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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3

< 돌아온 탕아 >

메리엘은 지구의 문명을 세워온 인간들의 방종과 그들이 믿는 무의미한 신앙을 언급했다.

이야기 속 전지전능한 신과 다르게 만신전의 신들은, 메리엘과 같은 이계의 신들은 전지하지 않되 자비롭고 전능하지 않되 행동한다.

그렇다면.

마땅한 신앙의 주체는 자신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은 오래가지 않아 레온 왕이 한국과 아시아 방면을 장악할 거라 여기더군요. 하지만 전 좀 더 크게 보고 있어요.”

만신전은 곧 세계를 장악한다.

“빠짐없이, 라는 건 아니겠죠. 이 세계에는 그릇된 신앙을 가진 광신도들이 많으니까요. 그쪽 교통정리가 좀 필요하긴 하겠지만, 전부 없애지는 못할 거예요.”

“무력에 의한 개종은 라이온하트의 총의가 아닙니다.”

“하지만 선제공격 당하면 반격은 반드시 하는 주의죠? 권위가 깎여나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것 같던데요.”

그 말이 맞았다.

라이온하트는 제국이라는 존재를 윤허할 정도로 같은 인간 상대로는 관대한 편이다.

불신 또한 인간의 선택. 그들이 실재하는 신들을 모욕하지만 않는다면, 굳이 믿음을 강요하진 않는다.

하지만.

불신을 넘어서 공격성을 보인다면, 라이온하트의 기사들은 기꺼이 그 검을 겨누었다.

“시대가 바뀔 거예요.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에서 당신은 반드시 기존의 기득권에게 도전받겠죠. 황금과 계약의 신이라는 신성을 만신전에 받기로 했을 때부터 짐작했을 텐데요?”

황금과 계약의 신 드라고니아.

용의 탐욕과 박리다매라는 철저하게 현대 자본사회를 잠식하기 위한 드라고니아의 의도를 레온은 모르지 않았고 신들도 알고 있었다.

메리엘은 이미 레온이 세상을 잠식하기로 작정했음을 짐작했다.

‘역시 신성의 지혜를 속여 넘길 수는 없겠군요.’

[그래, 하지만 이 여신은 자신의 동맹에게 이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운명의 여신이시여, 당신께서 만신전에 한 자리를 원하신다면 신들께서는 기꺼이 받아들이신다고 하십니다.”

그 말에 메리엘은 말없이 웃어 보였다.

비록 인간들과 비즈니스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는 하나 그녀는 엄연한 신성. 영겁의 존재에게 찰나의 거래는 불분명한 것이다.

메리엘은 싱긋 미소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바쁜 이를 제가 오래 붙잡았군요. 이만 일 보시지요.”

레온은 일어나는 메리엘과 따라 일어나 그녀의 손등에 경의의 입맞춤을 하였다.

“운명의 여신께서 만신전에 귀의하실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후훗··· 저도 레온 왕처럼 훌륭한 대리인을 얻는 날이 기대되네요.”

-펑! 퍼엉! 펑!

바깥에서는 한창 화려함을 꽃피우는 불꽃놀이가 퍼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맺어진 암묵적인 밀약을 감추듯이 화려하게 불꽃이 퍼져나갔다.

* * * *

크리스마스 축하연의 피날레인 불꽃놀이가 끝나고 만신전은 자연스레 한자리에 모였다.

마술사 여왕 베아트리체와 철과 대장장이의 성배기사 야크트 스피너, 전쟁과 불꽃의 성배기사 불카누스와 불타는 검 성배 기사단.

천소연 기사단장과 두 신의 신녀인 한하리를 비롯한 나주 기사단.

그리고 만신전의 대이동에 자연스럽게 따라나선 호기심 많은 이들까지.

-끼룩. 공정단계 마무리. 최종공정 진행 바람.

야피가 다가와 보고하자 레온은 만신전이 원형으로 둘러싼 가운데에 벼와 돌덩이들이 쌓이는 모습을 확인했다.

한국 나주에서 공수해온 축복받은 벼와 북아메리카 중서부 대평원에서 자라난 축복받은 옥수수와 밀까지.

그 양이 족히 수십 톤에 달하였으며 공물처럼 쌓이는 제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수백 구의 병장기를 제작할 만한 별철들, 끼끼룩족이 바다에서 캐온 진주와 산호초들. 산더미처럼 쌓인 황금들.

그것들은 틀림없이 세상의 귀한 것들이나 신들이 이를 축복하고 수확하기를 허락하였기에 더욱 귀하였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땅이 마치 라이온하트 영광의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마치 그 시대를 재현하려는 것처럼.

레온은 그 한가운데로 가 온갖 귀한 것들로 둘러싸인 돌들을 보았다.

카리나가, 드라고니아 대공이 이백 년 동안 간직해온, 자신을 따라온 자들을 위해 짊어진 책무.

그들의 영혼을 위해 카리나는 스스로의 영혼과 육신까지 용에게 내어줬다.

그것이 결코 무가치한 일이 아님을, 귀족으로서, 대공으로서, 왕족으로서 마땅히 영광된 의무임을 알기에 레온은 이들을 위해 희생된 딸의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공각하··· 아니, 도련님, 제 손자인 델보스케입니다. 이 아이가 카리나 아가씨를 보필할 겁니다.」

대대로 대공가를 섬겨온 집사가 있었다.

「감축드리옵니다, 이 가스파르. 목숨을 다해 카리나 대공각하를 모실 것입니다.」

전장에서 함께 싸웠던 북부의 기사가 있었고.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공 각하. 북부는 위대한 사자심왕을 배출한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오래도록 대공가의 조언자로 있었던 가신들이 있었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드라고니아 대공을 위해 신의를 다했고, 그 빛나는 목숨이 스러져갔다.

그렇다면.

선대 드라고니아 대공으로서 레온 또한 마지막까지 그들과의 신의를 지켜야 할 것이다.

“일찍이 큰 전쟁이 있었다.”

모두에게 가혹했던 시간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나가 맞닥뜨린 불구대천의 원수가 있었다.

“우리는 수없이 싸우고, 지켜내고, 스스로의 명예를 증명했다. 그것이 얼마나 고단한 것이든 상관이 없었어.”

악마와의 가혹한 싸움 속에서도, 세상이 멸망한 와중에도 그들은 도망치지 않고 싸웠다.

그것이 얼마나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여기 있는 이들은 그 싸움 속에서 스러진, 아직까지도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이다.

북부.

드라고니아 대공령과 그 기수 가문들에서 차출된 3만의 기사, 귀족, 병사들.

그날, 함께 쓰러지지 못한 옛 부하들이 신들의 보살핌조차 받지 못하는 이계에서 하나둘 쓰러져갔다.

“명심해라. 우리의 대적은, 모든 차원을 넘나들어 공공의 적이 있음을.”

앞으로의 지구는 수많은 생존자들과의 문화충돌과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지만, 그보다 앞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악마. 모든 원흉이자 수많은 고향들을 잃게 한 침략자들을 격멸해야 할 것이다. 여기 있는 이들의 영혼은 그를 위해 죽은 영웅들이다.”

레온은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익숙한 이름이었고, 레온의 친구였던 이름이었다.

“신들이시여.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보우하시는 감사하고도 은애하는 우리의 신들이시여. 여기 만신의 전사들이 오랜 방황 끝에 당신들의 품으로 돌아왔나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기 있는 이름 하나하나가 레온의 병사였고, 기사였고, 가신이었으며 기수였다.

그들을 위해 레온은 기꺼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영혼을 거두시옵소서. 살아 생전 죄가 있다면 전공으로 씻어주시고, 죽음 앞에서도 타오른 용(勇)을 평가하시어 신들과 만찬을 즐길 수 있도록.”

마정석. 카리나가 명하기를 잠시 머무르는 자리라 하여 중촌석이라 명명한 그곳에서 영혼의 빛이 떠올랐다.

그 혼이 제단 위의 성배로 흘러가는 순간은 누구나가 경탄할 만큼 놀라운 순간이었다.

신의 품에, 영혼이 안기는 경건한 순간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까지 흐르게 만들었다.

모두가 눈앞에서 보이는 기적에 취하는 동안 레온은 말없이 그들의 떠나가는 영혼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나와도 술 한잔들 하세.”

필멸자인 이상, 마땅히 맞이해야 할 마지막을 기약하며.

* * * *

카리나는 떠나가는 영혼들을 보며 눈을 감았다.

그들의 마지막을 살피는 것이 불가했기에. 카리나는 용과 거래하여 그들의 영혼을 돌 안에 가두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들의 영혼이 흩어져 무위로 돌아가는 것을 결코 두고볼 수 없어 행한 만행이었고, 어쩌면 영원토록 저 비좁은 돌 안에 갇히게 만드는 건 아닐까 두려워했다.

‘나는 성공했다.’

하지만 끝내 만신의 대리인이 돌아왔다. 그들의 영혼을 품을 낙원과 함께.

죄스럽고 미안했던 이백 년의 세월이 마무리된다.

이제 그녀는 여한이 없었다.

“겨울날씨가 차구나.”

그때, 레온이 다가와 제 정장을 카리나의 어깨에 얹었다. 온기를 머금은 정장이 따뜻하게 피부를 데운다.

“감사합니다. 그들의 영혼도 이제 안식을 되찾을 겁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네가 짐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줬을 뿐이다.”

“······.”

카리나는 제 옆에 앉은 레온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는 어떠한 책망도, 원망도 보이질 않는다.

그날, 처절한 싸움을 앞둔 연합군 막사에서 복수를 위해 연합을 빠져나간 자신에 대해, 북부군에 대해 어떤 원망도 없다.

결국 당신께서는 끝내 승리하셨는데.

우리는 그를 믿지 못하고 스스로의 복수를 위해 당신 곁을 떠나갔는데.

돌아온 탕아에게 당신께서는 분노도, 비웃음도 아닌 그저 기쁨과 고마움으로만 반겨주신다.

하지만······.

당신께서는 용서하실 일도 아닌 일이라 여기셔도, 나는······.

“받거라.”

떨어지지 않는 말을 입 안에서 곱씹을 때였다. 레온이 품에서 꺼낸 것은 웬 사탕이다.

“갑자기······.”

“네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사탕이다. 비슷한 맛을 찾느라 여러 사탕을 씹어봤다.”

격의 없이 들이밀어진 사탕을 무심코 입 안에 담은 카리나는 정말로 옛 기억에 남은 그 맛임을 떠올렸다.

현대의 화려한 단맛이 아닌, 수수하고 밍밍한··· 사탕이라기보다는 엿가락에 가까운, 북부 대공령에서 기호식품으로 보급되기도 하는 맛.

왕도의 화려한 디저트와는 거리가 먼 북부령에서는 흔히 소비되던 맛이다.

“직접··· 찾으신 겁니까?”

“단맛이 혀에 남아 아리더구나. 그래도 찾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다.”

“후후······.”

카리나는 옛 추억의 맛을 찾기 위해 수십 가지의 사탕을 입안에 넣다 뺐을 아버지를 떠올리니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이 어찌나 반가웠던지 레온은 자신이 한 고생이 보람 있다 여겼고.

“맛있군요.”

“맛있다니 다행이다. 더 바라는 것은 없느냐?”

“있을 리가요. 이 이상 바라면 욕심입니다.”

“너는 내 딸이다. 딸이 아비에게 바라는 것이 어찌 욕심이야.”

“가장 어려운 순간에 아버지를 저버린 불효녀이기도 합니다.”

“······.”

레온은 카리나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 연합을 탈퇴한 북부군. 그리고 그들을 이끌고 사자심왕을 떠난 대공.

카리나가 어떤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사자심왕도 모르지 않았다.

“그때, 네 너에게 한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레온이 딸에게 남긴 마지막 말.

“지금도 후회되는구나. 이토록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 마지막임을 직감했으면서도 그런 모진 말을 해버렸다.”

“폐하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 아비의 잘못이기도 하지.”

“······.”

레온은 카리나의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어미를 닮아 이토록 검은 머리카락에서 자신의 흔적은 그녀에게 많이도 남겨져 있다.

꼿꼿한 자세와 강직한 분위기, 푸른 눈과 타고난 용력.

자신의 핏줄임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한 아내와의 사랑의 증명.

이토록 소중한 사랑이기에 잘잘못은 의미가 없다.

부모는 자식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어도 언제나 모자라기에.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 이 아비의 사랑이다. 네가 아비를 저버릴지언정, 결코 내가 너를 저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레온에게 그때의 분노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 이백 년 전에 남긴 감정은 오직 미안함과 후회뿐이다.

“우리 딸. 사랑하는 내 딸아.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았던 내 아이가 이렇게 돌아왔다. 세상 어떤 부모가 기쁨 외의 감정을 가질 수 있단 말이냐.”

돌아온 탕아에게, 아비는 그 어떤 것도 책망하지 않는다.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은 언제나 무한한 것이기에.

“······.”

카리나는 말없이 레온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아주 먼 과거,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은 기억 속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고마워요, 아빠.”

그것만으로 세상 모든 아버지들에겐 충분히 족한 것이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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