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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

20화 검의 재능 (2)

20화 검의 재능 (2)

검의 재능.

카인도 지니고 있는 이 특성은 검에 뜻을 품은 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능력이다.

물론 정통 판타지 소설이었던 무한회귀에서 검의 재능이란, 지금처럼 스테이터스에 명시된 특성은 아니었다.

다만 소드 엑스퍼트 이상, 즉 오러의 발현이 가능한 기사 중 감각이 뛰어난 자는 검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다는 대목이 있다.

이유는 분명했다.

오직 검의 재능을 지닌 자만이 오러를 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검의 재능을 개화했다.

***

내가 휘두른 생명의 검이 어두운 손을 가르고, 균열을 타격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초라한 재로 변해 부서지는 검은 손.

폭발하듯 균열 속으로 흩어지던 그것이 어떤 형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의식이 반쯤 날아간 나조차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하게.

호기롭게 웃는 용병단장.

비밀을 간직한 그림자 살수.

오만하지만 재능 넘치는 공작가의 후예.

몰락한 달빛의 공주.

균열 속의 그림은 움직이는 초상화처럼 나의 정신을 스쳤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카인의 기억이다. 웹소설 무한회귀의 활자 속에서 카인이 걸어온 길.

지금의 카인은 알지 못하는, 그러나 나만은 알고 있는 무한회귀의 역사. 그것이 마치 죽음을 앞둔 화가가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워 그리는 화폭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파짓!

짧지만 강렬한 파열음과 함께 무한회귀의 역사가 사라졌다. 이어 엄청난 압력이 나를 강타했다. 그 힘이 내 손에 들린 생명의 검을 산산조각으로 부수며 나를 밀어냈다.

등 뒤로 몰아치는 폭풍과도 같은 바람을 느끼며 나는 웃었다.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원작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균열이 왜 생겨났는지. 그 안에서 튀어나오는 검은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입에서 왈칵 피가 쏟아졌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일어서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몸 안의 기력이 모조리 증발한 것 같다.

“에티엔 경!”

“어떻게 이런 일이······!”

에티엔과 함께 왔던 두 기사의 목소리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이런 때.

나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애썼다. 억지로 눈을 깜빡거리자 조금씩 시야가 회복됐다. 하지만 눈앞은 여전히 부연 세상일 뿐이다.

분노한 기사의 발걸음이 다가왔다. 나는 발악하듯 두 팔에 힘을 주었다. 일어나라. 이대로면 놈들의 검에 죽는다.

“데미안!”

뜻밖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 안개를 걷어냈다. 익숙한 그 목소리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가까워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를 향해 팔을 뻗었다. 작지만 단단한 손이 내 손을 맞잡았다.

부웅, 내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나는 당겨지는 힘에 맞춰 몸을 띄웠고, 빙글빙글 회전하는 세계를 느끼며 군마의 등에 안착했다.

“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데미안.”

이제까지 들은 카인의 목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지금의 내가 온전한 정신이 아니기 때문일까. 묘하게도 나는 그의 목소리에서 어떤 진심 어린 감정을 느꼈다.

나는 대답 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걷힌 하늘에는 별빛이 가득 차 있었다. 양옆으로 달빛을 머금은 은녹색 숲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인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은 마치 거대한 강물처럼 보였다.

“대장. 기사들이 쫓아온다.”

69번의 목소리.

“가까워지고 있어. 이대로면 따라잡힐 거야.”

나는 그의 목소리에서 노골적인 감정을 느꼈다. 녀석은 나를 버리고 가야 한다고 은근히 말하고 있었다. 젠장. 잠시 별하늘 구경이나 하려 했더니.

나는 하나 남은 힐링 블룸을 씹어 삼키며 주위를 둘러봤다. 한결 맑아진 시야로 드러난 풍경은 주위를 달리는 세 마리의 군마였다.

“이대로 달린다.”

카인의 대답은 조금 의외였다. 그러고 보니 나를 구한 것부터가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물론 카인은 나를 살리고 싶어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위험에 처하면서까지 구할 이유는 없다.

“138번은 우리 동료가 아니야. 놈을 버리고 대장만이라도.”

“이대로 달린다고 했다. 마르셀.”

69번이 눈을 떨며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카인에게 이름으로 불린 것이 기뻤던 모양인데, 내 눈에는 재수 없어 보였다.

“우리의 속도가 느린 이유는 부족한 승마술 때문이다. 두 아이의 무게를 합해도 갑옷을 입은 기사의 무게를 넘을 수는 없어.”

신기한 구경거리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카인이라니. 그런데 한편으로는 위화감이 든다. 카인은 이미 발이 느린 조원을 버린 전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왜지. 살아남은 조원들은 다소 쓸모가 있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그의 정신 나간 머릿속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찌 됐든 카인아. 네가 날 버리지 않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내가 말을 몰게.”

카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돌아봤다.

“내게 맡겨. 카인.”

나는 이 세계에 들어오기 전 승마술을 배운 적이 있고, 빼어난 재능을 보였었다. 프로급은 아니지만 지금의 카인보다는 훨씬 낫다고 자부한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고삐를 쥐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나는 이대로 숲을 떠나지 않을 거다. 아직 테오 일행을 만나지 못했으니까.

“자신 있나? 데미안.”

“물론이지.”

나는 카인과 자리를 바꿨다. 달리는 말 위에서 하기엔 어려운 곡예였지만 하센베르크 격투술이 도움이 됐다.

말고삐를 쥐자마자 상태창이 떠올랐다.

[승마술(Lv.2)을 획득합니다.]

역시. 처음부터 2레벨의 승마술이다.

카인의 승마술은 1레벨이었으니, 내가 더 말을 잘 탄다는 것이 시스템상으로도 증명됐다.

이히히힝!

군마는 순식간에 앞으로 치고 나갔다. 뒤를 돌아보니 카인이 제법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숲의 향이 밀려든다. 불어오는 바람이 내 머리칼을 흐트러뜨렸다. 나는 개운함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속도는 빨라졌지만 이 정도로는 기사들을 뿌리칠 수 없다. 그들의 승마술은 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니까.

“시간은 벌었지만 결국 따라잡힐 거야. 어떻게 할 셈이지? 카인.”

“나야말로 묻고 싶군. 너는 마법사가 아닌가.”

“아닌데.”

“뭐라고?”

리메이크 스킬로 마법과 비슷한 능력을 쓸 수는 있다. 하지만 마석 단검을 ‘라이프 스톤 검’으로 개화하며 나는 가지고 있던 모든 RP를 소모했다.

심지어 그 결과물인 라이프 스톤 검마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시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균열의 확장을 막아야 했으니까.

“나에게 뭘 기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불가능해 카인.”

가만. 설마 카인은 내 리메이크 스킬을 이용하기 위해 나를 구한 건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아니, 거의 확실하다.

“네 부하들은 어쩔 셈이지?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데.”

카인의 부하들은 점점 우리와 멀어졌다. 이제는 육안이 아닌 미니맵으로만 확인이 가능했다. 어느새 우리는 급격한 커브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역시 도와줄 생각은 없다는 건가.

하지만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나는 테오 일행을 찾을 셈이지만 C조를 도울 마음은 없다. 게다가 69번, 아니 마르셀이라는 놈은 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고.

‘응?’

미니맵을 주시하던 나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중립적 대상의 표식 중 하나가 둘로 쪼개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짝 붙어 있던 두 표식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그것의 의미하는 바는 뻔했다.

‘결국 동료를 내친 건가.’

나는 카인에게 말고삐를 건넨 뒤 말에서 뛰어내렸다.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카인이 두 눈을 부릅떴고, 그 얼굴을 보며 나는 히죽 비웃어 주었다.

“데미안!”

달리는 말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다. 그러나 내게는 거미줄이 있다.

[거미줄을 발사합니다.]

발사된 거미줄이 거목에 달라붙었다. 그것을 적당히 수축하고, 또 하센베르크 격투술의 낙법을 활용해 나는 다치지 않고 지면에 도달했다. 물론 꼴사납게 바닥을 구르기는 했지만.

[거미줄의 사용 횟수가 1회 남았습니다.]

고개를 들자 카인이 멍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금세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간 녀석이 힘차게 말을 달렸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숲의 어둠으로 진입했다.

‘그럼 가볼까.’

내가 말에서 내린 이유는 테오 일행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두 발로 달렸고, 나는 말을 타고 이동했다. 이쯤에서 내려 되돌아가면 테오를 만날 수 있을 거다.

‘그렇지? 먼지야.’

먼지가 꼬리를 살랑거렸다. 먼지는 패닉 상태에서 해방됐다. 차원의 그림자와 균열이 소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정신으로 돌아온 먼지는 내게 테오가 있는 방향을 알려줬고, 나는 커브길 덕에 기사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다.

저 멀리 말을 달려오는 마르셀이 보였다. 뒷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보니, 역시나 동료를 버린 이는 마르셀이었다. 카인의 다른 부하 둘도 모습을 드러냈다. 마르셀과 달리 그들의 뒷자리에는 아직 동료가 있었다. 그 뒤를 기사들이 바짝 추격해 왔다.

“빌어먹을! 내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카인의 두 부하도 결단을 내렸다. 그들은 매몰차게 뒷자리의 동료를 밀쳐 떨어뜨렸다.

“히이익!”

“사, 살려······!”

낙마한 두 소년의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데굴데굴 지면을 구른 소년들은 순식간에 피범벅이 됐고, 때마침 그들에게 근접한 두 기사가 단칼에 목을 베었다.

멍청한 녀석들. 버릴 셈이었다면 진즉 버렸어야 했다. 결단이 늦은 탓에 저 둘도 금세 기사들에게 따라잡힐 것이다. 그러고는 마찬가지로 목이 베이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C조가 어찌 되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내가 할 일은 테오를 찾는 것이다. 나는 미니맵의 표식을 몬스터 중 하나로 바꾸려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중립적 대상의 표식 하나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표식은 보급로가 아닌 숲을 가로지르며 접근했다. 그것도 나를 향해, 똑바로.

시이이잇!

시커먼 그림자가 내 머리 위를 날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것을 봤다. 달빛을 등진 그림자의 손에서 날붙이가 번득였다. 그것이 군마를 타고 달리는 기사 한 명의 목을 순식간에 그었다.

“크륵······!”

반쯤 잘린 기사의 목에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그것을 보자마자 내 머리에 떠오르는 광경이 있었다. 에티엔에게 단검을 투척했던 정체불명의 그림자. 영문도 모른 채 숲에서 죽어있던 병사들의 시체.

그러나 나는 다른 이유로 더욱 놀랐다. 환하게 내려앉는 달빛이 지면에 선 그림자의 외형을 선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솨아아아아.

바람에 흩날리는 긴 머리.

이질적인 어둠으로 덮인 자그만 얼굴.

왼쪽 가슴에 희미하게 드러난 번호, 79번.

생각지도 못했다. 녀석이 이 광산에 있었고, 심지어 카인의 C조에 속해있었을 줄은. 그러나 납득할 수 있다. 녀석이라면 자신의 존재감을 숨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오싹한 냉기가 등골을 타고 흘렀다.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비밀을 간직한 그림자 살수.

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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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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