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201

200화.

개혁신당 최문길 당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저는 개혁을 희망하는 국민들의 성원을 받들어 이 자리에서 대통령 출마를 선언합니다.”

갑작스런 출마선언에 기자들은 깜짝 놀랐다.

원내 4당이라고는 하지만, 개혁신당의 국회의원 숫자는 9명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그가 대선에 출마할 만큼 인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뭐, 당선 가능성 없이 출마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냐만은.

“어째서 출마를 결심하게 되신 겁니까?”

“당선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기자들의 물음에 최문길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많은 국민들이 기득권 양당 정치에 신물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반드시 대통령이 돼서 국가를 개혁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난 TV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네.”

이번 선거에서 이정혜는 안보와 경제를 허창민은 정권심판을 내세웠다. 그런데 갑자기 이정혜가 당 쇄신에 나서며 분위기가 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국민을 위한 새로운 당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히며, 박시형과 각을 세웠다. 자연스럽게 정권교체와 정권심판을 내세우는 모양새다.

여기에 개혁신당 최문길 의원마저 출마를 선언했다. 이렇게 되면 보수후보 하나, 진보후보 하나의 양강구도에서 보수후보 하나, 진보후도 둘의 삼자구도로 바뀌게 된다.

최문길은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만큼 확장성에는 한계가 있지만, 소수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들이 최문길을 찍는다면, 그만큼 진보진영의 표가 분산될 것이다.

택규는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약점이라도 쥐고 협박한 모양인데.”

임진용 회장 말대로 순순히 정권을 넘길 생각은 없나 보다.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온갖 짓을 다 해놓고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애쓰겠다는 건가?

난 박시형에게 당한 일을 떠올렸다.

나와 택규는 차례대로 구속되었고, 직원들은 사찰에 시달렸고, 회사는 압수수색 당했다. 매일 같이 보수단체가 회사로 몰려와 시위를 벌였고, 기홍 선배는 집단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 심지어는 어머니가 사는 집까지 시위대가 몰려갔고,어머니는 쫓겨나듯 집을 버리고 대피해야 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마지막 건 못 참겠다. 이대로 넘어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어떻게든 손을 써야 할 텐데…….

박시형이 사정기관을 동원해 우리를 터는 사이, 우리 역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박시형을 털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정적이라 할 만한 것은 없었다.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각하께서는 대단히 꼼꼼하시지.”

원래 불법적인 일을 하는 놈일수록 성실하다.

의혹만 해도 한 트럭이고, 사소한 비리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어쩌다 걸리는 것은 전부 측근의 개인비리로 몰아갔다.

이번 용역시위 건만 해도 정권 차원의 비리가 아닌, 지시를 내린 청와대 정무수석실 비서관 개인의 일탈이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사건이 터진 직후부터 이일선 비서관은 휴가를 내고 잠적 중이었다.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고, 휴대폰도 꺼져있어서 벌써 국정원이 번개탄 실은 빨간 마티즈를 보낸 거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왔다.

과연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박시형의 비리를 파헤칠 수 있을까?

정권이 바뀌면 한국가당…… 아니, 자유국민당은 여당에서 야당이 되지만, 여전히 원내 1당이다.

당연히 전 정권의 치부를 드러내는 수사에 동의할 리 없고, 오히려 정치보복이라고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전 대통령을 수사한다는 것은 큰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게다가 박시형 성격으로 볼 때 이미 철저하게 증거를 인멸하고, 관련자들을 입막음 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밑의 애들이 충성해도 어차피 대통령직에서 내려오면 끝 아니야?”

“박시형에게는 돈이 있잖아.”

현대사회에서 돈은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다.

내가 정권에 찍히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근거도 없는 섹스 스캔들 때문에 또다시 구속됐을지도 모르지.

박시형은 대통령이 임시직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재임기간 내내 권력을 돈으로 바꾸는 작업에 열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PAS다.

퇴임하더라도 박시형에게는 여전히 PAS가 있다. 그리고 PAS는 그가 죽을 때까지 방패막이가 되어줄 것이다.

“결국 PAS인가…….”

비상장기업이지만, 매출과 영업이익 등을 감안하면 기업가치는 1조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면 웬만한 대기업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공식적으로 PAS는 박시형 대통령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동생 박시한이 대표로 있을 뿐이다. 하지만 박시한은 바지사장이고, 실소유주는 박시형이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동안의 특혜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PAS 실소유주 문제는 박시형이 대선에 출마할 때부터 논란거리였다.

서류만 놓고 보면 박시형은 PAS의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은 만큼, 박시한이 실소유주가 맞다.

그런데…….

올해 초까지만 해도 PAS 해외법인 여섯 곳의 대표가 박시한의 아들 박형동이었으나, 현재는 박시형의 아들 박명훈으로 바뀌었다. 박시한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형의 아들에게 경영권을 몰아주고 있는 것이다.

이게 과연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PAS의 실소유주는 박시형이 맞다. 다만 서류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없으니, 아들로 하여금 회사를 물려받게 하려는 것이다.

이대로 박명훈에게 무사히 경영권 승계만 이뤄지면, 모든 것이 완성된다.

얘기를 들은 택규가 말했다.

“각하는 돈을 사랑하시잖아. PAS를 망하게 만드는 건 어때?”

“좋은 생각이야.”

사람은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상처를 받는다. 돈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돈을 뺏는 것 이상으로 좋은 복수는 없다.

PAS는 매출의 90퍼센트 이상을 은성차에 의존한다. 머리를 삶으면 귀는 저절로 익는다는 말처럼 은성차가 무너지면, PAS 역시 무너지게 된다.

하지만 그때까지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사실상 내수 독점 기업인 은성차가 그렇게 쉽게 무너질 리도 없을 테고.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택규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번엔 뭐가 보였어?”

“뭔 소리야?”

“예지가 보인 거 아니었어?”

난 고개를 저었다.

“그냥 생각 중이었어. 그게 그렇게 쉽게 보이는…… 응?”

그 순간, 눈앞에 뭔가 떠올랐다.

<은성차 에어백 리콜>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또다시 택규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번엔 맞아?”

난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택규는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말했다.

“표정이 왜 그래? 설마 또 대지진은 아니지? 아니면, 운성충돌이나, 지구멸망?”

“……다행히 아니야.”

자연재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다.

“은성차가 에어백 문제로 리콜할 거라는데.”

“리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는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때문에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면, 반드시 리콜을 해야 한다.

리콜은 제조사에서 자발적으로 하기도 하고, 정부에서 명령하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는 2009년에 있었던 토요타 리콜이다. 매트와 엑셀 페달 결함 등으로 인해 미국에서 렉서스를 타고 가던 일가족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 일로 인해 토요타는 1천만 대가 넘는 차량을 리콜하고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했다.

“은성차 에어백은 은성차가 만들어?”

“아니.”

자동차는 수만 개의 부품으로 이뤄진다. 그중 엔진처럼 완성차업체가 직접 만드는 부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협력업체에게 납품받는다.

에어백의 경우 상위 대여섯 개 업체가 전 세계 시장의 8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규격화된 제품이다.

난 일전에 본 자료를 떠올렸다.

“예전에는 독일 업체한테 납품받았는데, 몇 년 전부터 PAS로 바꿨어.”

그 말에 택규는 눈을 번쩍 떴다.

“뭐야? 그럼 PAS가 납품한 게 문제인 거야?”

“그렇겠지.”

난 포털 사이트에 ‘은성차 에어백 불량’을 검색해 보았다. 수십 개의 기사와 게시물이 떴다.

주로 큰 사고가 났는데 에어백이 안 터졌다는 얘기가 주를 이뤘다.

“은성차 에어백이 안 터지기로 유명하지. 걔들은 각도를 정확히 맞춰서 박아야만 터진다며?”

“뭐, 내가 은성차를 별로 안 좋아하긴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억울한 측면이 있지.”

큰 사고가 났는데 에어백이 안 터지는 것도 문제지만, 작은 사고에 자주 터지는 것도 문제다. 대부분의 사고에서 에어백은 정상 작동하고, 작동하지 않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극히 일부에 당첨된 사람들 입장에서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은성차 에어백이 유독 잘 안 터진다는 인식 역시 국내 판매량이 압도적이다 보니 생기는 오해다. 충돌각도에 따라 에어백이 안 터지는 일은 BMW나 토요타도 비슷한 비율로 발생한다.

그런데 에어백이 잘 안 터진다는 이유로 리콜이 가능할까?

혹시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

“다른 이유라면 뭐?”

“에어백 자체가 불량이라든지.”

택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그럼 왜 이제까지 문제가 없었던 건데?”

“에어백이라는 게 터지기 전까지는 멀쩡한지 알 수 없잖아.”

운전하다 보면 간단한 접촉사고는 여러 차례 겪어도, 에어백이 터질 정도로 큰 사고를 당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차 100대 중 10년 안에 에어백이 터지는 차는 한 대가 될까 말까다.

그리고 그 정도 사고면 어차피 크게 다치거나 죽어도 이상할 게 없으니, 에어백 이상을 알아채기 힘들다.

무슨 결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인은 둘 중 하나다.

생산과정의 문제거나, 설계의 문제거나.

“생산과정의 문제라면 특정기간 생산한 제품만 리콜하면 되지만, 만약 설계 문제라면 PAS 에어백이 장착된 모든 차량을 리콜해야 돼.”

“리콜 대상이 몇 대나 되는데?”

은성차가 전 세계에서 1년 동안 판매하는 자동차는 800만 대 이상. PAS가 에어백을 납품하기 시작한 게 6년은 넘었으니…….

“한 5천만 대는 될걸.”

말이 좋아 5천만 대지, 이 정도면 한국 전체에 있는 차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

“그럼 비용이 얼마야?”

“대당 10만 원으로만 추산해도 5천만 대면 5조 원이야.”

“뭐?”

택규는 깜짝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요즘 우리가 돈을 잘 벌어서 그렇지 5조면 웬만한 대기업도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다. 국내에 현금을 5조 원 가지고 있는 대기업이 몇 곳이나 되겠는가?

거의 L6 폭발 사태와 맞먹는 수준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서성전자는 세계적으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이니 버틸 수 있었지만, PAS는 일개 중견기업에 불과하다.

당연히 그 정도 손실을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만약 정말로 에어백을 전량 리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100퍼센트 파산이다.

1차 배상 책임은 결함 있는 물건을 납품한 PAS에게 있겠지만, 만약 PAS가 배상을 못하고 파산하면, 그 다음은 은성차가 책임져야 한다,

여기에 리콜 과정에서 생기는 각종 문제와 기업 이미지 실추, 판매량 하락은 덤이다.

난 뉴스에 나오는 박시형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잘만하면 한 번에 날릴 수 있겠는데.”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