을 감당할 사람이 셋이나 더 늘었으니 괜찮겠지.

-도와주신대요?

“네.”

-…왜요?

어쩐지 떨떠름한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착각이겠지. 빨리 전직해서 천노을에게 나쁠 건 하나도 없으니까.

“오늘은 전직까지만 끝내고, 주말 내내 돌려서 3차까지 찍어요. 주말엔 도와주실 분들 더 많으니까.”

-아… 그럼 다 음성 챗 하시는 거예요?

“아뇨, PVP 할 때 아니면 원래 잘 안 하는데, 오늘은 좀.”

-좀?

“천노을 님이.”

-형, 그냥 노을이라고 불러주세요. 너무 길지 않아요?

“으, 진짜 싫어요.”

-……으….

“암튼 님이 특이한 경우라서요.”

네가 맵 아래 용암 불에 등 지지고 뒤지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그거 특별하단 소리예요?

“뭐, 네.”

-그럼 계속 통화하는 거죠? 저랑만?

“씨발, 안 그러면 님이 자꾸 이상한 데로 새잖아요. RPG 게임에서 길 잃는 놈이 어디 있나 했는데 진짜.”

-좋아요! 저 열심히 할게요!

안 돼! 의욕적인 그 말에 놀라 경수는 황급히 대답했다.

“열심히 하지 마!”

-…왜요?

“대충 하세요. 안 움직이면 더 좋아요… 열심, 열심히 가만히 있으세요.”

-네에….

풀 죽은 소리를 내도 봐줄 생각은 없었다. 천노을이 열심히 해서 좋은 꼴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

[파티] ㅈi9별: 님들 넘 느려여

[파티] ㅈi9별: 저 먼저 가용ㅋㅅㅋ~

남들보다 거의 두어 배 정도는 빠른 지구별이 벌써 맵 끝까지 가서 말했다. 다른 사람이 이동기를 써서 그를 따라가 보려 해도 눈 깜짝할 새 없이 다음 맵으로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파티] neutaaaa: ㅡㅡ;;

[파티] ㅈi9별: ㅋㅋㅋㅋㅋㅋㅋㅋ님들 기어 다니시네여ㅎ

[파티] 박휘벌래: 앞으로 이속 옵션작 절대 도와주지 말죠

[파티] neutaaaa: 걍 쟨 힐 해주지 마요 mp 포션 개비쌈ㅋㅋ

[파티] 박휘벌래: 오키 접수ㅋ

220대의 mp 포션은 재료를 구해 직접 제작해야 했다. 제작비도 꽤 드는 데다 재료를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아서 220팟에는 힐러가 필수이다.

[파티] ㅈi9별: 제삼다ㅠㅠ

이미 만렙을 찍은 이들에게 100-120레벨대 사냥터는 어린애들 장난 같았다. 천노을은 경수의 경고대로 사다리에 매달린 채 가만히 있었다.

“몇 마리 남았어요?”

-아… 잠시만요.

[파티] 천노을: 뽀송이 100마리 남았어요

[파티] 박휘벌래: ㅇㅋㅇㅋ

“금방 잡겠네요.”

[파티] ㅈi9별: 뽀송 멸종 메테오~!~!!!~!!!

‘스피어 레인!’

지구별의 캐릭터가 스킬 명을 외치며 손을 허공으로 뻗었다. 하늘에서 뾰족한 창이 빗발처럼 내리며 기어 다니던 솜뭉치 몬스터를 꿰뚫었다. 새빨간 스킬 효과가 내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지구별은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공격 효과 범위 내를 가까스로 빠져나갔다.

[파티] ㅈi9별: 봐바ㅠ 난 아직 멀엇서ㅠ

[파티] ㅈi9별: 내 공격을 내가 맞자나ㅠㅁㅠ

[파티] 냥이냥나냥: ?

[파티] neutaaaa: 풍년입니다

[파티] 박휘벌래: 모가요?

[파티] neutaaaa: ㅈ1랄이 풍년이요~!

[파티] neutaaaa: 스1벌 도라이도 아니고 님 공격을 님이 왜 피함?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박휘벌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ㅈi9별: 아직 부족해

지구별은 온갖 이동기 기술을 모두 보여주며 맵 안을 신나게 누볐다. 효율이 구려도 이동 기능만 있다면 모조리 마스터하는 지구별은, 포세이돈 내 ‘PVP 뜨면 제일 빡치게 하는 놈’ 투표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경수는 쿨타임이 다 차자마자 세 번째로 등록한 스킬을 꾹 눌렀다.

‘후킹 스타!’

깜찍하게 바주카포를 공중으로 치켜든 캐릭터가 움츠린 몸을 확 펼쳤다. 경수를 기준으로 형형색색의 별사탕과 갈고리들이 확 튀어 나가는 스킬은 사냥터에서보다 격투장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적이 어디에 있든 백발백중으로 데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전체] 닌닌이: 아니 십발 만렙들이 여기 왜 잇서;

[전체] 천노을: ㅇㅅㅇ/

[전체] 닌닌이: 아….

똑같이 2차 전직을 위해 퀘스트를 하던 유저들은 욕을 하며 다른 채널로 옮겨갔다.

[파티] 박휘벌래: ㅋㅋㅋㅋㅋ시1바 손들었음ㅋㅋㅋㅋㅋ

[파티] neutaaaa: ㅋㅋㅋㅋㅋㅋㅋㅋㅇㅅㅇ/!!!!!ㅋㅋㅋㅋㅋㅋ

[파티] 박휘벌래: 아 귀엽다ㅋㅋㅋ

[파티] ㅈi9별: 귀여워? 앗 지금 그건… ㅊㄴㅇㄲ 자리를 뺏겠다는 선전포고인가요?

“오….”

경수는 저도 모르게 흥미로워져 감탄사를 내뱉었다. 퀘스트를 완료했다는 효과음이 헤드셋 너머에서 들려왔다. 이제 천노을은 120레벨이었다. 마지막 보스전만 혼자 잘하면 되는데, 그게 좀 걱정이었다.

[파티] 박휘벌래: 그럴까요ㅋ 절 받아주시겠어요?

박휘벌래는 지난 시즌 한정 이모티콘인 ‘꽃다발 내밀기’를 사용해 천노을의 앞에 만개한 장미 꽃다발을 보여주었다. 그에 천노을은 ‘정색하기’ 이모티콘을 사용했다. 그리고 뒤로 슬그머니 물러나다 뽀송이에게 한 대 맞았다. 경수가 준 장비를 착용해도 허리가 꺾였다.

…대체 얘는 왜 이러지. 경수는 천노을을 때린 뽀송이 몬스터를 약 공격으로 한 대 쳐서 소멸시켰다.

“당장 다시 사다리 타요. 내려오지 마세요.”

-네에….

천노을은 시무룩하게 대답하고는 다시 사다리에 매달렸다.

[파티] 박휘벌래: ㅠㅠ

[파티] neutaaaa: (팝콘)

[파티] 냥이냥나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ㅈi9별: 남편이 바람난 걸 알게 된 본부인! 애써 웃어 보이는데….

-형, 전 아니에요.

“…뭐가요?”

-진짜예요. 전 형밖에 없어요.

“뭐래, 짜증 나게. 이제 퀘스트 다 끝났죠? 보스전만 남았는데 그거 할 수 있어요?”

-형. 왜 말 돌려요. 저는 형밖에 없어요, 진짜.

얜 음성 채팅으로도 컨셉질을 하네. 경수는 입을 다문 채 게임에 접속한 길드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길드 채팅이 활발하게 떠내려갔다.

[파티] ㅈi9별: 어 천노을 어디 감?

[파티] ㅈi9별: 천노을x 천노을님o ㅎㅎ

[파티] ㅈi9별: 하도 익숙해져가지고여ㅎ 쏴리ㅋ

그 말대로 잠깐 패션숍에 들어갔다 온 건지 다시 파티원들 한가운데 천노을이 나타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 한가운데에 청첩장 같은 안내창이 뜨며 ‘천노을’이 ‘냥이냥나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천노을 님께서 교제를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씨발, 님 또라이세요?”

-아니요?

‘아니요.’

‘교제를 거절하셨습니다. 10분간 고백 이벤트 버프가 활성화됩니다.’

‘최소 공격력 5% 상승’

[파티] neutaaa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박휘벌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ㅈi9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ㅈi9별: [속보] 천노을, ㅊㄴㅇㄲ에게 로맨틱 반지로 고백했다 차여!

[길드] 천노을: ㅠㅠ

[길드] al0ha: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할로윈가지: ㄹㅇ?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노을 님께서 명예길드원으로 승급되었습니다.’

길드원 등급은 총 세 가지로 나뉜다. 기본 등급인 일반길드원, 그다음이 명예길드원, 그리고 가장 높은 등급이 경수가 속해 있는 정예길드원이었다. 길드 내부 규정상 명예길드원은 길드 기여도 5퍼센트가 넘어야만 될 수 있었다.

[길드] 냥이냥나냥: ? 길마 님한테 다 말해;

[길드] 할로윈가지: 아 제가 너무 기쁜 나머지…ㅎㅎ

‘냥이냥나냥 님께서 일반길드원으로 강등되었습니다.’

[길드] 냥이냥나냥: ????????????????

[길드] 천노을: 헉???

[길드] 박휘벌래: 아 미1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할로윈가지: 헉

[길드] 냥이냥나냥: ㅅㅂㅡㅡ

‘냥이냥나냥 님께서 정예길드원으로 승급되었습니다.’

‘천노을 님께서 일반길드원으로 강등되었습니다.’

[길드] 할로윈가지: 아ㅋㅋㅋㅋㅋㅋㅋ 이번엔 진짜 실수였음 ㅈㅅㅈㅅ

[길드] 냥이냥나냥: 조심하쇼ㅡㅡ

[길드] 천노을: 맞아ㅡㅡ

[길드] neutaaa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냥님 존나 동네북ㅠ

-형, 화난 거 아니죠?

“화 안 났거든요?”

경수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아직 안 되나 보네요.

“…….”

-장난이었어요, 장난.

교제를 신청하기 위한 아이템 ‘로맨틱 반지’는 1,000원이나 하면서 일회용품이었다.

-근데 형, 저 실수로 반지 열 개 사버렸거든요?

“예?”

-그래서 장난 조금만 더 칠게요.

‘천노을 님께서 교제를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길드] 냥이냥나냥: ㅡㅡ

‘아니요.’

‘교제를 거절하셨습니다. 10분간 고백 이벤트 버프가 활성화됩니다.’

‘최소 공격력 5% 상승’

[파티] 천노을: ㅠㅠㅠㅠ

천노을은 우는 모션 이모티콘을 사용했다. 서럽게 얼굴을 부여잡고 우는 캐릭터가 바닥을 쾅쾅 치며 울부짖었다.

[길드] ㅈi9별: [속보] ㅠㅠ….

[길드] 할로윈가지: 왜

[길드] ㅈi9별: [속보] 천노을 같은 상대에게 방금 한 번 더 차여…ㅠㅠ

[길드] 할로윈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천노을: ㅠㅠ

[길드] al0ha: ㅌㄷㅌㄷ….

무슨 토닥토닥이야. 경수는 오랜만에 관자놀이를 부여잡았다. 귓가에서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두통이 심해질 것 같았다.

*

제목: (지금 핫한 글!)야 천노을 포세이돈 들어갔냐?

작성자: 하리랑/음유시인

내용: 제곧내ㅋㅋㅋㅋㅋ 오늘 보니까 천노을 동부퀘 뛰더라… 걜 동대륙에서 볼 줄은 꿈에도 몰랐음ㅋㅋㅋ

아니 사흘 전에 봤을 땐 걍 전사였거든? 근데 지금 소드 마스터 돼 잇음 존나 폭렙업 중ㄷㄷㄷ

심지어 길드도 가입했더라고. 근데 포세이돈 길원 신청도 지금 안 받지 않음…? 신청 닫은 지 꽤 된 거로 알고 있는데?? 암튼 오늘 걔 머리 위에 길드 달려있어서 개 놀람ㅇㅇ 그리고 그게 포세이돈이라 2차 놀람… 같이 있는 거 냥어쩌고 그 발키리라 3차 놀람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이거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글 썼어. 천노을 냥이랑 어떻게 된 건지 아는 사람? 혹시 발키리 대가리에 총 맞았음? 본인 등판환영~^^

(58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몰라 걍 갑자기 같이 다님ㄷㄷ 그렇게 나 잡아봐라 처하더니 걍 연애질이었나….

└앞으로 랜선 연애질 할 놈들은 이렇게 해라^^^^^

└222222 느그 연애 안 궁금하니까 염병 떨 거면 천노을처럼 돈이라도 줘 ㅅㅂ

└얼마나 줬었음? 나 한 번도 찾은 적이 없어서 모름

└제보만 해도 500 주고 진짜 찾으면 천 단위임 가끔 기분 좋으면(금방 찾은 날) 오천도 준대ㅋㅋㅋ

└아 어쩐지 요즘 안 보이더라… 상시 이벤 종료인가요… 그동안 쏠쏠했는데ㅠ

└쏠쏠22222

└333333ㅋㅋㅋㅋㅋㅋㅋ 거의 억은 번 듯

-소드 마스터 찍기 안 어려운데?

└보통 사람은 그렇겟지….

└저게 천노을이라고 생각하면 ㅈㄴ소름 끼침

└어느 정도인 거야….

-총 맞은 듯ㅇㅇ 발키리가 쩔 해줘서 벌써 3차 퀘스트 중이던데ㅋㅋㅋㅋㅋ 이걸 노린 거면 ㅇㅈ 나라도 따라다님

└엥 벌써 3차 전직?

└걔가?

└ㅇㅇ3차 전직퀘 중임. 발키리도 광역 공격 어그로 오지고ㅋㅋㅋ 파란 머리 나이트 스피어 알지? 그 개 빠른 새끼 있자늠ㅋㅋㅋ 걔네 때문에 다른 애들 아무것도 못 하는 중. 지금 천노을 파티가 거의 사냥터 독점 중이라 비슷한 레벨 대 애들은 거의 3채널 못 쓴다고 보면 댐

└(사진)

시발 그 얘기가 바로 나예요~ ㅋㅋ 약간 덧붙여보자면 천노을은 아무것도 안 함ㅇㅇ 몹 잡는 건 다른 놈들이고 쟨 사다리에 매달려만 있음ㅋㅋㅋㅋㅋㄱ 밥 먹고 왔는데도 왠지 모르겠는데 여태 저러고 있더라 기합 받는 줄ㅋㅋㅋㅋ

└왜지? 신입 기선 제압하는 건가?

└ㅈi9별: 왜냐면 울 신규 횐님이 가만히 있으라니까 진짜 가만있다가 맞아서 뒤지거든ㅇㅅㅇ; 그래서 매달리게 한 거임 저게 더 빨라… 모르면 조용히 해ㅋ 니들이 멀 상상하든 그 이상이니까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ㅇㅋㅇㅋ

-갑자기 천노을이 개신컨이 됐을 수도? 그래서 받아줬을 수도 있지ㅎㅎ

└박휘벌래: 미친럼이 돌았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ㅈㅅㅈㅅㅋㅋㅋ

└여기 포세이돈 정모 열렸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웃기넼ㅋㅋㅋ그정도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ㅈi9별: 웃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분위기 소드 마스터… 현실은 달팽이 하나도 못 써는 개찌밥인데

└그러고 보니까 저 새끼 스킬 쓰는 거 한 번도 본적 x

└헐 소름 나돜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다고 피하는 걸 본 적도 x

└죽는 거 본 사람만 백만 명

└이 새끼 쉬지 않고 죽었나 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기글 2위 보고 와 아마 패망이랑 PVP 때문에 기본 능력치 올려주는 듯…? www.illusions2.net/board_17811929

└걍 캐삭 그거 안 하면 되잖아

└그럼 노간지잖아 명색이 길드전인데

└ㅋㅋ응 패망 발키리 스킬로 시비 턴 거부터 노간지~ 나였으면 혀 깨물고 뒤졌음

└ㅋㅋㅋㅋ이제 대머리단 몰려온다 넌 뒤졌다….

└투명인간: 거기서 그 얘기가 왜 나와?

└왘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왔다 핫플 될 듯ㅋㅋㅋㅋ

-냥이냥나냥: 총 안 맞았음; 내 욕은 하지 마라 안 그래도 막막해서 개빡치는구만 ㅅㅂ 욕할 거면 우리 허접을 욕해

└본인 등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막막하대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ㅠ

└천노을: 우리ㅠㅠ 감동이에요♡

└ㅗ

└우욱….

└씨발 이런 거 보게 할 거면 돈이라도 주라고

└ㄷㄷ둘 다 총 맞은 듯

└야 현상금 제도 부활 좀

└님님 상시 이벤트 종료인가요?

└헤어져

└천노을: ㅗ

-근데 천노을 돈이 왜 이리 많음??? 부캐냐? 천노을 대답점

└부캐겟냐 저 실력으로ㅋㅋㅋㅋ 그럼 본캐 때부터 난리 났어

└그럼 뭔데

└금수전가 보지 ㅅㅂ 돈 존나 많아

-쟤 새벽에 선율 길드 애들이랑 다니던데 그건 뭐지?? 스샷 있는 사람? 찍어둔 줄 알았는데 스샷 다 날아간 거 까먹음

└알바겠지

└알바겠지222

└ㄴㄴ 부길마였단 말이야 걔는 알바 뛰는 거 못 봤는데?

-엥 선율 안 망했음?

└방금 보고 왔는데 선율 아직 길드 순위 10위임ㅋㅋㅋㅋ 길마가 없는데 이 정도만 떨어지고… 대단ㅋ 걔네도 징하다

└아 그거 나도 봄ㅋㅋ 담에 보면 찍어 올릴게

└알바333333

└444

*

주말 내내 매달린 보람이 있기는 했다. 밥 먹고 자는 시간만 빼면 내내 사냥만 한 것 같았다. 본인과 길드원들의 노력으로 천노을을 무사히 180레벨까지 끌어올려 3차 전직까지 시킨 경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파티] neutaaaa: 와 존1나 힘들엇다….

[파티] 박휘벌래: 쉬파ㄹ 힐러 솔플이 더 쉬울 듯ㅜ

[파티] ㅈi9별: 냥깔 180ㅊㅊㅊㅊㅊㅊㅊ

[파티] 천노을: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파티] 냥이냥나냥: 갑자기 짜증이 확 나네….

[파티] 박휘벌래: ㅋㅋㅋㅋㅋㅋㅋ좋아한다ㅎㅎ

[파티] 냥이냥나냥: 짭바퀴 ㄷㅊ

[파티] 박휘벌래: 너무해

“…….”

경수는 전직 기념으로 천노을에게 PVP를 신청했다. 이제 조금 데미지가 나올 거란 기대를 품고 말이다. 천노을은 늘 그랬듯 바로 PVP 신청을 수락했다.

[파티] neutaaaa: 엥 갑자기 둘이 어디 감?

[파티] 박휘벌래: 알 수 없는 채널이래여 일대일 뜨러 간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ㅈi9별: 한창 뜨거울 시기임ㅋ

[파티] 천노을: ㅋㅋ

[파티] 냥이냥나냥: ㅗ

파티원들의 헛소리를 무시한 채 경수는 무기 전환 키인 tap 키를 눌러 다시 바주카포를 손에 들었다. 경수의 캐릭터가 발키리 특유의 허세 넘치는 대기 모션을 보이며 바주카포를 높게 쳐들었다. 천노을은 검 두 개를 빙빙 돌렸다. 경수는 천노을이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오늘은 음성 채팅을 연결해두지 않아 어떤 스킬을 사용해보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이제 놈도 보통 사람만큼의 방어력은 되니, PVP에서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훈련시키면 되었다. 그런데 천노을은 먼저 공격해오기는커녕 맵 가장자리까지 도망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뒤를 쫓아가 맞아주려고 기다리던 경수는 1분이 지나고 나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파티] 냥이냥나냥: ??

[파티] 냥이냥나냥: 왜 공격 안 함?

[파티] 천노을: ㅠㅠ

[파티] 냥이냥나냥: 아까 스킬도 다 찍었잖아요?

[파티] 천노을: 제가 어떻게 형을 때려요….

[파티] 박휘벌래: ㅋㅋ

‘박휘벌래 님께서 파티를 이탈하셨습니다.’

[파티] neutaaaa: 사귀네;

‘neutaaaa 님께서 파티를 이탈하셨습니다.’

[파티] ㅈi9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흥미진진)

그래도 맞으면 반사적으로 스킬을 사용하겠지 싶어 계속 도망치는 천노을을 따라가며 놈의 뒤통수에 콩알 탄을 던져댔다.

펑!

[파티] 냥이냥나냥: 아니 ㅅㅂ 도망만 치지 말라고

펑펑!

[파티] 냥이냥나냥: 제발

펑!

[파티] 냥이냥나냥: 야ㅡㅡ

[파티] 천노을: ㅠㅠ

[파티] ㅈi9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8분 내내 천노을은 제게 손도 대지 않았다. 경수의 공격을 피하는 것조차 잘 못 해서 계속 HP가 깎이는 주제에, 정말 기본 공격조차 하지 않고 도망만 다녔다. 경수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천천히 굳어갔다. 결국 ‘WIN!’이라는 글자가 화면 한가운데 떠올랐을 때 경수는 성질을 못 이기고 다시 한번 선전포고를 하고 말았다.

[파티] 냥이냥나냥: ㅅ1벌롬아 현피 떠 그때도 처맞고 가만있나 보자

[파티] 천노을: 넵ㅎㅎ 전화해용!

“아, 씨발….”

놈은 오히려 기분이 더 좋아진 것 같았다. 경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길드] ㅈi9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ㅈi9별: [속보] ㅊㄴㅇㄲ 다시 한번 현피 제안… 천노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길드] 완두완댜: ㅅ바ㅋㅋㅋㅋㅋㅋ 컨셉 한 번 제대로 잡았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neutaaaa: 근데 냥님 캐삭일까지 D-3ㅠㅠ

[길드] 할로윈가지: 흑흑ㅠㅠ

그 말 그대로였다. 사흘. 고작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내일 당장 천노을을 찾아가 멱살을 쥐고 흔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천노을에게 없던 실력이 생겨나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

경수의 자취방은 학교에서 꽤나 멀었다. 버스를 타고도 여덟 정거장이나 가야 하는 거리였는데, 가끔 심란한 일이 있거나 날씨가 좋으면 걸어가기에 괜찮은 거리였다. 버스를 눈앞에서 놓쳐버린 경수는 때마침 날씨도 좋고 하늘도 맑기에 집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꼬막 비빔밥이 맛있는 밥집, 싸고 양이 많아 항상 붐비는 학교 앞 우동집, 새로 생긴 일식집… 일렬로 늘어선 상가를 지나던 경수는 왠지 오늘따라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뭘 먹지? 3초 정도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하던 그는 앞 골목에서 꺾어 중학교 때 자주 가곤 했던 분식점을 향해 걸었다.

전설의 떡볶이. 그곳은 외진 곳에 있음에도 맛집이라 소문난 분식점이었다. 튀김 만두가 맛있고, 자주 가면 음료도 서비스로 내어주는 데다 매운 떡볶이도 유명했다. 혼자 먹기에 조금 많을 양이었지만 현역 고등학생에게 그 정도는 많은 축에 들지도 않는다.

계속해서 길을 걷던 경수는 익숙한 교복을 보고 눈을 깜빡거렸다. 천노을과 같은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교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경수가 다니던 중학교 건너편에 고등학교가 있었다. 그래서 중학교 땐 고등학생들이 우리 삥도 뜯고 했었는데. 개새끼들… 달갑지 않은 추억에 잠겼다가, 경수는 무심코 아이들이 빠져나오는 교문 안쪽을 힐긋 바라보았다.

“……어?”

유독 밝은 색의 머리카락에, 같은 교복인데도 다른 옷처럼 보이게 하는 사람이 오만상을 찌푸린 채 걸어오고 있었다.

‘내 인생 요즘 왜 이러지? 영화나 소설도 아닌데 이런 타이밍이 어디 있어. 애초에 이 길로 오는 게 아닌데! 옆에 있는 건… 친구인가?’

둘은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었다. 너무 멀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고 그리 궁금하지도 않다. 심드렁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던 경수는 천노을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럴 리는 없지만 꼭 경수를 보고 놀란 것처럼 보였다. 그놈은 다짜고짜 삿대질을 했다. 아까부터 휴대폰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천노을은 아직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경수는 그가 자신을 보기 전에 도망쳐야만 했다. 그는 재빨리 등을 돌리고 게걸음으로 걸어 담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대로 빠르게 걸어 모퉁이를 돌아 숨기 직전, 익숙하고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형!”

“…….”

주말 내내 지겹게 들었던 천노을의 목소리였다.

“형, 어디 가요?”

경수는 뻣뻣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바로 뒤까지 다가온 천노을이 방긋 웃었다. 그의 친구가 뒤를 따라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다.

“올 줄 알았어요.”

“…….”

넌 어떻게 알았냐. 나는 몰랐는데….

“저 보러 온 거죠?”

아니, 떡볶이… 경수는 그 짧은 시간에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다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목소리를 제 것이 아닌 것처럼 잔뜩 내리깔며, 경수는 시치미를 뗐다. 딱 한 번, 그것도 스치듯 본 얼굴이다. 그렇게 눈에 띄는 얼굴도 아니니, 잡아떼면 아니겠거니 하고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형…?”

“죄송합니다! 얘가 좀… 야, 너 미쳤어?”

놈의 친구는 뒤늦게 달려와 천노을의 어깨를 잡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친구 놈은 정상인 모양이었다.

“근데 진짜 신기하다. 진짜… 똑같네.”

사람을 관찰하듯 뚫어져라 보는 것만 빼면 말이다.

“놔 봐, 우리 아는 사이야.”

“아, 그래? 언제부터?”

천노을의 말을 듣고 그의 친구는 놈의 어깨를 그러쥐었던 손을 놓아주었다. 노을은 경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형, 저 알잖아요.”

“예?”

“나 기억 못 해요?”

“예?”

경수는 낯선 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한쪽 눈을 찡그린 채 성의 없게 대답했다.

“혹시 저 아세요?”

“…….”

경수가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것처럼 굴자, 노을의 얼굴이 불퉁해졌다. 놈의 미간이 좁혀지더니 ‘어떻게 나를 몰라요?’ 하는 듯한 얼굴로 경수를 애처롭게 내려다보았다. 경수는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형, 저희 좋았잖아요….”

“…….”

“제가 작은 숲의 속삭임 사이에서 무릎 꿇고 반지도 줬잖아요….”

천노을은 억울한 듯 중얼거렸다. ‘작은 숲의 속삭임’은 게임 맵의 이름이었다. 경수는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시치미를 뗐다. 친구는 다시 불안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천노을 개 또라이 새끼야….”라고 중얼거렸다. 경수는 빨리 이 두 사람을 떼어놓고 저녁을 먹으러 갈 생각에 정신이 온통 다른 데로 가 있었다.

“…노을이에요.”

“아직 노을 지려면 멀었는데.”

“아니, 저 천노을이에요.”

노을이 비장하게 말했다. 그러자 친구 놈은 노을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병신 새끼야! 우리 학교도 아니신데 널 어떻게 알아!”

“너는 끼어들지 마. 형… 왜 저 모른 척해요? 알잖아요!”

“진짜 모르는 눈치잖아! 그만해. 저… 먼저 가세요, 죄송합니다.”

그럼 사양 않고. 살짝 웃어 보인 경수는 들뜬 발걸음을 옮겼다. 고작 두 걸음이었다. 놈이 제 이름을 외치기까지는 말이다.

“냥이 형!”

“…….”

그냥 ‘냥’이라고 부르기만 하도 온몸의 털이 곤두섰는데, 이번에는 발이 삐끗했다. 친구가 그를 붙잡든 말든 노을은 막무가내로 경수의 소매를 쥔 채 우물쭈물거렸다.

“어떡해… 잃어버린 형인가 봐.”

지나가던 학생이 그의 애처로운 표정을 보고, 대신 마음 아파하며 지나가기까지 했다. 노을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경수에게 다시 한번 충격을 가했다.

“혹시 아침에 머리 다치신 건 아니죠…? 어떻게 저를 몰라요, 냥이….”

씨발.

“아, 알지! 헉, 기억났다!”

“기억?”

경수는 노을의 손을 덥석 붙잡고 억지로 웃어 보였다. 입가에 경련이 일어 파르르 떨렸다.

“노을이, 그래 노을이잖아! 이야, 너 많이 컸다!”

친척 어른이 오랜만에 자신을 보면 하는 말을 그대로 내뱉은 경수는 속으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닉네임이 실제로 불리는 건 너무너무 끔찍했다.

“냥냥….”

“우리 진짜 오랜만이다, 그치?”

천노을의 입에서 이상한 글자가 튀어나오기 전에 경수는 아는 척을 함으로써 그를 막아버렸다. 친구는 내내 냉랭한 태도를 보이던 경수가 갑자기 노을을 반갑게 맞이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국 그는 노을의 눈총을 이기지 못하고 투덜거리며 무단횡단을 해 반대편 도로로 건너갔다.

“저… 많이 컸어요?”

언제 우울한 표정을 했냐는 듯 노을이 수줍게 웃으며 경수를 바라보았다.

“아뇨? 하나도 안 컸는데요.”

왠지 졌다는 생각이 들어 경수는 말을 툭 내뱉었다.

“왜 다시 말 높여요? 왠지 거리감 느껴져서 싫어요… 말 놔주세요, 형.”

“싫어요.”

“냥이….”

경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천노을은 다시 한번 그 끔찍한 이름을 입에 담으려 했다. 아… 진짜! 경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입을 열었다.

“…알았어! 알았어, 말 놓을게. 그 대신에.”

“그 대신 이름 부르면 되죠? 경수 형이라고.”

“내 이름 어떻게….”

“명찰이요.”

그는 경수의 왼쪽 가슴에 달린 파란 명찰을 손으로 짚었다. 경수는 교복 카디건으로 명찰을 가린 채 슬그머니 시선을 내렸다. 놈은 경수의 이름을 몇 번 중얼거리더니, 홀블루 음성 채팅에서처럼 나직하게 웃었다. 그래, 냥보다는 백 배 낫지. 그냥 이름 부르는 게 좋을지도….

“경수 형은 전에 현피 떠본 적 있어요? 저 말구요.”

“…아니?”

“정말요?”

천노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에게 좋은 짓은 시켜주고 싶지 않아 오기로 경수는 뒷말을 덧붙였다.

“너 말고 날 빡치게 하는 놈이 없어서.”

좋은 말도 아닌데 그 말에 천노을의 입가에 미소가 더 짙어졌다.

“더 노력할게요!”

“때릴까….”

“그리고 제가 보통 현피 뜰 때 뭐 하는지 알려드릴게요.”

그걸 또 알려준다고?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그렇게 배고프지는 않으니 들어는 주지. 경수는 벽돌로 쌓은 담에 머리를 기댄 채 심드렁하게 팔짱을 끼었다.

“뭔데?”

“보통같이 밥을 먹구요.”

시작부터가 이상했다. 현피를 뜨는데 밥을 왜 먹어?

“같이 산책하고, 또 게임 좀 하다가 다시 만날 약속 잡고 헤어져요.”

“거짓말하지 마.”

그게 아니라는 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 다 알 것이었다. 아니, 바보라도 이상하다는 건 깨달을 수 있다. 노을은 아무렴 어떠냐는 듯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이제부터 하면 거짓말이 아니잖아요.”

“…….”

“이 옆에 유명한 분식집 있는데, 거기서 밥 먹어요. 우리.”

“…뭐? 나 너 만나러 온 거 아니야.”

경수는 천노을이 실망하든 말든 이제 상관이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건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저 지나가며 노을과 자신을 훑어보는 시선이 낯설고 불편해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알았어요. 믿을게요.”

“진짜야. 나 떡볶이 먹으려고…!”

“네, 거기로 가요.”

노을은 경수의 등을 떠밀었다. 얼떨결에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어쩐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전 가리는 것 없이 전부 잘 먹어요!’

…라고 패기롭게 말했던 것치고는, 천노을은 물 한 통을 혼자 다 마시고도 혀를 슬쩍 뺀 채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 은근히 고양이 혀인가. 매운 떡볶이를 입안 가득 넣고 씹으며, 경수는 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저 원래는 잘 먹어요.”

“…….”

“진짜예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놈은 찔린 것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난 이게 딱 좋은데.”

말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에게는 많이 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수는 매운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편이었다.

“저, 저도요.”

“매운 거 못 먹으면 말을 하지. 좀 덜 맵게 해달라고 할 걸 그랬나?”

“괜찮아요, 저 할 수 있어요!”

이게 무슨 굉장한 도전과제라도 된다는 양, 놈은 주먹을 불끈 쥐고 빨갛게 부푼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빨간 떡볶이를 찍은 포크가 파르르 떨렸다. 경수는 남은 떡을 전부 콕콕콕 찍어, 한 번에 입안에 욱여넣고는 우물우물 씹었다. 노을은 그런 경수가 대단하다는 듯 눈동자를 빛냈다.

낡은 가게 안은 늘 그랬듯 사람으로 가득 차서 잔뜩 붐비고 있었다. 오늘따라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경수는 먼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뒤늦게 일어나 제 뒤를 따라오는 천노을은 기분 좋은 식사에 낀 이물질에 불과했다.

“앗, 제가 사 드리려고 했는데.”

“아니, 됐어.”

천노을은 어차피 매워서 얼마 주워 먹지도 못했을뿐더러, 양이 평소보다 배는 많아 충분히 배가 불렀다. 이 집 이모는 여학생들이 오거나, 일행에 잘생긴 남학생이 끼어있으면 양을 마음대로 더 얹어주고는 했다. 그래서 전에 친구인 권태열을 데리고 왔을 때는 여섯 명이서 다 같이 먹고도 남아돌 정도였다. 이에 대해 따지고 들면 주는 사람 마음이라고 핀잔을 듣기에, 포기한 지 오래였다.

“나 이제 간다.”

놈의 학교로 찾아올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기에 헤어짐에도 미련이 없었다. 손을 휘적거리며 휙 돌아서려던 경수의 손목을 노을이 덥석 붙잡았다. 손목을 내려다보곤 곧장 그의 손을 뿌리치자, 노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그렇게 말한 노을은 곧장 아이스크림을 두 개 잡아들고 눈 깜짝할 새에 안에 들어가 계산까지 하고 나왔다. 경수의 입에는 어느새 시원한 하드가 물려 있었다. 기분이 미묘했다. 어찌 된 일인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천노을에게 휘말리고 마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잘 휘둘리는 성격이던가?’

경수의 시선이 ‘후식이요’하고 배시시 웃는 천노을의 빨갛게 부은 입술로 향했다. 지금 보니 아이스크림을 사 온 것도 본인이 매운 것을 진정시키려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많이 매웠어?”

“아니요.”

“솔직히 말해봐.”

노을은 잠시 우물쭈물거리다 어색하게 뒷목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조금요….”라고 속삭였다.

“그럴 줄 알았어.”

경수는 피식 웃었다. 못 먹을 거면 처음부터 얘기를 하든가. 그래도 시켰겠지만… 경수는 하드를 쪽 빨아올리며 휴대폰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그리 많이 지나지는 않았다. 이제 정말 집에 가야지. 이 근처는 당분간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어.

“잠깐만요, 형.”

“왜 또?”

“저 좀… 일대일로 가르쳐주세요. 오늘 오신 것도 그것 때문에 오신 거 아니에요?”

경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뭘 가르쳐줘? 매운 거 먹는 법?”

“아뇨. 내일모레 4대 4 PVP 있잖아요. 아무래도, 전화로 듣는 것보다 옆에서 가르쳐 주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요.”

그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아무리 전화로 백날 설명해도 못 알아들으니, 옆에 두고 하나하나 가르치는 게 더 빠르기는 하겠지.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노을이다. 천노을은 이미 발컨으로 소문이 자자한 데다, 직접 겪어보니 더 학을 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떤 방법을 쓰는 건지 몰라도, 몬스터도 없는 자리에서 갑자기 꿱 죽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냥 해달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당연히 알바비 드릴게요.”

“필요 없어, 나도 돈 많아.”

“그래도 캐삭 전인데…. 제 거면 상관이 없겠지만, 삭제하는 캐릭터는 형 거잖아요.”

“너 지금 나 협박하냐?”

“협박은 패망이 하는 거구요. 조금만 알려주시면 더 잘 하지 않을까요? 저 금방금방 배워요.”

“…….”

금방금방 배운다고? 저 새끼는 양심이 없나. 경수는 지난날의 고생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놈은 자신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봐도 전혀 발전이 없었다. 달라진 건 레벨뿐…. 아이템도 다 맞춰줬는데 하루에 열 번은 기본으로 죽었다.

“…그냥 피해 다니면 돼. 피 통도 크니까 그걸로 뻐겨. 셋이 해도 그리 힘들지는 않을 거야.”

“못 피해요, 안 알려주시면…. 그냥 알바라고 생각하시면 되잖아요. 피하는 법 가르쳐주세요!”

“내 알 바 아니야.”

“…….”

“나 바빠. 엄청나게 바쁘거든.”

“…그렇게 바쁘세요?”

“엄청. 게임은 둘째 치고, 해야 할 일도 많고, 오늘부터 공부도 해보려고 해. 아, 지금도 이럴 때가 아닌데!”

그 말에 입을 꾹 다문 채 눈을 굴리던 노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알겠어요. 그냥 다른 사람 구해볼게요.”

“그래.”

“전설 펫 확정 분양권은 양도도 되던데…. 전 별로 쓸 데가 없으니 그냥 이걸로 구해봐야겠어요. 구해지겠죠?”

그 말에 경수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뭐?”

전설 펫 확정 분양권?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형.”

노을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경수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 침을 꼴깍 삼켰다.

“잠, 잠깐만. 너 전설 펫 있어? 언제부터?”

“어제 갤럭시 소드로 달팽이 때리니까 줬어요.”

“…….”

갤소에서 나왔다고? 진짜? …그게 내 거가 됐어야 했는데. 경수는 주먹을 불끈 그러쥐었다. 목소리에 욕망이 크게 묻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침착해, 김경수. 경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물었다.

“그거 필요해?”

“아뇨. 전 그냥 아이템만 자동으로 먹어주면 되거든요. 어차피 그건 저한테는 있어 봐도 별 소용이 없어요…. 그냥 팔아버리려다가, 돈은 별 의미가 없어서. ……그래서 저는 형한테 드리고 싶었는데.”

그래, 그래! 나한테 줘야지! 나 아니면 누가 받아 가! 경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고개를 들어 노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노을은 그늘이 진 얼굴로 작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바쁘시다는데 제가 어떻게 더 졸라요. 그나마 지구별 님이….”

“아니, 잠깐만. 내가 오늘부터 바쁠 예정이기는 한데, 시간을 못 낼 정도는 아니야.”

“무리하지 않으셔도….”

“생각해보니까 나 아니면 널 누가 감당하냐. 응? 내가 널 제일 잘 알잖아. 너 레벨 누가 다 올려줬어?”

“형이요…?”

“야, 누가 전직 퀘까지 하나하나 다 깨주면서 블레이즈까지 만들어주냐고. 누구야?”

“경수 형이요….”

“그치? 봐, 내가 왜 그랬다고 생각해?”

“…….”

“다 널 위해서 그런 것 아니겠어?”

경수의 나직한 속삭임에 노을이 눈을 빛냈다.

“정말요…? 정말 절 위해서?”

“그럼, 다 네가 남 같지 않으니까 그런 거지. 마음 같아서는 그냥도 해주고 싶은데… 이런 일일수록 이해관계를 확실히 해야 하거든. 서로 껄끄러워지는 것은 좀 그렇잖아.”

“네, 네. 그런 건 저도 원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분양권은 내가 받을게. 뭐부터 도와주면 돼?”

“감사해요! 역시 형이에요!”

“그럼, 그럼.”

“형밖에 없어요, 정말.”

“당연하지.”

마침 저 앞에 PC방이 보였다. 경수는 펫 분양권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눈에 뵈지 않았다. 놈의 마음이 바뀔까, 지하에 있는 PC방으로 후다닥 들어가는 발걸음이 경쾌했다.

*

“뭐가 이렇게 많아요?”

“보통 다 이 정도는 하지 않나? 질리면 다른 거 키우잖아.”

노을은 비밀번호를 입력하다 말고 경수의 화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노을은 부캐릭터까지 여섯 개나 되는 캐릭터 슬롯을 천천히 훑었다. 어쩐지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다 의미 없이 지은 닉네임인데…. 본캐릭터인 발키리 직업으로 접속하려던 경수는 문득 스친 생각에 마음을 바꿨다.

그는 키우다 재미가 없어 접었던 거너 캐릭터를 클릭해 접속했다. 상대편 길드 마스터이자 그중 가장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 패왕1이 거너였기 때문이었다. 총 두 개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거너는 장거리에 특화된 직업이다. 화력이 강하지는 않은 대신에 스킬 쿨타임이 짧고 연사가 빠른 편이라, 쓸 만한 탱커 하나만 있으면 단점이 모두 커버되었다. 그만큼 잘만 사용하면 상대방을 쉽게 빡치게 할 수 있는 직업이 거너다.

‘바주카퐁 님께서 친구 신청을 보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어? 노을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안내창을 바라보았다. 경수가 보낸 친구 신청이었다. 경수는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불쑥 내밀며 말했다.

“그거 나야.”

“바주카퐁…이요?”

“…뭐해, 안 받고?”

그 말에 노을은 허겁지겁 수락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노란 글씨로 아래에 안내 문구가 한 줄 떠올랐다.

‘천노을 님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 생각해보니 굳이 친구 신청을 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냥 파티 초대를 하면 됐잖아? 친구들과 같이 게임을 할 때면 무조건 친구 등록부터 하는 버릇이 나왔다. 하지만 이제 와서 바로 친구 삭제를 하기도 민망하다. 경수는 접속 중인 친구 탭에서 노을을 눌러 파티에 초대했다. 그는 레인보우 홀 앞에 있었다.

경수는 이동 기술을 사용해 천노을 앞으로 굴러갔다. 그가 키우는 캐릭터 중 유일한 여캐인 ‘바주카퐁’은 사악한 표정을 지으며 유저에 대한 공격이 먹히지 않는 맵에서 천노을에게 총을 탕탕 쏴댔다. 노을은 그에 답하듯 검을 인사처럼 휙휙 휘둘러 보였다.

“그런데 왜 다른 거로 접속해요?”

그는 경수의 캐릭터에 ‘애교 부리기’ 이모티콘을 사용하며 물었다. ‘천노을’은 깜찍한 얼굴로 ‘바주카퐁’의 어깨에 부비적거렸다. 저렇게 덤덤한 얼굴로 지금껏 이런 끔찍한 짓을 해왔다고 생각하니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내 마음이야. 잠깐만 기다려 봐.”

일대일 PVP를 신청하자 맵이 바뀌었다. 울퉁불퉁한 바닥에 3단으로 구성된 격투장 맵이었다. 경수는 의자를 뒤로 뺀 채 노을의 화면을 빤히 바라보았다. 놈은 단축키에 스킬보다도 모션 이모티콘을 잔뜩 끌어다 놓았다. 보통 스킬 단축키로 등록해두는 A, S, D, F 키에는 각각 ‘웃기’, ‘춤추기’, ‘엉엉 울기’, ‘돌아서 윙크하기’가 등록되어 있었다.

“…….”

“형?”

“때려봐.”

“네?!”

노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지난 주말처럼 Tap 키를 사용해 무기를 인벤토리 안으로 집어넣은 뒤, 맵 반대편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경수는 캐릭터를 움직여 따라가는 것보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는 노을의 팔뚝을 아프게 꼬집는 편을 택했다.

“아, 아파요.”

“대체 왜 그래?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나는 원거리 딜러고 너랑 지구별 님은 단거리 딜러니까, 거너 상대하는 법 정도는 알아둬야 할 것 아니야.”

“…제가요?”

“네, 네가요. 그러려고 나 데려온 것 아니야? 이기고 싶다며.”

이 와중에도 시간은 바삐 흘러가고 있었다. 벌써 8분 중 1분이 다 지났다. 노을은 꾹 다문 입술을 달싹이며 중얼거렸다.

“……그럼 형이 뒤에서 알려주세요.”

“알려줄 테니까 다시 무기부터 착용해.”

경수는 다시 제 키보드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듯 노을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렇게 말고, 마우스 움직이는 법이라든가, 형이 스킬 사용하는 방법. 그게 배우고 싶어요.”

“……?”

그러니까 그걸 지금 알려주겠다는 말인데? 경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노을은 가로로 긴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수줍게 웃었다.

“그러니까요, 형. 쉽게 말하자면, 경수 형이 뒤에서 저를 이렇게 안아서….”

“헉!”

노을은 의자에 앉은 채 경수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경수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그는 키보드에서 뻣뻣하게 굳은 손등에 제 손을 얹으며 경수를 돌아보았다. ‘바주카퐁’이 노을의 손가락이 누르는 대로 스킬을 사용했다. 공중제비를 돌며 좌우로 총을 난사하는 화려한 스킬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렇게 가르쳐 주시면 돼요. 그럼 진짜 귀에 쏙쏙 들어올 것 같아요!”

“뭘 어쩌라고?”

“형이 제 뒤에 서서… 윽!”

경수는 노을의 머리에 박치기를 했다. 뻑 소리가 나며 노을이 이마를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그는 울상인 얼굴로 망연하게 물었다.

“왜요….”

“미쳤냐, 내가 가마 할아범이야? 네가 지금 무슨 의자에 앉아있는지를 먼저 봐.”

“……아.”

PC방 의자의 등받이 크기를 올려다본 노을은 더욱더 시무룩해졌다.

“그럼 저처럼 옆에서….”

“안 돼. 허리 아파.”

“……옆에서 말만 한다고 바로 배우면 그게 사람인가.”

생각해보면 노을은 안 그런 듯하면서도, 조곤조곤하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모조리 다 했다.

“다 그렇게 배우거든? 야, 너 말 진짜 많다, 바라는 것도 많고.”

“맞아요, 저 바라는 거 많아요. 그러니까 전설 펫 확정권을 걸었죠. 제가 호구도 아니고 이런 걸 그냥 아무에게나 줄 리가 없잖아요. 서버 내에 매물도 없어서 부르는 게 값인데….”

잠시나마 그를 호구라고 생각했던 경수는 양심이 찔려 입술을 말아 올렸다.

“…그럼 그냥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래요.”

그건 안 돼! 마음이 다급해진 경수는 노을이 앉은 의자의 팔걸이를 덥석 잡았다.

“잠깐만!”

“왜요?”

“너 지금 여기까지 나 끌고 와놓고 이러기야?”

그 말에 노을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끌고 들어왔다니요, 그건 아니죠. 형이 먼저 들어갔잖아요. 제가 뒤따라 온 건데요?”

“…….”

유선상으로는 매번 헤실헤실 웃고, ‘네, 네!’라며 살랑대던 놈이라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건 못할 줄 알았다. 이렇게 단호하게 굴 줄도 아는 애였나? 내 전설 펫…. 놈의 낯선 모습에 경수는 곤란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8분이 다 지났다. 둘 중 누구도 죽지 않아 게임은 무승부로 돌아갔다. 노을은 원래 있던 맵으로 로딩되는 중인 화면을 노려보았다. 그는 뜻을 굽힐 생각이 전혀 없이 확고해 보였다. 잠시 망설이던 경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탁 내쉬었다. 긴 한숨 소리에 노을은 고개를 슬쩍 돌려 경수를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지.”

“네?”

“…네가 바라는 대로 알려주겠다고. 의자 뒤로 좀 빼봐. 조금 앞으로 당겨 앉고.”

언제 뚱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노을의 얼굴이 한순간 확 피어났다.

“어떤 스킬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만 알려줄 거야. 한 번 만에 알아들어야 해.”

“네에.”

“그러려면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거너요?”

그건 어렵지 않다는 듯 노을은 마침 근처를 달려가던 거너를 잡아 일대일 PVP를 걸었다.

[전체] 갓컨철수: ?

“……?”

이게 뭐지? 지나가던 놈을 붙잡아서 싸움을 건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상대방이 PVP 신청을 수락했다.

[전체] 갓컨철수: 님 저는 왜…?

[전체] 천노을: 누구세요;;

[전체] 갓컨철수: ????

[전체] 천노을: ?

“…누군지 몰라?”

“쟤요? 거너잖아요.”

“그게 아니라, 모르는 사람인데 왜….”

“형, 시작해요.”

READY… FIGHT!

나직한 노을의 말에 경수는 일단 이동키 위에 손을 얹었다. 노을의 손은 보기보다 차가웠다. 처음 본 놈과 PC방까지 오고 사내새끼랑 손까지 잡, 아니, 얹다니….

일단 게임이 시작되자, 상대가 먼저 스킬을 사용했다. 노을의 캐릭터는 경수가 맞춰준 장비 덕에 허리가 꺾이는 것을 겨우 모면했다. 경수는 바닥을 구르며 칼춤을 추는 이동기 스킬을 사용해 거너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전체] 갓컨철수: 머야???

‘슬래시 블라스트!’

원거리 직업이 다 그렇듯, 거너 또한 회피력은 썩 높지 않았다. 범위가 좁은 대신에 300%의 데미지를 자랑하는 스킬에 갓컨철수는 도망도 치지 못하고 계속 칼에 베이고 또 베였다.

‘30 COMBO!’

‘1 DEATH!’

[전체] 갓컨철수: …?????

놈이 풀썩 쓰러졌다. 눈이 엑스 자로 변해 죽었던 갓컨철수는 PVP 규칙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5초간의 무적 타임 동안 그는 직업 스킬을 사용해 몸 주변으로 장벽을 세웠다. 그 탓에 데미지가 덜 들어가게 되었다.

“거너랑 일대일로 뜰 땐 무조건 네가 유리해. 블레이즈가 단거리 직업인 건 알지?”

“네.”

‘스핀 토네이도!’

갓컨철수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좌우로 총알을 난사하는 스핀 토네이도 기술을 썼다. HP의 절반을 깎아 주변으로 최대 10명의 적을 공격하는 대 범위 스킬이었다. 하지만 그건 몬스터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기를 끌어모으는 시간이 길어, 유저들은 그냥 폴짝 뛰어 피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아무래도 몬스터만 때려잡을 줄 알았지, 유저들과의 싸움은 해 본 적이 없는 놈인 것 같았다.

[전체] 갓컨철수: 와 이걸 피하내;;ㄷㄷ

갓컨철수는 상단으로 폴짝 뛰어 위에 떠 있는 발판으로 이동했다. 위로 도망치는 중에 두세 방 얻어맞아, 발판 아래 달린 HP 게이지가 빨갛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사망 직전임을 뜻하는 색이다. 경수는 굳이 번거롭게 그를 따라가지 않고, 한 번 짧게 뛰어 칼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누가 위로 튀면 가까운 사람이 아래로 끌어내리면 돼.”

“잘 모르겠어요.”

“……왜냐면 위로 가서 체력 회복하고 다시 내려오니까, 딸피 됐을 때 죽여야지.”

‘2 DEATH!’

[전체] 갓컨철수: ㅅ1발

“이제 직접 해 볼래? 그냥 따라다니면서 때리면 돼.”

“형, 그게 되면 제가 형을 왜 데려왔겠어요. 더 알려주세요.”

“…….”

그래도 나름 집중하고 있는 모양인지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노력에 비해 보수가 엄청나게 큰 편이니 이 정도쯤이야 몇십 번은 더 말해줄 수 있었다.

경수는 끝나기 전까지 도망 다니는 전략을 쓰려는 갓컨철수를 고개 돌릴 틈조차 주지 않고 마구 썰었다. 두 개의 칼을 들고 우아하게 칼춤 추듯 돌아선 캐릭터는 주황빛의 플레임 효과와 함께 갓컨철수 위로 칼을 내리쳤다.

‘8 DEATH!’

[전체] 갓컨철수: 발컨이라매

[전체] 갓컨철수: ㅅ;ㅂ라

결국 갓컨철수는 9번의 죽음을 기록하고 천노을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그는 쌍욕을 내뱉으며 다른 채널로 이동했다.

“움직이는 건 대충 알 것 같아요.”

“……움직이는 거? 어떤?”

“가까이 가서 패면 되는 거요!”

“그걸 이제 알았다고…?”

“네!”

노을은 너무나도 해맑게 웃었다. 그는 또다시 지나가는 거너를 잡아다 PVP 신청을 했고, 기묘하게도 상대는 또 승낙을 했다. 땀을 바지춤에다 닦은 경수는 그렇게 총 열두 명의 유저들을 묵사발 내놓았다.

[길드] ㅈi9별: 천놀님ㅇㅅㅇ

그때 잠잠하던 길드 채팅창에 천노을을 찾는 말이 올라왔다.

[길드] ㅈi9별: 님 깔은 오늘 안 와여?

“형, 오늘 안 들어오냐는 데요?”

노을은 경수를 돌아보며 물었다. 부캐인 바주카퐁은 길드에 가입시켜두지 않아서 접속 중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길드] ㅈi9별: 짭바퀴님 오늘 못 들어 온다는데ㅋㅋㅋ 냥님도 오늘 안 오시나?? 연락돼요?

“형, 연락 되냬요.”

“그걸 왜 너한테 묻지?”

“글쎄요?”

[길드] ㅈi9별: 내일은 꼭 들어오라고 해주세여 작전 짜게ㅇㅅㅇ 길드 톡 보냈는데 데이터 꺼 놨나 봄ㅠ

“…….”

놈과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이가 아닌데, 왜 천노을이 그걸 도맡아 전하냐 이 말이야. 경수는 화면을 심각하게 들여다보았고, 노을의 미소는 짙어졌다. 노을은 키보드에 손을 얹으려는 경수를 저지했다.

[길드] ㅈi9별: 천노을님

[길드] ㅈi9별: 님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길드] ㅈi9별: 님 잠수?????

[길드] 할로윈가지: 시끄럽다ㅡㅡ

[길드] ㅈi9별: ㅇㅋ

[길드] ㅈi9별: 님ㅁㅁㅁㅁㅁ 잠수???(소곤)

‘ㅈi9별 님께서 일반길드원으로 강등되었습니다.’

[길드] ㅈi9별: 아

[길드] neutaaa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박휘벌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ㅉㅉ

[길드] ㅈi9별: ㅈㅅㅈㅅ;;

“아무튼, 이제 알겠지?”

“조금요.”

그래, 이만큼 알려줬으면 그래도 스킬은 그럴듯하게 쓸 수 있겠지. 천노을은 경수를 따라 하듯 좌우로 이동하며 폴짝 뛰어 이동기를 사용해 보였다.

“이제 분양권 내놔.”

“앗.”

경수는 키보드의 I 키를 눌러 아이템 창을 열었다. 그리고 이벤트 아이템을 마우스로 클릭하자, 영롱한 무지개 테두리의 분양권이 첫 번째 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경수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그런데, 마우스를 가져다 대니 이상한 효과가 아이템 주변을 빙글 돌았다.

“자물쇠?”

(보호)(SSS/★전설★) 전설 펫 확정 분양권

-은하수에서 태어난 소환수를 분양받을 수 있다.

전설 펫 확정권에는 아이템 보호가 걸려있었다. 해킹 방지를 위한 시스템이었다. 혹시 해킹을 당해 귀중한 아이템을 한순간 잃어서는 곤란하니 희귀 아이템에는 보호를 걸어두는 게 필수이기는 했다. 한 번 보호를 걸어둔 아이템은 해제하는 데에만 무려 2주일이나 걸렸다.

“…뭐야, 이거.”

“아, 양도할 거 생각을 못 해놔서 일단 보호 걸어뒀거든요.”

“…….”

경수는 기대감에 들떴던 터라 상황 파악을 못 한 채 눈을 껌뻑거렸다. 노을은 그런 경수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해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보호 풀리는 날까지는 도와주셔야 해요.”

“…내일모레가 길드전인데?”

“제가 모레 PVP 끝난다고 해서 당장 게임을 접지는 않잖아요?”

“……씨발.”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왜 있지? 당장 뱉을 수 있는데.

“그러니까 형 번호 주세요.”

“야, 이 사기꾼아.”

“오늘 만나러 와주셨으니까 내일은 제가 학교 앞으로 데리러 갈게요!”

천노을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났다. 경수는 깊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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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rk Mage’s Return to Enlistment

The Dark Mage’s Return to Enlistment

gwihwanhaessneunde ibdae jeonnal-ida I returned, but it was the day before enlistment.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
Score 3.3
Status: Ongoing Native Language: Korean

Kim Minjun, who was a normal high school senior in South Korea, was suddenly summoned to another world and became a dark magician.

Minjun, who persevered through all sorts of hardships with the single-minded goal of returning home, saved this other world with his dark magic.

Casting aside a life as a hero and guaranteed riches, he returned to Earth.

Just when he was about to fully enjoy his life, a problem arose. A dungeon break occurred, and monsters began pouring out. Not only did this threaten the peaceful Earth life that Minjun had just returned to… But on his very first day back, he was also ordered to enlist in the mili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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