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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0

199. 거지남매 – 스승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오빠와 ‘크세니아 언니’를 따라 한 극장 앞에 당도한 레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처음 와본 곳이 분명한데, 낯설지가 않았다. “남자친구라고?” 질문하는 뚱뚱한 아저씨의 이름이 기억날 듯 말 듯 했을 때는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레나는 “어라?”, “엥?” 바보 같은 놀람을 거듭하며 분주한 극장을 쭐레쭐레 돌아보았다.

“어딜 갔다가 이제 왔어? 곧 시작이야. 빨리 준비해.”

“아, 미안해요. 바로 분장실로 갈게요. 레오. 죄송한데, 저 잠깐 일하고 올게요. 샤워장은 저쪽이에요.”

배고파 죽겠다.

크세니아가 사라지자 레나는 다급한 허기를 느꼈다. 씻는 것도 좋지만 눈앞이 핑핑 돌아서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오빠, 나 배고…”

“레나야, 우리 얼굴만 씻고 밥부터 먹으러 가자.”

샤워장에 들어선 레오가 나무로 된 욕조 앞 의자에 동생을 앉혔다. 우물에서 새 물을 기르려 잠시 낑낑대었으나, 허기진 그는 힘이 없었다.

도르래조차 없는 우물을 탓하며 레오는 물이 조금 남아있는 물통을 대신 집어 들었다. 동생의 머리를 묶어주곤, “세수하자, 고개 숙여.” 어푸어푸 씻겨주려는데…

– 꼴깍.

레나가 물통의 물을 허겁지겁 떠먹었다. 레오는 “먹지 마!” 소리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세수가 끝났다.

얼굴에 묻은 물을 낼름 핥으려는 레나에겐 아쉬운 일이지만, 레오는 수건으로 얼른 얼굴을 닦아주었다. 본인의 얼굴도 대강 씻고는 밖으로 나왔다.

오랑주 극장에는 단원들을 위한 식당이 있었다. 극장 옆에 가건물로 작게 달라붙은 곳이었는데, 얼굴만 씻었다 뿐이지 완전한 상거지 꼴이라 밥을 얻어먹지 못할 터였다.

레오는 극장 입구를 지키는 오베르에게 사정해 식당 아주머니의 허락을 구했다. 아주머니는

“제가 거지들 데려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화를 내었고, 오베르는

“얘가 크세니아 남자친구래.”

솔깃한 이야기로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흐음~ 인제 보니 잘생겼네요. 크세니아가 눈이 높았던 모양이에요. 남자한테 관심이 없는 것처럼 굴더니… 어머나, 얘는 어쩜 이렇게 예쁘게 생겼담. 동생이야?”

아주머니의 호들갑 속에서 거지 남매는 무사히 식사를 마쳤다.

레나와 레오는 다시 샤워장으로 갔다. 어렵사리 기른 새 물로 씻고 나오니 오베르가 옷을 가져다주었다.

지난 회차에서도 입었던 옷이다. 하얀 사제복과 요란스러운 연극용 옷으로 갈아입어 거지꼴을 면한 남매는 크세니아를 기다릴 겸, 연극을 보기로 했다.

극장 객석에는 여유가 있었다.

오늘은 라우노 패밀리의 사람들이 다 같이 연극을 보는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비가 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연극을 보러 간다는 게 잘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절반가량만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2부가 시작할 즈음에나 도착할 것이다.

막이 오르고, 무대에 조명이 붙었다. 무대에 가까운 자리에 앉은 레나와 레오는 이전에도 봤던 연극을 다시 관람했다.

연극을 보는 둥 마는 둥, 앞으로 어찌해야 하나. 레오가 궁리하는 사이, 레나는 옆좌석에 앉은 소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얘도 어딘가 낯이 익다.

깔깔거렸던 낡은 추억들.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해서 눈을 떼지 못하는데, 막 시작된 연극이 재미없는지 몸을 이리저리 비틀던 곱슬머리 소년과 레나의 눈이 부닥쳤다.

어두운 객석에서 소년 소녀가 서로를 빤히 마주 보았다. 섣불리 말을 걸지 못하다 소년이 용기를 내었을 때는 토들러 아키우넨의 여동생, ‘레이시아’로 분장한 크세니아가

“왕이시여-! 이 사람을 고귀하게 만드소서-!”

무대에 올라 ‘바눈 라오노’를 천거하는 순간이었다.

“저, 저기… 안녕?”

“아, 안녕?”

“넌 누구야? 나는 산티안 라우노라고 해.”

“난 레나야. 그런데…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어?”

산티안이 고개를 저었다. 숨 막힐 정도로 예쁜 여자애가 아는 척해줘서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지만 솔직하게 답했다.

“아니. 처음 봤어.”

“그렇구나… 음… 반가워. 혹시 티안이라고 불러도 돼?”

“어? 그, 그럼. 내 친구들은 다들 날 그렇게 불러. 그런데 넌 몇 살이야? 나는…”

“쉿! 산티안, 조용히 해야지.”

조심조심 말을 붙이던 산티안은 곁에 있는 부모님께 주의를 들었다. 하지만 찔끔 조용해졌던 것도 잠시, 소년 소녀는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레오는 그런 동생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어린애가 아니라니까!”

나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지난 소꿉친구 회차에서 나는 레브에게 “똑똑히 기억해. 너한테 하는 말이 아니야. 동생이 하고 싶은 대로 놔둬. 우리보다 백 배는 나으니깐.” ─ 라고 말하여 다음번의 ‘내게’ 경고를 던졌다.

레브는 어처구니없어했다.

야만인을 규합하러 여행을 다녀왔더니 그새 팔불출이 되어있는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백번을 양보해도 레나는 아직 어릴뿐더러…

‘동생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걸 걔가 잊어버렸을 리 없는데?’

아리송했다. 진짜 레오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회차가 시작된 지 불과 몇 시간, 민서의 자취가 듬뿍 묻어있는 레오는 지난 회차, 레오 드 예리엘의 경고를 일단은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

우선 {혈통}을 되찾는 게 급하다. 레나를 공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뚜렷한 길이기도 하거니와, 이번에 콘라드 왕국을 장악해두지 못하면 다음 소꿉친구 시나리오 진행에 큰 지장이 있었다.

소꿉친구, 약혼관계, 거지남매 세 개의 시나리오 모두를 각각 클리어해야만 할 가능성이 크다. 해서 지난번 소꿉친구 회차, 오른 왕국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콘라드 왕국이 개입했다. 어쩌면 레오 드 예리엘의 존재 때문에 에릭 왕자가 과민하게 반응한 걸지도 모르나,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더군다나 다음에 일으킬 반란은 비단 소꿉친구 시나리오의 클리어만 걸린 게 아니라, 약혼관계 시나리오까지 엮일 터라 확실하게 준비해둘 필요가 있었다. 18/22. 이젠 기회도 몇 번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 회차에서 해야 할 일은… 오리아스(Oriax), 그 무시무시한 악신을 섬기는 에릭 드 예리엘 왕자를 물리치는 것이었다.

레오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두운 밤하늘, 뻥 뚫린 구멍으로 이쪽을 들여다보던 눈이 기억난다. 썩은 피가 호기심에 휩싸여 출렁일 때마다 내 몸도 같이 출렁거렸고, 이마에 찍힌 [오리아스의 발자국] 디버프에 녹아내렸다.

소드마스터가 되었지만,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다. 기껏해야 에릭 왕자를 감쌌던 보호막을 뚫을 수 있는 정도일까. 아직은 그마저도 확실치 않았다.

그러니 보험이 필요하다.

정권을 잡는 것이야 부당하게 쫓겨난 왕자, 레오 드 예리엘의 정통성을 기반으로 기사단을 장악하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필요한 건 에릭 왕자를 잡는 데 도움이 될 카드, ‘베르크 추기경’이었다.

베르크 추기경은 내가 오리아스에게 죽었던 엔딩에서 에릭 왕자를 물리쳤었고, 바르바토스의 사도였던 소꿉친구 회차에서 막강한 힘을 드러냈었다.

뭐… 레브에게 변변찮은 저항도 못 하고 죽긴 했으나 솔직히 그때는 상대가 좋지 못했다. 내 상태도 좋지 못했고.

어쨌든, 베르크 추기경만 회유할 수 있으면 나머지는 시간문제였다. 여차하면 추기경을 납치해다가 궁지에 몰려 힘을 드러낸 에릭 왕자 앞에 던져버리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레오의 궁리가 깊어졌다.

추기경의 숨겨진 아들,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이라는 정상적인(?) 루트가 있으니 우선은 그쪽을 파보는 게 맞겠다. 지난번에는 클로에 드 타탈리아 공주와 키스하는 바람에 실패했었…

‘아, 잠깐만.’

길버트 포르테도 처리해야 한다. 그 자식을 내버려 뒀다간 레아가 수도교회에서 쫓겨날 터였다.

하지만 그 쌍놈의 자식… 아니, 그 녀석은 헤르만 포르테 백작의 아들이라 잘못 건드리면 난리가 난다.

나도 이젠 소드마스터겠다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테지만, 시간이 끌리면 자칫 에릭 드 예리엘 왕자가 왕위에 올라버릴지도 몰랐다.

그러면 놈을 궁지에 몰아세우기가 어려워진다. 악신을 모시는 사도가 위험한 까닭은 저들이 부리는 힘보다도 그들이 사도인지 아닌지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데에 있었다.

‘길버트 포르테를 죽이지 않으면서 클로에 공주와 키스하지 않게 만들 방법이 있을까… 내가 소드마스터라는 사실을 밝혀? 아니야, 그랬다간 여기에 발이 묶일 거야.’

레오는 오르빌을 빨리 떠나고 싶었다. 예전에 에릭 왕자를 몰아내고자 기사들을 모을 때, 시간이 부족했던 탓도 있지만, 가능하면 바르트 경이 팔라스 테르탄을 죽이는 걸 막아주고 싶었다.

‘하리에 가이단’ 때문이다.

바르바토스의 사도일 적에 그녀를 모질게 죽여버리기도 했었고,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공허한 눈으로 돌아온 모습이 안타까웠다. 지난 소꿉친구 회차 때 하리에는 {바르바토스의 팔찌}로 매혹을 당했음에도 끝내 정신을 되찾지 못했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누굴 도와줄 처지나 되느냐? 싶지만, 그녀를 도우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었다. 하리에의 연인, 팔라스 테르탄이 ‘라퍼트 테르탄 공작’의 손자다.

가이단 변경백의 딸, 하리에와 팔라스가 맺어진다면 반란을 일으킬 다음 소꿉친구 회차에서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바르트 경이 팔라스 테르탄을 습격하는 건 늦가을. 그것도 저 멀리 콘라드 왕국의 이로타시 강에서 발생한다. 이를 막으려면 정말 서둘러야 했다. 그래서 크세니아에게 냉큼 청혼한 것이지만.

레오는 ‘카트리나도 어떻게든 해두어야 할 텐데…’ 고심했다. 오르빌에 머무는 동안 무엇을 해두어야 할지를 궁리하는 사이, 연극이 막을 내렸다.

이제야 1부가 끝났나 보다. 생각한 레오가 기지개를 켰다.

하지만 분장을 지우고 다가온 크세니아가 2부가 끝났음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3부에 등장할 일이 없었으므로 레오를 저의 방으로 이끌었다. 그새 많이 친해진 레나와 산티안은 “또 봐!”, “그래!” 인사하였다.

극장 3층은 이전과 다름이 없었다. 방들이 다닥다닥 열악하게 붙었고, 곳곳에 빨래가 널렸다. 열린 문틈으로는 개지 않은 이부자리에 앉아 연초를 피우는 전(前) 창녀들이 있었다.

레나와 레오는 삯바느질하는지 옷감을 가득 쌓아둔 방과 광주리를 엮으려 함인지 싸리(콩과의 낙엽 활엽 관목) 껍질들이 지저분하게 늘어진 방을 지나쳤다. 이윽고 그들은 크세니아의 방에 앉아 있었다.

다른 방들과는 달리 제법 크고, 갖춰질 것은 다 갖춰진 방에서 담소가 오갔다.

특기할 만한 이야기는 없었다.

크세니아가 “콘라드 왕국으로 같이 가자고 하셨는데, 이유랑 시기를 여쭤봐도 될까요?” 물었으나, 레오는 당장은 답해줄 말이 없었다.

아직은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일주일 내로 출발할 테니 당신도 채비를 갖춰달라 부탁하였다. 이유는 떠날 때 알려주겠노라고…

“기대되네요.”

크세니아가 빙긋 웃었다.

“하지만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걸어가는 거라면 사양하겠어요.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셔요. 이래 봬도 모아둔 돈이 제법 있답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제 동생만 며칠 돌봐주세요. 저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한동안 바쁠 거예요. 그래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들르겠어요. 레나야, 그러니까 너는…”

두고 간다는 말에 동생이 또 울고불고 떼쓰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레나는 그러지 않았다. 낯익은 방을 둘러보는데 정신이 팔렸고, 탁자에 놓인 리아트리스(Liatris) 꽃향기를 맡아보다가

“에, 에, 엥취!”

재채기했다.

레나는 손수건을 꺼내 코를 닦아주는 크세니아를 묘하게 바라보았다.

막상 아무렇지 않아 하는 동생이 대견하지만, 레오는 내심 섭섭함을 느꼈다. 레나에게 “내일 꼭 올게.” 약속하고는 극장을 떠났다.

누구를 먼저 찾아가야 할까.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과 카트리나, 둘을 놓고 고민하던 레오는 방향을 정했다. {추적술}로 그녀를 찾았고, 이내 당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하였다.

떨어진 검. 무릎 꿇은 카트리나가 외쳤다.

“스승님!”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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