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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3

202. 거지남매 – 제가 왜요?

“응접실이 예쁘군요. 백작님께서 꾸미신 것인가요?”

레오가 소파 등받이에 팔을 얹으며 응접실을 휘- 돌아보았다.

페테르 백작가의 응접실은 마치 반으로 갈라진 듯, 창가 쪽과 안쪽의 벽지 색이 달랐다.

레오가 앉은 창가 쪽 벽지는 밝은 모랫빛이었다. 반면 탁자 건너편의 벽지는 짙은 바닷빛이었는데, 어떤 장신구도 걸치지 않는 페테르 백작이 꾸민 것이라 보기에는 지나치게 과감한 감이 있었다.

“아닙니다. 제 부인의 취향이지요.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그렇군요. 미적 감각이 무척 뛰어나신 분인가 봅니다. 하지만… 제가 곤궁하게 살아서일까요? 조금은 산만한 느낌입니다. 굳이 고르라면 저는 통일감이 있는 걸 선호하거든요. 남작님은 어떠십니까?”

통일감. 왕자는 이제 자신의 몫을 되찾으려 한다.

본론이 상당히 빠르게 나왔다고 느낀 게스타브는 침묵하다 신중한 답변을 내놓았다.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드물겠지만, 나누어진 게 좋은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아직 이 왕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소드마스터라 들었는데, 솔직히 믿기진 않았다. 십수 년 전에 스쳐 지나갔던 나를 기억하는 거로 보아선 천재임이 틀림없지만, 한 번 튕겨서 나쁠 것은 없을 터였다.

그런데 이에 대한 왕자의 대답은 조금 엉뚱한 것이었다. 아니지, 엉뚱하다기보다는…

“하하. 그렇습니까? 남작님께서 그리 말씀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나누어져서 좋은 경우가 어떤 게 있을까요? 백작님.”

불쾌하다. 페테르 백작의 눈썹이 움찔, 치켜 떠졌다.

남작님. 백작님.

이 작자는 지금 내 호칭을 가지고 말장난을 치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그러는 너는 왜 고국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느냐?’ 도발하는 것이었는데, 목적을 알 수 없었다.

설마 내가 두 왕국에 발을 걸치고 있다는 걸 빌미로 협박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우스워진 게스타브는 코웃음 치며 별 의미 없는 말로 답변을 대신하였다.

“섞여서 지저분해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귀족의 대화가 가진 장점이다. 교묘하게 오가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적당히 헛소리해서 끊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열 받았구나. 레오는 그가 퉁명스럽게 뱉은 말에 담긴 본심을 읽어내었다. 귀족의 대화가 가진 또 다른 장점이다. 비록 헛소리라 할지라도 은유에는 어쩔 수 없는 속뜻이 담기기 마련이었다.

섞여서 지저분해지는 게 싫다. 그렇다면 이자는…

레오는 백작의 본심을 꼭꼭 되새김질했고, 이내 그게 무슨 뜻인지를 알아차렸다. 지지난 거지남매 회차, ‘제니아 재커리’가 들려준 모나크 남작가의 비사를 떠올리면 추론이 어렵지 않았다.

제니아의 말에 따르면 모나크 가문에는 후계자인 ‘베일리 모나크’와 영애인 ‘그라이넨 모나크’, 서자인 ‘바릭 모나크’가 있었다.

개중 아들 한 명을 신께 바친다는 명목으로 수도교회로 보내졌다는 바릭 모나크는 베르크 추기경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는데, 당시 혼인하지 않은 그라이넨 영애가 임신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훗날 자식을 갖지 못한 베일리 모나크가 입양한 아들이 바로 게스타브 모나크였다. 베르크 추기경과 매우 닮았다는 걸 고려하면 게스타브는 배다른 남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임이 틀림없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게스타브는 굉장히 지저분한 출생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부모의 관계도 그렇지만, 신분제가 뚜렷한 사회에서 어머니는 귀족, 아버지는 서자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심지어 혼외자, 가문에서 인정받지 못한 관계라면 말할 것도 없다.

섞여서 지저분해지는 게 싫다.

그러니 방금 페테르 백작이 무심결에 뱉은 말에는 깊은 자격지심이 담겨 있었다. 레오는 그가 어째서 아버지를 싫어하는지, 어째서 모국을 떠나 타국의 귀족으로서 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만, 문제는…

‘…이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나더러 뭘 어쩌라고.’

골 때리게 됐다. 게스타브 백작을 거쳐 베르크 추기경과의 접점을 만들어 내는 게 정상적인 루트라고 생각했는데, 이래서는 방도가 없었다.

포장만 그럴듯했지 완전히 막힌 루트. 또 속았다고 생각한 레오는 부글부글 치솟는 화를 참기 어려웠다. 씨발 그래, 내 좆대로 해야겠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검을 뽑았다.

“앗! 백작님!”

게스타브의 뒤에 기립해 있던 기사들이 백작을 엄호했다. 이글거리는 오러블레이드를 보곤 침음을 삼켰으나, 레오는 움직이지 않았다.

“게스타브 모나크 남작. 난 네 도움이 필요하다. 그대가 생각하기에 나는 부족함이 있는 왕자인가? 아니면 충성을 바치기에 모자람이 없는 왕자인가.”

픽- 레오의 얼굴에 음영을 가하던 오러블레이드가 꺼졌다. 검을 도로 집어넣었고, 기사는 그가 내민 검집을 얼떨떨하게 받아들었다.

“선택해라.”

레오가 자리에 앉자 기사들은 우왕좌왕했다. 불가사의한 소드마스터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당혹스러워하는 그때, 왕자를 골똘히 바라보던 백작이 진화에 나섰다.

“모두 물러나 있게.”

“백작님 하지만…”

“괜찮아. 잠시 모두 자리를 비켜주게. 이분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 그리고 입단속을 단단히 하도록.”

기사들과 집사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응접실에 남은 건 레오와 백작, 김을 모락모락 뿜어내는 찻잔뿐이었다.

호록, 차 한 모금을 머금은 게스타브가 입을 열었다.

“보기보다 성급하시군요.”

“…”

“왜 그렇게 서두르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왕자님께서 소드마스터라는 게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베나르 타티안이라고… 제겐 아주 무서운 친구가 있는데, 그런 대귀족의 눈에 띄면 왕자님께선 무척 곤란한 처지에 놓이실 겁니다.”

“조언은 감사하나 나는 먼저 답변을 듣겠다.”

흐음- 게스타브가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잠시 자신의 은발 머리를 쓸어넘기며 고민하다가 결론을 입에 담았다.

“좋습니다. 도와드리죠. 하지만 왕자님을 직접적으로 돕진 않을 겁니다. 전 콘라드 왕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거든요.”

“…그럼 넌 내게 뭘 해주겠다는 거냐?”

“경제적인 지원은 해드릴 수 있죠. 왕자님께서는 아마도 온 콘라드 왕국을 누비며 오랜 싸움을 이어가셔야 할 겁니다. 그런데 저희 모나크 남작가가 반란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남작가는 왕자님께 최후의 쉼터가 되어드릴 수 있을 겁니다. 실패하셨을 때를 대비한 재기의 발판으로 여기셔도 좋습니다.”

“말을 이상하게 하는구나. 내가 반란에 실패해서 모나크 남작가로 도망치면, 남작가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괜찮습니다. 당장 도와드리지 못하는 것도 죄송하니 그 정도는 해드려야겠지요.”

“…”

어이가 없군. 레오는 마치 대단한 걸 해준다는 양 능청 떠는 백작을 어처구니없이 바라보았다.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

이자는 지금 남의 칼을 빌려 모나크 남작가의 사람들을 죄다 죽여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저분한 출생을 가진 그가 어릴 적에 받았을 푸대접을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허나 반란에 성공해도 상관없고, 실패해도 상관없다는 백작의 태도는 과거를 돌이켜 보았을 때, 다소 의아한 점이 있었다.

─ “이렇게 장성하신 모습을 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만… 아쉽습니다. 왕자님께서 살아 계시면 ‘우리’ 콘라드 왕국이 시끄럽습니다. 부디,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을 처음 만났던 회차에서는 이런 결과가 나왔었다. 타티안 후작의 양자로 들어가려는 날 발견한 백작은 내 정체를 후작에게 일러바쳤고, 쫓기기 직전에 이렇게 속삭였었다.

즉,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은 그 당시 콘라드 왕국에서 후계자 다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왜…?

물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

당시의 나는 일개 깡패에 불과했었다. 검술 실력도 대단치 못했고, 업적도 많지 않던 초반이라 게스타브가 보기에 가망 없이 분란만을 일으킬 존재로 비쳤을 터였다. 이용하기도 껄끄러울 지경으로 무능했던지라 그냥 버리는 선택을 한 것이다.

반면 지금의 나는 소드마스터, 백작은 내 행보를 막을 수 없다. 더군다나 왕자 만남 업적으로 인한 호감과 {왕의 피}, {기품} 등이 섞였으니 설령 콘라드 왕국을 시끄럽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버릴 수는 없다고 판단했을 공산이 컸다.

그럼 의문이 하나 더 생긴다. 지금이야 어쩔 수가 없어서 이렇게 나온다 치더라도, 백작은 왜 콘라드 왕국이 시끄러워지기를 바라지 않았었을까?

생각해보면 이전 회차에서도 ‘도와주겠다. 하지만 나도 알아볼 것이 있으니 좀 기다려달라.’고 말했었다. 그랬다가 내가 타탈리아 공주와 키스하는 대형 사고를 치니까 만나기를 거부해버렸지만.

머리 아프다.

레오는 격심한 두통을 느꼈으나 한번 떠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다. 그대의 도움을 감사하게 받겠다. 내가 나의 정당한 자리를 되찾는 그 날, 그대에게 후한 포상을 내리겠다. 그러나…”

인간적인 모습.

“내 욕심으로 왕국이 시끄러워질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구나. 내게 뭔가 조언해줄 것이 있느냐?”

“…글쎄요? 영민하신 왕자님께서 잘 헤쳐나가시리라 믿습니다만…”

대가리 굴리는 게 뻔히 보인다. 레오는 진심으로 조언을 구하는 척 몸을 앞으로 기울였고,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던 백작이 입을 열었다.

“콘라드 왕국에는 왕위를 노리는 파렴치한이 에릭 왕자 말고도 하나 더 있습니다. 말씀드리기 송구합니다만, 저와는 관계가 없어서 방관하고 있었습니다. 베르크 추기경이라고…”

에라이.

무언가를 깨달은 레오가 속으로 혀를 찼다. 게스타브 백작의 존재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은 베르크 추기경이 남몰래 사제와 성전사를 육성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콘라드 왕국의 수도, 루티나에 가거들랑 ‘그라니아 보육원’을 면밀히 살펴보라 경고하였는데, 이건 이미 레오가 아는 정보였다.

그러니까 순서가 꼬인 거다.

기사들을 모아 에릭 왕자를 쳤던 네 번째 거지남매 회차에서, 레오는 제니아 재커리로부터 베르크 추기경과 페테르 백작의 관계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베르크 추기경이 에릭 왕자를 몰아내는 데 무슨 쓸모가 있는지 몰랐었다.

해서 추기경의 도움 없이 기사들만으로 에릭 왕자를 몰아내려 했다가 오리아스를 만났고, 끔찍한 엔딩을 맞았다. 베르크 추기경이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된 건 엔딩 텍스트를 읽은 다음이었다.

그런데 만약 페테르 백작에게서 이 이야기를 먼저 들었었더라면.

추기경을 실각시키고 반란을 일으키는 게 좋을 거다 ─ 음모가 깔린 말을 늘어놓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다음에 제니아 재커리로부터 백작과 추기경의 관계를 알게 됐었더라면… 네 번째 회차에서 그토록 끔찍한 엔딩을 맞지 않았을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레오는 표정을 관리하기가 힘들어졌다.

이 빌어먹을 게임이 순서를 뭣같이도 꼬아놨구나. 페테르 백작을 만나 이야기하려면 애초에 이런저런 업적을 많이 모아둔 상태여야 하는데, 콘라드 왕국에서 에릭 왕자를 칠 기사를 모으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손쉬운 방안을 미끼로 내어주곤, “사실은 이거였지롱! 멍청아.” 약을 올리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레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못 알아챈 나도 병신이지만, 진짜 너무하다.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피곤하군. 그럼 자세한 건 차차 이야기하고…”

그 와중에 나는 거지다. 레오는 크흠! 헛기침하며 말을 이었다.

모양 빠지게.

“떠나기 전까지 며칠 머물 방을 부탁해도 되겠는가?”

페테르 백작은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레오는 뻔뻔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는데, 차마 눈까지 마주치진 못하고 응접실을 둘러보는 척했다.

그래. 거지남매 시나리오는 항상 이런 꼴이지…

하지만 골 때리는 상황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레오는 페테르 백작의 저택에 머무르는 며칠간 여행을 준비하며 간간이 카트리나를 만나러 갔다. 그녀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었고, “오늘이 마지막이다. 나는 이제 떠나야 한다. 기사단은 그만뒀겠지?” 카트리나의 굴레 퀘스트가 클리어되기를 기대하였는데…

어물어물, 딴청을 피우던 카트리나가 배 째라는 듯이 말했다.

“저 기사단 안 그만뒀는데요? 제가 왜요? 다 배웠는데.”

……뭐라고?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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