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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

#외전 3. 하우징

“네? 형 이사 가요?”

“그렇게 됐어.”

계약 기간이 끝나면, 유학 갔던 집주인의 아들이 들어와 살 예정이라고 한다. 이사를 미루고 미루다가, 정말 집을 빼야 할 날이 코앞까지 닥치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리 급하다고 해서 이 얘기를 천노을 앞에서 꺼내는 건 아니었는데….

“그럼 저랑 살래요? 방 하나 남는데.”

노을은 10초쯤 생각하다 아무렇지 않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의 날씨는 무척 맑아요.’라고 말하는 듯 아주 일상적인 어투였다. 경수는 자신이 그냥 한 말에, 천노을이 무척 급한 일이라고 오해를 한 건 아닌가, 하고 잠시 생각하게 되었다.

“미쳤어. 너랑 왜 살아, 내가.”

경수는 피식 웃으며 천노을 쪽으로 예쁘게 돌돌 말린 계란말이가 담긴 접시를 밀어주었다. ‘그래요? 그럼 말구.’ 하고 헤헤 웃을 줄 알았던 노을은 고개를 들어 경수를 불퉁하게 바라보았다. 그 불만스러운 시선을 뒤늦게 눈치챈 경수가 물었다.

“뭔데?”

“형이 저랑 안 살면 어떤 새끼랑 사는데요?”

“뭐? 새끼?”

노을은 경수의 말에 대답하기보다는, 정말 삐진 것처럼 입술을 삐죽거리며 대들었다.

“와 진짜 어이없어. 형 왜 그래요? 언제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귀엽고, 멋지고, 뽀뽀하고 싶고, 사랑스럽다면서!”

“…내가 언제?”

그런 말은 한 적 없었다. 아마도.

“영상을 찍어뒀어야 했는데. 기억 안 나요? 형이 전에 술 먹고 새벽 한 시에 우리 집에 쳐들어와서.”

“…….”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아직도 생생해요. 저보고 너무너무 예쁘다면서 갑자기 쓰러지면서 제 다리 잡고 늘어졌고.”

“그, 그건.”

“갑자기 옷 벗기더니 제 자지에 막 뽀뽀도…!”

“씨발!”

아니나 다를까. 그날 일이 맞았다. 그땐 잠깐 미쳤었던 게 분명하다.

“기억나요?”

“안 나! 안 난다고!”

“아, 또 생각하니까 꼴려. 혀엉….”

“뭐가 꼴려, 씹, 기억 안 난다고!”

“그럼 지금 다시 한번 재연해봐요. 그럼 기억이 날지도 모르잖… 앗.”

노을의 말을 헛소리처럼 치부해 넘긴 경수는 그에게 양보했던 마지막 계란말이에 다시 손을 뻗었다. 미친 소리를 할 거면 다시 내놓으라는 의미였다. 노을은 급히 자신의 젓가락으로 경수의 젓가락을 툭 쳐냈다. 그러고는 경수에게 빼앗길세라 노란 계란말이를 젓가락으로 콕 찍어 한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음흐음으으흠?”

“네 말이 다 맞아.”

경수가 뭐라고 하는지 모를 말에 대충 대답해주자 노을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러자 노을은 주먹을 쥐고 식탁을 콩 내리치며 말했다.

“움으!”

“알았어… 일단 다 먹고 말해.”

멀쩡한 상태로 하는 말도 가끔 이해할 수 없는데, 입을 다문 채 웅얼거리는 것을 해석할 능력이 경수에게는 없었다. 노을은 그 말에 꾹 다문 입술을 바삐 움직여 음식을 꼭꼭 씹었다. 그는 목구멍 너머로 음식을 꿀꺽 삼켜 넘긴 후에야 입을 열었다.

“형, 저 진지하게 하는 말이에요. 농담 아니란 말이에요.”

“나도 진지하게 대답했어.”

“형.”

“응.”

“나랑 살기 싫어요?”

“응.”

조금의 주저도 없이 나온 말에 노을의 입이 벌어졌다.

“지, 지…짜…?”

많이 당황했는지 노을의 발음이 샜다. 경수는 제 말을 딱히 정정하지 않고 먼저 일어나 빈 그릇을 치웠다. 잘그락거리는 소리에도 노을은 그대로 석상처럼 쩍 굳어 어버버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듯 무척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간만에 보는 웃긴 얼굴이네. 매일 저를 놀린다고 빙글거리며 헤실헤실 웃는 얼굴만 보다가, 간만에 당황한 표정을 보니 또 색다른 기분이었다.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경수는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었다.

그때 바로잡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맹세컨대, 이후에 천노을에게 밤낮없이 문자 폭탄에 시달릴 것을 생각할 정도로 더 영리했다면, 경수는 그 자리에서 입에 발린 거짓말이라도 기꺼이 했을 것이었다.

*

딩동.

갑자기 울린 초인종 소리에 이제 막 컴퓨터를 켜려던 경수는 고개를 돌렸다.

‘이 시간에 누구 올 사람이 없는데. 택배인가?’

그는 부모님이 지방에서 과일이라도 보내주신 건가, 하고 생각하며 인터폰 화면은 확인도 하지 않고 현관문을 열었다.

“짜자안, 놀랐죠!”

문 앞에서 천노을이 손으로 턱에 꽃받침을 하고 히죽 웃었다. 미친놈….

“…….”

쾅!

“혀, 형?”

경수는 곧바로 문을 잡아당겨 보조 잠금장치까지 잠가버렸다. 철컥 소리와 함께 잠금쇠가 돌아갔고, 도어록을 열어도 이제 열쇠가 없으면 안에 들어오지 못한다.

삐, 삐삐삑! 덜컥.

예상대로 노을은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도 문이 열리지 않자, 초인종을 누르며 문틈으로 속삭였다.

“형, 지금 열면 뽀뽀로 퉁쳐드릴게요.”

“…….”

웃기시네. 어차피 자신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오지도 못할 놈이었다. 허세를 부리는 꼴이 아주 귀여웠다. 내가 안 열면 어쩌려고 저러지? 경수는 팔짱을 끼고 여유롭게 대답했다.

“나야말로 지금 돌아가면 봐줄게.”

“후회하실 텐데….”

“노을아. 나는 후? 뭐더라. 후회? 하… 그게 뭔지를 몰라. 후회가 뭐야?”

“후회는요. 형이 지금 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을 뒤늦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문 열어요.”

“내가 정말 그걸 몰라서 물은 것 같아?”

“방금 물어봤잖아요.”

“…….”

“형이 물어봐 놓고 맨날 까먹어.”

놈을 알게 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그가 할 말을 완전히 예상하기란 밤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웠다.

“그런데 나 너무 추워요….”

“…….”

“혀엉, 저 얼어 죽으면 어쩌죠…?”

“…….”

그럼… 안 되는데.

오늘 날이 꽤 춥기는 했다. 하품을 하던 길고양이의 입에서도 하얀 김이 서려 나올 정도로. 복도 벽에서도 냉기가 배어 나오니 바람이 불지 않아도 춥기는 할 터였다.

“춥다… 저 얼어 죽어용….”

그는 다시 한번 문틈으로 저 들으라고 속삭였다. 경수는 슬쩍 현관문에 손을 대보았다.

“앗, 차가….”

천노을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옷은 따뜻하게 걸치고 왔을까? 아까 얼핏 보고 문을 닫아버려서, 그가 무슨 옷을 입고 왔는지 미처 보지 못했다. 귀여운 척 꽃받침을 하고 있는 바람에 얼굴밖에 안 보였다.

자신이 평소에 남의 차림새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인 듯했다. 조금 후회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평소에도 사람을 면밀히 관찰하는 습관을 길러두는 건데. 문이 닫히기 전 노을의 머리카락이 평소보다 더 차분했고 뺨이 긁혀서 귀여… 아니, 아팠겠다는 것 정도만 떠올랐다. 정말 기억나는 건 얼굴뿐이었다.

‘그래도 제정신이라면 외투는 입고 왔겠지?’

“형. 저 죽어가요.”

“…죽기 직전에는 열어줄게.”

“히잉….”

“불쌍한 척해도 안 돼.”

말은 이렇게 해도 이미 마음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십 초 셀게요.”

“그래라.”

“문 안 열어주시면 형 오늘 잠은 다 잤어요.”

“너 지금 나 협박해? 많이 컸다.”

“전 원래 형보다는 컸는데요?”

이 씨발.

경수가 속으로 욕을 읊조리기 무섭게 초인종이 마구 울리기 시작했다.

딩동, 딩동, 딩딩딩딩딩딩딩동!

“…….”

놈이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오늘도 같이 점심까지 먹고 멀쩡히 손을 흔들며 헤어졌는데,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집으로, 그것도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행동이 수상쩍었다. 바라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게 분명했다.

“혀엉….”

“…….”

지금 문을 열어주면 불쌍한 척하며 말꼬리를 늘어뜨리는 천노을이 쳐들어오고.

“나빠… 진짜 저한테 이러기예요?”

딩딩딩딩딩딩동!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밤새 초인종이 울리겠지. 애초에 경수에게 선택권이란 없었다. 모든 일은 노을의 바람대로 흘러갔다. 경수는 잠금쇠를 잡아 오른쪽으로 돌리고 마침내 문을 열었다. 싸늘한 공기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미친놈아, 그만하고 들어와. 진짜 뒤지려고 작정했나.”

열심히 누르던 초인종에서 손을 뗀 노을이 히, 하고 웃었다. 날이 많이 추운 것은 맞는지 뽀얀 입김이 나왔다.

“얼어 죽을 뻔했네.”

“그러게 누가 이렇게 불쑥 찾아오래.”

“살려줘서 고마워요!”

노을은 손을 뻗어 경수를 껴안으려 했지만, 그가 불끈 쥔 주먹을 보고 얌전히 손을 내렸다. 추위에 뺨이 빨개진 노을이 해맑게 웃으며 집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는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입맞춤을 바라고 하는 행동이었다.

“또 까분다.”

“그래도 좋잖아요. 빨리이.”

익숙한 애교에 피식 웃은 경수는 손을 들어 그의 뺨을 살포시 감쌌다. 노을이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눈을 감았다. 기대감에 눈썹이 움찔거렸다. 경수는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힘차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악!”

뻑! 하는 소리가 나며 노을의 이마가 추위에 언 뺨보다 더 붉어졌다. 그는 박치기를 당해 부어오른 이마를 부여잡고 이번엔 정말 죽을 것 같다고 엄살을 부리기 시작했다.

“형 빨리 제 유언 받아써요. 1분 뒤에 저 죽어요. 진짜로!”

“오버한다.”

그렇게 세게 박지는 않았는데. 경수도 이마가 아프긴 했지만, 조금 얼얼한 정도에 그쳤다. 그런데 천노을은 눈꼬리에 눈물까지 대롱대롱 달고 ‘진짜 아팠어요!’ 하고 잉잉거렸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 게, 하얀 이마가 붉어져서 조금 부풀어 올랐다. 경수는 슬쩍 제 머리를 만져보았다. 마찬가지로 좀 부어 있을 거란 기대와는 다르게 무척 멀쩡했다.

‘노을이 머리가 말랑말랑한가.’

그는 제 머리가 단단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천노을의 몸이 꽃잎처럼 연약하다고 멋대로 판단해버렸다.

*

“피난이라도 온 거야?”

노을은 뭐가 자랑이라고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주말 내내 눌러앉아 있을 작정인지 그는 무작정 경수의 방에 짐을 풀고 샤워까지 하고 나와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집에서 가지고 온 노트북을 컴퓨터 옆에 놓고 경수가 씻고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 비밀번호는 몰라서 로그인 못 해뒀어요.”

“내가 알려줄 것 같냐?”

“치사하게. 전 통장 비밀번호 빼고 다 알려줬잖아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려던 경수는 노을이 여전히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리고 그냥 생수를 가져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천노을은 술이 조금 약한 편이었다. 그는 많이 마시든, 조금 마시든 반드시 다음날이 되면 죽을 것처럼 괴로워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라니, 아무래도 유전인 것 같았다.

파삭! 노을의 노트북에서 땅을 파는 것 같은 효과음이 들렸다. 물을 가지고 그 앞으로 이동한 경수는 뭘 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집 지을 건데요?”

“그걸 왜 지어.”

한 달 전, 일루전에서는 대규모 업데이트가 있었다. 새로운 몬스터와 맵이 몇 개 추가되었고, 길드존에 연결된 포탈 맵이 하나 늘어났다.

제목: [업데이트] 신규 맵, ‘위키드’ OPEN!

작성자: GM 뿔사슴

내용: 안녕하세요, 모험가님!

넓고 광활한 일루전 월드는 아직 개척되지 않은 땅이 넘쳐납니다.

마침내 우리의 탐험가, 헤리테지가 또다시 새로운 대륙을 발견했습니다! 탐험에서 돌아온 그는 신대륙을 ‘별이 살아 숨 쉬는 신비로운 장소’라고 말하고 곧바로 곯아떨어졌습니다! 고된 여정으로 많이 피곤해 보여 곧장 깨어날 것 같지는 않군요.

그곳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요?

그의 탐험 일지를 토대로 새로운 시나리오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개척되지 않은 신비의 땅, <위키드>에서 신선하고 몽환적인 경험을 해보세요. 충만한 행운이 늘 모험가님과 함께합니다.

[업데이트 내용]

* 길드존의 분수 위에 신대륙으로 이동하는 포탈이 생성되었습니다.

* 시나리오 추가 업데이트

* 신 몬스터, 신 맵 추가

* 신 인스턴트 던전 추가

☞신규 월드 상세 페이지 바로 가기

* 길드존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중간지역’에 커플 전용 기능 ‘하우징(Housing)’이 도입되었습니다.

* 길드존의 1:1 PVP 기능이 ‘중간지역’에도 적용되었습니다.

☞중간지역 안내 페이지 바로 가기

(댓글을 달 수 없는 게시글입니다.)

신규 맵이 업데이트되며 함께 등장한 ‘중간지역’은 길드존의 연장과도 같았다.

길드존의 분수 위 포탈을 타고 들어가면 ‘중간지역’이라고 이름이 붙은, 텅 비어 있는 광활한 맵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커플인 유저들이 작은 집을 지어 올리는 ‘하우징’을 할 수 있었다. 집을 짓고 나면 일시적으로 포탈이 나타나는데, 그 포탈을 타고 들어가면 작은 집과 같은 공간이 나타난다.

「노을이: 형」

「노을이: 형!!!」

「노을이: 형아♥」

「나: ? 돌았냐?」

「노을이: 귀여운 노을이가 보고 잇잖아요! 예쁜 말ㅇㅅ”ㅇ!」

「나: ♥☆★#미쳤니♡*&?쳐돌았니%★☆♥?」

「노을이: ㅎㅎ; 꾸민다고 다 예쁜 말은 아닌데…ㅠ 암튼 보러 와요 집 지었으니까」

「나: ? 무슨 집?」

「노을이: 우리 신혼집ㅇ//ㅅ/ㅇ♡」

게임 내 커플 기능이라면 다 체험해봐야 만족하는 노을은, 하우징 기능이 나오자 다짜고짜 자신이 집을 지었으니 놀러 오라고 통보하고 사라졌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파악하는 데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경수가 게임에 접속했을 때에는 노을이 ‘우리의 신혼집’이라 이름 붙인 하우징이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전체]썬셋: ㅅㅂ아 귀찮게 벌레 새1끼들이 자꾸 몰려드네ㅋㅋ

[전체]스페이드퀸: 웽웽ㅋㅋ

[전체]썬셋: 아 좀 꺼1져….

[커플]냥이냥나냥: 벌레 새1끼가 누군데? 민재?

[전체]썬셋: 헉

[전체]썬셋: 아ㅏ니

[전체]아슬렌: ?

[전체]설영: 왜 저럼?

[전체]썬셋: 형 미안해요ㅠㅠㅠㅠㅠ 온 줄 몰랐어요ㅠㅠ 욕 들어서 어떡해ㅠㅠ??? 어떡해ㅠㅠㅠㅠㅠ 흐르는 물로 귀 씻어요 빨리ㅠㅠㅠㅠㅠㅠㅠㅠ

[전체]아슬렌: 아… 냥님 들어왔나 봄^^;

[전체]설영: 웩

[전체]아슬렌: 썬셋님 때매 설영님 로그아웃했잖아요

[전체]스페이드퀸: ㅠㅠ이제 누가 반말해주냐….

경수는 그날 자신이 게임에 접속하기 전까지 노을이 집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선율 길드원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커플]냥이냥나냥: 미리 말하지… 뭐가 갖고 싶어서 그랬어…?

[커플]썬셋: 타이틀이요ㅠㅠㅠㅠㅠ

일단 하우징 기능을 사용해 ‘집’을 짓고 나면 서버에 공지가 뜬다. 그러면 남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집을 부수러 오는 게 일반적인 순서였다.

[전체]설영: 하우징 평가 50퍼 됐다 이만 철수~

[전체]썬셋: 개어이… ㅇㅅ;ㅇ;;

[전체]스페이드퀸: 다들 수고하셨어요ㅋ

[전체]할로윈가지: ㅅㄱㅅㄱ

[전체]ㅈi9별: 님도 수고하셨어요ㅎㅎ

[전체]스페이드퀸: ㅎㅎ

그런 의미에서 다른 누구도 아니고 썬셋이, 냥이냥나냥도 접속하지 않았을 때 집을 지었다는 것은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전체]썬셋: 아니… 대체 남의 신혼집에 왜 달려들고 난리지?

[전체]썬셋: 망겜이라 인성 쓰레기들밖에 안 남았나ㅇㅅㅇㅋㅋ

[전체]돌아이크림: ??

[전체]스페이드퀸: 자기소개 잘 들었음ㅋㅋ

[전체]닭발러버: 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ㅈi9별: 저기요 님이 할 말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포세이돈대장: 혹시 님 앞에 거울이 있나요?

[전체]썬셋: ㄴㄴ

[전체]포세이돈대장: 그럼 그냥 존1나 미1쳤나….

[전체]할로윈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길마님 왜 답지 않게 욕해요ㅠ 욕도 잘 못 하면서

…하여간 말 그대로 ‘테러’였다. 그 때문에 중간지역에 지은 집을 끝까지 지켜내는 커플은 한 쌍도 없었다.

집 앞에 일시적으로 생겨난 포탈은 커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드나들 수 있었다. 유저들은 그것을 ‘집들이’라고 불렀는데, ‘집들이’를 마치고 나가는 유저들은 집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썬셋의 유명세 때문인지는 몰라도 집들이 온 놈들 절반이 ‘차라리 쓰레기통에서 살겠어요.’를 누르고 튀었다. 쓰레기통은 집에 대한 평가 중 가장 최하위 평가였다.

「노을이: (사진)」

「노을이: 이게 말이 돼요?」

「나: 그냥 커플창인데? 머가??」

「노을이: 애정도요ㅠㅠㅠ」

「노을이: 집 없어진 것도 슬픈데ㅠㅠ히유ㅠㅠㅠ 애정도 5퍼나 떨어졌어요 이게 말이 댐???????」

「나: ……? 떨어진 거야?」

「노을이: 네ㅜ 그전엔 레벨 5에 38%였는데 지금은 32.6ㅋㅋㅋㅠ」

「나: 너 애정도 수치까지 외워? 그걸 어떻게 외워? 왜 그러고 살아?」

「노을이: 그냥 보면 기억해요ㅋㅋㅋ」

「노을이: 아ㅏㅏㅏ 짜증나ㅇㅅㅠ!! ㅋㅋㅋ 지엠 나와ㅠ.」

「노을이: 애정도 올리는 건 어려운데 내리는 건 왜 이리 쉽냐구요ㅠㅠㅠ」

노을은 차곡차곡 쌓아 올린 둘의 애정도가 5%나 떨어졌다며 발까지 동동 구르며 억울해했다. 그리고 문의까지 해놓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게시판에 글도 썼다가 유저들에게 비웃음을 당했다.

하지만 새롭게 포함된 기능이기도 했고, 다른 커플들도 빠지지 않고 유저들의 테러 대상이 된 탓에 크게 도움이 되는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경수는 속상해하는 그를 달래느라 ‘내 애정도는 멀쩡하니 가짜 숫자에 집착하지 마.’라고 나름대로 쥐어짜낸 말을 다정하게 건넸고, 감명받은 노을에게 덮쳐져 그날 하루 종일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무튼 그 이후로 천노을은 하우징은커녕 중간지역에는 발도 들이지 않았다.

‘[하우징] 썬셋 님과 냥이냥나냥 님의 러브하우스가 완성되었습니다♡’

천노을의 게임 화면에 안내 메시지가 한 줄 떠오르기가 무섭게 선율 길드원들이 ‘우웽에에게엑에’ 하며 토를 하기 시작했다. 경수는 뒤늦게 컴퓨터 앞에 앉아 로그인을 시도했다. 그는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노을의 화면을 통해 사람들이 단체로 역겨워하는 광경을 구경했다.

[길드]anamato: 웩….

[길드]아슬렌: ㅋㅋ러브하우스래 개토 나오네

[길드]썬셋: ?

[길드]썬셋: [커플]꽃토끼: 슬레니 오빠ㅠㅠ 그런 말 하면 토끼 지짜 속땅해ㅠ0ㅠ…!!

[길드]아슬렌: ㅅㅂ;;;

[길드]아슬렌: 군대 간 새1끼 아직도 거론되는 거 실화임? 벌써 몇 년 전이라고요

[길드]썬셋: 그러게 왜 먼저 시비를 거세용ㅇㅅㅇ?

[길드]설영: 우웩 웩 우욱

[길드]썬셋: ㅋㅋ숙취?

[길드]설영: 저 아직 고딩인데요^-^;

[길드]썬셋: 아는데요

[길드]스페이드퀸: 고딩이 무슨 숙취임ㅋㅋㅋㅋㅋ 천노을 이 음쓰야….

[길드]썬셋: 말 줄이는 솜씨 봐ㅇㅅㅇ

[길드]스페이드퀸: 야 왜 갑자기 칭찬임ㅋㅋ 미안하게….

[길드]썬셋: 수능 두 번 본 사람은 역시 보통 사람보다 두 배로 똑똑한가 바ㅋㅋ

[길드]아슬렌: ㅋㅋㅋㅋㅋㅋㅋㅅㅂㅋㅋㅋㅋㅋㅋㅋ

[길드]스페이드퀸: ㅅㅂ또 속았내 칭찬인 줄;

[길드]썬셋: 한 번 더 보면 아이큐 100은 넘겠네ㅋㅋ

[길드]스페이드퀸: ㅋㅋ야 ㅅ1발

[길드]썬셋: 불렀어ㅇㅅㅇ?

[길드]스페이드퀸: ㅅㅂ그거 언제까지 우려먹어 천노을 ****야

음쓰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노을이 음식물 쓰레기라고 대답해주었다. 경수는 로딩 창으로 넘어가는 접속화면을 확인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요즘은 정말 별걸 다 줄인다.

[길드]설영: (익명제보) 부길마 오빠가 서저리 길드원 붙잡고 하우징 평가 테러 성공하고 인증해주면 인당 100만 거는 거 제가 봄ㅋㅋ

[길드]스페이드퀸: ?

[길드]썬셋: 거지네… 백마넌밖에 못 걸고…ㅇㅅㅠ 길드 내 모금 운동 해줄까? ㅠㅠ

[길드]스페이드퀸: 됐네요 이 ㅆ1발롬아

[길드]아슬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anamato: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ㅉㅉ바로 들키네

[길드]설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스페이드퀸: 그걸 왜 말해 이설현;

[길드]설영: 뭐 정민재ㅋㅋ

부르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중간지역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간지역 역시 길드존처럼 PVP 기능이 적용되기 때문에 노을은 그들이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미리 차근차근 썰어버리며 처단을 하기 시작했다.

[서버]카리스마스: 방금 뜬 중간지역 하우징 몇 채널이에요?

[서버]썬셋: 목숨 두 개인 사람만 와ㅇㅅㅇㅗ!!

[서버]스페이드퀸: ★★★부활하면 목숨 무한개★★★

[서버]베이베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팀킬ㅋㅋㅋ 썬1셋 하우징은 3채로ㄱㄱ

[서버]카리스마스: ㄱㅅㄱㅅ

[서버]베이베이: @@주목@@ 위키드림 3맵 끝 석탑에 위치정보 저장하면 돼요!! 죽어도 포탈 타면 부활 후에 중간지역 썬발롬 집까지 1분 컷 쌉가능ㅋㅋ

서버 마이크로 지름길 팁을 전수하는 사람까지 나왔고, 할 것이 없어 마을에서 놀고 있던 사람들이 하우징 평가를 내리기 위해 몰려왔다. 하지만 그들 중 대다수가 썬셋의 저주와 폭탄 공격을 못 이기고 쓰러졌다.

‘냥이냥나냥 님께서 게임에 접속하셨습니다.’

[길드]완두완댜: 냥님 젊은 나이에 내 집 장만해서 좋겠네요

[길드]neutaaaa: 썬셋이 또 집 지었는데 그 앞 공동묘지 됐어요ㅋㅋㅋㅋㅋ

[길드]냥이냥나냥: 울 길드 뭔 썬셋 팬길드인가;; 안 물어봤는데요ㅡㅡ?

[길드]완두완댜: 알려조도 난리야

[길드]ㅈi9별: 오늘따라 냥냥이 무척 까칠하내ㅋ 썬셋깔답다

[길드]neutaaaa: 저희 죽어서 걍 구경 중인데 썬셋ㄹㅇ 개1빡쳤슴요 다 죽이는 중

그 말대로 노을은 바쁘게 키보드만 움직이는 중이었다. 집중하는 모습에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길드]냥이냥나냥: 님들은 거기 왜 갔는데요

[길드]ㅈi9별: ㅋㅋ알면서ㅎ

“…….”

결국 본인도 하우징 평가를 내리러 갔다가 죽었다는 소리였다. 지난번에도 지구별이 가장 먼저 달려와 평가를 낮추었다. 그때에도 지구별은 그 빠른 속도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간발의 차로 썬셋의 타임 밤에 머리가 터져 쓰러지고 말았었다.

[길드]포세이돈대장: 저도 썬셋한테 썰렸어요 지나가다가…ㅠㅠ

[길드]냥이냥나냥: 지나가기만 해도 죽였어요?

[길드]포세이돈대장: 네… 몹쓸….

포세이돈대장은 볼 때마다 늘 말투가 반듯하고, 굉장히 도적인 이미지라, 경수는 그가 하는 말은 모조리 진실 같았다. 경수는 천노을을 말리려다 이어지는 말에 멈칫했다.

[길드]할로윈가지: 구/라치지 마셈ㅋㅋㅋ 님 저랑 랭겜 뜨다가 메시지 뜨자마자 달려갔으면서

[길드]ㅈi9별: ㅇㅇ 저도 같이 있었는데 갑자기 음속으로 움직여서 자존심 상할 뻔함

[길드]포세이돈대장: ;;

그는 그냥 지나가려던 게 아니었다.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경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포세이돈대장은 여전히 썬셋에게 앙금을 품고 있었다. 의외로 속이 좁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길드]ㅈi9별: 하여간 울 길마님,,,, 썬셋(길마님의 짝남)이라면 다 좋아서는ㅋㅋ 사족을 못 쓴다니까

[길드]포세이돈대장: 네?

[길드]ㅈi9별: 바로 달려가는 거 리얼 찐사랑(love=썬셋)

[길드]ㅈi9별: 냥(썬셋 예비 전남친)님….

[길드]냥이냥나냥: ㅅㅂ??

예비 전 남친이라니. 그냥 텍스트로만 봐도 등줄기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길드]ㅈi9별: 이제 냥님도 슬슬 긴장하셔야 할 듯;;

‘ㅈi9별 님께서 일반길드원으로 강등되었습니다.’

[길드]냥이냥나냥: 자업자득

[길드]ㅈi9별: ;;어의업내?

[길드]포세이돈대장: 제가 등급 가지고 장난치지 말랬죠.

[길드]ㅈi9별: 길마님 정말 가지가지(할로윈가지x) 하시네요….

[길드]할로윈가지: 본인이 해놓고 생사람 잡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구별님 이번엔 저 아님

[길드]ㅈi9별: 그거야 썬셋1호팬 아니고서야 다 알걸용ㅎ

[길드]포세이돈대장: 팬이요?

[길드]ㅈi9별: you(포세이돈대장)

[길드]포세이돈대장: 야 이

[길드]neutaaaa: 길마님 욕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ㅈi9별: ㅋㅋ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

‘neutaaaa 님께서 일반길드원으로 강등되었습니다.’

[길드]neutaaaa: ?

[길드]ㅈi9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neutaaaa: ???

[길드]neutaaaa: ?전 왜요??

[길드]포세이돈대장: 커플 연좌제

[길드]냥이냥나냥: ㅋㅋㅋㅋㅋㅋㅉㅉ

[길드]ㅈi9별: ㅎㅎ자갸 지옥도 같이 가쟈

[길드]neutaaaa: 저희 쇼윈도부부예요 저만 석방해주세요ㅠㅠ

[길드]포세이돈대장: 안 됩니다

[길드]neutaaaa: ㅠㅠ엿이나 드십쇼

[길드]포세이돈대장: 넵

[길드]할로윈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완두완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경수는 길드존의 분수 포탈을 통해 중간지역으로 이동했다. 전체채팅으로 ‘냥이 왔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관이었다. 입구부터 눈이 엑스자로 변해 죽어 있는 캐릭터와 비석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간쯤 되어서는 길드 마스터인 포세이돈대장이 죽은 채 비석을 세우고 누워 있었다.

[전체]썬셋: 죽었으면 쫌 지나가셈 죽일 사람이 안 보이잔아ㅇㅅㅇ;;

[전체]포세이돈대장: …….

[전체]스페이드퀸: 평가내리기 성공하시면 평생 형으로 모심@@@@@@

[전체]초록의기운: 아 ㅅㅂ렉

[전체]설영: 또 죽음ㅠ 전 쓰레기 같아요 말고 >좀 별로예요< 이거 선택하려 한 건데ㅠㅅㅠ

[전체]썬셋: ㅇㅎ

[전체]설영: ㅋㅋㅅ1발 또 불가촉천민 됐어

천노을은 그 와중에 길드원 등급을 내린 모양이었다. 집중했는지, 옆에 앉아 있는 놈의 입술이 꾹 다물려 있었다. 설영이 선택하려고 했다던 ‘센스가 조금 별로예요.’ 역시 저평가에 포함되는 선택지였다.

다들 커플의 애정도를 떨어뜨리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사람들은 죽고 나서도 부활을 하지 않고 하우징 평가 테러를 위해 유저들이 모여드는 꼴을 구경했다. ‘ㅋㅋㅋㅋㅋㅋㅋ’ 하는 유령 채팅이 맵을 가득 채웠다.

그 덕에 집 앞이 시체 더미와 비석으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길드원들의 말마따나 공동묘지와도 같았다.

“형 빨리 집 안에 들어가 있어요.”

“갑자기 하우징을 왜 하는 건데? 다시는 안 한댔잖아.”

“제가 직접 다 꾸몄어요.”

“…….”

“저랑 사는 간접체험이라도 해보라고요….”

천노을과 살면 집 앞이 공동묘지화된다는 체험을 미리 해보라는 건가… 경수는 자신을 피해가며 여전히 몰려드는 사람에게 저주 버프를 주는 썬셋을 황망하게 바라보았다.

[귓속말]스페이드퀸: 형님이 하우징평가 쓰레기라고 내려버리면 천노을 엽사 백 장 드림[email protected]@@@@@@

“……?”

[귓속말]스페이드퀸: 엽사도 드리고 걍 사진도 드림!!

[귓속말]스페이드퀸: 엽사도 드리고 걍 사진도 드리고 개맛있는 돼지고기 김치찌개 출장서비스도 갈 의향 잇삼[email protected]@@@@

[귓속말]스페이드퀸: 아 근데 재료는 형이 준비해주시면 됨 저 거지라ㅠㅋㅋ

[귓속말]냥이냥나냥: ㄲㅈ

[귓속말]스페이드퀸: 아잉ㅠㅠ 글고 저 계란찜도 ㅈㄴ잘해영 천노을도 인정함ㅇㅇ 제발요 집 쓰레기 같다고 평가 좀@@@@@@@@

[귓속말]스페이드퀸: 아 아니면 형님이 아예 썬셋 죽여도 돼요!!!!!!

“……?”

[귓속말]스페이드퀸: 그럼 천노을엽사도드리고사진도드리고민재표김치찌개랑계란찜기타등등암튼집문서빼고다드림(그건제거아니라엄마꺼라서ㅠ)

읽는 데 숨이 다 막혔다. 띄어쓰기도 할 새 없이 급하게 쓴 게 다 들여다보이는 문장이었다.

[귓속말]냥이냥나냥: 왜?

[귓속말]스페이드퀸: 그냥요ㅋㅋ 존잼

쟤네 친구 맞나. 하여간 보면 정민재랑 천노을은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둘이 다투면 천노을이 우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민재는 이렇게 가끔 뒤에서 경수에게 로비를 넣으면서 맞서곤 했다.

[귓속말]냥이냥나냥: 싫어ㅋㅋ

[귓속말]스페이드퀸: 이제 30분밖에 안 남았는데ㅠㅠ

하루에 한 시간 동안 집을 수호해서, 하우징 평가가 50%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집의 수명이 하루 연장된다. 경수가 있는 서버에서 지금까지 일주일을 버틴 커플이 최고기록이었다. 다들 이를 악물고 무슨 게임 안에서까지 집을 장만하냐며 다 부수러 왔기 때문이다.

[귓속말]스페이드퀸: 형님 설마 썬셋이랑 살고 싶은 거? ㅋㅋㅋㅋ

[귓속말]냥이냥나냥: ;;

[귓속말]스페이드퀸: 와 부정 안 해 소오름;

[귓속말]스페이드퀸: 소오오오오름 그렇게 안 봤는데 형 존나 츤데레네영…? ㄷㄷ

[귓속말]냥이냥나냥: 차단함ㅅㄱ

[귓속말]스페이드퀸: 아 잘못했어요ㅋㅋㅋㅋ

김치찌개는 그냥 해 먹으면 되고 계란찜은 천노을도 잘한다. 얼마를 주더라도 평가를 내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렇게 지켜도 수많은 사람을 다 막을 수는 없었다. 하우징 평가는 벌써 71%까지 떨어져 있었다.

속상해진 천노을을 주말 내내 상대하는 것과 자신이 집구경이라도 하고 나와 행복해진 천노을을 상대하는 것. 둘 중에 굳이 고르라면 후자가 덜 성가시다.

“와, 이게 다 뭐야.”

빈말이 아니었다. 꾸며진 집의 내부 맵으로 들어오자마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집에 들어갔어요?”

“들어오긴 했는데….”

집 앞 포탈을 타고 들어가자,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쫙 펼쳐지고 노을이 직접 배치해둔 베이비 핑크톤의 가구들이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었다. 배치도 정말 잘해놔서 한 시간 만에 사라지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벽지에 직접 마우스로 픽셀을 찍어 노가다를 한 건지 제게 전하는 것 같은 문구가 한 줄 쓰여 있었다.

‘썬셋♡냥이냥나냥(←내 거)의 집’

경수의 입꼬리가 움찔 떨렸다. 고작 이거 하나 하려고 한 시간 동안 귀찮음을 감수하려는 놈이 조금 귀여워 보였다. 지난번에 다른 커플들 집에 들어가서 구경을 한 적도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객관적으로 봐도 천노을의 센스가 보통이 아니었다. 가구 배치부터 색상 조합, 그리고 시스템 이해도까지 완벽해야 나올 수 있는 인테리어가 아닐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썬셋의 공격 막을 뚫고 간간이 집 안에 들어오는 데 성공한 유저들도 있었다.

[전체]백정어리: ^^ 멋져요~ 잘 구경하고 갑니다~!

‘차라리 쓰레기통에서 살겠어요.’

[전체]카리스마스: 언제 헤어지세요?

[전체]냥이냥나냥: ㅋㅋ상관ㄴ

‘나름대로 괜찮은 집이네요!’

[전체]딜도깨비: ㅋㅋ세 번 만에 성공 ㄴㅇㅅ

‘차라리 쓰레기통에서 살겠어요.’

[전체]ㅈi9별: 휴 겨우 뚫었네ㅋㅋ 냥님 집 예쁘네여!!

‘차라리 쓰레기통에서 살겠어요.’

그들이 ‘차라리 쓰레기통에서 살겠어요.’라고 평가를 내리자 경수의 화면에 우울한 아지랑이 효과가 아른거리다 사라졌다.

길었던 한 시간 동안 노을은 맵 안을 팔랑팔랑 날아다니며 집 앞에 묘비들을 턱턱 만들어냈다. 경수는 노을을 도와 최소한의 방어만을 하면서도, 그가 하우징 기능으로 집을 지은 이유가 동거의 간접체험인 것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경수까지 집 보호에 합세한 덕에, 하우징 평가 수치를 51%로 지켜냈다. 그 덕에 아슬아슬하게 집의 수명이 하루 연장되었고 노을은 신이 나서 접속을 종료했을 때부터 싱글벙글했다.

인문관 빈 강의실에 나타났다던 귀신 얘기를 해도 싱글벙글. 조금 소름 끼쳤다.

“자장가라도 불러줘?”

처음 노을이 집 앞에 불쑥 나타났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그는 잘 시간이 되자 먼저 침대 위 이불 속에 쏙 들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경수를 올려다보았다.

“옆에 누워서 불러줘요!”

그래, 넌 들어오자마자 씻고 잠옷 차림이었지… 갑자기 무슨 심경변화가 생겨 이렇게 찾아왔는지는 모르지만, 내일은 타일러서 돌려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거의 매일 보는 얼굴을 주말에도 내내 봐야 한다니. 그리고 벌써 며칠째야…?

“안 가게?”

천노을과 함께 있으면 즐겁다. 함께 게임을 하는 것도 즐겁고 그냥 TV 앞에 앉아만 있어도 시간이 잘만 갔다. 제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부비적거리면 덩달아 웃음이 났다. 즐겁기는 한데… 분명 집에 갈 시간이 되었는데도 집에 안 가고 옆에서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게 부담스럽기는 했다.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경수에게는 어느 정도의 개인 공간이 필요했다.

“경수 형.”

“왜.”

“이불에서 형 냄새 나니까 막….”

그의 옆자리에 눕자마자 손이 가슴 위로 스멀스멀 기어왔다. 귀찮으니 그냥 내버려 두자 손이 단추를 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맨살에 손을 살짝 밀어 넣으며 눈치를 봤다. 거기서 멈춰라. 눈빛만으로 말하는 경수에 노을은 일시적으로 꼬리를 내렸다.

“그런데요, 저 요리가 취미인 것 같아요.”

“취미면 취미인 거지, 같아요는 뭐야.”

“네! 저 요리가 취미예요.”

“언제부터?”

“형, 기억 안 나요? 제가 지난번에 크림 파스타 해줬잖아요. 형 혼자 다 먹어놓고서.”

“그랬었나. 사 온 줄 알았는데.”

노을은 잠깐 말미를 두고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제가 재료 썰고 볶고 다 했는데… 저한테 관심 좀….”

“더? 여기서 어떻게 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처음에 비해서는 그렇죠.”

노을은 간지럽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청소도 열심히 해요.”

“…매일?”

“사실은 청소도 취미예요.”

“어어… 건강한 취미가 많네.”

일주일에 한 번만 해도 충분하지 않나?

“형은 안 그래요?”

경수는 다른 사람들은 원래 매일 아침 청소를 하나 생각하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내일 아침에 친구들한테 메시지를 보내 물어봐야겠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얼마나 자주 청소를 하느냐고.

“나도 그래. 매일… 매일 하는 편이지.”

그 말에 노을이 풋, 하고 비웃음을 터뜨렸다.

“거짓말.”

“진짠데.”

“저는 뻥이었는데.”

“…….”

“형 청소 잘 안 하잖아요. 책상에 맨날 옷 쌓아놓고 그러면서.”

“…한 대 맞으면 거짓말하는 버릇이 고쳐진다던데.”

“뭐래. 아까 형이 머리 박은 데 아직도 아프거든요? 진짜 돌머리야.”

경수는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노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천장을 보고 누워 있던 자신과는 다르게 노을은 처음부터 옆으로 누운 채, 제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옅은 갈색의 눈이 예쁘게 접혀 웃는다.

“어디 한 번 봐.”

경수는 손을 들어 노을의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노을이 입꼬리를 올리며 살포시 눈을 감았다.

“멀쩡하구만.”

사실 조금 부어 혹이 나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 진짜 머리가 깨진 것도 아니고… 경수는 노을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툭 두드렸고 노을은 다시 눈을 뜨고 중얼거렸다.

“아… 이 형이 진짜 기회를 못 잡네. 저 눈 감았었잖아요. 뽀뽀할 기회였어요.”

“넌 틈만 나면 그 생각뿐이지.”

“형이 제 머릿속 알면 큰일 나는데요. 말해볼까요?”

“…자라.”

“…….”

노을은 벌떡 일어나 경수에게 무작정 입술을 들이밀었고, 경수는 그를 옆으로 내던져 무척 간단하게 제 입술을 지켜냈다. 노을은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러다 쫓겨나겠다 싶었던 노을은 그냥 얌전히 옆에 누웠다.

그는 또 한참 가만히 있다가 또 심심해졌는지 형, 하고 말의 운을 떼었다. 경수가 눈을 감고 묵묵부답으로 대응해도, 노을은 멋대로 말을 이어갔다.

“사실은 이게 본론인데요, 형 방 언제 빼요?”

“…….”

“진짜 제가 한 말 더 깊게 생각해본 적 없어요? 농담 아니고 진짜 정말 진지하게 한 말인데.”

“…….”

“불편하면 방은 따로 써요. 하나 남으니까. …그런데 잘 생각해봐요. 같이 살면 청소도 설거지도, 쓰레기 버리는 것도 반반씩 하잖아요? 그럼 저희 둘 다 할 일이 반이나 줄어드는 거예요.”

“…….”

“그리고 형은 학교 가려면 환승 두 번이나 해야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한 번에 가는 버스도 있어요. 대박이죠? 편의점도 일 분 거리고. 형도 알 테지만 횡단보도만 건너면 되잖아요.”

“…….”

“사실 다 핑계고 그냥 형이랑 같이 살고 싶어요. 제가 진짜 많이 좋아하는 거 알잖아요. 형도 저….”

“흐냠….”

순간 옆에서 들려온 작은 소리에 조곤조곤 이야기하던 노을이 말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표정이 굳어버렸다.

“설마 벌써 자요?”

“우으음.”

경수가 뒤척이며 손을 들어 노을의 얼굴 위에 손바닥을 턱 얹었다. 살갗이 찰싹 달라붙으며 짝 소리가 났다. 노을은 그 손을 급히 치워내고 몸을 벌떡 일으켜 그대로 경수를 내려다보았다. 오렌지색 보조등이 노을의 이상형이 집약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잔다고?”

“…….”

“형, 뭐야? 이렇게 빨리 잔다고? 진짜? 진짜?! 애인을 이렇게 두고 잠이 와?”

“…….”

“이 고자야!”

이 말에도 화를 내지 않는 걸 보니 진짜 자는 게 맞았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머리만 대면 자지. 노을은 경수를 황당하게 내려다보며 어깨를 흔들고 셔츠 사이로 손도 슬쩍 넣어보았지만 이미 잠이 든 경수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놈을 발로 퍽 참으로써 간단하게 응징했다.

“하아….”

겨우 말을 꺼냈는데. 김이 다 샌 노을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무언가를 안고 자는 버릇이 있는 경수는, 안고 있던 베개를 발로 툭 차내고 따뜻한 인간 베개로 엉겨 붙었다.

“…….”

노을의 사지가 결박되었다. 불편하지만 좋았다. 옆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숨소리가 기분 좋아서 자꾸 하반신에 힘이 들어가려 한다. 자는 얼굴에 대고 자위를 하다 들키면 한 달은 손도 못 대게 할 것이다. 지난번에 욕심을 내어 뺨에 성기를 비비다 들킨 전적이 있으니, 이번에 하다가 걸리면 정말 쫓겨날 것 같아 노을은 시도할 엄두조차 못 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경수에게 온몸을 꽁꽁 제압당한 채, 노을도 강제로 잠이 들 수밖에 없었다.

*

「노을이: (사진)」

메신저 미리 보기 창이 액정 위에 떠 올랐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경수는 질린 얼굴로 휴대폰을 손가락으로 슬쩍 밀어놓았다.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했다. 보나 마나 쓸데없는 내용일 것이다. 주말에 뭘 잘못 주워 먹었는지, 집요함이 늘어나 있었다. 동기가 꺼지지 않고 반짝거리는 화면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얜 왜 맨날 이름이 바뀌냐? 이젠 화해했나 보네.”

“신경 꺼라.”

휴대폰에 저장된 노을의 이름은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경수가 ‘천노을’로 바꿔두면, 그걸 알아챈 노을이 몰래 ‘♥’로 바꾸어두었다. 그리고 그걸 다시 발견한 경수가 말다툼 후에 저장명을 ‘ㅗ’ 따위로 바꾸어두면 노을은 한술 더 떠, ‘♥주인님♥’으로 바꾸어두었다. 지난번에 조별 과제를 하다 PC 메신저 미리 보기 창으로 ‘♥주인님♥’이 떴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주인님?’

‘…아, 그, 하하! 마저 얘기할까요? 집중해주세요.’

‘주인, 아니, 아니, 제 생각엔 답사 갈 필요까지는 없을 것….’

‘…….’

경수의 동공이 마구 떨렸다. 그는 한참을 당황하다, 이상한 표정으로 모른 척을 해주는 조원들에게 대화창을 열어 보여주었다. 그리고 친구가 이름에 장난을 친 거라고 둘러대야 했다.

담백하게 ‘노을이’ 정도로 타협을 보고 당분간은 이름을 건드리지 않기로 약속받았다. 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몰래 이름이 바뀌겠지만 당분간은 평화로울 것이다.

“그런데 왜 확인 안 해? 또 점심 메뉴 선별로 싸웠냐?”

“안 급해. 확인 좀 늦게 해도 화 안 내.”

“그래도 너 지금 천노을 걔 기다리는 거 아니냐. 그럼 빨리 보는 게 좋을걸. …어우, 그런데 걘 진짜 징하게도 쫓아다닌다. 너 아직도 돈 덜 갚았어?”

“엥? 무슨 돈… 어어.”

까맣게 죽은 화면이 다시 반짝 빛나며 미리 보기 창이 떴다.

「ㅂr

이번에는 천노을이 아니라 광고 문자였다. 동기가 아는 체를 하며 휴대폰을 손으로 집어 들었다.

“야, 광고 문자 안 뜨게 하는 방법 나 아는데. 여친이 어제 알려줬어.”

“헐. 나도 해줘.”

“이제 나랑 뜨거운 밤 보내용, 자기 이런 문자 일절….”

그때 두 사람의 사이로 그림자가 지더니, 큼지막한 손이 휴대폰을 쏙 빼서 가져갔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들어 불쑥 끼어든 사람의 정체를 확인했다.

“경수 형이랑 뜨거운 밤 보내시게요?”

“……?”

그 말을 하필 활짝 웃으면서 하는 바람에, 동기 놈은 그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며 경수를 향해 피식 웃었다.

“그러지 뭐. 나랑 뜨밤 고?”

“으.”

“여보. 왜 싫은 척해용. 방금 약속했잖아용.”

미친놈아, 지금 그럴 때 아냐… 경수는 대답하지 않고 속으로만 중얼거리며 노을을 힐긋 바라보았다. 저건 웃는 게 아니었다. 눈이 웃고 있지 않잖아. 뭐 이딴 걸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노을은 경수의 옆에 있는 의자를 빼서 앉았다. 그가 불쑥 끼어들어도 동기는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다. 하도 자연스럽게 붙어 있는 바람에 가끔 걔 우리 과 아니었냐고 놀라는 애들도 있었으니까. 경수가 혼자 있으면 동기들이 걘 어디다 버려놓고 혼자 있냐고 묻기도 했다.

“형 지금 애인도 있는데 바람피우는 거예요? 뻔뻔하고 파렴치하기도 하지.”

“뻔뻔… 파렴치….”

“어떻게 파릇파릇 귀엽고 섹시한 연하 애인을 두고….”

어떻게 본인 입으로 본인이 귀엽고 섹시… 뭐, 그딴 소릴 지껄일 수 있지. 부끄럽지도 않나? 경수는 노을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엥, 네 애인 연하였냐? 예쁘냐? 귀여워?”

경수는 노을을 힐긋 바라보았다. 노을이 두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경수 형. 걔 예뻐요?”

“…어어.”

노을의 예쁜 입꼬리가 싹 끌어 올려지며 방긋 웃었다.

“귀여워요?”

“어….”

귀엽다… 턱을 괸 채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는 천노을을 보니 아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도 천노을에게 여자친구가 있느냐고 제게 번호를 묻는 애들이 종종 있는데, 그걸 보면 콩깍지 다 벗어놓고 객관적으로 봐도 천노을 얘는 조금… 아니, 좀 많이 귀여운 편이 아닐까?

“와 씨발, 나도 사진 보여줘. 우리 학교냐? C.C야? 이름은?”

“…….”

천노을이라고, 네 눈앞에 있어.

“귀엽고 예쁜데 왜 다른 놈이랑 그런 장난을 치지….”

노을이 시선을 홱 돌리며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그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을 텐데, 노을은 꼭 습관처럼 자신에 대한 애정을 확인받으려고 했다.

“같이 살자는 것도 거절하고.”

“뭐? 여친이 경수 너한테 동거하쟀어?”

“…어어.”

여친은 아니고 네 앞에 걔가.

“야, 꼭 잡아라. 너 걔랑 결혼하고 싶다며! 잠깐 만날 사이 아니잖아, 그럼!”

“…헉? 경수 형이 그랬어요?”

“아냐!”

“엉. 그랬어.”

시발놈. 하도 미팅 머릿수나 채우라고 하길래 변명조로 꺼낸 말이었는데, 그걸 당사자 앞에서 얘기할 가능성은 염두에도 두지 못했다. 노을의 눈이 기대감에 반짝반짝 빛났다.

“근데 그걸 왜 거절해!”

“그러니까요!”

“여친은 엄청 용기 내서 말했을 텐데. 아니, 야. 경수 너 고자 새끼냐? 내 여친이 같이 살자고 그랬으면 당장 고개부터 끄덕였을 거야.”

“맞아, 맞아. 저였어도 냉큼 알겠다고 했을 거예요.”

“내 말이. 요즘은 혹시 몰라 결혼 전에 동거부터 한다잖아.”

“맞아, 맞아!”

“어른들은 이해 잘 못 한다 해도, 그거 요즘은 별로 이상한 거 아니다?”

“맞아, 맞아!”

“당장 가서 싹싹 빌어 이 개 병신 머저리 고자 새끼야.”

“고자, 뭐, 좀 그런 면이 없잖아 있죠. 그것도 맞아, 맞아.”

“…….”

천노을 쟤는 왜 저 새끼랑 죽이 척척 맞고 지랄이지? 둘 다 얄미워 죽겠다.

“김경수 이 고자 새낀 남자도 아냐! 꼬추 떼뿌라!”

“형, 그건 좀….”

“…….”

“그건 경수 형만의 것이 아니잖아요. 따로 주인이 있는 건데 떼는 건 너무 갔어요….”

“…뭐, 암튼 넌 이 새끼야, 고자 새끼가 따로 없어. 죽어 이 새끼야.”

“맞아, 맞아. 아, 죽지는 말구요.”

“…….”

졸지에 두 사람이 경수를 고자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딱히 대응할 말이 없었던 경수는 그냥 허허, 하고 웃었다. 천노을 이 미친놈… 지난 주말부터 오늘까지의 기억이 떠올라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형 이거 봐요. 전 설거지도 취미인데.’

‘취미가 많네.’

‘잘하죠! 세제는 한 번만 짜고 이틀 치 설거짓거리도 다 닦을 수 있어요. 물도 최소한으로 쓰는데 엄청 깨끗하게… 빨리 와서 봐요!’

‘빨리하고 와서 앉아. 그걸 왜 보여주려 해…?’

천노을은 얼마 되지도 않는 설거짓거리를 씻고, 물로 헹구고, 뽀득뽀득 닦아 선반 위에 올려놓는 과정을 모두 경수에게 보여주며, 일곱 살 어린애처럼 다 칭찬받고 싶어 했다. 설거지가 취미인 것도 맞는 듯했다. 저렇게 열정적인 모습이라니… 어쩐지 내년 생일 선물로는 그릇 세트를 선물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 나 이거 갖고 싶다….’

작년에 뭘 사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디퓨저였다. 필요가 없어 아무 데나 던져둔 바람에 있는 줄도 몰랐다.

‘나는 안 쓰는 건데 너 줄까?’

‘앗. 이것도 우리 집에 있으면 좋겠다.’

옷을 걸어두는 간이식 행거였다. 천노을 집에는 옷장이 있지 않나? 그래도 갖고 싶다면 얼마 하지 않으니까 하나 사라고 했더니, 노을은 또 경수의 침실을 훑어보다 경수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것도 우리 집에 있으면 좋겠다.’

‘……?’

노을은 경수의 어깨에 손을 턱 얹어놓으며 배시시 웃었다. 이젠 같이 살자는 말 대신 사람을 ‘이것’으로 칭하며 돌려 말하는 법까지 습득했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형 이사하는 날 제가 도우러 올까요?’

‘아직 집은 구하지도 못했어.’

‘네, 그러니까 하는 소리인데.’

‘뭔 소리야….’

집을 구하고 나서도 문제다. 노을에게 이삿짐을 맡겨두면 노을은 그 짐을 고스란히 제집으로 옮겨다 놓고 뻔뻔하게 이제 자기 것이라고 우길 게 분명하다.

노을은 주말 동안 집에 가기는커녕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서지 않았다. 그는 경수가 화장실에 가는 시간을 빼놓고는 주변을 뱅뱅 맴돌며 은근슬쩍 같이 살 것을 종용했다.

‘됐어. 다음 주에 사촌 형이랑 알아보러 가기로 했거든.’

‘형이랑 닮았어요?’

‘닮았으면 어쩌게.’

‘어쩌지는 않을 건데요? 사촌 형님은 처음 뵙겠네요.’

‘…안 닮았어. 그리고 넌 안 데려가.’

‘네? 왜요!’

집요했던 그동안의 행동을 생각해보면 그가 원하는 대답을 얻어낼 때까지 계속 이 패턴이 반복될 것이 틀림없었다.

「노을이: (바로 가기) 결혼 전 동거의 장단점!」

‘시발….’

벌써 ‘동거’에 대한 기사나 후기 글을 열 개가 넘게 보내오고 있었다.

같이 산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노을이 너무 이 일을 쉽게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상대가 좋다고 해도, 같이 살면 안 보이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건 노을이 보내온 글에도 하나같이 들어 있는 내용이었다. 가족은 그냥 어쩔 수 없이 참고 산다지만, 연인 사이에는 이별의 사유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생활 패턴이 맞지 않아 종종 다투기도 할 것이다.

심지어 노을과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좀 자주 다투는 것 같았다. 뭐, 일방적으로 자신이 짜증을 내면 노을이 다 받아주는 식이어서, 빨리 풀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경수는 노을과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지금으로서는 전혀 없었다.

“저 배고파요. 빨리 밥 먹으러 가요. …혁이 형도 같이 드실래요?”

오지 마.

노을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난 됐어. 저녁에 약속 있어서.”

“하하, 다행이다.”

“빚쟁이랑 고자 새끼랑 밥 맛있게 먹어라!”

또다시 고자 새끼가 된 경수는 이혁의 다리를 발로 찼다. 그는 정강이를 부여잡고 끙끙거렸다.

“그럼 저희 가볼게요.”

노을은 경수를 데리고 계단을 내려와 건물을 나왔다. 그리고 경사진 언덕길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듯 걷기 시작했다. 가로등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직 저녁 시간이라기엔 조금 일러서 그런지 교정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노을은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경수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형 웃긴다. 사실 저랑 결혼까지 생각했어요?”

“그건 걔가 왜곡한 거야. 그런 얘기는….”

“했구나?”

“…….”

노을의 미소가 짙어졌다. 둘러대듯 한 말이라고는 해도 제 입에서 나온 말이 맞아 할 말이 없어졌다.

“…앞 좀 보고 걸어! 넘어지면 구급차 안 불러줄 거야!”

“우리 형은 할 말 없으면 꼭 화내더라. 귀엽게.”

“넌 항상 내가 화내면 변태처럼 좋아하고.”

“몰라요….”

천노을이 흐흣, 소리를 내며 웃었다. 웃음은 옮는다. 그래서인지 웃기지도 않은데 덩달아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괜히 제 가슴에도 산들바람이 부는 듯 간지럽고 속부터 충만해졌다.

“빨리 가요. 나 배고파.”

“천천히 가. 넘어져!”

“안 넘어… 아앗! 악!”

“어휴, 잘한다.”

지금 딱 좋잖아, 노을아.

지금처럼 보고 싶을 때, 나와서 서로 얼굴을 보고, PC방에 가서 데이트도 하고, 같이 앉아서 공부하는 척도 하고. 네가 날 데리러 나와서 같이 밥도 먹고… 이렇게 하루 종일 놀다가 기분 좋은 상태로 헤어져 각자의 집에 들어가 하루를 정리하면 안 되는 거야?

*

중간지역에 노을이 세운 집은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우뚝 서 있었다. 이틀만 더 버티면 일주일을 버틴 셈이 된다. 매일 저녁 일곱 시만 되면, 경수는 게임에 접속해 노을과 함께 하우징 평가가 낮아지지 않게 철통 방어에 들어간다.

[길드]ㅈi9별: 와 날이 갈수록 가구가 추가되네요ㅋㅋㅋㅋㅋ 침대도 파란색으로 바뀜

[길드]냥이냥나냥: 뭐야 지구별님 언제 들어갔어요…? 개빠르네ㅡㅡ

[길드]ㅈi9별: ㅋㅋ오늘도 집이 너무 예쁘네용~^^!! 좋아요 누르고 가요~ 제 블로그에서 자격증 정보 알아보세요~

‘차라리 쓰레기통에서 살겠어요.’

[길드]냥이냥나냥: ㅅㅂ

지구별이 평가를 내리자마자 하우징 평가가 1%나 떨어졌다. 경수는 곳곳에 자동 봇 스킬을 몇 개 깔아두고 집에서 막 나오는 지구별을 갈고리로 잡아 땅바닥에 세 번이나 메쳐 죽였다. 지구별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에게 당해 HP가 깎였다.

[길드]ㅈi9별: 깨꼬닥,,

지구별 캐릭터의 이마에 한 가닥 흘러내린 파란 머리가 까딱 움직이더니, 지구별의 눈이 엑스자로 변했다. 그리고 그 위에 비석이 쿵 소리를 내며 내리꽂혔다. 집 앞에 묘비가 하나 늘었다.

[전체]썬셋: 앗^^ 대장님 오랜만 ㅇㅅㅇ/

[길드]포세이돈대장: …….

경수의 자동 스킬에 당해 체력이 간당간당하게 남아 있던 포세이돈대장은 썬셋의 ‘악몽의 연주’ 스킬에 결국 죽고 말았다. 이윽고 까만 연기가 포세이돈대장의 주위를 감싸더니 곧이어 그 자리에 비석이 세워졌다. 집 근처에 묘비가 하나 더 생겼다.

[길드]냥이냥나냥: 길마님은 열 번 넘게 죽은 것 같은데 대체 왜 자꾸 오세요….

[길드]포세이돈대장: 집들이ㅠ 저도 집 구경 좀 해봅시다….

[길드]냥이냥나냥: ㄴㄴ

[길드]ㅈi9별: 님들은 평생 문턱 구경도 못 해보실 듯ㅋㅋ

[길드]박휘벌래: ^^느그별 저승길도 제일 빨리 갈 듯

[길드]neutaaaa: 슬슬 오기 생기네ㅋㅋ

[길드]neutaaaa: 좃루전 개좃망겜… 저번 패치 때 문페어리 분명 하향됐는데 어떻게 저래요?

문페어리는 하향됐지만 경수는 아니었다.

[길드]냥이냥나냥: ㅋㅋㅋㅋ

[길드]냥이냥나냥: 킹갓갓갓겜이 발키리 속뎀 상향시켰거든요ㅋㅋ 갓키리 됨ㅎㅎ

나는 문페어리가 아니라 발키리니까. 천노을 직업이 하향되든 말든, 제 직업은 멀쩡하다 못해 더 좋아졌으니 그걸로 된 거다.

[길드]neutaaaa: 아 네…;;

[길드]냥이냥나냥: ㅋㅋㅋㅋㅋㅋ

[길드]냥이냥나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갓키리 갓겜 갓루전^^

[길드]할로윈가지: ?

‘냥이냥나냥 님께서 일반길드원으로 강등되었습니다.’

“…….”

범인은 안 봐도 뻔했다.

[길드]할로윈가지: 누가 개망겜보고 갓겜이라고 해서; ㅋㅋ;

[길드]포세이돈대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할로윈가지의 직업에 해당되는 킹세이버는 이번 밸런스 패치로 가장 크게 하향을 당한 직업이었다. 킹세이버의 빛 방어계열 스킬의 쿨타임이 각각 1초씩이나 늘어났다. 하나도 아니고 모조리. 그래서 고작 하나 있는 탱커 계열 직업의 취급이 너무하지 않느냐는 평이 많았다. 그 때문에 직업 전향으로 킹세이버 캐릭터를 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길드]ㅈi9별: ㅇ!!! ㅇ!!!!

[길드]완두완댜: ??

[길드]ㅈi9별: 화난 쭈꾸미 아니 부길마님을 표현해봤어엽ㅇㅅㅇ

‘ㅈi9별 님께서 일반길드원으로 강등되었습니다.’

[길드]할로윈가지: 죄명- 날 조롱함

[길드]ㅈi9별: ㅠㅠ머리가 없어서 참을성도 없나?

‘neutaaaa 님께서 일반길드원으로 강등되었습니다.’

[길드]할로윈가지: 죄명- 커플 연좌제

[길드]포세이돈대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neutaaaa: 아니ㅅㅂ

[길드]ㅈi9별: 자기야 우린 운명인가 봐><

[길드]neutaaaa: ㅗ

[길드]완두완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박휘벌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늘 그랬듯 이번 강등 사유도 자기 마음이라 경수도 할 말이 없었다. 말을 꺼내도 어차피 들어주지도 않을 테고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올려주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깔끔하게 포기해버렸다.

[길드]냥이냥나냥: 누가 저 사람한테 권력 줬어

[길드]포세이돈대장: 앗 저요

[길드]냥이냥나냥: 앞으로 조심하세요

[길드]포세이돈대장: 넵

[길드]렉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완두완댜: 냥님이 아직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모르나 보내ㅋ 원래 세상사는 권력이 다예요

[길드]냥이냥나냥: 왜 빡빡이 편들어줘요?

[길드]할로윈가지: 빡빡이?

[길드]냥이냥나냥: ㅈㅅ

빠른 사과를 해서 그런지 바로 등급이 내려가지는 않았다. 경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길드]완두완댜: 냥님도 그렇게 되실 거예요… 권력이란 잔인한 법ㅠㅅㅠ

[길드]냥이냥나냥: 그래서 완두님이 박 부장분이랑 돈독한 거? 어쩐지ㅋㅋ

[길드]완두완댜: 에이ㅋㅋㅋ

[귓속말]완두완댜: 10~~8,,,~!~!!!!

[귓속말]완두완댜: 내 이놈!? 머가리에 피도 안 마른 절믄 놈이 으데 버릇업개 으른한테 데듫어!!!

“……?”

사람이 바뀌었는데? 귓속말을 보낸 사람과 길드 채팅의 완두완댜는 동일인이 아닌 것 같았다. 고작 몇 초 차이인데도 온도 차가 극명했다.

[길드]ㅈi9별: ㄷㄷ… 근데 그렇게 욕하면서 왜 박 부장에게서 벗어나지 못하지?

[길드]완두완댜: 또 뭔 소릴 하려고… 아직 퇴사를 안 했으니까요;

[길드]ㅈi9별: ㄷㄷ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건가?

[길드]ㅈi9별: 사실 완두님 박 부장 사랑하는 것 같은데ㅋㅋ? 맨날 박 부장 얘기만 하자나여

[길드]완두완댜: 10~8~~!!!!!

[길드]냥이냥나냥: 아 또 저렇게 욕해;;

[길드]렉슈: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박휘벌래: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던데 ㄷㄷ

[길드]ㅈi9별: 맞나봄ㄷㄷ 사실 완두님은 늘 박 부장한테 진심이었던 거죠….

[길드]냥이냥나냥: 현대판 견우직녀 같다! 로맨틱해요….

[길드]완두완댜: 썬셋이랑 멜로영화 찍는 중인 냥모 씨에게 듣고 싶지 않군요

[길드]냥이냥나냥: …….

키보드 위에서 손이 조금 움찔거릴 뿐 반박은 할 수가 없었다. 괜히 한마디 거들었다가 역공이나 당한 경수는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구석에 처박혀 있기로 마음먹었다.

[길드]할로윈가지: 직장인 짬빠 어디 안가네ㅋㅋㅋㅋ 냥님 뼈도 못 추렸음

[길드]완두완댜: 배신감 쩐다ㅋㅋㅋ 박 부장? 내가 몇 가닥 안 남은 그 바코드 새1끼랑 엮일 줄이야ㅋㅋㅋㅋ

[길드]ㅈi9별: 바코드마저 품다니 사랑이란 대단한 거구나

[길드]완두완댜: ?

[길드]박휘벌래: ㅋㅋㅋㅋ난 평생 사랑 같은 건 하지 않아야지! 파이팅!

[길드]완두완댜: ????

[길드]렉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할로윈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답잖은 잡담을 주고받으며 집을 지킨 결과, 한 시간이 겨우 다 지나갔다. 공성전을 할 때처럼 쉬지도 않고 집중한 바람에 눈 주위가 뻐근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노을은 이왕 시작한 거, 일주일째가 되면 주는 [신혼부부] 타이틀을 꼭 얻어야겠다고 이를 갈았다. 아무 효과도 없는, 그냥 이름 아래 붙는 타이틀일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경수도 가끔 여름 시즌 아이템은 기를 쓰고 모으니, 그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부재중 전화 2통, 천노을’

‘부재중 전화 1통, 김경배’

잠깐 세탁기를 돌리고 나온 사이 노을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 아래 사촌 형의 부재중 전화도 있었다.

“어, 나야.”

-전화 제때 안 받냐. 아깐 왜 통화 중이었어? 작은엄마셔?

아마 노을이 전화를 걸었을 때, 사촌 형도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아니, 게임 하다가 빨래 좀 돌리고 오느라.”

-작은엄마가 급하다고 하셔서 형이 두 군데 정도 알아뒀거든? 지금 내가 말하는 거 다 챙겨서 가방에 넣어놔.

“말해.”

-적어.

“외울 수 있어.”

-형 바쁘니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말해도 기억 못 할 거 뻔하니 하는 소리잖아. 당장 메모지 꺼내서 내가 부르는 거 다 적어. 하나라도 빼먹고 유턴하면 넌 내일 내 손에 죽어.

“어… 잠깐만.”

맞는 말이었다. 내용이 길면 경수도 다 기억할 자신은 없었다. 그는 휴대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끼고, 사촌 형의 말대로 얌전히 메모지와 볼펜을 가지고 왔다.

-…다 적었어? 너 그거 다 챙겼는지 세 번 넘게 체크해.

“뭔 세 번까지나? 됐어.”

-세 번 말고 네 번 체크해.

“어이없다. 형, 나 못 믿어?”

-믿겠냐.

“…….”

-내일 번거로운 것보다 그게 낫잖아. …경수야, 형은 네가 대학 간 것도 신기해 죽겠다. 작은엄마가 너 수능 성적표 나온 날에 등록금 몰래 받아먹으려고 위조한 거 아니냐고 나한테 전화를 몇 번이나 하신 줄 알아?

“알아. 아직도 학교 잘 다니고 있냐면서 가끔 인증샷도 보내라 해. 일 년째 안 믿는 중이야, 엄마는.”

-진짜 성적표 위조한 적 있어?

“어어. 중학교 때 한 번… 뭐라고 하지 마, 뒤지게 맞았으니까.”

-자랑이다, 이놈아.

그래도 그 이후로 학교생활은 나름 성실하게 하니 된 것 아닌가? 노력에 학점이 따라주는 것은 아니지만, 경수는 나름대로 만족했다. 내일은 오전에 하나 있는 강의를 자체 휴강 때리고 사촌 형과 만날 생각이었다.

-차 끌고 갈 테니까 내일 열 시쯤 전화하면 내려와.

*

나이 차가 꽤 나는 사촌 형이 제가 살 것처럼 신중하게 알아봐 준 덕에 경수는 원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방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원래 살던 곳에 비해 조금 크기는 했지만, 집주인이 형과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방세가 그리 비싸지도 않았다. 하루 만에 계약까지 하고 돌아온 경수는 이 사실을 천노을에게 언제 알리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우징]집짓기 일주일 보상으로 ‘신혼부부’ 타이틀 습득서가 우편함으로 배달되었습니다.’

게임에 접속하자 벌써 일주일이나 지나 타이틀 습득서가 배달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노을이 신이 나서 대화를 걸어왔다.

[커플]썬셋: 형 ㅇㄷ?

[커플]냥이냥나냥: 길드존 포탈 쪽

[커플]썬셋: 거기서 기다려요!

30초도 되지 않아 화면에 나타난 썬셋은 머리 위에 당당히 [신혼부부]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 잔잔한 하트 무늬가 퐁퐁 솟아나며 머리 위를 장식했다.

애초에 타이틀이 목표였던 노을은 따라오라는 이모티콘을 사용하며 앞장을 섰다. 그의 뒤를 따라가자, 빨간색 우편함이 나왔다. 노을은 그 자리에서 폴짝폴짝 점프를 해대며 우편함을 확인할 것을 보챘고, 피식 웃은 경수가 타이틀을 습득한 뒤 갈아 끼워 주자, 썬셋의 눈이 커다란 하트모양으로 변했다.

뽀뽀하기나 애교부리기, 감탄하기 등등 온갖 이모티콘을 있는 대로 다 사용해대는 노을을 보고 있으니 어이가 없어, 손가락으로 스크린샷 버튼을 연타하고 있었다.

[전체]햄스터: 아악 안 본 눈 사요

[길드]렉슈: 헉 냥님 신혼부부 타이틀 얻으셨네요 ㅊㅊ

[길드]냥이냥나냥: ㄱㅅㄱㅅ

[길드]ㅈi9별: ㅋㅋ길마님 울어요?

[길드]포세이돈대장: 제가 왜 울어요. 다른 놈도 아니고 썬셋이랑 자꾸 엮지 마요ㅡㅡ

유저들이 하우징 파괴 기능을 너무 열심히 활용해주는 덕에, 실제로 서버 내에 신혼부부 타이틀을 획득한 커플은 열 쌍도 되지 않았다. 천노을이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효과도 별로인 타이틀을 얼마 정도는 더 끼고 있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플]썬셋: 경수 형 이사할 때 쓰려고 형한테 차 빌려뒀어요!

[커플]냥이냥나냥: ?? 너 언제 면허 땄는데?

[커플]썬셋: 면허요? 아직 없는데용?

[커플]냥이냥나냥: 근데 차를 왜 빌려

[커플]썬셋: 그야 차를 빌리면 형이 딸려 오잖아여ㅇㅅㅇㅋㅋ

그 말은 노을의 형을 운전기사로 쓰겠다는 소리였다. 아마 그에게는 동의도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멋대로 차 키부터 훔쳐 왔거나 통보해버렸겠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몰라 잠깐 말문이 막혔지만 그게 우선은 아니었다. 말해야 할 게 있었다.

[커플]냥이냥나냥: 지금 머 해

[커플]썬셋: 형이랑 게임…?

[커플]냥이냥나냥: ㅇㅎ 그럼 잠깐 나올래?

[커플]썬셋: 현피 뜨자구요?

[커플]냥이냥나냥: 어ㅋ 나와

[커플]냥이냥나냥: 오랜만에 산책 좀 하자

[커플]썬셋: ㅇㅅㅇ!!!!

‘썬셋 님께서 접속을 종료하셨습니다.’

「노을이: 저 바로 나가요!」

「나: 걸어와! 뛰지 말고」

「노을이: 형은 뛰어와요ㅇㅅㅇ」

「나: ㅡㅡ」

「노을이: 농담ㅋㅋ 형도 조심히 나와요. 큰길 사거리에서 기다릴게요!」

경수는 충전시켜두었던 휴대폰을 챙기고 컴퓨터를 끄려다 고개를 저었다. 한 시간이면 될 텐데.

[길드]냥이냥나냥: 저 잠깐 친구 만나고 올게여

[길드]냥이냥나냥: 겜 켜두고요ㅇㅇ

경수는 바로 몸을 돌려 신발장으로 향했다. 현관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고, 깜빡이던 보조등이 금세 꺼졌다.

[길드]렉슈: 뭐지? 썬셋도 아까 막 로그아웃했는데ㄷㄷ

[길드]neutaaaa: 또 썬셋이랑 동시에 나갔어요?

[길드]박휘벌래: 머 하루 이틀인가ㅋㅋㅋ

[길드]ㅈi9별: 사실 둘이 동거 중이에요

[길드]neutaaaa: ㅇㅇ다 같이 집들이도 갔다 옴

[길드]렉슈: 아 예….

[길드]ㅈi9별: 안 속내

[길드]완두완댜: 아무거나 쳐서 대화 올리죠?? 냥님 와서 이 대화 보면 엮지 말라고 극대노할듯ㅋㅋㅋ

[길드]렉슈: 하긴 냥님 성격상 썬셋이랑 알고 지낼 이유가 없긴 하죸ㅋㅋㅋㅋㅋ

[길드]neutaaaa: 냥님이 썬셋 실제로 만났으면 걔 지금 세상에 없어요….

[길드]할로윈가지: 뚝배기 깨졌을지도ㅋㅋ

[길드]ㅈi9별: 하마터면 아름다운 세상이 될 뻔했내ㅋ

[길드]포세이돈대장: 그때 현피만 제대로 떴었더라도….

[길드]완두완댜: 다 지난 일인데요 뭐ㅋㅋㅋㅋㅋ

[길드]할로윈가지: 은하수 가실 분? 한 명만

[길드]렉슈: 저여

[길드]할로윈가지: ㄱㄷㄱㄷ팟초함

*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차도 사람도 많았다. 인파 속을 걸으며 경수는 서운해할 노을을 어떻게 달래면 좋을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지금껏 답이 나오지 않던 문제가, 걸어가는 10분 사이에 뚝딱 해결되지는 않았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하얀 캡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손을 크게 흔들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늘어진 그림자도 발랄하게 손을 휘젓는다. 익숙한 실루엣에 몸이 앞서려다가 빨간불인 횡단보도를 씽씽 지나치는 자동차들 덕에 다시 뒷걸음질을 쳤다.

고작 스무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노을이 손짓을 섞어 말을 전했다. ‘제가 가요? 아니면 형이 건너와요?’ 남들보다 머리 한 개만큼 더 큰 애가 팔을 허우적거리며 그러고 있으니 건너편 사람들이 모두 노을을 힐긋거린다. 할 말이 있으면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으로 하면 될 텐데 거기까지는 생각이 못 미쳤나 보다.

빨간불이 꺼지고 맞붙어 있던 파란 등에 불이 들어왔다. 경수는 하얀 칸만 밟으며 성큼성큼 횡단보도를 건넜고, 노을은 웃는 낯으로 그가 한 걸음씩 다가오는 것을 기분 좋게 기다렸다.

“갑자기 웬 산책이에요? 강아지도 아니고….”

“…그러는 너도 군말 없이 나왔잖아.”

“산책은 다 핑계고 저한테 할 말 있죠?”

“…….”

만나자마자 정곡을 찔린 경수는 티가 나게 시선을 돌려 땅을 쳐다보았고, 노을은 그런 경수를 내려다보다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형 바람대로 걸으면서 얘기해요. 오늘 날씨 좋다, 그쵸?”

“밤인데 무슨 소용이야.”

“왜 말을 그렇게 해요, 여보.”

“윽.”

귓가에 소곤거리는 목소리에 경수는 질색을 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보라니, 여보라니! 경수가 경악스러운 눈으로 노을을 돌아보자, 그는 도리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했어.”

“저희 한 30분 전부터 신혼이잖아요.”

그건 일루전 캐릭터 타이틀 얘기고! 개소리는 그만하라고 화를 내려던 경수는, 천노을의 수준에 맞추어 조금 돌려 말하는 편을 택했다.

“천노을, 원래 신혼 때는 여보라고 안 해. 뭘 모르나 본데 신혼부부는 서로 연애할 때 부르던 호칭 그대로 부르는 거 몰라? 모르겠지, 당연히 모르겠지! 결혼을 해본 적이 있어야 알지.”

“아….”

노을은 그제야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럼 그냥 형이라고 부를게요.’ 하고 웃었다. 경수는 거기서 상황이 정리되는 줄 알았지만, ‘형, 신혼이라는 건 인정한 거네요?’라는 말에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그나저나….’

신혼이든 부부든, 천노을이 또 무리수를 두고 까부는 거라 생각해도 그리 불쾌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귀엽다고 여겨졌으니 말은 다 한 셈이다. 내가 진짜 남자애랑 연애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한 번 더 들었을 뿐.

‘그리고 게임으로 치면 결혼식은 수능 날 진작 해버렸는 걸, 뭐.’

그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천노을과 처음 만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니까 거의 3년 넘게 그를 만나고 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제대로 하는 첫 연애라 그런지 몰라도 마냥 좋았다. 이상할 정도로 말이다. 경수는 만일의 사태로 노을과 헤어지고 나면, 이만한 연애를 다시 할 자신이 하나도 없었다. 첫 연애가 이래 먹어서인지 몰라도 그는 이제부터 편한 연애가 아니면 할 자신도, 생각도 없었다. 그 상대가 노을이 아니라는 것도 상상이 되지 않았고 말이다.

조금 더 깊게 파고들어 생각해보면, 경수는 이 상태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래서… 동거는 아직 좀 꺼려진단 말이야.’

괜히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가 관계가 아슬아슬하게 깨지기라도 한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는 이대로가 좋았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가까운 곳에 살아 내키면 얼굴을 보러 갈 수 있고, 취미도 비슷한 데다 나름대로 성격도 잘 맞는 것 같은, 딱 지금 같은 관계 말이다.

“형, 제 말 듣고 있어요?”

“…어? 뭐라고?”

“이번 겨울에 면허 따러 갈 거라구요. 그럼 형이 타던 차 저 준댔어요.”

“아, 그래? 난 스무 살 되자마자 땄는데.”

“알아요. 민재가 같이 가준다고 했는데… 왜 아까부터 무슨 생각 해요…?”

생각할수록 머릿속에 복잡해질 뿐이었다. 어차피 평생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조만간 이사하게 되면 다 들킬 일인데. 그냥 지금 말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 오늘 방 계약했어.”

“아… 학교 근처예요?”

“아니, 여기서 안 멀어. 너 다니던 학교 뒤로 넘어가면 있는 곳인데… 네가 서운해할까 봐 말이 안 나오더라.”

“그럴 수도 있죠. 괜찮아요… 전.”

노을이 그렇게 말하면서 처량한 척 속눈썹을 내리까니까 괜히 자신이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다. 하기야, 그동안 한 번 생각이나 해보고 알려달라면서 제게 수없이 많은 인터넷 링크들을 보내줬던 걸 생각하면, 서운할 만도 했다. 생각해보면 그냥 ‘같이 사는 건 좀 그래.’라며 말을 돌리고 거절이나 했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려준 적은 없던 것 같았다. 그러니까 천노을이 납득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노을아, 너랑 사는 게 싫어서가 아냐.”

“…그럼요?”

“…….”

자신이 노을을 달래기 위해 의미 없이 내뱉은 말이라 생각했는지, 목소리에도 별 기대가 없는 것같이 들렸다.

“혹시 제가 불편하게 하는 거예요? 저랑 있으면 피곤해요?”

“아냐!”

“저는 형이 편한데….”

쾌활하게 말하다가 갑자기 시무룩하게 깔린 목소리에 빨리 그를 달래줘야 할 것 같아져 마음이 조급해졌다. 경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노을을 붙잡고 강 근처로 빠르게 걸었다. 어디 앉아서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처음엔 분명 괜찮다던 노을은 경수에게 손목을 붙잡혀 끌려가는 동안 서러움이 쌓이고 쌓이는지 갈수록 울상이 되어갔다. 적당한 벤치를 하나 찾아 먼지를 털고 노을을 먼저 앉혔을 때, 그는 팔자로 찡그린 눈썹을 한 채 경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건 뭔가 이상해요. 형도 저 좋아하는 거 맞잖아요. 이건 제가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렇죠?”

“맞아. 나도 …해.”

“그런데 왜요? 저도 그냥 가볍게만 말한 건 아니었어요. 저도 당연히 집에 친구들 오는 거 불편해요. 원래 집에 누구 들이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구요. 경수 형보다 더 오래 알았는데도 전 아직 가족인 형도 하루 종일 집에 두면 불편하단 말이에요. 그런데 경수 형은 왠지 같이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래서… 읍.”

경수는 횡설수설 서러움을 토해내는 노을의 입을 틀어막았다. 더 말하다간 혼자 잉잉 울어버릴 것 같아서.

“나도 그래. 고등학교 때, 나 자취한다니까 친구들이 달려들었는데도 난, 우리 집 안 보여줬어. 너 말고 세 명? 그 정도만 우리 집에 와봤을걸.”

“읍읍.”

“나도 너 편해. 그래서 만나는 거잖아. 그런데 같이 사는 건 조금 달라. 이 문제는 조금 더 진지하게 오래 생각해보고 싶어서 그래.”

“읍읍읍.”

“어차피 우린 겨, 결….”

너무 갔나. 너무 먼 미래까지 얘기하는 게 괜히 쑥스러웠다.

“…결혼은 못 하잖아. 법적으로.”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고백을 하는 사춘기 중학생처럼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따지자면 이 또한 고백 비슷한 말은 맞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만약, 만약에 나중에 정말 우리가 같이 살게 되면, 그게 결혼… 아무튼 그런 게 되는 셈이잖아? 그리고 봐봐, 늘 좀 걸리는 게 있었는데, 우린 솔직히 첫 키스도 분위기 잡고 한 편은 아니었어. 그건 양심이 1그램이라도 있으면 너도 알 거야.”

“…….”

“그러니까 노을아, 너도 이해해줘. 우린 아직 너무 어리고, 첫 동거는 다 준비된 상태에서 하고 싶어. 그러려면 그냥 우리가 서로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그냥 같이 살고 싶어, 에서 끝날 일은 아니니까.”

현실적으로 이래저래 얽힐 문제도 많아지고 아직은 너무 때가 일렀다. 경수는 간만에 설득력 있는 말을 늘어놓았고, 입이 단단히 틀어막힌 채로 눈만 깜빡이던 노을도 고개를 조그맣게 끄덕였다.

그냥 조금… 아니, 조금 많이 섭섭하니 이런 자신을 달래달란 의미에서 투덜거렸던 것뿐인데, 의외로 경수가 자신과의 관계를 상당히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모든 생각이 싹 날아가 버린 것도 있었고 말이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아직은 때를 조금 미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도가 다를 뿐이었다. 굳이 느리게 가고 싶다는 그에게 빠르기만을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노을은, 경수가 말하는 ‘느린 연애’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좋아요. 엄청 이해됐어요. 진짜로요!”

노을은 해맑게 말하며 경수를 꼭 끌어안은 채 목을 울려 웃었다.

“그래도 이삿날에 불러요. 첫 집들이는 저예요.”

경수는 다시 원래 기분을 되찾은 노을을 힐긋거리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언제 저랑 결혼할 생각이 들 예정이에요?”

“…때가 되면 말해줄게.”

“한 3년만 더 기다리면 될까요?”

“야.”

“농담이에요. …한, 5년?”

“서두르지 말랬지, 일단은 연애 좀 하자.”

“네에.”

노을은 말꼬리를 늘어뜨려 대답하며 경수의 어깨에 뺨을 부볐다. 경수는 손을 들어 노을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아닌 체하면서 늘 이렇게 다정하게 군다면. 그 연애, 조금 더 길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우리 부모님은 그렇다 쳐도 너네 가족 설득하는 게 좀 걸린다. 내가 잘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경수에게, 자신이 이미 통보하듯 부모님께 말해서, 경수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노을은 그저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천천히 해요, 천천히.

*

[길드]ㅈi9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 썬셋 미쳤나

[길드]냥이냥나냥: 또 뭔 짓 했길래….

[길드]ㅈi9별: 아니 냥님이 신혼부부 타이틀 효과는 별로랬잖아요

[길드]냥이냥나냥: ㅇㅇ

[길드]ㅈi9별: 근데 냥님은 다 별로라고 하니까 믿을 수가 없어서

[길드]ㅈi9별: 썬셋 지나가길래 님은 타이틀 어떠냐고만 물어봤는데… 거의 10분? 동안 부러워ㅇㅅㅇ? 부럽죠? 님은 이런 거 없죠? 이러면서 쫓아와요ㅋㅋㅋㅋㅋ

[길드]neutaaaa: 천노을 때 버릇 어디 안 간다ㅋㅋㅋㅋㅋㅋ

[길드]냥이냥나냥: ;; 돌았나….

[길드]포세이돈대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할로윈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목: 공략TIP! 신혼부부 타이틀 쉽게 얻는 방법!!(+후기 有)

작성자: 썬셋

내용: 안녕하세요 여러분들~

오늘은 이벤트 아이템 [신혼부부] 타이틀 아이템을 얻는 방법에 대해 알아볼 건데요~~

[신혼부부] 타이틀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 하죠~~?~

[신혼부부] 타이틀 참 좋은데요~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는 하우징을 하고 집을 일주일이나 지켜야 하니 쉽지 않죠ㅠㅅㅠ~

(사진)

우와 하트 효과가 너무 예뻐요!ㅎㅎ

망겜이 이번에 단단히 일쳤네요~~

일루전의 커플 아이템 중에서도 독보적인?? 아이템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저를 붙잡고 [신혼부부] 타이틀북 어떻게 얻나요? 하고 물어보시는데요~

그건 GM뭐시기가 쓴 공지에 다 나와 있으니 알아서 찾아보세용[email protected]

(사진)

와… 오늘만 해도 부럽다고 포세이돈? 길드원분이 자꾸 절 쫓아다니시더라고요~~~ㅠㅠ

[신혼부부] 타이틀이 그만큼 가지고 싶으셨나 봐요~~~

돈이 있어도 못 사는 [신혼부부] 타이틀북을 쉽게 얻는 방법은 아래 글에서 확인하세요~~!~

☞ www.illusions2.net/board_2021928

(18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아니 홍보 글이네 이딴 글 왜 씀? 자게에 홍보 글이나 올라오고 일루전 진짜 망겜 다 됐네ㅋㅋㅋㅋㅋㅋ 자게 분위기 흐트러뜨리지 말고 꺼져라

└홍보 아님 저 링크 이글이야;

└글쓴놈 썬셋인거 보고 댓 담? 홍보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링크 들어가지 마라 이 글로 연결됨ㅋㅋㅋㅋㅋㅋ

└낚였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오 나도 낚였네

-이 새낀 말투가 대체 몇 개야? 어그로 글 전문임?

-좃도 내용 없네… 이 새끼 자랑하려고 글 썼다에 손목 검

-안 부러워ㅋㅋ

└썬셋: 그럼 내 글에서 나가ㅇㅅ;ㅇ

-ㅈi9별: 제가 언제 쫓아다녔어요ㅋㅋㅋㅋㅋㅋㅋ 부럽냐면서 님이 먼저 쫓아오셨으면서 어이업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잘 보고 가요 우리 소통하며 지내요 잇님~

-나 접었다 이번달에 복귀했는데 아직도 냥냥이랑 컾임? 꽤 오래가네…? (비추천1)

└걔도 걍 똑같은 놈이겠지ㅋㅋ (비추천1)

└냥이냥나냥: ? 뭐야 씨발ㅋㅋ 왜 가만히 있던 내 욕을 해; 욕할 거면 이딴 글 쓴 썬셋만 욕하고 지나가ㅗ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ㅇㅋㅇㅋ 미안 근데 비추천 1 너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비추 박고 튀는 거 존나 웃기다ㅋㅋㅋㅋ

└썬셋: ㅠㅠ;; (비추천3)

└그렇게 싫은데 왜 사겨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넨 진짜 비즈니스컾이다ㅋㅋㅋㅋㅋ 인정함ㅋㅋㅋㅋㅋ

연애게임 외전 완결.


           


The Dark Mage’s Return to Enlistment

The Dark Mage’s Return to Enlistment

gwihwanhaessneunde ibdae jeonnal-ida I returned, but it was the day before enlistment.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
Score 3.3
Status: Ongoing Native Language: Korean

Kim Minjun, who was a normal high school senior in South Korea, was suddenly summoned to another world and became a dark magician.

Minjun, who persevered through all sorts of hardships with the single-minded goal of returning home, saved this other world with his dark magic.

Casting aside a life as a hero and guaranteed riches, he returned to Earth.

Just when he was about to fully enjoy his life, a problem arose. A dungeon break occurred, and monsters began pouring out. Not only did this threaten the peaceful Earth life that Minjun had just returned to… But on his very first day back, he was also ordered to enlist in the mili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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